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저장성 “화장된 시신, 1년 전보다 72% 증가” 발표 후 삭제

강우찬
2023년 07월 23일 오전 9:34 업데이트: 2023년 07월 23일 오전 9:34

중국 지방당국이 중앙정부가 감추던 ‘비밀’을 누설했다가 급히 수습하려 한 정황이 포착됐다.

현지 경제매체 차이신(财新)에 따르면, 저장성 민정청은 지난 13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올해 1분기 저장성 전체 시신 화장 건수를 17만1천 건으로 집계했다고 밝혔다.

이는 1년 전 같은 기간(2022년 1분기) 화장 건수였던 9만9천 건보다 무려 72.7% 폭증한 수치다.

언론 보도가 나간 직후, 해당 페이지는 곧 삭제됐다. 22일 기준, 접속을 시도하면 ‘404 페이지 없음’이라는 오류 메시지가 표시된다.

중국 최대 질문답변 커뮤니티인 ‘즈후(知乎)’에서도 관련 게시물과 토론방이 차단됐다. 저장성 민정청 홈페이지의 작년 4분기 보고에서는 화장 건수가 여전히 공란이다.

저장성 민정청만이 아니다. 중국 정부는 이미 작년 4분기부터 화장 건수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인 민정부에서 ‘민정통계’라는 제목하에 혼인 건수, 이혼 건수, 화장한 시신 수(화장 건수) 등을 분기별로 집계·공개해 왔다.

그러나 올해 들어 아무런 설명 없이 민정통계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베이징 민정청 등 지방 당국에서도 화장 건수를 빼고 혼인·이혼 건수만 공개하고 있다. 작년 4분기뿐만 아니라 올해 1분기 화장 건수도 여전히 미공개다.

지난 6월 16일 발표된 2023년 1분기 민정통계 보고에서는 혼인등기(혼인 건수), 이혼등기(이혼 건구) 아래에 표시됐던 화장 건수 항목이 아예 없어졌다. 기사 송고 시점까지도 여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또한 민정부가 6월 9일 공개한 ‘2022년 연간 민정통계’에서도 화장 건수는 없었다.

베이징 등 주요 도시를 비롯해 각 성·자치주 민정청의 보고에서도 작년 4분기 및 올해 1분기 화장 건수는 지금까지도 미공개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시사평론가 탕징위안은 “통계 조작이 일상화된 중국 정부로서도 화장 건수 발표에 머뭇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논평했다.

탕징위안은 “중국의 화장 건수 미공개에 관해서는 미국 CNN, 영국 일간 가디언, 일본 닛케이 등 다수 외신이 관련 기사를 내며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어설픈 조작 데이터를 내놨다가는 국제적 망신을 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그런 상황에서 중국 31개 성·시·자치구 가운데 저장성이 화장 건수를 발표하는 바람에 중국 공산당 정부가 은폐하고 있던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일부나마 드러나 버렸다”며 “그마저도 실제보다는 훨씬 적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탕징위안은 “저장성은 중국 내에서 감염 피해가 심각한 편은 아니다. 베이징, 광둥성, 정저우, 시안 등의 지역이 피해가 심각하다. 이들 지역에서는 화장터에서 소각되는 시신이 코로나19 확산 이전보다 수십 배라는 목격담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상태가 그나마 덜 심각한 저장성에서 70% 이상 폭증했다면, 다른 지역은 증가폭이 훨씬 크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사실은 저장성이 발표했다가 삭제한 화장 건수 역시 적당히 줄여서 발표한 수치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탕징위안은 “화장터 앞에 길게 늘어선 차량의 행렬은 이미 전 세계인이 외신이 전한 사진과 영상을 통해 목격했다. 엄청난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것은 이제 감출 수 없는 사실이다”라고 진단했다.

또한 “중국 공산당은 자국산 백신의 효능을 선전하는 한편, 외국에서는 불가능한 수준의 엄밀한 방역 통제인 ‘제로 코로나’ 정책을 시행할 수 있다며 전염병 확산 상황을 체제 선전의 기회로 악이용했다. 그러고도 대량의 사망자를 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공산당은 반성은커녕 전염병에 승리했다며 더욱 큰 거짓말로 거짓을 덮으려 했다. 거짓말이 꼬리를 물면서, 이제는 점점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화장 건수를 비워놓은 채 통계를 발표하는 수준의 대응밖에 할 수 없을 지경”이라고 했다.

월터리드 미 육군 연구소의 린 샤오쉬(Sean Lin) 전 연구원은 “중국에서는 작년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사망자가 상당히 많았다. 작년 말에 처리하지 못해 밀린 시신을 올해 1월, 2월까지도 처리해야 했을 것이다. 따라서 올해 1분기 화장 건수는 작년 4분기 숫자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지난 3년간 중국 공산당의 극단적 방역과 도시 봉쇄 정책은 신장 우루무치 화재를 비롯해 여러 가지 비극적 재난을 초래했고, 중국 대학생들 백지 시위의 방아쇠가 됐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작년 12월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포기했다. 그러나 정책 전환에 대비할 준비 기간 없이 급작스럽게 봉쇄를 해제해 전국에서 통제불능 수준의 감염 재확산이 발생했고 병원과 화장터는 시신으로 넘쳐났다.

당국이 공식 발표한 작년 12월 7일부터 올해 1월 8일까지 한 달간 코로나19 사망자는 40명 미만이다. 하루 평균 1.3명 정도만 숨졌다는 것이다. 현실과 너무 큰 차이를 보이는 수치에 관해 당국은 “집계 기준을 변경했기 때문”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을 내놨다.

이에 세계 보건계에서 반발이 이어지자,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올해 1월14일 “작년 12월 8일부터 올해 1월12일까지 병원 내 감염 관련 사망자가 전국에서 5만9938명”이라는 추가 발표를 내놨지만 신뢰할 수 있는 수치가 아니라는 반응이 다수다.

“저장성, 72% 급증 발표 반향 예상 못 한듯”

션 린 전 연구원은 저장성 민정청이 화장 건수를 공개한 뒤 삭제한 것에 관해 “72.7% 증가했다는 발표 후 파장이 예상보다 컸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이렇게 많이 죽었나’라는 반응이 많았다”고 말했다.

탕징위안은 “중국 공산당 체제는 사회 모든 분야를 억눌러 놓은 상태다”라며 “어느 한 곳에서 새기 시작하면 연쇄 반응을 일으킬 수 있어 아주 작은 일에서도 정권은 잘못을 인정하거나 정책을 철회하지 못하기에 삭제하고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으로 망명한 중국 출신 언론인 자오란젠은 “저장성의 사망자 숫자를 기반으로 다른 지역의 사망률을 유추하면 중국 전체 사망자 수를 추정할 수 있다”며 “당국이 발표 직후 자료를 삭제한 것은 앞으로도 계속 은폐하겠다는 의중을 나타낸 것”이라고 했다.

중국 공산당은 자국의 코로나19 감염 사망률이 다른 나라보다 낮다며 이는 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해왔다.

외신들은 중국의 사망자 수가 실제보다 적게 보고되고 있다는 보도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1월 익명을 요구한 현지 의사를 인용해 “베이징의 한 사립병원에서 소속 의사들에게 ‘사망진단서의 사망원인 란에 코로나로 인한 호흡부전이라고 쓰지 말라’는 통지서가 내려졌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