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베이징대학서 “일당독재 폐지, 다당제 수용” 1인 시위

강우찬
2023년 06월 24일 오전 9:46 업데이트: 2023년 06월 24일 오전 9:46

“민주혁명 시작” 주장…유튜브·트위터 계정도 소개
곧 경비원에 끌려가, 베이징대 공안부 “행방 모른다”

단오절 기간,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중국 공산당의 권위주의 체제에 반대하는 표어가 등장해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베이징대학에서 중국의 정치 체제를 비판하고 다당제를 요구하는 표어가 등장한 것은 1989년 톈안먼 학살 이후 34년 만이다. 작년 10월 베이징 시내 육교에 걸린 ‘시진핑 파면’ 요구 현수막 사건 이후 공산당 일당독재를 겨냥해 또 한 번 터져 나온 중국 민중의 저항 행동이다.

미국에 기반을 둔 중국어 매체인 ‘차이나 디지털 타임스(CDT)’에 따르면, 단오절 연휴였던 지난22일 카키색 장포 차림의 한 시위자가 베이징대학 한 구내식당 입구에서 ‘일당 독재 폐지, 다당제 수용’이라고 쓴 푯말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자는 곧 학교 경비원에게 끌려갔고 푯말도 철거됐으나, 시위자가 끌려가기 전 그의 모습과 푯말을 촬영한 사진이 중국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됐다.

사진 속 시위자 옆에는 큰 글씨로 ‘민주혁명 시작’이라고 쓰고 그 아래에 작은 글씨로 ‘#펑뢰(風雷)’, ‘#NOW혁명’이라는 해시태그를 적은 푯말도 놓여 있었다.

펑뢰는 ‘광풍과 우레’를 뜻하며 ‘대단한 힘’을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으로도 쓰인다. 시위자는 학생들에게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해당 태그를 사용함으로써 혁명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위자는 또한 최근 중국에서 몇 차례 발생했던 공산당 체제 비판 현수막과는 달리 소셜미디어 계정을 적어 놓기도 했다.

시위자가 들고 있던 푯말 하단에는 유튜브와 트위터 계정 ‘호비 셉템(HOBBIE SEPTEM)’이 적혀 있었는데, 확인 결과 두 계정 모두 존재하고 있었으며 중국의 민주주의 혁명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두 계정은 모두 중국계로 추정되는 인물인 ‘장셩(張生)’ 명의로 지난 5월 개설됐으나 장셩이 실명인지, 그가 베이징대학이나 1인 시위를 벌인 인물과는 어떤 관계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중국 내부소식을 알려온 유명 트위터 계정인 리선생(李老师)은 22일 베이징대학에서 1인 시위를 벌인 인물이 장셩 본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했다.

장셩 트위터에 게제된 사진. 장셩 본인으로 추정된다. | 트위터 화면 캡처

RFA는 베이징대 공안부에 전화를 걸어 끌려간 시위자의 행방에 관해 물었으나, 전화를 받은 공안부 관계자가 “당직실이라 그런 건 모른다”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고 전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시위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1970년대 정치적 자유화 운동인 소위 ‘베이징의 봄’이 찾아오면서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실정을 비판하는 벽보가 베이징 시내에 붙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당국이 엄벌주의로 대응하고, 1989년 6월4일 톈안먼 민주화 운동이 군대를 동원한 폭압적 진압으로 제압당하면서 민주화 운동은 자취를 감췄고 베이징대학에서는 정치적 구호를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베이징에 머물고 있는 중국 반체제 인사 지펑(季风)은 이번 시위에 대해 “학생들이 사회에 불만을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3년간의 방역과 그 결과, 철저한 여론 탄압, 경기 침체로 사람들은 점점 더 삶이 어려워진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중국 청년들은 작년 11월 신장 우루무치 화재 참사 희상자에 대한 추모를 계기로 정부의 강압적 주민 통제에 반대하는 ‘백지시위’를 벌인 바 있다. 이시위는 베이징대, 칭화대를 비롯한 50여 개 대학 학생들이 참가하며 중국 전역으로 확산됐다.

다만 이 시위는 공산당의 일당 독재 반대보다는 제로 코로나 반대에 초점을 맞췄다. 상하이 등 대도시 시위에서는 “시진핑 퇴진, 공산당 퇴진” 구호가 등장하긴 했지만, 대학 시위에서는 민주주의와 법치, 자유와 인권에 대한 요구로만 한정됐다.

공산당 당국은 수세적으로 대응했다. 일부 강압적 방역 조치를 완화하고 화재 사건을 지방정부 책임으로 돌렸다. 하지만 곧 여론이 가라앉자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을 상대로 은밀한 체포작전을 실행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번 베이징대 1인 시위는 백지시위 때처럼 대규모로 확대되진 않았지만, 일당 독재 종식과 다당제 시행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사건으로 평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