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 최우선 방역” 中 역사교과서 코로나19 서술 논란

강우찬
2023년 09월 21일 오후 1:28 업데이트: 2023년 09월 21일 오후 1:28

9월 지급한 중학교 새 역사교과서 코로나 사태 소개
사망자, 제로 코로나 언급 없이 “방역 성과” 평가만

중국의 중학교 새 역사교과서에 실린 중공 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에 관한 서술이 논란이 되고 있다.

시진핑을 중심으로 한 공산당 체제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총력전을 펼쳤고, 그로 인해 공중보건을 최대한으로 수호하면서 경제·사회 발전까지 이뤘다는 극찬 일색이다.

RFA에 따르면, 올해 중국 8학년(중학교 2학년에 해당) 역사교과서에는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내용이 2차례 수정 끝에 확정됐다. 올해 3월 처음으로 실렸던 내용에서 ‘시진핑을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이 추가됐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기간, 공산당과 관영매체에 의해 세계 최고의 방역정책으로 치켜세워졌던 ‘역동적 제로 코로나(動態清零)’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실패한 정책임을 자인한 모양새다.

올해 3월 역사교과서에서는 ‘2020년 초 갑자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폐렴이 발생했다. 우리 나라는 사람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전염병에 맞서며 인민전쟁, 총력전, 차단전을 벌이고 있다. 국민의 생명안전과 건강을 최대한으로 지켜내고, 통합적인 방역정책과 경제·사회 발전에서 중대한 긍정적 성과를 거뒀다. 생명을 최우선으로, 죽음을 무릅쓰며, 과학에 입각해, 운명을 함께하는 위대한 방역정신을 이룩했다’고 서술했다.

하지만 9월 개학과 함께 지급된 새 역사교과서에는 ‘우리 나라는 사람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전염병에 맞서며 인민전쟁, 총력전, 차단전을 벌이고 있다’가 삭제됐다.

그 대신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은 사람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고수하고 과학에 근거한 방역을 고수했으며, 상황에 따라 방역통제를 적절히 조절했다’가 들어갔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는 전 세계로 확산되며 지금까지 3년간 엄청난 인명과 재산 피해를 냈다. 추후 연구진에 따르면, 코로나19의 정확한 발생 시점은 2019년 말이다. 코로나19라는 명칭 자체가 2019년 말 처음 인체 감염이 확인됐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러나 중국 역사교과서에는 발생 시점도 2020년 초라며 사실과 다르게 서술했다. 감염자 수나 사망자 수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고 어디에서 발생했는지조차 밝히지 않은 채 “갑자기 발생했다”고만 적었다. 이는 코로나19 발생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개정 전과 후 모두 4~5줄 정도의 적은 분량에서 ‘생명을 최우선(生命至上)’이라는 표현을 두 번이나 사용한 점도 눈길을 끈다.

중국 공산당은 자국민을 상대로 고문과 살인 심지어 사형수가 아닌 사람에게도 동의 없이 강제로 장기를 적출해 돈벌이를 하는 잔학한 행태를 보여왔다. 코로나19 사태 기간에도 ‘제로 코로나’라는 목표만 추구할 뿐, 이 과정에서 주민들이 겪는 고통과 죽음에는 무관심했다.

그런데도 교과서에서는 ‘생명을 최우선’으로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고 있다고 쓴 것은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과학에 근거한 방역’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도 마찬가지다.

중화권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운명을 함께한다’는 마지막 서술도 기이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전염병이 돌면 감염자를 격리해 아직 감염되지 않은 사람을 보호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기본적인 대책이다.

실제로 중국 공산당의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전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격리정책을 폈다. 인구 1100만 명의 대도시 우한을 2020년 1월 23일부터 두 달 넘게 봉쇄하는 사상 초유의 정책을 동원했다.

이런 극단적 정책으로도 감염 확산을 막지 못한 채, 2022년 3월 27일에는 ‘경제수도’ 상하이를 6월 초까지 두 달 이상 봉쇄했다. 그 여파로 중국은 물론 전 세계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9월 신학기와 함께 지급된 중국 교육부 역사교과서의 코로나19 관련 부분. 3월 발행된 교과서의 내용에서 일부가 수정됐다. | RFA 화면 캡처

중국 평론가 리닝은 “전염병에 맞서 ‘운명을 함께한다’는 표현은 섬찟하다”며 “실제로 공산당 간부들은 봉쇄령 속에서도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고 가장 먼저 의료지원을 받았다. 갇힌 것은 오히려 힘없는 일반 시민들이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리닝은 “중국 역사교과서는 개정 전이나 개정 후 모두 코로나19 감염자 수나 사망자 수, 그로 인한 사회경제적 피해 등은 언급하지 않았고 오히려 ‘경제·사회 발전에서 중대한 성과를 거뒀다’고 했다”고 언급했다.

이어 “이런 내용이 시험문제로 나오면 코로나19 사태를 직접 겪은 학생들은 자신의 양심과 지식을 속여가며 정답을 써내야 할 것이다. 훗날 교과서로만 코로나19를 배우게 될 학생들은 완전히 잘못된 내용을 사실로 여기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인들도 이번 역사교과서에 대한 불만을 나타냈다. 2020년 초 우한 봉쇄로 76일간 갇힌 경험을 한 우한시민 양(楊)모씨는 RFA에 “나와 두 자녀가 감염됐고 아들은 결국 숨졌다”며 “전염병 기간에 많은 2차 재난이 발생했지만 교과서에는 한 마디도 없다”고 말했다.

2차 재난은 전염병 그 자체로 인한 재난이 아니라 제로 코로나 등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막무가내 방역 정책으로 인한 재난을 가리킨다. 아파트 공동현관문이 당국에 의해 용접돼 봉쇄된 채 집에서 굶어 죽거나 다른 심각한 질병 치료를 받지 못해 숨져간 사례들을 포함한다.

양씨는 “전염병이든 뭐든 (역사적 과오를) 조작으로 세탁하려 한다”며 “역사 교과서를 조작한다고 실제로 일어난 일을 바꿀 수 있는 것인가. 처음에는 사망자가 수백 명이라더니 이후 4천 명이라고 말을 바꿨다. 내 아들이 죽었다. 나는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우한시민 장(張)모씨는 “우한 주민들은 우한이 생긴 고대부터 현재까지 1700년 동안 도시 전체가 76일 봉쇄가 된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이는 말살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라고 공산당 당국을 비판했다.

중국 공산당의 역사교과서는 코로나19 사태에 관한 서술 아래에 ‘중국이 세계 방역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는 칼럼도 실었다.

이 칼럼은 “2022년 5월까지 중국은 150개 이상 국가와 15개 국제기구에 약 4300억 개의 마스크, 46억 개의 방호복, 180억 인분의 테스트 시약을 제공했고 120개 이상의 국가와 국제기구에 22억개 이상의 코로나19 백신을 공급했다. 이로써 타국에 가장 많은 백신을 제공하는 국가가 됐다”고 밝혔다.

리닝은 “이런 교과서로 세뇌당한 중국의 젊은 세대들은 코로나19를 중국 공산당과 중국이 전 세계를 구한 사건으로 잘못 기억하고, 공산당에 책임을 물으려는 세계인에 맞서 공산당을 옹호하고 나서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세계 각국이 중국 공산당 정권과 중국인을 구분해서 접근하고, 중국인들에게 진실을 알려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며 “공산당 인권탄압의 최대 피해자가 중국인이라는 점을 알려줘야 한다. 잘못된 사실을 주입하는 세뇌 역시 심각한 인권탄압”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