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시행 중국 대외관계법, ‘당의 영도’ 이례적 강조…왜?

강우찬
2023년 07월 1일 오후 5:16 업데이트: 2023년 07월 2일 오전 9:12

중국 공산당, 중국이란 국가에 달라붙어야 생존
국제사회에선 ‘공산당≠중국’ 인식 점차 확산
전문가 “당이 곧 국가라는 개념 굳히려는 포석”

중국이 지난달 말 제정한 ‘중화인민공화국 대외관계법(이하 대외관계법)’이 이달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대외관계법은 중국 당국이 “자국의 주권과 안보, 발전 이익을 위협한다”고 간주하는 외국의 조치에 맞대응할 국내법적 근거가 될 예정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중국 당국이 이 법을 “당의 영도하에 시행한다”고 강조한 점이다. 중국 문제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당이 대외 업무를 지도한다’고 강조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중국이 ‘당이 곧 국가’인 체제로 가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외관계법의 입법 배경은 중국이 세계 여러 국가들과 빚고 있는 외교적 마찰이다. 중국은 최근 미국·캐나다·한국 등과 외교적 갈등을 빚고 있다.

미국이 첨단 반도체 수출 통제로 압박을 가하고 중국 공급망 의존도를 줄여나가며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좌절시키고 있다.

캐나다와 중국은 의원 사찰과 선거 개입 의혹 문제로 서로 외교관을 추방하면서 양국 간 갈등이 격화됐다.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우리의 제도와 민주주의를 망치려 공격적인 게임을 벌이고 있다”고 중국을 직격했고, 멜라니 졸리 외무장관은 중국을 “국제적 교란 세력”으로 규정하겠다고 했다.

한국 윤석열 정부는 대중 정책의 핵심으로 ‘상호 존중과 호혜 원칙’을 내세우며 그동안의 불공정한 측면을 바로잡겠다고 선언했다. 중국 공산당의 핵심 이익 중의 핵심인 대만 문제에 관해서도 “일방적인 현상 변경을 반대한다”고 미국 등 민주 진영의 편에 서 있음을 명확히 했다.

루정펑 대만 진먼대 교수는 29일 에포크타임스에 “시진핑이 이른바 새로운 대국(大國)관계를 내세우며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 한다”고 대외관계법 제정 배경을 분석했다.

루 교수는 “최근 몇 년간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잇달아 중국의 개인 및 기업에 제재를 가하자 베이징 당국이 밀리지 않으려 한다”며 ‘국가의 주권, 안보 및 발전 이익을 위협하는 행위에 대해 상응한 반격 및 제한 조치를 취할 권리가 있다’고 한 이 법 33조 1항을 언급했다.

그는 “중국 공산당은 대외적으로 강경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가져올 부정적 영향을 신경 쓰지 않는다”며 앞으로 더 공세적이고 보복적인 외교를 펼칠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중국 전문가 왕허는 이 법이 “서방에 대한 반격에 법치의 껍데기를 씌운 것”이라고 봤다.

왕허는 지난 2021년 6월 즉시 시행에 들어간 ‘반(反)외국제재법’에 관해 “외국 개인·기관을 제재했는데, 외국 변호사들이 ‘중국 외교부는 제재할 권한과 법적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기 때문”이라며 “뒤늦게 법적 공백을 메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외관계법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외국에 대한 공세 채비를 갖춘 것이라며 “중국공산당은 대외관계법을 통해 채택한 반격 조치를 ‘최종 결정’이라고 했는데 그 자체가 일종의 협박으로써 중국 국내법을 통해 외국을 제약할 근거를 마련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왕허는 비슷한 사례로 틱톡을 들었다. “틱톡은 미국 정부가 틱톡을 금지하려 하자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당사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많은 법적 장치가 있다. 틱톡은 미국에서 이를 이용해 싸우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공산주의 체제에서 중국 국내법은 외국 기업이나 외국인의 권리 보장을 장담할 수 없다. 오히려 침해에 이용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당의 영도’ 강조한 이례적 조항 마련한 이유

중국의 대외관계법은 ‘대외 업무에서 중국 공산당의 집중통일 영도를 견지한다’는 조항을 별도로 추가해 강조하고 있다.

왕허는 이는 중국 공산당과 정부가 당정 분리가 아닌 당정 통합으로 가고 있으며, 더 나아가 당이 곧 국가인 시스템을 지향하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중국 정부가 공산당의 면밀한 지시를 받는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면 이를 구태여 명문화한 이유는 무엇일까.

왕허는 “현재 국제사회에서는 ‘중국 공산당’과 ‘중국이라는 국가’ 혹은 ‘중국인’을 구분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중국 공산당이 새로 제정한 법률에서 당과 국가를 하나로 묶는 못 박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하원은 지난해 총선으로 공화당이 다수당 지위를 탈환하자 올해 1월 ”미국과 중국공산당 간 전략 경쟁에 관한 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하나의 국가가 다른 국가의 집권당과 경쟁한다는 것은 생소하고 다소 우스꽝스럽게 들리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미 연방하원 의원들은 미국의 경쟁상대를 ‘중국’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이라고 명시했다. 중국과 중국 공산당을 명확히 구분했다.

중국 문제 전문가 리닝은 “중국공산당은 중국인은 물론 전 세계인이 중국과 중국 공산당을 혼동하고 하나로 인식하기를 원한다. 중국이라는 국가 뒤에 숨어 살아남기 위해서다”라고 지적했다.

리닝은 “중국인들은 세뇌의 영향으로 당에 대한 충성을 중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애국으로 착각한다. 중국인 유학생, 학자들이 들끓는 애국심 때문에 공산당의 산업 스파이로 전락하는 이유다”라고 밝혔다.

또한 “중국 공산당은 세계인이 중국인을 혐오하고 적대시하기를 바란다. 사이비 종교가 사회의 지탄을 받을수록 그 구성원들이 이를 ‘박해’로 여겨 내부적으로 결속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사이비 종교는 구성원들이 이탈하면 무너진다. 공산당이 두려워하는 것은 중국인들의 각성과 정상화다”라고 강조했다.

베이징 변호사 출신의 평론가 라이젠핑은 “대외관계법은 중국 공산당의 중앙외사업무 영도기구의 권한을 강조한 뒤에야 전인대·국가주석·국무원·군사위·외교부의 직권을 거론했다. 황당하기 짝이 없다”고 평가했다.

라이젠핑은 “일반적으로 법률은 국가기관이 제정하고 집행하는데, 대외관계법은 중국공산당의 지도를 받는다고 명시했다. 이는 당정을 분리하지 않고 통합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 법 시행으로 공산당 중앙외사위원회 권한이 (정부기관보다) 더 커지고 가용자원도 더 많아진다”며 “대외(외교)업무는 정책과 직결되고 기밀보장이 필요하므로 결국 시진핑이 직접 장악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