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지방정부, 소상공인에 무리한 거액 과태료…“세수 메우기”

강우찬
2023년 07월 8일 오후 10:41 업데이트: 2023년 07월 8일 오후 10:41

중국의 한 소매상이 잔류 농약 기준을 넘긴 채소를 팔았다는 이유로 2천만 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아 지방정부의 ‘세수 메우기’ 의혹이 제기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달 말 중부 허난성 뤄양시의 채소 판매상 장(姜)모씨에게 11만 위안(약 198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됐다.

장씨가 판매한 채소는 생강, 시금치, 피망 등 약 200위안(약 3만6천원)어치로 직접 재배한 것이 아니라 인근 대형 도매시장에서 사들인 것이었다.

잔류 농약 기준을 위반한 농산물을 모두 판매하더라도 장씨의 수중에는 약 21위안(약 3780원)의 수익만 남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사건은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채소 파는 할아버지가 수익의 5천 배가 넘는 과태료를 물게 됐다”는 게시물로 검색순위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장씨는 거액의 과태료 처분이 부당하다며 납부를 거부했다. 고령인 장씨는 납부할 형편도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지방당국은 강제집행을 위해 관할 지방법원에 과태료 재판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이를 각하했다.

담당 재판부는 “도매시장에서 구매한 채소가 식품안전기준을 충족할 것으로 믿는 것은 타당하다”면서 장씨가 이전에 유사한 위반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해 과태료가 과다하다고 판단했다.

당국은 이에 불복해 재심을 청구했으나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결국 과태료 처분은 없었던 일이 됐지만, 당국이 재심까지 청구했다는 소식에 온라인에서는 부정적 여론이 고조됐다.

미국 정부계 매체인 ‘라디오 프리 아시아(RFA)’는 “잔류 농약이 문제라면 소매상에게 거액의 과태료를 물릴 일이 아니라 도매시장이나 농산물 유통 관리책임이 있는 정부 담당자를 추궁해야 한다”는 중국 반체제 운동가 린셩량(林生亮)의 반응을 전했다.

네덜란드에 거주 중인 린셩량은 “지방정부가 묻지 마 과태료 부과로 세수를 메우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중국 원저우 시립대 법대 교수 출신의 평론가 차이판(蔡釩) 역시 막대한 채무로 재정적 어려움에 처한 지방정부가 벌금이나 과태료 부과를 남발해 세수 메우기에 나섰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차이 전 교수는 “이번 과태료 처분은 매우 불공정했다. 아마도 어떤 이권 카르텔에 얽혀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요즘 중국에서 불법 주차 과태료 부과가 크게 증가했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지방정부의 채권 발행 및 인프라 투자사업을 바탕으로 경기부양을 해왔으나, 경제성장에 제동이 걸리고 ‘빚잔치’가 한계에 이르면서 지방정부 채무 위기가 급격하게 고조되고 있다.

구이저우성과 지린성 등 일부 지방정부의 부채 비율이 외부로 드러난 것만 해당 지역 국내총생산(GDP)의 5~10배에 달하면서 중국 경제의 시한폭탄으로 불린다.

중국 광다증권은 지난해 말 기준 드러나지 않은 것까지 합친 지방정부 전체 부채를 60조 위안(1경 809조원)으로 추정했다. 이는 중국 재정부가 발표한 공식 채무 잔액 35조1천 위안의 두배 가까운 수치다.

차이 전 교수는 생활고에 처한 취약층에 거액의 과태료 처분을 하는 것은 살길을 끊어버리고 가정을 파탄 내는 일과 마찬가지라며 “불법행위는 당연히 처벌해야 하지만, 사실에 근거해서 법과 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