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부유에서 실업난까지…무너지는 中 사회계약

강우찬
2023년 11월 8일 오후 1:15 업데이트: 2023년 11월 8일 오후 1:15

‘경제발전 대가로 자유 억압’ 정권 정당성 흔들

중국 시진핑 정권의 정책과 실정으로 공산당과 중국인 사이의 ‘사회계약’이 무너지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소위 ‘그 넓은 대륙을 통치하려면 공산당 정도의 강압적 정권은 필요하다’며 인권탄압과 폭정을 옹호하던 논리가 무색해졌다.

중국인들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정권 수립을 거쳐 지금까지 공산주의 혁명과 공산당의 통치에 대해 ‘잘살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정치적 자유를 양보했다. 이러한 암묵적 약속은 공산당과 중국인 사이의 사회계약이 됐다.

그러나 최근 경제 침체와 실업난이 확산하면서 공산당은 ‘경제적 풍요’라는 직접적 표현 대신 ‘안전’, ‘좋은 삶’이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계약 내용을 바꾸고 있다. 문제는 중국인들이 이를 거부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RFA는 올해 초 기사에서 “1989년 6월 톈안먼 민주화 요구 탄압 이후 중국 공산당 정권은 안정된 삶을 누리는 대신 정치적 자유를 포기하는 거래를 중국인들에게 강요했다고 지적했다.

1989년 6월 말, 학살의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가운데 출범한 장쩌민 정권은 국제사회의 투자를 바탕으로 이룬 경제 발전을 선전하며 중국인들의 자유를 구속하는 데 힘을 썼다.

경제가 발전하면 자유에 대한 요구가 조금씩 커지기 마련이다. 마오쩌둥은 10년에 한 번씩은 혁명을 일으켜 중국인들에게 겁을 줘야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장쩌민은 이러한 마오쩌둥의 통치이론을 실천했다. 그는 톈안먼 사건 약 10년 후인 1999년 7월, 파룬궁 탄압이라는 대규모 사회 운동을 개시하며 학살의 충격을 조금씩 극복하던 중국 사회를 다시 한번 공포 분위기에 몰아넣었다.

파룬궁 탄압은 당시 공산당보다 더 큰 인기를 얻던 수련 단체에 대한 권력자의 빗나간 시기심의 결과였지만, 동시에 중국인들에게 경제적 성과를 얻는 대신 자유를 희생해야 한다는 암묵적 약속에 따를 것을 종용한 사건이기도 했다.

후진타오 정권 시절의 ‘사회계약’은 경제적 성과보다는 비교적 평온한 생활 여건을 제공하는 쪽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 대신 중국인들은 발언권, 출판권, 결사의 자유 등 비교적 제한된 정치적 권리가 허용됐다.

다만, 이 시기에도 공산당의 인권탄압 자체는 지속됐다. 파룬궁 탄압은 전임 장쩌민 정권이 설치한 탄압 전담 비밀경찰 조직인 ‘판공실 610호’에 의해 계속됐다. 티베트, 위구르족 인권탄압도 여전했다.

시진핑이 집권한 지난 10년은 경제와 평온한 생활 모두 무너진 시기로 요약된다. 세계적 경기 침체에 공산당의 정책 실패가 겹치면서 중국의 서민들은 이른바 ‘공산당에 의해 먼저 부유해진 이들’을 따라잡을 기회가 멀어졌다.

후진타오 시절의 평온한 생활도 실종됐다. 특히 3년간의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사람들의 기본적인 자유가 크게 제약됐고, 권력이 없는 일반 시민들의 일상생활은 철저한 통제를 받아야 했다.

부유층도 불만이 누적됐다. 시진핑이 내세운 ‘공동부유(共同富裕·모두가 잘사는 사회)’에 따라 강요된 기부, 부의 재분배를 요구받은 중국 부유층은 제로 코로나의 악몽과 함께 중국 탈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닛케이는 올해 6월 투자이민 전문업체 헨리 앤드 파트너스를 인용해 자산 100만 달러 이상의 중국 부유층 1만3500명이 올해 이민을 떠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2022년에도 부유층 1만800명이 중국을 떠난 바 있다.

중국 청년층은 사상 최악의 실업률로 고통받고 있다. 높은 실업률의 배경으로는 집권 3기 시진핑의 경제 정책이 꼽힌다. 시진핑은 계획경제로 되돌아가는 형태의 정책을 폈고, 이는 중국의 산업 발전 잠재력과 고용 창출 능력을 약화시켰다. 기업의 구조조정이 잇따르면서 청년들의 취업은 더욱 어려워졌다.

올해 8월 중순, 중국 국가통계국은 6월 도시지역 청년(18~24세) 실업률을 사상 최고치인 21.3%로 발표한 이후 7월부터 청년 실업률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앞서 7월, 베이징대 장단단 교수팀은 지난 3월 중국의 실제 청년 실업률을 46.5%로 추산해 중국과 국제사회를 술렁이게 했다.

중국에서 하층민에 속하는 2억9562만 명의 농민공(農民工·호적상 농민이지만 도시지역에서 일하는 노동자)은 임금 상승이 둔화하고 도시지역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해 농촌으로 귀향하는 실정이다.

도시지역 중산층은 부동산 개발업체 도산의 여파에 따른 부동산 폭락으로 큰 손실을 입었다. 분양받은 아파트가 공사가 중단되면서 거리에 나앉게 된 피해자들이 지방정부나 은행 본사 앞에서 수천 명씩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다.

부유층도 당국의 정보통신 기업 및 금융 규제, 의료산업에 대한 규제 강화로 타격을 받고 있다.

외국 기업들은 개정된 반간첩법, 새로 제정된 대외관계법이 지난 7월 1일부터 시행되면서 우려감에 휩싸여 있다. 이미 3~5월 계속된 외국 기업 사무실 기습으로 혼란에 빠진 외국인 투자자들은 중국에 대한 투자를 거두기 시작했다.

중국 국가외환관리국은 지난 3일 중국의 3분기 외국인직접투자(FDI)가 118억 달러(약 15조4000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FDI가 마이너스로 변한 것은 1998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25년 만에 처음이다.

경제적 압박이 심해지면서 다른 사회적 모순도 돌출하고 있다. 사람들은 다들 경제 여건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해외 여행에 명품 쇼핑을 즐기는 관료들의 부패에 분노하고 있다.

중산층과 지식인 사이에서는 공산당 통치 시스템에 대한 비판의식이 퍼지고 있다. 제로 코로나에 반대하는 명문대생과 시민들의 백지운동, 시진핑을 정면 비판한 현수막을 내건 ‘사통교의 용사’ 사건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아시아사회정책연구소 중국분석센터의 닐 토마스 연구원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시진핑 경제정책의 비극은 중국이 해결해야 할 몇 가지 문제를 찾아냈지만, 그 해결책을 잘못 찾은 데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