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해외 공작원으로 부리던 70대 美 시민권자에게 종신형 선고

김태영
2023년 05월 16일 오후 11:54 업데이트: 2023년 05월 17일 오전 11:11

방첩법 확대 적용…“시진핑에 도전 못 하도록 겁주려는 것”
“中 해외 공작원, 양국서 압박받아 궁지 몰려…끝이 좋을 리 없다”

미국에서 시민권을 가지고 활발한 친중 활동을 벌여온 홍콩 출신 70대 남성이 최근 중국 지방 법원으로부터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논란이 되고 있다.

중국 장쑤성 쑤저우시 중급인민법원은 15일 위챗(微信·중국판 카카오톡) 공식 계정에 공개한 성명에서 “간첩 혐의로 기소된 존 싱왕 렁(78)에게 무기징역과 함께 정치 권리 박탈, 재산 50만 위안(약 9600만 원) 몰수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쑤저우시 국가안전국은 이미 2년 전인 2021년 4월 15일 렁 씨를 체포했지만 최근에서야 이 같은 판결을 내려 더욱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중국 당국은 렁 씨의 홍콩 신분증과 미국 여권 번호를 공개했지만 구체적인 직업이나 혐의 내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렁 씨의 이름과 생년월일 정보를 바탕으로 추적해 그가 지난 2004년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기사에서 ‘애국자’로 소개한 인물과 동일인이라고 결론지었다.

당시 인민일보 기사에 따르면 렁 씨는 홍콩 출신 미국 사업가로, 중국과 미국의 주요 관리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1985년 미국 오클라호마주(州)와 중국 광저우시 간 친선협회를 설립했으며 미·중 무역과 인적 교류를 지원하고 미국의 지방 정부 관리들을 중국에 초청하는 일도 주도해 온 것으로 소개됐다.

또한 렁 씨는 2008~2011년 텍사스 중국 평화통일 촉진 위원회 이사직을 맡았으며 지난 2013년부터는 미 휴스턴에 기반한 미중 친선협회 회장을 지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15일(현지 시간) “렁 씨는 중국 정부에서 지원받는 단체에서 활동해 왔으며 그가 양제츠 전 중국 외교부장을 비롯한 여러 공산당 고위 간부들과 찍은 사진이 온라인상에 공개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렁 씨는 지난 2020년 중국 당국이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했을 당시 이를 공개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면서 “이는 그가 중국 공산당의 통일전선 공작부와 관련돼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국립 대만해양대 쉬젠중 부교수는 중국 당국이 렁 씨에게 중형을 선고한 것을 두고 “중국 정부는 그들의 요원(해외 공작원)들이 이중 첩자로 활동하는 것을 우려한다”면서 “원숭이를 겁주기 위해 닭을 잡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시드니 공과대학 정치학과 펑총이 교수는 “중국 정부가 당 내부의 친미 정서를 억제하기 위해 벌인 조치”라고 주장했다. 그는 “공산당 내부에도 친미 성향을 띤 당원이 많기 때문에 그들을 겁주기 위해 눈에 띄는 인물(렁씨)을 선택해 가둔 것”이라며 “이를 통해 당내 친미파를 겁주고 침묵시켜 시진핑에게 도전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당국에서 발표한 렁 씨의 죄목은 방첩법 위반이다. 중국 당국은 지난달 26일 국가 기밀이나 핵심 산업 관련 정보를 해외로 전송하는 것을 방첩법 위반에 포함하는 등 반(反)간첩법 적용 범위를 크게 확대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중국의 국가 기밀 정보를 직접 빼돌리는 등의 구체적인 행위가 적발되지 않더라도 교류 기관이나 인사가 ‘간첩’ 또는 ‘간첩 대리인’으로 판단될 시 처벌 대상이 된다고 명시했다.

쉬젠중 교수는 중국인이 외국 국적을 취득하더라도 당국의 수사나 형벌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앞서 중국 당국은 지난 2015년 중국계 스웨덴 시민권자 구이민하이를 중국에서 불법 체포해 징역형을 선고한 바 있다. 출판업에 종사한 구이민하이는 중국 당국이 금서로 지정한 책을 홍콩에서 출판해 판매한 일로 중국 당국의 표적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해당 책들에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부패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최근 미중 관계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중국 공산당의 지시를 받고 해외에서 활동하는 공작원들이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P통신에 따르면 미 법무부는 15일(현지 시간) 중국계 미국 시민권자 리탕 량(63)씨를 중국 정부의 대리인으로 활동한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미 법무부에 따르면 량 씨는 지난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미 보스턴 지역의 반중 인사와 단체에 관한 사진 및 정보를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공작부 관리들에 제공하고, 중국 공안부에 중국 교민 중 간첩으로 활동할 자들을 추천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달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중국 공안부가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진 불법 비밀경찰서를 뉴욕 맨해튼에 설립해 운영해 온 중국계 미국인 2명을 체포해 기소했다. 지난 1월에는 미국 방산업체에서 근무하는 과학자와 엔지니어를 포섭하기 위해 그들의 개인 정보를 불법 수집한 중국인이 미국 당국에 체포돼 징역 8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싱가포르 국립대 정치학과 좡쟈잉 부교수는 “최근 중국 공산당의 해외 대리인, 로비스트들은 정치적 표적이 되고 있다”며 “이들은 해외의 활동 지역에서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정치적 압박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의 정치학자 황웨이궈는 에포크타임스에 “렁 씨 사건으로 인해 중국 공산당을 대리하는 해외 공작원들이 자신도 중국 당국에 의해 체포돼 비밀리에 재판을 받고 평생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낄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이번 일은 그들에게 좋은 경고가 될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을 위해 일하는 것은 끝이 좋을 리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