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록위마 따로 없네” 中 SNS 달군 유행어 ‘지서위압’

강우찬
2023년 07월 6일 오전 11:05 업데이트: 2023년 07월 6일 오후 1:14

* 독자분들께 혐오감을 줄 수 있어 기사문에 언급된 ‘볶음밥 내 이물질’ 사진은 게재하지 않았습니다.

대학 식당 볶음밥서 쥐 머리…학생 항의에 직원 “오리고기”
비난 여론 들끓자, 정부 합동조사단 보름 만에 “쥐머리 확인”

상식 밖 사건들이 줄 잇는 중국이지만 올해 또 한 번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부정적 의미의 소셜미디어 신조어들이 탄생했다.

전문가들은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사사건건 통제하려 하는 전체주의 정권 치하에서 수십 년간 이어진 왜곡된 사회환경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다. 국제사회의 상식을 모르는 상태에서 공산당의 ‘상식’에 적응한 결과라는 해석이다.

신조어 첫 번째는 ‘지서위압(指鼠爲鴨)’이다. ‘쥐(鼠)를 가리켜 오리(鴨)라고 하다’는 뜻으로 사기(史記)에 나오는 사자성어인 ‘지록위마(指鹿爲馬)’에서 따온 말이다.

물론 쓰임은 차이가 있다. ‘지록위마’는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휘두르는 경우에 사용되지만, ‘지서위압’은 권세 있는 사람이 아랫사람을 윽박질러 거짓말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하는 경우를 풍자한다.

‘지서위압’은 지난달 1일 중국 장시성 난창시의 장시공업대학 학생식당에서 학생이 먹던 볶음밥에 검게 탄 쥐 머리가 나온 사건에서 시작됐다. 충격을 받은 학생이 식당 측에 항의했으나, 식당 직원은 “오리고기”라고 우겼다. 학생은 이를 당국에 신고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소셜미디어에서 논란이 일자 난창시 당국이 진상 조사에 착수하고서는 “볶음밥에 들어 있던 이물질은 오리고기가 맞다”고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신고한 학생은 이러한 당국 발표에 겁을 먹고서는 “내가 잘못 봤다. 미안하다. 오리 목살이 맞았다”고 오히려 자신이 잘못했다고 반성하는 게시물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는 순간이자, 권력의 위세에 눌려 사슴을 말이라고 했던 간신의 주장을 억지로 수긍해야 했던 지록위마 사건이 현재에 재현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지방 당국 관리들이 장시성 장시공업대학 학생식당을 방문해 논란의 ‘이물질 볶음밥’ 사진을 검토하고 있다. 이들은 검토 후 해당 이물질이 오리 목살이라고 결론내렸다. 화면은 이들을 비판하며 네티즌이 올린 영상의 한 장면. | 화면 캡처

당국 “오리고기 맞다” 발표에 신고한 학생 “내가 잘못봤다”

중화권에서는 오리를 부위별로 판매하거나 요리하며, 그중 오리 목살도 즐겨 먹는 식재료로 쓰인다. 그러나 신고한 학생이 직접 찍어 올린 사진을 보면, 볶음밥에 들어 있던 이물질은 날카로운 송곳니, 코와 눈, 짧고 억센 털 등 설치류의 머리가 분명했다.

이 사건으로 소셜미디어에서는 ‘지서위압’이 유행어가 됐다. 멜라민 분유, 가짜 달걀, 폐식용유 등 그동안 열악한 식품위생에 시달려 왔던 중국인들의 거센 반향이 일었다.

비난 여론이 들끓자 장시성 정부까지 나섰다. 장시성 정부는 성 교육부, 성 공안부, 성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대학 감독기관), 성 시장감독청 등 4개 정부기관 합동조사단을 파견해 조사를 벌였고 사건 발생 후 보름이 넘은 6월 17일에야 “쥐 등 설치류의 머리가 맞다”고 확인했다.

진실이 바로잡히긴 했지만, 당국 발표는 또 다른 비웃음만 샀다. 온라인에서는 “아이들도 그냥 구분할 수 있는 걸, 성 정부가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많은 인력과 자원을 투입할 필요가 있었나”, “장시성 정부의 할리우드 액션”이라는 지적과 함께, 이번 사건 자체가 중국에서나 일어나는 우습고 슬픈 일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19일 장시성 교육부가 발행하는 관변매체 둥팡닷컴에 따르면, 이날 장시공업대학은 학생식당을 운영하던 업체 장시중콰이(江西中快)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장시중콰이는 현재 중국 전역 대학에서 700개 학생식당을 운영하며 직원은 2만 명으로 알려졌다.

온라인에서는 이번 사건의 긍정적인 측면도 거론된다. 학생들이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인터넷을 통해 여론을 조성해 약간이나마 일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는 경험을 남겼다는 것이다.

사건 초기, 피해자인 학생들을 제외하면 식당 직원과 학교, 관할당국과 지방정부 기관에서 그 누구도 학생들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학생들은 자신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연대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온라인에서도 모두가 학생들의 편을 들어준 것은 아니었다. 일부는 오리고기가 맞다며 정부 편을 들었다. 다만, 정의로운 일부 네티즌들은 사진과 영상을 분석하고 팩트를 제시하며 자발적으로 거짓을 밝혀내는 데 도움을 줬기에 이번 결과를 맞이할 수 있었다.

중국 장시성 난창시의 장시직업대학 학생식당. | 웨이보

충칭시 병원 구내매점에서도 ‘쥐머리 도시락’

지난달 27일 소셜미디어에는 한 이용자가 충칭시 시우샨현의 한 중국전통의학병원(중의원)에서 제공한 도시락 가운데 쥐 머리가 들어있었다고 주장하며 관련 영상을 공개했다.

시우샨현 정부는 즉시 조사에 착수해 “도시락에 들어 있던 이물질은 쥐 머리로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당국은 쥐 머리가 도시락에 들어가게 된 경위를 조사 중이다.

온라인에서는 “이번에는 쥐 머리를 인정했다”는 반응과 함께 관련 게시글에 “얼마 전엔 쥐 머리가 오리고기가 됐는데, 이번에는 다시 쥐 머리로 돌아왔다”, “쥐와 오리의 한판 승부”라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중국 평론가 왕빈(王彬)은 “문제는 신뢰의 위기”라며 “위생이 가장 중요한 가치인 식당에서 수준 낮은 과실이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식당에서 쥐 머리가 나올 수 있느냐”고 질타했다.

왕빈은 “충칭시 병원의 구내매점 도시락 사건에서는 ‘지서위압’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신뢰의 위기가 해소된 것은 전혀 아니다”라며 “나오지 말아야 할 이물질이 음식에서 나온 것은 여전히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도대체 쥐머리가 어떻게 음식에 들어갔나”라며 “쥐가 식재료 저장고에 들어갔다면 몸통은 어디로 갔을까. 알고 싶지 않다. 한 마리만 들어갔을까. 이번 사건은 식당 위생관리에 매우 큰 실패가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 달 사이 2개의 쥐 머리가 등장해 여론을 들끓게 하고 (중국)국민의 식품 공포증을 재발시켰다”며 일선 노동자의 무너진 직업윤리, 사측의 허술한 작업관리, 감독기관의 상호견제 시스템 부재 등을 사회 전반적 문제점을 짚었다.

그러면서 “이익을 위해서라면 도덕과 법을 무시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이는 신뢰 위기의 근본적 원인”이라며 “개개인의 의식변화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국가 차원에서의 식품안전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사건 이후 중국에서는 해당 학생식당을 운영한 민간업체의 비위생적인 실태를 고발하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중국 전문가 리닝은 “쥐 머리를 오리고기라고 결론 내리며 사건을 무마하려 했던 당국의 책임을 덮으려는 의도도 없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