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Again!”, 72년 전 처참했던 서울대병원 학살

이연재
2022년 06월 23일 오후 9:07 업데이트: 2022년 06월 23일 오후 9:08

“원쑤 놈들이 여기 있다!”

탕! 탕! 탕!

1950년 6월 28일 아침 9시경.

서울대학병원 병동에 총소리가 울려 퍼지며 현장은 삽시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북한군은 환자와 그 가족, 심지어 아이들을 향해 기관단총을 난사했다. 이들은 병원을 돌며 숨어있던 민간인과 부상병을 보일러실로 끌고 가 석탄더미에 생매장하기도 했다.

“6월 28일 아침 9시경 낙산(현재 서울 종로구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 뒤편의 산)과 창경궁 쪽에서 총과 포 소리가 났어요. 선배 간호사가 ‘인민군이 왔대, 빨리 숨자’며 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수술실 바닥 지하실에 숨었죠. 벽돌 틈새로 오토바이 소리가 나더니 ‘탕! 탕!’ 하는 총소리가 연거푸 들렸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이드카를 타고 온 인민군이 국군 보초병을 총격한 소리였어요.”

-당시 간호고등학교 2학년 학생으로 서울대 병원에서 부상자 치료를 했던 박명자 씨 증언 – 

서울대병원에는 개전 직후 서부전선 일대의 교전에서 부상을 입은 국군 부상병들이 치료를 받고 있었다.

전쟁 3일째인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면서 서울대병원에도 북한군이 들이닥쳤다. 병원을 지키던 국군 경비 병력 1개 소대와 움직일 수 있었던 부상병 80여 명이 뒷산에서 끝까지 응전했지만 전멸했다.

고 유월례 씨(서울대학병원에서 부상자 치료를 담당했던 간호보조원, 당시 33세) 조카 최롱 씨 증언에 따르면 병원에 난입한 북한군이 의사, 간호사 등 병원 근무자들을 한쪽으로 몰아놓고, 국군 부상병과 민간인 환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총살했다.

“당시 병원에 근무하던 의사와 간호사는 26일 월요일 오후부터 갑자기 밀려드는 국군 부상병 때문에 비상근무 중이었습니다. 이모님은 인민군들이 국군 부상병들과 환자들을 총살한 후 바로 이어서 인민군 부상병 치료에 동원됐기 때문에 총살은 면했다고 해요.”

“28일 오후부터 병원 종사자 전원에 대해 간단한 심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 심사관 중에는 서울대병원에서 의사나 간호사로 일했던 동료들이 포함돼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이들이 병원을 통제했다고 해요.”

28일 아침부터 오후까지 학살이 계속되었고 어떤 이들은 보일러실로 끌려가 석탄 더미에 생매장됐다. 이렇게 살해된 희생자만 무려 1000여 명에 달했다.

이들의 사체는 학살이 자행된 지  20일이 지난 후에야 창경궁 인근에서 소각됐다. 당시 병원에는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26일 오후부터 국군 부상병들이 밀려들어 왔는데 복도까지 꽉 차 있을 정도였다고 해요. 이모님은 ‘적어도 400~500명 되었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일반 환자들까지 합치면 학살된 사람은 더 많았던 거죠. 이모님 증언에 따르면 서울대병원 학살은 인민군이 병상과 의료설비, 약품을 확보하기 위해 처음부터 계획하고 환자들을 학살했습니다. 가축 도살하듯이 사살하고 쓰레기처럼 버렸다고 합니다.”

“수복 후 미군이 수습한 사체와 유골이 서울대병원에서만 천 구가 되었다고 해요.”

북한군의 병원 학살은 서울대병원뿐만 아니라 서울 소재 병원들과 지방 병원에서도 자행됐다. 특히 당시 의사와 간호사 등 수많은 의료진들이 강제로 북송됐다.

“이모님은 서울 수복 후 다시 서울대 병원에 복직돼 일하셨는데, 그 당시 의사와 간호사가 아주 적었다고 합니다. 인민군이 퇴각하면서 그때 같이 근무했던 의사와 간호사들을 북으로 끌어갔다고 해요.”

서울대병원 학살이 알려진 것은 국군과 유엔군에 의해 서울이 수복된 1950년 9월 무렵이다. 하지만 희생자 중 상당수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고, 비극의 역사 속에 묻혀 버렸다.

72년이 흐른 6월 23일.

희생자들이 묻힌 서울대병원 현충탑 앞에서 이름 모를 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50여 명의 시민단체 회원들이 모여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당시 서울대병원에서 간호보조원으로 일하던 고 유월례 씨의 조카 최롱 씨와 물망초재단 박선영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고교연합 여고국이 주최하고 세계어머니연합이 주관했다.

현충탑 앞에서 최롱 씨가 서울대병원 학살 사건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 NTD

최롱 씨는 연설사에서 “인민군 부상병 치료에 필요하다는 명분만으로 북한군은 서울대병원, 적십자병원 등의 환자들을 개돼지 도살하듯 총살했다.”며 “이 사건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지 않는 공산주의자들의 생생한 사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살 당시의 서울대병원 환자 기록이 모두 없어져 희생된 환자들의 신원을 파악할 수 조차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물망초재단 박선영 이사장 | NTD

물망초재단 박선영 이사장은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서울대병원 학살 사건이라 부르는 이 만행은 단순한 학살 사건이 아니라 명백한 전쟁 범죄이고 국제법 위반”이라며 “이제라도 과거에 대한 진실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이어 “해외에서는 ‘네버 어게인(Never Again)!’ 슬로건으로 국제범죄를 끝까지 추적한다. 2차 세계대전 때 학살 행위를 했던 사람을 그 사람의 나이가 여든이든 아흔이든 찾아내서 법정에 세운다.”면서 “이것은 끔찍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예방이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국제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으려면 그 당시 학살된 분들의 신원을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정확한 기록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주최 측은 “이번 행사가 6.25 한국전쟁의 실상을 알리는 계기가 됐길 바란다.”며 “앞으로 평화 지키기 운동을 세계인과 연합해 펼쳐 나가겠다.”고 밝혔다.

23일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대병원 현충탑 앞에서 학살 사건 추념 기자회견을 열고 이름 모를 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렸다. | NTD

서울대학병원 현충탑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 있다.

“1950년 6월 28일. 여기에 자유를 사랑하고, 자유를 위해 싸운 시민이 맨 처음 울부짖은 소리 있었노라. 여기 자유 서울로 들어오는 이 언덕에 붉은 군대들이 침공해 오던 날 이름도 모를 부상병, 입원환자, 이들을 지키던 군인 시민 투사들이 참혹히 학살되어 마지막 조국을 부른 소리 남겼노라. 그들의 넋은 부를 길이 없으나 길게 빛나고 불멸의 숲 속에 편히 쉬어야 하리. 겨레여, 다시는 이 땅에 그 슬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