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 느낌”…中 SNS서 수해지역 민간 구조대 배웅 영상 확산

강우찬
2023년 08월 10일 오후 12:54 업데이트: 2023년 08월 10일 오후 1:07

수해지역서 활동한 자원봉사자들 떠나는 모습
“물난리 통에 현수막은 어떻게 구했나” 지적도

홍수 피해가 심각한 중국 북부 허베이성 줘저우시에서 촬영된 것으로 알려진 동영상이 중국 소셜미디어에 떠돌고 있다.

이 영상은 줘저우 시민들이 재해 현장에서 활약한 후 떠나는 자원봉사 구조대를 열광적으로 배웅하는 장면이 담겼다. 그러나 중국 네티즌들은 ‘연출된 선전물’ 느낌이 물씬 난다는 반응이다.

영상을 보면 시민들은 줘저우 고속도로 톨게이트 인근 도로 양쪽에서 붉은 현수막을 들고 손과 오성홍기를 흔들며 떠나는 구조대를 배웅했다.

현수막에는 ‘줘저우의 은인’ ‘한 곳에서 어려움을 겪으면 전국에서 지원해 준다’ 등의 문구가 노란색으로 적혀 있었다. 빨간 바탕에 노란 글씨는 중국에서 정책 홍보나 정치 선전용 현수막에 자주 쓰이는 디자인이다.

화면 구도와 사이드미러에 미치는 모습을 통해 영상은 차량에 탑승한 민간 구조대 혹은 구조대 관계자가 스마트폰으로 촬영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얼굴이 담겨 있지 않아 어떤 표정이나 반응을 보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배웅 인파 중에는 구조대원들이 탑승한 차량으로 달려와 열린 창문 틈으로 답례품을 억지로 밀어 넣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마침 차량은 이들이 접근하기 좋도록 느린 속도로 달렸다. 주민들의 열렬한 감사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카메라 역시 예고 없이 뛰어드는 이들의 모습을 마침 놓치지 않고 적절한 구도로 포착해 냈다. 트위터에 공개된 영상을 본 한 중화권 네티즌은 “마치 미리 짠 것처럼 카메라와 주민들의 선물 공세가 잘 맞아떨어졌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한 네티즌은 “이 물난리 통에 수해 지역 주민들이 깃발과 현수막은 어떻게 준비했을까”라고 꼬집었다. “네다섯 명만 모여도 불법집회로 몰리는 시대인데, 이렇게 많은 시민이 모이도록 당국이 놔둔다고?”라고 쓴 이도 있었다.

이번 중국 북부 수해지역에서는 베이징의 침수를 막기 위해 댐을 방류, 주변 지역의 피해가 더욱 컸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주민들이 지방 당국에 몰려가 격렬히 항의했다가 경찰에 거칠게 진압된 일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여러 차례 알려졌다.

당국과 사전에 손발을 맞추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많은 주민이 모이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른 영상에서는 줘저우 주민들이 오성홍기를 흔들며 항일 군가이자 현재 중국(중화인민공화국) 국가로 불리는 ‘의용군 행진곡’을 부르는 모습도 담겼다. 영상 속 일부 참가자들은 분홍색 조끼를 유니폼처럼 맞춰 입고 있었다. 이 영상을 본 사람 중에는 “북한이 생각난다”고 소감을 밝힌 이도 있었다.

중국 문제 전문가 리닝은 “중국 관영매체들은 중국에선 큰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으레 인민을 위해 열의를 다하는 공산당의 이미지를 부각하는 콘텐츠가 대량으로 생산돼 왔다”고 지적했다.

리닝은 “코로나19 때는 관영 CCTV가 봉쇄된 우한에서 활약한 의료진의 모습을 그린 드라마를 제작해 방영하기도 했고, 마찬가지로 코로나19 사태 초기 우한의 병원을 배경으로 한 영화 ‘중국의사’는 언론의 극찬을 받으며 흥행했다”고 설명했다.

구조대와 의료진이 헌신적으로 활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희생을 내세우며 당국의 부실한 대응이나 일부 관료들의 구호물자 횡령 등에 대한 시선을 덮어버린다는 것이다. 또한 재난상황에서도 체제 선전을 빼놓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리닝은 열렬한 배웅 속에 떠나는 구조대 역시 당국의 정치선전에 이용당한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허베이성 수해 때는 각지에서 모인 민간 구조대가 오히려 당국의 저지로 피해 지역에 진입하지 못했다는 소식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졌다. 이들의 입을 통해 실제 피해 규모가 알려지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로 풀이됐다”고 말했다.

또한 “당국은 수해지역에 군인이나 무장경찰을 파견해 민간 구조대와 자원봉사자를 철수시키면서 그 대신 이들을 영웅처럼 화려하게 배웅해 주는 모습을 연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민간 구조대를 몰아낸 군인과 무장경찰들은 산사태로 매몰된 시신을 발굴해 신원확인조차 없이 한꺼번에 구덩이에 묻는 은폐공작을 하고 있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

줘저우 시 관계자는 베이징 당국의 댐 방류로 수해가 커졌다는 사실을 시인한 바 있다. 베이징이 수몰되는 것을 막으려는 당국의 고의적 행위로 인해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이 확인될 경우, 주민들의 극심한 반발과 전국적 비난 여론이 빗발칠 수 있다.

지난해 11월, 두 달여 이어진 상하이 봉쇄로 인해 상하이에서 발생한 거리 시위에서는 ‘중국 공산당 타도, 시진핑 타도’ 구호가 울려 퍼지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당국이 이번 수해의 실상을 또 한 번 은폐해야 할 이유다.

리닝은 “당국이 발표하지 않아 이번 수해의 피해 규모를 알기 어렵지만, 가족이 피해를 입었다면 거리에서 오성홍기를 흔들며 붉은 현수막을 들고 있기는 어려울 것이다”라며 “결국 당국에 의해 동원된 사람들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 거리에 나온 인파처럼 철저하게 세뇌된 주민이거나 혹은 돈을 받고 나온 ‘알바’일 수 있다”며 “노랫소리에 다소 힘이 빠진 것으로 볼 때 후자 쪽에 무게가 실린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