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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윈 따라가기]제공(濟公)이 신부를 빼앗은 까닭은? (下)

2010년 07월 23일

중국 정통(正統)문화의 정신을 되살린 독보적 공연으로 평가받는 션윈(神韻). 2009년에도 전 세계를 순회한 션윈에는 중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제공(濟公)에 관한 작품이 있었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우며 살아있는 부처로 공경받은 송나라 고승이다. 명문가에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수련에 뜻을 둔 그는 출가하지만 갖은 모함을 겪는다. 이번 편에는 제공이 고험 속에서 문명을 떨치고 사람들을 구하는 과정을 소개한다.

 

▲ 중국인들에게 활불이라 불리며 공경받는 제공화상. ⓒ따지웬DB

 

정자사의 서기로 문명(文名)을 떨치다

늘 도제를 감싸주던 혜원화상이 입적한 후 제공은 결국 영은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이때 제공의 그릇을 알아보고 그를 받아들인 인물이 바로 정자사(淨慈寺)의 덕휘(德輝)장로였다. 덕휘장로는 제공의 글재주가 뛰어난 것을 알고 그를 정자사의 서기(書記)로 임명했다. 서기란 사찰의 문서와 기록을 담당하는 승려를 말한다.

제공은 여기서도 기이한 행동으로 많은 승려들에게 비방을 받았지만 덕휘장로는 혜원이 했듯 모든 비난들로부터 제공을 감싸고 보호해주었다.

제공은 서기의 신분으로 여러 관청을 두루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이때 친해진 모(毛)씨와 진(陳)씨 성을 가진 두 태위(太尉)가 그를 존중하며 공양하자 이후로 아무도 그를 욕하지 못했다. 제공은 술에 취하면 시와 문장을 쓰곤 했는데 내포가 아주 깊어 식자층에서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그러던 어느 밤 나한당에서 화재가 발생해 사찰이 무너졌는데 덕휘장로도 이때 게송(偈頌)을 남기고 입적했다.
제공은 소림사에서 묘숭(妙嵩) 스님을 청해 주지로 모시고 사찰을 재건하려고 힘썼다. 사찰을 중창하자면 거액의 돈이 필요했다. 묘숭은 제공의 문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후원금을 모집하는 글을 쓰게 했다.

이때 제공이 쓴 문장이 ‘중건정자사소문(重建淨慈寺疏文·정자사 중건을 호소하는 글)’이다. 이중 특히 “아래로 중생을 구해 인심을 감동시키고 위로 구천을 두드려 직접 하늘에 통하고자 한다(下求?姓,蓋思感動人心 上叩九天,直欲叫通天耳)”는 구절이 인구에 회자됐다.

이 방문(榜文)을 내보낸 뒤 임안 인근에 큰 파장이 일어났다. 문장이 아주 좋다며 베껴 쓰고 전하는 사람이 많았다. 심지어 황제도 감동시켰다. “위로 구천을 두드리고 하늘에 통하려 한다”는 등 절묘한 구절에 감탄한 황제는 직접 사람을 파견해 거금을 보시했다.

신통으로 목재를 운반하다

 

사찰을 중창하는 데에는 큰 목재도 필요했다. 백방으로 알아본 끝에 사천에서 좋은 목재를 구할 수는 있었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 운반하기 쉽지 않았다. 주지스님이 이 문제로 제공에게 상의해오자 제공은 “저는 정자사를 위해 일하고 있고 천이(天耳)도 열려 있습니다. 다만 사천까지 오가는 길이 멀 뿐입니다. 만약 술을 아주 취할 만큼 마실 수 있게 해주신다면 3일 뒤 필요한 목재를 확실히 구해오겠습니다”라고 했다.

제공은 주지스님의 허락을 받고 만취해 3일 내내 잠을 잤다. 술에서 깬 제공이 갑자기 큰 소리로 “목재가 왔다! 목재가 왔어!”라고 소리를 질렀다. 주지가 이 말을 듣고 “목재가 대체 어디에 있는가?”라고 묻자 제공은 “목재는 이미 전당강(錢塘江)을 통해 절 안 성심정(醒心井)까지 운반했습니다. 사람을 시켜 우물 입구에 틀을 설치하고 도르래를 매달아 목재를 끌어올리십시오”라고 답했다.

잠시 후 과연 우물 안에서 큰 목재 하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여러 사람이 도르래로 목재를 하나 끌어올리자 우물 안에 또 새로운 목재가 나타났다. 이렇게 70개를 끌어올리자 옆에서 나무를 헤아리던 목수가 말했다. “이만하면 충분합니다!”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우물 안에서는 목재가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이 일이 있은 뒤 성심정은 ‘신운정(神運井·신통으로 목재를 운반한 우물)’ 혹은 ‘운목고정(運木古井·목재를 운반한 오래된 우물)’이라 불렸다.

제공의 최후

 

제공은 수많은 기적을 보여줬다. 이 과정에서 탐관오리나 악인들을 응징하고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곤 했다. 의술에도 능통해 난치병 환자들을 치료해줬다.

1209년 5월 16일 제공은 목욕재계한 후 단정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 눈을 감고 입적했다. 이때 다음과 같은 게송을 남겼다. “육십년간 어지럽게 살며 동쪽 벽으로 서쪽 벽을 무너뜨렸구나, 이제 수습해 돌아가려니 하늘은 파랗고 물은 여전히 푸르구나.”

제공이 입적했다는 소식이 퍼지자 조정의 관리들이 정자사로 달려오는가 하면 각지 고승대덕들이 운집했다. 장례행렬을 따르는 사람들은 수만 명에 달했다. 호포사(虎?寺) 앞에서 다비식을 치르니 대량의 사리가 나왔다. 정자사 앞에 돌아왔을 때 두 명의 행각승이 주지인 묘숭에게 이렇게 말했다. “육화탑(六和塔)을 지나다 제공을 만났는데 편지 한통 신발 한 켤레를 맡겼습니다.”

묘숭이 깜짝 놀라며 “제공이 임종할 때 내가 다 헤진 신발을 이 신발로 바꿔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소주(蘇州) 서원사(西園寺)에 있는 제공화상의 조상(塑像)이 있는데 생긴 모습이 아주 독특하다. 승모를 삐딱하게 쓰고 너덜너덜한 가사에 누더기 옷을 입었으며 손에는 찢어진 부채를 들었다. 얼굴 표정은 더욱 특이해 보는 각도에 따라 모습이 다르다. 왼쪽에서 보면 얼굴 가득 웃음을 띠었는데 사람들은 이를 춘풍만면(春風滿面)이라 한다. 오른쪽에서 보면 얼굴 가득 근심을 띠었다. 정면에서 보면 마치 웃는 듯 우는 듯 보이지만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형상이다. 웃음 띤 얼굴이 깨달음을 얻은 달관한 사람의 표정이라면, 근심스런 얼굴은 중생의 고통을 함께 괴로워하는 자비이다. 제공의 웃는 듯 우는 듯한 표정에는 중생을 구하려고 속세에 내려온 대각자의 자비가 담겼다.

제공에 대한 평가
제공의 생애는 간단히  ‘미치광이 전(顚)’과 ‘구제할 제(濟)’로 압축할 수 있다. 제공 자신은 이미 도를 깨달아 속세를 떠날 수 있는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미혹에 빠진 중생을 구한다는 사명 때문에 미친 승려의 모습으로 곳곳을 다닌 것이다. 곤경에 처한 이들을 구하고 악인을 징벌한 제공은 중국인들의 마음에 아름다운 이미지로 남았지만, 미치광이 같은 외모 때문에 독특한 인상도 남겼다. 제공이 입적한 후 많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제공스님을 기리며 떠받들었는데 집집마다 제공화상의 그림을 걸어두기도 했다.

겉모습만 보자면 우스꽝스런 미치광이 승려의 모습이지만 사실 제공은 학문이 깊고 큰 덕을 쌓은 득도한 승려였다. 그를 선종 제50조(祖), 임제종 양기파 제6조(祖)라 부르는 것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의술을 익혀 많은 난치병 환자들을 고쳐줬고 거액의 기부금을 모으는 데도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이렇게 그는 도처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지닌 각각 다른 집착을 이용해 불연(佛緣)을 맺게 도왔다. 이런 의미에서 제공의 별칭인 ‘제전(濟?)’은 중생구제에 미쳐 자신을 돌보지 않은 승려의 대자대비(大慈大悲)한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제공이 대중에게 베푼 자비가 워낙 컸기 때문일까. 중국에서는 제공에 관한 이야기가 여러 차례 각색돼 책으로 나오거나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됐다. 문예작품 속에는 제공이 일부러 계율을 어기고 술과 고기를 즐긴 것으로 묘사되기도 하는데, 과장이 지나쳐 사실 왜곡이 되기도 한다. 물론 대중이 제공을 친근하게 느끼게 되는 장점도 있다.

제공화상에 대한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제공전(濟公傳)’에 다음과 같은 시가 나온다.

 

 佛祖留下詩一首    부처님이 한 수의 시를 남기셨으니
 我人修心他修口    나는 마음을 닦는데 남은 입을 닦네
 他人修口不修心    남은 입을 닦되 마음은 닦지 않는데
 爲我修心不修口    내 마음 닦게 하려 입마저 닦지 않네

 

장난스럽게 보이는 이 시에는 사실 깊은 뜻이 있다. 어떤 사람은 입만 열면 염불을 외고 부처님 말씀을 언급하지만, 그 마음속에는 오히려 선을 향하는 마음이 없다. 뒤에서는 부도덕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 누가 진정으로 선량하고 진실한지 평가하자면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는 부족하다. 현상이 아니라 본질을 볼 수 있어야 하지만, 쉽지 않다.

말로만 수련하는 세태에서 무엇이 진정한 자비이고 중생구도인지 행동으로 보인 이가 제공이다.

제공의 이야기가 나온 션윈공연 작품을 떠올려본다. 무용극 ‘제공이 신부를 빼앗다’에서 끊임없이 고개를 가로 흔들던 제공의 모습. 산봉우리가 무너질 것을 감지한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미치광이의 말로 여기자 신부를 들쳐 업고 도망간다. 주민들은 제공의 모든 행동을 ‘미친’ 것으로 여기지만, 결국 제공 덕분에 위험을 벗어난다. 미친 것 같은 제공의 모습에서 사람을 구하기 위한 각자(覺者)의 풍모가 엿보인다.

 

글/ 임영철(동아시아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