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매체들 “日 방류 후 해수 변색” 착각유도 뉴스 살포

강우찬
2023년 08월 30일 오후 6:49 업데이트: 2023년 08월 30일 오후 7:47

무관한 자연현상을 방류 때문인 것처럼 보도
중국인들, 언론 통제로 한쪽 주장만 듣고 판단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처리수 해양 방류를 계기로 중국에서 반일 정서가 고조되고 있다. 소금 사재기 현상도 일고 있다.

중국인들의 격렬한 반응 뒤에는 진실을 차단하는 당국의 검열과 가짜 뉴스를 유포하는 중국 언론의 합작이 있었음이 실제로 확인됐다.

지난 24일 오후 1시 도쿄전력의 처리수 해양 방류가 시작된 이날, 중국 포털 소후닷컴에는 세 시간 뒤인 오후 4시께(현지시간 오후 3시)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시작, 현장 바닷물 색깔 변해”라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이 게시물은 중국 관영 중국중앙(CC)TV의 항공 촬영 영상의 정지화면을 보여주며 “실시간 영상을 보면 바닷물의 색이 변하면서 두 가지 색이 나타나는 모습이 보였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게시물은 바닷물 변색이 처리수 때문이라고 직접 주장하진 않았다. 바닷물 색깔이 변했다는 점만 밝히면서 삼중수소가 체내에 들어오면 발생하는 부작용을 설명한 전문가 인터뷰 등을 소개하며 그 위험성을 전했다.

이날 오후 6시 반쯤 중국 인터넷 매체 ‘펑파이(澎湃)신문’도 “직격, 일본 오염수 바다 방류 현장, 두 가지 색깔의 바닷물”이라는 기사를 내고 같은 내용을 전했다.

펑파이 신문 기사에서도 바닷물 변색이 오염수 때문이라고 직접 주장하는 내용은 없었다. 다만, “24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바다로 방류되면서 해수면에 두 가지 색이 나타난 것을 항공사진을 통해 알 수 있다”고만 했다.

베이징일보 등 다른 매체들도 이날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게재했고, 이런 기사들은 왕이(網易·넷이즈) 등 주요 포탈을 통해 전재됐다. 모두 해수면 항공 사진을 보여주며 “바닷물이 변색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25일에는 CCTV가 중문국제 유튜브 공식 채널을 통해 같은 내용을 다룬 영상을 올렸다. 이 영상에서는 긴박감을 주는 음악을 배경으로 노란 점선까지 그어가며 해수면 색깔의 변화를 두드러져 보이도록 했다. 이는 CCTV가 24일 전한 뉴스와는 차이가 있다.

CCTV는 24일 보도에서는 경계를 이룬 바닷물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방류가 시작됐다는 내용만 전했다. 현장 취재진은 이 현상이 방류와 무관한 자연적 현상이라는 점을 인지 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바닷물 변색을 강조한 기사와 게시물을 접한 중국인들은 “오염수가 올라오고 있는 것 아니냐”, “일본의 오염수 방류 때문에 바닷물 색이 바뀌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처리수가 무색이며 해수 변색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이는 없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24일 후쿠시마 원전 방류가 시작되고 약 40분 뒤인 오후 1시40분께, 한국의 한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익명으로 ‘안전하다고 떠들어대던 오염수 근황’이라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이 글에서는 “방류 시작 5분 만에 검게 경계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 경계면이 노랗게 번지기 시작함”이라며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반대’ 서명 운동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해당 게시물은 6만8000회 이상 조회됐고 600개 이상 댓글이 달렸다. 댓글을 단 사람들 상당수가 서명에 동참했다며 글쓴이에게 동조하는 반응을 보였다. 또한 여러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로 옮겨지며 비난 여론을 촉발했다.

공교롭게도 이 글 역시 ‘바닷물 변색은 오염수 때문’이라는 직접적인 발언은 없었다. 다만 방류 이후 변색됐다는 점만을 부각하는 방식으로 글을 읽는 이들에게 ‘오염수 때문에 변색됐다’는 잘못된 인식을 품도록 유도했다.

불만 여론이 확산하는 가운데 한국 정부가 오해를 바로잡으며 수습에 나섰다.

국무조정실의 박구연 국무1차장은 28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일일 브리핑을 열고 “오염수 방류 개시 직후 후쿠시마 원전 인근 해역의 바닷물 색깔이 변한다고 하는 사진이 인터넷상에 확산되고 있다”며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해면이 노랗게 보이는 것은 조수의 흐름이 강하기 때문이며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라며 바닷물의 색깔 변화는 바닥의 암초대 존재 여부, 빛의 많고 적음에 따른 자연적 현상이라며 처리수와의 관련성을 일축했다.

“처리수에 우려할 필요 없다” 전문가 SNS 차단

한국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에 관한 국제 전문가들의 검증 결과와 안전성에 관한 여러 견해를 들을 수 있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다.

중국 내에서는 처리수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접할 수 없다는 점이 중국에서 소금 사재기와 일본에 대한 격렬한 분노 반응이 발생하는 요인 중 하나다.

지난 24일 네덜란드 에너지연구센터 원자력부에서 5년간 근무했으며 현재 네덜란드에 거주한다는 중국계 리젠왕(李劍芒·59)은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에 관한 우려는 불필요하다”고 밝혔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처리수 저장 탱크. 2023.1.20 | PHILIP FONG/AFP via Getty Images/연합

중국 온라인에 공개된 정보를 종합하면, 지린성 창춘시 출신인 리젠왕은 12세 때 중국 과학기술대의 소년반에 입학한 영재로 1938년 대학 졸업 후 중국 원자력에너지연구소에서 8년간 근무하고 이후 네덜란드로 건너가 정착했다.

리씨가 밝힌 내용은 국내에는 이미 익히 알려진 것들이다. 그는 일본 원전이 방출하는 것은 처리를 거친 물이며, 걸러지지 않는 물질인 삼중수소 때문에 희석해서 방류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에 포함된 삼중수소의 총량은 900테라베크렐(Tbq )에 못 미치며 이것을 30년에 걸쳐 방류할 경우 연간 방류량이 30Tbq 미만”이라며 매우 미미한 수준이라는 점을 밝혔다.

아울러 중국 광둥성 다야만(大亞灣)원전의 연간 방류 상한이 225Tbq로 후쿠시마 방류량의 8배라는 점도 덧붙였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얼마 퍼지지 못하고 곧 억압당했다. 현재 리씨의 게시물은 삭제됐으며 웨이보 계정도 폐쇄된 상태다.

중국 전문가 리닝은 “중국 공산당은 가까운 한국에서도 강하게 반대 목소리를 내야 자국 내 반일 감정을 부추길 동력이 강해진다”며 “하지만 한국 내 상황이 공산당이 원하는 그림대로 잘 흘러가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