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혁명 생존자, 中 문혁-美 워키즘 간 유사점 폭로

엘라 키에틀린스카(Ella Kietlinska), 얀 예켈렉(Jan Jekielek), 조슈아 필립(Joshua Philipp)
2023년 11월 23일 오후 6:51 업데이트: 2023년 11월 23일 오후 8:29

중국 문화대혁명 생존자가 과거 중국에서 일어난 문화대혁명과 오늘날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 사이에 공통점이 존재한다고 진단했다.

1966년 5월부터 1976년 12월까지 벌어졌던 문화대혁명 시기 중국에서 나고 자랐던 시 밴 플리트 씨는 지난달 28일 에포크TV에 출연, 인터뷰에 응했다.

이날 시 씨는 현재 미국을 휩쓸고 있는 ‘워키즘’에 대해 “워키즘의 진정한 목표는 미국 문화를 바꾸고 전통적인 가치 같은 과거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워키즘은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나선다는 뜻이지만, ‘깨어 있는 척한다’며 냉소적으로 조롱할 때 쓰인다. 극단적 PC주의가 미국의 전통적 가치를 폄훼하고 계층·이념 갈등을 확대한다는 의미에서다.

지난 1960년대, 중국 문화대혁명이 내세운 목표는 ‘파사구(破四舊)’, 즉 ‘네 가지 낡은 것(낡은 사상, 낡은 문화, 낡은 풍속, 낡은 관습)을 모조리 숙청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문화대혁명을 추진한 마오쩌둥은 옛 것을 모조리 파괴하고, 그 빈자리에 마오쩌둥 자신이 중국 무산계급과 인민을 대표한다고 규정하며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중국화한 이른바 ‘마오쩌둥 사상’을 주입하기를 원했다.

바로 그 지점이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과 유사하다는 게 시 씨의 지적이다. 전통적인 모든 것을 파괴하고 워키즘으로 그 공석을 대체하려고 한다는 얘기다.

문제는 워키즘의 이념적 뿌리가 마르크스주의에 있다는 데 있다.

공통점

미국과 중국은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 1960년대와 2020년대라는 시간 역시 큰 격차가 있다. 그럼에도 시 씨는 과거 중국 문화대혁명과 현대 미국의 워키즘 간 비슷한 면이 있다고 봤다.

현재 미국이 교육 과정에 세뇌로 영향을 미치고, 역사를 다시 쓰고, 마르크스주의의 억압자와 피억압자 개념을 적용해 인종이나 성별에 따라 사회를 분열시키고,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리고 이는 중국 문화대혁명과 유사한 방식이다.

시 씨는 “많은 미국인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역사를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서 “하지만 나처럼 문화대혁명을 겪었거나 공산주의 아래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이를 바로 꿰뚫어 본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새로운 일이 아니며 이전에도 일어났던 일이다.”

교육을 통한 세뇌

시 씨는 어린 시절, 자신을 비롯한 중국 어린이들이 미취학 아동일 때부터 “부모는 너를 낳아준 사람일 뿐이며, 진짜 부모는 중국공산당과 마오쩌둥이다”라고 배웠다고 회상했다. 예컨대 부모와 당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면 자녀는 항상 당을 선택해야 한다는 교육이었다.

시 씨는 “미국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어른에게 가야 한다’고 말한다”며 “‘당’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이는 중국공산당의 가르침과 매우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가르침의 목표는 정부가 아이들의 ‘진정한 보호자’인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시 씨는 “이것이 바로 중국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실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올 상반기 한 연설에서 “다른 사람의 자녀라는 것은 없다. 미국의 아이들은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 같은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중국 문화대혁명은 학생들이 이끄는 홍위병에 의해 주도됐다. 문화대혁명 시기 벌어진 첫 번째 살인은 12~16세 여학생들이 중학교 교사를 고문하고 구타해 숨지게 한 사건이었다.

시 씨는 “홍위병들은 마오쩌둥의 지시에 따라 문화대혁명을 주도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그만큼 세뇌당했다”고 귀띔했다.

지난 1966년 6월 문화대혁명 초기 중국 베이징 거리에서 행진하는 홍위병|Jean Vincent/AFP/Getty Images/연합뉴스

다시 쓰는 역사

“이렇게 아이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

시 씨가 한 말이다.

중국에서 보낸 학창 시절, 학교에서 완전히 새로 쓰인 역사를 배웠다는 시 씨는 미국 학교 또한 완전히 엉망인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나치의 범죄, 노예제 범죄에 대해 배운다. 하지만 공산주의 이름으로 자행된 범죄를 아는 학생은 거의 없다. 역사적으로 공산주의 아래에서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공산주의에 대해 ‘분배’와 ‘나눔’에 관한 것이라고 배운다. 이것은 역사를 다시 쓰는 일에 해당한다.”

억압자 대 피억압자

마르크스 착취론은 자본을 가진 부르주아와 자본이 없는 프롤레타리아라는 두 가지 대립되는 계급으로 사람들을 나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가 계급은 프롤레타리아를 착취하여 돈을 벌기 때문에 억압자 계급으로 간주된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계급으로 간주되고 따라서 도덕적으로 우위를 차지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착취를 없애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사회 전체를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부르주아들을 제거하고 그들의 자산을 몰수하는 한편 당이 재산을 집단화하여 공산주의를 확립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대해 시 씨는 “중국은 마르크스주의를 채택하며 중국이 겪고 있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부유층에게 돌렸다. 부유층은 성공한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정체성 정치

“아직도 사람들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경제 시스템으로만 생각한다”고 지적한 시 씨는 “물론 사유 재산과 개인 소유권을 폐지하는 등 어떤 면에서는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공산주의는 사적인 생각을 말살하기를 원한다”고 우려했다.

시 씨는 “공산주의는 당신을 변화시키고 싶어 하고 당신의 생각을 통제하고 싶어 한다. 홍위병은 세뇌의 결과를 보여주는 한 예”라며 말을 이었다.

시 씨에 따르면, 타인의 생각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것이 목적인 공산주의자들은 사람들을 분열시키려 시도한다.

일례로 마오쩌둥의 정체성 정치는 부자, 농민, 지주, 빈민 등 각 중국 인민에게 정체성을 규정하는 라벨을 부여하고 이를 계급으로 분류했다. 유산계급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국가의 적으로 낙인찍혔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떤가. 시 씨는 미국의 정체성 정치는 비판적 인종 이론(CRT)을 이용해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지배하려 한다고 했다. 특히 “비판적 인종 이론은 계급보다 훨씬 더 강력한,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주장했다.

어떤 사람이 어느 계급에 속하는지를 파악하려면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디에 사는지 등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인종은 사람이 항상 입고 다닐 수밖에 없는 옷 같은 요소이며, 그렇기에 더 강력한 무기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사상의 한 갈래인 비판적 인종 이론은 마르크스주의의 ‘억압자’와 ‘피억압자’라는 전형적인 갈등 개념을 계급이 아닌 인종에 적용한다.

계급 이동이 가능한 미국에서는 계급에 따라 사람들을 나누고 분열시키려는 시도가 성공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프롤레타리아 구성원이 자신의 사업을 일궈 성공하면 부르주아 계급으로 올라갈 수 있다.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사람들을 분류하는 기준은 그 사람이 공산주의 통치에 반대하는지 또는 찬성하는지에 따라 결정됐다. 공산주의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은 ‘반동분자’로 지목돼 매장당했다.

미국에서는 ‘반동분자’ 대신 ‘인종차별주의자’ ‘편견주의자’ ‘극단주의자’라는 용어가 쓰인다. 시 씨는 “이들 용어는 자신이 배척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분류해 쫓아내고 적으로 간주하기 위해 사용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중국공산당이 권력을 장악한 후 사람들은 부자가 되는 것, 부르주아처럼 행동하는 것이 불리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모두가 프롤레타리아처럼 보이기 위해 행동했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미국에서는 백인처럼 생각하고 백인처럼 행동하는 것이 나쁜 것으로 간주된다. 만약 당신이 백인처럼 행동한다면 배척당할 것이다.”

비판적 인종 이론(CRT)에 대해 우려하는 학부모들이 제작한 버튼|Nanette Holt/에포크타임스

폭력의 정당화

또 시 씨는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에 의거하면 폭력은 대의를 위해 정당화될 수 있다. 특히 억압자에 대한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정의했다.

문화대혁명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기도 한 시 씨는 “문화대혁명에서는 모든 적을 제거하는 것 자체가 대의였다. 당시 살해된 사람들은 토지 소유자 등 유산계급으로 분류된 사람들이었다”고 증언했다.

그뿐만 아니다. 대부분이 학생인 홍위병을 말리려고 했던 교사들이 폭력에 희생됐다. 교사들은 홍위병을 탄압하려는 세력으로 규정됐고, 이로 인해 교사들에 대한 폭력은 정당화됐을 뿐만 아니라 응원과 격려를 받았다.

나아가 시 씨는 미국에도 다가오고 있는 폭력을 경고했다.

“첫 번째 단계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단계다. 우리는 이미 그 단계를 통과했다. 이제 우리는 폭력을 찬양하는 단계에 있다. 그다음 단계는 소위 ‘억압자’에 대한 폭력을 조장하는 단계다. 단계들을 넘어가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황효정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