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일대일로 함정에 빠져 위기 가중…국가적 혼란

강우찬
2022년 05월 13일 오전 11:50 업데이트: 2022년 05월 13일 오전 11:50

스리랑카가 1948년 독립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에 빠졌다. 중공 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 2위 차(tea) 수출국이자 관광국으로의 수입이 큰 타격을 입은 데다 중국 일대일로 부채 늪에 빠졌기 때문이다. 총 510억 달러의 외채 중 약 110억 달러가 중국에 진 빚이다.

경제난은 사회 혼란으로 번졌다. 경제난 책임자로 지목된 마힌다 라자팍사(76) 스리랑카 총리는 지난 9일 지지자와 반정부 시위대 사이에 대규모 충돌로 180명이 다치고 국회의원 1명을 포함해 5명이 사망하자 사임 의사를 밝혔다. 그의 동생인 고타바야 라자팍사(72)는 현재 스리랑카의 대통령이다.

반정부 시위대는 총리의 사퇴 표명에도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시위대는 이날 남부 함반토타에 있는 라자팍스 일가의 주택을 불태우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탄을 동원해 진압했다.

앞서 지난주 알리 사브리 재무장관은 코로나19, 유가 급등, 정부의 감세 등 심각한 충격으로 “현재 동원할 수 있는 외환보유액이 5천만 달러에 불과하다”고 의회에 경고했다. 그는 앞으로 6개월간 약 30억 달러의 외부 원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역대 정부는 새로운 대출로 기존 대출금을 갚아왔지만, 대출금을 투자하거나 수익으로 대출을 상환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이는 스리랑카 채무가 510억 달러로 늘어난 이유다. 스리랑카는 전례 없는 경제난을 최소 2년간 견뎌야 할 것”이라고 어두운 앞날을 예고했다.

지난 수주간 스리랑카 국민들은 대규모 정전 사태, 연료·의약품·식량 등 생필품의 고갈로 극심한 불편을 겪었다. 시장 물가는 두 배로 뛰었고 인플레이션은 19%를 기록했다. 스리랑카 중앙은행은 경제 붕괴에 대비해 금리를 한 번에 700포인트 올려 대출 금리는 14.5%, 예금금리는 13.5%로 급등했다. 종이를 수입할 외환이 부족해 학교 시험이 무기한 연기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궁지에 몰린 스리랑카 국민은 거리로 뛰쳐나와 고타바야 라자팍사 스리랑카 대통령이 이끄는 족벌정부의 전면 퇴직을 요구했다. 3월 말부터 현재까지 거의 매일 전국적으로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정부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대통령과 총리를 제외한 내각 장관 26명 전원을 해임하고 여당의원 41명을 당에서 내보냈지만 시위는 계속 격화됐다.

지난 1월 9일(현지 시각) 마힌다 라자팍사 스리랑카 총리가 수도 콜롬보를 찾은 왕이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반갑게 맞고 있다. 라자팍사 총리는 4개월 뒤인 2022년 5월 9일 경제난에 책임을 지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 | EPA=연합

장밋빛 미래에서 암울한 현실로 급변한 일대일로

시진핑 국가주석 취임 이후, 중국은 대외적으로 정치와 경제를 동시에 확장하는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개발도상국에 거액의 차관을 제공해 철도, 교량, 통신, 항구, 학교, 병원 등 인프라를 건설하도록 하고, 정부 관료들을 대거 포섭해 중국의 이념과 영향력을 수출했다.

미국 동부의 명문 윌리엄메리대학의 대외원조 조사기관인 ‘에이드(Aid) 데이터 조사연구실’이 2020년 9월 발표한 보고서에서는 중국이 165개국에 1만3427개의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그 규모가 8430억(1084조원) 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일대일로에 참여한 개발도상국, 저개발국가는 사업 초기 장밋빛 전망에 휩싸인다. 참여국 정부 관계자들 다수는 인프라 건설에 기꺼이 손을 내밀어준 중국에 감사와 환영의 뜻을 나타낸다. 그러나 곧 국가경제는 일대일로가 가져온 채무 함정에 빠진다. 당초 채무를 상환할 능력이 없는 국가들이 덜컥 승인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스리랑카도 마찬가지다. 중국에 진 110억 달러 중 약 35억 달러가 일대일로 프로젝트로 인한 금액으로 추산된다. 현재 스리랑카에서는 ▲콜롬보-라트나푸라 간 도로 건설 ▲중부 고속도로 건설 ▲콜롬보 항구도시 조성 ▲남부 철도 1기 사업 ▲국립병원 외래동 건축 ▲스리랑카 K댐 건설 등 최소 10개 이상의 인프라 건설 사업이 진행 중이다.

미국 정부의 개발금융 기관인 해외민간투자공사(OPIC) 레이 워시번 사장은 “일대일로는 참여국을 돕는 것이 아니라 자산의 약탈하는 것”이라며 “중국은 다른 국가의 인프라 건설에 투자해 참여국이 빚을 지게 하며 그 대가로 희토류, 광물자원 등을 저당 잡으려 한다”고 밝혔다.

스리랑카는 이미 중국 정부에 국토를 빼앗기고 있다. 국민들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는 라자팍사 정부는 지난 2017년 함반토타 항구 건설 과정에서 중국에 거액의 빚을 졌으나, 막상 운영에 들어가자 거액의 운영 자금을 쏟아붓고서도 별다른 수익을 내지 못했다. 결국 항구 운영권과 인근 토지 60㎢ 사용권을 중국 개발업체에 99년간 내주고 빚을 탕감받았다.

함반토타에 오래 거주한 주민 디누카는 현지 언론에 “항구 건설 프로젝트 소식이 발표됐을 때만 해도 주민들은 지역이 발전할 것이라며 희망을 품었지만, 지금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항구는 우리 것이 아니며, 주민들은 먹고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실망감을 나타냈다.

현재 중국은 스리랑카의 주요 채권국이다. 스리랑카의 대외 채무는 작년 상반기까지 350억 달러 정도였으나 1년 사이 160억 달러가 늘어났다. 국가 부도 사태에 몰린 스리랑카는 올해 1월 방문한 왕이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국무위원에게 채무 조정을 요청했으나, 왕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스리랑카 주재 치젠훙 중국대사는 다음 날 성명을 내고 “중국은 스리랑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중국 정부가 스리랑카를 부채 함정에 빠뜨렸다는 외신 보도에 반박했다.

치젠훙 대사는 “부채 함정은 일부 외국 언론과 정치인이 만들어낸 과장”이라며 “중국은 양보하는 입장에서 프로젝트를 제안해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본이나 세계은행(WB), 아시아 개발은행(ADB) 등 중국보다 먼저 스리랑카에 자금을 지원한 곳에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인도 마노하르 파리카르 국방연구소의 굴빈 술타나 부소장의 분석을 인용해 “중국은 자국에 빚을 진 다른 국가들에 선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 스리랑카를 돕지 않으려 한다”고 전했다. 또한 중국은 채무 상황을 위해 빚을 더 지도록 만들어 장악력을 높이려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스리랑카 정부는 국가 부도 사태를 막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 WB와 지난 4월부터 구제금융을 위한 협상에 돌입했으나 진척은 더디다.

IMF의 스리랑카 지사장 노자키 마사히로는 스리랑카의 채무가 거시경제 조정으로는 상환 불가능하기 때문에, 상환을 지속할 수 있음을 충분히 보장해야 구제금융이 승인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블룸버그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