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관영매체, 후쿠시마 방류 여론조사 ‘답정너’ 설문…논란 끝 삭제

강우찬
2023년 08월 29일 오후 12:35 업데이트: 2023년 08월 29일 오후 1:03

방류 비난하는 선택지만 3개 주고 “하나 선택하라”
당국은 원자력 전문가의 “문제 없다” 게시물 삭제 후 차단 

중국 관영매체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 방류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가 자국 네티즌에게 뭇매를 맞고 있다.

처리수 방류 찬반을 떠나, 답이 정해진 설문조사로 중국인들을 우롱하는 처사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이런 반응은 사상 최악의 청년실업난 속에 달라진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다는 평가다.

신화통신 지난 24일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제1원전 처리수 해양 방류를 두고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 여론조사는 3가지 선택지를 제시하고 ‘일본의 핵 오염수 해상 방류에 관해 하고 싶은 말’을 고르라는 식이었다.

3가지 답안은 ‘단호히 반대하며 강력히 규탄한다’, ‘미래 세대에 재앙이자 전 인류에 재앙’, ‘2023년 8월 24일을 기억하라, 일본의 수치스러움은 역사에 못 박힐 것’ 등으로 모두 방류를 비난하는 내용이었으며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미 자유아시아방송(RFA) 중문판은 “세 가지 모두 ‘일본의 핵 오염수 방류에 반대한다’는 내용으로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견해를 억누르고 반일 감정을 선동한다는 의혹을 받는 주장”이라고 평가했다.

정식 설문조사가 아닌 소셜미디어에서 여론의 향배를 알아보는 조사였으나, 특정한 방향으로 미리 정해둔 답안만을 제시한 채 그중에서 고르라는 식에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도 ‘조사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반응이 이어졌다.

일본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제1원전 처리수 방류를 시작한 24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여론조사 설문. 중국 온라인에서조차 공정하지 않은 조사라는 비판이 일자 삭제됐다. | 신화통신 웨이보 화면 캡처

해당 웨이보 게시물에는 28일까지 10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는데, 이는 신화통신 웨이보 게시물에 평균적으로 달리는 댓글의 10배에 가까운 수치다.

중국 일부 네티즌은 “이게 바로 중국식 여론조사”, “선택지 3개지만 1개나 마찬가지”, “아직 답변을 고르지도 않았는데 이미 결정돼 있다”, “상식의 최저선마저 무너뜨린 행위”, “이러니 만장일치가 나오지”라는 비판적 댓글을 달며 항의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와 신화통신의 격렬한 일본 비판에 반일 민족주의 정서가 꿈틀대는 움직임도 포착됐다. 일부 네티즌은 “비난할 게 아니라 (일본을) 파괴해야 한다”며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현재 신화통신의 여론조사 게시물은 삭제된 상태다. 예상보다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 여론이 격화한 것은 중국 정부와 언론이 한쪽의 일방적 주장만 퍼뜨리고 정확한 정보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 도쿄전력은 24일 정부 방침에 따라 후쿠시마 제1원전의 처리수 방출을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방출 전 도쿄전력이 실시한 검사에서는 방출하는 처리수에 포함되는 삼중수소 농도는 안전기준이 되는 1리터당 1500베크렐(Bg/L)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 음용수 상한인 1리터당 1만 베크렐의 6분의 1 수준이다.

이는 중국 원전들이 중국 근해에 연간 배출하는 삼중수소에 비하면 매우 적은 양이다. 하지만 대다수 중국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거나 일본의 방류에만 시선을 두고 있다.

이성에 근거한 과학적 발언은 전면 금지

여기에는 중국 공산당 정권이 그동안 여론을 특정 방향으로 쏠리도록 할 때 자주 사용해온 수법들이 동원되고 있다.

신화통신 등 관영매체를 중심으로 중국 방송과 언론들은 기사에 ‘핵 오염수’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노출하며 비판적인 보도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동시에 이러한 입장에 반대하거나 ‘팩트’를 제시하는 목소리는 억압한다. 홍콩 일간지 ‘명보’ 등에 따르면 중국 소셜미디어에서는 ‘처리수가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라는 내용이 삭제되고 있다.

중국 원자력연구소에서 8년, 네덜란드 에너지연구센터 원자력부에서 5년간 근무했다는 핵물리학 전문가 리젠망(李劍芒)은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는 처리를 거쳐 방류되기에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글을 웨이보에 올렸다가 계정이 삭제됐다.

리젠망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중국과 한국 전문가를 포함한 감시단을 구성해 처리수 방류를 감독하고 있다며 데이터와 팩트를 기반으로 안전성을 설명했다.

또한 “중국 원전의 삼중수소 방류량 상한선은 후쿠시마 원전 방류량의 8배”라는 점도 덧붙였다.

중국 전문가 리닝은 “일본 원전의 처리수 방류는 경제위기로 일당 독재의 정당성이 흔들리고 있는 중국 공산당에 내부 불만을 바깥으로 돌릴 절박한 기회”라며 “과학적으로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주장에 정부와 언론이 매달리는 것은 그만큼 정권의 체질이 약해졌다는 의미”라고 논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