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방사선량 도쿄 970배”…중국 방사선 검출기 매진 역풍

강우찬
2023년 09월 2일 오후 6:36 업데이트: 2023년 09월 2일 오후 10:04

일본 원전 방류 불안감에 구매한 방사선 검출기
자택과 주변 곳곳 측정…중국 건축자재 안전성 논란으로 번져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처리수 방류 이후 중국에서는 방사선 검출기 매진 사태가 일어나는 가운데, 중국 건축업계로 불똥이 튀고 있다.

수산물의 방사능 오염 정도를 알아보려고 구매한 검출기로 측정한 결과, 정작 집 주변에서 일본의 최고 수백 배가 검출됐기 때문이다. 중국 온라인에서는 건축 자재의 안정성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중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최근 중국 소셜미디어에서는 ‘가이거 계수기(방사선 검출기)를 켰더니 집 안에서 도쿄 원전 인근보다 970배 많은 방사선이 측정됐다’는 게시물이 큰 화제가 됐다.

지난달 29일 저장성 공산당 위원회 기관지인 저장일보 산하 온라인매체 차오(潮)뉴스는 “가이거 계수기를 구입한 저장성 주민 샤(夏)모씨가 거주지역 인근과 집 곳곳에 들고 다닌 결과, 방사선 수치가 가장 높은 곳이 집 내부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차오뉴스는 “이 남성은 화장실과 침실에서도 측정해 본 결과 측정값이 소폭 상승했으나 큰 변화는 없었다고 했다”며 집 안 전체에서 고른 수치가 측정됐다고 전했다.

중국에서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방류 후 개당 350~500위안(약 6만3천~9만원) 하는 방사선 검출기가 불티나게 팔리며 매진됐다.

이후 구매한 검출기로 직접 이곳저곳을 측정한 결과를 소셜미디어에 공개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 수치는 시간당 0.1마이크로시버트(μSv) 정도였다. 이는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가 정한 일반인 기준 피폭선량 한도인 연간 1mSv(시간당 0.114μSv)보다 낮은 수준이다.

한국 원자력연구원에 따르면 방사선의 단위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어떤 물질이 분출하는 방사선을 나타내는 베크렐(Bq), 방사선이 인체에 주는 영향을 표시하는 시버트(Sv)다.

베크렐은 채소, 수산물, 해양, 토양의 오염 정도를 파악할 때 사용하며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 방류와 관련해 삼중수소의 함유량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단위로 많이 알려졌다.

시버트는 인체 피폭량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1시간에 1시버트 피폭된다면 1Sv/h로 표시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1천분의 1인 밀리시버트(mSv)나 100만분의 1인 마이크로시버트(μSv)가 쓰인다. 흉부 엑스(X)선 촬영 시 인체 피폭량은 1회당 0.03~0.05mSv 정도 수준이다.

그러나 한 중국 네티즌이 올린 동영상에서는 집에서 실시한 방사선 측정값이 불규칙하게 변동하면서 최고 시간당 9.7μSv까지 표시됐다.

중국 네티즌들 직접 측정해 올렸다는 방사성 검사 결과와 소셜미디어 반응. | 웨이보 화면 캡처

아이디 ‘아라리 피노키오(阿拉里匹諾尼諾)’를 사용하는 이 네티즌은 상하이에 거주하고 있다면서 “방사선량이 불규칙하게 나오면서 최고 9.7(μSv/h)에 달해 정말 놀랐다. 중국 중앙(CC)TV 방송에서 따르면 도쿄 방사선량이 0.01(μSv/h)인데, 우리 집 방사선량이 도쿄의 970배가 나오다니”라고 밝혔다.

“도쿄 방사선량이 0.01″이라는 것은 지난달 24일 CCTV 뉴스에서 보도한 내용이다. 후쿠시마 원전 방류가 시작된 이날 중국 매체들은 일본 현지에서 취재를 벌였고 원전 6.5km 지점과 도쿄에서 방사선 측정을 하며 후쿠시마에서 검출된 최대치는 2.0μSv/h, 도쿄는 0.01μSv/h이라고 보도했다.

일반 주택에서 높은 방사선량이 측정됐다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나돌자 큰 파장을 일으켰고, 여론은 건축자재에 포함된 방사선 물질로 쏠렸다.

건축업계에서 일하고 있다는 한 네티즌은 “장식용 대리석이나 석재가 방사선을 방출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번 기회에 다들 자기 집에서 한 번씩 측정해 보는 것도 좋겠다”고 제안했다.

중국 문제 전문가들은 이 사건이 침체된 부동산 업계에 더욱 타격이 될 수 있다고 관측했다.

캐나다 요크대의 천룽친(沈榮欽) 교수는 “건축자재 안정성 논란이 확산되면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동산 시장을 더 궁지로 몰아 중국 경제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에 거주하는 중국 평론가 룽젠(榮劍)은 “예상 밖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며 “언론은 소금 사재기를 보도하고 있는데 의외로 방사선 측정기가 매진된다. 식품 안전문제를 부각해 반일 정서를 확산해야 하는데 자국의 건축자재 안정성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룽젠은 “상황이 중국 정부가 바라는 것과 다른 쪽으로 흘러가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그만큼 사회 곳곳에 숨은 문제점이 많아 어디서든 복병이 출현할 수 있는 지경에 처해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방류를 앞두고 외교전을 펴며 강력한 대응을 시사했다. 국제적인 자리에서도 처리수 대신 오염수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안전에 대한 우려를 표출했다.

반면 중국 동부 연안에는 수십 개의 원전에서 후쿠시마 원전에서 배출되는 것보다 고농도의 방사성 물질이 방류되고 있다. 저장성 친산(秦山) 원전에서는 2020년 218조 베크렐의 방사성 물질이 방출됐고, 랴오닝성 홍옌허(紅沿河) 원전에서도 2021년 90조 베크렐의 방사성 물질이 방출됐다.

독일 공영방송인 도이체 벨레(DW)는 지난달 29일 중국원자력업계협회 통계 데이터를 인용해 2021년 중국 13개 원전에서 해양 방류한 물에 함유된 삼중수소의 양은 후쿠시마 원전의 연간 예정 방류량을 웃돌고 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