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L] 꽃제비 출신 지성호 의원, 청년들에게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NTD
2021년 06월 28일 오후 4:21 업데이트: 2021년 12월 29일 오전 9:13

Q : 한국전쟁이 정치와 국제정세에 미친 영향은?

6.25가 있은 지 71주년입니다. 결론적으로 전쟁이라는 참화가 있었고, 그로 인한 고통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남과 북으로 나눠져 있고 지금도 공산정권을 취하고 있는 북한에서는 주민들의 인권유린과 고통 속에서 살고 있고 대한민국은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6.25가 단지 어느 정도의 피해를 준 것을 넘어서 한반도 주민들에게는 굉장히 깊은 상처를 남겨주었고 그로 인해 많은 이산가족도 있고,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있었고 지금도 북한 정권을 둘러싸고 중국이라던가 공산권 국가들이 그들을 지켜주고 때로는 보호해주고 때로는 응원해주고 때로는 눈감아주고 이런 일들이 계속 진행되고, 북한 땅에서는 인권을 넘어서 핵을 만들고 있고 미사일을 만들고 있고 국가 국민들을 괴롭히고 있고 지금 그런 현실에 처해 있습니다.”

Q : 북한 정권의 인권탄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일화는?

“네 몸 자체가 북한 정권의 탄압이 어떻게 심각한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이 어떤지를 이야기해주는 증거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학교에 갈 나이에 학교에 갈 수 없었고 먹을 것을 구걸하러 다녀야 했었고 또 주변의 있는 사람들이 굶어 죽을 때 그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고, 달리는 열차에서 먹을 것을 구하려고 석탄을 훔치다 열차에서 떨어져서 팔다리를 화물열차 바퀴에 잘리는 고통을 당했는데, 이후로도 북한 당국이 도와주는 것은 없고 제대로 된 치료도 못 받고 생존해 남았다는 그 자체가 지금 봐도 놀랍고, 어떻게 그 상황에서 살아남았을까. 그것도 쉽지 않은데 어떻게 그 과정을 겪고 탈북을 했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북한 정권의 실상을 가장 잘 알려주는 인물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북한에서 짚고 왔던 목발이 증거이기도 하고 , 어찌 보면 북한 주민들의 고통이 그렇게 참혹하다는 것을 세계에 알리려고, 증인이 되고자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오늘까지 있는 아닌가 싶습니다.”

Q : 북한 주민들이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시각

남한에서 북한으로 침공해서 넘어와서 다시 북한에서 반격을 취해서 전쟁 확정이 되었고 전면전이 일어났다. 이렇게 교육을 받았고, 저희들에게는 6.25 전쟁의 당사자가 대한민국으로 알고 있었고, 수많은 사상자, 이산가족을 낳은 주범이 대한민국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있도록 미국이 도와서 했다.” 

저희에게 교육하는 것은 그러니까 성장해서 남한이나 자본주의 정권을 끝장을 내서 공산화를 시켜야 된다이렇게 교육을 받았습니다. 저도 대한민국에 와서 북한에서 대한민국으로 침공한 전쟁이었다.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북한에도 대북라디오나 전단이 됐던, 이런 매체들이 몰래몰래 조금씩 들어가다 보니까, 주민들의 생각이 조금씩 바뀝니다. 단지 주입식 교육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무엇이 진실일까, 의문점 케스션마크는 달려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Q :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고 북한 정권의 반응은?

일단 북한 당국은 협박 내지는 유언비어 내지는 인권, 모욕적인 언사 이런 것들을 해옵니다.   이유는 북한같은 독재 정권에서는 자기 신분이 바뀌는 일은 정말 죽었다 깨어나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제가 북한에서 특권 계층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평양에서 생활했던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북한의 유명 대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었고, 북한에서 가장 가난하고 어려서 거지와 같은 삶을 살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팔다리없는 장애인으로 살았는데, 대한민국에 와서 국회의원이 됐다. 이것은 천지가 개벽할 일이고, 북한말로도 개천에서 용이 났다. 라고 이야기 있는 그런 일인겁니다.”

그러면 주민들이 분명히 생각할 있는 머리가 있을텐데, 그러면 사람은 어떻게 국회의원이 됐을까, 일반 출신도 국회의원이 된다면 나도 있지 않겠냐우리 사회는 무엇이 문제인가. 이런 질문을 가지게 된다는 자체가 북한 정권에게 주는 메세지이고 북한 주민들은 굉장히 부러워하는 것이고 북한 정권은 어떻게서든 제가 이런 고위층에서 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그들이 북한 주민들을 통치하는데 도움이 겁니다.”

Q : 의원님에 목발의 의미는?

목발은 저에게 자유를 찾아서 생존한, 내가 살아있음을 이야기할 있는 희망의 상징이기도 하고  북한주민들 전체로 봤을 때는 북한 인권 실상의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목발을 짚고 두만강을 넘었고 중국을 거쳐서 수많은 나라를 거쳐서 만킬로를 돌아서 왔는데대한민국에 오니까 의족이나 의수도 새로 있었는데목발을 고물상 같은 곳에 버릴 수도 있었는데 그것을 버리지 않았던 것도  사실 제가 탈북한 현실에 있어서 북한이라는 사회가 하루 아침에 무너질 몇년이 갈지 십년이 갈지 수는 없으나그래도 제가 북한을 잊지 않고 있는 고향사람들이 만들어주었던 것을 인식하고 나의 초심을 잡아줄 있는 그런 것이라 생각해서 집에 챙겨놓았었거든요.”

그때 목발을 가지고 갔는데 초청받기를 사실 연두교서에 간다는 것까지는 몰랐고 행사, 중요한 행사에 초청을 받았다 정도 알고 있었는데미국에 가보니까 연두교서의 초청이었고 백악관에 들어가서 미국의 정부관계자들 만나서 인사도 하고 기념 촬영도 하고 대북전략도 함께 짜고 이런 것들을 보면서 저도 놀라웠어요.”

 북한에 제가 살던 곳이 출신 성분으로 하면 가장 미천한 지역이다 보니까 저기 북부지역의 탄광촌 깊은 골짜기에서 나무 껍질을 벗겨 먹으며 살았는데미국 백악관에 가고 연두교서에 가고 사실은 그때 감동과 울림이 컸습니다.”

Q : 한반도 평화을 위해 한국과 북한이 해야 할 일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하기 위해서는 사실 평화와 번영이 무엇을 위한 평화와 번영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그러면 체제들의 안정을 추구하는데 필요한 평화와 번영인지, 아니면 국제사회가 봤을때 평화롭고 안정되 그런 사회를 보여주기 위한것인지, 다양한 것일 있습니다만,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제가 원하는 평화와 번영은 국제사회의 보여주기 위한, 한반도가 안전지대라고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구성하는 개인개인의 평화와 안전이 보장되고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되야 되지 않을까. 물론 거거에 있어서 대립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협상도 있을 것이긴 합니다만, 제가 원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평화와 번영이 확실하게 만들어지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적인 우리 헌법이 추구하는 평화적인 통일이 되어야만 결과적으로  제가 원하는 꼭지점을 찍을 있다  .  이렇게 생각합니다.”

 Q : ‘호국보훈의 맞아 2030 세대에게 해주고 싶은 메시지는?

 저는 가장 좋아하는 문구가 워싱턴 DC 한국인 참전 기념비가 있어요. 거기에 보면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지금 시대에 청년들이 보기에 너무 올드한 이야기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있습니다만, 지금 6.25 맞는 현시점에서 자유를 지켜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탈북할 있는 대한민국이 있었다는   거죠. 그리고 제가 북한에 살던 그리고 탈북민들이 대한민국에 자유를 찾아 내려왔지만 그들은 정말 북한식의 통일을 위해서 전쟁을 치뤘단 말이죠. 같은 시대 같은 주민들이 다른 정치적인 시각 그리고 이념을 위해서 싸웠던 거죠.”

 그렇게 봤을때 자유는 공짜가 아니고 조상들이 어떤 이념을 택했냐에 따라서 굉장히 바뀌어지는 국민들의 삶을 있는데, 안보라는 차원을 넘어서 자유를 가볍게 여기면 자유를 잃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중국같은 나라도 사회주의이지만  시장경제를 택한다고 하고 인민공화국이라고하거든요.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잖아요. 국민들이 깨어나있지 않으면 눈띄고 세뇌를 당하면서 핍박을 당할 있고, 그러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상기시킬 필요가 있을 같습니다.”

Q: 제1 국회 의정대상을 수상한 소감은? 

소감을 먼저 말씀드리면 굉장히 자신에게 자랑스러웠다. 긍지스러웠다. 이야기하고 싶어요. 의원은 가장 첫번째는 법을 만들고 법을 제정하는 것을 넘어 개정하고 이런 일들이 의원의 주된 역할인데, 그 관련인겁니다. 법은 사실 규제하는 것이 법이 아니겠습니까. 풀어주는 것보다 규제하는 것이 법이예요. 그러니까 법은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있고, 어찌보면 국민들의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만 도움이 안될 수 도 있고 오히려 불필요해서 소모품처럼 별로 씌여지지 않을 수 도 있고 하단 말입니다.”

의정 대상은 규제를 푸므로 인해 국민들에게 가는 혜택에 더욱 도움을 준, 법을 많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의미있는 법에 주는 상인겁니다. 제가 만들었던 법안은 제 3국, 특히 중국에서 살고 있는 탈북여성들, 또 러시아라든가 제 3국에서 노동하다가 몰래 망령한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오게되는데, 10년 이상이 되면 제도적으로 불이익이 있었습니다.”

가장 기뻤던 것은 북한주민들을 보면서 기뻤다. 북한 주민들이 이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봐봐 북한의 거지출신이라해서 우리말로 무식한것이 아니다. 북한의 불구자라 해서 장애인이라 해서 무식한 것이 아니야. 북한에서 한손 한팔다리 갖고 산다고 해서 무식한 것이 아니야충분히 능력 있고 당신들도 존귀한 사람이 될수있어”라는 메시지를 줄수 있다고 생각해서 뿌듯했죠.

Q : 북한인권단체 나우(NAUH)가 하는 일과 국회의원이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지?

의원된 다음에는 직접적 활동은 못합니다. 왜냐하면 단체가 통일부 산하에 있는 북한 인권 비영리 민간단체이고 의원이 되면 입법활동, 정부 부처에 대한 견제, 감시 예산을 내주기도 하고, 예산 제대로 썼는지 이런 것도 챙기고, 이런 일들을 하는데 상임위원회가 외교통일위원회라 해서 통일부, 외교부 민주평화 자문회의 이런 것들이있다보니  직접적으로는 못하지만 지켜는 보죠.” 

 제가 2010년도 청년 몇명과 시작할 때 그때 청년들이 정치적 성향이 같았던 것도 아니고, 북한 출신이었던 것도 아니고, 남북한 청년들이 함께 모여 정지적으로도 보수, 중도, 진보 적인 친구들이 모여 공통 분모가 죽어가는 사람 보고 몰랐으면 모르겠는데, 알면서 모른척 하는 청년의 양심으로서는 부끄러운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통일을 지향한다고 하지만, 언젠가 통일이 됐을 사람들 앞에서 선다면 죽어가는 우리를 위해 당신들은 뭐했습니까 라는 질문에답변할 있는 것이 청년이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이 많지는 않지만 행동해야겠고, 알리는 일을 했고, 시작하면서 모금되는 것으로 3국에서 탈북여성들을 구출해서 우리가 돈을 들여서 중국을 통해 저처럼 3국을 통해서 대한한국에 오게끔. 이렇게 한사람한사람 생명을 살린 것이 500여명이 되는 겁니다.”

 숫자 500으로 볼수있지만, 한사람 한사람이 이동하고 오는 과정이 정말 손에 땀을 쥐는, 사람의 목숨을 사람의 생명이 손안에 있는 일들이다보니. 참으로 잠을 제대로 이룬 밤도 많고, 긴장한 날도 많고 모금 하느라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일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돌아보니까, 제가 국회에서 가장 가난한 것으로 소문나있습니다. 재산, 집도 그렇고. 그래도 누구도 없는 사람이 살면서 봉사 이런 많이 할 수 있지만, 생명을 살릴 있는 일은 쉽지 않은데 의미있는 일들 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언제 죽어도 정말 이제 행복하게 살았다고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얘길 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한 것은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많은 국민들 계셨다는, 그리고 일을 하면서 깨달은 진심은 결코 배신하지 않고, 그리고 정말 성실하게 하면 모든 사람들이 알아준다. 많은 사람들이 후원도 해주고 해서 많은 사람들을 구출할 있게 했고, 국제사회 많은 나라 다니면서 북한인권 활동하고 알리는 일을 했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세상은 아름답다. 북한이라는 정권도 있지만 세상은 살만하고 아름답다. 북한 주민들도 아름다운 세상에 빨리 살게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Q : 향후 계획하고 있는 의정활동은?

저는 북한 인권활동가 출신으로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국회의원하면 북한인권 의원 아니고, 탈북자 출신 의원도 아니고 대한민국 국회의원이거든요. 대한민국 국민의 전반을 돌보고, 국민들의 행복을 만들어가는 것이 국회의원인데, 1 동안 의정활동은 주로 북한인권과 북한주민의 알권리, 대북전단금지법을 금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활동들 인권 활동을 했습니다만. 그것보다는 탈북민들의 정착, 이땅에서의  만족을 만드는 일에 힘을 썼습니다.”

 제가 일을 하면서 느끼는 또 하나의 북한정권을 압박하는 대안을 만들수도 있겠다. 그러면 우리가 원하는, 북한 인권에 대해서 전세계 압박하는 방법도 있고, 북한의 핵미사일을 가질 없도록 제재하는 법도 있고, 대화와 협상 방법도 있는데, 또 하나의 제가 만드려는 방법은 땅에 넘어온 3만여 명의 탈북자들이  성공해서 북한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영향력은 지금 많이 미치고 있잖습니까. 경제적으로 성공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나아가 특히 청년들, 사회적 약자들, 장애인들 사람들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하고 법을 내야할 같아요.”

 “2년차에 접어듭니다.. 4 임기중 3년이 남았는데, 1년차는 탈북민들의 정착에 포커싱에 맞췄다면 올해까지도 거기에 중점을 두면서 외연을 확장하는데, 열린 의정이라고 100 청년이 저희 자문위원이 돼서 함께 하고 있습니다. 함께 법안을 만들고. 청년들과 함께 앞으로의 미래. 나아가 북한 정권이 어떤 변화가 있을때 자유민주주의를  영역에서 제대로 역할을 발휘해서 어찌보면 북한 사회 정권이 무너진다해도 그것을  자유민주주의적인 한미동맹에 기초한 가치에 기초한 통합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할 있는 사회적 혼란 비용을 줄일 있게 준비하는 역할이 아닌가 싶고, 저희 의원실 보좌진도 10 3명을 이북이 고향인 사람들로 채워서 의원실을 통일 의원실을 해서 현실로 운영해나가가고 있고든요. 그런식으로 준비하고, 한국에서도 인정받는 국회의원이 돼서 청년들, 서민들 어려운 사람들의 눈물도 닦아주고 시장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국제사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이니까 그런 교류에 있어서도 역할이 있다면 계속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바쁘신 가운데서도 시간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성호 의원 약력
2010.04.~2020.03. 북한인권단체 NAUH(나우) 대표

2019.01.~2019.12. 통일부 북한인권기록센터 자문위원

2018.10.~2018.11. 미국 국무부 차세대 지도자 과정 IVLP(International Visitor Leadership Program)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