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전 세계서 통용되는 디지털 화폐·신분증 도입 계획 발표

브라이언 정(Bryan Jung)
2023년 09월 14일 오후 11:01 업데이트: 2023년 09월 14일 오후 11:50

주요 20개국(이후 G20)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이 글로벌 디지털 화폐 및 디지털 ID(신분증)을 도입하는 계획에 동의했다. 각국 정부가 자국 국민의 자금 유통을 감시하고 여론을 통제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9일과 10일(현지 시간) 이틀간 인도 뉴델리에서 진행된 G20 정상회의에서 G20은 해당 주제에 관한 최종 선언문을 채택했다.

G20은 글로벌 디지털 화폐와 디지털 ID를 구현하는 데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들 주요 20개국 정상은 “(기존) 암호화폐의 국제 규제 체계를 만들기 위한 논의가 이미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회의에서 암호화폐 금지를 얘기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회의에서 논의된 주요 안건에는 디지털 공공 인프라 구축, 디지털 경제, 암호화 자산,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등이 포함됐다.

이에 국제통화기금(IMF)의 기타 고피나스 수석부총재는 SNS에서 “(G20은) 정책 입안자들이 암호화폐 자산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국제적인 관점을 형성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고피나스 부총재는 “암호화폐를 금지하자는 이야기는 없었다”며 “이는 암호화폐 규제 조치에 대한 전 세계적인 합의를 보여준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궁극적으로 암호화폐를 규제하고 암호화폐와 유사한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로 대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국민이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를 정부가 결정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는 얘기다.

EC 위원장, 디지털 ID 필요성 강조

이번 정상회의에서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위원장은 코로나19 백신 여권과 유사한 디지털 신분증 시스템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위원장은 유럽연합(EU)의 코로나19 디지털 인증서인 ‘그린 패스’가 디지털 ID를 포함하는, 디지털 공공 인프라의 완벽한 모델이라고 치켜세웠다.

EU는 현재 여권, 운전면허증, 병력사항 등 다양한 개인 정보를 통합하는 이른바 ‘디지털 신원’ 애플리케이션을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위원장은 “미래는 디지털”이라며 “(내가 G20에 메시지를 전달한 주제인) 디지털 공공 인프라는 성장의 촉진제”라고 거듭 강조했다.

대중의 지지 부족

앞서 지난 5월 미국에서 실시된 2023 CBDC 전국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16%만이 CBDC 도입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의 68% 이상은 “정부가 구매 내역을 모니터링할 경우 CBDC에 반대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미 의회도 초당적인 분위기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 중 대다수는 정부가 국민이 돈을 어디에 쓰는지 통제할 수 있고 심하면 은행 계좌에 대한 접근까지 차단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각국 정부, CBDC를 위한 준비 돌입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SNS를 통해 “(G20 의장국인) 인도가 암호화폐 규제를 위한 로드맵을 수립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IMF가 포괄적인 정책 틀 수립에 기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G20은 관련 기관에 암호화폐 자산에 대한 규제 및 감독 시스템 개선을 요청했으며, 또 CBDC가 세계 경제와 금융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킬 것을 주문했다”고 부연했다.

이어 각국 정부를 향해 기존 암호화폐 자산을 법정화폐로 인정하기보다는 암호화폐 발행자에 대한 인허가 및 등록 절차를 마련하는 데 주력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일본과 러시아를 비롯, 몇몇 주요 국가는 올해 안에 시범 CBDC를 발행할 예정이다.

나이지리아는 세계 최초로 CBDC를 발행, 도입했다. 그러나 곧 인기가 없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CBDC를 사용해 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나이지리아 시민은 0.5% 미만에 불과했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CBDC 사용을 장려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인디아 스택’

한편 세계은행은 G20 정상회의 관련 작성한 보고서에서 인도 정부의 ‘인디아 스택’을 높이 평가했다.

인디아 스택은 인도 정부가 만든 플랫폼으로, 개방형 디지털 결제 시스템이다. 해당 플랫폼에는 모든 인도 국민의 생체정보가 들어 있다. 결제, 신원확인, 계좌 개설까지 모두 가능하다. 인도 정부에 따르면, 인도 인구의 90% 이상이 인디아 스택의 생체인증 시스템에 개인 정보를 등록한 상태다. 2019년 기준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은행 계좌와 인디아 스택을 연동시켰다.

보고서에는 “인디아 스택은 디지털 공공 인프라의 모범을 보여준다”고 적혔다. G20은 이러한 디지털 공공 인프라가 금융 분야뿐만 아니라 보건, 사회복지, 교육 분야에서도 국민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보고서의 서문을 쓴 네덜란드의 막시마 왕비는 개발을 위한 포괄적 금융에 대한 유엔 사무총장의 특사 자격을 보유한 인물이다. 지난해에는 IMF 세계은행 춘계총회의 연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막시마 왕비는 시스템이 제대로 설계돼야 함을 전제하면서도 “CBDC는 은행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접근성을 확대하고 취약계층과 빈곤층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양한 옵션을 구축할 수 있다”고 했다.

네덜란드의 디지털화를 둘러싼 논쟁에 있어 막시마 왕비의 이 같은 발언은 네덜란드 입헌군주제를 위반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네덜란드의 금융 저널리스트 아르노 웰렌스는 “막시마 왕비는 의회의 책임에서 벗어난 중앙은행의 권력을 공개적으로 옹호하고 있다”며 “왕비는 네덜란드 헌법에 따라 정치 밖에 있어야 한다. 왕비의 발언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공격”이라고 지적했다.

*황효정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