‘누군 줄도 모르고’… 대만 부총통 방문 항의한 친공 시위대 ‘알바’ 논란

한동훈
2023년 08월 18일 오전 10:42 업데이트: 2023년 08월 18일 오전 11:32

“누구에게 항의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난감한 표정
대만 당국 “中, 3월 차이잉원 방문 때도 ‘알바’ 고용”

대만 라이칭더 부총통이 남미 파라과이를 방문하면서 경유하는 형태로 미국 뉴욕에 머물렀다 떠난 가운데, 뉴욕에서 격렬히 항의한 중국인 시위대의 미심쩍은 모습이 포착됐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대만 집권 민주진보당의 라이칭더 부총통이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하는 동안 주변에서는 ‘하나의 중국, 평화 통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든 친공 시위대 수십 명이 집결했다.

시위대는 “대만 독립을 없애버리자”는 구호를 외치면서 중국 공산당 오성홍기와 미국 성조기를 함께 흔들었다. 중국 출신의 미국인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한편, 미국이 대만이 아닌 중국과 가까이 지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처럼 보였다.

또한 시위대는 행사에 참석하는 대만 출신 화교들에 대해서도 비난을 퍼부었고 이로 인해 일부 대만 화교들이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기를 흔들며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현장에는 중국과 대만 매체들도 취재 경쟁을 펼쳤다. 중국 공산당 관영 영어방송인 CGTN은 친공 시위대의 항의 장면을 부각했고, 대만 TVBS는 라이칭더를 환영하는 미국 시민들과 대만 화교들의 모습을 비췄다.

CGTN은 한 참가자를 인터뷰해 “우리는 라이칭더의 대만 독립 의도를 비판하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는 발언을 전하며 이날 “뉴욕의 화교들이 대만 부총통 라이칭더의 미국 방문에 항의했다”는 기사를 냈다.

그런데 대만 TVBS가 보도한 이날 현장 영상에는 자신이 누구에게 항의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동원된 것처럼 보이는 친공 시위대의 모습이 담겼다.

영상에서 한 대만 기자가 공산당 오성홍기를 든 중년 여성에게 “당신은 지금 누구에게 항의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질문을 받은 여성은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돌려 취재진을 회피했다. 여성이 우물쭈물하자, 화면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옆에서 한 남성이 고함치듯 “대만 독립주의자에게 항의하고 있다”고 대신 답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대만 부총통 라이칭더 방미 항의 시위 도중 ‘누구에게 항의하고 있는지’ 질문을 받자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 여성 시위 참가자. | TVBS 화면 캡처

이에 기자가 “그게 누구인가, 누구에게 항의하고 있는 것인가?”라고 질문하자 잠시 후 시위대 리더로 보이는 붉은 셔츠 차림의 중년 남성이 취재진 앞으로 나와 격앙된 목소리로 응수했다.

이 남성은 “(우리는) 돈을 받고 항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돈이라면, 너에게 줄 수 있을 정도로 가지고 있다”며 “함정을 파지 말라”고 말했다. 그가 돈 이야기를 꺼낸 것은 자원해서 모였다는 걸 강조하기 위함인 것으로 추측됐다.

친공 시위대가 실은 돈을 받고 동원된 ‘알바’라는 논란은 지난 3월 중미 순방길에 오른 대만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경유지로 미국 뉴욕에 도착했을 때도 제기된 바 있다.

차이잉원 총통이 숙박한 호텔 앞에는 ‘환영’과 ‘항의’ 양 진영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대치했다. 항의 시위대가 ‘근본을 잊거나 자기 나라 역사와 문화를 모름’을 뜻하는 사자성어 ‘수전망조(數典忘祖)’를 ‘망전수조(忘典數祖)’로 잘못 쓴 현수막을 들었다가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대만 정보기관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 현지 중국 총영사관 등으로부터 돈을 받고 고용된 인력으로 보고 있다. 중국 총영사관이 중국과 관련된 사회적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교민이나 유학생을 동원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대만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 총영사관이 고용한 시위대의 일당은 1인당 200달러(약 26만원)로 숙박비나 교통비, 식비는 제외된 금액이라고 현지 언론에 밝힌 바 있다.

다만, 이번 라이칭더 방문 때는 지난 3월에 비해 친공 시위대의 규모가 줄어든 점이 대만 언론에 거론되고 있다. 차이잉원 총통 방미 때는 밤늦게 호텔 앞에서도 시위대가 모였지만 이번에는 행사장 앞에서만 시위가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