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채권 발행 급감…금융시장 도입 후 첫 하락

조영이
2023년 01월 11일 오후 5:17 업데이트: 2023년 01월 11일 오후 6:26

빠르게 몸집을 키우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금융 시장이 시들해지고 있다. 2022년 ESG 채권 발행액이 전년 대비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ESG는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한다. ‘기후변화의 시대에 지속 가능한 투자를 위한 대안’으로 떠오른 ESG 경영은 최근 기업이 환경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는 시도로 선전되고 있지만,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기업에 ESG가 적용되면 이를 준수하지 않는 기업은 통제되고, 동성애자 권리 보호, 기후변화 대응 등 전통적인 경영에서 벗어난 지표들이 강조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2022년 ESG 채권발행 큰 폭으로 하락… 15년 만의 첫 하락세

블룸버그 통신이 6일(현지 시간)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 기업과 정부는 ESG 채권에서 8630억 달러(약 1076조원)를 조달했다. 전년도의 1조 1000억 달러(약 1371조원)보다 19% 감소한 수치다. 이는 ESG채권이 금융시장에 도입된 2007년 이후 15년 만의 첫 하락세다.

해당 데이터에 따르면 ESG 관련 채권시장은 전반적인 매출 부진을 보였다. 전년 대비 녹색채권은 11%, 지속가능채권은 22% 감소했다. 특히 정부 기관과 공기업이 주가 되어 발행하는 사회적채권은 34%나 감소했다.

블룸버그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금리 상승, 경제의 불확실성과 관련 규제 강화 등이 ESG 채권의 하락을 주도했다고 전했다.

“알고 보니 에코백보다 비닐이 낫다 ”…규제 당국 ESG 기준 마련 착수

실제로 최근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들은 ESG 채권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기업들이 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마치 친환경인 것처럼 홍보하는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을 단속하겠다는 것이다.

일례로 ‘친환경’의 상징인 에코백도 그린워싱의 대표적 제품이다. 비닐봉지 대신 사용하는 황색 종이봉투도 마찬가지다.

2018년 덴마크에서 각종 포장 가방이 ‘친환경’이 되려면 몇 번을 재사용해야 하는지 살펴봤다. 조사 결과, 비닐봉지는 최소 37회, 종이봉투는 43회로 나타났다. 반면 면으로 된 가방은 최소 7100회는 사용해야 생산 시 발생한 오염을 회복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에코백이 비닐봉지보다 환경보호에 도움이 되려면 7천 번은 써야 한다는 것이다.

2020년 과학전문 매체 ‘사이언스데일리(ScienceDaily )’ 10월호에도 이와 비슷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종이봉투와 에코백을 만드는 데 쓰이는 물과 자원의 양이 비닐봉투를 만들 때보다 훨씬 많았다.

이처럼 기업들이 ‘친환경’ ‘ESG’ 등의 용어를 사용해 자사와 제품을 홍보하지만, 오히려 자원 낭비와 환경오염만 촉발하고 소비자와 투자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제기되자 지난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ESG 펀드에 대한 공시 요건을 강화해 그린워싱을 단속할 것을 제안했다.

영국과 싱가포르에서는 ESG 펀드에 대한 최소 기준을 마련하는 작업이 마무리 단계다. 국내 역시 공정거래위원회가 관련 기준 마련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ESG 투자 이끄는 블랙록, 저항에 자금 이탈

정부와 기업, 민간 투자자들도 ESG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ESG 투자를 견인해 온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지난해 ESG 운동을 반대하는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ESG를 비판하는 측에서는 ESG 운동이 기업을 주주의 이익보다 정치적 아젠다에 이끌리도록 만든다고 지적한다.

미국 오하이오주에 기반을 둔 자산운용회사 스트라이브 창업자들은 미국 3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 뱅가드, 스테이트스트리트가 투자 운용사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면서 ‘반(反)ESG ETF’로 불리는 펀드를 내놨다.

스트라이브는 지난해 8월 미국 에너지 산업에 투자하는 첫 상장지수펀드(ETF)인 ‘스트라이브 미국 에너지 ETF(Strive US Energy ETF)’를 출시해(티커·종목코드 DRLL) 3억 달러(약 3700억원) 이상의 자금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 주 정부도 잇따라 블랙록의 ESG 자금을 회수했다. 지난해 10월 미국 루이지애나주가 7억9400만 달러(약 9900억원) 규모의 투자 자금을 회수한 것을 시작으로 사우스캐롤리이나주, 유타주 등이 투자 자금을 회수했다. 이들 주 정부는 블랙록의 ESG 투자가 재무적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주 기금의 신의성실 의무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 같은 ESG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에도 전문가들은 ESG 채권이 계속해서 주요 투자 상품 중 하나일 것으로 내다봤다.

영국의 글로벌 금융 서비스 기업 바클리즈( Barclays)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ESG 채권 판매액은 4600억 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바클리즈의 ESG 채권 분석가 샬럿 에드워즈는 “기업이 탈탄소화를 실행함에 따라 녹색채권이 시장을 계속 지배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도 “그린워싱 리스크가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