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표시 없는 메뉴판…美 ‘전통 가정식’ 레스토랑에 얽힌 사연

랜디 타타노(Randy Tatano)
2023년 09월 28일 오후 2:12 업데이트: 2024년 01월 31일 오전 10:44

여기, 메뉴판에 가격 표시가 없는 작은 식당이 있다. 손님마다 각자가 낼 수 있는 만큼만 내면 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한 푼도 없다면?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이곳 식당의 손님이 될 수 있다.

레스토랑은 미국의 전통 남부 가정식 요리를 전문으로 한다.|사진=드렉셀 & 허니비스 제공

불우이웃을 위한 요리

미국 앨라배마주에 위치한 작은 레스토랑 ‘드렉셀 앤 허니비스’는 일주일 중 화·수·목 3일 점심으로 남부 전통 가정식을 제공하며 따뜻한 한 끼 식사가 간절한 이웃들에게 따스한 빛이 돼 왔다.

하루 평균 100명 이상의 손님이 이곳을 찾는다. 일부 손님은 평균적인 식사 비용보다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하며 여유가 없는 손님들의 몫까지 값을 치르곤 한다.

미국 전통 남부 가정식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 ‘드렉셀 앤 허니비스’를 운영하는 리사, 프레디 맥밀란 부부의 선행은 5년여 전에 시작됐다.

레스토랑 오너 리사, 프레디 맥밀란|랜디 타타노

어느 날, 식료품점 계산대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던 아내 리사는 자신 앞에 선 할머니 고객을 무심코 지켜보았다. 할머니는 지갑에서 잔돈을 꺼내고 있었다. 뒤에서 기다리던 리사는 할머니에게 금전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날 이후 리사는 할머니에게 계란, 시리얼, 베이컨, 커피 등 아침 식사를 만들어 배달하기 시작했다.

“식료품점 계산대에서 ‘요리 수호천사’가 되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리사가 아침 식사를 배달하는 노인은 27명으로 늘어났다. 남편 프레디는 그런 아내를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프레디는 6만 달러(한화 약 8100만원)를 들여 문을 닫은 주류 판매점 건물을 샀다.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던 텅 빈 가게를 수리해 밝고 따뜻한 식당 건물로 변신시켰다.

“돈이란,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을 때 비로소 좋은 것이니까요.”

프레디 맥밀란이 주방에서 사과파이를 만들고 있다.|랜디 타타노

친절한 마음, 상냥한 손길

맥밀란 부부는 매일 아침 6시에 요리를 시작한다. 퇴역한 해병대 원사 출신인 남편 프레디는 사과파이를 전담한다.

프레디는 “할머니가 요리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며 “12살 무렵에는 부엌에서 무엇이든 만들 수 있었다”고 전했다.

아내 리사가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식당을 열고 싶다고 말했을 때, 프레디는 아내가 가게를 열고 싶어 하는 이유를 듣고 “해보자”고 대답했다. 도움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한다는 생각이 좋았기 때문이다.

자원봉사자 브리트니 푸쿠아가 고객의 주문을 받고 있다.|랜디 타타노

하루 평균 방문 손님만 100명이 넘는다. 100인분을 요리하는 것은 부부 둘이서만 하기에는 벅찬 일이다. 주방에 일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한 올해 초 리사는 소셜미디어에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 글을 올렸다. 설거지부터 배식 보조까지, 모든 일을 밝게 웃으며 매주 자신의 시간을 기부하는 자원봉사자 브리트니 푸쿠아는 “지역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정말 만족스럽다”고 취재진에 말했다.

기부금으로 들어온 현금으로 식료품 비용을 충당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때로는 부부의 사비를 털어 식료품을 구입해야 하는 날도 있다. 경제가 나빠지면 자선단체가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것은 당연지사다. 최근 이곳 식당의 기부금도 감소하는 추세다.

하지만 경제가 나빠졌다는 얘기는 식료품 가격이 치솟았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런 만큼 생계가 어려운 이들에게 해당 레스토랑은 생명의 은인이 됐다.

레스토랑에는 하루 평균 100명 이상의 고객이 방문한다.|랜디 타타노

매주 이곳 식당을 찾는 브루스 스피어스는 “정부에서 나오는 수당과 아르바이트 일자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자신의 형편을 털어놓으면서 “이곳이 정말 도움이 된다. 그리고 가정식만큼 좋은 식사는 없다”고 감사함을 표했다.

취재진이 이곳을 찾은 날 식당 메뉴판에는 마카로니 앤 치즈, 미트로프, 크림 옥수수, 소시지, 고구마, 팟파이, 레드벨벳 케이크가 오늘의 메뉴로 적혀 있었다.

고객들이 남긴 감사의 메시지들|랜디 타타노

한편, 식당의 기부금 상자는 레스토랑 출입구 근처 가림판 뒤에 위치해 있었다. 다른 사람이 식사비를 지불했는지 여부를 알 수 없게 하기 위해서다. 기부금 모금함 위에는 이런 쪽지가 붙어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는 돈이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하시는 모든 일에 신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또 다른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지상에 천국이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천사들이 운영하는 이곳 레스토랑을 더욱더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은 DrexellAndHoneybees.com으로 접속하면 된다.

레스토랑을 찾은 아이들이 기부함에 기부금을 넣고 있다.|사진=드렉셀 & 허니비스 제공

*황효정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