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마싼자에서 온 편지' 책을 쓴 윈자오(雲昭)이다. 어떤 일로 마싼자 노동교양소 구금 경력이 있는 책의 주인공과 한번 만난 적이 있는데 우연히 그에게 마싼자(馬三家) 노동교양소에서 보내온 한 통의 구원 요청 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 미국 여성이 4년이 지나서야 이 편지를 받았다고 하자 그는 차분하게 “그 편지는 제가 썼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를 듣고 나는 정말 놀랐다. 나는 스스로를 정상적인 사람이라 여겼다. 친구와 직장이 있고, 친구들과 웨이신을 통해 좋아하는 음식, 건강여행, 친환경과 애완동물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또 좋은 글귀를 공유하곤 했으니 말이다. 이에 비하면 구원 요청 편지에 담긴 내용은 정말이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일어난 일 같았다. 친구들에게 들은 얘기를 말해줬다. 그들은 눈을 크게 뜨며 놀라긴 했지만 이내 본래의 화제로 돌아가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마치 우리와 관계없고 또 그런 일이 없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일은 실제로 발생했고 나는 알게 된 이상 이를 회피할 수는 없으며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관련자들을 만나고, 인터뷰하고 그들의 진술을 통해 마싼자 남자 노동교양소의 ‘그대로의 모습’에 접근해 보려고 시도했다. 2. 나는 2013년 7월 3일부터 원고가 완성될 때까지 녹음기를 사용해 인터뷰를 계속했다. 인터뷰를 해본 경험은 별로 없었다. 원래 갖고 있는 능력만으로 되도록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일들을 접촉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1년 남짓한 기간에 30여명의 ‘구두 진술' 기록을 얻을 수 있었다. 진술한 사람은 파룬궁 수련자, 일반 수감자, 파룬궁의 결백을 주장하며 청원했던 사람, 파룬궁 수련자의 가족과 친구, 마싼자 노동교양소 경찰과 운전기사, 마싼자의 행상, 상점주인, 현지 주민 등등이다. 그들을 통해 100시간이 넘는 녹음 자료를 얻었고 당사자가 제공한 많은 양의 서류, 법률 문서, 마싼자 노동교양소에서 몰래 갖고 나온 영상 자료와 사진들도 모을 수 있었다. 주인공은 마싼자 노동교양소의 지리적 위치, 공간 배치, 잔혹한 고문 시연과 고문 도구 등의 그림 자료도 직접 제작해 내게 줬다. 덕분에 나는 더욱 구체적인 정황을 서술할 수 있었다. 이 밖에도 암호화된 메일을 통해 주인공과 서면 인터뷰를 하면서 거의 100개에 달하는 사실에 대해 자세한 실태를 조사해 나갔다. 나는 마싼자 교양소와 관련한 중국 내의 많은 보도를 참고했고 오리건주 신문, CNN, 뉴욕타임스, 대기원시보, NTDTV, 희망의 소리 국제 라디오 방송 등 해외 매체의 보도도 참고했다. 그 외에도 마싼자교양소와 관련한 국내의 사료들을 모두 수집했다. 그 중 <랴오닝성 마싼자노동교양소 간행물(1957~1997)>, <마싼자 진 간행물(馬三家鎭志)>, <비바람 60년(전 선양 마싼자교양소 정치위원 회고록)> 등의 자료는 내게 큰 도움이 됐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당사자의 신변 보호를 위해 나는 어쩔 수 없이 등장인물의 실명을 밝힐 수는 없었다. 다만 시의 적절하게 관련 실증 자료만 공개할 수 있었을 뿐이다. 어떤 문체로 이 소재들을 정리해야 할까? 이전에 나는 르포르타주(보고문학) 문체를 시도해 본 적이 있었다. 그 경험에서 나는 글 배후의 뜻을 전달하는 것은 단지 문법적 수사의 차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당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표현해 내느냐 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 독자들에게 이미 익숙한 ‘르포르타주 문학’은 분명 나의 선택지는 아니었다. 나중에야 나는 나의 서술 방식이 중국에서 이제 막 발전하고 있는 일종의 ‘논픽션 문학’과 상응하는 것임을 깨닫게 됐다. 결국 ‘논픽션 문학’과 같은 문체를 채택하게 된 것은 내가 수집한 소재들이었다. 다행히도 그들의 서술은 어떠한 허구로도 다다를 수 없는 생동감이 있었고, 말 속의 어조와 끊김, 심지어 숨기고 덮어두고 싶어하는 것까지도 이미 벌써 복잡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나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만 현실의 진실과 풍부함이 저절로 드러날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본래 그대로 표현하려고 나는 인터뷰 녹음을 반복해서 들었다. 원래의 말과 어조를 최대한 살린 결과 책은 내가 처음 쓰려고 한 내용보다 훨씬 더 잘 표현됐음을 볼 수 있었다. 3. ...
“중국에서 수백 만 명의 파룬궁 수련자들이 박해 받고 있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실종되거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정의를 위해 비인간적인 박해를 중지시켜야 합니다.” 2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청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장얼핑(張而平) 파룬궁 대변인은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대미문의 인권 박해 중단을 위해 국제사회가 나서줄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했다. 법회 참석을 위해 세계 각국에서 샌프란시스코에 모인 파룬궁 수련자 2천 여 명은 지난 22일부터 중국공산당의 탄압을 알리기 위해 길거리 퍼레이드, 촛불집회, 서명, 금문교 도보횡단, 집회, 토론회 등 다양한 행사를 잇따라 열었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의원은 25일 집회에 서한을 보내 지지를 표명했다. 그는 “나도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지속적이고 체계적이며 국가가 개입한 중국의 강제 장기적출에 큰 우려를 갖고 있다”며 “중국은 국제법을 어기고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 나는 캘리포니아 선거구의 중국계 주민들과 함께 계속 중국의 인권 박해를 주시하고 정치인사, 소수민족과 종교단체에 대한 탄압을 중단할 것을 지속적으로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펠로시 의원은 미국 하원 343호 결의안 발기인 중 한 명이다. 지난 6월 통과된 이 결의안은 파룬궁 등 양심수들의 장기를 강제 적출해 불법 거래하는 만행을 중단할 것을 중국 당국에 촉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왕즈위안(汪志遠) ‘파룬궁박해추적조사국제조직’ 대표는 집회에서, 지난 10여 년 동안의 조사를 통해 중국 장쩌민 일파가 당, 정, 군, 사법, 선전과 의료체계를 포함한 모든 국가기구를 동원해 파룬궁 수련자들을 상대로 대학살을 벌인 정황이 확연히 드러났고 밝혔다. 그는 “대량의 증거들은 파룬궁 수련자를 상대로 벌어지는 장기적출 만행이 실제로 존재하며, 이는 중국공산당 전 지도자 장쩌민의 지시로 일어난 국가적 범죄라는 사실을 증명해 줬다”라고 말했다. 이날 팡정(方政) 중국민주교육재단 이사장과 탕바이차오(唐柏橋) 민주대학 총장 등 중국 민주인사들도 집회에 참석해 발언했다. 1989년 천안문사태 당시 인민해방군 탱크에 깔려 다리를 잃은 팡정은 “강제 장기적출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그처럼 처참하고 반인륜적인 죄악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지만 최근 몇 해 동안 증거가 갈수록 많이 드러나고 있다”면서 중국공산당의 죄행을 낱낱이 기록해 폭로한 ‘파룬궁박해추적조사국제조직’을 높이 평가했다. 탕바이차오는, 그동안 중국공산당의 박해를 받은 사람들은 많지만 “끝까지 남아서 저항하는 사람들은 파룬궁 수련자들뿐”이라면서 “파룬궁 수련자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당신들의 견고함은 내가 오늘날 중국의 민주화를 위해 계속 노력할 수 있는 정신적 지주가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세계 각지에서 온 파룬궁 수련자들이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재 중국영사관 앞에서 대규모 촛불집회를 열었다. 22일 저녁(현지시간), 법회 참석차 샌프란시스코에 모인 각국 파룬궁 수련자 2천 여 명은 중국영사관 앞에서 지난 17년 동안 박해로 희생된 수련자들을 추모하면서 박해 중지를 촉구했다. 지린성 창춘(長春)의 대기업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던 왕롄쑤(王聯蘇)는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지난 2001년 불법 감금됐다 2013년에야 풀려났다. 현재 뉴저지에 살고 있는 그는 “지난 12년 동안 중국 감옥에서 갖은 고문을 당했다”면서 “3일 동안 물과 음식을 먹지 않고 잠을 자지 못해 동공이 확장되는 응급 상황에 이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 번은 경찰들이 그의 옷을 모두 벗기고 철제 의자에 앉힌 후, 손과 발을 묶었다. 다리와 복부는 철 파이프로 고정시켰다. 이어 사정없는 주먹질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그들은 또 찬물을 끼얹는가 하면 전기봉으로 얼굴과 가슴 부위를 검게 타들어가 갈 때까지 지졌다. 왕롄쑤는 “그들은 나를 작은 방에 15동안 가둬놓고 신앙 포기를 강요한 적이 있는데 내 머리를 콘크리트 벽에 힘껏 박거나 목을 졸라 오랫동안 음식을 삼키기조차 힘들었다. 가슴을 벽에 부딪치게 하여 숨이 멎을 정도로 심장에 큰 충격을 가하기도 했다”라고 폭로했다. 그는 “주변의 20여 명의 파룬궁 수련자들은 모두 그렇게 하여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며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사건 동영상 삽입 방송을 지휘했던 량전싱(梁振興)은 쓰핑(四平) 감옥에 함께 수감됐었는데, 피골이 상접할 때까지 고문을 받다가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번 집회에 동참한 많은 파룬궁 수련자들은 중국 감옥에서 빈번한 혈액검사를 실시했다는 등 강제 장기적출 만행과 관련된 증언을 했다. 덴마크에서 온 바오쉐전(鮑學珍)은 지난 2003년 상하이 여자 감옥에 수감된 바 있다. 그는 당시 감옥에서 단체 신체검사가 실시됐고 그 후 많은 수련자들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당시 바오쉐전이 내장 초음파 검사를 받을 때 의사는 옆에 있는 경찰에게 “이 사람의 담은 결석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직접 들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중국을 탈출해 프랑스로 간 중수란(仲淑蘭)은 지난 2012년 산둥(山東)성 여자감옥에 수감됐다. 그는 경찰이 수감자들의 음식에 정체불명의 약물을 섞어 넣는 것을 봤는데, 그 후 자신에게 고혈압, 편두통, 무릎관절통, 시력저하 등 각종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중수란은 이 때문에 지난해 조기 석방됐다 . 광둥성의 여자감옥에 수감된 바 있는 양칭팡(楊淸芳)은 풀려나기 전 감옥 측이 신체검사 명목으로 3개월 동안 무려 15번이나 채혈을 실시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매번 꽤 많은 양을 채취했는데 검사 결과를 통보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이들 파룬궁 수련자들은 지난해 중국 최고인민검찰원과 최고인민법원에 파룬궁 박해를 발동한 장쩌민 전 국가주석을 반인류죄와 집단학살죄로 고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