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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운 얼후 연주자 메이쉬안의 인생역전과 인연(緣)

2008년 02월 23일
▲ 일본의 한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얼후를 연주하는 메이쉬안(美旋)@대기원

[대기원] 지난 12일 저녁, 일본 도쿄 신주쿠에서 신운뉴욕예술단 도쿄 첫 공연이 유서깊은 후생연금극장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많은 프로그램 중에 특히 관중들의 기대를 모은 것은 중국 전통악기 얼후 독주였다.

우아한 피아노 반주에 따라 한 여자 연주자가 부드럽게 얼후 줄을 잡자, 은은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면서 조용한 극장 안에 서서히 울려 퍼졌다. 연주소리는 느리고 유연하면서도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근심과 괴로움을 품은 음색은 마치 비장한 역사의 한 장면을 묘사하는 것 같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천천히 연주를 음미해보니 연주 중에는 또 한 가닥 꿋꿋하고 희망을 상징하는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산길을 지나듯 여러 차례 굴곡을 거친 후 얼후 소리가 점점 크게 울려퍼지는 것은 마치 시냇물이 온갖 우여곡절을 거치고 마침내 큰 바다로 들어가는 것 같다. 얼후 소리가 끊임없이 고양되는 것이 마치 용이 기둥을 감고 올라가는 듯하더니 한동안 그 기세와 에너지가 전 극장을 가득 채웠다. 마치 봄꽃이 흐드러지게 핀 듯 다시 광명이 재현되었다. 선율이 다시 최고조에 도달한 후 얼후 소리가 갑자기 그쳤다. 바로 그 순간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온 극장 안에 메아리쳤고 그 소리가 한동안 끊이지 않았다.

지금 무대 위에 선 여인의 이름은 메이쉬안(美旋)으로 바로 신운뉴욕예술단 얼후 연주가이다. 도쿄는 그녀가 참여한 세계 순회 공연의 첫 기착지이다. 그녀는 이번에 오사카와 나고야 공연에도 참가할 예정이며 일본 공연이 끝난 후에는 한국, 대만, 말레이시아, 캐나다 등에서 약 70차례에 걸친 공연에 참가할 예정이다.

그러나 지금 세계무대에서 눈부시게 활약하고 있는 그녀에게 믿기지 않는 인생역정이 거쳤음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메이쉬안은 일찍이 중국의 저명한 예술단에서 수석 얼후 연주자로 활약했었다.

그러나 1999년부터 시작된 파룬궁(法輪功) 탄압 과정에서 진선인(眞善忍) 신앙을 견지하다 모든 것을 잃었다. 그녀는 그동안 셀 수 없을 정도로 여러 차례 감금당했고 가장 긴 것은 무려 4년에 달한다. 중국에서는 그녀 외에도 뛰어난 재주를 지녔음에도 마찬가지로 지금 현재 잔혹한 박해를 받고 있는 파룬궁 수련생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파룬궁 수련생인 그녀는 역경에 처해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치지 않았다. 첩첩이 쌓인 온갖 고난을 겪고 나자 행운의 신은 드디어 그녀에게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2007년 말 그녀는 무사히 자유의 땅인 미국으로 건너올 수 있었다. 미국 정부는 그녀의 비자신청을 신속하게 받아들였다. 이를 통해 그녀는 신운뉴욕예술단의 얼후 연주자가 되어 세계무대에 등장하게 됐고, 화려한 인생의 2막장을 열게 됐다.

2008년 2월 14일 오전 일본 도쿄 나가타초(永田町).

메이쉬안이 일본 국회 하원 의원회관을 방문했다. 그녀는 특별한 인연이 있는 한 국회의원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찾아왔다.

“중국에서 어떻게 박해를 받았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의원이 친절하게 물었다.

“1999년부터 2006년까지 하루도 정상적인 생활을 한 적이 없고 무수한 감금을 당했습니다. 가장 긴 것은 2002년에 판결 받아 장장 4년 동안 감금되어 있었습니다. 단지 신앙을 지킨다는 이유만으로 저는 무수한 고문을 당했고 온몸 곳곳에 상처가 나서 성한 곳을 찾기 힘들 정도입니다. 한 번은 쇠의자에 팔다리가 묶여있었는데 75일 동안 잠을 자지 못하게 해 의자가 변형되기도 했습니다.”

메이쉬안은 이미 진상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여러 차례 자신이 겪은 상황을 말한 적이 있다. 비록 매번 진상을 알릴 때마다 고난을 겪을 때의 옛 상처가 되살아나곤 하지만 그녀는 그래도 자신이 겪은 진상을 알리고 싶어 했다. 메이쉬안이 미국 비자를 신청할 때도 관련부서의 직원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당신은 아주 강인한 여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까지 버틸 수 없었을 겁니다. 앞으로 당신의 인생은 찬란할 것입니다” 의원은 말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얼후를 연주할 수 없었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연주를 잘할 수 있습니까? 정말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왜냐하면 저는 마음속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진선인에 아무런 잘못도 없음을 믿었고 바로 이런 신념 때문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메이쉬안은 자랑스럽게 “1999년부터 2006년까지 저는 얼후를 아예 만질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감옥에서 나온 지 겨우 1년 만에 예전 수준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역시 기적입니다.”

메이쉬안이 이 일본 의원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신기하게도 그의 진지하고 솔직한 모습에서 중국인의 냄새가 나는 것을 느꼈고 또 어디선가 그를 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존경하는 의원님, 중국 옛말에 “인연이 있으면 천리 밖에서도 만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메이쉬안은 감회가 깊은 듯이 “이번에 제가 일본에서 연주한 곡의 이름이 바로 “인연(緣)”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요, 인연은 제가 가장 중시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당신과 내가 오늘 만난 것도 연분입니다!” 의원은 메이쉬안의 말을 이으며 “애석한 것은 제가 공무(公務) 때문에 당신의 얼후곡을 듣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정말 유감입니다.”

“의원님, 저는 오늘 당신을 위해 감격의 정을 표현하는 얼후 곡을 하나 연주하고 싶습니다.” 사실 메이쉬안은 미리 이를 예견하고 얼후를 가지고 갔다.

잠시 후 의원회관에 은은한 얼후 소리가 울려 퍼졌고 의원은 몸을 일으키며 그녀의 연주를 경청했다.

메이쉬안은 마음속으로 만감이 교차했다.

그렇다! 내가 아직 중국의 감옥에 갇혀 비인간적인 박해를 받을 때 어디 오늘과 같이 이런 곳에서 기량을 발휘할 날이 올 줄 상상이나 했으랴! 여기까지 생각하자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 내려 마치 실 끊어진 구슬이 치맛자락에서 떨어져 내리는 듯했다.

연주는 마음에서 나오는 법, 그녀의 얼후 소리 역시 메이쉬안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우는 듯 호소하는 듯했고 박해진상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나왔다. 마치 모든 것이 곡 속에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여기까지 이르자 의원의 눈에도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그러나 필경 얼후 소리 속에는 견인불굴(堅忍不屈)의 힘이 갈수록 강해져 의식도 못하는 사이에 따뜻한 봄이 찾아와 꽃이 만발하며 정신이 분발되었다. 메이쉬안도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밝은 미소를 띠며 아름다운 음악으로 “인연” 연주를 끝냈다.

의원은 이 완벽한 얼후 연주에 깊이 감동되었고 그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앞으로 온힘을 다해 박해받는 사람들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당신들이 하루 속히 자신의 조국에 돌아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메이쉬안은 신심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메이쉬안은 의원과 작별을 고하고 일본 공연을 계속하기 위해 나고야와 오사카로 갈 예정이다.
이것은 그녀가 세계 순회 공연에 처음으로 참가한 것이다. 지금 보다 많은 관중들이 지금 그녀와 소중한 “인연”을 맺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대기원=왕젠펑[王劍鋒]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