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기업 직원, 중국서 연이어 체포…투자심리 위축

강우찬
2023년 10월 24일 오후 1:57 업데이트: 2023년 10월 24일 오후 1:57

영국계 광고업체 전현직 임직원 3명 체포
일본 무역업체 희토류 담당 직원도 붙잡혀

중국 공산당(중공) 당국의 반간첩법 시행 이후 우려됐던 외국계 기업 직원들의 체포가 지속되면서 외국 기업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영국계 글로벌 광고회사 WPP그룹 자회사의 상하이사무소 전·현직 임직원 3명이 뇌물수수 혐의로 최근 체포됐고, 일본 무역업체의 중국인 직원은 지난 3월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상하이 공안국은 21일 웨이보 공식 계정을 통해 “수사팀이 시장감독관리부서와 함께 뇌물 사건을 수사해 모 광고회사 재무 임원 등 3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WPP그룹 자회사인 그룹엠(GroupM)의 상하이 사무소가 공안의 압수수색을 받았으며, 임원 1명과 전직 직원 2명이 체포됐다고 전했다.

그룹엠의 중국 최고경영자(CEO)는 조사를 받았으나 체포되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체포된 3명에게는 2019년부터 2023년 2월까지 그룹엠에 재직하면서 직무상 편의를 이용해 거액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가 적용됐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은 23일 “세계 최대 미디어 그룹 간부들이 거액의 뇌물을 받아 체포됐다”며 “최대 30%의 높은 리베이트를 챙겼다”고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중국 광고업계는 부패가 만연해 있다. 광고 계약을 따내기 위해 정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는 일은 당연한 관례가 됐다.

지난달 세계적 규모의 옥외 광고회사인 ‘클리어 채널 아웃도어 홀딩스’의 중국 자회사는 광고 계약을 따내려 중국 정부 관리에게 뇌물을 줬다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적발됐다. 회사 측은 ‘해외부패방지법(FCPA)’ 위반 혐의를 인정하고 SEC에 벌금 2600만 달러를 내기로 합의했다.

이번 사건은 중국의 수사기관들이 외국 기업을 포함한 민간 부문을 표적으로 삼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7월 반간첩법 시행 이후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 직원들 사이에서 신변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중공 당국이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에 심상치 않은 눈초리를 던지고 있다는 신호는 올해 초부터 포착됐다.

앞서 3월에는 공안이 미국 로펌 민츠의 베이징 사무소를 급습해 중국인 직원 5명을 구금했고, 이어 4월에는 미국 경영 컨설팅업체 ‘베인앤드컴퍼니’의 상하이 사무소를 기습해 직원들을 심문했다.

5월에는 미국 컨설팅업체 캡비전 파트너스의 중국 내 사무소가 국가안전부 요원들의 급습을 받았다. 관영 중국중앙(CC)TV 뉴스는 이 장면을 내보내며 “서방 국가들이 컨설팅 업체를 이용해 중국의 정보를 훔쳐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 기업도 비슷한 견제를 받고 있다. 23일 닛케이에 따르면, 일본 무역업체에서 희토류 등 희귀금속 사업을 담당하는 중국인 직원과 이 회사와 거래 관계에 있던 중국 국유기업의 직원 등 2명이 올해 3월 체포됐다.

구체적인 혐의는 발표되지 않았으나, 중국이 통제를 강화하고 있는 희토류 관련 정보와 관련됐을 것으로 추측됐다. 체포된 2명 모두 희귀금속 거래를 담당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교도통신은 지난 19일 간첩 혐의로 베이징에 억류된 아스텔라스제약 중국법인의 일본인 직원이 중국 당국에 정식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해당 일본인은 간첩 혐의를 받고 있으며 중국 당국이 법에 따라 형사 강제 조치를 취했다”며 “중국은 법치가 지배하는 국가이며 법에 따라 해당 사건을 처리하고 법에 따라 관련자의 모든 합법적 권익을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공 당국은 2014년 11월부터 반간첩법을 시행해 형사범죄 범위를 벗어난 국가안보 침해 행위에 대한 처벌을 규정했다. 당시 반간첩법은 총 5장 40개 조항으로 구성됐다.

올해 7월부터는 간첩행위의 범위와 대상을 대폭 확대한 개정안을 시행했다. 법조문도 6개 68개 조항으로 크게 늘어났다.

류허 중국 국무원 총리는 지난 1월 세계경제포럼(WEF) 연설에서 “중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환영하며, 중국으로의 문은 더 개방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후임인 리창 총리 역시 지난 3월 고위급 경제포럼에서 중국시장에 대한 외국 기업의 신뢰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지난 수개월간 이와 상충한 중공 당국의 행보에 관해, 외신은 “중공 지도부는 대다수 다국적 기업이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을 것으로 낙관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반간첩법으로 옥죄이더라도 기업들이 중국 시장을 떠나지 않을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한편, 로이터통신은 반간첩법이 크게 강화되면서 외국 기업들의 투자 심리가 위축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올해 1~8월 중국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작년 동기 대비 5.1% 감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