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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APEC 회의에서 중국이 큰 기대를 건 ‘아시아 기초건설 투자은행 계획’은 여전히 정체 상태다. 게다가 멕시코 정부가 37억 달러 수주의 중국 기업 고속철 프로젝트를 철회함에 따라 여유 생산분의 수출이 주목표였던 중국판 마샬 플랜의 시작은 순조롭지 못했다. 공급과잉이라는 핵폭탄급 위협에 직면해 베이징 당국은 갖은 방법을 다해 곤경에서 벗어나야 하는 상황이다. 왜 중국판 마샬 플랜인가? 국내에 많은 여론은 중국판 마샬 플랜에 대해 언급할 때, 중국의 해외투자에 눈길을 돌렸다. 수출 생산 능력이라는 말은 언급했지만, 오히려 과잉 생산이라는 주요한 수식어는 일부러 생략하기도 했다. 우선 무엇을 마샬 플랜이라고 하는지 소개할 필요가 있다. 마샬 플랜의 정식명칭은 ‘유럽 부흥 계획(European Recovery Program)’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 각국은 전쟁의 타격을 입어 경제가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미국이 유럽 동맹국을 도와 경제를 회복시키고, 소련과 공산주의 세력이 유럽에서 한층 더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제시한 재건계획이다. 마샬 플랜은 1947년 7월 정식으로 출범되었고 4개 재정 연도 동안 지속되었다. 해당 기간 서유럽 미국을 포함한 각국으로부터 금융, 기술, 설비 등을 합친 총 130억 달러를 원조 받았고(2006년 환산 시 1300억 달러 수준), 이로써 전쟁 후 경제는 부흥할 수 있었다. 계획이 추진될 당시의 미국 국무장관 조지 마샬의 이름을 따 마샬 플랜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중국은 아시아 기초건설 투자 은행을 기획 건립을 핵심으로 한 ‘실크로드 경제구역’과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계획을 통해 해외 대량 수출을 기획하는 것을 두고 평론가들은 ‘중국판 마샬 플랜’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미국 마샬 플랜과 비교하자면 국제 환경이나 미국과 유럽 등의 관계, 미국의 유럽 원조에 대한 성질 등을 막론하고 두 사례는 차이점이 많다. 유일한 표면적 공통점은 수출 생산 능력(기술, 설비)뿐이다. 두 사례의 차이점에 관해 관심 있는 독자들은 통다환의 ‘중국 고속철 마샬 플랜’을 읽어보길 바란다. 해당 문장은 두 계획을 비교해 분석하고 있다. 필자가 본 문장에서 분석하고자 하는 것은 중국이 마샬 플랜을 필요로 하는 원인은 중국 대다수 산업이 모두 공급과잉 현상에 놓여 있고, 중국 경제의 정상적 운행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급과잉은 왜 위험한가 이른바 공급과잉이란 생산능력의 총계가 소비능력의 총계보다 큰 것을 말한다. 그해 미국은 주로 제조업 설비 쪽에 수출이 많았었다. 하지만 중국의 공급과잉은 주로 기초 인프라 시설(철도, 고속도로 등) 영역과 부동산업계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공급과잉은 중국 경제 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생산의 근원은 곧 ‘투자는 사회주의의 것, 수요는 자본주의의 것’이라고 개괄할 수 있다. 이른바 ‘투자는 사회주의의 것’이라는 말은 즉 투자 자금은 주로 정부 혹은 국유 상업은행의 자금에서 오는 것으로 투자 리스크는 결국 은행 대금회수불능으로 번져 대출자가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국유기업 사장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설령 민간 기업의 사장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수요는 자본주의의 것’이라는 말은 즉 생산 능력은 곧 시장의 수요로 이어져 만약 수요가 부족하면 공급과잉이 형성된다. 따라서 중국의 공급과잉은 두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 번째, 공급과잉은 정부가 관여해야 하는 경제의 필연적 산물이다. 중국 경제 성장은 흔히 정부의 경기 부양 정책과 관련이 있다. 중앙 정부가 경기 부양 정책을 출범시키면 각지에서는 반드시 각종 항목을 내놓아야 하고, 이러한 항목들은 결과적으로 심각한 공급과잉 현상을 불러온다. 중앙정부는 거시적 제어를 통해 일부 업계의 과도 성장을 억제하길 희망하지만, 공연히 헛수고만 해 공급과잉 현상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을뿐더러 새로운 공급과잉 현상까지 자아내고 있다. 2009년, 전인대 재경위는 연구 보고서를 통해 2005년부터 지금까지 19개 업계에서 각기 다른 정도의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났으며, 국무원 상무회의에서는 공급과잉 억제가 중요함을 인정했다. 하지만 지방정부가 GDP 성장률 증가를 정치 업적으로 연결하는 풍토를 따르면서 공급과잉을 억제 시킬 방법은 사라지고 말았다. 2013년이 되자 에너지 다소비 알루미늄 전해, 철강제조, 신흥산업의 태양광 발전과 풍력, 조선, 철강업, 규소강에는 업계가 공인하는 과잉공급 현상이 일어났다. 두 번째, 중앙정부의 제어 정책은 더 많은 공급과잉 현상을 야기했다. 중국 철강업계를 예로 들자면 최근 10여 년 동안 몇 차례 반복을 겪었지만 일부 지방은 항상 방법을 찾아 제어를 모면했다. 몇 년 전 정부가 철강업계 생산을 제한한 기준은 200m³ 이하의 용광로였다. 본래는 소형 제철소를 배제하려 했지만 많은 소형 제철소가 300m³, 500m³ 심지어 더 큰 용광로로 개조했다. 연후 정부가 기준을 300m³로 높이자 기업도 따라서 높게 개조했다. 이러한 정부 정책 기준에 맞추기 위해 개조하는 현상이 지속하자 결국 국내 철강업계의 실제 생산량을 더욱 늘어나게 했다. 최근 철강제조 업계 공급과잉 현상은 몇 년간 지속하여 왔고 중국 기업의 증산에 대한 바람은 여전히 충만한 상태다. 2013년 중국 철강업계에서 과잉 생산된 3억 톤은 EU 생산량의 2배이다. 중롄강망 통계에 따르면 2014년 중국 24곳 신규 증가 용광로가 투입되어 운행되었고 연 설계 생산 능력은 3500만 톤이다. 2013년 신규 증가 7000만 톤보다 절반이 줄었지만 시세가 낮아지는 상황 속에 생산 능력은 여전히 늘어나고 있다. 최근 2년 동안 부동산 투자가 감소하면서 부동산과 관련된 시멘트, 철강, 판유리, 알루미늄 합금 등 공급과잉 상태에 놓이지 않은 영역이 없다. 이뿐만 아니라 발개위가 하달한 문건에 따르면 코크스, 탄화칼슘, 메틸알코올 등 탄화업계와 다결정 실리콘, 비타민C, 풍력 설비 제조 등도 마찬가지다. 중국에서 이미 공급과잉이 없는 업계는 찾기 힘들며, 공급과잉은 중국 경제를 위협하는 핵폭탄이 되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왜 공급과잉을 억제하는 것이 이토록 힘든 것일까? 지방정부는 앞서 분석한 투자 체제성 문제 외에 두 가지 사항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첫 번째는 생산 능력 도태는 실업 여파를 일으켜 사회적 불안정을 가져오는데, 이는 정부가 출범시킨 사회 안정 목표에 어긋나는 일이다. 탕산시 철강업계에서 5년 이내 생산량 4000만 톤을 줄이게 되면 무려 10만 명의 실업자를 낳게 된다. 두 번째는 채무 위험이다. 현재 중국철강협회 회원 기업의 부채율은 70% 전후에 달하며, 대출 총액은 1조3000억 위안이다. 비회원 기업들의 채무 총액도 2조 위안 이상이다. 기업을 퇴출하면 적자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아시아 기초건설 투자 은행 계획 중국의 상황에서 보면 해외에 수출하기 위한 과잉 생산은 실행할만하다. 이는 시진핑이 부임한 이후 주변 국가들과 아시아 투자 은행을 기획 건립에 대해 담판한 것이 주요 동력이 되었다. 2013년, 시진핑은 인도네시아를 방문했을 당시 아시아 경제를 촉진하는 일체화 발전 과정을 제시했고, 중국이 동맹국을 포함한 국내 발전 중국 기초 인프라 건설 자금을 제공해 아시아 기초 건설 투자 은행 건립을 주장했었다. 중국에서 볼 때, 각국이 기초 시설 건설에 종사해야 하며 융자로 인해 일어나는 문제점들이 주된 장애물이었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아시아 지역에 기초 인프라 건설 수요에 8조 달러의 자금이 부족한 것으로 짐작했다. 거대한 수요에 중국이 공급자 측이 되기 위해 합의를 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홍콩 센트럴 점령 시위가 한 달 남짓 지속되고 있다. 시진핑이 홍콩에 “타협도 없고 출혈도 없다 ”라는 지침을 통보하면서, 홍콩 행정장관 렁춘잉(梁振英) 어쩔 수 없이 열기가 식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센트럴 점령 시위가 시작되자마자 베이징 당국은 이미 “시간은 점령자에게 있지 않다”는 기준을 산정해 놓고 있었다. 하지만 센트럴 점령 운동이 조직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다음 행동이 필요한 시점에 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홍콩 학생 북상 항의 실행 가능성 홍콩 학생들이 베이징 방문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결정에 대해 월스트리트는 “이 조치는 시위 활동의 한층 더 발전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평가했지만 필자는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홍콩 학생 및 상술의 월스트리트 기자의 중공의 본질에 대한 인식은 당연히 우리처럼 공산당 통치하에 장기간동안 생활하고 항쟁했던 사람만 못하다. 필자가 예상하기에 베이징 당국은 홍콩 학생들의 북상 시위에 아래와 같은 몇 가지 대응 방법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방법은 중공이 가장 사리가 밝은 부분이다. 학생들이 관문에서 전부 저지되는 등 근본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보면 실행 가능성이 가장 많고 중공이 원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두 번째 방법은 먼저 학생들이 북상에 성공하게 만든다. 전술상에서는 유적심입(誘敵沈入)이라 말할 수 있는데, 목적지에서 기다리다가 홍콩 학생들이 모여 표어를 들고 항의하게 만든 후 ‘행패를 부렸다는’ 죄명으로 체포하는 방법이다. 법률상으로 보면 홍콩 시민들이 중국에서 중국 법률을 적용하고, 중공은 홍콩에 가서 법을 집행해 체포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과거 많은 홍콩 시민들이 뤄후교 해관만 건너면 실종되곤 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면 그들은 체포된 것이었다. 이 같은 사례는 매우 많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세 번째 방법은 가장 번거롭지만 학생들을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이다. 홍콩 학생들이 현장에 도착해 기습 시위를 성공하게 둔 뒤 중국 정부 조직은 현장에서 ‘반 센트럴 점령’ 시위를 조장해 중국인들이 홍콩 센트럴 점령 시위에 대한 반감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다. 제3자 입장에서 베이징 정부가 민심을 날조한 것이라 차마 말하기 힘들 것이다. 때문에 중국에서는 센트럴 점령에 대해 이해하지는 못해도 확실히 반대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홈 그라운드 우세 포기하면 안 돼 홈 그라운드 우세를 포기하게 되면 맞이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말할 내용이 많다. 축구경기에서도 홈 어드밴티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경기에 참가하는 운동선수 소속 국가 혹은 도시에서 경기가 열릴게 되면 더 쉽게 승리할 수 있는 효과를 홈 어드밴티지라고 부른다. 홍콩 센트럴 점령이 이렇게 오래 지속되어 온 것은 홈 그라운드가 홍콩이기 때문에 홍콩인들간에 이견이 있더라도 홍콩 센트럴 점령 시위 참가자들은 어쨌든 모두가 같은 시민 사람들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다. 홍콩은 법치사회이므로 홍콩 정부가 관례를 벗어나면 법률과 제도로 처리한다. 폭력 행사, 후추가루 사용, 장내 정리, 체포 등과 같은 현상은 중국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홈 어드밴티지와 상반되는 것은 원정 경기이다. 원정 경기는 타지에서 온 참가 선수단은 홈 그라운드 선수단만 못하다. 홈 그라운드 선수에게는 승리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 주어지며 적어도 응원단 목소리 또한 상대편 팀 응원단보다 우렁차다. 홍콩 학생들은 젊다. 하지만 홈그라운드에서 홍콩 학생이 승리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에 있고 홍콩 법률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중공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원정 경기에 들어가면 고군분투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난 한달 여 동안 홍콩 홈 그라운드에서 베이징 당국은 홍콩에 반(反) 센트럴 점령 시위자들을 대거 파견해 센트럴 점령 시위자들과 대립시켰다. 홍콩 학생들의 고군분투가 중공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중국에서 이루어진다면 베이징 당국이 홈 그라운드 우세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위세가 드높은 반 센트럴 점령 시위대를 조직해 홍콩 학생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려 할지도 모르겠다. 사람 수로 봤을 때 홍콩 학생들이 북상하면 많아봤자 2천여 명일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규모가 큰 반 센트럴 점령 시위대를 조직한다면 그건 마른 땅에 말뚝 박기와 같이 수월한 일이다. 중국 정부는 몇 만 명을 동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반미, 반일 전국 도시 연합 시위를 겪은 중국인들은 당연히 중공 정부의 강한 동원 능력을 익히 알고 있다. 지속적인 항쟁은 자유로 가는 통행증 홍콩이 시위를 통해 민주화를 쟁취하기까지의 과정은 매우 고통스럽다는 것은 운명으로 정해져 있다. 국제적 사례를 살펴봐도 알 수 있다. 강권에 대한 항쟁은 줄곧 막중하고 어려운 것이었고 많은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중국의 80~90년대생 청년들은 이 역사를 이해하지 못한다. 간혹 현실에 부합되지 않은 희망을 가져 강권통치는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역사의 한 부분만 보자 소련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는 90년대 초 빠르게 와해되었다. 역사 전경을 보지 못했기에 공산당 정권이 무너지기 전에 이러한 국가의 인민들은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체코, 폴란드, 헝가리는 거의 소련으로부터 대포와 탱크를 이용해 사회주의 제도가 해당 국가에 적용되자 인민들은 반항을 멈추지 않았다. 예를 들어 헝가리 사건, 1956년 10월 폴란드 사건, 체코 프라하의 봄 등등 큰 사건들에 대해 사람들은 대략 알고 있겠지만 사실 그 외에도 더 많은 셀 수 없는 사건들이 있었다. 폴란드를 예로 들자면 1948년부터 사회주의 제도를 실행하고 소련 스탈린의 형식을 도입해 해당국 자원 및 인력 관리 문제가 나타나 지속적인 정치 항쟁이 일어났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구매력을 기준으로 추산한 2014년 중국 국내총생산(GDP)이 17조 6000억 달러로 17조 4000억 달러인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전 세계 중국 전문가들은 비논리적인 평가라고 일제히 논평했다. 한 언론은 ‘세계 경제 1위 중국, 1인당 GDP 미국과 50년 격차’라는 기사를 통해 여론을 바로잡으려 나섰다. 중국이 세계 1위? 해외 평론과 중국의 반박을 비교해보면 대략의 전개는 모두 올해 4~5월 사이에 세계은행이 유사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비롯됐다, 세계은행과 IMF가 사용한 통계 출처는 모두 중국 정부가 제공한 것이며 분석방법이나 결과도 역시 마찬가지다. 올해 4월 30일, 세계은행은 중국이 2014년 세계 1위 경제 대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중국은 넘버원(No.1)이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거절했다. 필자가 이전에 ‘중국은 왜 GDP 세계 1위를 거절하는가’라는 문장을 통해 구매력 평가 산정 방식에 결함이 있음을 지적한 바 있고, 세계은행 및 IMF가 근거로 제시한 통계 수치가 모두 중국이 제공한 조작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중국이 통계를 조작하는 것은 고질적인 문제라는 점도 분명히 밝혔다. 따라서 본 문장에서는 더 이상 같은 문제를 반복하지 않겠다. 자료의 진실성과 해외 학자들의 설명으로 더 이상 이 문제는 말할 필요도 없다. 서양의 중국 연구진들은 초보적인 인식을 가지고 이에 대해 몇 년에 한 번씩 언급하곤 했다. 9월 27일 월스트리트저널에 게재된 ‘서양이 중국에게 가지는 오독(誤讀, 틀리게 읽음)'은 비록 원동경제평론 4월호에 발표된 ‘중국 학자는 모두 매수됐나?’만큼 내용이 깊지는 않지만 다른 각도에서 해당 연구영역의 문제점을 찾아 분석했다. 중국이 No.1이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거절한 것은 자신의 결점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본국에서 통계 수치를 거짓으로 꾸며내는 일은 이미 고질적인 문제가 되어버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사실 GDP가 나타내는 경제규모는 실제 경제상황과는 차이가 있다. 첫째, GDP 전체 총량은 크지만 1인당 GDP는 높지 않다. 둘째, 빈부 격차가 매우 커 가정 소비 패턴이 양극화 되었고 내수가 부진하다. 내수는 곧 국가 경제발전을 촉진하는 주요 동력이다. 셋째, 한 국가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지탱하는 주요 기반은 자원인데 중국의 자원 수요는 과도하게 외부에만 의존하고 있다. 심각한 빈부격차 2013년, 세계에서 GDP 총량이 1조 달러를 넘긴 국가는 모두 16개로 미국은 16조 1900억 달러로 전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은 9조 달러를 기록하며 2위를 차지했다. 3위는 5조 9900억 달러를 기록한 일본이었다. 하지만 1인당 GDP로 비교해보면 미국은 51248달러로 11위, 중국은 6629달러로 86위에 머물렀다. 이와 같이 GDP 총량만으로 중국 경제의 부강함을 증명하기는 무리가 있다. 1인당 GDP 또한 대다수 중국인들이 이에 상응하는 수입 수준을 가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중국의 빈부격차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올해 7월, 베이징대 사회과학 조사센터에서 발표한 ‘중국 민생발전 보고 2014’에 따르면 2012년 중국 가정 순재산 지니 계수는 0.73에 달했으며, 상위 1%의 가정이 중국 전체 부의 1/3 이상을 차지하는 반면 하위 25%의 가정이 보유한 자산 총량은 겨우 1% 전후에 머물렀다. 기타 통계 수치 또한 중국의 부가 과도하게 한 곳에만 집중되어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스위스 자산 정보업체 웰스 X(Wealth X)와 스위스 연방은행 UBS의 ‘2014년 전 세계 억만장자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순자산이 10억 달러가 넘는 중국 부자는 총 152명으로 세계 2위를 차지해 미국 다음으로 많았다. 하지만 현실은 잔혹하다. 전 세계 부호 순위는 2위를 차지한 반면, 1일 평균 소비가 1달러에 못 미치는 가난뱅이는 2억 명, 또 1일 평균 소비가 2달러보다 낮은 인구는 무려 4억 6800만 명에 달했다. 허약한 내수시장 사람들은 베이징대학교 보고서에 공개된 지니계수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해당 보고서의 또 다른 부분에 관심을 기울여 중국 가정의 소비 패턴이 양극화를 나타내고 있음을 분석했다. 중국 가정 소비 패턴은 총 5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가난질병형, 개미형, 달팽이형, 온당형, 향락형이다. 소비수준은 낮지만 소비를 억제하는 가정(개미형) 혹은 의료, 교육, 주거 부담이 큰 가정(달팽이형, 가난질병형) 패턴이 전국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질적으로 풍족한 가정은 극히 적었다. 농촌에는 가난질병형 가정이 비교적 많은 반면 온당형과 향락형 가정은 적었다. 도시에는 가난질병형 가정은 비교적 적은 반면 향락형, 온당형 가정이 농촌보다 훨씬 많았다. 그 동안 중국경제는 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해 외국무역, 투자, 내수 이 삼두마차에 의존해왔다. 그결과, 중국은 세계 시장에서 지위를 잃고, 외국무역에도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 간혹 회복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장기적으로 하락 추세로 나타나고 있다. 투자 유형에는 정부투자(국유기업 포함), 개인투자, 외국자본 세 가지가 포함된다. 현재 정부투자는 통제 상황에 놓여있고 중국을 겨냥한 해외 투자율은 하락했다. 부자들의 신용카드 이용, 경외투자 명목으로 자본을 유동시키고 개인의 외화로 바꿀 수 있는 규정된 액수 제한은 유명무실하다. 계속되는 자금 유출에 7월경 결국 중국 정부가 돈세탁 반대 정책을 내놓는데 이르렀다. 삼두마차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내수는 장기적으로 존재하는 중국 소비율 저조 현상이다. 정부측 통계에 근거하면 최근 몇 년 동안 소비율이 중국 GDP의 48%를 차지했다. 이는 소비율이 GDP의 80%를 차지하는 세계 평균치와는 거리가 먼데다가, 심지어 중국 20년 전 수치인 60% 수준보다 낮았다. 2013년, 국내 한 연구자는 중국 소비율이 낮은 이유는 거주 소비율이 포함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라며 거주소비에는 임대료, 인테리어 보수비용, 광열수도비 등이 포함하고 있어 큰 수치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거주소비가 소비율에 포함됐는지 안됐는지의 여부를 떠나 중국 가정 소비 패턴 양극화의 현실을 바꾸기 힘든 것은 물론 내수를 촉진시키는 것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어떠한 시장이라도 경제력을 부호들에게만 의지하고 있다면 더 이상의 발전 가능성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 부동산 시장이 관료들과 부호들에 의해 지탱된다면 중국인들의 실제 소비 능력과 수요를 완전히 벗어나 결국 큰 경제 버블을 일으키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한 국가의 생산과 분배는 마치 자동차의 앞뒤바퀴처럼 생산이 공급량을 결정하고 분배가 수요량을 결정한다. 공급이 많고 수요가 적으면 오로지 앞바퀴만 돌아가 자동차는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이로써 유추하자면 사회 분배가 불공평한 국가에서 각종 사회모순이 격렬히 충돌한다면 경제 번영은 오래 유지되지 못한다. ...국제사회는 1989년 ‘6.4’ 이후 중공정부를 정치적으로 진정 신뢰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난 30여 년간 지속된 중국의 경제성장은 국제투자자들에게 많은 믿음을 줬고 중국경제가 장기간 번영할 것으로 믿게 했다. 하지만 최근 국제사회의 이런 의심은 경제영역에까지 확산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과거 중국경제발전을 가장 잘 설명한다고 믿어왔던 GDP와 성장속도마저도 이런 의심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리커창마저 불신하는 GDP통계 이런 의심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차기 국무원 총리로 내정된 리커창마저 자국의 GDP통계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선 이 일의 전후맥락을 살펴보도록 하자. 2010년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베이징주재 미국 대사관이 ‘07BEIJING1760’이라 칭한 비밀전문에 따르면 2007년 3월 12일 베이징 양회에 참가하러 온 당시 랴오닝성 서기 리커창이 미국 대사관저를 찾아와 대사관 직원들과 만찬을 한 적이 있다. 리커창은 랴오닝의 경제상황을 설명하면서 중국의 GDP수치는 조작된 것으로 믿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랴오닝 경제를 평가할 때 3가지 데이터를 중시한다고 했다. 첫째는 전력소모량, 둘째는 철도운송량, 셋째는 대출금액이다. 이 세 가지 데이터를 통해 상대적으로 정확한 경제성장률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웃으면서 “다른 모든 데이터들 특히 GDP 통계는 단지 참고만 할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중국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지금 리커창이 18대 이후 국무원 총리가 될 것으로 보는 많은 외신들은 그에게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다. 즉 리커창이 총리가 되면 이런 불신은 어느 정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이다. 리커창이 전력소모를 중시한 이유는 리커창이 전력소모량 등의 데이터를 중시하게 된 이유는 2002년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에 보도된 중국 통계데이터 조작에 관한 문장 때문이다. 당시 논쟁을 유발한 인물은 미국 피츠버그대학 경제학과의 토머스 로스키 교수로 2001년 ‘중국 GDP통계에 무슨 일이 있는가?’라는 문장을 발표했다. 로스키 교수는 이 문장에서 중국의 에너지소비, 교통운송과 건축자재 등의 생산량을 통해 추론할 때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중국 GDP의 실제 성장률은 관방에서 발표한 것보다 절반 내지는 그 이상 낮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글은 영국의 파이낸션타임스, 이코노미스트는 물론이고 미국의 뉴스위크, 비즈니스위크 등에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학계뿐만 아니라 국내외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또 중국 국내에서도 널리 인용 보도돼 수년간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중국정부는 통계자료의 부실과 불투명으로 내외적으로 지탄을 받았으며 통계제도의 개혁에 대한 요구가 높았다. 개혁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만약 통계제도가 개혁돼 국제수준에 근접한다면 정책 결정비를 절약할 수 있고 외국 기업인들의 신뢰를 얻어 보다 많은 외국투자를 이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중국 국가통계국의 리더수이(李德水)국장과 다른 직원들도 이 논쟁에 참가했는데 이들은 허위 보고된 수치가 총액의 약 20%에 달한다고 인정했다. 가령 2004년을 예로 든다면 허위보고가 총액의 19.47%였다. 이들 정부관원들조차 한 가지 사실을 인정했는데 바로 중국 각 지방에서 보고하는 GDP 수치는 모두 정치적인 고려를 거친 것으로 결코 중앙정부에서 목표로 정한 경제성장률보다 낮은 수치가 나올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지방정부에서 중앙에 보고하는 GDP성장률에 상관없이 국가통계국은 전체적으로 평균 20% 정도는 과장된 것으로 본다. 끊임없이 향상되는 조작기술 2002년 외국 학자에 의해 시작된 논쟁을 거친 후 중국은 GDP를 조작하려면 전력사용량이나 에너지소비량 등을 세트로 맞춰야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리커창은 학습능력이 뛰어난 인물로 과거 이런 논쟁이 있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리커창이 자신은 전력소모량, 철도운송량, 은행대출만을 믿는다고 밝혔을 당시에도 이미 이들 분야의 조작도 같이 시작됐다. 은행대출 용도의 조작은 중국의 오랜 관습이다. 최근 수년간 저장성 일대의 민간기업들은 은행대출을 받을 때 생산자금 등의 명목으로 대출을 받지만 실제로는 부동산에 투자했다. 2011년 부동산이 전면적으로 하락한 후 이들 기업은 더 이상 은행대출을 받지 못하자 도주하거나 일부는 자살을 선택했다. 도피한 기업인들 중에서 원저우 상인이 특히 많았다. 그러므로 중국에서 은행대출은 더 이상 경제발전 상황을 추산하는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 전력사용량도 믿기 어려워 문제는 중국에서는 어떤 일이든 모두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GDP데이터가 조작될 수 있다면 전력사용량 데이터도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다. 우선 전력데이터에는 두 가지 다른 지표가 있는데 바로 발전량과 전기사용량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두 지표가 따로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방정부는 전력데이터를 조작할 충분한 동기가 많이 존재한다. 때로는 과장하거나 때로는 일부러 축소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전력데이터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지난 7월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 발전소 직원이 발전용량 수치를 키워서 보고하도록 상부로부터 요구받았다고 한다. 다시 말해 지방 및 성(省) 1급 정부에서 발전소 측에 중앙에 경제상황을 사실대로 보고하지 말도록 요구했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부정적인 경제데이터’를 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발전소 측에 ‘마이너스 성장’을 ‘제로 성장’으로 보고하도록 요구했다. 일찍이 21세기 초 중국경제에서는 이미 ‘경기하강’이란 단어를 폐기했다. 즉 ‘마이너스 성장’으로 ‘경기하강’을 대신하고 ‘제로성장’으로 ‘정체’를 대체했다. ...최근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 변화가 있었다. 얼마 전 역사박물관 앞에 세워졌던 9.5m의 공자(孔子) 동상이 갑자기 실종(失踪)된 것이다. 다른 실종자들의 상황과 유사하게 중공 당국은 공자의 실종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한 기자가 이리저리 파헤쳐보니 돌아온 대답은 보수를 위해 옮겼다는 결론 뿐이었다. 중국에서 부실공사가 널리 퍼져 있기는 하지만 불과 3월에 세운 공자의 동상에 보수가 필요하다는 것은 뭔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당국의 말을 그대로 빋지 않고 정치적인 각도에서 공자의 실종을 바라본다. 베이징의 저명한 문화인사 톄류(鐵流)는 이에 대해 "중국에서는 역대로 천하를 뒤엎을 때 공자를 억누르고 천하를 잡고 나면 공자를 존중해왔는데 중공의 상황 역시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공자를 비판하고 훼손하며 억누르다가 최근에 들어와 민중들에게 ‘군위신강(君爲臣綱:신하는 임금을 섬기는 것이 기본)’이 필요하자 특별히 공자를 공경하는 풍조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공자가 천안문에 정착한 것은 중공이 조화로운 중용(中庸)의 도(道)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낸다. 물론 공자 동상이 실종된 후 중공은 새로운 선전 수단이 필요할 것이다. 중국공산당의 통치는 일종의 범(汎)정치화된 통치다. 다시 말해 그 어떤 이름, 말, 표어, 인물이든 모두 극히 정치적인 함의를 지니게 된다. 이 가운데 중국 민중들이 겪어야 했던 온갖 고초를 외부인들은 이해하기가 아주 어렵다. 필자와 비슷한 연령대의 중국인들은 변화무쌍한 정치 풍파를 겪어야 했으니 기타 역사인물이나 철학유파는 말할 나위도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가소로웠던 것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그린 동화책을 우연히 봤다는 이유로 차이코프스키에게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지금 사람들이 들으며 아마 동화보다 더 동화 같은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필자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동화는 사실 지금의 중국과 큰 차이가 없다. 때문에 공자 동상이 천안문광장에서 사라진 것을 어떤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정치적인 원인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정치적으로’ 아주 정확히 태도를 표시한 것이다. 얼마 전 공청단파 인물로 간주되는 중공중앙정치국 위원이자 중앙서기처 서기, 중앙조직부 부장 리위안차오(李源潮)가 충칭(重慶)을 방문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는 충칭 당서기 보시라이(薄熙來)의 창홍타흑(唱紅打黑: 공산주의 이념을 중시하고 흑사회를 타도한다는 의미) 정책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충칭일보(重慶日報)’의 보도에 따르면 리위안차오는 이 정책이 “중국과학발전이 직면한 난제(難題)를 타파하는데 새로운 사고와 경험을 제공해주었다”고 인정했다. 만약 기자가 잘못 보도한 것이 아니라면 리위안차오는 공청단파 인물 중 이번 정책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최초의 인물이자 중공 고위층 인사 중에서 태도를 표시한 아홉 번째 인사가 된다. 충칭은 보시라이의 주도하에 최근 적지 않은 소위 ‘개혁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이데올로기 방면에서 전면적으로 좌경화 된 것이다. '홍가(紅歌 공산당 찬양노래)'를 부르는 것은 다만 겉으로 드러난 표현일 뿐이다. 가령 최근에 있었던 '리장(李莊) 사건'은 비록 충칭검찰이 마지막에 소를 취하하긴 했지만 전반적인 조사와 수색 및 기소과정에서 분명하게 법률의 명문(明文)규정을 따르지 않았다. 또한 충칭당국은 거짓 민의(民意)를 동원해 ‘민중(民衆 사실은 동원된 사람들)’시위로 당국을 지지하도록 꾸몄으며 각종 여론선전도구를 총 동원해 이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는 전면적인 선전을 진행했다. 이는 문화혁명 이전 중공의 풍격과 흡사하다. 때문에 리위안차오가 “새로운 사고와 경험을 제공해주었다”고 한 말은 사실 과거 중공의 낡은 사고와 경험이 끝났다는 뜻이다.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앞으로 수 년 간 중공의 정책방향이 전면적으로 좌경화되어 자신들에게 익숙하고 또 쉽게 실시할 수 있는 사상통제로 되돌아가고 의견이 다른 인사들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 지난 20년 간 중공은 이데올로기 방면에서 도처에서 땜질식 처방을 써왔다. 전통문화를 빌리는 것 역시 그중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때문에 과거 수년 간 중공은 세계 곳곳에 공자학원을 설립하고 황제(黃帝)의 묘에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이번에 공자의 동상이 천안문광장에서 실종된 것은 중공이 이미 과거의 옛길로 되돌아 갈 것을 결정했고 이 때문에 공산이데올로기 이외의 다른 방법들은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자에 대해 말하자면 이는 오히려 좋은 일일지 모른다. 공자는 일찍이 “나라에 도(道)가 없는데 부귀하다면 오히려 수치가 된다”고 말했다. 지금 천하는 인(仁)이 얇고 의(義)가 적으니 귀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좋다. 어쩌면 여기에는 우리가 모르는 보다 깊은 의미가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편집자 주 리장(李莊) 사건: 보시라이가 추진하는 소위 창홍타흑(唱紅打黑) 정책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베이징의 변호사 리장이 당국의 압력에 굴하지 않자 충칭당국은 그에게 강간과 매춘혐의를 뒤집어 씌워 탄압을 시도했다. 즉 창홍타흑의 핵심이 공산당 일당전제(一黨專制)를 강화하고 이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을 불법적으로 탄압하려는 의도임을 알 수 있는 사건이다.중국의 GDP가 일본을 넘어섰다. 비록 중국 공산당이 50여 년 전 대약진 운동을 전개하면서 영국을 따라잡고 미국을 추월하자고 제안할 때 일본은 안중에도 없었지만, 반세기에 걸친 노력을 거쳐 중국은 마침내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이 됐다. 이는 또 많은 중국인들을 기쁘게 했다. 하지만 이 ‘GDP 세계 2위’는 많은 중국인들을 곤혹스럽게도 한다. 보통 사람들의 생활은 달라진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GDP란 무엇일까? 바로 국내총생산을 가리키는데 즉, 한 나라 국내경제활동의 총합이다. 사실 GDP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은 경제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정부 입장에서 본다면 GDP는 단지 세수(稅收) 체계로 들어와 화폐로 평가할 수 있는 경제활동일 뿐이다. 전에 이런 우스갯 소리가 있었다. 대학원생 두 명이 숲속을 걷다 우연히 개똥더미를 발견했다. 갑(甲)이 을(乙)에게 “만약 당신이 개똥을 먹는다면 5천만 위안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자 을은 주저하지 않고 개똥을 먹어치웠다. 갑이 후회막급해할 때 을이 또 다른 개똥더미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만약 저 개똥을 다 먹어치운다면 역시 5천만 위안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갑 역시 재빨리 개똥을 먹어버렸다. 두 사람이 학교로 돌아와 교수에게 이 일을 말하자 교수는 두 사람을 축하했다. 왜냐하면 방금 그들이 ‘국가 GDP를 1억 위안이나 증가시켰기’ 때문이다. 사실 이론적으로 보자면 두 사람이 각자 5천만 위안을 세금으로 납부하지 않는다면 GDP 는 늘지 않는다. 2년 전쯤 필자는 한 경제학교수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피라미드를 수리해도 GDP를 크게 증가시킬 수 있지만 국민경제에는 오히려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어떤 경제실체든 화폐경제활동과 비(非)화폐경제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중국 농촌에서는 식량과 채소를 자급자족했기 때문에 예전에는 GDP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10년 간 중국 각지 정부가 ‘GDP 광란’에 돌입하면서 현지 GDP로 잡아 계산한다. 어느 할머니가 키우는 닭이 계란을 낳아도 중국경제규모에 50전의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현지 정부에서 이 계란에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할머니 자신이 계란을 먹기 때문에 GDP로 잡을 수 없다. 중국경제가 개혁개방되는 과정에서 이런 부분들이 상당히 많다. 의료, 교육, 부동산을 예로 들면 과거 중국에 이런 활동들이 없던 것이 아니다. 단지 ‘개혁’을 거친 후 이들 항목들이 비로소 화폐가치로 평가되기 시작했고 드디어 중국 GDP의 주요부분이 된 것이다. 화폐경제와 비화폐경제의 상호 전환은 상업 활동에 확실히 중요한 요인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슈퍼마켓에는 고객이 구매한 물품을 스스로 계산하는 셀프카운터가 많이 설치돼 있다. 고객은 자신이 구입한 물품의 목록을 기입하고 신용카드로 계산한다. 슈퍼 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화폐경제활동이 비화폐경제활동으로 전환된 것이다. 왜냐하면 본래 상점에서 점원을 고용해 하던 일을 지금은 고객이 직접 하기 때문이다(대신 주인은 인건비를 지불하지 않는다). 이는 상점의 지출을 줄이기 때문에 GDP를 감소시키지만 상점의 이윤은 오히려 는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기업(외자기업을 포함)은 모두 정반대 과정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본래 기계로 하던 일을 중국에서는 사람을 고용해 한다. 한 친구가 중국의 어느 기업에 기술을 혁신해 자동화기기를 사용하면 효율이 높아진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기업 책임자는 자동화 설비에 투자할 자금이면 10년 동안 백 명을 고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연히 이 설비투자는 이뤄지지 않았다. 경제의 화폐화 정도는 사회의 분업화 정도로 간단히 알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중국은 전 세계에서 비교 대상이 없다. 그 어떤 국가에서도 전문적으로 귀를 후비거나 발을 씻고 등을 마사지하는 직업은 찾을 수 없다. 이는 중국 도시경제의 화폐화가 지나치다는 것을 설명한다. 하지만 겉으로는 도리어 중국 경제활동의 이윤이 지나치게 집중되고 인건비가 지나치게 저렴한 것으로 설명된다. 한걸음 더 나아가 분석하면 중국 부자와 권력자들이 시장과 자원을 지나치게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2천년 동안 전쟁이 끝나고 30~50년이 지나면 중국은 반드시 세계 1위 혹은 2위의 경제규모를 이뤘다. 왕조의 말기에 이르면 극히 세분화된 분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 후 왕조가 교체되고 사회가 혼란해지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중국은 여태껏 이런 테두리를 벗어난 적이 없다. 21세기 중국의 미래가 보다 낙관적일지는 독자마다 견해가 있을 것이다.1990년대 미국 펜타곤에서 분석한 전 세계 6대 분쟁지역 중 3곳이 중국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바로 대만해협, 한반도 및 남중국해(사진)가 그것이다. 최근 들어 남중국해(南中國海)가 점차 이슈로 부각되고 있고 심지어 장차 가장 첨예한 국제분쟁지역으로 발전할 가능성까지 보인다. 올해 초 중국측은 중국을 방문한 미국 관리들에게 남중국해는 티베트, 신장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핵심 이익(核心利益)’에 속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 측은 이에 대해 아무 반응도 없었다. 왜냐하면 미국인들에게 있어 남중국해는 마찬가지로 미국의 ‘핵심 이익’에 관계되기 때문이다. 우선 이 지역이 중국의 ‘핵심 이익’임을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중국에서 제작된 지도를 펼쳐보면 중국은 남중국해를 모두 자국 영해로 포함시켜 놓았다. 이 중에는 도서(島嶼), 암초, 개펄, 모래사장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미국의 핵심이익 역시 마찬가지로 실제적인데 그들이 강조하는 것은 선박운행의 자유이다. 남중국해는 서태평양에서 중동으로 건너가는 가장 가까운 길이다. 만약 미 태평양함대가 이 지역을 우회해 중동으로 가려면 한 달 이상의 노정이 필요하다. 중국 관방의 자료에 따르면 남중국해는 세계 제3대 연해(緣海)로 면적이 광활하며 300여만 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드넓은 해역이다. 이 사이에는 수천에 달하는 섬, 암초, 개펄, 모래사장 등이 놓여 있다. 위도가 낮은 곳은 열대와 아열대 지역에 속하며 풍부한 수산자원과 심해(深海) 생물자원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보다 중요한 것은 해저에 상당한 양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다. 초보적인 계산에 따르면 석유 매장량이 200억 톤에 달한다. 때문에 이곳을 ‘제2의 페르시아 만’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풍부한 자연자원을 지닌 것을 감안할 때 남중국해의 전략적 중요성은 더욱 무시할 수 없다. 한편 남중국해 주변의 동남아 국가들은 모두 남해도서에 대한 일부 또는 전부의 주권을 요구한다. 앞서 서술한 이유 때문에 이 지역의 주권을 차지하려는 각국의 추동력은 더욱 절실해졌다. 중국이 남중국해의 주권을 주장하는 근거는 주로 이곳 도서를 최초로 발견하고 명명하고 개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중국은 해군력이 부족하고 제해권(制海權)이 미약하기 때문에 일부 개별적인 도서에 대한 주권만 확보할 수 있을 뿐이다. 설사 중국이 모든 남사군도에 대해 논쟁의 여지없는 주권을 갖고 있다 해도 여전히 도서 사이에 존재하는 해역에 대해서는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유엔 해양조약에 따르면 한 나라의 영해(領海)는 해안에서 12해리까지만 인정된다. 배타적인 경제수역조차 200해리를 넘지 못한다. 때문에 남중국해 해역 중에 있는 흩어진 도서에 대한 주권 및 모든 해역에 대한 주권은 국제법상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또 도서 사이(200해리 초과) 해역은 국제법상 공해(公海)이기 때문에 그 어떤 선박이든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다. 미국, 일본, 한국 입장에서는 자유로운 항해권이 주권이나 해저자원보다 더욱 중요하다. 왜냐하면 일본과 한국의 경우 석유 및 기타 자원 수입의 80%가 이 지역을 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중국해 문제의 복잡성은 이보다는 주변 각국들의 영토 분쟁에 달려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 해역을 중국의 핵심 문제로 정하자 이들 국가들은 단지 연합해서 대항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미국, 일본 등과 이익공동체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 군사전문가들에 따르면 중국의 능력으로는 이런 연합체에 대해 앞으로 50년 이내에는 대항할 수 없다고 한다. 국제정치에서 핵심 이익의 의미는 절대적으로 양보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대해 ‘핵심 이익’을 표시한 후 곧장 직면한 것은 아주 현실적인 문제였다. 바로 어떻게 이 ‘핵심 이익’을 실현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필자가 보기에 중국이 남중국해에 대한 이익을 표현한 것은 상당부분 일종의 태도표시에 불과하다. 중국은 과거뿐만 아니라 지금도 이 해역을 진정하게 통제할 능력이 없다. 또 가까운 장래에도 실제적인 군사행동을 통해 남중국해의 주권을 차지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하지만 이런 태도표시는 동남아 각국에 깊은 우려를 자아내 중국의 근린(近?)외교를 아주 난처하게 만들었다.현재 상영되는 영화 중 최고의 화제작을 꼽으라면 ‘아바타’를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집계에 따르면 아바타는 1월 2일 중국에 상륙한 이래 23일까지 이미 7억 3천만 위안의 수입을 올렸고 사상 최초로 10억 위안을 돌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아바타에 대한 열기가 뜨거워지고 긍정적인 평가가 줄을 잇는 가운데 지난 1월 19일 중공 당국의 탄압 소식이 전해졌다. 중국 극장업계의 지적에 따르면 중공 당국이 ‘공자(孔子 저우룬파 주연의 대형 중국 영화)’의 흥행을 돕기 위해 전국적으로 아바타 2D 상영을 취소하고 비교적 스크린이 적은 3D에서만 상영하도록 요구했다는 것이다. 중공 관방은 겉으로는 탄압이 아니라 시장논리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적지 않은 2D 극장에서 당국의 방침에 ‘항명’하고 있고 아바타 표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을 보면 이런 설명은 분명 근거가 희박하다. 그렇다면 중공은 왜 아바타를 탄압하는가? 첫째, 많은 누리꾼들과 인터넷 평론에서 분석한 것처럼 아바타의 내용이 중국 민중들에게 중국 사회의 불공정한 현황을 연상케 한다. 가령 정부에 땅을 뺏기고 무장경찰의 폭력 진압을 당하는 철거민들의 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영화에 나오는 몇몇 장면들은 중국사회의 현실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중공 당국이 우려하는 것은 지금도 매일 평균 246건의 민중항쟁이 발생하는 현실에서, 아바타를 관람한 많은 관중들이 일종의 강력한 집단 정서를 형성해 폭발적인 저항을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둘째, 아바타에는 판도라 행성의 여러 부족들이 서로 연락하고 집결해 자신들의 고향을 지키기 위해 외부의 ‘사악한 세력’(여기서는 지구인들이야말로 진정한 외계의 침략자이다)을 몰아내는 장면이 나온다. 판도라 행성 사람들이 하나로 뭉쳐 강력한 저항세력을 만들고 떨쳐 일어나 외부침략자들과 맞선다. 중공 정권은 본질상 60년간 신주(神州)대지를 절취한 ‘서양유령’이다. 때문에 중공은 장기간 거짓, 폭력, 공포통치를 받아온 중국 민중들에게 아바타가 ‘집단 계몽’을 통해 지혜가 열리고 언젠가 영화에서처럼 강력한 힘을 길러 중공 폭정에 대항할까 두려워한다. 셋째, 중공이 ‘무신론(無神論)’을 고취하는 목적은 민중들이 공산당보다 더 높은 진리나 신성한 힘이 존재하지 않음을 믿게 하여 쉽게 사상을 통제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아바타에서 순진하고 낭만적인 나비족은 하늘을 공경하고 신을 믿으며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자연법칙을 중시한다. 이는 중국 고대의 선인들과 상당히 흡사하다. 때문에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 선진적인 물질조건, 기술, 무기는 없을지라도 순수한 영혼으로 신을 공경한다. 이에 나비족은 비할 바 없이 강력한 후원자를 얻었으니 그것은 바로 신의 힘이다. 결국 판도라의 신(에이와)은 행성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마음을 바르게 하고 사악에 대항해 자신의 고향과 신성한 땅을 지키려 하는 것을 보고 행성의 각종 생명들을 보내 협력하고 그들을 도와 ‘지구인’들을 격퇴하게 한다. 지구인은 원래 복잡하고 무거운 기계를 통해서만 자신의 정신을 아바타 속에 주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의 말미에서 에이와의 힘에 의해 주인공 제이크의 생명은 한순간에 아바타 속에 들어가 영원히 그들과 한 무리가 되었다. 아바타의 이런 줄거리는 영화의 안과 밖에서 보다 사람보다 높은 ‘신’과 ‘천도(天道)’가 우주 중의 만사만물을 지켜보며 통제하고 균형을 잡고 있음을 암시한다. 마음이 바르지 못하고 하늘의 뜻을 거스르며 신을 비방하는 사람이나 혹은 조직은 설사 아무리 좋은 무기가 있고 아무리 선진적인 기술을 지녔을지라도 결국 신을 이길 수는 없다. 중공은 현재 정권이 붕괴되고 경제적 기반이 상실될 위기에 처해 있다. 만약 사람들이 아바타를 통해 진일보로 신의 존재를 깨닫고 신의 도움을 믿고 사악을 제거한다면 중공의 폭정이 끝날 날도 그리 머지않을 것이다.포성 없는 전쟁 ‘공자학원’ 중공 관방 통계에 따르면, 2009년 10월까지 이미 87개 국가에 282개의 공자학원과 272개의 공자학당이 설립됐다. 중공 관방매체 런민왕은 “해외 공자학원에서 모두 베이징 공자학원 본부에서 제공하는 수업방식, 교과과정 등을 주교재로 사용해 통일적인 교육과정을 따르고 있다”고 밝혔다. 중공의 감시와 통제를 받는 공자학원의 교재가 해외 각지 중국어 학교에서 광범위하게 채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중국어 교사로 있는 야오저(堯哲)씨에 따르면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공자학원의 교재를 직접 사용하고 있다. 중공이 중국어 학교라는 명분으로 사용하는 교재의 내용에 ‘공산당을 사랑하는 것이 애국’이라는 전제주의 문화와 민족주의를 고취시키고 있다. 미국 전역에서 간체자 교재를 가르치는 거의 모든 중국어 학교에서 이런 교재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 교재가 배우는 사람들을 세뇌시키기 때문에 ‘소프트 냉전’이자 ‘포성 없는 전쟁’이라고 표현했다. 이외에도 해외 공자학원은 중공의 해외정보기관 역할을 하고 있다. 2년 전 미국 국토안전국 전임 국장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스파이로 활동하는 중국어 교사를 대량 검거해야한다”고 할 정도였다. ‘공자’는 슬프다 지난 2500여 년 동안 중국은 유교문화가 근본이었다. 노나라 애공(哀公)이 공자의 묘를 세우고 제사를 지낸 이래 한 고조 유방은 유가의 예절을 채용해 조정의 예의범절을 만들었다. 한 무제는 제자백가 중에서 오직 유가만을 존중했고, 당태종은 공자를 문선왕(文宣王)으로 추증했다. 청나라 강희제에 이르러서는 황제가 직접 ‘만세사표(萬世師表)’라는 현판을 써서 공자묘에 걸게 했다. 이처럼 중국 역대 왕조를 거치며 공자는 늘 추서되거나 제사를 지내는 대상이었으며 심지어 몽골족이 지배했던 원나라 때도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으로 추대됐다. 공자의 영향은 일찍이 국경을 넘어 일본, 한국, 월남 등 아시아 국가에 유가 사상의 깊은 영향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서양의 유명한 계몽철학가 볼테르조차 공자를 스승으로 삼았다. 하지만 중공 정권은 공자를 반대하며 일어섰다. 일찍이 중국 공산당이 건립되기 전인 1919년, 천두슈(陳獨秀: 나중에 중공 최초의 총서기가 됨)는 잡지 신청년에 ‘민주를 옹호한다면 공자교에 반대하지 않을 수 없다’는 문장을 발표했다. 문화혁명이 발발한 후 중공은 ‘공자점 타도’ 운동을 일으켰다. 나중에는 마오쩌둥이 직접 나서 ‘공자비판운동’을 일으켰다. 일찍이 ‘문(文), 행(行), 충(忠), 신(信)’을 강조했던 공자는 중공에 의해 “일체 낡은 이론의 사표이자 악 세력의 영혼”으로 매도됐다. 또, “사람이 생긴 이래 실로 공자만큼 죄악이 크고 위선적이며 대다수 사람들의 공적(公敵)이 된 인물을 없었다. 앞으로는 인류가 모두 일어나 공격하게 될 것이다. 동서고금의 모든 사상가들의 언행 중에서 공구(孔狗: 공자에 ‘개 구’자를 썼다)가 가장 황당무계하다”고 비판당했다. 리밍(黎鳴)이란 학자는 “중국인들은 왜 반드시 철저히 공자를 비판해야 하는가?”, “공자는 중국문화를 사악으로 이끈 제일의 마귀이다”는 일련의 문장을 발표해 공자를 비판했다. 하지만 중공은 ‘조화사회’가 필요할 때가 되자 다시 공자에 대한 제사활동을 거행해 사회 조화를 실현하려 한다. 대외적으로는 공자학원을 설립해 공자의 이름을 이용하는 동시에 중국어를 교육하는 방식으로 중공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있다. 한 누리꾼은 “중공이 진심으로 공자를 신앙하는 것이 아니며 중공 정치과목에서 말한 것처럼 공자와 맹자는 모두 통치계급이 노동인민을 우롱하기 위해 이용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현재 유행하는 중국의 ‘공자열풍’은 단지 중공이 공자를 이용해 노동인민들을 우롱하는 도구로 삼은 것에 불과하다. 만약 공자가 인간세상의 이런 모습을 본다면 할 말을 잃고 비탄에 잠길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중공의 손에 들린 도구에 불과할 뿐이며, 소위 ‘공자열풍’이란 이 시끄러운 연극은 진실로 자신과 무관하며, 유학(儒學)과도 무관하고 전통문화와도 무관함을 알기 때문이다.“흘러가는 것이 저 물과 같아 밤낮을 쉬지 않는 구나!” 2천여 년 전 공자는 냇가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흘러 2010년, 중국은 ‘공자 열풍’ 속에 있다. 세계 각지에 ‘공자학원’이 설치되고 있고,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영화 ‘공자’도 개봉했다. ‘공자’ 일색에 중국이 떠들썩하다. 하지만 정작 유구한 유교문화는 없고, 단지 정치적인 ‘조화’를 꿈꾸는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의 야욕만 엿보일 뿐이다. 만약 공자의 영혼이 하늘에 있다면, 인간 세상의 ‘공자 열풍’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40년 전 ‘공자 타도 열풍’ 40년 전 중국에서 발생한 ‘공자열풍’은 한차례 재난이었다. 중국인들에게 2천여 년 동안 가장 존경받는 성현이었던 공자는 “복고광(復古狂), 정치 사기꾼, 백성을 가장 기만하고 억압한 자”로 불렸다. 1966년 11월 베이징 사범대학의 조반파 두목 탄허우란(譚厚蘭)은 중앙문화혁명 소조의 명의로 200여 명을 이끌고 산둥성 취푸(曲阜)에 있는 ‘공자점(孔家店)’을 찾아가 파괴했다. 그는 현지 조반파와 연합해 철저하게 공자점을 파괴하는 ‘혁명조반연락소’를 만들고 공자점을 철저히 파괴하는 만인대회를 소집해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라는 비석을 부쉈다. 이들은 취푸에서 29일 동안 2700여 권의 고서와 900여 점의 각종 서화(書畵)를 불태웠는데, 이중에는 국가 1급 보호문물 70여 건 및 1700여 권의 서적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이 파괴한 문물 중에는 공자의 묘비를 포함한 1천여 개의 역대 비석 외에도 공자묘(孔廟)와 공자(孔子)의 직계 장자와 장손이 사는 저택 공부(孔府), 공림(孔林), 서국(書國) 옛터를 파괴했다. 또, 천보다(陳伯達)의 비준을 거쳐 공자묘를 갈아엎고, 공자묘를 지키던 76대 후손 쿵링이(孔令貽)의 무덤을 파헤치고 시신을 꺼내 비판했다. 당시 유가 경전만을 연구하던 저우위퉁(周予同) 교수는 끌려나와 자신의 손으로 공자의 무덤을 파헤쳐야 했다. 현지 각급 지도자, 간부 및 1962년 ‘공자토론회’에 참가했던 가오짠페이(高贊非) 등의 학자들이 공자상을 들고 조리돌림을 당했다. 그러나 이 모든 사건은 공산당 최고 권력기구인 중앙문화혁명소조의 직접적인 지시 하에 이루어졌다. 이는 당시 공산당의 정치투쟁과 정치운동의 필요에 의해 취해진 조치였다. 정치 선전 구호된 ‘공자’ 최근 중공 관영 CCTV가 강력하게 지원하는 ‘백가강단(百家講壇)’이란 프로그램에서 위단(于丹)이 ‘논어’ 열조를 일으켜 돈과 명예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자신이 공자를 연구하는 국학대사(國學大師)임을 자처하는 학자들이 대학 강단과 TV방송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는 정치적인 형세와 경제적인 필요에 영합한 일련의 일들이다. 물론 현재 파괴됐던 공자묘와 공자의 위패는 회복됐다. 공자에게 올리는 향도 왕성하게 타오르고 있고, 중공의 각급 고위관리들도 사람들을 따라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물론 이같은 행동도 장쩌민의 ‘삼개대표론’이나 후진타오가 주장하는 ‘과학적 발전관의 지도방침’을 따라 착실히 추진된 일종의 정치 임무에 불과하다. 공자는 각종 영화와 TV 드라마까지 등장하게 됐다. 역설적인 것은 공자를 비판하고 타도했던 중공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공자를 영화로 제작, ‘대하 서사시’로 떠받들고 있다는 것이다. 1월 22일 영화 ‘공자’가 각지에서 상영되기 전 관방에서는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는 한편, 행정명령을 동원해 블록버스터 ‘아바타’ 2D상영을 중단시켰다. 그러나 각종 반응을 종합해보면 공자의 흥행은 썩 낙관적이지 않다. 보다 중요한 것은 많은 관중들이 이미 이 영화가 중공이 이용하는 도구임을 직접 지적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산둥성 정부에서는 공자를 널리 알리는 것을 정치임무로 삼아 미리 각 지역 기관과 초중고교 및 기업 공회(公會)에 연락해 ‘조직적인 관람’을 명령했다. 이 때문에 산둥성의 ‘공자’ 좌석점유율은 67%에 도달했지만 다른 지역에서 ‘공자’의 흥행은 극히 미미하다. 소식통에 따르면 개봉 첫날 상하이는 관람객이 겨우 수백 명에 그쳤고, 쓰촨성의 한 극장에서는 관람객이 겨우 3명에 불과했다. (2편에서 계속)올림픽 보이콧에 놀란 中共, 관영매체 해외 진출 확대 현지 유력인사 필진으로 포섭, 공산당 이미지 쇄신 노려 올해 1~2월 무렵부터, 베이징 당국의 대외 선전 계획에 관한 뉴스가 줄을 잇고 있다. 최초 보도한 홍콩의 난화짜오바오(南華早報)에 따르면, 정부가 중국 공산당의 국제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450억 위안(7초 6500억 원)을 들여 주요 관영 언론사의 국제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월 3일, 관영 신화사 산하 환추스바오(環球時報)는 “중국 정부가 국가 홍보 활동을 위해 450억 위안을 투입한다”라고 보도했다. 이 소식은 곧바로 신화넷에 전재됐으며 펑황저우칸(鳳凰週刊) 등에도 실렸다. ‘국가 홍보 활동’ 즉 대외 선전이 화제 거리로 떠오르면서 사람들은 450억 위안의 용처에 호기심을 가지게 됐다. 급기야 중공 선전부는 450억 위안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라고 언론에 지시했다. 해외 중국어권 언론사들은 450억 위안이 해외 중국어 매체를 사들이는데 쓰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당국은 거액의 자금을 기존의 관영 매체에 투입해 ‘대외 선전 계통’을 강화하고, 해외 진출 매스컴의 현지화를 앞당기는 데 사용할 방침이다. 대외 선전의 핵심 ‘외문국’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티베트 탄압에 항의하는 사람들은 올림픽 횃불 릴레이를 보이콧했다. 중공 당국은 중국 정부의 국제적인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다고 판단했다. 이를 통해 중공이 얻은 교훈은 인권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국가 이미지를 쇄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중공 당국과 언론은 여론을 선점하기 위해 혈안이 됐다. 첫 번째로 해외에 새로운 언론사를 설립하고 각국 정부 부처와 지도층에 정보를 전달했다. 신화사, 중국신문사, 중국국제방송국, CCTV 위성방송, 중국일보 등의 해외 지사를 증설하고 현지 직원을 모집했다. 여기에 대외 선전기구인 중국외문출판발행사업국(中國外文局·외문국)이 발행한 수십 종류의 출판물도 동원됐다. 중공 관영 언론사들은 각자의 역할과 기능을 가지고 있다. 신문사는 보도를, 라디오는 평론을, TV방송국은 공연을, 잡지와 서적은 해설과 설득을 담당한다. 이 중 두드러지는 것은 해외 186개 지사를 설립한 신화사다. 신화사는 궁극적으로 알자지라와 같은 글로벌 뉴스 채널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중국의 대외 선전 기구의 핵심인 외문국은 1949년 10월 1일 설립됐다. 당시의 명칭은 중앙 인민 정부 신문총서 국제 신문국이며, 중공 외교계의 거물 차오관화(喬冠華)가 제1기 국장에 취임했다. 대외 선전의 주요 기구로서 외문국의 주요 업무는 중공 지도자의 저작, 정부 공고, 정책 자료, 국정 소개, 중국 문학 작품과 중국어 잡지를 외국어로 번역하고 보급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편집, 출판, 인쇄, 발행, 인터넷 선전 등 광범위한 업무를 맡고 있다. 외문국이 설립된 이래, 지금까지 43종의 언어로 약 13억 권의 서적이 출판돼 세계 180여 개 국가에 보급됐다. 이는 중국의 출판물 수출의 50% 이상에 해당하며, ‘베이징 주보’, ‘인민 화보’, ‘오늘의 중국’, ‘인민 중국’이 대표적인 간행물이다. 외문국의 간행물은 전량 중국 정부가 사들인 후 중국 대사관과 영사관을 통해 배포한다. 외문국은 중국 문화계의 거물을 포섭해 공동 작업하며, 해외에서도 좌파 인사를 중심으로 ‘친구’를 모으고 있다. 2004년부터 외문국은 대외 선전 간행물의 현지화에 착수했다. 2004년 10월, 잡지 ‘오늘의 중국’은 카이로와 멕시코 시티에 지사를 설립했다. 이 잡지의 아라비아어와 스페인어판이 현지에서 발행됐다. 이른바 대외 선전 간행물의 현지화를 위해, 현지 유력 언론 관계자와 관리를 고문으로 고용하고 기획과 주제 선정에 참여시킨다. 또 현지 주류 언론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사들을 고용해 잡지에 기고하도록 하고, 그들의 입을 빌려 중국 정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전한다. 교묘하게 의도를 숨긴 유명인의 기고문은 현지 매스컴에도 인용돼 선전 효과가 극대화된다. 러시아, 한국, 베트남, 미얀마, 라오스, 타이, 몽골 및 중앙 아시아 5개국에서 ‘포탈라(티베트어)’, '진차오(金橋, 한국어), '다루차오(大陸橋, 러시아어)', '연꽃(베트남어)', '파트너(러시아어)', '지샹(吉祥,미얀마어)', '메콩강(타이어)‘, '소론(몽고어)’, '센바(라오스어)‘, '유방(友邦, 카자흐스탄어)’ 등을 발행중이다. 이외에도 ‘오늘의 중국’은 페루판, 브라질에 포르투갈판을 발행할 계획이다. 외문국은 이미 2007년에 24종의 간행물과 27종의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파악한다면, 450억 위안이 어디로 흘러갈지 쉽게 알 수 있다. 세계 각지에서 중국 공산당이 좋아할 소식을 전하고 있는 언론들은 자신들에게 이 돈이 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할 것이다. 선전은 이미지 제고로 이어질까? 상술한 바와 같이 중공의 대외 선전은 올해 들어 처음 기획된 것이 아니라 정권을 장악한 초기부터 시작됐다. 개혁개방 이후 중공은 이미지를 치장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1980년, 중앙정부는 대외 선전팀을 설립하고, 90년대 국무원 신문 사무실을 설립해 대외 선전에 관련된 모든 사항을 총괄했다. 하지만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과는 신통치 못하다. 신화사의 해외 고객은 1450개 언론사와 기관으로 늘었지만, 여전히 국제 주류 언론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중공의 언론학자인 리시광(李希光)은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현재 상황에서 중국의 대외 선전물은 국제 주류 사회로 진입하기 어렵다. 특히 서방의 사회 중심으로 들어갈 수 없다. 일부의 해외 호텔에서는 중앙 TV의 중국어 프로그램을 볼 수 있지만, CCTV의 영어 프로그램은 볼 수 없다. 신화사의 기사는 좀처럼 현지 매스컴에 인용되지 않는다. 인용되더라도 부정적인 쪽이며, 오히려 중국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다.” 히틀러는 일찍이 선전 효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발언한 바 있다. “선전의 임무는 사물을 올바르게 전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불리한 사실을 보도하지 않는 데 있다. 반대로 우리에게 유리한 정보를 반복해서 보도하고 선전해야 한다.” ...인민일보 방문 주룽지 前 총리 "인민의 대변인이 되자" 동행한 선전부부장의 첨언 "공산당 이익과 일치할 때만…" 중국 공산당 선전부와 어용 악플러들은 당국에 대한 비난 여론이 제기될 때면 여지없이 "중국과 공산당을 반대하는 국외 세력의 책동"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무엇이 진실인지는 중공 간부들과 공무원들이 무심코 내뱉은 말에서 알 수 있다. 그들의 말에는 중국의 실정에 대한 가장 적절한 묘사가 담겨 있고, 사상 분야 선전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들어 있다. 중공 관료계에는 2가지 어투가 있다. 하나는 공식적인 장소에서 사용하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가까운 친구에게 털어 놓은 사적인 대화에 사용하는 말이다. 관료계에 대한 통제력이 점차 약해지고 있는 요즘 그들의 사적인 대화가 인터넷에 심심찮게 돌아다니고 있다. 부정부패는 동지, 언론자유는 적? 먼저 이른바 "정부식" 말투를 몇 개 분석해 보자. 해외 반체제 사이트인 보쉰(博迅)넷에는 지난 15일 베이징에서 열린 선전부문 내부 회의에서의 한 고위공무원의 발언이 공개돼 있다. "중국은 아직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다. 언론의 방향을 우리가 확고하게 통제해야 한다. 부정부패는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지만 여론의 향방을 잃게 되면 공산당과 공산당의 집권은 끝이다." 이 말의 뜻인즉 공산당과 정부의 임무는 부정부패 방지에 있지 않고, 당원들을 공산당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게 해 자아를 보호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관건은 언론을 통제해 국민들의 부정부패에 대한 비난 여론을 잠재우고 정부에 불리한 소식을 모조리 봉쇄하는 것이다. 국민들은 중공이 만들어 낸 언론의 창(窓)에 둘러 싸여 "중국 공산당의 위대한 업적"과 "서방국가의 부패상과 몰락"을 보면서 중국이 태평성세에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물론 이런 말은 인민일보나 신화사에 실리지 않는다. 언론에는 공산당 고위층이 즐겨 쓰는 "부정부패는 공산당과 나라를 망하게 한다"라는 그런 말을 실어야 하기 때문이다. 범죄와의 전쟁은 어떻게 시작됐나 다른 문장을 하나 더 살펴보면 중국에서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던 "보시라이가 폭력조직을 단속하게 된 계기"라는 문장이다. 여기서 보시라이는 "우리가 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폭력조직의 핍박에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보시라이의 말은 사실 그대로라고 봐야 한다. 국민들은 보시라이의 말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첫 번째 "폭력배들이 너무 날뛴다"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두 번째 해석은 "폭력 조직 소탕이 사실은 부담스러웠던 보시라이가 약한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끝으로 "보시라이가 실언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필자가 중국 폭력조직과 정치계의 결탁을 다룬 연구에 따르면 첫 번째 해석이 가장 정확해 보인다. 여러 매체에서 충칭시의 폭력조직이 지역 정부와 유착해 성장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사실 보시라이가 상무부장이라는 중앙직에서 충칭시로 온 것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하지만 충칭시 당서기 취임 직후 발생한 택시기사 집단 파업, 공무원 뺑소니 사건, 초병 살해 사건 등이 잇따라 터지면서 보시라이는 무능하다는 평가를 듣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보시라이는 노심초사 끝에 "폭력조직 소탕"을 택하게 됐다. 하지만 현재 중국의 폭력조직은 경찰과 정부의 부패 집단과 함께 세력을 키우고 있어 지역을 정부와 함께 다스린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부 지역에서는 폭력조직이 정부보다 더 정부 노릇을 잘하는 지역도 있다. 보시라이의 말은 관료들과 밀착된 폭력조직을 원래 소탕할 계획이 없었지만, (자신의 출세를 위해) 할 수 없이 작전을 실행했다는 뜻이 된다. 주룽지 전 총리의 황당한 경험 공산당 문화에 젖어 있는 관료들은 자신도 모르게 본심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지난 6월 한 기자가 허난성 정저우시에서 서민주택에 대해 취재할 때 기획국장 루우쥔은 기자에게 "당신은 공산당의 편에 서서 말을 하려는 겁니까? 아니면 시민들을 위해 말을 하려는 겁니까"라고 반문했다. 루우쥔은 은연중에 공산당과 시민의 이익이 대립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공분했다. 중국 공산당은 줄곧 국민들에게 "공산당은 인민 이익의 최고 대변자"라고 선전했지만 실제는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90년대 말 장쩌민이 주창한 "3개 대표론"도 국민을 우롱했다. 베이징에는 이런 말이 나돌고 있다. 1999년 설날 즈음, 국무원 총리 주룽지(朱鎔基) 가 중공 선전부 부부장과 인민일보를 시찰했다. 주룽지는 직원들에게 "당신들은 시민들의 좋은 목소리가 되어야 한다"라고 격려하자, 부부장은 "공산당과 인민의 이익이 일치할 때 당신들은 인민의 좋은 목소리가 되어야 하며, 더욱 중요한 것은 공산당의 좋은 목소리가 되는 것"이라고 보충 설명했다. 이 일화도 공산당과 인민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중국인들이 인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G20 정상회의 즈음 중국은 "새로운 국제통화가 필요하다"는 달러 흔들기로, 이번 회의를 중국과 미국의 "G2" 회의로 만들었다. 국제사회도 중국의 행보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발언은 사실 회담 전부터 있었다. 지난 3월 중국 중앙은행 저우샤오촨(周小川) 총재는 "달러를 대신해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을 새 기축통화로 사용하자"고 주장했고, 중국 정부의 영향권에 있는 도널드 청(曾蔭權) 홍콩 행정장관도 홍콩달러의 "미 달러 페그제" 폐지를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왕치산(王岐山) 중국 부총리도 "타임즈"에 기고를 통해 "국제 금융 시스템에서 개발도상국의 발언권이 더욱 커져야 한다"며 목소리를 더했다. 이에 중국언론들은 위안화의 승리가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매우 흥분했다. 하지만 기업의 이익을 고려한 중국 기업들은 정부의 "강대국 쇼"에 참여하지 않았고, 그 결과 중국 정부의 "위안화 무역결제 시범지역 선정" 정책은 지난 4월 광교회(광저우무역박람회, 캔톤페어)에서 완전히 실패했다. 중국 언론의 "정부찬양"도 슬그머니 사라졌다. 중국은 왜 달러에 도전했나 저우 총재의 달러화 도전은 미국의 정치, 군사적 지위에 도전하려는 중국 정부의 예행연습이다. 지난 2005년 미국에 핵 공격도 불사하겠다던 주청후(朱成虎) 소장의 발언에 비하면 많이 부드러워진 셈이다. 국제통화는 그 나라의 국력과 깊은 연관이 있다. 2차대전 동안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하자, 1944년 브레튼우즈 협정에서는 달러를 기축통화로 한 금환본위제도를 채택했다. 하지만 1971년 닉슨 정부가 금태환 정지선언을 함으로써 브레튼우즈 체제는 붕괴하였다. 이후 1976년 자메이카 협정을 통해 선진국들은 변동환율제를 채택했고 보유 외환도 다양해졌다. 하지만 미국의 강한 국력을 바탕으로 달러는 여전히 국제시장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고, 국제통화로서의 지위를 지키고 있다. 중국이 미국의 금융위기를 틈타 공세를 취한 것은 영리한 행동이다. 궁핍한 서민층과 산재한 경제문제 등 현재 중국이 직면한 문제는 미국보다 훨씬 크지만, 독재정부인 중국은 미국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수 있다. 자원을 강제적으로 동원해 부를 과시하거나, 통계수치를 위조해 전 세계가 불경기인데도 오직 중국만은 회복기라는 가상을 만들어낸다. 이는 서구에 중국 자본은 끝이 없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자유가 보장된 미국 언론들은 자국 경제를 통렬히 비판하지만, 자유가 통제된 중국 언론들은 자국 경제에 박수를 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영리한 선택에도 "위안화 무역결제 시범지역 선정"은 시기가 좋지 않았다. 왜 그런지 한번 살펴보자. 중국이 기대한 "일석삼조" 효과 사실 중국의 목표는 위안화를 곧바로 국제통화로 만들자는 것은 아니다. 국제통화가 되려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국제통화 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며, 둘째 자유로운 교환이 가능해야 한다. 셋째 해당 통화가 국제시장에서 안정적인 구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각국 중앙은행의 믿음이 있어야 한다. 위안화는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지 못해 새로운 국제통화가 되기는 상당히 어렵다. 하지만 중국은 새로운 국제통화 주장을 통해 일석삼조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 첫째, 중국의 단기목표는 IMF에서 자국의 발언권과 투표권을 확대하는 데 있다. 최근 국제사회는 새로운 국제통화 시스템을 만들어도 여전히 달러화가 중심이 된 통화 다원화가 되어야 한다며, 달러화의 파워를 인정하고 있다. SDR도 달러, 엔, 유로, 파운드의 통화바스켓으로 운영되고 있어, 중국의 영향력은 매우 미미하다. 이는 중국정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둘째, 중장기목표는 위안화가 국제통화 시스템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번 G20 회의에서 SDR을 주장한 이유도 위안화의 국제화, 2020년 위안화의 자유교환, 상하이 국제금융센터 설립 등을 위한 사전작업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중국이 역점을 두는 현실 목표는 중국이 아시아통화를 추진할 때, 미국의 간섭을 배제하는 것이다. 지난 4월에 열린 보아오(博鰲) 포럼에서 중국 고위층은 세계 각국에 제공하는 중국의 자본을 무기로 미국의 대규모 양보와 아시아 중심의 새로운 국제기구 설립을 주장했다. 저우 총재는 아시아개발은행 같은 지역 금융기구가 국제기구의 역할을 넘겨받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결국 중국의 목표는 아시아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위안화 국제화를 가로막은 것은 놀랍게도 서양 선진국들이 아니라 보아오 포럼 전에 열린 광교회(광저우무역박람회)였다. 위안화 국제화의 꿈을 깨버린 "광교회" 저우 총재와 왕 부총리의 발언 직후, 중국 국무원은 상하이, 광저우, 선전, 주하이, 둥관 등 5개 도시를 위안화 무역결제 시범지역으로 선정했다. 중국 언론들은 일제히 "위안화 결제를 통한 환율위험 회피, 무역조건 개선 등은 수출기업 성장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광교회에서 위안화로 견적을 낸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한 일간지는 "광교회에서 위안화 결제기업 없어"라는 기사에서 위안화 결제는 매우 시기상조이며, 중소기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대부분 기업들의 입장이라고 보도했다. 첫째, 위안화 결제의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역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위안화가 결제통화로 인정받으려면 우선 위안화로 보유자가 원하는 모든 재화나 서비스를 살 수 있어야 하지만,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해외주문에 절박한 중국기업들도 구매자의 요구에 무조건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양청완바오"는 참가자의 말을 인용, "외국 상인들이 위안화 결제는 환율위험을 자신들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의심한다"라고 보도했다. ...▲ 사악한 제도 때문인가, 사악한 인성 때문인가 최근 중국에서 수많은 "영웅"들이 독재정부에 아부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마치 경쟁하는 듯한 그들의 모습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여성작가 장이허(章詒和)는 최근 남방주말에 두 편의 기고문을 통해 황먀오쯔(黃苗子), 펑이다이(馮亦代) 등 중국 유명 예술인들이 과거 공산당에 동료를 밀고한 사실을 폭로했다. 곧이어 베이징대 쑨둥둥(孫東東) 교수는 "상방민의 99% 이상이 정신병을 앓고 있다"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이런 문화인재들의 타락은 최근 독재정부의 대변인을 자처한 영화배우 청룽(成龍)의 "중국인은 통제가 필요하다"라는 발언으로까지 이어졌다. 일부에서는 펑이다이 등의 밀고 행위는 마오시대 정치탄압의 산물이기 때문에 개인의 잘못을 탓할 수 없다고 한다. 정치탄압의 산물이라는 의견에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당시 독재정권은 개인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통제했기 때문에, 살기 위해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체제는 개인을 완전히 분리된 개개 입자로 나눠 사람들을 철저히 고립상태로 만들었다. 가족, 친구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이런 거대한 탄압과 공포 속에서 진웨린(金岳霖), 펑유란(馮友蘭) 등 명성이 자자한 학자들조차도 중공에 머리를 조아리는 "사상범"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들의 잘못을 탓할 수 없다는 생각에는 반대이다. 오히려 과거의 경험과 잘못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과거사를 다시 논하는 이유는 당사자를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괴물로 만든 독재 정권의 만행을 알리는 데 있다. 어쨌든 많은 중국인이 오랜 기간 정치탄압을 받았거나 아직도 받고 있지만, 그들 모두가 타락한 것은 아니다. 펑이다이의 밀고행위를 시대의 잘못이라고 한다면, 최근 쑨둥둥과 청룽의 태도는 정치탄압에 의한 굴복이 아닌, 그들 스스로 정권에 영합하려는 행동으로 보인다. 현 체제의 통제와 탄압이 매우 잔혹하지만 마오시대 만큼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 생각해 볼 것은 쑨둥둥은 "6.4 톈안먼(天安門) 사태 때 학생들을 보호했고, 청룽은 당시 학생운동을 지지하는 노래를 불렀다는 점이다. 무엇이 정의감에 불타던 이 두 인재의 가치관을 이렇게 바꿔놓았을까? 단지 경제적 이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중국 당국이 통제할 수 없는 대중 여론이 정권에 아부하는 그들의 모습에 결코 호의적일 수 없다. 또한 정부 당국도 수많은 아부꾼을 당연시하기 때문에 그들이 얻는 "한계효용"은 0에 가깝다. 쑨둥둥도 자신의 정치적 위치가 바로 상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밝힌 바 있다. 청룽의 이런 영합이 당국을 움직여 그의 중국 내 티켓수입을 늘릴 것이라고 기대하기 역시 힘들다. 그렇다면 이런 인재들을 파렴치한 정치 하수인으로 만드는 독재정부의 능력은 어디에 있는가? 쑨둥둥이 자유가 없는 중국에서 살기 때문에, 그의 행동은 공산당의 장기간 교화에 의한 결과라고 한다면, 청룽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청룽은 중국에 반환되기 전의 자유 홍콩에서 자랐고, 중국인들이 겪었거나 현재 겪는 사상교화를 받은 적이 없다. 그가 독재정권의 대변인이 된 이유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고 연구할 가치가 있다. 스탈린체제의 진상을 담은 자신의 저서 "모스크바 일기"를 사후 50년 후에 공개하라는 로맨 롤랑(Romain Rolland)의 유언이 폭로되면서, 나는 매우 가슴 아픈 사실 하나를 알게 됐다. 자유세계에서 오래 생활한 지식인은 자국의 민주정치하에서는 불공정한 현상에 대한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마치 로맹 롤랑이 "프랑스의 양심"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하지만 그들이 독재정권과 만나게 되면, 알았건 몰랐건 간에 독재정부에 아부하고 빌붙게 된다. "세계를 뒤흔든 열흘"을 쓴 존 리드(John Reed)나 "중국의 붉은 별"의 저자 에드가 스노우(Edgar Snow)처럼 이런 굴욕의 길을 걸은 사람이 적지 않았다. 독재정권을 지지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소련 공산당과 중국 공산당에게 엄청난 도움을 주었다. 혹자는 서양 사람들이 속은 건 공산독재 국가의 진상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독재정권에 아부하는 많은 화인 인재들의 사례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무협소설을 문학의 전당에 올려놓은 소설가 진융(金庸)은 중국 당국에 대한 아부로 인해 그의 명성에 도움은 커녕 스스로 오점을 남겼다. 일부에서는 그의 유약한 성격 탓이라고 옹호하지만, 타이완에서 부처와 선조를 욕하던 그 사나운 리아오(李敖)도 중국에서는 내성적으로 바뀌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독재정권이 어떻게 수많은 "인재"들을 굴복시킬 수 있을까? 이는 제도가 사악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인성이 사악하기 때문인가? 이 문제는 거대한 가시가 되어 수년 동안 내 마음을 찔렀다. 이것은 중요한 연구과제가 되어야 한다. "인재"가 비겁한 밀고자, 아첨꾼이 되는 촌극이 아직도 중국에서 상연 중이기 때문이다. 더욱 무서운 건 요즘의 밀고자에게는 펑이다이가 쓴 "회여일록"같은 참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타인, 그리고 자신에 대한 "영혼의 고문"이 필요하다.최근 중국관영매체들이 로이터통신의 앨런 위틀리(Alan Wheatleyㆍ중국경제편집자)가 쓴 기사 "중국 데이터 또다시 정보 주기보다 논란만 일으켜(Chinese data generate more heat than light-again)"를 반박했다. 기사에서 위틀리는 "중국통계는 비밀의 보자기로 싼 수수께끼"라고 말했다. 특히 "2008년 4분기 성장률은 경제 분석가 대부분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며 "GDP 통계가 잠재된 미미한 성장 추세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 기사는 "중국통계를 크게는 아니더라도 약간은 에누리해서 들어야 한다"며 "정부가 통계를 조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충고했다. 지난 1월 22일 이 기사가 나간 후 2월 6일 중국정부는 반박을 시작했다. 먼저 국가통계국의 마젠탕(馬建堂) 국장은 "GDP를 수정하는 것은 국제관례다. 중국의 통계를 의심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중국의 공식 통계는 진실하며 신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월 18일 인민일보(중국공산당 기관지)는 베이징대 류웨이(劉偉) 교수와 카이즈저우(蔡志洲) 교수의 인터뷰 기사 "중국통계가 정말 비밀의 보자기로 싼 수수께끼인가?"를 게재했다. 이 학자들은 로이터 기사에 인용된 전문가들이 중국 통계는 "정부 조작"이라 언급한 부분에 대해 무책임하다며 비난했다. 인민일보 기사는 전문가들이 중국의 통계지표, 통계방법, 통계제도뿐만 아니라 실제 경제활동에 대한 이해가 결핍돼 있으며, 이들의 오판으로 중국경제를 걱정하는 이들을 오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마오쩌둥, 대약진 때 이중장부 명령 대외용ㆍ내부용 구분, 지위별로 달라" 사실상 국제 경제계는 중국 통계에 대해 의심을 멈춘 적이 없다. 2002년엔 수 개월간 많은 이들이 참여한 논란도 있었다. 중국정부가 아무리 해명을 해도 공식 통계를 둘러싼 의심은 가시지 않아, 중국정부에 대한 낮은 신인도를 보여줬다. 최근엔 두 가지 사례가 있었다. 2월 2일 중국정부는 실직하고 귀향한 농민공 수가 2,000만 명이라고 발표했다. 이 통계를 발표한 사람은 원자바오 총리와 말을 맞추는 것을 깜빡한 모양이다. 앞서 2월 1일 원 총리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실직하고 귀향한 농민공 수가 1,200만 명"이라고 밝혔다. 800만 명 차이가 났다. 또 중국정부는 지난 30년간 농촌 빈곤층 인구가 2억5000만 명에서 2,000만 명으로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2월 9일 열린 UN인권이사회의 한 회의에서 중국대표단의 리바오둥(李保東) 단장은 지난 30년 간 농촌 빈곤층 인구가 2억5000만 명에서 1,400만 명으로 감소했다고 말했다. 600만 명이 또 차이가 난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중국의 통계자료를 사용, 분석하려는 연구자에게 중국 통계는 도전과 같다. 이는 중국 정부 관료와 학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 29일 관영잡지 랴오왕(了望ㆍ신화통신 자매잡지)은 "위기를 맞아 진실한 통계가 필요하다"는 기사를 발표했다. 기사에서 "금년 통계자료는 충실해야 하며, 반복되는 검증에도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고 적고 있다. "통계학자의 지옥" 중국공산당은 태생적으로 통계 조작이란 병근을 가졌다. 통계 조작은 중공 정치문화의 일부가 되어, 중앙정부의 인심 무마용으로 때론 각급 관원들의 정치업적용으로 사용됐다. 이런 나쁜 선례를 처음 남긴 이는 바로 마오쩌둥(毛澤東)이다. 1958년 1월, 마오쩌둥의 지도로 발표된 대약진운동의 안내서 <공작방법 60조>의 제9조에는 생산계획 관련 장부를 세 종류로 만들라고 지시한다. "첫 번째 장부는 달성 가능한 목표량에 관한 것으로 대외 발표용으로 사용한다. 두 번째 장부는 예상량으로 이것은 공포하지 않는다. 지방 정부 또한 두 가지 장부를 운영한다. (지방정부의) 첫 번째 장부는 중앙정부의 두 번째 장부와 같은 것으로, 이것은 지방정부가 달성해야 하는 생산량이다. (지방정부의) 두 번째 장부는 지방 정부의 예상량이다. 우리는 중앙정부의 두 번째 장부를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이때부터 중국정부는 이중장부 체계(兩本帳)를 운영해 왔는데, 이 중 하나는 바로 외부인을 속이기 위한 것이었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바로 이 영광스런 전통을 계승, 이중 데이터 시스템을 사용한다. 내부용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부 내 공산당원을 위한 것이다. 이 내부용도 관원의 지위고하에 따라 버전이 달라진다. 따라서 통계와 관련해 중국정부는 여러 개의 입을 가지고 있고, 어느 입을 사용할 것인지는 정치적 필요에 따라 결정된다. 만약 중국이 "통계학자의 지옥"이란 악명을 떨치고자 한다면, "악의적 추측"이라며 다른 이들을 비난하지 말고 바람직하지 못한 정치문화를 없애야 할 것이다. 출처: 화샤(華夏)전자보(중국 인권전문 전자저널)중국의 독분유 사건이 점점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각국에서 드러난 중국산 유독성 유제품 목록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전 세계인들은 이처럼 신뢰를 상실하고 있는 중국제품에 대해 매우 곤혹해 하며, "중국인은 이제 도덕 기반을 완전히 상실했는가"라는 의문을 갖는다. 중국제품 문제는 사실상 도덕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 나라의 상품은 그 나라의 기술 제조 수준을 나타내는 것 외에, 각종 사회·문화적 요소도 반영하고 있다. 가령, 상품의 가격은 그 나라의 노동력, 임금 수준과 복리후생을 반영하며, 상품의 품질은 상업적 신용, 도덕 기준과 그 나라의 사회제도 등을 나타낸다. 중국의 식품 안전 문제는 표면적으로는 산업계에서 발생하는 경제 문제로 간주할 수 있지만 그 실제적인 모습은 중국의 정치제도의 부패, 경제 윤리의 추락, 자연 생태 환경의 지속적 악화가 만들어 낸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산 유해 식품의 근원은 도대체 무엇인가? 첫째는 소위 "과학적 수법"의 문제다. 통상 농업 생산에는 대량의 농약과 화학 비료를 사용한다. 대부분 가축 양식의 경우에도 보편적으로 항생 물질과 호르몬을 대량 투여하고, 담수 또는 해수의 양식업으로 자란 수산물은 각종 오염수에 침식된다. 둘째는 식품의 가공 과정의 문제다.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기업은 각종 식품 첨가제와 화학물질을 대량으로 사용한다. 이번의 경우처럼 단백질 함유량을 속이려고 우유에 멜라민을 넣는 것은 중국에선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셋째는 중국의 심각한 환경오염 문제다. 중국 국가 환경보호국의 통계에 의하면 중국에서 현재 카드뮴, 비소, 크롬, 납 등에 오염된 경지 면적은 2000만 ha로 경지 총면적의 1/5이다. 중금속에 오염된 식량은 전국에서 연간 1200만 톤이 생산되며, 이런 곡물을 대부분 중국 소비자들이 섭취하고 일부는 세계 각국에 수출되고 있다. 국가 관리 기능은 유명무실 유독성 상품이 광범위하게 범람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감독 관리 능력은 식품의 안전을 보장하는 마지막 가이드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중국은 강한 정부와 약한 국민이 공존하는 국가이다. 민간 사회는 감독 관리의 권한이 없으며 그 힘도 없다. 그러나 관련 식품의 안전 문제에서 중국 당국의 대응은 최소한의 책임의식도 희박하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민족주의(애국주의)를 남용하고 국민을 선동해 정권과 기업의 책임을 회피한다 예를 들면, 작년에 중국 제품의 결함 문제가 다수 발생해 각국이 중국 제품 품질 문제에 항의의 목소리를 높였을 때, 중국 당국은 국내에서는 보도 규제를 한층 강화해 민중에게 진실이 전해지는 것을 저지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사회의 항의에 대해서는 "해외의 반중국 세력이 중국 제품에 대한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다"고 선전하고 "그 목적은 중국 제품을 요괴화(妖怪化)해, 경제적으로 우리나라의 수출 무역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정치적으로는 국제 이미지를 추락시키는 것이다"라고 했다[2007년 7월 17일 국가질검총국 리창장(李長江) 국장의 발언]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의 불량 완구 제품에 대해 세계 각국에서 완구의 페인트에 납이 포함된 사실을 발견하고 항의를 해도 정부는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즉 중국 정부는 국내 기업에 대해 "민족주의"라는 보호 카드를 제공하며 기업을 보호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 결과 납 함유의 완구는 다른 나라 아동의 건강을 해쳤고, 지금도 여전히 중국 아동들을 해치고 있다. 둘째, 국가의 검사 면제 제도를 남용한다. 중국 당국은 "국가 검사 면제 제도"를 제정하고 있다. 이 제도는 일정한 시장규모를 가진 기업에 대해서 그 제품이 연속 3번, 성 수준 이상의 "질량 검사기구"의 검사에 합격하고, 중앙의 "국가질검총국" 허가를 얻으면, 검사 면제 제품이 된다. 그 유효기간은 3년인데 해당 기업은 3년 동안, 제품의 품질을 스스로 관리한다. 중국의 정치제도가 고도로 부패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기업이 "검사 면제" 허가를 획득하기까지는 5단계를 통과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실권을 쥔 간부들은 부정을 저지를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된다. 2004년 안후이성 푸양(阜陽)에서 단백질 함유량이 낮은 분유를 섭취한 유아가 영양실조로 머리가 이상하게 부어 사망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그 분유를 만든 회사가 이번 멜라민 분유를 만든 "싼루 분유사"인데 수 년 전에 벌써 불량 분유를 만든 회사였다. 그러나 이 회사는 정부 당국과의 강력한 커넥션을 이용해 징계를 피했다. 뿐만 아니라 "국가질검총국"이 이 회사의 분유를 검사 면제 브랜드 종목으로 소비자에게 추천까지 했다. 검사 면제라는 프리미엄을 얻은 싼루사는 제품에 멜라민을 투여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결국 이번 독 분유 사건의 시발점이 됐다. ...최근 "중국산(Made in China)"이 여러 방면에서 곤경에 처해있다. 국제시장에서 "중국산"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과 "중국산"을 가능케 했던 중국 내 두 가지의 큰 요소가 그 기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공 당국의 수출보조금 정책 변화도 한 가지 큰 요소다. 우선 "중국산"은 현재 전례없는 신용위기에 처해있다. 이제까지 중국이 미국으로 수출했던 상품들은 기본적으로 자원소모성 제품들로 구성됐고 노동집약형 제품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대부분은 미국의 일상 소모품들이다. 이번에 신용위기를 불러일으킨 주요 상품은 식품과 식품원자재다. 미국에서 시작된 중국상품 불신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며 세계각국에서끊임없이 중국상품의 품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중국 국가품질감독검사검역총국은 지난 7월 3일 공개성명을 통해 2007년 상반기에 중국 내에서 소비된 상품 중 19.1%가 불합격이라고 발표했다. 소규모 회사의 상품 불합격률은 30%에 육박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산"에 대한 불신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고 도미노식 연쇄반응으로 계속 확대되고 있다. 예를 들면 완구에 납이 함유된 페인트를 칠해 시장에서 반품되거나 하는 식이다. 항저우의 '종스 러버' 타이어 제조사는 안전에 관련된 중요한 공정을 생략해 미국에서 소송에 휘말려 있다. 타이어제조 시 내구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철사묶음 사이에 6mm의 고무층을 넣는 공정이 있는데 이 회사는 이같은 공정을 생략함으로써 사망사고를 초래한 것이다. 이 사건은 미국인들이 "중국산"이 안고 있는 품질불량 문제에 대해 또다시 시선을 집중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2005년도 영국 BBC방송에서 시작해 미국 "뉴스위클리", "타임지" 등에서 잇따라 "중국의 해"를 대거 선전할 때와는 달리 이들 메이저 언론들은 더이상 중국에 대한 찬미와 장미빛 미래를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불신과 비평, 비관적인 예측들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팬더곰을 옹호하는 파"들은 전례없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다음으로 '중국산'을 가능케했던 두 가지 큰 요소가 더이상 작용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다. 이 두 가지 요소 중 하나는 중국의 저렴한 노동력이고 다른 하나는 생태환경 파괴다. 저가 노동력은 중국노동자들의 생명을 댓가로 한 것이다. 중국의 노동력은 의료보험, 노후보장, 실업 등 여러 측면에서 복지정책이 거의 없다. 또한 중국노동자들은 작업시간과 노동강도, 위험요소에 비해 턱없이 싼 임금을 받고 있다. 중국은 또 '세계의 공장이 되기 위해 심각한 환경파괴를 그 대가로 치렀다. 최근 20년간 중국의 생태환경은 다시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철저히 오염됐다. 여태까지 이러한 문제를 다루지 않았던 관영매체들도 지난 해부터는 각종 오염사건들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는 중국의 생태환경이 이미 인간의 생존을 위한 최저수준까지 오염됐다는 것을 설명한다. 비록 세계은행이 중공 당국의 요구를 참작해 보고서 중에서 "환경오염으로 중국에서 매년 75만여 명이 조기 사망한다"라는 내용을 삭제하긴 했지만 중국국가환경보호총국 부국장 판웨이는 "중국은 현재 이미 수질오염이 빈번히 폭발하는 단계"라고 공개적으로 승인한 바 있다. 타이호(太湖), 차오호(巢湖) 등지의 녹조류 오염은 바로 이러한 사실들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생태계 파괴에 의한 중국 노동자들의 생명위협은 이미 더 이상 감당키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있다. 상처투성이가 된 중국생태환경도 더는 미친듯한 약탈을 감당할 수 없게 됐다. 세째 요소는 "중국산"이 전세계 제품가치 연결사슬 중에서 이윤이 가장 작은 연결고리에 속한다는 점이다. 저렴한 노동력 때문에 중국은 수많은 주문을 받았지만 주문을 받은 중국생산회사에서 얻는 최종이익은 얼마나 되겠는가? 어떤 사람이 한 가지 완구를 예로 들어 계산해보았는데 이 제품이 미국시장에서 판매되는 가격이 100달러라고 가정할 때 대충 계산해봐도 중국의 생산기업에게 남겨진 이윤은 건당 3달러밖에 되지 않으며 중국무역회사에서 남는 이윤은 건당 7달러에 불과하다. 이 제품으로 중국내 생산회사와 무역회사가 얻는 총 이윤은 10달러로 상품판매가의 10%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낮은 이윤은 중국 수출업계 절대다수가 겪는 현실이다. 과거에는 중국에서 수출보조금제를 실시했던 탓에 그나마 견딜 수 있었지만 현재 중공당국이 이 제도를 바꾸는 바람에 숱한 수출기업들이 경영난을 겪고 있다. "중국산" 불신 문제로 인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중국 상반기 수출무역량 통계에는 잠시나마 이 같은 사실이 반영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중공 당국은 여전히 자신감에 도취돼 이렇게 선포하고 있다. 즉, 올해 상반기 중국의 수출입총액이 1조 달러에 육박하며 작년 동기에 비해 24%정도 증가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또 무역차액은 1천억 달러를 넘어 지난 해 같은 기간에 비해 60%이상이 증가했다고 한다. 하지만 중공 당국은 반드시 이 한점을 알아야 한다. ...최근 2년, 중공 정부가 이렇게 심하게 부패했어도 계속 정권을 유지해 나가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묻는 사람이 많아졌다. 중국이 민주국가라면 이 정부는 유지될 수 없다. 하지만 중국은 독재국가이며, 정치탄압, 스파이망, 경찰통치 등 가혹한 수단을 총동원했기 때문에 현재의 표면적인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 통치의 안정성을 확인하기 위해 두 가지 기준으로 측정해볼 수 있는데, 바로 중국사회의 부패허용도와 관료들의 부패안전도이다. 이 두 가지 기준은 필자가 만든 것으로 서로 이익이 상충하는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부패에 대한 태도를 관찰하기 위해 사용되는 지표이다. "부패허용도"를 알기 위해 주요한 몇 가지 사항을 조사한다.1. 부패침투율, 특히 부패가 국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지 관찰한다. 2. 국민과 사회의 여론, 3. 사회 소요사태의 발생율 통치자에게 적용하는 것은 부패안전도, 즉 부패처벌율(부패 관료가 부패를 위해 지불하는 기회비용)이다. 처벌율이 높을수록 부패안전도는 낮아지며 반대관계도 성립한다. 하지만 이를 계산하기는 쉽지 않다. 부패관료가 체포되기 전에는 공무원 중 탐관오리가 얼마나 있는지 확실히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치 "모든 관료를 처벌하면 누명을 쓰는 사람이 생기고, 둘 중 하나만 처벌하면 빠져나가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처럼 말이다. 부패안전도는 부패가 심각하게 발생하는 것을 나타낼 수 있지만, 연구의 근거자료로 사용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필자가 "현대화의 함정"을 출판했을 때, 중국사회의 부패허용도는 비교적 높았다. 당시의 부패는 민중의 생존을 위협하지 않았고, 대규모 도시철거나 토지 강제징수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굉장히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중국인들은 중국 관료의 부패에 대해 굉장히 관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료들의 무분별한 약탈로 국민들은 점점 생존하기조차 힘든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4백만 명의 도시 거주자들이 집을 잃었고, 6천만 명의 농민이 농사지을 땅을 빼앗겼다. 이로 인해 사람들의 부패허용도는 점차 낮아지고 있다. 관료와 일반인에 대한 조사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2004년 중앙당교 지방관료를 대상으로 " 정치개혁 성공을 위한 주요 요인"을 조사한 결과, "부패척결을 위한 강도 높은 정책시행"이 다섯 번째로 뽑혔으나, 2006년 "사회주의와 조화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한 조사에서는 "부패문제"가 "사회보장문제" 다음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드러났다. 일반인들에게도 부패문제는 여전히 중요한 관심사다. 올해 "중국경제시보" 여론조사센터와 QQ가 공동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누가 조화사회를 방해하는가"에 대해 "감독기구 부족으로 인한 부패성행"을 "10대 방해요소"중 최우선으로 꼽았다. 사회소요사태 발생율도 작년에 이미 8만 건에 이를 정도로 크게 상승하였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관료들의 부패안전도는 여전히 낮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근 부패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한 국토관련 자료에 의하면, 2003년 토지관련사건은 16만 8천 건에 달하였지만, 관련자중 134명만이 형사처벌을 받았다. (738명은 내부 행정조치를 받았다.) 즉 처벌율은 1%에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사회보장기금관련 부패사건을 들 수 있다. 광저우시에서 사회보장기금 10억 위안을 유용한 사건이 적발되어 2001년 조사에 착수하였다. 하지만 정부는 2005년까지 조사를 지연시키다 당사자 몇 명을 처벌하는 선에서 무마하였다. 또 특별규정을 만들어 언론에서 관련문제를 토론하는 것을 금지시켰고, 사회보장기금 결손분은 정부재정에서 보조하기로 결정하였다. 위 예를 통해 관료부패는 정치적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다. 당교 지방관료 조사에서 보듯이, 관료들은 사회의 부패허용도 하락으로 인한 사회적 긴장을 명확히 알고 있지만, 제도적 보호장치로 인해 관료들의 부패안전도는 여전히 낮아지지 않고 있다. 또한 중국은 부패관련 연구에 특별한 예를 제공하였다. 고도로 부패한 국가 중, 중국만이 부패척결을 소리 높여 주장하지만, 관료의 부패안전도는 여전히 높고 국민의 부패허용도는 한계에 도달했으며, 관료들이 처벌을 피하고 동료를 보호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국외도피를 택하고 있다. 관료의 부패안전도가 계속 높을 경우, 사회의 부패허용도 사이에 형성된 격차는 점점 벌어질 것이다. 그 결과 권력계층은 스스로 붕괴될 것이며, 그 과정 중에 국민들은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지난달 28일, 갤럽이 주최한 "2006 중국 조사보고" 발표회에서 모건스탠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스티븐 로치는 지난 주 베이징에서 원자바오 총리와 회담에서, 원 총리가 중국 경제에 대해 "지속 불가능, 불안정, 불협화, 불균형"을 지적하며 우려를 나타냈다고 말했다. 로치는 일찍이 친중파로 알려졌으며, 지금까지 중국 경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견해를 바꾸어 원 총리의 우려에 동조하면서, "모건스탠리의 연구 결과에 의하더라도 중국은 고정 투자와 수출이 국내총생산의 80%를 넘는데 이런 구조 하에서는 경제성장을 지속할 수 없다. 그리고 중국인의 과잉 저축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그 원인이다"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견해는 로치 자신의 견해를 나타낸다기보다 그의 치밀한 비즈니스상의 계산을 나타내고 있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유사한 분석이 이미 (어용학자들을 제외한) 중국 학계의 공통된 인식이었기 때문이다. 중 대외의존도 위험은 상식 2004년경부터 중국 경제에 대해 과도한 대외 무역의존도의 위험성을 지적한 논문은 적어도 백 편이 넘는다. 이 중 몇 건의 자료, 예를 들면 "중국의 무역의존도는 이미 80%를 넘어 다른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수준을 크게 웃돌고 있다"는 것 따위는 전문가들 사이에 이미 상식이 돼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이전에 발표한 <국제 금융 통계 연보>에 의하면, 선진국의 평균 소비율(국민 소비/GDP×100)은 78% 전후, 개발도상국의 평균 소비율은 약 74% 전후, 평균 저축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평균 소비율도 약 65% 이상이지만, 중국만은 특정 년도를 제외하고는 평균 소비율이 계속 60%를 밑돌아 2006년에는 연평균 소비율이 50% 이하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러한 소비 부진, 과잉 저축의 원인은 중국 민중이 의료, 교육, 주택 문제라는 삼중고로 인해 미래에 대한 불안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미 중국 학계 및 민중의 공통된 인식이며, 로치가 새삼스럽게 "지적"할 이야기는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중국 정부의 "좋은 친구"로서 중국 경제의 발전상을 여기저기에 알리는 한편, 중국 경제를 좋게 평가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중국의 가장 경쟁력 있는 요소 즉, 인건비, 기술, 인프라, 인적자원 및 당국의 확고한 개혁 의지 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반박했었다. 낮은 인건비가 국내시장 피폐화 로치가 외면했던 것은 그가 "중국의 가장 경쟁력 있는 요소"라 생각한 저렴한 인건비가 중국 국내 시장을 피폐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라는 점이다. 저렴한 인건비는 노동자들이 밤낮 고생해도 생존을 유지하기 힘들게 하는 데다, 정부 당국은 자신이 부담해야 할 주택, 의료, 교육이라는 복지비용을 민중에게 떠넘기고 있으니 그들에게 소비를 확대할 만한 잉여자금이 어디 있겠는가?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돼 농촌 노동력에 취업의 기회를 주었지만, 이 같은 취업 기회는 매우 불완전한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 노동자의 임금이 지극히 낮고 복지 혜택이 전혀 없기 때문이며 둘째, 노동 환경이 극히 열악하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의 값싼 노동력은 노동자의 복지를 박탈하고 노동자의 생명을 가불해 얻은 것이다. 많은 국제인권단체가 이미 오래전부터 중국 정부가 노동자의 권리를 무시하고 있다고 비난해 왔기에 로치가 이 사정을 몰랐을 리는 없을 것이다. 중국의 경제성장 모델은 임금 및 소비 대 국내총생산의 비율을 끊임없이 낮춰 수출과 투자에 의해 경제성장을 이끄는 것으로, 외연형(外延型) 성장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외연형 성장은 빈곤층에게 불리한 성장이다. 즉, 닭을 길러 계란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알을 낳는 닭을 잡아 뱃속의 계란을 내다 파는 모델이라 성장의 지속성이 없는 것이다. 이 점은 러시아의 사례와 비교하면 분명해진다. 1999년부터 2006년에 걸쳐 러시아의 경제 성장률은 평균 6%, 경제 총량은 70% 증가했다. 이와 동시에 러시아의 임금과 평균 소득은 500% 증가했다. 물가상승 요인을 제외해도 평균 소득의 실질 증가율은 200%를 넘고 있다. 이 8년 동안, 러시아의 평균 실질임금과 실질 소득 증가는 일인당 국내총생산 증가의 3배 이상이 되고 있다. 이와 비교해 중국 제조업에 있어 노동 가격은 90년대가 되어 간신히 고도성장에 접어든 인도보다도 10% 낮다. 닭 죽이고 알 빼내는 식 성장 이러한 중국의 특색 있는 경제성장은 알을 낳는 닭을 죽이고 계란을 빼내는(빈곤층에게서 약탈함으로써 그들의 구매력을 고갈시키는) 성장 방식이다. 원자바오가 "지속적 발전은 불가능"하다고 한탄한 것은, 이미 "알"을 꺼낼 수 없게 돼 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이 직면한 선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약탈을 지속해 중국을 수렁에 빠뜨리고 붕괴에 이르는 것, 다른 하나는 분배 시스템을 개혁해 빈곤층에게 경제성장의 성과를 나눠주어 정부가 계속해서 알을 빼내는(즉, 지속적 발전) 것이다. 로치 같은 친중파는 아주 많다. 이런 사람들은 자유국가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일단 중국과 접촉하면 거기에 물들어, 그 특수한 지위에 의해 중국 정부에 대한 이미지를 호전시키고 중국 정부의 "좋은 친구"가 된다. 또, 중국에서 사업상 이익을 얻는 데 성공한다. 이처럼 중국 정부가 "좋은 친구"라고 보는 사람은 결코 중국 인민의 "좋은 친구"는 아닌 것이다. <화샤(華夏)전자보 186호 전재> ▶ 허칭롄(何淸漣) 교수는 중국 상하이 출신으로 상하이 재정경제대 교수와 미국 시카고대 연구원을 거쳐 현재 프린스턴대 객원연구원으로 재직중이며, 중국 개혁개방의 맹점을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중국 현대화의 함정"의 저자이기도 하다. 중국에서 100만 권 이상 팔린 이 책은 한국에서 "중국은 지금 몇시인가(홍익출판사)"로 출판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1. 대외 개방정책이 중국정치 경제에 미치는 중대한 영향 중국은 WTO 가입 5주년이 지난 시점에 큰 산을 앞에 두고 있다. WTO 가입 회원국은 자국의 역량을 국제시장에서 활동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시킬 때까지 개방유예기간을 갖는데 그 기간이 5년이다. 중국은 이 개방유예기간이 작년으로 끝났고, 약속한 금융시장을 개방해야한다. 하지만 중국은 교묘하게 대외 개방정책을 조정하고 개방과정에서 축적해온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WTO의 원칙규정에 위반하지 않는 정도로 개방을 진행해 오고 있다. 중국의 진실한 문호개방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외자, 특히 금융자본 그룹의 실망은 깊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외쳐대고 있는 이 "개혁 개방"이라는 것이 일찍이 덩샤오핑때부터 내건 기치로써 소위 "현대화의 길" 이라고 한다. 이 "현대화의 길" 을 또다시 1990년대 후반에는 검토까지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개혁 개방"의 이미는 무엇인가? 중국 내 학계와 민중 대부분에게 "개혁"은 정부가 민중의 이익을 가로채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중국정권, 어용학자는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중국 현대화의 양 날개 중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소위 "개방" 뿐이다. 중국정부가 말하는 "개방"은 정치적 개방도 정치문화 개방도 아닌, 경제개방을 가르키는 것이며, 정치와 무관한 유행문화의 개방이 포함된다. 정치에 있어 중국은 20년 가까이 U턴을 해왔다. 개혁 당초 민주정치 건설을 위한 학습이 제기됐지만, 작년 민주건설 백서에서는 서방의 민주정치는 중국의 국정에 맞지 않는다고 평가하고 학계의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전통문화로 회기해 중국식 왕도를 실시해야 한다고 떠들고 있다. 또, 정치문화상, 80년대, 90년대 전반기에는 미국 200개 대학에서 채용된 교과서 "민치정치"와 같이 미국의 민주정치에 관해 소개한 서적이 적지 않았지만, 현재 이러한 출판물들을 세상에 발표하는 일은 기본상 불가능하다. 경제 개방으로 중국은 적지 않은 수혜를 입었다. 대표적인 것은 자금 고갈에 통감하고 있던 중국에 대량의 혈액을 수혈한 것이다. 20년이 지난 후, 특히 90년대 중후반기 이후, 구미의 다국적 기업이 앞 다투어 중국에 진출하고, 외자는 국유기업, 민간자본과 함께 3대 경제지주의 하나가 되었다. OECD가 올해 1월 발표한 바에 의하면, 2005년에 영국이 받아들인 해외 간접투자는 2190억 달러로 세계 1위, 미국이 1060억 달러로 2위, 3위가 중국으로 600억 달러였다. 정치적인 수혜도 뚜렷했다. 중국이 구소련과 다른 것은 소련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왜 중국은 분명 공산주의 소련과 마찬가지로 공산국가이면서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해갈수 있었는가? 그 이유는 현재 국제 경제의 재편이 소련, 동유럽 경제단위와 구미, 일본의 자본주의 경제권으로 분단되어 있었던 것이다. 경제이익에서 그 어느 나라와도 교착이 없어 정치상 이익도 분립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외자를 도입한 뒤부터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다국적 그룹이 중국에 진출함에 따라, 그들은 자국의 정치 흐름에 중요한 영향을 초래했다. 예를 들면, 중국에 진출한 많은 대기업이 미국 워싱턴 국회에서 로비활동을 하고,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로 로비활동을 한다. 결과적으로 이렇다. 다국적 기업들의 적극적인 로비활동은 각국 정부가 중국의 독재정치, 열악한 인권상황에 관해 용인하는 태도를 갖게 했다. 이 상태는 현재 이러한 단계까지 이르렀다. 즉, 인권단체가 중국정부를 비판하면, 중국 정부가 표면에 나서 변명할 필요없이, 해외에 있는 중국정부의 이익 대변자가 스스로 변명하고, 로비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외국정부가 중국을 제제하려고 할 때, 만나게 되는 주된 곤란은 중국정부로부터의 반발이 아니고 자국의 대자본그룹으로부터의 반발이라고 한다. 따라서, 근래 수 년동안 이렇듯 기묘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즉, 국내에서 줄곧 경제정세는 결코 낙관적이지 않지만, 해외 투자자는 자신있게 중국경제의 독주를 칭송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의 정치상황은 부단히 후퇴하고 있지만, 해외 여론은 중국정부가 또 정치개혁을 실시했다, 중국정부가 언론개혁을 시도하고 있다는 소식을 계속 흘려 보낸다. 물론 이러한 선전이 결국 빈 수레로 끝났지만, 이들 이익 대변자들을 비난하는 자는 몇 사람이나 될까? 2. 민족주의 대두와 중국 경제환경의 중대한 변화 중국 열풍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작년 이후, 시멘스를 포함한 전력 기업 등, 일부 외자가 중국에서 철수하고 동시에 해외에서는 중국이 해외투자자의 천국인지, 아니면 무덤인지를 모색해보자는 목소리가 높다. 일부 숫자에서도 밝혀지듯이 중국내 외자의 좌초상황은 놀랄만한 것이 있지만, 이러한 목소리가 초래하는 효과는 상당히 미약하다. 그 원인은 각 산업별 이익이 다르다는 것이다. 제조업, 전력산업은 중국에 진출한지 오래지만, 마침 이들이 철수하는 시점이 바로 금융업의 거두가 중국문호개방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시기와 같다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중국 금융업에 대해 과도한 기대를 갖고 있다. 이 시점에 중국 민족주의가 대두됐다. 이것은 민간인에 의한 민족주의와는 다르며, 배후에 있는 이익집단이 선동한 것이다. 2006년 8월2일, 국가발전개혁위원회에 속하는 투자연구소는 "중국증권보"에서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즉 중국정부는 전문기관을 만들어, 외자에 의한 국유기업의 M&A를 "엄격하게 심사"하고 "외자 투자가 초래하는 다양한 폐해를 방지"해야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폐해"가 가리키는 것은 "충실한 자산을 가진 외국기업이 중국의 전략적 공업계통 지배권을 빼앗고 있다"는 것이다. 美투자 회사 "카라일"과 중국의 건설기계 대기업 "쉬궁그룹"의 M&A를 둘러싼 교섭이 오랫동안 진행되어 왔지만, 이것 역시 "쉬궁그룹"이 단연 자국기업의 전략적 의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카라일"에는 강력한 정치적 배경이 있으며 이 사건은 "애국"과 "매국"의 분쟁초점이 되고 있다. 실제, 중국의 민족주의는 나날이 대두되고 있으며, 외자 제한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하루 이틀 사이에 시작된 것도 아니다. 민족주의자들은 계속해서 선동 문장을 발표하고 있다. 하나는 국무원연구발전센터가 발표한 보고서로서 이 보고서는 외자로 인해 중국산업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증거로써 폭 넓게 인용되고 있다. ...중공 공안부 부부장 류진궈(劉金國)는 11월 6일, 사회 치안 종합치리회(社會治安綜合治理會)에서 올해 1월부터 9월 사이에 전국 공안기관이 처리한 각종 민중 사건은 합계 1만7천9백 건으로 전년 대비 22.1%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해외에서는 조화사회건설 영합을 위한 조작된 수치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중국 국가신용등급이 크게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통계 수치는 통상적인 대외 선전용이라는 게 해외 언론이 우려하는 주요 논점이다. 또한 대폭적인 감소는 나름대로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여하튼 시야를 가리고 있는 안개를 걷어내고 원인을 분석해 봐야 한다. 최근 몇 년간, 중국 내 민중 항쟁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해외 언론이 자주 다루어 온 지난 3년간의 통계자료인, 2003년에 58000건, 2004년에 74000건, 2005년은 87000건에 의하면, 대부분이 정부에 의한 토지 강제징수, 주택 강제 퇴거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와 같이 민중 항쟁의 특징은 생존권 박탈과 직결되어 있으며 양상은 점점 격렬해 지고 있다. 이러한 민중들의 권리항쟁을 완화시키기 위한 중앙정부의 조치 또한 전무한 상태임에도 중공 당국은 민중항쟁이 전년대비 22.1% 감소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바이두(중국 검색 사이트)에서 "군체성 사건(군중 사건) 응급예안"이라는 9자를 입력하면, 58400여건의 자료가 나타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중앙정부는《국가 대규모 군체성 사건예안》을 발표한 것 외, 각 지방 정부에 대해 경찰력 투입을 강화할 것과 구체적인 책임범위, 관리들에게 민중 항쟁 수치를 정치실적 평가 지표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각 지방 정부는 이러한 민중항쟁에 대한 세부 지침을 일선에 하달, 각 부문은 전국에 보편적으로 적용된 "응급예안"외에도 각지의 특수상황에 근거한 대응 방식을 마련하고 있다. 예를 들면, 헤이룽장성에 있어서는 최근 음식물 중독 사건이 빈발했지만, 성 정부와 관할 시, 현은 이런 종류의 사건에 대해 "무단강시 약품 돌발성 군체 불량 사건 응급예안"라는 응급예안을 책정하고 있다. 다른 지방에서도 "샤먼시 출조기차행업 군체생 사건 응급예안", "선전시 교육 계통예방과 처치 군체성 사건 응급예안"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중국 중부 지역를 대표하는 후난성에서는 성위원회, 성 정부가 "산자(三甲)사건, 다오린(道林)사건, 훙장(洪江)사건, 루청옌서우(汝城延壽), 샤오위안(小垣)사건 등 중대 민중 사건의 교훈을 진지하게 검토, 전략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규범적이고 질서 있는 제도를 만들었다"고 선언, "후난 중대 군체성 사건 응급 처치예안", "후난성 공포 사건 응급예안", "후난성 엄중 폭력 범죄 응급예안"등 10여 개의 응급예안을 발표했다. 또, 2004년의 1년에만 성위원회와 성 정부는 성 공안청의 특별 경찰, 무장 경찰특근대대에 대해 22억 위안 상당의 반 테러 장비를 배치했다. 이러한 응급예안들을 해독해 보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공통되는 특징이 있다. "▲사전방지에 주력하고, 모든 방법을 동원해 돌발적 공공 사건 발생을 막는다. 방지할 수 없거나 이미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최대한 악영향, 재난적인 결과를 피하도록 한다. ▲지위에 따라 책임을 지고 책임은 개인에게 돌아가며 이를 위해 명확한 직책 관리 체계를 구축한다. ▲전문가가 책임을 지고 말단 부문의 정보 수집에 임한다." 이상과 같은 사실에서 중국 내 민중 사건이 급감한 이유는 지방 정부가 정치 실적을 고려해 축소, 허위 보고를 한 것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이는 정부가 사회 통제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무장능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조화 사회"란, 정치적 폭력에 의해 항의자들을 억압하고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