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과 구리를 구웠더니 탄생했다”…‘LK-99’ 상온 초전도체 맞을까?

전경웅 객원기자
2023년 08월 2일 오후 12:48 업데이트: 2024년 01월 19일 오후 2:14

‘초전도체’란 특정 조건에서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물질이다. 지금까지 액체질소 등을 이용한 초저온에서 초전도성을 보이는 물질은 있었지만 상온 상압(1기압)에서 초전도성을 보이는 물질은 없었다. 그런데 최근 국내 연구팀이 상온 상압 초전도체(이하 상온 초전도체)를 만들었다고 주장해 전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국내 연구팀, 아카이브에 ‘상온 상압 초전도체’ 논문 공개

‘초전도 현상’은 1911년 네덜란드 물리학자 카메를링 오네스(Kamerlingh Onnes)가 극저온(4.2K, -268.8℃)에서 수은의 전기저항이 0이 되는 현상을 우연히 발견하면서 알려졌다. 이후 100년이 넘도록 과학자들은 보다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일으키는 물질을 찾아왔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고온의 초전도체 임계온도(전기저항이 사라지는 온도)는 –70℃였다. 그것도 독일 막스프랑크연구소에서 대기압의 150만 배 압력으로 황화수소를 압축한 환경에서 실시한 실험 결과였다. 그런데 국내의 한 소규모 연구기업이 매우 간단한 방법과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상온 상압(일반 대기압) 초전도 물질을 만들어 냈다고 주장했다.

미 코넬대 무료 논문저장 사이트 ‘아카이브(arXiv)’에 퀀텀에너지연구소(대표 이석배) 이름으로 관련 논문이 올라온 것은 지난 7월 22일. 내용은 ‘LK-99’라 명명한 상온 초전도체 연구 결과와 제조 방법이었다.

논문에 따르면 LK-99는 임계온도가 127℃였고, 상압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였다. 무엇보다 과학자들을 놀라게 한 것은 소재와 제조 방법이었다. 소재는 납과 구리였다. 제조법은 다음과 같았다.

먼저 PbO(산화납)와 PbSO4(황산납) 분말을 도자기에서 50대 50의 ‘몰 비율(상대적 비율)’로 균등하게 혼합한 후 가마에서 725℃로 24시간 가열하면 라나카이트가 나온다. 이어 Cu(구리)와 P(인) 분말을 도자기에서 혼합한 후 10의 -3승 토르(Torr, 진공 단위로 1토르는 1mmHg) 진공 상태인 크리스털 관에 넣어 밀봉한다. 크리스털 관을 가마에서 550℃로 48시간 가열한다. 그러면 Cu3P가 나온다.

마지막은 라나카이트와 Cu3P 결정을 분말로 만들어 도자기에서 혼합한 뒤 10의 -3승 토르 상태인 크리스털 관에 넣고 밀봉한다. 그리고 크리스털 관을 가마에서 925℃로 5~20시간가량 가열한다. 그러면 초전도체 LK-99가 나온다는 것이다.

해외 물리학계, 대부분 회의적인 반응…각국 검증 실험 중

지난 7월 26일부터 LK-99에 대한 세계 물리학계의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초전도체가 아닐 것”이라는 회의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일부 과학자는 “그래도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말자”고 했다.

회의적인 사람들은 “과거에도 초전도체를 만들었다는 주장이 여러 차례 있었고, 모두 사기 아니면 실수로 밝혀졌다”고 지적했다. 일부 과학자는 LK-99에서 ‘마이스너 효과(물질이 초전도 상태가 되면서 자기장이 외부로 밀려 나오는 현상. 금속을 밀어내는 것처럼 보임)’가 안 보인다며 초전도체가 아닐 것이라고 했다. 몇몇은 LK-99와 금속판 사이의 ‘양자 고정(물질 내 자기장과 마이스너 효과가 맞물려 일정 거리를 두고 고정된 듯 떠 있는 현상)’이 있는지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한편 미국, 인도, 일본, 중국 등에서는 연구소와 대학, 국가기관 연구팀이 논문에 설명한 제조 방식에 따라 검증 실험에 착수했다. 일부 팀은 실패를 밝힌 뒤 “우리가 논문이 묘사한 제조 환경을 완벽히 따라 하지 못했으므로 다시 검증 실험을 할 것”이라며 포기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런 와중에 미국 에너지부 산하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 소속 시네이드 그리핀 박사가 1일 ‘아카이브’에 논문 하나를 올렸다. ‘LK-99’의 논문에 나온 제조법을 토대로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해당 물질이 초전도성을 띨 가능성이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초전도성을 띠기 위해서는 구리가 납을 대체할 때 끼어들어 가야 하는 특정 위치가 있기 때문에 환경에 따라 재현 실험의 결과가 제각각일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이 논문을 본 물리학자들은 트위터 등에 “어쨌든 이 결과는 인류에게 미친 듯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LK-99, 진짜 상온 초전도체일 경우 ‘제2의 산업혁명’도 가능

세계 과학자들이 떠들썩한 이유는 LK-99가 진짜 상온 초전도체라면 앞으로 수십 년 내에 인류의 생활이 달라질 수준의 발명이기 때문이다. 특히 구리와 납, 인 같은 흔한 재료로 초전도체를 만들 수 있게 되면 희토류 전쟁 같은 건 사라진다.

초전도체가 상용화되면 군사, 우주개발, 대규모 운송 등 중후장대 산업은 물론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산업에서 일대 혁신이 일어난다. 더 가는 송전선으로 더 높은 전압의 전기를 보낼 수 있고, 고압선 송전을 위한 별도의 장치도 필요 없어진다. 또한 ‘전기저장장치’를 만들 수 있게 돼 발전소는 24시간 내내 돌리지 않아도 된다. 즉 에너지 효율이 극단적으로 높아진다.

자기부상열차 속도 증가나 자기공명장치(MRI) 같은 진단 장비의 소형화와 발전은 물론 영화 ‘아이언맨’에서 봤던 외골격 장갑(엑소스켈레톤)이나 ‘스타워즈’에서 봤던 공중부상차량(스피더) 같은 것도 꿈꿔볼 수 있다. 이런 무한한 가능성 때문에 많은 과학자들이 SNS에서 “(LK-99가 초전도체라는 것이) 제발 진짜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치고 있다.

한편 국내 학계는 일단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윤상 한국물리학회 이사는 ‘동아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논문은 동료검토를 거치지 않은 만큼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