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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윈 따라가기] 비파(琵琶), 가장 중국적인 음색을 지닌 악기

2010년 08월 29일

매년 전세계를 순회하는 션윈예술단(Shen Yun Performing Arts). 올해 내한공연의 최대 특징이라면 동서양 악기의 장점을 융합한 션윈예술단 악단이 함께한 것이다.

악단의 구성은 대체로 서양식 관현악단의 형식을 띠지만 악기 구성에서 중국전통의 악기들이 포함되어 있고 연주곡도 고전적 느낌을 살려 일반 관현악단과는 차이가 있다. 이처럼 중국전통의 음색(音色)을 살린 동양악기에는 경쾌하고 빠른 템포의 타악기, 우렁찬 소리를 자랑하는 새납(?? 수르나이, 우리나라의 태평소와 유사), 두 줄만으로 온갖 음색을 내는 얼후, 맑고 고운 음색을 자랑하는 비파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전통의 특색을 잘 살린 악기로는 비파가 으뜸이다. 사실 비파는 중국만의 악기라기보다는 한국, 일본, 베트남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통 현악기이다. 

 

▲ 도곡이 사를 바치다(陶穀贈詞). 부분. 당인(唐寅)그림. 명대. 타이완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비파에 대한 이해

 

비파는 중국에서 흔히 ‘민악의 왕(民樂之王)’ ‘탄발악기의 왕(彈撥樂器之王)’으로 불린다. 여기서 ‘탄발악기’란 현을 뜯거나 젓대로 마찰시켜 소리를 내는 악기를 말한다.

비파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한나라 때 유희(劉熙)가 지은 ‘석명(釋名) 석악기(釋樂器)’에 나온다. “비파(批把)는 본래 오랑캐 땅에서 나왔으며 말 위에서 연주한다. 손을 앞으로 미는 것을 비(批)라 하고 손을 뒤로 당기는 것을 파(把)라 하는데 여기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오른손을 앞으로 미는 것을 비(枇)라 하고 오른손을 뒤로 당기는 것을 파(杷)라고 하는데서 유래한 것이다.

현재 사용하는 ‘비파(琵琶)’란 명칭이 정식으로 출현한 것은 대략 위진(魏晉)시대의 일이다. 중국에서 비파가 크게 유행하기 시작한 때가 위진남북조 시대다. 중국의 전통적 가치관을 중시한 한(漢)나라와 달리 이 때는 외래 문화가 유행했다. 당시에 비파가 어느 정도로 유행했는지 알려주는 재미있는 기록이 있다.

남북조시기 북제(北齊)의 안지추(顔之推, 531-590)가 저술한 ‘안씨가훈(顔氏家訓)’에는 당시 귀족 집안의 자제들이 출세를 위해 선비(鮮卑)족 언어와 같은 외국어를 배우거나 혹은 비파 연주에 열중했다는 기록이 있다. 비파를 잘 타면 왕족이나 권력자들의 인정을 받아 쉽게 출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파는 지금의 피아노나 기타처럼 당시 중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던 악기였다.

춘추전국시대를 대표하는 전통 악기는 종(鐘)과 북(鼓) 내지는 금(琴)이었지만 진한(秦漢)에서 수당(隋唐)에 이르는 시기에는 비파가 대표적인 악기였다. 중국 역사의 황금기와 함께한 비파는 2천년 이상의 역사를 거쳐 변모하며 오늘에 이른다.

비파의 변모

 

비파는 연주기법과 제작방식에서 발전을 거듭했다. 당나라 후기에 접어들면서는 가로로 안고 연주하던 방식에서 세로로 연주하는 방식으로 변했고, 젓대를 이용하던 것이 손가락으로 직접 연주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구조에서도 큰 변화가 있어 4개에 불과했던 음위(音位)가 16개로 늘었다. 모양은 목 부위는 넓어지고 아래 공명상자는 좁아져 왼손으로 하부 음위를 눌러 연주하기에 편하게 됐다. 이런 변화를 거치면서 비파연주기법은 전례 없는 발전을 보여, 기록에 따르면 당나라 때 비파 연주법에 모두 56가지 기법이 있었다.

중화민국 시기에 이르러 서양음악이 유입되면서 서양의 12평균율에 맞춘 현대 비파가 등장한다.

20세기 중반에는 비파제작방면에서도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현대 비파는 강철 현을 사용하나, 원래는 명주실로 만든 사현(絲弦)을 썼다. 20세기 중반 당시에는 나일론이나 강철, 심지어는 은(銀)으로 만든 은현이 등장해 비파의 음량과 공명을 강화시켰다. 또 연주기법에 있어서도 왼손 엄지를 사용하는 기법과 표현이 더욱 발달했다.

 

이런 변화는 비파의 표현능력과 적응능력을 향상시켜 전통 악곡의 연주뿐 아니라 서양음악이나 현대음악 연주에도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이에 따라 전통음악과 현대작곡이론이 융합된 우수한 비파연주곡들이 많이 나왔다. 다른 많은 악기들과 합주도 가능해져 실내악이나 교향악단에도 비파를 함께 구성할 수 있게 됐다.

투명한 음색, 넓은 음역

 

비파가 중국의 대표적인 악기로 불릴 뿐 아니라 현대에 높은 활용도를 자랑하는 이유는 뭘까. 다양성. 넓은 음역과 다양한 음색, 그러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투명한 음색이 비파의 장점이다. 연주기법도 전통기악의 으뜸으로 꼽히며 풍부한 표현이 가능하다.

현은 강철로 만든다. 4현 중 가장 긴 첫 번째 현은 강철로 만들고, 2·3·4현은 강철에 나일론을 감아 만든다. 왼손으로 상응하는 품위(品位)의 현을 누르고 골무를 낀 오른손으로 현을 뜯거나 튕겨 소리를 내는데, 음량이 클 뿐 아니라 음질이 맑고 투명하다.

특히 비파가 내는 배음은 동서고금의 다양한 악기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힌다. 비파 연주 시 기본음에 배음을 더하면 소리의 전달력과 투과력이 아주 강해진다. 조용한 곳에서 비파를 연주하면 1km밖에서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비파의 음색을 음역에 따라 본다면 고음(高音)에서는 밝고 투명하면서도 강력한 소리가 나고 중간 음에서는 부드럽고 윤기 있는 소리가 나며 저음에서는 순박하고 두터운 소리가 난다.

한국의 비파

 

비파는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일찍부터 전해졌다. 현재 전해지는 비파는 크게 2가지로 구분하는데 향비파(鄕琵琶)와 당비파(唐琵琶)다.

현이 다섯줄이라 ‘오현(五絃)’이라고도 불린 향비파는 삼국시대 때부터 쓰였다. 삼국사기 신라악 편에는 신라 시대 때 유행했던 ‘삼현삼죽(三弦三竹)’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여기서 삼현이란 3가지 현악기를 가리키는데 거문고, 가야금, 향비파(鄕琵琶)를 말하며 삼죽(三竹)이란 대나무로 만든 3가지 관악기를 가리키는 대금(大?), 중금(中?), 소금(小?)을 말한다.

향비파는 신라시대 때 가야금, 거문고와 더불어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현악기로 자리 잡았는데, 나중에 당나라에서 전해진 당비파와 구분하기 위해 향비파라 불렸다.

통일신라 때 당나라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이는 당비파는 향비파와 유사하게 둥근 공명통에 곡경(曲頸)을 지닌 4현 악기다. 고려시대까지는 주로 당악(唐樂)에만 한정해 사용했으나, 조선시대 이후로는 향악(鄕樂)연주에도 사용했다. 이 악기는 한때 매우 성행했으며 조선 성종 때는 영인(伶人 연예인)은 물론 사대부와 일반 서민들에 이르기까지 음악 학습을 위한 기본 악기로 사용되었다. 나라에서 악공(樂工)을 선발할 때도 당비파로 시험을 치렀다.

악기는 현재까지 전해지지만, 공교롭게도 주법은 전수가 거의 끊긴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