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진민퇴’ 외쳤던 中, 경기 침체 계속되자 민영기업 달래기

강우찬
2023년 10월 25일 오후 3:23 업데이트: 2023년 10월 25일 오후 4:00

16개 지방정부에 조사원 파견, 부당 규제·차별 현장 조사
“무너진 신뢰 회복 쉽지 않아…관리능력 결함 시인한 꼴”

민영기업은 물러나고 국유기업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이른바 ‘국진민퇴(國進民退)’를 추진해 온 중국 시진핑 정권이 민영기업 달래기에 나섰다.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판공실은 지난 23일 베이징, 톈진, 허베이, 상하이, 후난 등 16개 성·시·자치구에 직원을 파견해 현장 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민영기업의 발전을 발목 잡는 지방정부의 잘못된 정책이나 규제를 바로잡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국무원의 조치가 실제로 민영기업의 정부에 대한 무너진 신뢰를 회복시킬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평가가 내려진다.

국무원 판공실은 이날 ‘고품질 발전 촉진을 위한 종합 감독에 관한 통지’를 발표하고 “산업 체인 공급망의 탄력성과 안전성을 높이고 경제의 효과적인 질적 향상과 합리적인 양적 성장을 촉진하려 11월 16개 성·시·자치구에서 종합 감독을 조직하고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민영기업을 대상으로 한 ▲무분별한 벌금 부과 ▲무분별한 수수료 요구 ▲무분별한 기부금 할당 ▲부적절한 행정 처벌 ▲차별적 대우 ▲행정·형사 수단을 통한 경제 분쟁 개입 ▲과도한 압류 및 재산 동결 ▲자의적인 기업인 구금 ▲합법적인 경영에 대한 간섭 등이 없었는지 조사하고 지역사회로부터 제보를 받기로 했다.

이를 두고 지난해 말 ‘제로 코로나’를 해제하고 리오프닝(경재활동 재개)을 했는데도 기대했던 것과 달리 경제 회복이 더디고 침체가 장기화하는 현상에 당국이 당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사평론가 차이셴쿤(蔡慎坤)은 RFA와의 인터뷰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이라며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차이센쿤은 “국무원은 마치 민영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처럼 정책을 발표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여전히 민간 경제를 옥죄고 있다”며 “민영기업가들의 미래에 대한 자신감은 나날이 멍들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기업은 크게 국유기업, 민영기업, 외자기업으로 나뉜다. 국유기업은 국가 소유 기업이란 뜻이지만 실제로는 중국 공산당(중공)이 소유한 것에 가깝다.

과거에는 국가가 소유하고 운영한다는 의미에서 국영기업으로 불렸으나 1993년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헌법을 개정해 국영경제·국영기업란 용어를 국유경제·국유기업으로 변경했다.

기업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분리함으로써 소유는 국가가 하지만 경영은 민간 기업인에게 맡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자본가의 효율성을 인정하고 이를 통해 중국 경제 성장을 촉진하겠다는 게 표면적 취지다.

그 이면에는 국유기업의 효율을 높여 더 많은 부패한 자산을 축적하려 한 장쩌민 당시 총서기의 통치철학인 ‘부패치국(관리들의 부패를 조장해 정권에 대한 충성심을 유지하는 통치)’이 깔려 있다는 게 에포크타임스 중문판 분석가들의 지적이다.

민영기업은 민간인이 자금을 내 운영하는 기업이다. 하지만 사유재산권에 대한 보호가 애매한 공산주의 중국에서는 완전한 사유가 아니기에 용어도 사유기업이 아니라 민영기업이다. 소유권을 애매하게 남겨두고 민간이 경영하는 기업이라는 의미다.

중국에서는 경제 역시 국유경제와 민영경제로 나뉜다. 그동안 중국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비효율적인 국유경제를 뒤로 젖혀두고 효율성 높은 민영경제를 앞세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국퇴민진을 현재의 국진민퇴로 전환한 것이 시진핑 정권이다.

중국 경제가 계속 침체됨에 따라 중국 공산당(중공) 관리들은 민영 기업 지원 정책을 내놓고 있다. 사진은 베이징 거리에 걸린 시진핑 중공 총서기의 중국몽 선전 포스터다. | AP/연합뉴스

경제가 하락세를 지속하자 당국은 어쩔 수 없이 민영기업을 지원하는 대대적인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것이라며, 정권의 철학이 근본적으로 변화한 것은 아니라고 차이셴쿤은 강조했다.

이는 정치적 필요에 따라 민영기업에 대한 대우가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현실에서 고스란히 확인된다.

최근 중공 당국은 광둥성, 장쑤성, 허난성, 후베이성에 있는 폭스콘 사무실과 공장에 대한 세무조사 및 토지사용조사에 착수했다.

해당 소식을 전한 중공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조사 이유에 관한 언급 없이 “(폭스콘에 대한) 당국의 조사는 정상적인 시장 감독 활동으로 합법적”이라며 “대만 회사들은 평화로운 양안 관계 촉진에 적극 기여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긍정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폭스콘 창업주 궈타이밍이 내년 1월 대만 총통 선거에 무소속 출마하는 것을 견제하는 움직임이라는 관측이 주를 이룬다.

궈타이밍은 친중 정당인 국민당 예비후보로 출사표를 던졌지만, 당내 경선에서 뒤처지자 지난 8월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향하는 민진당 소속 라이칭더 후보가 지지율 1위로 당선이 유력한 상황에서 궈타이밍의 독자 출마는 국민당 지지층을 분열시키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이에 중공이 세무조사를 들고나와 궈타이밍을 압박한다는 것이다.

차이셴쿤은 “중국 정부가 정치적 문제로 민영기업에 압력을 가한다”면서 “민영기업의 세무 문제는 지난 수십 년간 오락가락한 정책 탓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어 “중국 최근 1조 위안(약 184조원)의 추가 국채 조달을 승인했지만, 또다시 가시적인 수익이 없는 이른바 인프라에 투자될 것”이라며 “경제 침체 속에서 기댈 것은 민영기업의 활력뿐이지만 그마저도 정권의 입김에 흔들린다”고 지적했다.

국무원이 조사원을 직접 지방에 파견하기로 한 것은 중앙정부의 명령이 지방정부에 충분한 효력을 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금융학자 쓰링(司令)은 “국무원은 지방정부가 무분별한 벌금을 부과하는 것을 막겠다고 했지만, 이는 그동안 지방의 시장 규제에 관해 중앙정부의 관리감독 체계에 결함이 있었음을 스스로 시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쓰링은 “지방정부 관리는 당초 부처별 시스템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국무원이 조사팀을 직접 파견하겠다는 것은 지방정부 관리들을 믿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RFA에 밝혔다.

시사평론가 위안샤오화는 “당국의 여러 가지 정책이 민영기업에 꼭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며 많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민영기업에 대한 접근법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정책은 기대한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