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하는 배, 탈출하는 사람들…중국 자금 해외유출 가속

강우찬
2023년 10월 21일 오후 5:23 업데이트: 2023년 10월 21일 오후 5:23

시진핑 ‘공동부유’ 정책에 중산층까지 공포감 확산
“연간 1500억 달러, 올해 더 많은 듯” 佛 투자은행

중국 내 자본의 해외 유출이 이어지면서, 중국의 외교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 나왔다.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고압적이고 사나운 외교를 철회하고 있다는 것이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 17일, 중국 공산당이 최근 호주 국적의 중국계 언론인을 석방하고 지난주 스리랑카의 요청을 받아들여 42억 달러 규모의 부채 구조조정에 합의한 것 등을 두고 “심각한 국내 경제상황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프랑스 투자은행 나틱시스는 올해 해외로 유출될 중국 자산이 1500억 달러(약 202조원)를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연간 1500억 달러 규모였던 중국 부유층 자산의 해외 이탈이 올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예측이다.

중국 평론가 리닝은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추진 중인 ‘공동부유’ 정책이 중국 부유층은 물론 중산층에까지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면서 자산 이탈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공동부유’는 시진핑 총서기가 코로나 사태가 한창이던 2021년 8월에 내세운 슬로건이다. ‘빈부 격차를 해소하고 모두가 풍요로워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으나, 당초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공상적 정책이었다는 게 드러나고 있다.

리닝은 “시진핑이 ‘공동부유’를 추진한 것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빈부 격차에 대한 민중의 불만을 억제하는 데 있었다”며 “지난 2년 사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심해졌고 정책에 대한 저항도 거세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유층과 중산층은 자신의 부를 저소득층에 ‘나눔’당하기 전에 중국에서 빼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산 유출의 중심에는 ‘지하은행’이 있다. 중국에서 ‘하왈라(哈瓦拉·Hawala)’로 불리는 지하은행은 불법적인 환거래와 돈세탁을 거쳐 해외 송금을 해주는 암거래 업체를 말한다.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 9일 부동산 불황과 더딘 경제 회복에 불안감을 느낀 중국 부유층이 이민 준비나 자산 반출 등의 목적으로 해외 송금을 위해 지하은행에 눈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에서는 합법적으로 현금을 이동할 기회가 극히 제한돼 있다. 개인은 일반적으로 연간 5만 달러(약 6700만원)까지만 해외로 송금할 수 있다. 해외로 이민할 때도 송금할 기회가 한 차례만 주어진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해외 송금을 불법 대행하는 지하은행이 성행하고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수치는 발표되지 않았으나, 관영매체의 2021년 보도에 따르면 외환관리국 조사 결과 간쑤성에서 756억 위안(약 14조원) 규모의 자금을 운용하는 조직이 적발됐다. 중국 전체로 따지면, 최소한 수백조 원 규모의 자금이 지하은행을 통해 흘러다니는 것으로 추정됐다.

지하은행은 중국 자금의 해외 유출 주요 창구로 지목된 홍콩과 마카오에 가까운 지역일수록 성업 중이며, 중국 소셜미디어인 위챗이나 온라인쇼핑몰인 타오바오 등에서는 수시로 관련 정보가 포착된다.

영국 국가범죄청에 따르면 지하은행은 중국계 이민자들이 거주하는 곳이라면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활동하고 있다. 중국에서 지하은행과 연계된 특정계좌로 입금하면, 해외 계좌로 현지 통화로 환전된 금액이 송금된다는 것이다.

한 지하은행 관계자는 에포크타임스에 “중국인 고객이 중국 내 지정된 은행 계좌에 위안화를 입금하면, 고객의 해외은행 계좌에 동등한 가치의 현지 통화가 즉시 입금된다”며 “그 반대로 해외에서 국내로의 송금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환율은 송금 당일의 환율이 적용된다”면서 “송금액에 따라 소정의 수수료가 부과된다”고 설명했다. 지하은행에 따라서는 수수료가 포함된 환율을 적용하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지하은행 해외지점은 중국계 이민자들이 집단 거주하는 곳에 존재하며, 겉으로는 ‘스마트폰 수리’ 등의 간판을 내걸고 실제로도 수리 서비스를 제공해 일반 이용객은 전혀 눈치챌 수 없지만 은밀히 지하은행 영업을 한다고 이 관계자는 귀띔했다.

미국에 거주하는 중국인 사업가 겸 시사 평론가 멍쥔(孟軍)은 “코로나19 사태를 거친 이후 중국 부유층은 더욱 필사적으로 중국 내 자산을 매각해 해외로 이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구매자가 중국에서 위안화로 특정 계좌에 입금해 대금을 치르면, 해외 대리인이 현지 통화로 부동산을 구매하고 이후 구매자가 출국해 부동산 명의이전을 하는 식의 구매도 성행한다고 전했다.

평론가 리닝은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승객들은 앞다퉈 탈출하려 하기 마련이다. 지금 중국의 상황이 그렇다. 공산당 지도부는 중국 경제의 침몰을 어떻게든 가리려 하지만, 부유층의 해외 이탈은 많은 것을 말해 준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