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싱하이밍 추방 가능할까? 현실상 어렵지만 손실은 중국 몫

최창근
2023년 06월 17일 오후 6:11 업데이트: 2023년 06월 17일 오후 11:38

한국 내정 간섭 논란을 일으킨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두고 정치권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여당 국민의힘 강경파들은 “싱하이밍을 외교적 기피인물(PNG)로 지정하여 추방하라.”고 성토 중이다.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싱하이밍의 PNG 지정은 현실상 어렵다. 비엔나협약 등 국제관례상 PNG로 지정되면 72시간 내에 주재국을 떠나야 한다. 싱하이밍이 비록 본국 국장~부국장급 인사라 ‘격(格)’이 낮다는 지적을 받아도 중국을 대표하여 파견된 ‘특명전권대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다른 직급의 외교관도 아닌 대사를 추방하고자 할 경우 단교(斷交) 혹은 이에 준하는 외교적 파국을 각오해야 한다.

통상 외교관이 PNG로 지정돼 추방당하면, 해당 외교관이 속한 정부도 자국 주재 상대국 외교관을 맞추방한다. 일종의 ‘맞받아치기(tit for tat)’ 전략이다.

빈협약에 의거하여 한국 정부가 PNG로 지정해 추방한 사례는 단 한 건이다. 1998년 러시아는 모스크바 대사관 주재 참사관급 한국 외교관이 군사 기밀을 빼내려 했다며 추방했다. 한국 정부도 이에 대한 보복 조치로 주한 러시아 대사관 참사관을 맞추방했다. 그러자 러시아는 한국 외교관 4명을 추가로 추방하는 것으로 보복했다. 한러 관계는 급랭했고, 박정수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 취임 5개월 만에 경질됐다. ‘기밀 탈취’를 명분으로 자행된 러시아의 대한국 보복 조치는 당시 한국과 러시아 간 정보요원 수 불균형이 원인이었다. 당시 한국이 러시아에 주재시킨 정보요원이 러시아가 파견한 요원보다 많았고, 이에 불만을 느낀 러시아 정부가 본보기로 ‘추방’ 명령을 내리자 한국이 맞대응하였고 사태가 커졌다.

비공식적으로 PNG로 지정해 추방하는 사례는 적잖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년 전 한국 외교당국은 주한일본대사관 방위주재관(무관)을 이 같은 방법으로 본국으로 소환시켰다. 해당 일본 방위성 소속 현역 장교인 방위주재관은 ‘군사 외교관’ 신분으로 한국에서 활동했고 통상적인 허용선을 넘는 정보 수집 활동을 하다 한국 정보 당국에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한국 외교 당국의 요구에 의하여 한국 땅을 떠났다.

중국은 ‘복수’에 능하다. 중국인이 자주 쓰는 표현 중에 ‘군자보구 십년불만(君子報仇 十年不晩)’이 있다. ‘군자가 원수를 갚음에 있어서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는 말이다. 원한이 있는데 갚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라는 의미의 ‘유구불보비군자(有仇不報非君子)’라는 말도 있다. 유교에서 성인(聖人) 다음가는 군자(君子)가 이를진대 성인도 군자도 아닌 중국 공산당 정부가 보복하지 않을 리가 없다.

주한중국대사관 홈페이지. 거의 매일 업데이트되던 대사 동정란이 지난 6월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면담 후 업데이트 되고 있지 않다. | 주한중국대사관 홈페이지 갈무리.

‘보복 외교’에 능한 중국은 실제 맞추방에도 익숙하다. 지난달 캐나다 정부는 자국 내 중국 외교관 1명을 추방했다. 자국 중국계 정치인을 사찰했다는 이유로 해당 중국 외교관을 PNG로 지정해서 추방했다. 그러자 중국은 상하이 주재 캐나다 영사를 맞추방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지난 트럼프 행정부에서 주휴스턴 중국총영사관을 ‘스파이 거점’으로 지목하여 폐쇄 명령을 내리자 중국은 주청두 미국총영사관 철수를 통보했다. 왕원빈(汪文斌)은 “72시간 내 청두 총영사관 철수”를 통보하면서 “외교는 대등하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외교는 기본적으로 상호주의에 입각한다. 예를 들어 상대국이 ‘서기관’ 급을 추방하면 자국도 ‘서기관’ 급을 대상으로 보복 조치를 취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에 비춰 볼 때 한국이 싱하이밍을 PNG로 지정하여 추방할 경우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 추방을 각오해야 한다.

실제 중국 전문가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만약 싱하이밍 대사를 추방해서 중국이 우리 대사를 맞추방한다면 그 이후 쓸 카드가 마땅치 않다.”고 전망했다. 싱하이밍 추방 다음 단계 대응으로 우리 정부가 중국이 정재호 대사를 추방하기 전에 먼저 ‘본국 소환’을 하여 높은 수준의 항의를 표시할 수 있으나, 중국이 무대응할 경우 한국 정부는 사용할 수 있는 카드만 잃게 되는 문제이다.

한국 대통령실까지 나서서 싱하이밍에 대한 조치를 촉구하여 싱하이밍은 ‘실실적인 PNG’로 지정됐다.

주재국의 신임을 잃은 대사는 정상적인 외교할동을 할 수 없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싱하이밍이 ‘식물대사’ 신세로 전락했다.”고 평가한다. 실제 2020년 1월 부임 후 역대 어떤 중국대사보다 활발하게 활동하던 싱하이밍은 이른바 ‘잠수타기’에 들어갔다. 주한중국대사관도 마찬가지이다. 공식 대외활동을 일절 중단했다.

한국 정부의 의사 표명으로 싱하이밍의 신병처리는 중국 정부 손으로 넘어갔다. 대통령실까지 나서서 ‘조치’를 요구했지만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으로서는 당장 교체·소환 카드를 빼들기 어려워진 형국이다. 이 속에서 시간 끌기를 하다 ‘정기 인사’를 명분으로 교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싱하이밍이 2020년 1월 부임한 점을 감안 할 때 길게는 4년 임기가 끝나는 올해 연말까지 이 상태가 지속될 수도 있다.

한국 정부로서는 싱하이밍과 중국에 부정적인 국내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이 상태로 ‘늑대’ 싱하이밍이 ‘초식남’ 상태로 몇 달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싱하이밍과 주한중국대사관이 한국 정부의 ‘비토’ 속에서 정상 활동을 못 하는 상황이 지속될 때 손실을 감내해야 할 것은 오로지 중국 몫이다. 한국 정부를 무시하는 태도와 이로 인한 국내 대중국 여론 악화 문제 책임도 중국이 져야 한다.

당장 8월 전후로 개최되는 한중수교 기념행사들이 문제다. 대사가 정상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정상적인 행사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10월에는 중국 국경절 행사도 있다.

이 속에서 한국의 외교안보정책을 총괄하는 국가안보실장(장관급)이 일개 주재국 대사 거취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국격에 맞지 않는다는 조태용 실장의 발언이 의미심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