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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금융기관 ‘크레디트 스위스(Credit Suisse)’가 중국에서의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수십 년간의 낮은 성장률과 규제 악화로 중국 관계를 재검토하고 있는 여타 해외 경쟁자들과는 차별화된 행보다. 크레디트 스위스는 11월 2일, 자사가 33,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합작투자회사, 크레디트 스위스 설립자 증권을 통해, 중국 국내증권 거래 종합증권사를 설립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증권사는 선전의 치앤하이 자유 무역 지구에서 운영되며 중국과 외국기관 투자자들을 고객으로 유치할 예정이다. 스위스 은행(Swiss Bank)은 상하이-홍콩 주식 거래선을 선전 및 향후 다른 시장으로 확장함으로써 보다 많은 국내 수요를 예상하면서 중국 증권업 비즈니스를 강화하고 있다. 널리 인용되는 MSCI 글로벌 신흥시장 지수에 중국A주가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도 크레디트스위스의 해외사업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번 발표로 인해 크레디트 스위스는 중국 증권업 진출 역량이 있는 해외은행인 골드만삭스, UBS(스위스 금융기업)와 더불어 중국에 합류하게 된다. JP모건의 퇴장 크레디트 스위스의 결정은 JP모건이 현 합작 투자사 JP모건 퍼스트 캐피탈과 결별을 선언한 지 한 달 뒤에 나왔다. JP모건은 퍼스트 캐피털 지분 매각이 중국 시장에서의 완전 퇴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JP모건이 중국에서의 사업 모델을 재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JP모건은 2010년, 자산 및 채무 인수를 위해 중국 벤처를 설립했으며, 크레디트 스위스와 마찬가지로 33.3%의 지분을 보유했다. JP모건 퍼스트 캐피털은 수익성은 높지만, 규모가 작다는 것이 장애이다. 이 합작 벤처는 지난해 순이익이 1800만 위안(30억 6396만 원)에 미치지 못했다. 은행들이 리스크 관리와 자본 배분에 대한 주주 및 규제기관의 정밀조사를 받는 이런 시기를 맞아, 서방 은행들은 중국 진출의 가치를 꾸준히 검토해 왔다. 중국 진입 차단 중국 정부는 은행업을 핵심 국가 산업으로 간주하고, 외국 은행들이 보유할 수 있는 경영권과 경제적 노출(economic exposure)을 제한한다. 월 스트리트 은행들은 현지 합작 법인을 구성해야하며 소수 지분으로 제한된다. 처음에는 소유권 한도가 1/3이었지만 2012년에는 49%로 늘어났다. 아직까지 소유권을 높이기 위한 조치를 취한 외국 은행은 없다. 20년도 더 전에 중국이 표면상 시장 개방을 한 이래, 대체로 해외 기관들은 중국에서 거의 진전을 보지 못했다. 모건 스탠리는 중국건설은행과 합작 투자하여 중국국제자본공사( CICC)를 설립한 최초의 외국인 투자 은행이었다. 현재 CICC는 더 이상 모건스탠리 소유가 아니다. 모건 스탠리는 당국이 지분소유 늘리는 걸 거부하자, 2010년에 지분을 매각했다. CICC는 현재 중국에서 가장 큰 투자 회사 중 하나다. 외자와 국내자본 조인트 벤처의 대부분은 수익을 내고 있지만, 중국증권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사업 규모는 미미한 경우가 많다. 2015년 UBS는 2억9천6백만 위안(503억 8512만 원)의 순이익으로 가장 수익성이 높았다. 그러나 그 액수은 중국 최대 투자 은행인 시틱증권 수익의 2%에 불과했다. 외국 은행의 경우, 경영 통제권이 약해 처음 생각한 것보다 사업을 확장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중국이 채권 및 주식 발행 시장에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시장으로 성장하는 동안, 외국인 투자 은행은 이 호황에 참여하지 못했다. “해외 투자은행은 중국에서 M&A 기회를 상실해 왔다.” 글로벌 회계법인 EY의 아시아 태평양 금융서비스의 시니어 파트너인 케이스 포그슨이 올해 초, 영국 금융잡지 <유로머니(Euromoney)>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수수료 수입이 감소되어왔다. 중국에 있는 투자은행의 수익이 줄어들면서 투자은행들은 팀 규모를 줄였다. 투자은행은 몇몇 경우 중개 수수료 협상에서 제외되고 있고, 협상 및 기타 서비스에 대한 수수료를 더 많이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이 아시아 최대이자 세계 제2의 경제대국에서의 이야기인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베이징에 아시아 지역 본부를 둔, 유일한 서방 투자은행이었다. (얼마 전 아시아 지역본부장 마크 슈워츠가 은퇴를 선언했다.) 오늘날, 한 때 모두들 갈망했던 중국 투자은행 진출은 더 이상 성공한 글로벌 은행의 품질보증 마크가 되지 못한다. 그리고 베이징의 가혹한 외국인 투자 정책으로 인해, JP모건의 움직임은 앞으로 있을 흐름의 시작일 뿐이다.국제 정세와 외교는 트럼프의 약점으로 꼽혀왔다. 이 분야는 미국 대통령이 권력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는 분야다. 트럼프 당선 후 국제 정세와 한반도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2006년 10월부터 지금까지 북한은 제5차 핵실험을 마쳤다. 전문가들은 5년 내에 북한이 약 100개 분량의 핵탄두를 생산할 능력을 갖추게 되며, 미국 대륙까지 도달 가능한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트럼프가 취임 후 직면할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가 북한의 핵 위협이 될 것임을 의미한다. 미국은 1970년대부터 북한의 핵무기 개발 문제에 주목해왔고 1988년에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국제사회에 정식 통보했다. 1994년에는 미국과 북한의 충돌이 극에 달해 제2차 한국전쟁 발발 위기까지 갔으나 카터 대통령이 북한과 협의를 체결해 위기를 해결했다. 트럼프의 경선 홈페이지에 공개된 외교 정책 중에는 북한 문제 해결에 대한 청사진이 특별히 제시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4월 27일 미국의 싱크탱크 미국이익센터(Center for the National Interest)에서 발표한 외교 정책 관련 연설을 살펴보면 향후 트럼프가 취할 정책 방향을 파악할 수 있다. 트럼프 외교 정책 ‘미국의 안전과 이익 우선’ 트럼프는 4월 연설에서 만약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외교 정책에서 미국의 안전과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역 공동 방위 문제에 대해서도 트럼프는 미국이 해외에 많은 군사기지를 두고 방대한 군사비를 부담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 비용은 해당 기지가 있는 각국에서 지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아시아 동맹국 정상 회의를 개최해 군사비 부담 문제를 논의할 것이며 아시아 지역 전략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어떤 지역의 도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 전쟁밖에 없다면 주저 없이 군대를 파견할 것이며 미국이 참여한 전쟁은 반드시 승리한다고도 말했다. 트럼프, 한미 동맹 유지할 것 이를 보아, 트럼프는 한미 동맹을 배제하지는 않을 것이며 한반도 지역 안전을 지속적으로 수호할 전망이다. 또한 북한의 도발에 대해 한국과 새 전략을 구상하게 될 것이다. 대체 방법이 없다면 미국은 전쟁 발발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며 전력을 다해 승리를 거머쥘 것이다. 유일하게 바뀔 수 있는 것은 미국이 한국과 군사비 부담 문제를 논의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트럼프는 당선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국에 대한 보호 정책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인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우리는 변함없이 당신들과 함께 할 것이며, 한국과의 합력을 공고히 하여 북한의 위협에 대항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전(前) 이란 대사, 전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크리스토퍼 힐은 북한의 위협에 대해 트럼프는 행동을 취하길 원하며, 미국은 여전히 아시아 지역의 안전 협정을 이행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트럼프, ‘중국 압박해 김정은 제거’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트럼프는 “김정은은 수작을 부릴 수 있고, 우리도 그와 놀아줄 수 없다. 그는 진짜 미사일을 갖고 있고, 진짜 핵 공격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중국에 각종 수단을 통해 김정은을 사라지게 만들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그는 김정은과 만날 용의도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CBS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중국을 압박해 북한에 경제 제재를 취하게 할 것이다. 중국은 북한을 통제할 능력이 있다. 중국이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제재 수단이 있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 문제에 대해 트럼프는 2000년 출판한 자신의 저서 ‘우리에게 걸맞은 미국(The America We Deserve)’에서 더 늦기 전에 ‘확실한 군사 공격(surgical strike)’을 취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이자 가장 고속으로 성장하는 모바일 결제 시장이다. 중국의 최고 인기 있는 서비스가 해외로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알리페이는 중국 최대의 모바일 결제 서비스다. 지난달 미국에서 결제를 가능하게 할 몇몇 새로운 파트너쉽 체결이 베일을 벗었다. 알리페이는 중국 인터넷 거대기업 알리바바에서 기업분리된 앤트 파이낸셜 서비스의 결제 서비스이다. 알리페이의 미국 진출은 베리폰 홀딩스와 신용카드 회사, 퍼스트 데이터와의 딜로 시작됐다. 알리페이는 최근 몇 달 동안 영국과 독일, 타이, 호주의 로컬업체들과 손잡으며 해외시장으로의 확대를 공격적으로 진행했다. 서구 미디어들은 이런 움직임을, 매년 1억 5천만에 달하는 중국인 해외 여행자들을 위한 서비스로 설명해왔다. 알리페이는 선호되는 결제 방식 순위에서 비자와 마스터카드, 차이나 유니온페이와 어깨를 겨룬다. 그러나 이 회사의 야심은 중국 여행자들에 대한 서비스 너머에 있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우리는 앞으로 10년 안에 20억 사용자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알리페이의 국제부문 책임자 사브리나 펑이 최근 로이터에 밝힌 말이다. 이 회사는 10년 후에는 결제의 60%가 중국 밖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정도의 규모는 글로벌 주류가 알리페이 서비스를 채택해야 가능하다. 중국의 모바일 월렛 지난 해 중국은 세계 최대 모바일 결제 시장으로서 총거래액이 미국을 넘어섰다. 이마켓터 추정에 따르면, 중국에서 스마트폰을 지갑으로 사용하는 인구가 2억을 넘었다. 4억 5천만 계정을 보유한 알리페이는, 68%의 시장점유율을 가진 중국 최대 모바일 결제 플랫폼이다. 라이벌인 텐센트 홀딩스가 운영하는 위챗페이(텐페이)와 합치면, 두 플랫폼이 89%를 점유하고 있다. 중국시장에 가장 최근 발을 들여놓은 신참은 애플의 애플페이다. 애플페이는 더 신속한 시장 점유를 희망하며, 차이나 유니온페이와 최근 딜에 사인을 했다. 모바일을 통한 결제는 단순하다. 알리페이나 위챗앱에서 ‘결제’버튼을 누르면, 앱은 사업자가 스캔할 수 있는 QR 코드를 생성한다. 그리고는 디지털 영수증 카피를 보관한다. 또한 NFC(무선 근거리 통신)호환 하드웨어는 앱을 열지 않고도 결제할 수 있도록 해준다. 모바일 결제와 더 광범위한 인터넷 뱅킹 시장은 항상 알리바바와 중국 최대 SNS 위챗을 운영하는 텐센트 사이의 양두 체제였다. 2년 전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인터넷뱅킹과 모바일 결제, 택시서비스 등 복합적으로 겹치는 전선에서 격렬한 경쟁에 몰두하고 있었다. 모바일 뱅킹 분야에서의 그들의 경쟁은 2015년 음력 새해 연휴기간에 아주 격렬해졌다. 이 기간 두 서비스가 모두 신규 사용자를 끌어 들이기 위해 ‘홍바오(紅包)’ 현금 프로모션과 다른 보조금을 활용했다. 2015년 중반, 텐센트는 잠깐 동안의 침체를 겪은 후 알리바바와 경쟁 부문을 축소시켜 왔다. 텐센트가 자금을 댄 택시 서비스 디디는 알리바바의 택시서비스 콰이디에 인수되어, 디디콰이디로 변했다. 현재 이 회사는 디디추싱으로 불리고 있고, 중국 최대의 차량공유회사로서, 최근 우버의 중국사업을 인수하기로 했다. 텐센트의 온라인 은행 위뱅크는 대출개시 활동에서 알리바바 계열사, 앤트 파이낸셜과 비교해 출발이 늦었다. 앤트는 또한 펀딩을 잘했다. 올해 초 앤트의 시리즈B 투자설명회에서 회사는 600억 달러(70조 800억 원) 자산가치로, 세계에서 가장 자산가치가 높은 스타트업의 하나로 평가됐다. 알리페이와 앤트의 최근 선전 탓에, 텐센트는 올해 초 고객들이 자신들의 은행에서 위챗으로 현금을 이체할 때, 수수료를 없애기에 이르렀다. 급격한 글로벌 확산은 어려울 듯 알리페이는 중국에서는 만나본 적 없는 가파른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알리페이에 대해서 가장 주목되는 점은 글로벌 결제 인프라와의 통합성 부족이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시장은 안전하게 온라인 구매를 하기 위한 견고한 장치를 갖추었다. 중국은 이점이 부족하다. 세계은행은 중국소비자의 16%만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다고 추정했다. 많은 소상공인, 특히 좀 더 선진화된 도시권 외의 상인들은 신용카드나 직불카드를 받지 않는다. ...10월 25일, 세계 각지에서 모인 파룬궁 수련자 2천여명은 샌프란시스코 시청 광장에서 대형 집회를 개최, 파룬궁 박해를 멈출 것을 중국공산당에 촉구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민주대학 총장 탕보차오의 연설이 있었다. 아래는 주요 연설 내용이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벌써 27년이 되었습니다. 저도 이제 반백세가 넘었네요. 그렇지만 저는 머지않아 중국공산당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오늘은 따로 연설문을 준비하지 않았는데요, 파룬궁 대형 집회에서 연설문 없이 연설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앞서 연설하신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느낀 점이 많은데, 사전에 준비했던 원고에는 그런 부분이 표현되지 못해서 이렇게 즉흥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오늘 저는 세 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는 공산당의 폭력을 비판하고, 두 번째로는 여러분께 국내에서 일어난 권리수호 투쟁에 대해 알려 드리고, 세 번째로는 여러분을 향해 가장 숭고한 경의를 표하고자 합니다. 인권 침해는 우리 모두가 계속해서 이야기해 온 주제입니다. 오늘은 새로운 주제를 하나 꺼내고자 합니다. 바로 중국공산당은 어째서 파룬궁 수련자를 대상으로 생체장기적출을 자행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공산당은 사람의 장기를 산 채로 적출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동물이 아니라 사람의 장기를 말입니다. 파룬궁 수련자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장기도 적출했습니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국제사회는 이에 대해 계속해서 반응을 보여 왔습니다. 지금도 국제 주류사회에서는 비난을 보내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도대체 왜일까요? 그것은 바로 중국공산당이 너무나도 사악하기 때문입니다. 나치는 2차 대전이 종전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는 나치가 중국공산당만큼 사악하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뿌리입니다. 중국공산당은 금전을 사용해 세계를 매수하고, 무력을 사용해 세계를 위협하며, 거짓말을 통해 세계를 속이고 있습니다. 그 결과 전 세계는 중국공산당에 의해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2차 대전보다 심각한 죄악, 즉 생체장기적출이 자행된 이후에도 전 세계는 여전히 침묵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에 저는 종종 생각에 빠지고는 합니다. 이 세상은 언제, 어떤 상황이 되어야만 비로소 모두가 양심을 발견할 수 있게 될까 하고 말이죠. 저는 자주 자문하고는 합니다. 생체장기적출보다 더 심한 죄악이 또 있을까? 만일 이 세상이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 저는 정말로 너무나 실망할 것입니다. 심지어 절망에 빠져 여러분께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선량하지 못한 사람은 아름다운 생활을 얻을 자격이 없다고 말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원망하고 또 한탄하고는 합니다. 이 세상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하고 말입니다. 이는 전 세계 주류 언론들이 양심 앞에서 여전히 입을 꾹 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올해 대만에서 동심회(同心會)에 참석했습니다. 대만 분들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소위 ‘애국동심회(愛國同心會)’라고 하는 단체는 사실 중국공산당의 주구(走狗)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자신들이 대만에서 경찰과 파룬궁 수련자, 아니 자신들을 도발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공격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이 얘기를 듣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럼 나한테도 감히 도발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들의 배후에는 조직폭력단이 있고, 최종 배후에는 당연히 중국공산당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저를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키가 180센티미터로 한 덩치 하는데요, 동심회 노인 몇 명과 말라깽이 여성 몇 명이 이런 저를 때리려고 하더군요. 어디서 난 배짱일까요? 물론 마지막에는 결국 저에게 제압당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경찰에게 그들을 인계했습니다. 그들은 울며불며 탕(唐)가 놈이 노인과 여자를 괴롭힌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괴롭힌 것은 노인도 여자도 아닙니다. 악당이죠. 이 일로 조직폭력단이 저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더군요. 저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난 중국공산당도 안 겁나는데 너희 조폭 따위를 겁내겠냐고요. 저는 오늘 느낀 점이 참 많은데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제 자랑을 하자는 게 아니라 여러분께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께서는 매일같이 이런 조폭들을 맞닥뜨리고 계십니다. 홍콩에서는 청관회, 대만에서는 동심회, 플러싱에서는 리화훙(李華紅) 같은 이들, 이런 마귀 같은 자들을 여러분은 벌써 예전부터 매일같이 맞닥뜨려 오셨습니다. 제가 어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49년 이래로 3반(反)5반 운동부터 시작해서 각종 비밀결사, 반우파 운동, 문혁, 지식인 박해, 그리고 6.4 대학살에 이르기까지, 중국공산당은 수많은 사람들을 진압해 왔습니다. 오늘날까지 살아남아서 계속 저항하고 있는 집단은 여러분, 오직 파룬궁 외에는 없습니다. 저는 89년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학생 출신입니다. 그해 함께 싸웠던 전우들 가운데 오늘날 제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팡정(方政) 딱 한 사람뿐입니다. 팡정은 그해 탱크에 깔려 두 다리를 잃었습니다. 오늘 현장에 와 있는데요, 그에게도 경의를 표합니다. 다른 친구들은, 지금 다들 어디 있나요? 저는 오늘 이 자리를 빌어 파룬궁 수련자 여러분께 숭고한 경의를 표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이처럼 버텨주고 계신다는 사실은 저에게 정신적인 지지가 됩니다. 여러분은 제가 지금까지 계속해서 민주, 인권 활동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큰 동력입니다. 제가 매년 이곳을 방문하는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양분을 흡수하고, 여러분의 경험을 배우며, 여러분으로부터 정신적인 격려를 얻음으로써 이상을 계속해서 추구해나가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말하고자 하는 첫 번째 이야기는 여기까지였습니다. 두 번째로 저는 여러분께 오늘날 중국공산당이 어떤 지경에 이르렀는지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두 가지 예시를 들 수 있는데요, 첫 번째 신호는 우칸(烏坎)마을 권리수호 투쟁입니다. 주민이 1만 명밖에 되지 않는 이 마을은 촌장 린주롄(林祖戀)이 잡혀가자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중국공산당에서는 무장경찰 3천명을 투입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경찰들을 마을 바깥으로 때려서 몰아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신호입니다. 1989년에는 학생 백만 명을 진압했던 그들이지만, 이제는 마을 주민 2만 명도 진압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왜일까요? <9평(九評)공산당>이 퍼지면서 진상이 드러나고, 중국공산당이 얼마나 쓰레기 같은 조직인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되자 이제는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신호는 2주 전에 일어났습니다. 지난 10월 11일 퇴역군인 1만 5천명이 중국공산당 군사위원회를 포위했습니다. 1천 5백명이 아니라 1만 5천명입니다. 1999년 파룬궁 수련자들이 중난하이에서 만인청원(萬人請願)을 벌였을 당시의 인원이 이 정도였죠. 중국공산당 군사위원회가 어떤 조직입니까. 바로 천안문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기도 했던 중국공산당의 국가적 진압도구입니다. 그런데 이런 군사위원회를 한때 군인이었던 퇴역군인들이 포위했다니, 정말 극적인 변화 아닙니까? 이들 가운데는 89년 당시 학생들을 진압했던 군인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 그들이 이제는 중국공산당 군사위원회를 포위했습니다. 일주일 전에는 광둥성 민정청 입구에서 퇴역군인 1천5백명이 한 줄로 서서 구호를 외쳤습니다. 구호 중에는 ‘공비(共匪)를 타도하자’는 구호도 있었는데요. 공비라는 말은 예전에 장개석이 공산군을 가리켜 부른 호칭이라는 건 다들 아실 것입니다. 이들 퇴역군인들은 깨달은 것입니다. 자신들도 한때 바로 그 공비였지만, 이제는 공비와 철저히 분리되어 국민의 편에 서야 한다는 것을 말이죠. 이들이 공비를 타도하자고 외친 것은 이 때문입니다. 공산당이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는 데는 두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군대와 거짓말이 그것입니다. 거짓말은 이미 파룬궁 수련자들과 모든 정의로운 이들에 의해 폭로되었습니다. ‘우리는 무기가 없는데 어떻게 폭정을 끝낼 수 있겠느냐’고 저에게 묻는 분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앞으로는 중국공산당 군대가 우리 군대가 될 것이라고요. 그들이 총부리 방향을 돌리는 그날이 바로 중국공산당이 끝나는 날입니다. 퇴역군인들이 ‘공비를 타도하자’고 외쳤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언제라도 총부리를 돌려 중국공산당을 쏘기 시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 온도는 이미 끓기 시작하는 임계점에 다다르기 일보 직전입니다. 첫 번째 기포가 이미 올라왔습니다. 기포, 바로 저라는 그 기포는 벌써 27년이나 기다려 왔습니다. 가오즈성(高智晟) 변호사께서는 2017년에 중국공산당 폭정이 막을 내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렇게 될 가능성이 무척 높다고 믿습니다. 2017년 아니면 2018년, 그것도 아니라면 가까운 미래에 그렇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집회는 마지막 집회, 아니면 마지막에서 두 번째 집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저는 우리가 여기에 서서, 내년에도 다시 여기에 서서, 한층 고무적인 소식을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만일 우리의 민주 권리수호 투쟁이 성공할 경우 저 뿐만이 아니라 모든 중국인, 그리고 이 세상에서 중국공산당의 박해를 받아왔던 모든 사람들, 중국공산당에 의해 피해를 받은 사람들이 모두 과거를 돌아보고 여러분을 향해 참회, 속죄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 때 여러분의 편에 서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자신들에게 광명을 되찾아주어 고맙다고, 용서를 구하고자 할 것입니다. ...중국기업들이 민첩하게, 소리없이 해외자산을 모으고 있다. 딜로직 데이터에 따르면, 2016년 들어 9개월 동안, 중국의 해외 M&A 활동은 총 1,740억 달러(197조 7684억 원)에 이른다. 처음으로 미국을 넘어섰다. 중국의 M&A는 전통적인 자원 관련 산업을 넘어서서 첨단 기술, 운송, 미디어, 소비재 등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국가의 규제를 받는 중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 확대는 베이징의 소프트 파워를 곳곳에 깔고, 세계 소비자들에게 영향력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의 해외확장을 위해 선두에 선 기업 5군데(모두 민간기업이지만 정권과 커넥션을 가지고 있다)를 살펴본다. 안방보험 안방보험이 처음으로 국제적인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스타우드 호텔과 리조트를 구입하기 위해 140억 달러(15조 9,026억 원) 규모의 의향서를 내고도 실패를 했을 때였다. 하지만 그 일로 미국 호텔 업계에서 안방의 자취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안방은 최근 미국 민간자산회사 블랙스톤 그룹이 소유하고 있던, 센트럴 파크 사우스의 상징적 건물, JW 매리어트 에섹스 하우스를 포함, 미 전역에서 16개의 호화 특급 호텔들을 65억 달러(7조 3,833억 원)에 구매 완료했다. 그것은 중국 회사에 의한 부동산 거래 중 가장 큰 규모였다.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135억 달러(15조 2,752억 원)규모의 안방의 흥청거리는 쇼핑행태를 보면, 처음에는 맨해튼에 있는 20억 달러(2조 2,630억 원)짜리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을 구입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그 후 기업과 자산의 인수범위는 한국에서부터 네덜란드까지 이르렀다. 안방은 심지어 중국에서조차 최근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던 민간 금융 회사이다. 12년 전에 베이징 기반 지역 보험 회사로 시작됐다. 최근 보험 영업 호조로 회사의 인수 합병을 지원할 보험료가 들어오면서 사업이 확장된 것이다. 그러나 미스터리는 안방의 소유권 문제다. 회사의 소유구조는 멀리 떨어진 곳의 다양한 사람들이 소유한 여러 단계 사업체를 포함하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그들은 모두 안방 회장 우 샤오후이의 친인척이나 동업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80년대 공산당 총서기였던 덩샤오핑의 손녀를 아내로 둔 우는 이상하게도 회사의 주주 명부에 올라 있지 않다고 한다. 안방은 그 보도를 부인했다. WH그룹 중국의 WH그룹이 미국의 슈퍼마켓 주요 식료품 공급자라는 것을 알고 있는 미국의 소비자들은 거의 없다. WH그룹은 슈앙후이 개발과 스미스필드 푸드, 두 개의 주요 자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돼지고기 업체이자 중국 최대의 정육 업체다. WH 그룹은 팜랜드 포크, 네이썬스 페이머스, 이름이 같은 스미스필드 같은 푸드 브랜드를 소유한 미국 돼지고기업체, 스미스필드 푸드를 슈앙후이가 71억 달러(8조 478억 원)에 적대적 인수를 한 결과로 탄생됐다. 이 거래로, 회사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식품 안전이 문제가 되고 있는 중국에, 미국산 돼지고기와 돼지고기 제품을 더 많이 판매하게 됐다. 중국 당국은 지난 달, 13년간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 조치를 부분적으로 해제하고, 30개월 미만의 특정 쇠고기 수입을 허용했다. 오염된 제품으로 악명 높은 중국산 식육시장을 고려하면, 수입금지는 다분히 정치적 동기가 있었다. 중국의 미국 쇠고기 금수조치는 2003년, 미국에서의 광우병 발생 직후 시작되었으며, 미국산이 중국 소비자들에게 평판을 잃었다. 다롄 완다 다롄 완다 그룹이 최근 프로덕션 하우스,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를 35억 달러(3조 9,672억 원)에 구입하면서, 공격적으로 할리우드로 세를 확장해나가자, 워싱턴 정치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다롄 완다는 미국 영화사를 소유한 최초의 중국회사가 됐다. 완다는 최근 몇 년간 급속하게 사업을 확장해 온 중국 부동산 개발업자이다. 완다의 첫 번째 주요 해외자산 구매 목록은 2012년에 AMC 시어터스였고, 완다는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 엔터테인먼트 벤처 회사들을 잡아채듯이 사들여 왔다. 완다의 최근 활동 중에는 미국에서 최대의 영화관 오너가 되기 위한 카마이크 시네마와의 협상과, 할리우드 제작사 딕 클라크 프로덕션을 인수하기 위한 논의도 포함된다. ...세계 각지에서 온 파룬궁 수련자들이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재 중국영사관 앞에서 대규모 촛불집회를 열었다. 22일 저녁(현지시간), 법회 참석차 샌프란시스코에 모인 각국 파룬궁 수련자 2천 여 명은 중국영사관 앞에서 지난 17년 동안 박해로 희생된 수련자들을 추모하면서 박해 중지를 촉구했다. 지린성 창춘(長春)의 대기업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던 왕롄쑤(王聯蘇)는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지난 2001년 불법 감금됐다 2013년에야 풀려났다. 현재 뉴저지에 살고 있는 그는 “지난 12년 동안 중국 감옥에서 갖은 고문을 당했다”면서 “3일 동안 물과 음식을 먹지 않고 잠을 자지 못해 동공이 확장되는 응급 상황에 이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 번은 경찰들이 그의 옷을 모두 벗기고 철제 의자에 앉힌 후, 손과 발을 묶었다. 다리와 복부는 철 파이프로 고정시켰다. 이어 사정없는 주먹질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그들은 또 찬물을 끼얹는가 하면 전기봉으로 얼굴과 가슴 부위를 검게 타들어가 갈 때까지 지졌다. 왕롄쑤는 “그들은 나를 작은 방에 15동안 가둬놓고 신앙 포기를 강요한 적이 있는데 내 머리를 콘크리트 벽에 힘껏 박거나 목을 졸라 오랫동안 음식을 삼키기조차 힘들었다. 가슴을 벽에 부딪치게 하여 숨이 멎을 정도로 심장에 큰 충격을 가하기도 했다”라고 폭로했다. 그는 “주변의 20여 명의 파룬궁 수련자들은 모두 그렇게 하여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며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사건 동영상 삽입 방송을 지휘했던 량전싱(梁振興)은 쓰핑(四平) 감옥에 함께 수감됐었는데, 피골이 상접할 때까지 고문을 받다가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번 집회에 동참한 많은 파룬궁 수련자들은 중국 감옥에서 빈번한 혈액검사를 실시했다는 등 강제 장기적출 만행과 관련된 증언을 했다. 덴마크에서 온 바오쉐전(鮑學珍)은 지난 2003년 상하이 여자 감옥에 수감된 바 있다. 그는 당시 감옥에서 단체 신체검사가 실시됐고 그 후 많은 수련자들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당시 바오쉐전이 내장 초음파 검사를 받을 때 의사는 옆에 있는 경찰에게 “이 사람의 담은 결석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직접 들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중국을 탈출해 프랑스로 간 중수란(仲淑蘭)은 지난 2012년 산둥(山東)성 여자감옥에 수감됐다. 그는 경찰이 수감자들의 음식에 정체불명의 약물을 섞어 넣는 것을 봤는데, 그 후 자신에게 고혈압, 편두통, 무릎관절통, 시력저하 등 각종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중수란은 이 때문에 지난해 조기 석방됐다 . 광둥성의 여자감옥에 수감된 바 있는 양칭팡(楊淸芳)은 풀려나기 전 감옥 측이 신체검사 명목으로 3개월 동안 무려 15번이나 채혈을 실시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매번 꽤 많은 양을 채취했는데 검사 결과를 통보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이들 파룬궁 수련자들은 지난해 중국 최고인민검찰원과 최고인민법원에 파룬궁 박해를 발동한 장쩌민 전 국가주석을 반인류죄와 집단학살죄로 고소했다.중국공산당 6중전회가 다가오고 있다. 미국이 중국 단둥 훙샹그룹 마샤오훙 회장의 비리를 폭로하면서, 장쩌민파가 김정은 정권에 핵무기를 제공했다는 일련의 관계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저우융캉, 왕민, 마샤오훙 등이 낙마하면서 장쩌민파가 북한을 장악하던 구도도 이제 무너져가고 있다. 지리적 위치상 왕민(王珉) 전 랴오닝(遼寧)성 당서기와 리펑(李峰) 랴오닝성 인민대표대회 부주임은 지린(吉林)성, 랴오닝(遼寧)성 및 북한의 국경 지역 무역을 관리한다. 지난 12년 동안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대외연락부(中联部, 중련부) 부장을 맡아왔던 왕자루이(王家瑞)는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쩡칭훙(曾慶紅) 부주석과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은 중국의 석유 업계를 장악해 왔다. 여기서 장쩌민파가 북한의 핵무기를 통제 했다는 퍼즐이 들어맞는다. 마샤오훙 사건의 내막이 드러나다 랴오닝성 당국은 지난 9월 15일 훙샹그룹과 그 책임자들이 중대 경제범죄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고 전했다. 외교부도 20일 훙샹그룹 창업자인 마샤오훙이 체포되었으며 8월 말부터 조사받고 있다고 전했다. 각 보도에 따르면 그녀는 장쩌민파가 장악하고 있는 중련부 및 리펑 인민대표대회 부주임 등과 유착 관계였다. 미국 워싱턴 고위 국방연구센터와 한국 서울아산정책연구원은 19일 공동으로 발표한 보고서에서 훙샹그룹이 북한에 핵무기 개발에 사용될 수 있는 물자를 수출했다고 밝혔다. 마샤오훙과 장쩌민파의 관계가 점차 수면위로 드러나면서 다년간 장쩌민파가 북한 핵무기 개발을 지원해왔다는 소문은 사실로 판명된 셈이다. 마침 이 시기에 리펑이 면직된 것에 대해 해외 언론들은, 표면적인 원인은 뇌물 수수지만 그가 랴오닝성 공안부장 및 성 정법위원회 서기를 다년간 역임했던 인물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또 훙샹그룹과 같이 북한 정부 및 군과 연관이 있는 기업은 성 공안 당국이 묵인해 주지 않으면 절대 순조롭게 활동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훙샹그룹은 북한에 위조 달러를 유통시키기도 했다. 중국 인터넷상에는 몇 년 전 ‘위안바오징(袁寶璟)의 부인, 착잡한 마음으로 살인범을 기다리다’라는 제목의 글이 떠돌았는데 랴오닝성 출신의 갑부 위안바오징이 사형을 당한 것은 과거 한 정법위원회 서기가 마약 범죄와 위조지폐 사업을 장악하고 있었다고 적발한 것과 관련이 있다. 그 정법위원회 서기가 리펑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왕민(王珉)이 지린성 서기를 지내다 랴오닝성으로 옮긴 후 리펑에 대한 신고는 모두 유보되었고 심지어 리펑에게 그 내용을 누설한 혐의를 받기도 했다. 문회보(文匯報)의 쟝웨이핑(姜維平) 기자에 따르면 왕민은 장쩌민, 쩡칭홍의 아우로 불렸다고 한다. 왕민의 정치 생애에서 알 수 있듯이 장쩌민파는 북중 무역에 큰 의미를 뒀다. 그는 후진타오 집권 시기 지린성과 랴오닝성 서기를 역임했다. 이 두 지역의 국경 지역은 모두 북중 무역이 활발한 지역이다. 보시라이(薄熙來)와 천더밍(陳德銘)은 이 시기에 상무부를 장악했다. 천더밍과 왕민은 모두 장쩌민 진영인 쑤저우(蘇州)에서 시위원회 서기를 역임한 적이 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참여하다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중련부는 랴오닝성 선양(瀋陽)시와 단둥시 정부에 내부적으로 ‘주재(驻在)’라고 불리는 비밀 공작실을 설립했는데, 랴오닝성 공안국과 국가안전국과 비밀스럽게 협력했다고 한다. 해외 전문가 가오신(高新)은 “마샤오훙은 중련부가 랴오닝 성에 배치한 ‘하위 판매원’이었을 수도 있고 리펑이 중련부에 추천한 인물었을 수도 있는데, 필자는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라고 분석했다. 중련부는 작년 11월부터 인사 조정을 단행했다. 장쩌민파 왕자루이가 시진핑의 최측근인 쑹타오(宋濤)로 교체되면서 전 외교부장 리자오싱(李肇星)의 비서와 링지화의 부하였던 중앙판공청 부부장 딩샤오원(丁孝文)도 지난 7월 교체됐다. 그로부터 2개월 후 외신은 중국이 북한 핵무기 개발을 지원하고 있으며, 중련부가 마샤오훙에게 이 임무를 수행하도록 지시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북한이 2006년 1차 핵실험을 단행했을때 마샤오훙은 한 중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놀랍지 않다. 예전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BBC 보도에 따르면 북한에서 대외무역을 주관하는 광선(光鲜)은행이 2004년부터 중국 단둥에 지점을 설립, 다년간 수십억 달러를 부정 송금하여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 프로젝트에 사용했다고 한다. 광선은행은 훙샹그룹 계열사 물류회사의 대주주 중 하나이다. 유엔이 2013년 대북제재 결의안을 통과시킨 후 시진핑 당국은 북한의 금융기관이 중국에서 지점을 내는 것을 금지했으며, 대형 국유은행에 광선은행의 계좌동결 조치를 내렸다. 훙샹 그룹은 2009년 5월 북한의 조선민족보험 총회사(KINC)와 합작으로 ‘홍바오(红保) 실업발전 유한공사’를 설립하여 산업재료, 전기 장비, 방직품 등의 무역을 주로 담당했다. 조선민족보 험총회사는 작년 EU 위원회의 제재를 받고 북한 핵무기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중국공산당이 핵무기 자원을 지원 1980년대 초 당시 북한의 지도자였던 김일성은 중국공산당에 농축유 제공 및 전문가를 파견할 것을 요청했지만 당시 공산당 지도자였던 후야오방(胡耀邦)이 이를 거부하여 중국 동북산 대두와 얼린 돼지고기로 이를 대신했다. ...북한의 핵 실험을 도운 혐의를 받고 있는 단둥(丹東)의 홍샹(鴻祥)그룹 총재 마샤오훙(馬曉紅)이 조사를 받았으며 이 문제는 최근 국제사회에서 큰 관심과 이슈가 됐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마샤오훙에 대한)모든 조사는 중국의 최고위층과 긴밀한 관계가 있으며 국가안전위원회,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최고검찰, 공안부, 국가안전부와 공동으로 TF 팀을 만들어 강도 높게 조사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사실로 미뤄볼 때 마샤오훙의 안건은 매우 중대하며, 철저히 조사가 이뤄져 사건의 진상이 파헤쳐 진다면 많은 사람들이 연루될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여러 방면에서 폭로한 소식에 따르면 마샤오훙은 북한 고위층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실 이외에도 중국의 4대 정재계 인맥과 연관이 있으며 4대 정재계 인맥은 중국의 중앙과 지방을 아우르고 있어 이를 통해 마샤오홍의 파워가 상당하다는 사실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단둥 지역에 폭넓은 공무원 인맥 4대 정재계 인맥 중 첫 번째 인맥은 단둥의 공무원들이다. 마샤오훙이 체포된 후 한국 언론 데일리NK는 소식통을 인용해 마샤오훙이 단둥시의 수십 명의 공무원들을 매수했다고 보도했다. 기자는 해당 공무원이 누군지 알 수는 없지만 단둥의 세관 공무원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관 공무원의 도움 없이 마샤오훙이 북한에 비밀 물품을 통관시키지는 못했을 것이다. 단둥의 세관장 장다오후(張道虎), 부 세관장 양쉬(楊旭)와 황신항(黃心航)이 분명히 포함됐을 것으로 예상된다. 단둥의 세관 외에 마샤오훙은 단둥 공안변경방위대, 단둥국가안전국, 단둥세관밀수단속 분국, 단둥출입국검험검역국, 정법위 종합처리판공실, 단둥 군분구, 단둥 국경수비검문소 등도 손을 써 놓았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기관 책임자들도 현재 의혹을 받고 있다. 또한, 단둥의 지방 관료들 중 단둥 부시장을 역임했으며 현 단둥 전인대 부주임 후이위보(回育波), 단둥 상무 부시장 순쯔하오(孫誌浩)가 특별히 주목받고 있다. 이 두 사람은 단둥시 기업연합회, 기업가 협회 지도자이며 고문위원회의 주임, 부주임의 직위를 맡고 있다. 순쯔하오는 단둥발전개혁, 세금, 인력자원사회보장, 민원, 금융, 통계 등의 업무에 있어 감사, 편제, 회계감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더불어 국경 경제협력지대, 단둥항 그룹 주식회사 연락업무를 책임지고 있다. 권력은 큰 편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으나 공교롭게도 마샤오훙은 해당 협회의 부회장인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재미있는 사실은 중국 정계와 연계된 특징을 과시하기 위해 단둥시 기업연합회 고문위원회 회원기업 리스트에는 단둥의 중량급 부처들이 포함되어 있다. 해당 부처로는 시 경제정보위원회, 시 발전개혁위, 시 주택건설위원회, 시 위원회 선전부, 시 공안국, 시 국토자원국, 시 규획국, 시 환경보호국, 시 안전검사국, 시 교통국, 시 금융판공실, 시 공상국, 시 품질검사국, 시 국세국, 시 지방세국, 시 전력공급회사, 시 민정국을 포함하고 있다. 기관의 고문직이라고는 하지만 고문과 기관은 상호 협력관계에 있다. 필자는 마샤오훙의 안건을 둘러싸고 단둥의 수많은 공무원들이 관련되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랴오닝성의 성급 관료들 두 번째 인맥은 랴오닝성의 성급 관료들이다. 마샤오훙이 경영하는 사업은 단둥시 시 공무원들이 흔들 수 있는 기업이 아니며 랴오닝성의 성급 공무원과 중앙 고위급 관료가 배후에서 지원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들의 도움이 없이 마샤오훙이 대담하게 김씨 정권의 핵 개발을 돕고 랴오닝성 전인대 대표로 선출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마샤오훙 배후의 성급 관료로는 먼저 랴오닝 전인대 부주임 리펑(李峰)을 꼽을 수 있다. 마샤오훙이 조사를 받는 시기에 리펑 또한 파면됐다. 그는 랴오닝성 공안청 청장, 성정법위원회 서기 등을 역임했으며 항간의 소문에 따르면 북한 김씨 정권이 중국에서 위조지폐, 마약을 유통하는 일을 돕는 저우융캉(周永康)의 중국 내 조력자로 알려졌다. 이 모든 일들로 미뤄볼 때 그와 마샤오훙이 연계되어 있음을 추측하지 않을 수 없으며 홍샹그룹이 북한 정부, 군대와 연계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공안, 사법 계통의 지원이 있던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는 바로 현 랴오닝성 민정청장 스광(石光)이다. 그는 2011년 5월부터 올해 1월까지 단둥시 위원회 부서기, 대리시장을 맡아왔으며 2012년 1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단둥시의 시장을 역임했고 단둥시 기업연합회의 명예회장직을 수행했다. 언론에서도 마샤오훙과 친분이 있음을 공개했다. 이외에도 홍샹그룹과 북한이 합자 형태로 투자한 칠보산 호텔이 선양(沈陽)에 소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놓고 보면 마샤오훙과 랴오닝성의 기타 부처 공무원 및 선양시 공무원들과 연줄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중앙 고위 관료 집단 세 번째 인맥은 중앙 고위 관료이다. 북한의 핵 개발은 상당히 민감한 문제이다. 위키리크스는 중국 고위 관료집단이 북한 핵 개발에 오랫동안 자금조달을 해왔다고 폭로하며 특히 장쩌민(江澤民)의 집권 기간 동안 저우융캉, 쩡칭훙(曾慶紅), 장더장(張德江) 등이 북한 고위층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음을 지목했다. 이로 인해 북한에 민감한 물품을 판매할 경우 중국 고위 관료의 특별한 허용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되며 이러한 사실은 마샤오훙의 훙샹그룹이 독자적으로 북한을 지원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중국석유공사’ 장악한 저우융캉, 북한에 석유수출 주도 장쩌민파-김정은 흑막 드러나자 시진핑, 北반대 돌아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9월 20일 열린 연례기자회의에서 ‘북한 핵개발 지원 혐의를 받고 있는 랴오닝 훙샹(鴻翔) 산업개발공사(이하 ‘훙샹’)에 대해 중국 당국이 현재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해외 언론의 보도가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보다 앞선 9월 1일 랴오닝성 공안청 공식 웨이보에는 ‘단둥 훙샹산업개발공사 및 관련 책임자들이 무역 과정에서 심각한 경제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현재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내용이 게재된 바 있다. 정부 측에 따르면 2011년 설립된 랴오닝 훙샹산업그룹은 2000년 1월 설립된 단둥 훙샹산업개발유한공사 및 랴오닝 훙샹국제화물운송대리유한공사가 합쳐진 형태다. 그룹의 등록자본금은 약 1억2500만 위안(약 169억원)으로 현재 직원수는 680여명이다. 훙샹은 현재 대(對)북한 무역, 화물운송 대리, 선박 운수, 북한 식당 등 다양한 전문 분야에서 사업을 전개하는 기업그룹으로 성장했다. 그룹 산하에 있는 완전출자 자회사와 그룹이 대주주로 있는 자회사, 그리고 합자설립회사로는 단둥 훙샹산업개발유한공사, 랴오닝 훙샹국제화물운송대리유한공사, 랴오닝 훙샹국제여행사유한공사, 단둥 훙샹변경무역정보자문서비스유한공사, 류경호텔, 선양칠보산(七寶山)호텔이 있다. 이들 회사 및 호텔은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핵무기 설계, 제조·실험에 자금 제공” 이와 관련된 중국 정부 측의 공식적인 언사가 다소 모호한 반면 서구 언론의 보도는 한층 상세하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지와 영국 BBC의 보도를 통해 아래와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미국과 한국 싱크탱크가 9월 19일 발표한 연합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훙샹이 북한과 진행한 무역 규모는 5억3천2백만 달러(약 5,868억원)로 그 중 북한으로부터의 수입 물품 가액은 3,600만 달러(약 397억원)에 달한다. 보고서는 ‘해당 자금의 최종 용도를 판단할 방법은 없으나 다만 이러한 액수는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 및 핵무기 설계, 제조 및 실험에 제공된 자금으로 충분해 보인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한 훙샹과 북한 간의 무역품 가운데는 민간과 군수용으로 모두 사용될 수 있는 물자가 포함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제3자가 정리한 세관 데이터를 인용, 회사가 작년 9월 북한에 25만여 달러에 달하는 산화알루미늄을 수출했으며 이것이 가장 마지막 수출이었다고 밝혔다. 산화알루미늄은 농축우라늄을 만드는 데 필요한 원심분리기로 사용될 수 있다. 이는 훙샹이 북한 핵실험과 연관되어 있음을 입증한다. 두 번째, 보고서는 훙샹산업의 여타 사업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을 지적했다. 예컨대 북한이 선양에 세운 합자기업인 칠보산호텔은 소니픽처스 해킹 공격과 관련되어 있다고 보도된 북한 온라인군 121국의 집결지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는 훙샹과 북한군 사이에 모종의 연계가 있음을 암시한다. 세 번째, 중국 당국은 최근 몇 주간 그룹 자금과 그룹 창립자이자 이사장인 마샤오훙 및 그 친척 등이 소유한 자산을 동결했다. 마샤오훙과 그 시어머니인 딩아이롄은 각각 훙샹산업 지분 80%, 20%를 소유하고 있다. 번시(本溪)공안국은 이미 부부의 지분을 6개월째 동결하고 있는 상태다. 한편 단둥 지방법정은 북한과 사업상 협력관계에 있는 합자기업 2곳을 포함한 기업 3곳에 훙샹이 소유하고 있는 지분을 3년간 동결 처분했다. 북한군 해커들, 선양호텔에 숙박 상술한 사실들은 각종 추측과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훙샹이 북한과 이처럼 중대한 거래를 벌이고 심지어 북한군 해커들을 선양 소재 호텔에 숙박하게까지 한 것은 필시 북한 정부 및 북한군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인데, 훙샹은 어떻게 북한과 이처럼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까? 중국 당국과 국가안전국은 일개 민영기업이 장기간에 걸쳐 북한 정부 측과 심지어 군사에 관련된 거래를 진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과연 모르고 있었을까? 의도적으로 방임한 것은 아닐까? 배후에 있는 중국 고위층이 민영기업의 명의로 북한과의 비밀 거래를 은폐한 것은 아닐까? 최근 북한이 핵실험을 재차 강행한 이후 중국 당국이 미국과 협력해 훙샹의 자산을 동결한 것은 어떤 목적이며 효과는 어땠을까? 훙샹의 파워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우선 그룹 이사장인 마샤오훙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2000년 훙샹을 설립하기 전 그녀는 한 쇼핑센터 직원이자 단둥 소재 한 수출입회사 사장이었다. 90년대부터 북한과의 무역을 시작한 마샤오훙은 북한에 원유를 수출하고 폐철을 수입하는 한편 평양에 광업합자기업을 설립했다. 2000년 1월 훙샹산업을 설립한 후 그녀는 정부 측으로부터 방직제품 및 전자제품에서부터 건축, 화학재료 등의 제품에 이르기까지 판매 허가를 취득했는데, 중국 사회에서 이러한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정부와의 연줄이 필수적이다. 흥미로운 것은, 북한이 2006년과 2009년 핵실험을 진행한 후 중국과의 무역이 위태로워졌을 당시에도 마샤오훙의 사업은 여전히 순조로웠다는 점이다. 이는 훙샹이 결코 일반적인 기업이 아니며 단둥 정부뿐만 아니라 중앙의 일부 부처와도 모종의 관련이 있을 것임을 시사한다. 2012년 ‘걸출한 여기업가’라는 호칭을 부여받은 마샤오훙은 2013년 랴오닝성 인민대회 대표로 선출됐다. 그러나 최근 랴오닝성 인민대회에 부정선거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이에 연루된 랴오닝성 인민대회 대표 450명이 사퇴하는 가운데 그녀 역시 사퇴한 바 있다. 이는 그녀에게 정경유착 기업인이라는 낙인이 깊게 찍혀 있으며 배후의 흑막이 존재함을 시사하는 또다른 증거다. 비록 마샤오훙의 뒤를 봐주는 것이 어떤 관료인지 확인할 증거는 없지만, 그녀가 조사처분에 취해진 시점에서 리펑(李峰) 랴오닝성 인민대회 부주임이 돌연 해임된 것은 훙샹과의 연관성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리펑은 과거 랴오닝성 공안청 청장, 성 정법위 서기직을 차례로 역임한 바 있는데, 훙샹처럼 북한 정부 및 북한군과 연관된 기업은 성 공안 및 사법부의 도움과 묵인이 없었다면 사업을 전개하기 곤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민간에 도는 소문에 따르면 저우융캉이 중국 국내에서 북한 김씨 정권의 위조지폐, 마약 판매를 돕는 데 있어 중국 측 담당자가 바로 리펑이었다고 한다. 이 역시 증명 가능한 사실은 아니지만 소문이 이유 없이 돌지는 않았을 것이다. 장쩌민파인 저우융캉은 줄곧 김씨 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중국의 비인륜적 강제 장기적출 문제를 논의하고 한국인들의 중국 원정 장기이식을 근절하기 위한 대담회가 20일 국제장기이식윤리협회(IAEOT) 주최로 고려대학교 의대 본관에서 열렸다. 캐나다 전 아․태담당 국무장관 데이비드 킬고어를 초청해 열린 이번 행사에는 고려대 의대 정지태 교수,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이사장이자 고려대 의대 한희철 교수, 국민대 법대 채승우 교수, 성균관대 철학과 김연숙 교수, 아시아법학생연합(ALSA)과 아시아의대생연합(AMSA) 임원진이 참석해 중국의 충격적인 강제 장기적출 실태와 오용 상황을 함께 논의했다. 이들은 불법적 중국 원정 장기이식을 막기 위해서는 외국에서 이식수술을 받고 돌아온 환자에게 건강보험혜택을 적용해 주지 않는 등의 법률제정이 시급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2006년부터 중국의 강제 장기적출 실태를 조사해온 킬고어 전 장관이 지난 6월 22일 캐나다 인권변호사 데이비드 메이터스와 중국문제 전문가 에단 구트만과 미국 워싱턴DC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발표한 최신 조사보고서의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킬고어 전 장관은 보고서에서 중국 장기이식수술 총 건수가 2000년 이후 약 150~250만 건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식수술에 사용된 장기의 주요 출처가 1999년부터 중국공산당의 박해를 받아 노동교양소에 감금돼 강제노역이나 고문에 시달리는 파룬궁 수련자들이라고 밝혔다. 중국 당국은 자국 내 이식수술 총 건수가 연간 1만 건이라고 발표했지만 이는 개별 이식 병원의 통계와 일치하지 않는다. 최근 중국서 허가받은 이식센터 수는 165개로 연간 이식수술이 1만 건이라면 병원당 한 해 60건을 집도해야 하는데, 이는 병원을 유지하기에는 불가능한 수술 건수다. 베이징 대학 인민병원의 한 의사는 2013년 9월 '차이나이코노미위클리'와 인터뷰에서 이 병원에서만 해마다 4000건 이상의 장기이식 수술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게다가 중국에는 효율적인 장기 기증 시스템이 없고 문화적으로 장기 기증을 터부시함에도 불구하고 장기를 기증받기 위한 대기시간은 한 달이 채 못 된다.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적합한 장기를 찾는데 수년이 걸리는 것과 비교된다. 중국의 짧은 이식 대기 시간은 수요만 있으면 언제든지 장기를 적출할 수 있는 대규모 공급원이 있다는 방증이다. 최근 파룬궁박해 국제추적조사기구(WOIPFG)가 실시한 전화통화 조사 녹음에서 중국의 한 의사는 “장기를 적출하기 위해 무수한 파룬궁 수련자가 살해됐다”고 언급했다. 미 하원도 이런 사실을 인정하고 지난 6월 13일 중국 파룬궁 수련자 등 양심수에 대한 강제 장기적출을 즉각 중지하라고 요구하는 ‘343호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킬고어는 중국 내 생체 장기이식은 국가 차원에서 대규모적이고 체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며 “최소한 8조~9조 원에 육박하는 산업이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강제 장기적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국 장기 이식 범죄 산업의 고객 상당수가 한국인 환자일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대한의학회지(JKMS)에 실린 한 논문에서 2005년 간이식을 받은 한국인 환자의 30%가 외국에서 받은 것으로 조사됐고, 중국 원정이식 정보를 공유하는 한 카페의 자료에는 2005~2010년 톈진제일중심의원에서 이식을 받은 한국인 환자 수를 400~500명으로 추산했다. 킬고어 전 장관은 “우리가 중국의 강제 장기적출 만행에 대해 직접적인 제재를 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한국 내 상황은 조절할 수 있다”며 한국인들의 중국 원정 이식 수술을 법률로 제한할 것을 제안했다. 이스라엘의 경우, 중국의 강제 장기 적출에 자국민이 연루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미 2008년 국외에서 장기이식을 받으면 건강보험 혜택을 더는 받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현재 시행되고 있다. 지난해 대만에서는 이식관광을 중지시키고 사형수의 장기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례를 개정했다. IAEOT 이승원 회장은 “그동안 국회의원들을 설득해 중국 원정 이식수술을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하려고 했지만, 국민적 여론이 먼저 형성돼야 가능하다”면서 시민 단체들과 다양한 전문가 단체들의 관심과 지지를 호소했다. 대담회에 참석한 아시아법학생연합(ALSA)의 최호철 한국대표(한양대학교 정책학과)는 “학기마다 진행하는 포럼에서 불법 원정 장기 이식에 관한 법안을 제안하고 상정하는 모의국회를 열고 모의법정도 열 생각이다”며 “저희 단체 내에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나 SNS를 통해서 많이 홍보하려 한다”고 말했다.최근 인하이린(尹海林.56) 톈진(天津) 부시장이 낙마하면서 톈진 관료계의 검은 내막과 함께 그와 장가오리(張高麗)의 관계도 밝혀졌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장쩌민파의 간섭과 방해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상무위원제 폐지'가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중국 사정 당국이 톈진방(天津幇, 톈진을 근거로 하는 정치세력)을 치고 장가오리를 타깃으로 한 것은 이런 전략의 일부로 보인다. 인하이린은 장가오리가 발탁 지난달 22일, 중앙기율검사위원회(중기위)는 인하이린 톈진시 부시장이 엄중한 기율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발표했다. 인하이린은 톈진시 국토기획과 도시건설 분야에서 장기간 근무하다가 지난 2000년 1월 쯤 톈진시 규획설계관리국(規劃設計管理局·시 토지 관리국)과 시 규획과 국토자원국(市規劃和國土資源局) 부국장직을 맡았다. 그 후 2007년 12월 시 규획국(規劃局) 국장으로 승진한데 이어, 2012년 5월부터는 톈진시 부시장과 시 정법(政法)위원회 부서기와 시 규획국 국장을 겸임했다. 자료에 따르면, 장가오리 정치국 상무위원은 2007년 3월-2012년 11월 사이 톈진시 서기를 지냈는데, 인하이린은 바로 이 시기 시 규획국 부국장으로 고속 승진해 부시장 자리까지 올랐다. 인하이린, 도시계획 이권에 연루 8월 22일 차이신왕(財新網)은 인하이린의 승진 시기와 맞물려 톈진시의 토지 개발이 급속도로 확장됐다고 보도했다. 2014년 폭로된 ‘관얼다이(官二代, 고위관료 자녀) 갑부’ 자오진(趙晉)의 부동산 비리 사건과 2015년 8월 톈진항 폭발 사건은 모두 도시 계획 부처와 관련 있다. 이후 톈진시 발전기획부 간부들의 위기설이 확산됐다. 같은 날 신경보(新京報)의 위챗 공식계정 ‘정지권’(政知圈)은 톈진시 일반 공무원의 발언을 인용해 인하이린의 낙마 소식은 이미 오래 전부터 터져 나왔으며 모 매물의 토지계획 심사·비준과 관련 있다고 밝혔다. 이 매물은 자오사오린(趙少麟) 장쑤성 당위원회 비서장의 아들 자오진이 소유한 부동산 회사가 개발한 것으로 완공 후 이권 분쟁에 휘말렸다. 자오진은 ‘쭈이뉴’(最牛, 간 큰) 부동산 투자가로 통하는데, 보도에 의하면 그는 아버지 자오사오린의 권력과 친인척 인맥을 이용해 한 푼도 투자하지 않고 토지를 빼앗는 수법으로 거대 부동산 제국을 만들었다. 2014년 6월 중순 자오진이 내부 조사를 받으면서 같은 해 10월 자오사오린은 낙마했다. 자오 부자의 비리 사건을 계기로 톈진시 도시건설기획부 관료들의 낙마가 잇따랐다. 인하이린과 ‘톈진방’ 인하이린은 30여 년간 도시기획 부처에서 근무한 외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직무가 있는데 바로 톈진시 정법위원회(공안·사법 담당) 부서기다. 수 년 동안 행패를 일삼은 수많은 톈진방 간부들은 톈진 정법위원회에 속했다. 이들은 줄곧 장쩌민의 파룬궁 박해 정책을 지지했으며 그 사악한 정도가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2006년 6월 12일 톈진시 정법위원회 부서기, 톈진시 검찰원 검찰장인 리바오진(李寶金)이 쌍규(雙規·중앙기율위가 비리 혐의 당원을 정식 형사 입건 전 구금해 조사하는 것) 처분을 받았다. 또 2007년에는 뇌물수수죄와 공금횡령죄로 사형집행 유예를 선고 받았다. 1년 후인 2007년 6월 4일 톈진시 정치협상회의 주석인 쑹핑순(宋平順)이 사무실에서 자살했다. 쑹핑순은 62세 나이로 일찍부터 톈진시 정법 계통을 장기적으로 장악했으며 리바오진의 ‘옛 상사’였다. ...장쩌민(江澤民) 집권의 가장 큰 특징은 ‘특무치국(特務治國·스파이를 이용한 통치)’이다. 그중 최고 특무 수장인 쉬융웨(許永躍·전 국가안전부 부장)는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많은 ‘악행’을 쌓았는데, 그의 행적은 대부분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외부에서는 “중국공산당 정보기관의 수장은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라고 말하고 있다. 쉬융웨가 총괄했던 국가안전부(국안)의 업무는 정보수집·분석, 반(反)간첩 활동, 정치보위 등이다. 중국에서 규모가 가장 크며 활성화되어 있는 정보기관이며 국내의 안보 분야에도 부분적으로 참여한다. 국안은 철통같이 베일에 싸여있다. 인터넷 홈페이지가 없고 부(副)부장의 이름과 각국(局) 부문의 어떠한 상황도 공개하지 않는다. 정부 홈페이지에 국안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지만, 국가의 모든 부와 위원회는 링크가 있지만 국안은 제외되어 있다. 국안 관료들은 문제가 생긴 후에야 언론에 알려져 외부에서 알 수 있었다. 정보기관 수장은 ‘사람이 아닌 귀신’ 정보기관 수장이 되려면 당연히 당(黨)의 절대적 신뢰를 얻어야 한다. 정보기관은 비밀에 가려져 있고 비밀무기를 장악하고 있어 법의 제약 없이 일을 처리할 수 있고 살상력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평론가 친웨(秦鉞)는 2000년 잡지 '베이징의 봄(北京之春)' 기고문에서 정보기관의 수장을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라고 칭했다. 특무를 창설한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잔혹한 당내 투쟁에서 ‘무적의 장군’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독하지 않으면 대장부가 아니다”라고 할 만큼 특무를 통해 잔인한 계략을 썼기 때문이다. 저우언라이는 당내 변절자를 징벌하기 위해 상하이에서 노인과 아이를 포함한 구순장(顧順章) 일가 8명을 살해해 한때 이 ‘멸문 살인사건’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정보계통 특수요원이라는 안전한 바람막이를 교묘히 이용했으며 자신만의 권력계통으로 운영했다. 또 한 명의 특무 수장 캉성(康生)은 과거 옌안(延安)에 있을 때부터 특수요원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그는 옌안에서 이른바 '정풍운동(整風運動)'으로 4만 명의 당 간부 중 특무 1만 명을 적발하기도 했다. 그의 직책은 정치국 상무위원과 중앙문혁소조(中央文革小組) 고문까지 올라갔는데, 문화대혁명 시기 그가 직접 모함하고 박해한 간부가 839명에 달했다. 펑더화이(彭德懷), 허룽(賀龍), 타오주(陶鑄), 장원톈(張聞天), 왕자샹(王稼祥), 린펑(林楓) 등 당정 고위관리와 유명인사 82명이 그의 박해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캉성은 역사상 전례가 없는 악행을 저질렀으며 특무 수단을 이용해 내부 투쟁의 고수가 됐다. 캉성이 죽은 뒤 당 안팎 인사들은 그를 저주했으며 특무를 이용한 대표적 악인의 대명사가 됐다. 천윈(陳雲)은 “캉성은 귀신이지 사람이 아니다”라며 직접 비난했다. 특무치국, 장쩌민이 매달린 지푸라기 공산당이 정권을 빼앗은 후, 프롤레타리아 독재정치의 이름으로 특무란 수단을 사회의 모든 분야에 이용했다. 이는 역사상 전례가 없던 일이다. 반세기 동안 중국공산당의 통치 위기는 나날이 엄중해졌고, 공산당 지도자는 새로운 주석이 교체될수록 예전만 못했다. 장쩌민 시기에 이르러 자신감은 더욱 결여됐다. 보안·정보계통의 특무를 동원해 통치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마치 장쩌민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것 같았다. 세계 2차대전사 전문가 뤼자핑(呂加平)은 장쩌민에게 ‘두 가지 매국, 두 가지 거짓말(二奸二假)’ 문제가 있다고 발표했다. ‘두 가지 매국’의 첫째는 장쩌민과 그 아버지가 친일 매국노였다는 것이고, 둘째는 장쩌민이 소련에 ...시진핑 지도부 출범 이후에도 중국 엘리트들의 해외 탈출 러시가 이어지고 있어 학자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31일, 경제학자 이셴룽(易憲容.전 사회과학원 박사)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갈수록 많은 중산층과 엘리트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이민혁명’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이민혁명’의 원인은 경제둔화, 집값상승, 고물가, 과도한 세금부담, 심각한 환경오염과 낮은 교육의 질 등이라고 분석하면서, 엘리트들은 지식과 기술뿐만이 아니라 중국의 미래 경제발전을 지탱할 수 있는 영혼까지 갖고 떠난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국의 이민붐은 1989년 천안문사건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이민 수단은 정치적 망명, 브로커를 통한 밀입국, 부동산 투자, 자녀유학과 원정출산 등이었다. 서방국가들이 합법적 이민의 주요 수단이었던 부동산 투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10년 비자로 출국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CNN에 따르면, 최근에는 중국 기업의 미국 기업 인수가 폭증하는 동시에 기업마다 수천명 규모로 간부 사원들이 유입되고 있다. 2015년에 중국인 직원과 그 가족들에게 발급된 L1비자는 1만258건으로 2005년에 비해 4배 이상 늘었다. L1비자가 중국을 탈출하는 새로운 수단이 된 셈이다. 한편, 쑨리핑(孫立平) 칭화대 교수는 지난 6월 28일 텐센트(騰訊·텅쉰)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중국이 3가지 긴박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희망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쑨 교수는 국가의 발전방향, 엘리트층의 안전감, 서민들의 희망감 등 3가지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가장 기본적인 틀을 형성하지 못한다면 개혁은 성공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많은 중국 기업들이 눈앞의 기회만 찾고 장기적인 계획과 투자는 고려하지 않는 현상을 보게 됐다면서, 그 원인은 중국 사회가 어떻게 나아갈지 미래가 불투명하고 언제 재산을 잃을지 몰라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중국 경제가 곤경에서 벗어나려면 엘리트층이 안전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한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법치라고 강조했다. 단기적인 정책이나 민간기업 중시 정책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쑨 교수는 올해 초 발표한 글에서는 중국공산당의 정치체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진단하면서 정치체제 개혁만이 유일한 출로라고 강조했다.중국을 세계적인 축구 강국으로 끌어올리려는 베이징의 계획은 중국 자국 내의 자본에 대한 일반적 통제에도 불구하고 지난 해 외국 클럽에 대한 여러 투자로 이어졌다. 국가 차원에서의 공식적인 지원으로 축구 클럽에 대한 중국의 해외 투자는 지난 한 해 동안 크게 늘어났다. 2015년 초 이래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클럽과 관련된 열 건 이상의 협상이 완료되었다. 최근의 거래는 몇 주 전에 발표되었다. 신원 확인이 안 된 중국인 투자자 그룹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전 수상에게서 세리에 A팀이자 역사상 유럽 최강클럽인 A.C. 밀란(A.C. Milan)를 사들였다. 구매액은 약 5억 5천만 달러인 것으로 알려졌다. A.C. 밀란 인수는 중국 유통업체 쑤닝 홀딩스(Suning Holdings)가 이탈리아 세리에 A 인터밀란의 지배 지분 70%를 3억 달러 상당으로 사들였다는 소식이 들린지 한 달 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같은 달인 6월 17일, 중국 사업가 치엔 리와 쩡 난옌이 다른 투자자들과 컨소시움을 구성하여 프랑스 리그 앙의 OGC 니스를 인수했다. 인수액은 밝혀지지 않았다. 중국의 흥청망청한 쇼핑은 내로라 하는 축구클럽을 가진 유럽국가들을 모두 망라했다. 스페인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영국 프리미어리그 아스톤 빌라와 맨체스터 시티, 프랑스의 FC 소쇼 몽벨리아르, 체코의 슬라비아 프라하 등의 지분을 다양한 형태로 인수했다. 중국 자본은 왕 지앤린 같은 사업가 개인에서부터, 민간기업, 시틱 캐피털(Citic Capital)같은 국영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불확실한 수익 중국 위안에 대한 평가절하 압력은 외국 자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게 했다. 그러나 투자로서 축구 클럽은 전통적으로 이익률이 그다지 좋지 않다. 늘 가장 많은 수익을 내왔던 프리미어리그 조차, 작년에 비해 수익률이 줄어들었다. 임금 인상으로 대부분의 클럽들이 심각한 적자를 보았던 2013년까지 10년 동안, 축구클럽들의 재정이 대체로 개선되어 왔음에도 그렇다. 수익 대비 임금의 비율은 2014~2015년, 61%였다. 이전 해보다 3% 높았다. 딜로이트(Deloitte)의 보고다. 가장 성과가 좋은 클럽도 이익은 임금 인상과 높은 부채비용으로 아슬아슬하다. 영국 데일리 메일의 보도에 따르면, 아스날의 경우, 2014년 세전 수익이 단 380만 파운드(500만 불)에 불과했다. 맨체스터시티는 1770만 파운드(2300만 불)의 손실이 있었다. 파운드와 유로를 둘러싼 통화 변동성과 유로존의 비관적인 경제 전망으로, 축구클럽 수익성 전망 역시 기껏해야 불확실하다는 정도다. 좀 더 피부에 와닿는 비교를 하기 위해, 주식시장을 보자. 상장된 유럽 축구클럽의 공개된 주식 실적을 추적해서 나오는 STOXX 유럽 풋볼 인덱스는 과거 5년 동안 27.4% 떨어졌다. 같은 기간 STOXX 유럽 600 지수가 45.2% 성장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암울한 실적이다. 스포츠 혹은 정치? 중국 시진핑 주석이 개인적으로 축구팬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중국 국무원은 2014년 스포츠산업 개혁 발전 법령을 고시했다. 아마 그것이 국내외적으로 축구에 대한 중국인의 최근 투자의 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2015년 3월에 발표된 비슷한 정책에서, 베이징은 2050년까지 중국을 축구 강국으로 만들 것을 언명했다. 베이징은 중국 축구의 글로벌 입지를 향상시키기 위해, 세계 최대 축구 교육기관의 하나가 된, 광둥성 헝다국제축구학교의 성공에 힘입어, 다가오는 5년 안에 전국에 걸쳐 2만개의 축구학교를 세울 계획이다. 또 이번 여름에는 중국 축구 클럽들이 외국 인재 이적시장에 거대한 금액을 지불한 기사가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중국 기관들의 비즈니스 결정에는 보통 재정적 이익 만큼이나 정치가 중요하다. 중국의 외국 축구팀 구매 갈증도 다르지 않다. OGC 니스의 새 소유주 리와 쩡은 지난 달 자신들의 프랑스 축구클럽 매입에 “전략적이고 재정적인 이유”가 있다고 언급했다. 베이징에 본사를 둔 스포츠와 미디어 에이전트 컨설팅사인 캐슬힐 파트너스(CastleHill Partners)의 피터 슐로스는 중국 비즈니스 전문지 카이신(Caixin)과의 인터뷰에서 외국 축구 클럽에 투자하는 중국 회사들은 “정치적인 부분과 비즈니스적인 면”에서 이익이 있다고 말했다.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의 비서실장을 지낸 링지화(60) 전 통일전선공작부장이 후진타오를 포함해 중국공산당(이하 중공) 최고 지도부를 3년 동안 도청했음이 드러났다고 홍콩언론이 보도했다. 홍콩 시사월간지 ‘쟁명(爭鳴)’ 7월호는 링지화가 당 사무기구인 중앙판공청 주임 시절(2007~2012), 3년에 걸쳐 후진타오 당시 국가주석 사무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해 놓고 도청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르면, 링지화의 도청대상은 후진타오에만 그치지 않았다. 당시 시진핑 국가 부주석, 리커창 부총리, 왕치산 전 부총리, 멍젠주 공안부장, 왕후닝 중앙연구실 주임 사무실에도 도청대상이었으며, 도청기는 최고위층 전용 직통전화인 ‘홍색전화’나 책상 스탠드 받침대, 의자 등이었다. 이 같은 내용은 무기징역 복역 중인 저우융캉 전 정치국 상무위원에 의해 진술됐다고 쟁명은 밝혔다. 도청장치는 ‘긴급 안전경보 벨’을 설치한다는 명분으로 중앙판공청, 중앙경위국(최고 지도부 경호조직), 중앙 군사위원회 보위부 명의로 설치됐으며, 10일~15일에 한 번씩 담당자가 이상 여부를 점검하고 교체했다. 저우융캉이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링지화와 동맹관계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링지화는 2012년 아들 링구가 자신의 페라리 스포츠카에 반라의 여성 2명을 태우고 질주하다가 베이징의 한 지하터널에서 추돌사고로 사망하자, 이 사건을 덮기 위해 저우융캉 당시 정법위 서기와 동맹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중공 고위층 사이에서 심각한 스캔들로 여겨졌다. 관영매체에 따르면 링지화는 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중앙경위국을 동원해 정보를 통제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링지화는 같은 해 9월 중앙판공청 주임에서 통일전선공작부장으로 좌천됐으며 2년 뒤에는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낙마했다. 중국 현지매체 ‘재신망(財新網)’은 링지화 낙마 직후 “링지화가 아들의 사고를 은폐하기 위해 당시 정법 조직의 한 책임자와 정치적 거래를 했다가, 이 거래가 들통나면서 정치적으로 몰락하게 됐다”고 했으나 구체적인 거래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링지화는 통일전선공작부장으로 좌천되자 신변에 위험을 느끼고 불법취득했던 국가기밀 일부를 화약약품을 이용해 인멸했으나, 나머지는 동생 링완청에게 보험용으로 넘겨 준 것으로 알려졌다. 링완청은 현재 미국으로 도피한 상태다. 링지화는 지난 4일 뇌물수수와 국가기밀 불법취득, 직권남용 혐의로 톈진시 제1중급인민법원에서 열린 1심 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뒤 항소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됐다. 재판부는 링지화가 중앙판공청 주임, 중앙서기처 서기, 중앙통일전선공작부 부장,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을 역임하며 직권을 이용해 이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링지화는 판결 후 재판부를 향해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해, 다수 매체에서 그가 사형 구형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중국의 자금통제 강화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돈이 해외 자산으로 흘러 들어가는 추세는 수그러지지 않고 있다. 중국 회사들은 엔터테인 쪽에 열렬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몇몇 할리우드 스튜디오와 제작사들이 최근 중국 투자자들과의 제휴를 공표했다. 중국으로서는 영화산업에 대해 확실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중국은 초기단계에 있는 자신들의 엔터테인 산업을 키우려고 헐리우드 전문성에 접근하고 싶어한다. 기업가 도날드 탕이 세우고, 중국 인터넷 재벌, 텐센트 홀딩스(Tencent Holdings)가 지원하는 투자사, 탕 미디어 파트너스(Tang Media Partners)가 지난달, 로스앤젤레스의 영화 배급사, IM글로벌(IM Global)의 지배지분을 인수했다. 4월에는 중국 영화제작사, 화이 브라스 미디어(Huayi Bros. Media Corp.)가 캘리포니아 버뱅크의 STX 엔터테인먼트(STX Entertainment)와 몇 편의 새 영화를 콜라보하기 위해 파트너쉽을 맺었다. 이 거래로 중국최대 영화사의 하나인 화이는 더 광범위하게 국제 관객들에게 영화를 론칭할 수 있는 헐리우드에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올해 초 부동산 개발사인 완다그룹(Wanda Group)이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Legendary Entertainment)의 지배지분을 35억 달러에 사들였다. 캘리포니아 버뱅크 소재의 레전더리는 ‘인터스텔라’ ‘주라기 월드’ 등 많은 히트작을 낸 제작사다. 텐센트와 중국 온라인 판매업자 알리바바는 여러 해 동안 영화 배급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알리바바 픽처스 그룹(Alibaba Pictures Group)은 지난해 ‘미션임파서블:로그네이션’에 직접 투자를 했고, 중국 배급권을 따냈다. 영화는 전체 글로벌 매표수익으로 6억 8천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시장 잠재력 중국의 중산층 소비자들의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욕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오리엔탈 드림웍스(Oriental DreamWorks)의 제임스 퐁은 지난달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밀켄 글로벌 컨퍼런스에서 중국에서의 매표수익이 미국에서의 수익을 능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에서 두 번째 큰 시장인 중국 매표소 수가 2015년, 49% 증가하여 매표수익이 680억 달러에 이르렀다. 2011년 이래 중국의 연간 매표수익은 연평균 성장률로 35% 성장했다. 같은 시기 중국의 영화관 수도 4배로 늘었다. 최근 동명의 게임을 원작으로 하는 ‘워크래프트’ 중국 개봉이 한 예이다. 레전더리와 유니버설 픽처스(Universal Pictures)는 이틀 만에 91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중국에서 9000만 달러 지점을 가장 빠르게 돌파한 영화다. 그러나 문제점이 없진 않다. 베이징당국은 해마다 수입 영화의 수를 제한하고 있다. 또한 해외영화를 개봉하는 방식도 엄격하게 제한한다. 국영 중국전영집단공사가 해외 수입을 승인하고 허가를 해주는데 신화 통신에 따르면 헐리우드 영화가 지난해 매표수익의 38.4%를 차지했다. 2014년 45.5% 시장점유율에 비하면 내려간 수치이다. 그래서 해외영화 스튜디오와 해외영화 배급사들이 중국에 진출하려면 인맥관계가 결정적이다. 어떤 영화가 ‘워크래프트’처럼 광범위한 개봉을 할 것인가? 아니면 제한된 상영관을 얻을 것인가는 인맥이 결정한다. 검열 문제 중국의 레전더리 인수는 성사가 이뤄지는데 여러 해가 걸렸다. 레전더리 이스트(Legendary East)의 베이징 주재 감독인 피터 로어는 중국통이다. 또한 많은 중국영화들이 국제시장의 관객들을 대상으로 제작되도록, 중국전영집단공사와 2013년 다년계약을 성사시켰다. 그 거래로 영어로 된 역사물 ‘더 그레이트 월’이 탄생되었고, 레전더리가 공동제작했다. 맷 데이먼이 주연하고 장이모우가 감독한 이 영화는 11월에 전세계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레전더리와 완다의 인수합병은 재정적으로 사회정치적으로 세밀히 검토 될 것이다. 중국의 방화벽 ‘Great Firewall’은 주로 자유로운 표현과 공개적인 토론을 검열하는데 외국영화는 자주 상영금지가 된다. 심지어 상영승인을 받은 영화도 중국정부가 정치적으로 민감하다고 하는 부분은 잘라내야 한다. 예를 들어 2006년 007영화 ‘카지노 로얄’ 제작사에 냉전에 대한 언급을 빼라고 지시했고, 2014년에는 베이징당국이 베이징 독립영화제 개막식날 영화제 막을 내리게 했다. 이 영화제가 정치적 반대자들을 위한 포럼장이 된다는 이유를 내걸었다. ...미국 션윈예술단 산하의 션윈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올 가을 처음 아시아를 찾는다. 션윈오케스트라는 웅장한 서양 오케스트라에 섬세한 동양 악기를 ...시진핑 체제 전복 음모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링지화(令計劃·60) 전 통일전선공작 부장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4일 신화통신에 따르면, 톈진(天津)시 제1중급인민법원은 링지화의 뇌물수수, 국가기밀 절취, 직권남용 등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고 무기징역, 정치권리 종신 박탈, 개인재산 전액 몰수를 선고했다. 링지화는 최후 진술에서 기소 사실을 받아들이고 상소를 포기했다. 재판은 지난달 7일 이미 비공개로 진행됐다. 신화통신은 링지화의 뇌물수수와 직권남용죄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설명한데 반해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국가기밀 절취죄에 대해서는, 링지화가 중앙통일전선부 부장 겸 정협 부주석 재임 기간 중앙판공청 비서국 국장 훠커(霍克) 등 간부들을 통해 대량의 국가기밀 자료를 빼돌렸다고 간단하게 언급했다. 중앙판공청은 그가 앞서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의 비서실장을 지내면서 몸 담그고 있었던 곳이다. 링지화는 18차 당대회를 앞두고 저우융캉(周永康) 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당서기, 쉬차이허우(徐才厚) 전 군사위 부주석 등 장쩌민 전 국가주석 측근들과 함께 시진핑의 국가주석 선출을 방해하는 행동에 가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 그는 차기 정치국 위원(25명)에 파격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도유망한 고위 간부였다. 하지만 2012년 3월, 아들 링구(令谷)가 자신의 페라리 승용차에 반라 상태의 여성 2명을 태우고 베이징 시내에서 교통사고를 낸 후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권력투쟁이 백열화되고 있는 와중에 아들의 사치스럽고 문란한 사생활이 드러나면서 치명타를 입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은 마침 보시라이의 낙마 직후 발생해 큰 관심을 모았다. 결국 링지화는 6개월 만에 통일전선공작부 부장으로 좌천됐고 2014년 12월 말 낙마한데 이어 결국 지난해 7월 공산당 당적과 공직을 박탈하는 ‘쌍개’(雙開) 처분을 받고 체포됐다. 수사 과정에서 부인 구리핑, 형 링정처(令政策) 전 정협 부주석, 동생 링완청(令完成) 등 일가족과 많은 측근들이 잇따라 체포되거나 추적을 당했다. 워싱턴 프리비컨 사이트는, 현재 미국에서 망명 중인 링지화의 남동생 링완청(令完成)이 형으로부터 2,700건이 넘는 중요한 기밀문서를 넘겨받았다고 보도했다. 홍콩 시사잡지 ‘쟁명’은 7월호에서 링지화가 중앙판공청에서 근무할 때 후진타오, 시진핑, 리커창과 왕치산을 포함한 고위 지도자들의 사무실에 도청기를 설치해 놓고 3년 동안 불법적으로 국가기밀을 취득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비상벨을 설치해 준다는 명목으로 도청기를 설치하는 수법을 사용했다고 ‘쟁명’은 전했다. ‘쟁명’은 지난 보도에서, 링지화가 낙마한 후 중앙판공청 19개 부처 85명의 책임자들 중 이미 72명이 물갈이 됐고, 5명의 내연녀를 포함한 측근과 지인 55명이 사법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정치생애 마지막 2년, 파룬궁 박해에 가담 링지화는 2012년 9월 통일전선공작부 부장직으로 옮겨가 2014년 12월 낙마할 때까지 2년 여 동안 저우융캉 전 정치법률위원회 서기와 함께 장쩌민이 발동한 파룬궁 탄압에 가담했다. 중국공산당 통일전선공작부는 다른 당파와 소수민족, 종교계 인사 그리고 전세계 화교단체에 대한 통일 공작을 맡고 있는데 사실상 정보기관이다. 저우융캉은 정치법률위원회 서기 직에 있을 때 국가 재정, 군부와 외교를 모두 장악하고 있으면서 측근들이 포진해 있는 통일전선공작부와 외교부를 통해 해외에 대량의 스파이를 파견했다. 링지화는 아들의 페라리사고를 숨기기 위해 저우융캉의 도움을 받은 것을 계기로 당시 보시라이 낙마 사건에 연루돼 위기에 처한 저우융캉과 거래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링지화가 통일전선부에 배치된 후 해외 파룬궁 수련자 탄압이 강화돼 대만, 홍콩과 미국 통전부 스파이들은 심지어 시진핑 주석의 외교 일정 때도 난감한 상황을 연출했다. 2014년 7월 19일, 시 주석이 아르헨티나를 방문했을 때 사주를 받은 푸젠(福建) 동향회는 파룬궁 수련자들의 탄원 집회를 저지하기 위해 외신기자들 앞에서 파룬궁 수련자들을 폭행, 여성 수련자를 폭행한 한 중국영사관 직원이 경찰에 체포됐다. 대기원 논설위원 샤샤오창(夏小強)은 “링지화가 정치생애의 마지막 2년에 파룬궁 박해 문제에서 장쩌민, 저우융캉과 함께 서 있었다”며 “그는 ‘무간도’에 등장하는 이중 스파이나 다름없는 인물로 낙마는 필연적이었고 파룬궁 박해로 인과응보를 받은 전형적인 사례”라고 분석했다.중국 공산당 18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은 후진타오, 원자바오로부터 권력을 넘겨받았다. 당시 시진핑이 직면한 집권 위기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사회적 위기였다. 심각한 빈부 격차, 부패 만연, 끊임없는 민중 항쟁 등이었다. 다른 하나는 정치적 위기였다. 시진핑이 후진타오에게서 넘겨받은 권력은 장쩌민파에 실권을 빼앗긴 껍질만 남은 권력이었다. 시진핑은 이러한 어려움에 직면해 출범 3년 남짓한 기간, 여러 가지 조치를 통해 난국을 타개했다. 이 같은 조치는 장쩌민 집단의 부패를 조준해 전개됐다. 보시라이, 리둥성, 쉬차이허우, 쑤룽, 저우융캉, 링지화, 저우번순, 궈보슝 등 큰 죄를 지은 장쩌민 파 관료들이 줄줄이 낙마했다. 그리고 노동교양소 폐지, 의법치국(依法治國·법에 의한 국가 통치) 주창, 한자녀정책 완화, 호적제도 개혁 추진, 전통문화 제창 등을 추진했다. 지난 4월 장쩌민의 종교탄압정책을 끝낸 전국 종교공작회의도 그러한 조치의 하나였다. 중국사회에 나타난 난상 그러나 시진핑 당국의 조치에도 중국사회는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음을 외부에서는 보았다. 경제적으로는 경제발전이 위기를 맞았다. 우두머리 장쩌민이 공개 체포되기 전에는 장쩌민 파가 이용하는 경제 자원과 경제 쿠데타는 여전히 지속되고 자금유출은 격화될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류윈산, 장더장과 장가오리를 주축으로 한 장쩌민 파 현직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들이 권력을 이용해 시진핑의 반(反)부패 개혁에 저항할 것이다. 류윈산은 선전 계통을 이용해 고급흑(高級黑·추켜세우는 척하면서 깎아내리는 수법)으로 시진핑을 함정에 빠뜨리려 하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어지러운 사건이 빈발하고 있다. 지난 두 달 사이에만 레이양 ‘성매매’ 사건, 변호사 폭행사건, 선전 경찰 욕설 사건 등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사건이 다수 발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공권력이 국민에게 심각한 상처를 남기는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면서 시진핑 당국의 개혁 노력을 상쇄시키고, 미래에 대한 민중의 희망과 믿음을 소진시키고 있다. 2014년 중앙 정법공작회의에서 시진핑은 “매 하나의 사법 사건에서 인민대중이 공평·정의를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현실은 크게 엇갈리고 있다. 홍색가요(혁명가요)를 부르던 보시라이가 낙마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어째서 여전히 인민대회당에서 홍색가요를 부를 수 있었는가? 정법 계통의 ‘큰 호랑이(지도자급 부패관료)’ 저우융캉이 낙마한 지도 2년 반이 됐는데 어째서 경찰이 민중을 해치는 사건이 오히려 갈수록 더 심해지는가? 파룬궁 수련자 박해와 생체장기적출에 참여한 보시라이, 저우융캉, 쉬차이허우 등이 모두 낙마했는데, 유럽 의원은 진상을 알리고 있는 파룬궁 수련자에게 의문을 제기했다. “시진핑의 권력은 갈수록 커지는데 왜 생체 장기적출은 여전히 계속되는가?” 중국 공산당과 민중의 대립 어쩌면 이 몇 년 동안 중국 공산당 기층 관료의 몇 가지 명언에서 일부 해답을 얻을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구이저우의 관료는 기자 질문에 “당신은 당을 위해 봉사하는가 아니면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가?”라고 답했고, 정저우시 계획국 부국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당을 대신해 말할 준비를 한 것인가, 아니면 백성을 대신해 말할 준비를 한 것인가?”라고 물었다. 허난성 네이샹현 법원 원장은 “당성과 인성이 충돌할 때, 우리는 단호히 당성만 논하고 인성은 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 기층 관료의 이런 발언은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으로서 중국 공산당 정권의 현재 실정을 말한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민중과 완전히 대립된 양극이다. 중국 공산당의 이익과 민중의 이익은 물과 불처럼 절대 하나로 어울릴 수 없다. 그렇다면, 시진핑 집권 과정의 최대 장애는 중국 공산당 체제 자체의 요소로서 갈수록 많이 표면에 드러나고 있다. 물론, 장쩌민 집단은 시진핑이 집권하는 과정에 청산을 피하려고 끊임없이 소란을 피우고 있다. 이 역시 시진핑이 마주친 주된 장애물이다. 하지만 모든 중국 공산당 기층 관료를 모두 장쩌민 파가 조종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중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공권력으로 나쁜 짓을 하는 난잡한 현상의 상당 부분은 모두 중국 공산당 체제 자체의 사악함으로 조성된 것이며, 이런 중국 공산당 관료는 확실히 당의 정책을 집행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는 반부패로 해결할 수 없다. 장쩌민 집단이 한 모든 행위는 또 중국 공산당 체제 중 가장 사악한 부분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장쩌민 집단은 중국 공산당 사악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시진핑 집권의 2대 장애물 따라서 시진핑 집권의 최대 장애는 두 개 방면에서 온다. 첫 번째, 장쩌민 파의 전력을 다한 방해이다. 중국 공산당 체제 자체를 이용한 방해다. 두 번째, 중국 공산당 체제 그 자체이다. 근본적으로 말하면, 중국 공산당의 체제에서는 중국사회와 민중이 직면한 경제적 윤리적 위기 해결이 불가능하다. 특히 중국 공산당이 중국 전통문화를 파괴한 후 형성시킨 당(黨)문화는 중국과 민중을 국제사회와 격리시켰다. ...미국 하원은 2016년 6월 13일 오후 6시 30분, 표결을 거쳐 중국공산당이 자행하고 있는 ‘파룬궁(法輪功)수련자 등 양심수에 대한 강제 장기적출’을 즉각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343호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결의안은 파룬궁수련자와 기타 양심수에 대한 ‘강제 장기적출’을 즉각 중단할 것, 17년간 지속되고 있는 파룬궁 박해를 즉각 중단할 것, 모든 파룬궁수련자와 기타 양심수를 즉각 석방할 것을 중국공산당에 요구했다. 또한 장기이식 시스템에 대한 신빙성 있고 투명한 독립적 조사 진행을 허용할 것을 중국공산당에게 요구했다. 343호 결의안은 2015년 6월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들이 공동 발의했으며, 2016년 1월 12일 하원 외교위원회 아·태 소위원회에서 통과된 후 3월 16일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결의안 공동 발의자로는 공화당에서 미 하원 외교위원회 전 위원장이자 중동ㆍ북아프리카 위원회 위원장으로 중진 의원인 일레나 로스-레티넨(플로리다) 하원의원을 비롯해 다나 로라바커(캘리포니아), 테드 포(텍사스), 마리오 디아즈-발라르트(플로리다), 데이비드 바라다오(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이, 민주당에서는 샘 파르(캘리포니아), 제럴드 코놀리(버지니아) 하원의원 등 8명이 이름을 올렸다. 양당 의원이 공동으로 박해 비난 6월 13일 오후 6시 30분에 진행된 하원 본회의 ‘343호 결의안’ 표결에서 양당 의원들은 살아있는 파룬궁수련자의 몸에서 강제로 장기를 적출하는 중국공산당의 행태를 비난하면서 이런 만행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결의안 발의자인 일레나 로스-레티넨 연방하원 의원은 표결 전 실시된 연설에서 발언했다. “2015년 프리덤하우스 보고서에 따르면, 파룬궁수련자는 중국 양심수 중 가장 주요한 부분으로 343호 결의안을 통해, 미국은 중국공산당의 심각한 인권침해 행태를 반대하며 특히 ‘파룬궁 박해를 반대한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중국에 전달한다. 우리는 중국공산당의 파룬궁수련자를 겨냥한 지속적인 박해를 비난하며 이 박해는 극도로 혐오스러운 것이다. 더욱이 개인의 동의를 얻지 않고 진행된 강제 장기적출과 같은 비도적적 행태는 반드시 중단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범죄가 계속되는 것을 절대 허용할 수 없다.” 엘리엇 엔겔 의원 “장기적출은 천인공노할 죄” 엘리엣 엔겔 하원의원(민주·뉴욕)도 표결 전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343호 결의안은 아주 중요한 법안이다. 장기적출 만행은 특별히 파룬궁수련자를 포함한 양심수를 겨냥한 것으로 엄중한 인권침해 범죄행위다. 중국공산당 감옥은 사람의 신앙을 이유로 그들의 장기를 적출하는데 이는 그야말로 사람을 경악시키는 일이며 이보다 더 혐오스러운 만행은 없을 것이다. 장기적출은 천인공노할 범죄로 사람을 충격에 빠뜨리게 한다. 우리는 끝까지 내막을 철저히 파헤쳐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알아야 한다. 이 결의안은 중국공산당에게 장기적출 행태를 중단할 것과 파룬궁 박해를 중단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나는 이 결의안을 지지하는 바이다.” 크리스 스미스 의원 “파룬궁 박해는 최대 테러 중 하나” 크리스 스미스 하원의원(공화·뉴저지)은 표결에 앞서 실시된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이 결의안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그러한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고, 말로써 형용할 수 없는 고문을 당한 그러한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며, 중국 감옥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 내는 것이다. 이 결의안은 21세기 최대 범죄 가해자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는 중요한 첫 걸음이다.” 스미스 의원은 이어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에 대해 17년간 지속해온 박해는 최대 테러 중 하나다. 파룬궁 박해 증거는 사람을 경악시키는 장기적출 만행을 포함해 갈수록 많이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스미스 의원은 또 말했다. “데이비드 킬고어(전 캐나다 아·태담당 국무장관), 데이비드 메이터스(캐나다, 국제인권변호사), 에단 구트만(미국, 언론인 겸 작가)이 실시한 정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충격적인 것은 짧디 짧은 몇 년 사이에 약 4만 5천 명에서 6만 5천명에 달하는 파룬궁수련자들이 생체 장기적출로 희생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3명 조사관의 최신보고에 근거하면 생체 장기적출로 사망한 숫자는 아마 더욱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스미스 의원은 마지막으로 “우리가 얻은 신빙성 있는 증거자료에 따르면 중국공산당이 비록 사형수 장기사용을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강제 장기적출로 사망한 수감자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고, 중국 병원도 실제 장기이식 건수를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아래는 미 연방하원이 통과시킨 제343호 결의안 전문이다. 미국 제114기 국회 343호 결의안 우리는 중국에서 대량의 파룬궁 수련자와 기타 종교ㆍ소수민족 인사를 포함한 양심수의 몸에서 체계적으로, 그리고 범국가적 제제 차원에서 본인의 동의 없이 이뤄지는 장기 적출에 대한 지속적이며 신빙성 있는 소식을 접하고 이에 우려를 표명하는 바이다. 도덕적 기준에 의거해 실행될 경우에만 장기이식은 현대 의학의 위대한 성과 중 하나다. 아울러, 중국에서 이식에 사용된 장기의 대부분이 처형된 사형수로부터 입수했다는 2011년 중국 당국의 발표와 더불어, ...아르헨티나의 해양경찰이 지난 3월 중순 자국 해역에서 불법으로 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을 포착했다. 이 중국인 밀렵꾼들은 무선호출 신호와 ...중국은 자본조달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신흥시장 에너지 기업들에게 최고의 채권자 노릇을 하고 있다. 지난 24개월간 브랜트유가 64% 폭락한 가운데, 중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더) 러시아나 브라질 같은 신흥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에너지 회사에다 대량의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장기간에 걸쳐 중국은 조금씩 접근방식을 조정해왔다. 전면적인 구매를 피하면서 돈을 대출해주거나 소지분을 가지는 방식으로 중국은 장기적인 소유권의 복잡한 문제를 피하면서 필요한 에너지의 공급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3월 초에 러시아 국영 가즈프롬(Gazprom)은 중국은행으로부터 5년간에 걸쳐, 20억 유로의 차관을 받았다. 이 회사가 얻어낸 가장 대규모 차관이다. 이 자금으로 가즈프롬이 야심적인 기반시설 프로젝트를 계속할 수 있게 하는 결정적인 생명줄이 제공되었다 지난 달, 고전하던 브라질의 국영기업, 페트로브라스(Petrobras)는 중국 기업에 석유 공급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100억 달러의 차관을 중국개발은행으로부터 받았다. 페트로브라스는 석유업계에서 가장 부채가 많은 기업으로 유가가 몇 년래 최저치로 떨어진 지난 2년간 파산의 위기에 처해있는 기업이다. 최근의 에너지 거래건 (공급계약조건 대출 구조)은 과거 중국이 선호하던 에너지업계의 자산을 인수하던 구매 패턴에서 벗어나 있다. 중국의 최대 해외 에너지 기업 인수건으로, 골치거리가 되어버린 넥센(Nexen) 관련 실패의 교훈으로, 중국인들이 크게 배웠다고 추정된다. 지난 2012년,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가 150억 달러 규모의 캐나다 오일샌드 시추사 넥센을 많은 규제당국의 검토 끝에 150억 달러라는 이례적인 가격에 구매했다. 그 거래는 캐나다 총리 스티븐 하퍼가 승인을 했고, 중국은 일자리를 유지하고 캐나다에서의 성장촉진을 약속했다. 넥센은 롱레이크 오일샌드 프로젝트로 가치창출을 해보려고 애를 썼지만, 여러 해 동안 비용만 발생했고, 비엠오캐피털마켓(BMO Capital Markets)에 따르면, 현재 알버타주에서 최저 생산성의 오일샌드다. 실망스런 재무결과에 더해 넥센에 기업홍보 악재가 발생했다. 2015년 넥센 송유관이 터져, 3만 배럴 이상의 원유가 알버타주로 누출되어, 일시적으로 감산했다. 회사는 공개 사과해야 했고, 수개월동안 넥센의 에너지 생산량은 축소되었다. 넥센은 또한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있고, 3월 17일에는 유가하락을 이유로 북미와 영국에서 400개의 일자리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오랫동안 세계 최대 석유매장량을 자랑하는 캐나다 오일샌드를 탐내왔다. 하지만 캐나다트러스트(Canada Trust)분석에 따르면, 캐나다 오일샌드는 추출비용이 높고 저등급 중질유여서 생산자로서는 배럴당 50달러 수준이 손익분기점이다. CNOOC의 넥센 인수 이래, 요즈음의 저유가 환경이 넥센의 가치를 더 하락시켜, 넥센의 사례는 중국기업에 의한 최악의 에너지 기업 인수로 기록되고 있다. 원유가 하락이 2014년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 후 곧이어 시작되었다. 중국은 특히 러시아의 북극과 시베리아의 몇몇 석유 가스 프로젝트에 뛰어들어, 떠나간 서방 기업을 대신해 기술적 재정적인 갭을 메우고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 에너지 소비대국으로서, 중국은 에너지 사업이 특별히 어려운 시기에, 자금부족에 시달리는 에너지 생산자를 이용할 만하다. 넥센의 인수 경험 이후 현명해진 중국은 대출과 전략적 파트너십에 의존해 선택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러시아의 제일 큰 오일 생산업체, 로스네프트 NK 오에이오(Rosneft NK OAO)는 중국기업과 협상 중이다. 서방제재로 엑손모바일이 합작 사업에서 빠져나간 후에, 2014년 원래 취소 되었던 북극 연안 프로젝트에 중국기업이 투자하도록 협상 중이다. 로스네프트는 지난해 중국과 5000억 달러 상당의 20년 계약을 체결했고, 이로써 중국 넘버원 석유 공급자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러시아로 대체될 수 있다. 글로벌리스크인사이트(Global Risk Insight) 보고에 따르면, 모스크바는 중국기업이 특정 프로젝트에서 지배지분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러시아의 제한적인 국가 소유권 규제 완화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의 20억 유로에 달하는 가즈프롬에 대한 차관은, 회사의 전반적인 자본요구에 비해서는 적은 액수지만, 주요 중국은행과 러시아 기업 간의 첫 번째 금융계약이란 점이 중요하다. 가즈프롬은 2014년 11월, 중국국영석유공사(CNPC)와 4000억 달러 상당에 달하는 30년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시간이 흐르면, 러시아의 가장 큰 가스 고객으로서 중국이 독일을 제칠 것이다. ...스웨덴 예테보리에 본부를 둔 볼보(Volvo)차가 같은 스웨덴 경쟁사 SAAB처럼 폐차장행 길을 걸을 운명으로 보였던 것은 오래 전 일이 아니다. 요즈음 볼보는 번창일로에 있다. 2015년 자사 역사상 가장 많은 5십만 대를 운송했으며, 전년도 대비 수입은 3배, 경영수익은 2배가 되었다. 2010년 중국의 저장 겔리 홀딩스 (Zhejiang Geely Holdings )가 헐값으로 볼보를 인수할 당시만 해도 장기적으로 성과가 나기 힘들 것으로 보였지만 볼보는 회생해 중국 모기업에 수익으로 보상해주고 있다. 자동차 업계의 틈새시장 주자였던 볼보는 글로벌 경제위기 때, 판매에 손실이 나기 시작했다. 점점 늘어나는 손실은 모기업, 포드 모터 컴퍼니(Ford Motor Company)에 짐이 되었다. 2009년, GM과 크라이슬러가 미국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게 되었을 때, 유동성 위기에 처해있던 포드는 볼보를 처분해야 할 자산으로 여겼다. 중국 저장 겔리 홀딩스는 2010년 볼보를 15억 달러 현금과 포드부채 부담 조건으로 사들였다. 중국회사로서는 대단한 성공이었다. 이 거래는 중국 자동차회사가 외국 경쟁사를 100% 인수하는 첫 사례였다. 경제위기 와중에 드라마틱한 헤드라인 뉴스에 묻혀 볼보가 넘어간 일은 서구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그 당시 전체 자동차 산업이 고통 받고 있었기에 겔리가 볼보를 구해낼 수 있을지는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어떤 분석가들은 겔리가 볼보의 기술만 인수하고 나머지는 버릴 것이란 예측을 하기도 했다. 거대한 도박 대부분의 중국회사들이 해외자산을 취득하려고 할 때는, 업계 내에서 자리잡은 주자에게 다가가 해외시장에 자신들의 제품을 론칭하기 위한 발판으로 활용하거나, 전략적으로 중요한 섹터에서 빠른 성장을 하려 할 때이다. 겔리의 볼보 인수는 중국기업으로서는 드문 유형이다. 당시 자동차 산업은 유가상승과 글로벌 경기 침체로 두 자릿수 판매 감소를 경험하고 있었다. GM은 폰티악과 새턴을 생산 중단하고 SAAB를 처분했다. GM과 크라이슬러가 둘 다 정부지원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하면, 볼보의 구입은 성공 가능성이 적은 거대한 도박이었다. 볼보의 회생에는 돈과 행운과 얼마간의 혁신이 필요했다. 겔리는 자본을 제공하되 스웨덴의 경영팀을 유지하도록 하여 독립적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볼보가 신모델과 신기술을 개발하고, 중국과 스웨덴에 조립공장를 세울 수 있도록 110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새 자본이 유입되자 볼보는 정체되던 업계에서 혁신주자가 되었다. 겔리 휘하에서 처음 개발된 볼보의 ‘XC90 SUV’는 볼보가 SPA(Scalable Product Architecture)로 이름 붙인 차세대 초경량 플랫폼에 얹혔다. 차종에 따라 각각 새로운 차 골격을 개발하는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와는 달리, 모듈방식 플랫폼은 볼보가 각각 다른 사이즈의 차량들 간에, 대부분의 중요한 요소를 공유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비용을 감소시키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게 되었다. 볼보의 유연성은 전기시스템에까지 확장된다. 볼보의 전기시스템은 차량제조사가 나중에 더 쉽게 더 새로운 기술로 교체할 수 있게 해준다. “볼보처럼 상대적으로 소규모 회사는 생산라인 유연성이 특별히 크게 중요하다”고 카앤드라이버(Car and Driver)보고서가 밝혔다. 또 다른 색다른 결정을 들자면, 볼보는 앞으로 4-실린더 엔진(3-실린더 엔진이 개발 중이므로 더 작아질 수도 있다)만 사용한다고 발표했다. 그러한 전략은 강하면서도 연료절약형인 엔진이 셀링 포인트인 고급 자동차시장에서는 듣기 힘들었던 이야기다. 볼보의 선택은 배기량을 낮추면서도 힘을 희생하지 않는 효율성에 노력을 기울여온 자사의 철학에 뿌리를 둔 것이다. 현재 XC90 SUV는 보통 경차용으로 쓰이던 터보차저 4-실린더를 활용한 유일한 고급중형SUV이다. XC90은 지난해 나오면서 호평을 받았다. 연료 절감성, 외관 디자인, 소재 품질 등에서 극찬을 받았다. 이 차의 성공으로 볼보는 회사 역사상 처음으로 5십만대 이상 판매를 달성하게 되었다. 경영이익이 지난해 66억 크로나(7억 8천만 달러 )에 이르렀다. 볼보는 지난 2월 판매가 2015년보다 34,551대로 15% 올랐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유럽이 31%와 21%로 성장을 주도했다. 볼보는 2016년, 신차 S90고급 세단이 소개되면, 자동차 판매고에 새로운 획기적 도약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의 확장 볼보를 향한 겔리의 첫 모험은 중국자동차 시장에서의 겔리 자신의 위치라는 문맥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겔리는 중국에서 메이저급 자동차회사가 아니다. 차이나오토웹(ChinaAutoWeb)에 따르면, 2014년 현재 겔리는 중국에서 17위로 랭크되는 인기승용차 브랜드였다. 연간 50만대 미만의 차량을 판매하면서 국내시장 3% 이하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 해에 수백만 대의 차량을 판매하는 국유 거대기업들인 상하이기차 (SAIC Motor), 제일기차(FAW Group), 둥펑기차(Dongfeng Motor), 창안기차(Chang'an Motor)등에 비해서는 작은 회사이다. ...지난 6일 북한은 수소폭탄 발사실험에 성공했다고 밝혀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으며 세계 각국에서는 즉각 비난이 이어졌다. 북한은 과거 세 차례에 걸친 핵실험 당시 모두 최소 30분 전에 중국과 미국에 통보해 왔으나 이번 실험은 사전에 통보하지 않았다. 중국은 이에 대해 신속히 대응, 실험 여부를 사전에 알지 못했음을 알리는 한편 실험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2006년 10월 9일부터 현재까지 북한은 총 네 차례 핵실험을 진행했다. 이 글에서는 네 차례에 걸친 핵실험의 내막을 밝히고자 한다. 식상해진 ‘말 안 듣는 北, 타이르는 中’ 북한 김씨 정권은 세계 2차대전 이후 공산주의 진영과 서방 자유세계 진영이 서로 대치하는 가운데 수립됐다. 김씨 정권의 배후에는 구소련과 중공이 뒷받침하고 있었는데, 김씨 정권이 폭정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전부 경제와 군사 방면에 걸친 구소련과 중공의 폭넓은 지지 덕분이었다. 중국은 북한의 최대 교역국이자 식품·무기·연료 공급처로서, 90년대 이후 북한의 식품과 에너지의 90%는 모두 중국에서 공급받은 것이었다. 전반적으로 살펴볼 때, 북한과 중국 간의 관계는 김씨 정권과 중공과의 관계로 볼 수 있다. 북한은 경제적으로 거의 중공의 원조에 의지하고 있으며, 중공은 그 대가로 북한을 서방국가에 대항하는 도구로 삼고 있다.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수십 년간 북한은 공산주의 독재국가로서 3대에 걸친 김씨 정권의 독재 치하에 공산 독재정권의 병폐를 남김없이 재현해왔다. 김씨 일가는 대내적으로 독재통치를 시행, 국민을 탄압하고 국력을 자신의 이익에 사용했다. 북한에서는 전역에 기아가 만연하고 굶어 죽는 일이 속출해 사람들이 남한으로 탈출하고 있다. 김씨 일가 3대는 당내 정적을 지나칠 정도로 잔혹하게 숙청하는데, 심지어 김정은은 취임 이후 자신의 고모부인 장성택을 사형시켰다. 김씨 정권은 대외적으로 세계를 협박하는 방식으로 자신에 대한 중공의 지지를 얻어냈고, 중공은 북한이라는 불량배 아우를 미국과 서방세계에 대항하는 도구로 이용했다. 북한은 핵 위협이라는 위험한 게임을 반복해 왔는데, 그 목적은 독재자 김정은의 개인적 권력을 극대화함으로써 독재정치의 기반인 경제적 지원을 보장받으려는 데 있다. 이러한 북한의 막후 조종자는 바로 중공이다. 중공은 6자회담을 이용해 여러 차례 이러한 게임을 벌여 왔는데, 늘 이런 식이었다. 우선 북한이 핵 위협을 통해 UN 제재를 받고 미국의 경고를 받는다. 이어 미국과 국제사회는 중국의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북핵 문제 해결에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할 것 등을 주문한다. 중공은 이를 기회 삼아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거나 내부문제를 해결한다. 사실 6자회담은 중공과 북한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나 다름없다. 북한, 중공 장쩌민파와 밀월관계 시진핑 정권 출범 이전까지 북한 관련 정책을 결정한 것은 중공 장쩌민파였다. 북한 김정일 정권은 장쩌민 일파와 각별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선데이타임스 셰리든 극동지역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장쩌민파 저우융캉 전 상무위원은 중공과 김씨 부자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김정일이 2010년 김정은을 후계자로 정식 지정해 열병식을 거행했을 당시, 저우융캉은 김씨 부자와 함께 단상에 섰던 유일한 외국인이었다. 장쩌민파로 분류되는 장더장 현 상무위원은 과거 북한으로 유학해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과에서 2년 과정을 수료한 바 있다. 장쩌민의 책사 쩡칭훙 역시 김정일과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쩡칭훙은 2001년 3월 장쩌민의 방북 당시 선발대로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로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았으며 북한은 이후 쩡칭훙과 김정일이 함께 그려진 기념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또한, 보시라이, 저우융캉은 정변 기도가 실패로 돌아갈 경우 도피처로 북한을 고려했던 것으로 언론에 알려졌다. 이처럼 장쩌민파 주요 인물들과 북한 고위층은 긴밀히 서로 협조해왔는데, 과거 쩡칭훙·저우융캉·장더장 등이 그랬다면 지금은 류윈산 상무위원이 그러한 인물이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10일 노동당 창당 열병식 당시 리위안차오(李源潮) 중공 국가부주석이 이끄는 사절단의 방북을 거절한 반면, 장쩌민파 류윈산만은 특별초청했다. 보도에 따르면 류윈산은 북한 열병식의 TV 중계방송을 뒤에서 총지휘했으며 베이징 열병식을 중계한 중공 CCTV 주요 기술자들을 사전에 파견해 북한을 돕기도 했다. 최근 취소됐던 북한 모란봉 악단의 베이징 공연 역시 류윈산이 북한 방문 당시 협의해 내린 결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北 핵실험, 中 정치적 사건과 겹쳐 북한의 1차 핵실험(2006년 10월) 전에는 후진타오에 대한 함포사격 사건이 있었다. 그해 5월, 당시 군사위원회 주석이었던 후진타오는 북해함대 시찰을 위해 서해를 방문했다가 군함 2척의 공격받는 사건을 겪는다. 이 사건은 장쩌민파 해군 사령관의 명령으로 인한 것으로 밝혀졌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후진타오는 6월 중앙기율검사위위원회 조사팀을 상하이로 파견해 천량위(陳良宇) 상하이시 서기를 낙마시켰다. 장쩌민파의 후계자였던 천량위는 2년 뒤 18년형을 선고받았다. 북한의 2차 핵실험(2009년 5월) 역시 후진타오에 대한 암살모의와 시기적으로 겹쳤다. 그해 4월 중공은 사상 최대 규모의 해상 열병식을 칭다오 해역에서 개최했는데, 홍콩 언론에 따르면 후진타오는 열병식 직전, 개막과 동시에 장쩌민파 요원들의 암살시도가 있을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했고 갑작스럽게 계획을 변경해 암살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8월 톈진에서 일어난 초대형 폭발사건이 중국 지도부 권력투쟁과 연관되어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편 ...올해 중국공산당의 정치법률(정법)부문에서만 관료 111명이 낙마했거나 질병·사고사 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중국에서 16년째 지속되고 있는 파룬궁(法輪功·중국 수련법) 탄압에 ...“메스가 가슴을 한 번 긋자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심장의 혈관을 자르자 그녀는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2002년 4월 9일 오후 5시, 선양 군구 총 병원 15층의 한 수술실에서 두 군의관(한 사람은 선양 군구 총 병원 군의관이고, 한 사람은 군의 대학을 졸업한 젊은 군의관)은 마취 없이 살아 있는 30대 여성 파룬궁 수련자의 장기를 적출했다. 이 파룬궁 수련자는 이미 일주일간의 혹독한 고문으로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 2009년, 랴오닝성 진저우시에서 현장 경비를 담당했던 목격자가 파룬궁 박해 추적 조사 국제 조직에 제보한 내용. 헤이룽장성 완자(萬家) 노동교양소에 수감된 임산부가 발끝을 의자에 디딘 채 대들보에 매달려 있었다. 당시 그녀는 임신 6~7개월이었다. 경찰이 의자를 차버리자 몸은 순식간에 허공에 떠버렸다. 굵은 밧줄이 3m 높이의 대들보의 도르래를 지나 경찰의 손에 쥐여 있었다. 줄을 당기면 그녀의 몸은 번쩍 들렸고 줄을 놓으면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은 그녀가 유산할 때까지 계속됐다. 경찰은 그녀의 남편을 데려와 이 광경을 지켜보게 했다. - 2004년 11월 5일 완자 노동교양소에서 100여 일 혹형을 당한 왕위즈(王玉芝)에 대한 밍후이왕 취재 보도. 2000년 10월, 마싼자(馬三家) 노동교양소는 여성 파룬궁 수련자 18명의 옷을 모두 벗긴 채 남자 감방에 집어넣어 죄수가 윤간하게 했다. 한 목격자는 여러 죄수가 한 수련자를 덮치는 것을 목격했다. 며칠 후 그중 한 명이 자살을 시도했다가 구조됐다. 이 사건으로 5명이 사망하고 7명이 정신 질환에 걸렸으며, 나머지는 불구가 됐다. 그 후 이 광적인 악행은 기타 교양소 및 감옥으로 확산됐다. 마싼자에서 고문을 자행했던 경찰은 수감된 파룬궁 수련자에게 “강간을 당해도 고소하지 않아야 ‘참음’이다.”라고 말했다. - 2001년 2월 UN 인권위원회 부녀 혹형 특별 조사 보고서. 1999년 7월 중국 공산당 주석 장쩌민은 파룬궁 탄압을 시작했다. 많은 파룬궁 수련자가 혹형과 고문, 생체(生體) 장기 적출, 약물 강제 주입 등을 포함한 여러 방식의 탄압으로 사망했다. 이상의 탄압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비폭력, 평화적인 방법으로 항쟁해 온 파룬궁 수련자들은 올해 5월부터 전국적으로 장쩌민을 고소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민중이 고위관료를 대규모로 고소하는 현상은 유례없는 일이다. 5월 1일, 중국 법원은 공식적으로 “소송이 있으면 반드시 심리하고, 안건이 있으면 반드시 입건한다”고 밝혔다. 7월 15일 현재 6만 명 이상의 파룬궁 수련자와 친족이 각종 경로를 통해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 최고 검찰원, 최고 법원에 형사 고소장을 제출해, 반(反)인류죄, 혹형죄, 집단학살죄 등의 죄명으로 장쩌민을 고소하고 파룬궁 탄압을 주도한 장쩌민을 처벌할 것을 요구했다. 모두가 궁금할 것이다. 장쩌민은 왜 이번 탄압의 원흉으로 지목돼 법정에 서게 될 날이 머지않게 되었을까? 장쩌민은 왜 파룬궁을 탄압하려 했을까? 장쩌민의 수치스러운 성공 1942년, 국가와 국민의 운명을 걱정한 많은 청년이 항일 구국 운동에 뛰어들어 전선으로 달려가고 있을 때, 17세 장쩌민은 오히려 왕징웨이(汪精衛)의 친일 정권이 운영하는 대학에서 고등교육을 받았다. ‘장쩌민 그 사람(江澤民其人)’이란 책과 여러 조사에 따르면 장쩌민의 친부 장스쥔[江世俊·일명 장관첸(江冠千)이라고도 한다]은 일본의 난징 점령 기간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 선전기구 간부였다. 소련 붉은 군대는 1945년 창춘에서 일본 육군 대장 도이하라 겐지(土肥原賢二)가 거느린 특수요원에 대한 서류를 조사했다. 그는 1913년부터 중국에서 침략, 음모, 획책 활동을 벌인 바 있다. 그 자료 중에는 중국 침략 특수 요원을 양성하는 위 중앙대학 ‘청년 간부 양성반’에서 장쩌민이 교육을 받았다는 언급과 사진과 관련 서류가 있었다. 후에 조사를 거쳐 장쩌민이 장관첸의 아들이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소련 유학 기간에 장쩌민은 KGB 미녀 스파이의 유혹에 넘어갔고, 소련은 그의 비밀을 폭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장쩌민을 KGB 극동국에 가입시켰다. 역사학자이자 중국의 2차 세계대전사 연구원인 뤼자핑(呂加平)은 ‘장쩌민의 ‘두 가지 간사함과 두 가지 거짓(二奸二假), 정치 기만 문제에 대한 조사를 호소한다’는 문장에서 ‘첫 번째 간사함(奸)’은 장쩌민 본인과 친부는 모두 일본의 앞잡이로 매국노(漢奸)라는 점이고, 두 번째 간사함은 장쩌민이 소련 정보기구에 충성을 하고자 중국의 넓은 영토를 넘긴 사실을 말한다. 첫 번째 거짓은 장쩌민 자신이 1949년 전인 1946년에 중공 지하당에 가입했다고 속인 사실로 실제로는 가짜 당원이라는 점이고, 두 번째 거짓은 자신을 애국열사의 아들로 위장한 것이다. 장쩌민은 줄곧 자신을 중공에 가입해 활동하다 훗날 토비의 총격에 사망한 장상칭(江上靑)의 아들이라고 거짓말했다. 장상칭은 실제로는 숙부이며, 친부인 장스쥔의 친일 행적은 장쩌민이 숨기고 싶은 가족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