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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정부 국내 구매로 기업 살아날까?
    中 정부 국내 구매로 기업 살아날까?
    최근 중국 정부가 제품 구매 루트를 해외에서 국내로 돌리면서, 정부 구매 명단에 일부 해외 첨단제품이 빠지는 대신 중국 본토 제품이 많이 추가됐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와 줄곧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시스코 등 외국 기업들은 초대형 고객을 놓치게 됐다. 이에 중국 여론은 국가 안전을 보장하는 중요한 조치라며 환호했지만, 사실 중국 정부의 진짜 목적은 안전 보장이 아니라 내수 진작에 있다. MS 등 외국자본이 잇달아 철수하고 수십 개 산업의 생산능력이 과잉되면서, 중국 내수는 줄곧 허약한 모습을 보였다. 만약 정부가 자국 기업에 주문을 내지 않는다면, 이는 스스로 동맥을 끊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 구매와 주문 외교 중국 정부의 소비는 크게 국내와 국외로 나뉜다. 국외 소비의 경우, 2012년 이전 국제 정치의 수요에 따라 ‘주문 외교’가 자주 사용됐다. 이 정책은 특히 EU에 효과적이었는데, EU는 중국의 대규모 주문으로 생산이 증가하고, 실업률이 감소했으며, 기업 세수가 보장됐다. 그래서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은 베이징을 매우 선호했다. 정부의 구매 목록에 포함된 물품 중, 일부는 에어버스, 보잉기처럼 국내에서 생산할 수 없는 종류였고, 일부는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지만 외국 제품과 비교할 수 없는 조악한 품질이었다. 더욱 중요한 점은, 당시 중국 경제의 3두마차 중 투자와 수출이 호황이어서 중국 정부가 내수의 약점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내 상황을 살펴보면 정부 소비도 매우 중요하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2000~2011년 동안 소비 수요가 GDP에 기여한 비율은 65.1%에서 55.5%로 낮아진 반면, 투자 기여도는 22.4%에서 48.8%로 높아졌다. 소비 수요 중 민간 소비는 2000년 74.5%에서 2011년 72.2%로 낮아졌지만, 정부 소비는 25.5%에서 27.8%로 높아졌다. 산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정부 소비가 민간 소비를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2012년, 중국 경제학계는 정부 소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재신망의 <내수 원동력 왜곡, 정부 소비가 민간 소비를 잠식하다>라는 기사이다. 이 기사가 발표된 후 관련 자료는 더는 공개되지 않았고, 이후“최근 몇 년 동안, 정부 소비는 줄곧 13% 수준을 유지했다”는 내용만 광범위하게 인용됐다. 하지만 27.8%였던 정부 소비가 어떻게 13%로 감소했는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기관도 나서서 해명하지 않았다. 중국은 민간 소비를 끌어올려야 한다. 국가통계국이 2014년에 발표한 조사결과를 보면, 농촌 소비자 중 여유자금이 없는 소비자의 비율은 23.6%이고 도시의 경우에는 15.9%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구매 루트를 외국에서 국내로 바꾸는 것은 반드시 취해야 하는 조치이다. 또한 국내 기업이 제품 품질을 보증해 정부가 제공한 수요를 만족하게 할지 여부는 앞으로 기업의 생존과 직원의 취업이 걸린 큰 문제이다. 세계 제1의 관광 소비국 된 중국 중국은 내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중국인은 오히려 한·미·일 및 유럽 각국의 최대 소비자가 되었다. 통계 자료에 따르면, 중국인의 해외여행 소비 금액이 2011년 730억 달러에서 2012년 1020억 달러로 증가해, 미국, 독일 등을 제치고 세계 최대 해외여행 소비국이 되었다. 2013년 중국 관광객의 해외 출국 회수는 9819만 번이었고, 관광에 소비한 총금액은 1,287억 달러에 달했다. 2014년 해외여행 출국 회수는 1억 번을 넘었고, 소비 총액도 1648억 달러로 증가했다. 그중 한국, 일본, 홍콩이 중국 쇼핑관광의 주요 3대 지점이 되었다. 2014년 삼사분기, 중국 관광객이 일본에서 소비한 금액은 15.7억 달러로 외국 관광객이 소비한 총금액 중 3분의 1을 차지했다. 그들이 한국에서 소비한 금액은 일본보다 더 많았다. 2011년 27.58억 달러, 2012년 33.93억 달러, 2013년 40.62억 달러에 달했다. 중국인이 외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카드는 인롄카드이다. 데이터에 따르면, 2014년 인롄카드의 전 세계 사용금액은 41.1조 위안에 달한다. 같은 해 중국의 추정 GDP가 61.15조 위안인 걸 생각하면, GDP의 3분의 2에 달하는 금액이 사용된 것이다. 이 거래 데이터가 사실이라면, 해외에서 사용되는 금액 중 일부만 내수로 전환해도 중국은 내수 부족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할 가능성이 매우 적다는 것이다. 해외 소비 내수 전환 쉽지 않아 각국 관광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중국 관광객은 미국에서 6,000달러를 소비하며, 영국에서는 1,600파운드, 독일에서는 2,500유로를 각각 사용한다. 물론 이들은 매일 2달러 미만으로 소비하는 중국의 3억 인구가 아니라, 부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10% 인구이다! 2014년 시난 재경대학 중국가정 금융조사 및 연구 센터는 보고서에서 2013년 상위 10% 가정이 총자산의 60.6%를 차지해, 지니계수가 0.717이라고 발표했다. 중국의 주요 가정인구는 3~4인이니, 10% 가정인구라면 1.3~1.5억 명으로 산출할 수 있다. 이는 약 1억 명의 해외여행 인구와 대체로 비슷하다. 중국 관광연구원의 통계를 보면, 중국 관광객이 해외에서 소비하는 총 금액 중 70%가량이 홍콩과 마카오에서 사용된다고 한다. 그들이 주로 구매하는 물품에는 분유, 의복, 신발, 화장품, 의약품, 가방 등이 들어 있다. 일본 구매제품 중에는 전기밥솥, 일본 쌀, 좌변기 시트 등이 포함된다. 이들은 중국에서도 살 수 있는 생활필수품이지만, 고급 소비자들은 외국에서 구매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외국 제품의 품질이 월등하기 때문이다. 특히 분유의 경우, 싼루분유를 먹은 아기들이 결석에 걸리는 전철이 있었기에, 중국 어머니들은 외국 명품이라야만 안심하고 먹인다. 고급 소비자가 외국에서 쇼핑하는 동안, 국내 생필품은 오직 중하층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그 결과 중국의 CPI 구조가 식료품 주도형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한다. 식료품 주도형 중국 CPI 구조 중국의 소비 진작에 중하층의 역할을 기대하는 건 매우 어렵다. 중국의 CPI는 미국과는 달리 식료품 주도의 CPI로 식료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30% 이상이다. (미국은 15%) 최근 중국의 물가 상승 유형을 보면 식료품류의 가격 상승이 매우 빨랐다. 2015년 1월분을 예로 들면, 전국 민간 소비 가격은 동기간 대비 0.8% 상승했다. 그중 식료품 가격이 1.1%, 비식료품 가격이 0.6% 상승했다. 이러한 상황은 중하층 소득자에게 더욱 큰 피해를 준다. 중국 저소득층의 식료품 및 주거 관련 CPI 비중이 67.2%에 달하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식료품 가격 상승은 중하층 소득 가정에 매우 불리하다. 과거 몇 년간의 보고서를 보면, 중국 도시 가정의 평균 자산은 247만 위안으로 미국보다 21% 높기 때문에, 중국인은 소비능력이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하층 소득 가정의 자산 중 부동산 비율이 매우 높고 기타 여유자금은 한정돼, 소비능력이 매우 제한돼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는 지난해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데이터와도 일치하는데, 결국 농촌과 도시의 적지 않은 소비자가 여유자금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 여유자금이 없는 사람들은 평소에 염가의 생필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으며, 식료품 소비 비중이 매우 높다. 이러한 CPI 구조는 각종 상품의 수요를 심각하게 억제한다. 중국 기업의 도전과 기회 ...
    6년 전 허칭롄(何淸漣)
  • 벼랑 끝에 선 중국 경제
    벼랑 끝에 선 중국 경제
      지난해 중국은 화폐가 대량으로 풀리면서 화폐 공급량이 122조 8400억 위안에 달했다. 2013년 말의 110조 7000억 위안과 비교하면 11% 증가한 것으로 경제 성장률보다 높은 셈이다. 2014년에 신규 증가한 12조 1400억 위안 중에서 80% 이상이 대출에 사용됐고, 전년 신규 증가 대출액은 9조 7800억 위안에 달한다. 2013년보다 8900억 위안 증가했고 2009년의 9조 5900억 위안의 최고기록보다도 1900억 위안이나 높은 수준이다. 이렇게 증발된 많은 지폐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모두가 인정하는 한 가지는 대부분 대출금액은 실물경제가 아닌 비생산 영역 금융시장으로 유입됐다는 사실이다. 2014년 중국 주식시장 지탱한 ‘통화’ 지난 1월 24일, 중국 주식상장 회사 시장가치 관리 연구센터가 ‘2014년 A주식 연도 보고’를 통해 중국 국민들에게 두 가지 호재를 전했다. 한 가지는 작년 A 주식 시장 시장가치 총 규모가 37조 1100억 위안을 기록하며 일본을 뛰어넘어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큰 주식시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중국 증권화율이 58.3%(A주식 시장가치 37조 1100억 위안/GDP 총량 63조 6500억 위안)에 달하며 2013년 40.1% 증권화율보다 훨씬 높아 미국 증권화율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는 점이다. 그러나 필자는 찬물을 끼얹어야겠다. 중국 증권업계 인사들은 증권화율을 이용해 중국 주식시장 발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목표는 미국의 증권화율을 뛰어넘는 것이다. 이러한 수단은 두 가지 요소를 간과하고 있다. 첫 번째, 미국 주식시장은 전 세계 주식시장으로 시장가치는 전 세계 자본으로 위탁된다. 중국의 A주식 시장 자본의 근원은 주로 국내이며 위조 외자까지 더하면 국내에서는 각종 루트를 통해 내보낸 자금이 되돌아온 것이다. 두 번째, 미국 주식시장은 건전한 신용제도에 의지한다. 중국의 신용제도 결함은 비교적 많으며 각종 기만 수단이 따른다. ‘2014년 A주식 시장가치 관리 행위 연도 보고서’는 2014년 주식시장 조작 행위에는 세 가지 새로운 변화, 새로운 특징이 있고, 또 하나가 ‘시장가치 관리’를 핑계로 내외를 결탁, 주식상장 회사를 통해 주가 조작을 펼친다고 밝혔다. 국내 주식시장 운영 봉쇄와 기만행위가 만연한 상황에서 증권화율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주식시장의 거품이 크고 투기성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 찬물을 끼얹어야겠다. 금융권 개인 고객들은 속기 쉬운 사람들이다. ‘시장가치 연도 보고’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상하이 선전 두 도시의 1284개 회사 핵심 주주와 고위관료가 소유한 주식은 모두 2218억 위안 감소했고, 그중 고위관료 보유분은 641억 위안 감소하면서 역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이러한 현금 바꾸기는 중앙기율검사위에서 머지않아 시작하려는 국유기업 반부패 정책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이다. 10여 년 전 국유기업 개혁 당시 적지 않은 국유기업 고위관료(그중 대부분이 리샤오린 등 혁명 후대)가 경영자 매수 방식을 통해 국유기업 주식을 획득했다. 또한, 자신의 자금이 반부패 정책 과정에서 수포로 돌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 주식시장에서 현금 바꿔치기를 했다. 부채 악순환에 말려든 대량 화폐 2009년 4조 위안을 들인 경제부양책 실시 이후 수십 조 위안의 신규 증가 화폐가 인쇄됐다. 지방정부는 화통하게 자금을 소비했고 관료 집단은 대수롭지 않게 자금을 착복했다. 옥에 티는 지방정부 부채였다. 하지만 지방정부도 중앙정부가 절대 지방정부를 파산시키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
    6년 전 허칭롄(何淸漣)
  • 차이나 유니콤 실세 ‘장몐헝’
    차이나 유니콤 실세 ‘장몐헝’
     지난 5일, 중앙기율검사위원회(중기위)는 여러 지역 여러 직위에 대한 순시 목록을 공개했다. 그 중 특히 국영기업 내 이권 및 인사 문제가 비교적 많았다. 국제방송국(國際廣播電台), 중국선박, 차이나 유니콤, 화전그룹, 둥펑자동차, 신화그룹 등 6개 기업 중에서 국내외 언론의 관심은 특히 차이나 유니콤의 부패 스캔들에 집중되었다. 그 원인은 차이나 유니콤의 배후에 귀공자 장몐헝(江綿恒)이 있기 때문이다. 이권의 중심, 상하이 연합투자 주식회사 2014년 12월 두 명의 차이나 유니콤 고위직 장즈장과 쭝신화가 조사받았지만 정작 외신의 관심은 장몐헝에 집중되어 있다. 그 이유는 차이나 유니콤이 2008년 장몐헝이 운영하던 중국망통을 합병하면서 탄생되었으며, 장몐헝이 차이나 유니콤의 실세이기 때문이다. 차이나 유니콤 합병 과정은 복잡하다. 그 중 주력인 중국망통은 2001년 남북전신의 스핀 오프 과정에서 여러 사업체를 재편성해 탄생했다. 장몐헝과 관련된 것은 상하이 연합투자 주식회사가 투자 창설한 라오왕통(老網通)이었다. 2001년 남북전신 스핀 오프 이후, 퇴출된 것은 장몐헝과 합작했던 IT 거물 티앤수닝(田溯寧)이었다. 장몐헝은 계열사를 순순히 양보하지 않았다. 장몐헝이 기업가가 되고 싶었던 열망을 미루어보자면 남 좋은 일을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장즈장과 중신화 두 사람이 장몐헝에게 인정받는 심복이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재신망에 따르면 최근 차이나 유니콤 사건은 이제 막 무르익었고, 중앙 순시조 순찰은 이미 종결되었지만 각종 고발은 여전히 차이나 유니콤 고위층과 언론을 향하고 있다. 장몐헝에 대해 소극적인 언론으로 인해 바이두 백과사전에 등재된 장몐헝의 이력은 매우 간략하다. 경제계의 거물에 대한 설명이 50 글자에 불과하다. 차이나넷센터, 상하이자동차공업, 상하이공항그룹회사 이사라는 이력이 전부이며 언제부터 이사직을 맡았는지도 나와 있지 않다. 문제는 위풍당당한 전 중공 총 서기의 아들이 과연 한낱 평범한 이사회 성원에 그쳤을까 하는 것이다. 장몐헝과 상하이 연합의 관계 2015년 1월 19일 북청망(北青網)은 ‘장몐헝의 인생 역할’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해당 문장에는 1994년 9월 상하이 연합투자 주식회사가 창립되고 장몐헝은 법인대표(법인대표 겸 이사장, 초임 사장은 양송 현 상하이 시장)가 되었다. 자료에 의하면 상하이 연합투자는 상하이 시 정부가 비준 성립한 국유 독자 주식회사로서 상하이시 국자위 소속이다. 투자 영역은 과학기술, 전신, 항공 등 여러 방면을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면 마이크로소프트 MSN, 상하이자동차, 상하이항공, 상하이공항, 상하이 은행, 봉황TV 및 중미 합자사인 동방몽 등이 있다. 이러한 산업의 배후에는 모두 상하이 연합투자의 그림자가 있다. 이 글에는 상하이 항공 주식 회사 2002년도 보고서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장몐헝의 신분은 해당 회사의 법인대표(통례적으로 법인대표는 이사장)였다. 新태자당, 자본시장으로 훙얼다이(紅二代)라는 말이 유행하기 이전에 중국 고위층의 자녀들은 외신에 의해 태자당이라 불렸다. 그 중 중공 정권 설립에 참여한 고위 간부의 자제들은 ‘노태자당’으로 분류되었다. 제 3, 4대 영도자의 자녀들은 신태자당이라 불렸다. 이 두 태자당의 재산 증식 방식은 달랐다. 후자의 경우 더욱 금융 영역에 집중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010년 3월 29일 ‘금수저 물고 태어난 중국 태자당’이라는 기사에서 “장몐헝이 20세기 90년대에 상하이로 돌아가 외국 투자자들의 지지를 받았고 그들은 장몐헝을 가장 가치 있는 합자 파트너로 여겼다. 현재 그가 장악하고 있는 상하이 연합투자 주식회사는 운영상에 있어서 사모펀드인 정부 투자회사와 매우 유사하다”라고 표현했다. 이는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의 아들 원윈쑹(溫雲松)의 뉴호라이즌캐피털, 류윈산(劉雲山) 정치국 상무위원의 아들 류러페이(劉樂飛)의 시틱캐피탈 등 사모펀드와 비슷하다. 하지만 장몐헝의 상하이 연합은 이들보다 10여년 가량 빠르다. 즉, 자본시장에서 장몐헝은 신태자당의 개척자의 칭호를 받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장몐헝의 개척자 역할도 잊지 않고 서술했다. 장몐헝과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도 아들 주윈라이(朱雲來)는 현재 태자당의 전성기를 위한 전초 작업을 했다. 이들은 공산당 고위층 일가의 국가 통치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들의 행동은 젊은 1세대 태자당을 제지하지 않았고 그들의 돈주머니를 채워주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그들은 이런 현상이 공산당과 지도층에게 어떠한 부작용을 가져올지는 고려치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사모펀드는 어디에 투자할까? 일반적으로는 영업 비밀이다. 그러나 최근 한 정보는 투자가 비슷한 지위를 가진 친인척에게 쓰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재신망의 2월 2일 기사 ‘안방대모험’에서는 상하이자동차그룹과 시노펙 그룹은 우샤오휘의 안방회사 최초 주주로서 초기에는 지분 20%로 1위 대주주로 자리 잡았다. 그 후 시노펙은 천퉁하이 사건이 일어나자 점차 약세를 보였고, 안방의 계속되는 주식 증자에 못 이겨 상하이자동차, 시노펙 그룹 주식은 희석되었다. 2011년까지 증자한 이후 상하이자동차의 점유 비율은 6.317%까지 떨어졌고, 시노펙은 2.817%까지 떨어졌다. ‘진둔’공정 핵심, IT 장악 ...
    6년 전 허칭롄(何淸漣)
  • 덩샤오핑 외손녀 사위가 보여준 ‘연고 경제학’
    덩샤오핑 외손녀 사위가 보여준 ‘연고 경제학’
    최근 종합보험사인 안방(安邦)그룹 CEO 우샤오후이(吳小暉)가 언론 보도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주간지 남방주말에 이어 지난 1월 29일에는 여러 매체에 보도됐다. 베이징의 재경, 재신, 북청주말도 모두 우샤오후이와 중국 최초 민영은행인 민생은행 마오샤오펑(毛曉峰) 은행장 등 경제계 거물에 대해 보도했다. 그중에서도 재신망의 ‘안방 대모험’이 제일 볼 만 했다. 덩샤오핑의 외손자는 옛말 2월 1일 남방주말은 “해당 언론사는 1월 29일 안방보험 보도와 관련해 실제와 다른 부분이 있으며, 안방보험 그룹과 주요 책임자들에게 사과를 표한다”는 성명을 게재했다. 1월 29일 보도 내용은 장장 4면에 걸친 관련 소식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실제와 다른 소식이 어떤 부분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남방주말이 압력을 받아 비로소 사과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재신망 ‘안방 대모험’ 기사와 비교해보면 남방주말 사과 성명의 이른바 실제와 다른 정보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아마도 우샤오후이와 덩샤오핑 외손녀 덩줘란(덩난의 딸)의 혼인 상태를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재신망 기사는 생동감 있는 필치로 “우샤오후이는 3번의 결혼 경험이 있으며 두 번째 결혼은 저장성의 부성장 딸과 결혼했고, 세 번째 부인은 공산당 원로 천이(陳毅)의 아들 천샤오루(陳小魯)의 회사 투자 그룹에서 일할 때 우연히 만난 덩샤오핑의 외손녀이자 전 중국 과학기술협회 당조 서기 덩난의 딸 줘란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이 있었지만 최근 부부 관계는 틀어졌다. 2014년, 해외 언론은 안방과 덩 씨 일가의 관계에 대해 떠들자 덩 씨 일가는 안방 관련 사항에 대해 토론했고 덩 씨 일가와 무관하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서술했다. 해당 문장은 혼인 관계가 종결되었다는 또 다른 증거를 제공했는데 '안방그룹 31명 주주 중에 원래 2곳의 회사에 덩줘란의 간접적 주식이 있었지만, 2014년 12월, 덩줘란은 이미 이 두 곳의 주주 명단에서 빠졌다'는 것이다. 어쩌면 덩줘란이 주주에서 퇴출당한 시기가 그녀와 우샤오후이 혼인 관계가 끝난 시기일지도 모른다. 기사를 총괄해보면 우샤오후이가 경영에 불성실했다는 내용과 우샤오후이가 파벌 관계에서 발휘한 힘에 대해 ‘안방 대모험’ 보도가 서술한 사실은 두 가지다. 첫째, 우샤오후이는 이미 덩샤오핑 가문의 손자사위가 아니다. 따라서 우샤오후이의 사업은 덩 씨 일가의 사업이 아니다. 둘째, 정부가 어떻게 덩 씨 일가의 전 손자사위를 처리했는지도 덩 씨 일가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 세계의 입에 오르내리는 우샤오후이는 덩샤오핑의 손자사위 자리에 몇 년 있었고, 사건 발생 이후에 파국 사실이 재신망 보도로 밝혀졌다. 10년 전 기세등등한 철모자였던 우샤오후이가 원래는 원저우 상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 붉은색 망토가 벗겨지면서 안방보험의 실소유주로 지목된 천샤오루의 SNS 웨이보에 올라온 글보다 타격이 컸다. 라이창싱 사건은 자칭린 부인 린요우팡과 연루됐고, 소문에 의하면 장쩌민이 자칭린과 린요우팡 이혼을 유도했으며 이번에 덩줘란과 우샤오후이 혼인 종결 또한 전례와 같다. 덩줘란과 우샤오후이는 언제 헤어졌을까? 문장은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설령 혼인 체결에 이해가 깊은 천샤오루라도 1월 29일 남방주말 문장이 퍼진 이후 홍콩 빈과일보 인터뷰를 통해 우샤오후이는 덩샤오핑 외손녀의 사위라는 것을 증명했고 부자들의 대저택은 경비가 삼엄하여 일반인들은 출입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드러났다. 중국식 출세 모델 오샤오후이 수완이 좋은 우샤오후이는 결혼을 이용할 줄 알았다. 우샤오후이의 두 번째 결혼은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관건적인 단계였다. 저장성 부성장 집안의 사위가 되면서 우샤오후이는 비로소 저장성에서 자동차 판매에 성공할 수 있었고, 천샤오루와 친분을 맺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그 후 비로소 덩샤오핑의 외손녀와 인연을 맺고 부부가 돼 당시 회사와 중요한 관계를 맺었다. 최근 들어 자본의 세대를 뛰어넘은 변화는 경제학 연구의 한 분야가 되었고 이러한 세대를 뛰어넘는 변화는 주로 부모와 자식 간에 발생하지만 장인, 장모와 사위 사이에 일어나기도 한다. 이 연구는 가족관계가 개인의 성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중심으로 특히 아시아 문화에 적용된다. 아시아 국가에서 이는 특히 두드러지고 연고 관계는 매우 중요한 사회 자본이기 때문이다. 우샤오후이와 관련된 모든 보도 내용은 우샤오후이가 기세등등한 것은 그의 연고 관계 때문이고 그와 안방의 성장이 중국이 신분형 사회임을 증명해주는 것이며 권세가에게 아첨하고 장인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중국, 대만, 홍콩, 일본 사람은 모두 부자에게 장가가면 적어도 2~3년은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우샤오후이의 특출한 점은 결혼을 밑천으로 잘 사용했다는 것이다. ‘안방 대모험’은 “배경 지렛대의 극치”라는 표현을 썼고, 그중에는 몇 가지 사실이 거론되었는데 그 중 한 가지는 “우샤오후이가 제어한 인프라 회사나 저장성에서의 명성은 그다지 좋지 않고, 저장성에 있는 몇 가지 고속도로 프로젝트 상황 또한 투자자가 없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배경은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 일을 통해 우샤오후이의 야망을 엿볼 수 있다. 철모자왕의 신분으로 지방정부를 눈에 들지 않았다. 또한 “안방은 수정 법규를 포함해 감독 관리를 피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필자가 말한 ‘이익집단이 국가를 장악하는’ 현상에 속한다. 금융업계 먹이 사슬을 예로 들자면 한 곳의 금융기관이 부분 임대료를 상급자에게 상납하는 것은 일부 금융 감독관리 기관과 정부 부처에서 얻은 비즈니스 기회와 위법 행위에 구애받지 않기 위한 것으로 결국 감독자와 비감독자의 부패 공모를 형성했다. 우샤오후이는 자금 세탁으로 이익을 얻었을 뿐 아니라 덩샤오핑의 손녀사위라는 신분을 얻었다. 중국 금융업계는 지금까지 여전히 반시장 반행정 개입의 특징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정치 신분은 광활한 부를 창조할 공간을 가지고 있다. ...
    6년 전 허칭롄(何淸漣)
  • 미국 경제는 왜 홀로 우뚝 섰나
    미국 경제는 왜 홀로 우뚝 섰나
    유럽 및 신흥 경제국은 경제 침체 국면에서 발버둥치고 있지만, 미국 경제는 승승장구하면서 세계의 관심 속에 ‘이즈두슈(一枝獨秀, 홀로 출중하다)’라 불리고 있다. 최근 사람들은 미국 경제를 부흥시킨 각종 요소 외에도 미국 경제의 호황이 계속해서 지속될지에 대한 토론을 벌이고 있다. 본 문장은 미국 경제의 부흥을 촉진시킨 원인에 대해 전 세계가 익히 알고 있는 셰일가스 개발 성공 외에 더 많은 여러 요소에 대해서도 서술하고자 한다. 부활 부른 몇 가지 요소 작년 미국 경제 성장률은 3.5%를 기록하며 2003년 이후 11년 만에 성장률이 가장 높은 한해였을 뿐 아니라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 발전이 가장 양호한 해였다. 2003~2007년 미국 경제 발전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일본, 중국이 모두 경제 구조 조정을 위해 몇 해 동안 고뇌중일 때 미국은 5년 만에 경제 구조 조정을 완료했으며 현재 빅 데이터, 지능형 제조, 무선 인터넷 혁명을 필두로 한 세 번째 기술 변혁이 미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미국 경제 부흥의 원인은 주로 미국 경제 기반이 두터운 데 있다. 또한, 환경 자원과 기술 자원이 뛰어날 뿐 아니라 유럽과 비교했을 때 자본주의 경제의 자유 경쟁 특징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위기시에도 일련의 적합한 경제 산업 정책을 도입했다. 1. 2008년 금융위기는 단지 금융계통과 같은 미국의 가상 경제에만 타격을 가했을 뿐이다. 실물 경제도 비록 비교적 큰 충격을 받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큰 손실을 입지 않았다. 미국 경제의 기둥인 첨단 과학기술, 교육 및 기타 산업은 대부분 완전무결했다. 이 점에 대해 중국 총리 원자바오는 당시 정확한 판단을 했었다. 2008년 9월 24일, 원자바오는 뉴욕에서 열린 미국 경제 금융계 좌담회에서 “현재 상황과 20세기 30년대 상황이 다 같지는 않다. 미국 실물 경제는 첨단 과학기술을 포함해 기본적으로 양호한 편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미국 재계에서 널리 퍼진 “믿음은 황금과 돈보다 더 중요하다”라는 명언을 덧붙이기도 했다. 2. 2008년 이후 많은 미국 자본이 돌아왔다. 중국의 토지, 인력 원가는 나날이 높아지고 제도 자본금도 낮아질 줄 모르는 상황 속에서 미국은 실물 경제와 수출 발전을 끌어올릴 수 있는 일련의 경제정책을 출범시켰다. 이를테면 2010년 8월 ‘제조업 촉진 법안’을 통과시키고, 제조업이 사용하는 수입 원료에 대한 관세를 중단하거나 낮췄다. 법안이 통과되자마자 미국 전국 제조업 협회는 보고서를 통해 해당 법안은 미국 제조업 생산액을 46억 달러 증가시킬 것이며 9만개에 가까운 일자리를 제공할 것이라 예측했다. 사실이 증명하듯 ‘상대적으로 낮은 원가’ 정책 속에 운송, 전자설비와 기계, 가구, 플라스틱, 고무, 금속, 컴퓨터 업계 등 미국 제조업 자본은 대량으로 복귀했다. 이러한 종류별 상품은 미국이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상품의 70% 가까이를 차지했고, 위 상품들에 대한 미국 소비자들의 연간 소비액은 2조 달러에 달했다. 외자 끌어들이는 ‘황금의 땅’이 되다 일찍이 외자 투자 황금의 땅이었던 중국과 비교해보면 미국의 원가 우세(토지가격 염가, 양호한 제도환경)는 계속해서 부각되었다. 게다가 미국 세일 오일이 개발된 후 에너지원 가격 우세까지 더해져 많은 외자가 미국으로 유입되었다. 따라서 미국은 연속 다년간 끌어들인 외자 투자금액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다. 미국 재무부 자료에 따르면 유럽, 일본, 호주, 캐나다 등의 자본이 계속해서 미국으로 유입되었고 주로 금융보험(저축기관 제외), 제조업, 도매무역, 소매무역, 전문업, 과학 및 기술 서비스, 부동산 분야에 대한 투자가 진행되었다. 유럽 경제 상황이 나빠 유로가 남아돌자 유럽연합 경제의 기둥이었던 독일은 미국에 대량 투자를 진행했다. 시장 조사기관인 딜로직(Dealogic)에 따르면 2014년 상반기 8개월 동안 독일 지멘스 등 대기업들이 매입한 미국 기업 거래 총액은 700억 달러에 달한다. 캐나다 회사가 미국 회사에 투자한 규모는 무려 770억 달러에 달한다. 연이어 일본의 도요타, 혼다 등 일본산 3대 자동차 회사들이 미국에서 업무를 확장했다. ...
    6년 전 허칭롄(何淸漣)
  • 인민일보가 말하는 ‘철모자왕’은 누구인가?
    인민일보가 말하는 ‘철모자왕’은 누구인가?
    인민일보는 15일부터 16일까지 연속으로 평론 문장을 발표해 부정부패에는 ‘철모자왕’이 없다면서 “부패 문제와 정치 문제는 서로 삼투 작용을 일으켜 당의 영도와 단결 통일을 해친다”라고 밝혔다. 봉황망은 “올해 잡아들이려는 큰 호랑이는 작년과 비할 바가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이로써 인민일보가 가리키는 이른바 철모자왕이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철모자왕과 전설속의 면죄부 필자는 최근 2년 동안 이루어진 반부패 정책을 ‘소문이 주도하는 패턴’이라고 개괄하려 한다. 인민일보의 특수한 정치적 지위를 고려하면 해당 언론사가 내보낸 소식은 절대적으로 소홀하게 봐서는 안 된다. 이른바 면죄부란 세간에 떠도는 ‘입국불사 입상불죄(入局不死 入常不罪)’를 가리킨다. 저우융캉 사건이 터지면서 면죄부 관련 법규가 깨졌고, 인민일보는 철모자왕 이라는 네 글자를 대신 사용했다. 철모자왕이라는 명칭은 청나라 봉작 제도에서 쓰던 말이다. 청나라 황족이 작위를 물려받던 방식은 두 가지로 나뉜다. 혈연관계로 작위를 봉한 것이 가장 흔한 관례이며, 자손이 지위를 계승받아 각 세대마다 한 등급씩 내려간다. 또 다른 방식은 유공자가 물려받는 방식으로 청조에는 총 12명의 왕의 후손이 작위를 세습해 강등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는 황제가 공로를 치하하는 것이며, 철모자왕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 중 8명은 청나라 개국 초에 공을 세운 황제의 종실이었으며, 또 다른 네거티브명은 중말기 황실 권력투쟁에서 공을 세워 책봉을 받은 이들이다. 인민일보가 말하는 철모자왕은 장쩌민, 후진타오 총 서기 및 그 외 리펑, 주룽지, 원자바오 세 명의 전 총리들과 전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태자당 원로 쩡칭홍 등을 가리킨다. 그러나 “부패 문제와 정치 문제는 서로 삼투 작용을 일으켜 당의 영도와 단결 통일을 해친다”에서 지적한 죄와 관련이 있는 인물은 장쩌민, 쩡칭홍이다. 소문이 주도하는 정책 패턴 최근 2년간 이루어진 반부패 정책은 소문이 주도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과거 마오쩌둥이 애용하던 바람몰이와 유사하다. 마오쩌둥은 누군가를 정리하고 싶을 때 반드시 작은 범위에서 여론몰이 회의를 열어 문건을 하달했다. 그 후 정리하고자 하는 대상의 태도에 근거해 다음 목표가 되는 인물의 전략과 방향을 잡았다. 인민일보 평론가 문장(사설에 버금가는 평론)은 여론몰이 이후 나팔 불기 단계에 해당한다. 왕치산이 만들어낸 소문이 주도하는 반부패 정책 패턴에서 주로 사용한 조작 과정은 네티즌들에 의해 여섯 단계로 총괄되었는데 내용은 아래와 같다. 소문 확산→측근 및 일가 사건 발생→공개적 노출 혹은 공문을 통해 소문 반박→중국매체 여론몰이, 홍콩 및 해외매체 공개 토론→정부측 공표→언론에 의한 명예 실추로 나뉜다. 뒤에 다섯 단계와 비교하면 첫 번째 단계의 소문 확산은 이른바 ‘전쟁에는 고정된 방식이 없고, 물은 고정된 모양이 없다’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앞서 말한 소문은 두 분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중국 및 해외 매체를 이용해 소문을 퍼뜨리고, 소문을 퍼뜨린 책임은 매체가 감당한다. 두 번째는 각기 다른 계급의 고위직 관료들의 언급을 통해 각종 신호를 내보내고, 외부의 추측을 유도한다. 결과로만 보면 일부 소문들은 바람처럼 불었다가 형체도 없이 사라진다. 중앙기율검사위원회 부서기 양샤오두가 2014년 5.26 연설을 통해 “제18차 당 대회 이후에 수렴되지 않은 사항들만 중점 조사한다. 현재 중요한 요직은 당원 간부”라고 언급한 사례가 그 예다. 그는 제18차 당대회를 기준으로 선을 긋고 이미 퇴직한 정치국 상무위원과 부패(가족 부패 포함)에 대해 더 이상 조사를 실시하지 않았다. 지금 보면 헛수고에 불과하다. 만약 시진핑, 왕치산이 발표한 각종 연설이었더라면 반부패 정책 표적으로 정해진 이들은 모두 화제 인물이 되어 매체에 일거수일투족이 공개됐을 것이다. 간접적 정치 문제로 위협 보시라이 사건 초기, 원자바오는 해당 사건을 노선투쟁으로 키우려 했지만 당내에서 반대에 부딪혔다. 따라서 보시라이의 죄는 부패와 친인척 문제로 포괄되었고 정치 문제와 연관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저우융캉 사건은 달랐다. 국가 기밀 누설죄로 세계의 이목을 끌었을 뿐 아니라 최근 저우융캉에 내려진 형에 대해 살펴보면 저우융캉, 보시라이, 쩡칭홍과 함께 큰 판을 벌이려고 공모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1월 12일, 인민일보는 중국경제주간 문장에 관해 저우융캉이 사형이나 사형집행유예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 바 있다. 1월 13일, 봉황망은 저우융캉이 보시라이와 밀담을 통해 ‘큰 판 벌이기(봉황주간 2015년 제2기(총 제531기)표지 보도’, ‘도당에 대한 중공의 선전포고-저우융캉 6대 죄행 분석’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해당 문장은 처음으로 저우융캉이 충칭에서 보시라이와 밀담을 가졌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기사에 따르면 두 사람이 나눈 주요 대화 내용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론과 실천을 철저히 부정하고, 마오쩌둥이 말년에 제시한 중국 사회과 관련된 무산계급과 자산계급,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주요 모순의 논술을 지지하는 것이었다. 저우융캉, 보시라이 두 사람의 정치적 입장과 가치관은 일맥상통했고, ‘큰 판 벌이기’ 공모에 어려운 점이 없었다. 69세인 저우융캉은 정치국 상무위원은 연속으로 두 임기를 재직할 수 없다는 법규와 ‘칠상팔하(68세가 되면 퇴직해야하며 67세 이하의 정치국 위원은 상무위원으로 진급 가능)’의 퇴직 제도를 위반했다. 또 조직을 구성해 전국 인민대표대회 위원장으로서의 진급을 노려 일부 세력의 막후 인물이 되고자 했다. 이와 동시에 저우융캉은 곳곳에 심복을 심어 당내 반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노선투쟁이라는 네 글자는 평범한 말이 아니다. 이 죄명은 사건을 처리하는 규모와 연루된 인원수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약 저우융캉이 지속적 연임을 시도했다는 죄명이 성립되면 반역을 꾀한 대죄에 해당한다. 2015년 반부패 정책의 3가지 핵심 인민일보와 봉황망이 앞 다퉈 내보낸 소문과 최근 중국 및 외신이 보도한 각종 소식을 종합해보면 시진핑이 최근 세 가지 큰 일을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는 반부패 정책을 통해 군대와 국가안보 계통에 대한 막중한 임무를 처리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실세가의 자녀들에게 간접적 경고를 주는 방법으로 솔선수범하여 훙얼다이(紅二代, 공산당 고위직 2세)가 경제계에서 물러나는 모범을 보이도록 했다. 세 번째로 국가급 큰 호랑이 저우융캉 사건에 반역을 꾀했다는 낙인을 찍은 점이다. ...
    6년 전 허칭롄(何淸漣)
  • 재정 위기 해결 나선 中 정부
    재정 위기 해결 나선 中 정부
    최근 도이체방크는 보고서를 통해 중국이 1981년 이후 가장 심각한 재정 위기를 맞게 될 것이며 중국 경제와 시장의 안정을 위협할 것으로 전망했다. 줄곧 중국 경제를 낙관적으로 내다봤던 투자계에서 사고를 전환하는 계기가 되는 분석일지 모르지만, 중국 정부나 중국 경제인들에게는 그다지 새롭지 않다. 전 세계가 모두 중국 고위층의 권력투쟁에 주목할 때 중국인의 돈주머니와 관련된 각종 세제개혁 방안과 지방정부 부채 청산을 위한 ‘43호문’이 연이어 발표되면서, 예측 가능한 재정 위기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지방정부 부채 폭탄을 제거하라 2014년, 중국 부동산 시장 불황의 여파는 지방 정부와 은행으로 연쇄 반응을 일으켰다. 토지 양도금 규모가 축소되어 지방 정부 부채 상환에 영향을 미쳤다. 중국 지방 정부 재정이 부동산 시장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2014년 토지 양도금 수입 축소는 직접 재정 수입 증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통계에 따르면 10개 도시 토지 양도금 수입은 8841억 위안으로 2013년과 비교해 15.4%나 떨어졌다. 부동산 시장 불황이 은행에 끼친 영향은 은행 악성 부채를 증가시켰다는 점이다. 4대 국유 악성 부채 은행 중의 하나인 동방자산관리회사는 최근 ‘2014 : 중국 금융 불량자산 시장 조사보고’를 통해 2014년 4분기 불량 대출 금액이 8277억 위안일 것으로 예측했으며, 불량 자산율이 9월 말의 1.16%에서 1.23%까지 올랐고 올해 은행 악성부채는 최고점에 달해 부동산 업계는 은행 악성 부채의 화근이 될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이상 내용은 단지 위기의 부분적인 상황이다. 최근 발개위 소속 리티에가 지방 부채(18조 위안) 상환율은 실제 부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공개했다. 지방에 10개가 넘는 도시에 조사연구를 진행한 결과 상환율은 10%에 불과했고, 일부 지역은 20~30%인 곳도 있었다. 상환율이 실제 부채의 50%를 초과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2014년 9월 21일, 지방 부채의 지뢰를 제거하기 위해 ‘지방정부성 부채 관리 강화에 대한 국무원 의견’ 문건이 하달되었다(이하 43호문). 해당 문건의 내용은 2014년 말까지의 부채 금액은 2015년 1월 5일 전에 상부에 보고해야 한다는 규정을 포함하고 있다. 또 각 부채는 분류에 따라 예산 관리에 적용된다. 2016년부터는 재정자금 상환 기간이 만료된 부채를 포함한 모든 부채는 성급 정부를 통해 지방정부 채권을 발행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이 문건은 시장의 권력을 박탈하고 지방정부의 권력 구조에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 해당 문장은 단지 이 문건이 부채 폭탄을 제거했다는 내용만 담고 있다. 지방정부가 상부에 보고한 18조 위안 부채에서 공익성 부채는 중앙 정부가 지급하고 시장성 부채는 시장이 부담하며 나머지 부분은 지방정부와 성 정부가 부담한다. 중앙은행이 지폐 발행을 통해 부채를 부담하게 되면 인플레이션 희석을 통해 결국은 전 사회가 부채를 부담하게 되는 셈이다. 시장성 부채 일부는 각종 그림자은행 상품을 구매한 투자자들을 가리키는데 이 부분의 위험성은 스스로 감수하도록 하고 정부는 관여하지 않는다. 나머지 부분은 지방정부가 부담하게 된다. 하지만 지방정부가 시치미를 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집단행동이 일어나면 부채 일부를 무마하려 할 수도 있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 부채 충당을 담당한 ‘폭탄제거 부대’는 아래의 두 가지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 ▲앞으로 지방정부는 43호 문건의 내용에 따라 직능 역할에 충실하고 ‘小정부’가 되어 지출을 줄인다. ▲지방정부를 위해 세수의 근원을 구분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부동산세, 지방정부 세금 버팀목 12월 22일, 중국정부망은 국무원이 정식 서명한 ‘부동산 등기 임시 조례’를 공개함과 동시에 2015년 3월 1일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부동산 등기는 부동산세, 유산세 등 각종 세금 출시를 가속화 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규정에 따르면 2014년 12월 31일 이전에 전국 모든 도시는 반드시 부동산 서류 문건을 컴퓨터 시스템에 입력해야 하며 현지 부동산 정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중국 정부는 전국에 분포된 부동산의 대략적인 숫자를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남은 문제는 어떻게 세금을 징수하느냐다. 최근 가장 실행 가능성이 높았던 방법은 상하이와 유사한 항저우판 부동산세 시행 방안이었다. 부동산세 징수를 늘리기 위해 1인 평균 60m²의 징수 면제 면적을 구획하고, 가정 단위에 근거해 세금을 징수하는 방식이다. 이때 세율은 두 가지로 분류되는데 일반주택은 거래가격의 4% 세율을 징수하고, 그 외 주택은 거래가격의 8% 세율을 징수한다. 부동산세 세율에 관한 여론도 들끓고 있다. 예를 들어 주택 3개 이상 보유 시 누진부동산세를 실시하면 전체 부동산업계는 매년 임대금 수입의 12%를 부동산세(재정부, 국가세무총국의 또 다른 규정 제외)로 내야 한다. 부동산 세율이 2.8%인 미국도 높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중국에서 이 세율 수준은 매년 6000억 위안의 토지 양도금 구멍을 메울 수 있는 수준과 상응한다. 다시 말해 중국 지방재정이 과거 20년 동안 토지 양도금에 의존했던 추세가 점점 부동산세에 의지하는 경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징수되는 부동산세는 해당 세율로 계산되며, 이는 중국의 많은 중산층 가정에는 적지 않은 부담이며 그들의 가정 지출 패턴을 바꿀 수도 있다. ...
    6년 전 허칭롄(何淸漣)
  • 시진핑이 맞닥뜨린 벽 ‘파벌 정치’
    시진핑이 맞닥뜨린 벽 ‘파벌 정치’
    지난해 연말 인민일보에 실린 ‘시진핑은 왜 파벌을 비판했나’는 2014년 시진핑의 반부패 정책의 핵심이라 불릴만하다. 파벌에 타격을 가한 결과 저우융캉(周永康), 쉬차이허우(徐才厚), 링지화(令計劃) 등 당내 파벌을 대표하는 거물들을 숙청했다. 군부 소식통을 종합해 보면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가 시작한 창훙다헤이(唱紅打黑·공산당 찬양 및 범죄와의 전쟁을 의미) 이후 시작된 당내 권력투쟁은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파벌정치는 전제정치의 토양 수년째 공공연하게 벌어진 권력 투쟁은 공산당에게 손실을 입혔다. 인민일보는 “병소를 제거하지 못해 고질병이 되었다. 저우융캉 쉬차이허우, 링지화, 쑤룽(蘇榮)과 같은 큰 호랑이의 배후에 존재하는 파벌에는 모두 부정부패의 풍조가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에서는 링지화를 향한 타격이 진작부터 최고 지도자의 계획안에 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시진핑은 지난해 5월 8일 내부 연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사무처 간부는 반드시 충성해야 할 것’을 통해 중앙위원회 주임의 해당 지위 특수성을 겨냥해 “중앙위원회 간판을 이용해 연줄을 만들지 않아야 하고, 지도자 명목으로 사적인 일을 처리하지 않아야 하며, 공권을 남용하지 말며, 업무적 유리함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지 말 것, 한순간 생각 하나의 잘못으로 제방을 무너뜨리지 말라”고 강조했다. 시진핑의 링지화에 대한 평가는 “평소에 표면적으로는 충성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결국 신뢰할 수 없다”는 말 속에 담겨 있다. 시진핑이 링지화를 불신하게 된 것은 전임 지도자 후진타오와 링지화 사이의 관계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후계자 지위에 대한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링지화는 사실 후진타오가 퇴진한 이후에도 2년간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링지화가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멸문지화를 당할지도 모를 ‘황위’ 계승 전쟁에 뛰어들었느냐는 앞으로 정부 쪽 소식을 기다려봐야 알 수 있겠다. 최근 확실히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은 저우융캉이 석유방(石油幫)과 쓰촨방(四川幫) 및 정법계 우두머리라는 점, 쉬차이허우는 매관매직을 통해 복잡하게 꼬인 군부 파벌을 형성했다는 점, 링지화는 서산회(西山會·산시성 출신 기업인들이 만든 조직)와 함께 무형의 비서방(秘書幫) 세력을 장악했다는 점이다. 시진핑이 파벌 정치를 근절하고자 하는 염원은 상당히 컸지만, 중국의 전제 체제 속에서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파벌정치는 전체정치의 부속품이자 토양이기 때문이다. 파벌정치는 중공의 관리 시스템 중공은 권력 구조를 종적, 횡적 관리 체제로 총괄했다. 중국의 현대 정치 제도에는 기관 사이의 수직적 관리 시스템과 지역 사이의 수평적 관리 시스템이 동시에 존재한다. 종적 지도 체제란 정부 기구 상하로 연결되는 직능 부문으로 모두 권력 체계에 속한다. 공안 계통을 예로 들자면 중앙정부에는 공안부가 있고, 성급 정부에는 성 공안청이 있고, 지급시 및 현급 정부에도 시현 공안국이 존재한다. 저우융캉이 정법계통을 장악한 여러 해 동안 성 공안청장 등용 권한을 장악해 모든 시스템을 통제했다. 지역적 횡적 관리 체제란 각 지방정부가 직권에 따라 나뉘는 부문이다. 20년 동안 종적 횡적 관리 체제는 새로운 의미가 생겨났는데, 종적 지도 체제는 때때로 중앙의 거시적 제어 정책을 의미하며 횡적 관리 체제는 지방 발전계획을 뜻한다. 종적 횡적 관리 체제에는 권력계가 장악한 직무와 영전 시스템이 공존하면서 이렇게 얽히고설킨 이익집단이 형성된 것이다. 저우융캉 수중의 석유계는 종적 관리 체제이면서 횡적 관리 체제(각 유전 관리국)이기도 한데, 정법계 주요 권력은 종적 관리 체제에 있지만 쓰촨 지방관료의 이익(횡적 체제)의 결합체라고 할 수 있다. 그 밖에 또 다른 단체는 공산주의 청년단 출신 관원들로 이루어졌지만, 어수선한 구조로 진정한 이익 집단을 구성하지 못했다. 지방 파벌 근절 못 하는 중앙정부 ...
  • 미국의 벽에 부딪힌 중국式 사고방식
    미국의 벽에 부딪힌 중국式 사고방식
    최근 중국 유명인사에 관련된 기사가 많았는데 그중 하나는 저명한 중국 민간 기업가 쑨다우(孫大午)가 미국 비자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는 내용이다. 그는 ‘두 차례의 미국 입국허가 거절 경험 –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미국 주중대사관에 보내는 공개서한(이하 공개서한)’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필자가 해당 공개서한을 자세히 들여다 본 바로는 전반부에서 주로 사실을 서술했고, 마지막 몇 단락은 보상, 약소국의 천민, 비자발급 조건 등 모욕감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었다. 따라서 진위를 밝히기 어렵지 않았다. 비자 신청을 거절당한 원인은 사실 매우 명백하다. 순다우의 중국식 사유가 미국 규칙의 벽에 부딪힌 것인데 쑨 선생이 의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만약 비자발급 거절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해당 국가의 비자 규칙부터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쑨 선생이 2008년 당시 처음으로 비자발급을 거절당한 자세한 상황은 이러하다. 그는 “발급 직원이 ‘당좌 예금이 있나요’라고 물어서 있다고 대답하자 예금이 있는 것을 증명할 수 있냐고 물어서 예금 증명서는 없지만 기업 자산 증명서가 있다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더는 묻지도 않고 비자발급을 거절당했다”고 서술했다. 사실 책임은 쑨 선생에게 있다. 비자를 신청할 때 필요한 것은 개인 예금 증명서와 중국 4대 은행 개인 예금 통장(20만 전후)만 있으면 문제 될 리가 없다. 그러나 쑨 선생이 내민 것은 기업 자산 증명서였다. 개인 예금 증명서는 기업자산 증명서보다 쉽게 얻을 수 있는 서류인데 쑨 선생은 왜 굳이 어려운 길을 찾았을까? 이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떠도는 미국 비자발급에 관련한 잘못된 정보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중국인이 미국 비자발급을 받을 때 이민 경향 유무가 관건 요소로 작용한다. 만약 자신이 부유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고 가난해서 미국 복지를 누릴 생각만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어쩌면 쑨 선생이 기업 자산 증명서를 꺼내 든 것은 개인 예금 증명서보다 이민 경향이 없다는 것을 더욱 증명할 수 있었을지는 모르나 문제가 조금 귀찮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 기업에는 일반적으로 책임제 제한이 있어 기업가의 기업자산과 개인자산에 차이가 있고, 기업자산과 상환 기업부채는 연관성이 있다. 따라서 기업가가 마음대로 자산을 지배할 수 없다. 미국 주중 대사관 비자발급처 관계자에 따르면 발급 직원은 비자 신청자의 자세한 중국 특색의 사유기업 재산 소유권에 대해 들을 수 없게 되어 있고, 신청인이 규정에 따라 구비서류를 제출하지 않았을 시에 비자발급은 당연히 거부된다. 중국인들 사이에 떠도는 또 다른 미국 비자발급 경험 사례 중의 하나는 비자발급 거절을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또다시 비자 발급을 받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다. 필자도 이와 관련한 극단적인 사례를 들은 적이 있다. 한 여성과 그녀의 남편이 미국을 방문해 몇 년 동안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이혼 위기에 처했지만, 그녀는 다시 친지를 방문해 결혼생활을 만회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매년 비자 발급을 거절당했고, 거절당할 때마다 그녀의 심리적 부담은 가중되었다. 비자를 10번 거절당한 후 비자발급 직원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해하다 결국 이혼수속을 밟게 되었다. 쑨 선생은 한 차례 비자발급을 거절당하고는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는 굴욕을 안고 베이징에서 손꼽히는 여행사를 찾았고 여행사의 요구에 따라 충분한 서류를 준비했다. 하지만 2008년 비자발급 거절을 당한 이력을 밝히지 않아 또 비자발급을 거절당했다. 과거 비자발급을 거절당한 이력을 왜 언급하지 않았냐는 것에 대해 쑨 선생은 “미국 주중대사관에 들어가기 전에 여행사 직원이 이미 미국대사관과 이야기가 된 부분이며 2013년 이전의 비자발급 거절 기록은 모두 깨끗해졌으니 과거 이력을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 말이 거짓말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서술했다. 필자는 그 여행사 직원의 경험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을 경우 쑨 선생에게 이런 현명하지 않은 방법을 알려줄 리가 없다. 비자발급 신청자는 미국은 각 급 정부 당국과 개인 문건 보관이 중시되는 국가이며 신청인의 신청기록은 모두 대사관의 컴퓨터 시스템에 저장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증발급 직원은 비자발급 수속 시에 문건을 매우 쉽게 조회해볼 수 있고 신청인은 이전의 비자발급 거절 기록을 절대 은폐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은폐 행위는 거짓말로 여겨져 또다시 비자발급을 거절당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쑨 선생이 공개서한에서 “비자발급 거절을 당할 이유가 없는데 이상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비자신청 규정에 따르면 처음에 적합한 문건을 제출하지 않거나 두 번째 비자신청 과정에서 과거 비자발급 거절 기록을 은폐할 경우, 또다시 비자발급을 거부당할 수 있는 충분한 사유가 된다. 게다가 미국 국무원의 비자 신청 관리제도는 비자발급 직원의 심증에 의존하기 때문에 직원의 판단하에 비자발급을 거절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상급의 비준 없이도 비자발급을 거절할 수 있다. 쑨 선생은 오바마에게 서한을 통해 비자발급 직원의 결정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
    6년 전 허칭롄(何淸漣)
  • 中 경제 쇠퇴, 총리 바뀌어도 만회 힘들어
    中 경제 쇠퇴, 총리 바뀌어도 만회 힘들어
    최근 리커창이 건강 문제와 국가 경영 능력 부족으로 퇴진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리 총리 퇴진에 시진핑 주석이 관련돼 있는지 여부와 후임자가 누구인가도 관심의 대상이다. 하지만 이 소문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가장 중요한 문제를 간과한 것 같다. 자원 고갈, 내수 부진, 기형적인 산업구조, 부동산 버블, 금융문제가 속출하는 중국 경제를 그 누가 구제할 수 있단 말인가? 리커창이 이어받은 경제 자산 상술한 문제의 화근은 제18차 전국대표대회 전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제화 시대에 한 국가의 경제가 발전하려면 자원, 생산요소(기술개발능력, 노동력 등), 산업, 제도환경 요소 중에서 반드시 2~3가지 우세를 확보해야 한다. 오늘날 중국은 이러한 우세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열세를 보이고 있다. 12월 중순에 열린 중앙경제업무회의에서 다시 제기된 다섯 가지 임무는 사실상 상술의 열세를 인정한 것과 다름없다. 자원 부문에서 중국의 생태환경은 육해공을 막론하고 종합적인 오염 위험에 빠져 있다. 특히 광산자원은 대외 의존도가 높아 회의에서는 이를 놓고 회의에서 “과거 에너지 자원과 생태환경과는 달리 현재 환경의 지탱능력은 한계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생산 요소면에서 과거 중국은 저렴한 노동력에 의존한 반면 기술 및 관리 수준은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모조품 대국이 되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자주’ 개발한 고속철도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사실 이는 훔쳐온 기술을 규합한 것으로 지금까지도 해외 판로를 찾지 못했다. 또 부동산 버블이 심각한 것은 정부와 기업이 지탱하지 않으면 파멸되는 시장이기도 하다. 산업구조의 심각한 기형으로 전국 각 업계에서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났으며 생산설비 이용률은 70% 전후다. 현재 추진중인 실크로드 경제 계획의 취지는 해외 수출을 통한 공급 과잉 해소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는 원자바오 전 총리가 주롱지로부터 인수받은 경제력에 비하면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원자바오는 국무원을 10년 동안 주관했는데 7년 전에 이미 중국에 세계 공장이 형성된 전성기로 자원과 생태환경 공간이 커 수출, 투자, 내수 세 박자를 두루 갖추고 경제 마차를 한창 빨리 끌던 시기였다. 4대 국유 상업은행은 21세기 초부터 9110억 달러의 거대 악성 부채를 누적하자 미국 유럽 등 외자 은행 전략투자자를 끌어들여 홍콩과 국내 상장으로 성공했다. 하지만 원자바오 임기 동안 이러한 좋은 기운도 다 떨어졌다. 권력을 넘기기 전에 중국의 세계공장은 늘그막에 빠지게 된다. 과도한 부동산 개발의 결과로 전국 열 곳 이상 도시에서 유령도시가 형성되고 일부 업계들은 심각한 공급과잉 현상을 면치 못했으며 스모그가 도시를 뒤덮기도 했다. 2009년 이후 4조 위안의 정부 투자금에 지방 융자까지 더해져 권력 이양 시기에 ‘경제 번영’을 유지할 수는 있었지만 거대한 지방정부 부채와 은행 악성부채를 남겼다. 이것이 리커창이 원자바오 전 총리로부터 물려받은 경제 기반이다. 실현불가능한 ‘리커창 경제학’ 리커창은 총리가 되기 이전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세계은행과 국무원 발전 연구센터를 초청해 공통으로 ‘장기 개혁 노선도’를 구상했고 금융개혁 직무를 이어받은 후 제일 첫 번째 임무로 책정해 두었다. 직무를 인계받은 후 리커창이 주장한 경제부양책 미실행, 경제 레버리지화, 구조적 개혁 등 세 가지 요점은 서양 투자은행으로부터 ‘리커창 경제학’으로 명명되었다. 필자는 2013년 6월 ‘리커창 경제학의 제도 기초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문장을 통해 그의 경제정책은 부족한 중국의 제도 기초 위에 존재하며 실행 불가능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2개월 후 러우지웨이(樓繼偉) 중국 재정부장이 중국 정부를 대표해 참석한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중국 정부는 더는 경제부양책을 실시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고, 직후 중국 장수, 안후이, 충칭, 쓰촨, 구이저우, 샨시 등에서 잇달아 서류가 하달되었고 관련 회의를 열어 하급정부에 철도, 고속도로, 공항 등의 ‘십이오(十二五)’ 계획을 가속화할 것을 요구했다. 약 36개 도시의 개발부문이 현지 건설 도시 교통 프로젝트의 착공 계획을 회답해 왔다. 이로써 도시 판자촌 재개발은 새로운 지방정부 투자의 중심이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낡은 유령도시는 여전히 존재했으며 신규도시 건설로 인해 더 큰 부동산 버블을 초래됐다. 낡은 공급과잉 현상은 소화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 큰 공급과잉 추세를 형성했다. 국제투자은행계에서 ‘경제 레버리지’ 실행은 중국 금융계가 시장화 개혁에 들어서게 만들었고, 중국 정부는 은행이 지방정부에 대규모 자금을 지원하는 방책을 결정했다. 2013년 7월, 국무원은 ‘금융 지지 경제구조 조정과 전형 승급의 지도의견’을 발표해 소기업에 대한 금융 서비스 정책을 늘리도록 규정했다. 리커창 총리는 4개월 만에 경제부양책 미실행 상태를 미니경기부양책 상태로 전환했고, 레버리지화를 ‘금융계 지지’로 변경했다. 그 이후 은행대출 증가는 거의 멈추지 않았다. ...
    6년 전 허칭롄(何淸漣)
  • 中 고위 관료들의 인터넷 우회 검색 왜?
    中 고위 관료들의 인터넷 우회 검색 왜?
    최근 파이낸셜타임스는 상하이시 서기 한정(韓正)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여기에서 중국의 특성이 드러나는 내용이 있었다. 바로 중국 고위관료들이 매일 전담자를 지정해 전 세계의 정보를 별도로 수집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스스로 먹이를 찾는 방식은 기존의 기밀문서 시대가 지나갔음을 뜻하며, 당국의 정보 봉쇄 정책이 터무니없음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요즘 대세 ‘인터넷 우회 접속’ 이른바 ‘한정 탐방록’의 내용은 풍성하다. 한정은 매일 부하가 수집한 전 세계 정보를 열독했다. 원 대화 내용은 이러하다. 기자: 매일 몇 시간씩 할애해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가? 가끔 직접 우회 접속을 시도하나? 한정: 매일 아침 전 세계 각종 정보가 사무실로 도착한다. 그중에는 심지어 날카로운 비평도 있다. 직접 내게 보낸 것이다. 기자가 둘러 표현했지만 질문의 중점은 ‘우회 접속’이었다. 몇 년 전 한 소식통에 따르면 중공이 등급을 매겨 인터넷을 통제하고 있으며, 일반 국민이 중국내에서 방화벽을 회피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인터넷 우회 접속을 하는 것을 제지했다. 하지만 정부 사업 기관에게는 등급에 따라 전 세계 인터넷 접속을 개방한다. 한정은 정치국 위원 겸 상하이시 서기로서 전 세계 인터넷 서비스를 공유할 수 있었다. 중국어 사이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댓글부대(우마오) 또한 해외 사이트 접속이 가능하며, 단지 개방 등급이 다를 뿐이다. 문제는 정보화 사회에서 사람들의 정보에 대한 갈망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기관이 등급을 매겨 정보 공유를 차별화하자 많은 인터넷 업체와 매체 또한 사무실 컴퓨터에 우회 접속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있다. 이는 물론 전자보다 합법적이지는 않은 ‘반 합법’ 상태에 해당한다. 상술한 바와 같이 합법과 불법으로 인터넷망을 공유하는 집단은 우회 접속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는 보통 중국인들과 함께 중국의 ‘우회 접속’ 진영을 구성했다. 일반인들에게 반드시 ‘고양이와 쥐 게임’을 함께 설치해야 한다는 점은 고충이다. 당국은 우회접속 소프트웨어를 막기 위해 항상 고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회접속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어쩔 수 없이 지속해서 프로그램을 업데이트시킨다. 우회 접속 프로그램을 자주 사용하는 한 관계자에 따르면 가끔 우회접속이 어려워 2~3시간이 걸려서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한다. 그는 이미 습관이 되어 하루라도 해외 사이트를 접속하지 않으면 허전함을 느낀다. 우회접속이 어려운 날에는 시간이 허락된다면 접속에 성공할 때까지 시도한다. 결국 중국 당국은 거액을 투자해 방화벽을 만들어냈다. 본래는 철의 장막을 만들려 했지만 결과는 ‘철조망’을 만드는 데 그쳤다. 철조망 내에 갇힌 사람들은 마음만 먹으면 그물을 통해 자유롭게 드나드는데 이를 정보 수요의 자기만족이라 일컫는다. 정보수요의 자기 만족은 무엇인가 ‘정보 수요의 자기만족’이라는 말의 의미는 매우 복잡하다. 첫째, 중공 고위층이 당과 정부 사업 기관에 전 세계 인터넷을 개방하면 반드시 정보의 왜곡을 불러온다. 원래 신화사 편집사와 내부 발행인의 ‘대참고’, ‘내부 선거 출마’ 등의 기밀문서는 관료 각계에 정보 공급의 방식을 제공했지만 인터넷 시대에 내부인의 수요에 만족할 방법이 없었다. 하물며 관료사회는 특히 해외매체의 중난하이 내부 동태에 관해 관심을 가지므로 이러한 것은 기밀문서라 할 수 없다. 그러나 해외 사이트를 둘러보면 이른바 ‘적대 세력’ 사이트에서 이러한 동태 소식은 쉴새 없이 나온다. 상술의 두 가지 원인 외에도 고위관료들은 가끔 자료에 대한 해석이 모호해 갈피를 잡지 못할 때, 해외 전문가들의 견해를 참고해 도움을 받았다. 관료사회에 몸담고 있지만 눈을 감고 귀를 막는다면 ‘소경이 눈먼 말을 탄’ 지경에 빠질 수밖에 없다. 주요 요직에 있을수록 소식이 빠르고 매우 기민해야 한다. 그래야지 관료사회 처세에 능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입지를 굳힐 수 있다. 두 번째, 일부 중하층 관료들은 정보 공급 반열에 없다. 이 때문에 정부 수요의 자기 만족자 행렬에 오르길 원한다. 그들은 세계에서 얻은 정보를 통해 중난하이 내부의 동태를 살피고 입지를 다지고 싶어한다. 이러한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는 정치소식 범위는 고위층 영도자의 개인과 일가 생활, 고위층 영도자 간의 은혜와 원한 관계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해외소식의 수요에 대해 정치 내부 분란 등 방면으로 치중하고 있다. 인터넷 시대에 그들은 홍콩의 정치적 운명을 점칠 수 있는 잡지를 통해 정보수요에 만족하고 있다. 최근 인터넷 정보량은 매우 광범위하다. 보시라이가 ‘창훙다헤이(唱紅打黑, 공산주의 이념을 선전하고 범죄를 척결한다)’ 운동을 벌이고 ‘충칭 모델’을 추진해 고위층의 내란을 불러일으킨 사실이 해외로 퍼져 전 세계가 알게 되자 중국 내에서 브로커들의 자질구레한 소식을 듣는 것보다 자신이 직접 아이피를 우회시켜 정보를 찾아보는 것이 낫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들의 우회 접속 행위는 비교적 은밀하게 이루어진다. 어떤 사람은 직장 자원을 끌어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쥐죽은 듯이 일을 하기도 한다. 벽을 무너뜨리자 일반 중국인들에게 우회 접속은 주로 알 권리에 대한 만족이다. 그들과 주동적으로 우회접속을 시도하는 중공 내부인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중공 통제하에 발표된 공개정보는 믿을만하단 사실이 못 된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우회접속으로 진실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본국 정권을 신임하지 못하는 선전은 공산당 독재 강권의 일반적인 현상이다. 후루시초프의 이야기가 전형적인 예이다. 후루시초프 이전의 소련 공산당 영수 레닌과 스탈린은 모두 직계와 존망이 직결되는 종신 집정자들이며 어느 날 돌연히 직위를 일었다. 은퇴 후의 생활은 매우 적막했다. 그제야 그들은 비로소 공산 정권 체제의 폐해에 대해 다른 각도에서 고려하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후루시초프는 체제 내 비평자에서 소련체제의 반대자가 되었다. ...
  • 중국판 마샬플랜?…  ‘新 실크로드=신기루’
    중국판 마샬플랜?… ‘新 실크로드=신기루’
    중국에 실크로드 열풍이 불고 있다. 38억 명과 연계되는 신 실크로드에 대한 장밋빛 전망, 중국의 공급 과잉을 얼마나 방출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감과 밝은 미래를 꿈꾸게 만드는 문장들이 넘쳐난다. 대 중국 투자에 이해도가 얕은 사람들은 어쩌면 이토록 좋은 기회를 두고도 총명한 중국인들이 여태 뭘 하고 있었는지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투자는 ‘수익성과 위험성’을 검토해야 다년간 중국 해외투자 정황을 조사한 경험에 따라 쓴 필자의 글에는 투자의 생산 능력만 드러나 있을 뿐 투자 수익이나 보증에 대해서는 정확한 계산이 없다. 중국에서는 어떻게 상급 정부의 정책 제한을 해제할지, 은행 자금을 어떻게 쓸지를 고민할 뿐 진정한 시장경제는 없었다. 그렇다면 실크로드는 얼마나 많은 국가와 지역을 망라하고 있을까? 인민망의 분석에 따르면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유럽이 포함되어 있다. 추산에 따르면 실크로드에 인접한 지역은 대부분 공업화 초기 단계 국가다. 대부분 국가의 산업이 에너지와 광물과 같은 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심각한 수준이다. 또한 산업 구조상 중국은 실크로드에 인접한 대다수 국가와 확실한 산업 구분이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각각 노동력을 비롯한 우세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 여기까지 봤을 때 실크로드는 전망이 밝다. 하지만 인접국가 중에서 한국,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벨기에, 러시아 등 국가들은 당연히 공업화 초기 단계에 속하지 않는다. 해당 국가들의 철도, 고속도로, 교량, 항구 등 기초 인프라 건설은 이미 성숙한 단계로 중국의 대규모 공급과잉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중국의 부실한 건축 공정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인도의 제조업, IT업계도 중국만큼 낙후되지 않았다. 인도는 인구가 많아서 많은 기초 건설 인프라가 필요하다. 하지만 좋은 일은 남에게 줄 수 없듯이 중국의 도움이 필요한 나라는 기껏해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 국가들이다. 이러한 국가들이라면 중국의 바람처럼 대규모 신규 기초건설 인프라가 있어야 하는 중국의 공급과잉 현상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국가들과 합작하면 중국은 직접 자금을 얻는 동시에 대오를 꾸릴 수 있다. 투자 수익은 몇 가지 형식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인프라를 필요로 하는 국가는 중국이 필요로 하는 자원을 제공한다. 두 번째는 중국이 기초시설을 건설한 후 일정 기간 비용을 상환한다. 예를 들어 철도 운행권, 통행료 등을 말한다. 세 번째는 정부가 상환을 책임지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형식이든 모두 두 가지 조건을 전제로 한다. 하나는 해당 국가의 정치가 안정적이어야 한다는 것과 또 하나는 경제발전 전망이 양호한 국가신용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술한 국가 중에 어떤 국가는 정치가 불안정하고 어떤 국가는 국가의 신용을 소홀히 하며 어떤 국가는 두 가지 모두 해당하지 않는다. ...
  • 중국판 마샬플랜? 공급과잉은 中 경제 위협
    중국판 마샬플랜? 공급과잉은 中 경제 위협
     2014년 APEC 회의에서 중국이 큰 기대를 건 ‘아시아 기초건설 투자은행 계획’은 여전히 정체 상태다. 게다가 멕시코 정부가 37억 달러 수주의 중국 기업 고속철 프로젝트를 철회함에 따라 여유 생산분의 수출이 주목표였던 중국판 마샬 플랜의 시작은 순조롭지 못했다. 공급과잉이라는 핵폭탄급 위협에 직면해 베이징 당국은 갖은 방법을 다해 곤경에서 벗어나야 하는 상황이다. 왜 중국판 마샬 플랜인가? 국내에 많은 여론은 중국판 마샬 플랜에 대해 언급할 때, 중국의 해외투자에 눈길을 돌렸다. 수출 생산 능력이라는 말은 언급했지만, 오히려 과잉 생산이라는 주요한 수식어는 일부러 생략하기도 했다. 우선 무엇을 마샬 플랜이라고 하는지 소개할 필요가 있다. 마샬 플랜의 정식명칭은 ‘유럽 부흥 계획(European Recovery Program)’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 각국은 전쟁의 타격을 입어 경제가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미국이 유럽 동맹국을 도와 경제를 회복시키고, 소련과 공산주의 세력이 유럽에서 한층 더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제시한 재건계획이다. 마샬 플랜은 1947년 7월 정식으로 출범되었고 4개 재정 연도 동안 지속되었다. 해당 기간 서유럽 미국을 포함한 각국으로부터 금융, 기술, 설비 등을 합친 총 130억 달러를 원조 받았고(2006년 환산 시 1300억 달러 수준), 이로써 전쟁 후 경제는 부흥할 수 있었다. 계획이 추진될 당시의 미국 국무장관 조지 마샬의 이름을 따 마샬 플랜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중국은 아시아 기초건설 투자 은행을 기획 건립을 핵심으로 한 ‘실크로드 경제구역’과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계획을 통해 해외 대량 수출을 기획하는 것을 두고 평론가들은 ‘중국판 마샬 플랜’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미국 마샬 플랜과 비교하자면 국제 환경이나 미국과 유럽 등의 관계, 미국의 유럽 원조에 대한 성질 등을 막론하고 두 사례는 차이점이 많다. 유일한 표면적 공통점은 수출 생산 능력(기술, 설비)뿐이다. 두 사례의 차이점에 관해 관심 있는 독자들은 통다환의 ‘중국 고속철 마샬 플랜’을 읽어보길 바란다. 해당 문장은 두 계획을 비교해 분석하고 있다. 필자가 본 문장에서 분석하고자 하는 것은 중국이 마샬 플랜을 필요로 하는 원인은 중국 대다수 산업이 모두 공급과잉 현상에 놓여 있고, 중국 경제의 정상적 운행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급과잉은 왜 위험한가 이른바 공급과잉이란 생산능력의 총계가 소비능력의 총계보다 큰 것을 말한다. 그해 미국은 주로 제조업 설비 쪽에 수출이 많았었다. 하지만 중국의 공급과잉은 주로 기초 인프라 시설(철도, 고속도로 등) 영역과 부동산업계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공급과잉은 중국 경제 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생산의 근원은 곧 ‘투자는 사회주의의 것, 수요는 자본주의의 것’이라고 개괄할 수 있다. 이른바 ‘투자는 사회주의의 것’이라는 말은 즉 투자 자금은 주로 정부 혹은 국유 상업은행의 자금에서 오는 것으로 투자 리스크는 결국 은행 대금회수불능으로 번져 대출자가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국유기업 사장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설령 민간 기업의 사장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수요는 자본주의의 것’이라는 말은 즉 생산 능력은 곧 시장의 수요로 이어져 만약 수요가 부족하면 공급과잉이 형성된다. 따라서 중국의 공급과잉은 두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 번째, 공급과잉은 정부가 관여해야 하는 경제의 필연적 산물이다. 중국 경제 성장은 흔히 정부의 경기 부양 정책과 관련이 있다. 중앙 정부가 경기 부양 정책을 출범시키면 각지에서는 반드시 각종 항목을 내놓아야 하고, 이러한 항목들은 결과적으로 심각한 공급과잉 현상을 불러온다. 중앙정부는 거시적 제어를 통해 일부 업계의 과도 성장을 억제하길 희망하지만, 공연히 헛수고만 해 공급과잉 현상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을뿐더러 새로운 공급과잉 현상까지 자아내고 있다. 2009년, 전인대 재경위는 연구 보고서를 통해 2005년부터 지금까지 19개 업계에서 각기 다른 정도의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났으며, 국무원 상무회의에서는 공급과잉 억제가 중요함을 인정했다. 하지만 지방정부가 GDP 성장률 증가를 정치 업적으로 연결하는 풍토를 따르면서 공급과잉을 억제 시킬 방법은 사라지고 말았다. 2013년이 되자 에너지 다소비 알루미늄 전해, 철강제조, 신흥산업의 태양광 발전과 풍력, 조선, 철강업, 규소강에는 업계가 공인하는 과잉공급 현상이 일어났다. 두 번째, 중앙정부의 제어 정책은 더 많은 공급과잉 현상을 야기했다. 중국 철강업계를 예로 들자면 최근 10여 년 동안 몇 차례 반복을 겪었지만 일부 지방은 항상 방법을 찾아 제어를 모면했다. ...
    6년 전 허칭롄(何淸漣)
  • 홍콩 보통선거권 항쟁은 장기전
    홍콩 보통선거권 항쟁은 장기전
    홍콩 센트럴 점령 시위가 한 달 남짓 지속되고 있다. 시진핑이 홍콩에 “타협도 없고 출혈도 없다 ”라는 지침을 통보하면서, 홍콩 행정장관 렁춘잉(梁振英) 어쩔 수 없이 열기가 식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센트럴 점령 시위가 시작되자마자 베이징 당국은 이미 “시간은 점령자에게 있지 않다”는 기준을 산정해 놓고 있었다. 하지만 센트럴 점령 운동이 조직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다음 행동이 필요한 시점에 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홍콩 학생 북상 항의 실행 가능성 홍콩 학생들이 베이징 방문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결정에 대해 월스트리트는 “이 조치는 시위 활동의 한층 더 발전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평가했지만 필자는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홍콩 학생 및 상술의 월스트리트 기자의 중공의 본질에 대한 인식은 당연히 우리처럼 공산당 통치하에 장기간동안 생활하고 항쟁했던 사람만 못하다. 필자가 예상하기에 베이징 당국은 홍콩 학생들의 북상 시위에 아래와 같은 몇 가지 대응 방법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방법은 중공이 가장 사리가 밝은 부분이다. 학생들이 관문에서 전부 저지되는 등 근본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보면 실행 가능성이 가장 많고 중공이 원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두 번째 방법은 먼저 학생들이 북상에 성공하게 만든다. 전술상에서는 유적심입(誘敵沈入)이라 말할 수 있는데, 목적지에서 기다리다가 홍콩 학생들이 모여 표어를 들고 항의하게 만든 후 ‘행패를 부렸다는’ 죄명으로 체포하는 방법이다. 법률상으로 보면 홍콩 시민들이 중국에서 중국 법률을 적용하고, 중공은 홍콩에 가서 법을 집행해 체포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과거 많은 홍콩 시민들이 뤄후교 해관만 건너면 실종되곤 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면 그들은 체포된 것이었다. 이 같은 사례는 매우 많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세 번째 방법은 가장 번거롭지만 학생들을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이다. 홍콩 학생들이 현장에 도착해 기습 시위를 성공하게 둔 뒤 중국 정부 조직은 현장에서 ‘반 센트럴 점령’ 시위를 조장해 중국인들이 홍콩 센트럴 점령 시위에 대한 반감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다. 제3자 입장에서 베이징 정부가 민심을 날조한 것이라 차마 말하기 힘들 것이다. 때문에 중국에서는 센트럴 점령에 대해 이해하지는 못해도 확실히 반대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홈 그라운드 우세 포기하면 안 돼 홈 그라운드 우세를 포기하게 되면 맞이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말할 내용이 많다. 축구경기에서도 홈 어드밴티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경기에 참가하는 운동선수 소속 국가 혹은 도시에서 경기가 열릴게 되면 더 쉽게 승리할 수 있는 효과를 홈 어드밴티지라고 부른다. 홍콩 센트럴 점령이 이렇게 오래 지속되어 온 것은 홈 그라운드가 홍콩이기 때문에 홍콩인들간에 이견이 있더라도 홍콩 센트럴 점령 시위 참가자들은 어쨌든 모두가 같은 시민 사람들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다. 홍콩은 법치사회이므로 홍콩 정부가 관례를 벗어나면 법률과 제도로 처리한다. 폭력 행사, 후추가루 사용, 장내 정리, 체포 등과 같은 현상은 중국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홈 어드밴티지와 상반되는 것은 원정 경기이다. 원정 경기는 타지에서 온 참가 선수단은 홈 그라운드 선수단만 못하다. 홈 그라운드 선수에게는 승리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 주어지며 적어도 응원단 목소리 또한 상대편 팀 응원단보다 우렁차다. 홍콩 학생들은 젊다. 하지만 홈그라운드에서 홍콩 학생이 승리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에 있고 홍콩 법률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중공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원정 경기에 들어가면 고군분투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난 한달 여 동안 홍콩 홈 그라운드에서 베이징 당국은 홍콩에 반(反) 센트럴 점령 시위자들을 대거 파견해 센트럴 점령 시위자들과 대립시켰다. 홍콩 학생들의 고군분투가 중공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중국에서 이루어진다면 베이징 당국이 홈 그라운드 우세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위세가 드높은 반 센트럴 점령 시위대를 조직해 홍콩 학생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려 할지도 모르겠다. 사람 수로 봤을 때 홍콩 학생들이 북상하면 많아봤자 2천여 명일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규모가 큰 반 센트럴 점령 시위대를 조직한다면 그건 마른 땅에 말뚝 박기와 같이 수월한 일이다. 중국 정부는 몇 만 명을 동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반미, 반일 전국 도시 연합 시위를 겪은 중국인들은 당연히 중공 정부의 강한 동원 능력을 익히 알고 있다. 지속적인 항쟁은 자유로 가는 통행증 홍콩이 시위를 통해 민주화를 쟁취하기까지의 과정은 매우 고통스럽다는 것은 운명으로 정해져 있다. 국제적 사례를 살펴봐도 알 수 있다. 강권에 대한 항쟁은 줄곧 막중하고 어려운 것이었고 많은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중국의 80~90년대생 청년들은 이 역사를 이해하지 못한다. 간혹 현실에 부합되지 않은 희망을 가져 강권통치는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역사의 한 부분만 보자 소련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는 90년대 초 빠르게 와해되었다. 역사 전경을 보지 못했기에 공산당 정권이 무너지기 전에 이러한 국가의 인민들은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체코, 폴란드, 헝가리는 거의 소련으로부터 대포와 탱크를 이용해 사회주의 제도가 해당 국가에 적용되자 인민들은 반항을 멈추지 않았다. 예를 들어 헝가리 사건, 1956년 10월 폴란드 사건, 체코 프라하의 봄 등등 큰 사건들에 대해 사람들은 대략 알고 있겠지만 사실 그 외에도 더 많은 셀 수 없는 사건들이 있었다. 폴란드를 예로 들자면 1948년부터 사회주의 제도를 실행하고 소련 스탈린의 형식을 도입해 해당국 자원 및 인력 관리 문제가 나타나 지속적인 정치 항쟁이 일어났다. ...
    6년 전 허칭롄(何淸漣)
  • ‘빛 좋은 개살구’ 세계 1위 경제 대국
    ‘빛 좋은 개살구’ 세계 1위 경제 대국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구매력을 기준으로 추산한 2014년 중국 국내총생산(GDP)이 17조 6000억 달러로 17조 4000억 달러인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전 세계 중국 전문가들은 비논리적인 평가라고 일제히 논평했다. 한 언론은 ‘세계 경제 1위 중국, 1인당 GDP 미국과 50년 격차’라는 기사를 통해 여론을 바로잡으려 나섰다. 중국이 세계 1위? 해외 평론과 중국의 반박을 비교해보면 대략의 전개는 모두 올해 4~5월 사이에 세계은행이 유사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비롯됐다, 세계은행과 IMF가 사용한 통계 출처는 모두 중국 정부가 제공한 것이며 분석방법이나 결과도 역시 마찬가지다. 올해 4월 30일, 세계은행은 중국이 2014년 세계 1위 경제 대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중국은 넘버원(No.1)이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거절했다. 필자가 이전에 ‘중국은 왜 GDP 세계 1위를 거절하는가’라는 문장을 통해 구매력 평가 산정 방식에 결함이 있음을 지적한 바 있고, 세계은행 및 IMF가 근거로 제시한 통계 수치가 모두 중국이 제공한 조작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중국이 통계를 조작하는 것은 고질적인 문제라는 점도 분명히 밝혔다. 따라서 본 문장에서는 더 이상 같은 문제를 반복하지 않겠다. 자료의 진실성과 해외 학자들의 설명으로 더 이상 이 문제는 말할 필요도 없다. 서양의 중국 연구진들은 초보적인 인식을 가지고 이에 대해 몇 년에 한 번씩 언급하곤 했다. 9월 27일 월스트리트저널에 게재된 ‘서양이 중국에게 가지는 오독(誤讀, 틀리게 읽음)'은 비록 원동경제평론 4월호에 발표된 ‘중국 학자는 모두 매수됐나?’만큼 내용이 깊지는 않지만 다른 각도에서 해당 연구영역의 문제점을 찾아 분석했다. 중국이 No.1이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거절한 것은 자신의 결점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본국에서 통계 수치를 거짓으로 꾸며내는 일은 이미 고질적인 문제가 되어버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사실 GDP가 나타내는 경제규모는 실제 경제상황과는 차이가 있다. 첫째, GDP 전체 총량은 크지만 1인당 GDP는 높지 않다. 둘째, 빈부 격차가 매우 커 가정 소비 패턴이 양극화 되었고 내수가 부진하다. 내수는 곧 국가 경제발전을 촉진하는 주요 동력이다. 셋째, 한 국가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지탱하는 주요 기반은 자원인데 중국의 자원 수요는 과도하게 외부에만 의존하고 있다. 심각한 빈부격차 2013년, 세계에서 GDP 총량이 1조 달러를 넘긴 국가는 모두 16개로 미국은 16조 1900억 달러로 전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은 9조 달러를 기록하며 2위를 차지했다. 3위는 5조 9900억 달러를 기록한 일본이었다. 하지만 1인당 GDP로 비교해보면 미국은 51248달러로 11위, 중국은 6629달러로 86위에 머물렀다. 이와 같이 GDP 총량만으로 중국 경제의 부강함을 증명하기는 무리가 있다. 1인당 GDP 또한 대다수 중국인들이 이에 상응하는 수입 수준을 가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중국의 빈부격차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올해 7월, 베이징대 사회과학 조사센터에서 발표한 ‘중국 민생발전 보고 2014’에 따르면 2012년 중국 가정 순재산 지니 계수는 0.73에 달했으며, 상위 1%의 가정이 중국 전체 부의 1/3 이상을 차지하는 반면 하위 25%의 가정이 보유한 자산 총량은 겨우 1% 전후에 머물렀다. 기타 통계 수치 또한 중국의 부가 과도하게 한 곳에만 집중되어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스위스 자산 정보업체 웰스 X(Wealth X)와 스위스 연방은행 UBS의 ‘2014년 전 세계 억만장자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순자산이 10억 달러가 넘는 중국 부자는 총 152명으로 세계 2위를 차지해 미국 다음으로 많았다. 하지만 현실은 잔혹하다. 전 세계 부호 순위는 2위를 차지한 반면, 1일 평균 소비가 1달러에 못 미치는 가난뱅이는 2억 명, 또 1일 평균 소비가 2달러보다 낮은 인구는 무려 4억 6800만 명에 달했다. 허약한 내수시장 사람들은 베이징대학교 보고서에 공개된 지니계수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해당 보고서의 또 다른 부분에 관심을 기울여 중국 가정의 소비 패턴이 양극화를 나타내고 있음을 분석했다. 중국 가정 소비 패턴은 총 5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가난질병형, 개미형, 달팽이형, 온당형, 향락형이다. 소비수준은 낮지만 소비를 억제하는 가정(개미형) 혹은 의료, 교육, 주거 부담이 큰 가정(달팽이형, 가난질병형) 패턴이 전국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질적으로 풍족한 가정은 극히 적었다. 농촌에는 가난질병형 가정이 비교적 많은 반면 온당형과 향락형 가정은 적었다. 도시에는 가난질병형 가정은 비교적 적은 반면 향락형, 온당형 가정이 농촌보다 훨씬 많았다. 그 동안 중국경제는 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해 외국무역, 투자, 내수 이 삼두마차에 의존해왔다. 그결과, 중국은 세계 시장에서 지위를 잃고, 외국무역에도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 간혹 회복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장기적으로 하락 추세로 나타나고 있다. 투자 유형에는 정부투자(국유기업 포함), 개인투자, 외국자본 세 가지가 포함된다. 현재 정부투자는 통제 상황에 놓여있고 중국을 겨냥한 해외 투자율은 하락했다. 부자들의 신용카드 이용, 경외투자 명목으로 자본을 유동시키고 개인의 외화로 바꿀 수 있는 규정된 액수 제한은 유명무실하다. 계속되는 자금 유출에 7월경 결국 중국 정부가 돈세탁 반대 정책을 내놓는데 이르렀다. 삼두마차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내수는 장기적으로 존재하는 중국 소비율 저조 현상이다. 정부측 통계에 근거하면 최근 몇 년 동안 소비율이 중국 GDP의 48%를 차지했다. 이는 소비율이 GDP의 80%를 차지하는 세계 평균치와는 거리가 먼데다가, 심지어 중국 20년 전 수치인 60% 수준보다 낮았다. 2013년, 국내 한 연구자는 중국 소비율이 낮은 이유는 거주 소비율이 포함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라며 거주소비에는 임대료, 인테리어 보수비용, 광열수도비 등이 포함하고 있어 큰 수치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거주소비가 소비율에 포함됐는지 안됐는지의 여부를 떠나 중국 가정 소비 패턴 양극화의 현실을 바꾸기 힘든 것은 물론 내수를 촉진시키는 것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어떠한 시장이라도 경제력을 부호들에게만 의지하고 있다면 더 이상의 발전 가능성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 부동산 시장이 관료들과 부호들에 의해 지탱된다면 중국인들의 실제 소비 능력과 수요를 완전히 벗어나 결국 큰 경제 버블을 일으키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한 국가의 생산과 분배는 마치 자동차의 앞뒤바퀴처럼 생산이 공급량을 결정하고 분배가 수요량을 결정한다. 공급이 많고 수요가 적으면 오로지 앞바퀴만 돌아가 자동차는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이로써 유추하자면 사회 분배가 불공평한 국가에서 각종 사회모순이 격렬히 충돌한다면 경제 번영은 오래 유지되지 못한다. ...
    6년 전 허칭롄(何淸漣)
  • 중국 경제발전의 진실성 의심받는 이유
    중국 경제발전의 진실성 의심받는 이유
    국제사회는 1989년 ‘6.4’ 이후 중공정부를 정치적으로 진정 신뢰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난 30여 년간 지속된 중국의 경제성장은 국제투자자들에게 많은 믿음을 줬고 중국경제가 장기간 번영할 것으로 믿게 했다. 하지만 최근 국제사회의 이런 의심은 경제영역에까지 확산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과거 중국경제발전을 가장 잘 설명한다고 믿어왔던 GDP와 성장속도마저도 이런 의심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리커창마저 불신하는 GDP통계 이런 의심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차기 국무원 총리로 내정된 리커창마저 자국의 GDP통계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선 이 일의 전후맥락을 살펴보도록 하자. 2010년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베이징주재 미국 대사관이 ‘07BEIJING1760’이라 칭한 비밀전문에 따르면 2007년 3월 12일 베이징 양회에 참가하러 온 당시 랴오닝성 서기 리커창이 미국 대사관저를 찾아와 대사관 직원들과 만찬을 한 적이 있다. 리커창은 랴오닝의 경제상황을 설명하면서 중국의 GDP수치는 조작된 것으로 믿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랴오닝 경제를 평가할 때 3가지 데이터를 중시한다고 했다. 첫째는 전력소모량, 둘째는 철도운송량, 셋째는 대출금액이다. 이 세 가지 데이터를 통해 상대적으로 정확한 경제성장률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웃으면서 “다른 모든 데이터들 특히 GDP 통계는 단지 참고만 할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중국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지금 리커창이 18대 이후 국무원 총리가 될 것으로 보는 많은 외신들은 그에게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다. 즉 리커창이 총리가 되면 이런 불신은 어느 정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이다. 리커창이 전력소모를 중시한 이유는 리커창이 전력소모량 등의 데이터를 중시하게 된 이유는 2002년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에 보도된 중국 통계데이터 조작에 관한 문장 때문이다. 당시 논쟁을 유발한 인물은 미국 피츠버그대학 경제학과의 토머스 로스키 교수로 2001년 ‘중국 GDP통계에 무슨 일이 있는가?’라는 문장을 발표했다. 로스키 교수는 이 문장에서 중국의 에너지소비, 교통운송과 건축자재 등의 생산량을 통해 추론할 때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중국 GDP의 실제 성장률은 관방에서 발표한 것보다 절반 내지는 그 이상 낮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글은 영국의 파이낸션타임스, 이코노미스트는 물론이고 미국의 뉴스위크, 비즈니스위크 등에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학계뿐만 아니라 국내외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또 중국 국내에서도 널리 인용 보도돼 수년간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중국정부는 통계자료의 부실과 불투명으로 내외적으로 지탄을 받았으며 통계제도의 개혁에 대한 요구가 높았다. 개혁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만약 통계제도가 개혁돼 국제수준에 근접한다면 정책 결정비를 절약할 수 있고 외국 기업인들의 신뢰를 얻어 보다 많은 외국투자를 이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중국 국가통계국의 리더수이(李德水)국장과 다른 직원들도 이 논쟁에 참가했는데 이들은 허위 보고된 수치가 총액의 약 20%에 달한다고 인정했다. 가령 2004년을 예로 든다면 허위보고가 총액의 19.47%였다. 이들 정부관원들조차 한 가지 사실을 인정했는데 바로 중국 각 지방에서 보고하는 GDP 수치는 모두 정치적인 고려를 거친 것으로 결코 중앙정부에서 목표로 정한 경제성장률보다 낮은 수치가 나올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지방정부에서 중앙에 보고하는 GDP성장률에 상관없이 국가통계국은 전체적으로 평균 20% 정도는 과장된 것으로 본다. 끊임없이 향상되는 조작기술 2002년 외국 학자에 의해 시작된 논쟁을 거친 후 중국은 GDP를 조작하려면  전력사용량이나 에너지소비량 등을 세트로 맞춰야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리커창은 학습능력이 뛰어난 인물로 과거 이런 논쟁이 있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리커창이 자신은 전력소모량, 철도운송량, 은행대출만을 믿는다고 밝혔을 당시에도 이미 이들 분야의 조작도 같이 시작됐다. 은행대출 용도의 조작은 중국의 오랜 관습이다. 최근 수년간 저장성 일대의 민간기업들은 은행대출을 받을 때 생산자금 등의 명목으로 대출을 받지만 실제로는 부동산에 투자했다. 2011년 부동산이 전면적으로 하락한 후 이들 기업은 더 이상 은행대출을 받지 못하자 도주하거나 일부는 자살을 선택했다. 도피한 기업인들 중에서 원저우 상인이 특히 많았다. 그러므로 중국에서 은행대출은 더 이상 경제발전 상황을 추산하는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 전력사용량도 믿기 어려워 문제는 중국에서는 어떤 일이든 모두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GDP데이터가 조작될 수 있다면 전력사용량 데이터도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다. 우선 전력데이터에는 두 가지 다른 지표가 있는데 바로 발전량과 전기사용량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두 지표가 따로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방정부는 전력데이터를 조작할 충분한 동기가 많이 존재한다. 때로는 과장하거나 때로는 일부러 축소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전력데이터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지난 7월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 발전소 직원이 발전용량 수치를 키워서 보고하도록 상부로부터 요구받았다고 한다. 다시 말해 지방 및 성(省) 1급 정부에서 발전소 측에 중앙에 경제상황을 사실대로 보고하지 말도록 요구했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부정적인 경제데이터’를 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발전소 측에 ‘마이너스 성장’을 ‘제로 성장’으로 보고하도록 요구했다. 일찍이 21세기 초 중국경제에서는 이미 ‘경기하강’이란 단어를 폐기했다. 즉 ‘마이너스 성장’으로 ‘경기하강’을 대신하고 ‘제로성장’으로 ‘정체’를 대체했다. ...
    9년 전 허칭롄(何淸漣)
  • 공자의 실종
    공자의 실종
    최근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 변화가 있었다. 얼마 전 역사박물관 앞에 세워졌던 9.5m의 공자(孔子) 동상이 갑자기 실종(失踪)된 것이다. 다른 실종자들의 상황과 유사하게 중공 당국은 공자의 실종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한 기자가 이리저리 파헤쳐보니 돌아온 대답은 보수를 위해 옮겼다는 결론 뿐이었다. 중국에서 부실공사가 널리 퍼져 있기는 하지만 불과 3월에 세운 공자의 동상에 보수가 필요하다는 것은 뭔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당국의 말을 그대로 빋지 않고 정치적인 각도에서 공자의 실종을 바라본다. 베이징의 저명한 문화인사 톄류(鐵流)는 이에 대해 "중국에서는 역대로 천하를 뒤엎을 때 공자를 억누르고 천하를 잡고 나면 공자를 존중해왔는데 중공의 상황 역시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공자를 비판하고 훼손하며 억누르다가 최근에 들어와 민중들에게 ‘군위신강(君爲臣綱:신하는 임금을 섬기는 것이 기본)’이 필요하자 특별히 공자를 공경하는 풍조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공자가 천안문에 정착한 것은 중공이 조화로운 중용(中庸)의 도(道)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낸다. 물론 공자 동상이 실종된 후 중공은 새로운 선전 수단이 필요할 것이다. 중국공산당의 통치는 일종의 범(汎)정치화된 통치다. 다시 말해 그 어떤 이름, 말, 표어, 인물이든 모두 극히 정치적인 함의를 지니게 된다. 이 가운데 중국 민중들이 겪어야 했던 온갖 고초를 외부인들은 이해하기가 아주 어렵다. 필자와 비슷한 연령대의 중국인들은 변화무쌍한 정치 풍파를 겪어야 했으니 기타 역사인물이나 철학유파는 말할 나위도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가소로웠던 것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그린 동화책을 우연히 봤다는 이유로 차이코프스키에게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지금 사람들이 들으며 아마 동화보다 더 동화 같은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필자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동화는 사실 지금의 중국과 큰 차이가 없다. 때문에 공자 동상이 천안문광장에서 사라진 것을 어떤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정치적인 원인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정치적으로’ 아주 정확히 태도를 표시한 것이다. 얼마 전 공청단파 인물로 간주되는 중공중앙정치국 위원이자 중앙서기처 서기, 중앙조직부 부장 리위안차오(李源潮)가 충칭(重慶)을 방문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는 충칭 당서기 보시라이(薄熙來)의 창홍타흑(唱紅打黑: 공산주의 이념을 중시하고 흑사회를 타도한다는 의미) 정책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충칭일보(重慶日報)’의 보도에 따르면 리위안차오는 이 정책이 “중국과학발전이 직면한 난제(難題)를 타파하는데 새로운 사고와 경험을 제공해주었다”고 인정했다. 만약 기자가 잘못 보도한 것이 아니라면 리위안차오는 공청단파 인물 중 이번 정책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최초의 인물이자 중공 고위층 인사 중에서 태도를 표시한 아홉 번째 인사가 된다. 충칭은 보시라이의 주도하에 최근 적지 않은 소위 ‘개혁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이데올로기 방면에서 전면적으로 좌경화 된 것이다. '홍가(紅歌 공산당 찬양노래)'를 부르는 것은 다만 겉으로 드러난 표현일 뿐이다. 가령 최근에 있었던 '리장(李莊) 사건'은 비록 충칭검찰이 마지막에 소를 취하하긴 했지만 전반적인 조사와 수색 및 기소과정에서 분명하게 법률의 명문(明文)규정을 따르지 않았다. 또한 충칭당국은 거짓 민의(民意)를 동원해 ‘민중(民衆 사실은 동원된 사람들)’시위로 당국을 지지하도록 꾸몄으며 각종 여론선전도구를 총 동원해 이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는 전면적인 선전을 진행했다. 이는 문화혁명 이전 중공의 풍격과 흡사하다. 때문에 리위안차오가 “새로운 사고와 경험을 제공해주었다”고 한 말은 사실 과거 중공의 낡은 사고와 경험이 끝났다는 뜻이다.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앞으로 수 년 간 중공의 정책방향이 전면적으로 좌경화되어 자신들에게 익숙하고 또 쉽게 실시할 수 있는 사상통제로 되돌아가고 의견이 다른 인사들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 지난 20년 간 중공은 이데올로기 방면에서 도처에서 땜질식 처방을 써왔다. 전통문화를 빌리는 것 역시 그중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때문에 과거 수년 간 중공은 세계 곳곳에 공자학원을 설립하고 황제(黃帝)의 묘에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이번에 공자의 동상이 천안문광장에서 실종된 것은 중공이 이미 과거의 옛길로 되돌아 갈 것을 결정했고 이 때문에 공산이데올로기 이외의 다른 방법들은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자에 대해 말하자면 이는 오히려 좋은 일일지 모른다. 공자는 일찍이 “나라에 도(道)가 없는데 부귀하다면 오히려 수치가 된다”고 말했다. 지금 천하는 인(仁)이 얇고 의(義)가 적으니 귀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좋다. 어쩌면 여기에는 우리가 모르는 보다 깊은 의미가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편집자 주 리장(李莊) 사건: 보시라이가 추진하는 소위 창홍타흑(唱紅打黑) 정책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베이징의 변호사 리장이 당국의 압력에 굴하지 않자 충칭당국은 그에게 강간과 매춘혐의를 뒤집어 씌워 탄압을 시도했다. 즉 창홍타흑의 핵심이 공산당 일당전제(一黨專制)를 강화하고 이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을 불법적으로 탄압하려는 의도임을 알 수 있는 사건이다.
    10년 전 Zang Shan
  • 중국의 GDP ‘신화’
    중국의 GDP ‘신화’
    중국의 GDP가 일본을 넘어섰다. 비록 중국 공산당이 50여 년 전 대약진 운동을 전개하면서 영국을 따라잡고 미국을 추월하자고 제안할 때 일본은 안중에도 없었지만, 반세기에 걸친 노력을 거쳐 중국은 마침내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이 됐다. 이는 또 많은 중국인들을 기쁘게 했다. 하지만 이 ‘GDP 세계 2위’는 많은 중국인들을 곤혹스럽게도 한다. 보통 사람들의 생활은 달라진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GDP란 무엇일까? 바로 국내총생산을 가리키는데 즉, 한 나라 국내경제활동의 총합이다. 사실 GDP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은 경제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정부 입장에서 본다면 GDP는 단지 세수(稅收) 체계로 들어와 화폐로 평가할 수 있는 경제활동일 뿐이다. 전에 이런 우스갯 소리가 있었다. 대학원생 두 명이 숲속을 걷다 우연히 개똥더미를 발견했다. 갑(甲)이 을(乙)에게 “만약 당신이 개똥을 먹는다면 5천만 위안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자 을은 주저하지 않고 개똥을 먹어치웠다. 갑이 후회막급해할 때 을이 또 다른 개똥더미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만약 저 개똥을 다 먹어치운다면 역시 5천만 위안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갑 역시 재빨리 개똥을 먹어버렸다. 두 사람이 학교로 돌아와 교수에게 이 일을 말하자 교수는 두 사람을 축하했다. 왜냐하면 방금 그들이 ‘국가 GDP를 1억 위안이나 증가시켰기’ 때문이다. 사실 이론적으로 보자면 두 사람이 각자 5천만 위안을 세금으로 납부하지 않는다면 GDP 는 늘지 않는다. 2년 전쯤 필자는 한 경제학교수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피라미드를 수리해도 GDP를 크게 증가시킬 수 있지만 국민경제에는 오히려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어떤 경제실체든 화폐경제활동과 비(非)화폐경제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중국 농촌에서는 식량과 채소를 자급자족했기 때문에 예전에는 GDP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10년 간 중국 각지 정부가 ‘GDP 광란’에 돌입하면서 현지 GDP로 잡아 계산한다. 어느 할머니가 키우는 닭이 계란을 낳아도 중국경제규모에 50전의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현지 정부에서 이 계란에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할머니 자신이 계란을 먹기 때문에 GDP로 잡을 수 없다. 중국경제가 개혁개방되는 과정에서 이런 부분들이 상당히 많다. 의료, 교육, 부동산을 예로 들면 과거 중국에 이런 활동들이 없던 것이 아니다. 단지 ‘개혁’을 거친 후 이들 항목들이 비로소 화폐가치로 평가되기 시작했고 드디어 중국 GDP의 주요부분이 된 것이다. 화폐경제와 비화폐경제의 상호 전환은 상업 활동에 확실히 중요한 요인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슈퍼마켓에는 고객이 구매한 물품을 스스로 계산하는 셀프카운터가 많이 설치돼 있다. 고객은 자신이 구입한 물품의 목록을 기입하고 신용카드로 계산한다. 슈퍼 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화폐경제활동이 비화폐경제활동으로 전환된 것이다. 왜냐하면 본래 상점에서 점원을 고용해 하던 일을 지금은 고객이 직접 하기 때문이다(대신 주인은 인건비를 지불하지 않는다). 이는 상점의 지출을 줄이기 때문에 GDP를 감소시키지만 상점의 이윤은 오히려 는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기업(외자기업을 포함)은 모두 정반대 과정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본래 기계로 하던 일을 중국에서는 사람을 고용해 한다. 한 친구가 중국의 어느 기업에 기술을 혁신해 자동화기기를 사용하면 효율이 높아진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기업 책임자는 자동화 설비에 투자할 자금이면 10년 동안 백 명을 고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연히 이 설비투자는 이뤄지지 않았다. 경제의 화폐화 정도는 사회의 분업화 정도로 간단히 알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중국은 전 세계에서 비교 대상이 없다. 그 어떤 국가에서도 전문적으로 귀를 후비거나 발을 씻고 등을 마사지하는 직업은 찾을 수 없다. 이는 중국 도시경제의 화폐화가 지나치다는 것을 설명한다. 하지만 겉으로는 도리어 중국 경제활동의 이윤이 지나치게 집중되고 인건비가 지나치게 저렴한 것으로 설명된다. 한걸음 더 나아가 분석하면 중국 부자와 권력자들이 시장과 자원을 지나치게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2천년 동안 전쟁이 끝나고 30~50년이 지나면 중국은 반드시 세계 1위 혹은 2위의 경제규모를 이뤘다. 왕조의 말기에 이르면 극히 세분화된 분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 후 왕조가 교체되고 사회가 혼란해지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중국은 여태껏 이런 테두리를 벗어난 적이 없다. 21세기 중국의 미래가 보다 낙관적일지는 독자마다 견해가 있을 것이다.
    11년 전 Zang Shan
  • 남중국해, 세계의 화약고로 변하나
    남중국해, 세계의 화약고로 변하나
    1990년대 미국 펜타곤에서 분석한 전 세계 6대 분쟁지역 중 3곳이 중국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바로 대만해협, 한반도 및 남중국해(사진)가 그것이다. 최근 들어 남중국해(南中國海)가 점차 이슈로 부각되고 있고 심지어 장차 가장 첨예한 국제분쟁지역으로 발전할 가능성까지 보인다. 올해 초 중국측은 중국을 방문한 미국 관리들에게 남중국해는 티베트, 신장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핵심 이익(核心利益)’에 속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 측은 이에 대해 아무 반응도 없었다. 왜냐하면 미국인들에게 있어 남중국해는 마찬가지로 미국의 ‘핵심 이익’에 관계되기 때문이다. 우선 이 지역이 중국의 ‘핵심 이익’임을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중국에서 제작된 지도를 펼쳐보면 중국은 남중국해를 모두 자국 영해로 포함시켜 놓았다. 이 중에는 도서(島嶼), 암초, 개펄, 모래사장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미국의 핵심이익 역시 마찬가지로 실제적인데 그들이 강조하는 것은 선박운행의 자유이다. 남중국해는 서태평양에서 중동으로 건너가는 가장 가까운 길이다. 만약 미 태평양함대가 이 지역을 우회해 중동으로 가려면 한 달 이상의 노정이 필요하다. 중국 관방의 자료에 따르면 남중국해는 세계 제3대 연해(緣海)로 면적이 광활하며 300여만 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드넓은 해역이다. 이 사이에는 수천에 달하는 섬, 암초, 개펄, 모래사장 등이 놓여 있다. 위도가 낮은 곳은 열대와 아열대 지역에 속하며 풍부한 수산자원과 심해(深海) 생물자원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보다 중요한 것은 해저에 상당한 양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다. 초보적인 계산에 따르면 석유 매장량이 200억 톤에 달한다. 때문에 이곳을 ‘제2의 페르시아 만’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풍부한 자연자원을 지닌 것을 감안할 때 남중국해의 전략적 중요성은 더욱 무시할 수 없다. 한편 남중국해 주변의 동남아 국가들은 모두 남해도서에 대한 일부 또는 전부의 주권을 요구한다. 앞서 서술한 이유 때문에 이 지역의 주권을 차지하려는 각국의 추동력은 더욱 절실해졌다. 중국이 남중국해의 주권을 주장하는 근거는 주로 이곳 도서를 최초로 발견하고 명명하고 개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중국은 해군력이 부족하고 제해권(制海權)이 미약하기 때문에 일부 개별적인 도서에 대한 주권만 확보할 수 있을 뿐이다. 설사 중국이 모든 남사군도에 대해 논쟁의 여지없는 주권을 갖고 있다 해도 여전히 도서 사이에 존재하는 해역에 대해서는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유엔 해양조약에 따르면 한 나라의 영해(領海)는 해안에서 12해리까지만 인정된다. 배타적인 경제수역조차 200해리를 넘지 못한다. 때문에 남중국해 해역 중에 있는 흩어진 도서에 대한 주권 및 모든 해역에 대한 주권은 국제법상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또 도서 사이(200해리 초과) 해역은 국제법상 공해(公海)이기 때문에 그 어떤 선박이든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다. 미국, 일본, 한국 입장에서는 자유로운 항해권이 주권이나 해저자원보다 더욱 중요하다. 왜냐하면 일본과 한국의 경우 석유 및 기타 자원 수입의 80%가 이 지역을 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중국해 문제의 복잡성은 이보다는 주변 각국들의 영토 분쟁에 달려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 해역을 중국의 핵심 문제로 정하자 이들 국가들은 단지 연합해서 대항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미국, 일본 등과 이익공동체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 군사전문가들에 따르면 중국의 능력으로는 이런 연합체에 대해 앞으로 50년 이내에는 대항할 수 없다고 한다. 국제정치에서 핵심 이익의 의미는 절대적으로 양보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대해 ‘핵심 이익’을 표시한 후 곧장 직면한 것은 아주 현실적인 문제였다. 바로 어떻게 이 ‘핵심 이익’을 실현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필자가 보기에 중국이 남중국해에 대한 이익을 표현한 것은 상당부분 일종의 태도표시에 불과하다. 중국은 과거뿐만 아니라 지금도 이 해역을 진정하게 통제할 능력이 없다. 또 가까운 장래에도 실제적인 군사행동을 통해 남중국해의 주권을 차지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하지만 이런 태도표시는 동남아 각국에 깊은 우려를 자아내 중국의 근린(近?)외교를 아주 난처하게 만들었다.
    11년 전 Zang Shan
  • 중공은 왜 아바타를 두려워하는가?
    중공은 왜 아바타를 두려워하는가?
    현재 상영되는 영화 중 최고의 화제작을 꼽으라면 ‘아바타’를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집계에 따르면 아바타는 1월 2일 중국에 상륙한 이래 23일까지 이미 7억 3천만 위안의 수입을 올렸고 사상 최초로 10억 위안을 돌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아바타에 대한 열기가 뜨거워지고 긍정적인 평가가 줄을 잇는 가운데 지난 1월 19일 중공 당국의 탄압 소식이 전해졌다. 중국 극장업계의 지적에 따르면 중공 당국이 ‘공자(孔子 저우룬파 주연의 대형 중국 영화)’의 흥행을 돕기 위해 전국적으로 아바타 2D 상영을 취소하고 비교적 스크린이 적은 3D에서만 상영하도록 요구했다는 것이다. 중공 관방은 겉으로는 탄압이 아니라 시장논리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적지 않은 2D 극장에서 당국의 방침에 ‘항명’하고 있고 아바타 표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을 보면 이런 설명은 분명 근거가 희박하다. 그렇다면 중공은 왜 아바타를 탄압하는가? 첫째, 많은 누리꾼들과 인터넷 평론에서 분석한 것처럼 아바타의 내용이 중국 민중들에게 중국 사회의 불공정한 현황을 연상케 한다. 가령 정부에 땅을 뺏기고 무장경찰의 폭력 진압을 당하는 철거민들의 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영화에 나오는 몇몇 장면들은 중국사회의 현실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중공 당국이 우려하는 것은 지금도 매일 평균 246건의 민중항쟁이 발생하는 현실에서, 아바타를 관람한 많은 관중들이 일종의 강력한 집단 정서를 형성해 폭발적인 저항을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둘째, 아바타에는 판도라 행성의 여러 부족들이 서로 연락하고 집결해 자신들의 고향을 지키기 위해 외부의 ‘사악한 세력’(여기서는 지구인들이야말로 진정한 외계의 침략자이다)을 몰아내는 장면이 나온다. 판도라 행성 사람들이 하나로 뭉쳐 강력한 저항세력을 만들고 떨쳐 일어나 외부침략자들과 맞선다. 중공 정권은 본질상 60년간 신주(神州)대지를 절취한 ‘서양유령’이다. 때문에 중공은 장기간 거짓, 폭력, 공포통치를 받아온 중국 민중들에게 아바타가 ‘집단 계몽’을 통해 지혜가 열리고 언젠가 영화에서처럼 강력한 힘을 길러 중공 폭정에 대항할까 두려워한다. 셋째, 중공이 ‘무신론(無神論)’을 고취하는 목적은 민중들이 공산당보다 더 높은 진리나 신성한 힘이 존재하지 않음을 믿게 하여 쉽게 사상을 통제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아바타에서 순진하고 낭만적인 나비족은 하늘을 공경하고 신을 믿으며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자연법칙을 중시한다. 이는 중국 고대의 선인들과 상당히 흡사하다. 때문에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 선진적인 물질조건, 기술, 무기는 없을지라도 순수한 영혼으로 신을 공경한다. 이에 나비족은 비할 바 없이 강력한 후원자를 얻었으니 그것은 바로 신의 힘이다. 결국 판도라의 신(에이와)은 행성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마음을 바르게 하고 사악에 대항해 자신의 고향과 신성한 땅을 지키려 하는 것을 보고 행성의 각종 생명들을 보내 협력하고 그들을 도와 ‘지구인’들을 격퇴하게 한다. 지구인은 원래 복잡하고 무거운 기계를 통해서만 자신의 정신을 아바타 속에 주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의 말미에서 에이와의 힘에 의해 주인공 제이크의 생명은 한순간에 아바타 속에 들어가 영원히 그들과 한 무리가 되었다. 아바타의 이런 줄거리는 영화의 안과 밖에서 보다 사람보다 높은 ‘신’과 ‘천도(天道)’가 우주 중의 만사만물을 지켜보며 통제하고 균형을 잡고 있음을 암시한다. 마음이 바르지 못하고 하늘의 뜻을 거스르며 신을 비방하는 사람이나 혹은 조직은 설사 아무리 좋은 무기가 있고 아무리 선진적인 기술을 지녔을지라도 결국 신을 이길 수는 없다. 중공은 현재 정권이 붕괴되고 경제적 기반이 상실될 위기에 처해 있다. 만약 사람들이 아바타를 통해 진일보로 신의 존재를 깨닫고 신의 도움을 믿고 사악을 제거한다면 중공의 폭정이 끝날 날도 그리 머지않을 것이다.
  • ‘공자 열풍’에 공자는 더 슬프다 ②
    ‘공자 열풍’에 공자는 더 슬프다 ②
    포성 없는 전쟁 ‘공자학원’ 중공 관방 통계에 따르면, 2009년 10월까지 이미 87개 국가에 282개의 공자학원과 272개의 공자학당이 설립됐다. 중공 관방매체 런민왕은 “해외 공자학원에서 모두 베이징 공자학원 본부에서 제공하는 수업방식, 교과과정 등을 주교재로 사용해 통일적인 교육과정을 따르고 있다”고 밝혔다. 중공의 감시와 통제를 받는 공자학원의 교재가 해외 각지 중국어 학교에서 광범위하게 채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중국어 교사로 있는 야오저(堯哲)씨에 따르면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공자학원의 교재를 직접 사용하고 있다. 중공이 중국어 학교라는 명분으로 사용하는 교재의 내용에 ‘공산당을 사랑하는 것이 애국’이라는 전제주의 문화와 민족주의를 고취시키고 있다. 미국 전역에서 간체자 교재를 가르치는 거의 모든 중국어 학교에서 이런 교재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 교재가 배우는 사람들을 세뇌시키기 때문에 ‘소프트 냉전’이자 ‘포성 없는 전쟁’이라고 표현했다. 이외에도 해외 공자학원은 중공의 해외정보기관 역할을 하고 있다. 2년 전 미국 국토안전국 전임 국장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스파이로 활동하는 중국어 교사를 대량 검거해야한다”고 할 정도였다. ‘공자’는 슬프다 지난 2500여 년 동안 중국은 유교문화가 근본이었다. 노나라 애공(哀公)이 공자의 묘를 세우고 제사를 지낸 이래 한 고조 유방은 유가의 예절을 채용해 조정의 예의범절을 만들었다. 한 무제는 제자백가 중에서 오직 유가만을 존중했고, 당태종은 공자를 문선왕(文宣王)으로 추증했다. 청나라 강희제에 이르러서는 황제가 직접 ‘만세사표(萬世師表)’라는 현판을 써서 공자묘에 걸게 했다. 이처럼 중국 역대 왕조를 거치며 공자는 늘 추서되거나 제사를 지내는 대상이었으며 심지어 몽골족이 지배했던 원나라 때도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으로 추대됐다. 공자의 영향은 일찍이 국경을 넘어 일본, 한국, 월남 등 아시아 국가에 유가 사상의 깊은 영향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서양의 유명한 계몽철학가 볼테르조차 공자를 스승으로 삼았다. 하지만 중공 정권은 공자를 반대하며 일어섰다. 일찍이 중국 공산당이 건립되기 전인 1919년, 천두슈(陳獨秀: 나중에 중공 최초의 총서기가 됨)는 잡지 신청년에 ‘민주를 옹호한다면 공자교에 반대하지 않을 수 없다’는 문장을 발표했다. 문화혁명이 발발한 후 중공은 ‘공자점 타도’ 운동을 일으켰다. 나중에는 마오쩌둥이 직접 나서 ‘공자비판운동’을 일으켰다. 일찍이 ‘문(文), 행(行), 충(忠), 신(信)’을 강조했던 공자는 중공에 의해 “일체 낡은 이론의 사표이자 악 세력의 영혼”으로 매도됐다. 또, “사람이 생긴 이래 실로 공자만큼 죄악이 크고 위선적이며 대다수 사람들의 공적(公敵)이 된 인물을 없었다. 앞으로는 인류가 모두 일어나 공격하게 될 것이다. 동서고금의 모든 사상가들의 언행 중에서 공구(孔狗: 공자에 ‘개 구’자를 썼다)가 가장 황당무계하다”고 비판당했다. 리밍(黎鳴)이란 학자는 “중국인들은 왜 반드시 철저히 공자를 비판해야 하는가?”, “공자는 중국문화를 사악으로 이끈 제일의 마귀이다”는 일련의 문장을 발표해 공자를 비판했다. 하지만 중공은 ‘조화사회’가 필요할 때가 되자 다시 공자에 대한 제사활동을 거행해 사회 조화를 실현하려 한다. 대외적으로는 공자학원을 설립해 공자의 이름을 이용하는 동시에 중국어를 교육하는 방식으로 중공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있다. 한 누리꾼은 “중공이 진심으로 공자를 신앙하는 것이 아니며 중공 정치과목에서 말한 것처럼 공자와 맹자는 모두 통치계급이 노동인민을 우롱하기 위해 이용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현재 유행하는 중국의 ‘공자열풍’은 단지 중공이 공자를 이용해 노동인민들을 우롱하는 도구로 삼은 것에 불과하다. 만약 공자가 인간세상의 이런 모습을 본다면 할 말을 잃고 비탄에 잠길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중공의 손에 들린 도구에 불과할 뿐이며, 소위 ‘공자열풍’이란 이 시끄러운 연극은 진실로 자신과 무관하며, 유학(儒學)과도 무관하고 전통문화와도 무관함을 알기 때문이다.
  • ‘공자 열풍’에 공자는 더 슬프다 ①
    ‘공자 열풍’에 공자는 더 슬프다 ①
    “흘러가는 것이 저 물과 같아 밤낮을 쉬지 않는 구나!” 2천여 년 전 공자는 냇가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흘러 2010년, 중국은 ‘공자 열풍’ 속에 있다. 세계 각지에 ‘공자학원’이 설치되고 있고,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영화 ‘공자’도 개봉했다. ‘공자’ 일색에 중국이 떠들썩하다. 하지만 정작 유구한 유교문화는 없고, 단지 정치적인 ‘조화’를 꿈꾸는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의 야욕만 엿보일 뿐이다. 만약 공자의 영혼이 하늘에 있다면, 인간 세상의 ‘공자 열풍’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40년 전 ‘공자 타도 열풍’ 40년 전 중국에서 발생한 ‘공자열풍’은 한차례 재난이었다. 중국인들에게 2천여 년 동안 가장 존경받는 성현이었던 공자는 “복고광(復古狂), 정치 사기꾼, 백성을 가장 기만하고 억압한 자”로 불렸다. 1966년 11월 베이징 사범대학의 조반파 두목 탄허우란(譚厚蘭)은 중앙문화혁명 소조의 명의로 200여 명을 이끌고 산둥성 취푸(曲阜)에 있는 ‘공자점(孔家店)’을 찾아가 파괴했다. 그는 현지 조반파와 연합해 철저하게 공자점을 파괴하는 ‘혁명조반연락소’를 만들고 공자점을 철저히 파괴하는 만인대회를 소집해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라는 비석을 부쉈다. 이들은 취푸에서 29일 동안 2700여 권의 고서와 900여 점의 각종 서화(書畵)를 불태웠는데, 이중에는 국가 1급 보호문물 70여 건 및 1700여 권의 서적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이 파괴한 문물 중에는 공자의 묘비를 포함한 1천여 개의 역대 비석 외에도 공자묘(孔廟)와 공자(孔子)의 직계 장자와 장손이 사는 저택 공부(孔府), 공림(孔林), 서국(書國) 옛터를 파괴했다. 또, 천보다(陳伯達)의 비준을 거쳐 공자묘를 갈아엎고, 공자묘를 지키던 76대 후손 쿵링이(孔令貽)의 무덤을 파헤치고 시신을 꺼내 비판했다. 당시 유가 경전만을 연구하던 저우위퉁(周予同) 교수는 끌려나와 자신의 손으로 공자의 무덤을 파헤쳐야 했다. 현지 각급 지도자, 간부 및 1962년 ‘공자토론회’에 참가했던 가오짠페이(高贊非) 등의 학자들이 공자상을 들고 조리돌림을 당했다. 그러나 이 모든 사건은 공산당 최고 권력기구인 중앙문화혁명소조의 직접적인 지시 하에 이루어졌다. 이는 당시 공산당의 정치투쟁과 정치운동의 필요에 의해 취해진 조치였다. 정치 선전 구호된 ‘공자’ 최근 중공 관영 CCTV가 강력하게 지원하는 ‘백가강단(百家講壇)’이란 프로그램에서 위단(于丹)이 ‘논어’ 열조를 일으켜 돈과 명예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자신이 공자를 연구하는 국학대사(國學大師)임을 자처하는 학자들이 대학 강단과 TV방송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는 정치적인 형세와 경제적인 필요에 영합한 일련의 일들이다. 물론 현재 파괴됐던 공자묘와 공자의 위패는 회복됐다. 공자에게 올리는 향도 왕성하게 타오르고 있고, 중공의 각급 고위관리들도 사람들을 따라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물론 이같은 행동도 장쩌민의 ‘삼개대표론’이나 후진타오가 주장하는 ‘과학적 발전관의 지도방침’을 따라 착실히 추진된 일종의 정치 임무에 불과하다. 공자는 각종 영화와 TV 드라마까지 등장하게 됐다. 역설적인 것은 공자를 비판하고 타도했던 중공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공자를 영화로 제작, ‘대하 서사시’로 떠받들고 있다는 것이다. 1월 22일 영화 ‘공자’가 각지에서 상영되기 전 관방에서는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는 한편, 행정명령을 동원해 블록버스터 ‘아바타’ 2D상영을 중단시켰다. 그러나 각종 반응을 종합해보면 공자의 흥행은 썩 낙관적이지 않다. 보다 중요한 것은 많은 관중들이 이미 이 영화가 중공이 이용하는 도구임을 직접 지적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산둥성 정부에서는 공자를 널리 알리는 것을 정치임무로 삼아 미리 각 지역 기관과 초중고교 및 기업 공회(公會)에 연락해 ‘조직적인 관람’을 명령했다. 이 때문에 산둥성의 ‘공자’ 좌석점유율은 67%에 도달했지만 다른 지역에서 ‘공자’의 흥행은 극히 미미하다. 소식통에 따르면 개봉 첫날 상하이는 관람객이 겨우 수백 명에 그쳤고, 쓰촨성의 한 극장에서는 관람객이 겨우 3명에 불과했다. (2편에서 계속)
  • 7조 6500억원 투입된 中 ‘대외 선전’의 비밀
    7조 6500억원 투입된 中 ‘대외 선전’의 비밀
    올림픽 보이콧에 놀란 中共, 관영매체 해외 진출 확대 현지 유력인사 필진으로 포섭, 공산당 이미지 쇄신 노려 올해 1~2월 무렵부터, 베이징 당국의 대외 선전 계획에 관한 뉴스가 줄을 잇고 있다. 최초 보도한 홍콩의 난화짜오바오(南華早報)에 따르면, 정부가 중국 공산당의 국제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450억 위안(7초 6500억 원)을 들여 주요 관영 언론사의 국제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월 3일, 관영 신화사 산하 환추스바오(環球時報)는 “중국 정부가 국가 홍보 활동을 위해 450억 위안을 투입한다”라고 보도했다. 이 소식은 곧바로 신화넷에 전재됐으며 펑황저우칸(鳳凰週刊) 등에도 실렸다. ‘국가 홍보 활동’ 즉 대외 선전이 화제 거리로 떠오르면서 사람들은 450억 위안의 용처에 호기심을 가지게 됐다. 급기야 중공 선전부는 450억 위안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라고 언론에 지시했다. 해외 중국어권 언론사들은 450억 위안이 해외 중국어 매체를 사들이는데 쓰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당국은 거액의 자금을 기존의 관영 매체에 투입해 ‘대외 선전 계통’을 강화하고, 해외 진출 매스컴의 현지화를 앞당기는 데 사용할 방침이다. 대외 선전의 핵심 ‘외문국’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티베트 탄압에 항의하는 사람들은 올림픽 횃불 릴레이를 보이콧했다. 중공 당국은 중국 정부의 국제적인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다고 판단했다. 이를 통해 중공이 얻은 교훈은 인권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국가 이미지를 쇄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중공 당국과 언론은 여론을 선점하기 위해 혈안이 됐다. 첫 번째로 해외에 새로운 언론사를 설립하고 각국 정부 부처와 지도층에 정보를 전달했다. 신화사, 중국신문사, 중국국제방송국, CCTV 위성방송, 중국일보 등의 해외 지사를 증설하고 현지 직원을 모집했다. 여기에 대외 선전기구인 중국외문출판발행사업국(中國外文局·외문국)이 발행한 수십 종류의 출판물도 동원됐다. 중공 관영 언론사들은 각자의 역할과 기능을 가지고 있다. 신문사는 보도를, 라디오는 평론을, TV방송국은 공연을, 잡지와 서적은 해설과 설득을 담당한다. 이 중 두드러지는 것은 해외 186개 지사를 설립한 신화사다. 신화사는 궁극적으로 알자지라와 같은 글로벌 뉴스 채널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중국의 대외 선전 기구의 핵심인 외문국은 1949년 10월 1일 설립됐다. 당시의 명칭은 중앙 인민 정부 신문총서 국제 신문국이며, 중공 외교계의 거물 차오관화(喬冠華)가 제1기 국장에 취임했다. 대외 선전의 주요 기구로서 외문국의 주요 업무는 중공 지도자의 저작, 정부 공고, 정책 자료, 국정 소개, 중국 문학 작품과 중국어 잡지를 외국어로 번역하고 보급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편집, 출판, 인쇄, 발행, 인터넷 선전 등 광범위한 업무를 맡고 있다. 외문국이 설립된 이래, 지금까지 43종의 언어로 약 13억 권의 서적이 출판돼 세계 180여 개 국가에 보급됐다. 이는 중국의 출판물 수출의 50% 이상에 해당하며, ‘베이징 주보’, ‘인민 화보’, ‘오늘의 중국’, ‘인민 중국’이 대표적인 간행물이다. 외문국의 간행물은 전량 중국 정부가 사들인 후 중국 대사관과 영사관을 통해 배포한다. 외문국은 중국 문화계의 거물을 포섭해 공동 작업하며, 해외에서도 좌파 인사를 중심으로 ‘친구’를 모으고 있다. 2004년부터 외문국은 대외 선전 간행물의 현지화에 착수했다. 2004년 10월, 잡지 ‘오늘의 중국’은 카이로와 멕시코 시티에 지사를 설립했다. 이 잡지의 아라비아어와 스페인어판이 현지에서 발행됐다. 이른바 대외 선전 간행물의 현지화를 위해, 현지 유력 언론 관계자와 관리를 고문으로 고용하고 기획과 주제 선정에 참여시킨다. 또 현지 주류 언론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사들을 고용해 잡지에 기고하도록 하고, 그들의 입을 빌려 중국 정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전한다. 교묘하게 의도를 숨긴 유명인의 기고문은 현지 매스컴에도 인용돼 선전 효과가 극대화된다. 러시아, 한국, 베트남, 미얀마, 라오스, 타이, 몽골 및 중앙 아시아 5개국에서 ‘포탈라(티베트어)’, '진차오(金橋, 한국어), '다루차오(大陸橋, 러시아어)', '연꽃(베트남어)', '파트너(러시아어)', '지샹(吉祥,미얀마어)', '메콩강(타이어)‘, '소론(몽고어)’, '센바(라오스어)‘, '유방(友邦, 카자흐스탄어)’ 등을 발행중이다. 이외에도 ‘오늘의 중국’은 페루판, 브라질에 포르투갈판을 발행할 계획이다. 외문국은 이미 2007년에 24종의 간행물과 27종의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파악한다면, 450억 위안이 어디로 흘러갈지 쉽게 알 수 있다. 세계 각지에서 중국 공산당이 좋아할 소식을 전하고 있는 언론들은 자신들에게 이 돈이 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할 것이다. 선전은 이미지 제고로 이어질까? 상술한 바와 같이 중공의 대외 선전은 올해 들어 처음 기획된 것이 아니라 정권을 장악한 초기부터 시작됐다. 개혁개방 이후 중공은 이미지를 치장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1980년, 중앙정부는 대외 선전팀을 설립하고, 90년대 국무원 신문 사무실을 설립해 대외 선전에 관련된 모든 사항을 총괄했다. 하지만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과는 신통치 못하다. 신화사의 해외 고객은 1450개 언론사와 기관으로 늘었지만, 여전히 국제 주류 언론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중공의 언론학자인 리시광(李希光)은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현재 상황에서 중국의 대외 선전물은 국제 주류 사회로 진입하기 어렵다. 특히 서방의 사회 중심으로 들어갈 수 없다. 일부의 해외 호텔에서는 중앙 TV의 중국어 프로그램을 볼 수 있지만, CCTV의 영어 프로그램은 볼 수 없다. 신화사의 기사는 좀처럼 현지 매스컴에 인용되지 않는다. 인용되더라도 부정적인 쪽이며, 오히려 중국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다.” 히틀러는 일찍이 선전 효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발언한 바 있다. “선전의 임무는 사물을 올바르게 전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불리한 사실을 보도하지 않는 데 있다. 반대로 우리에게 유리한 정보를 반복해서 보도하고 선전해야 한다.” ...
  • 관료들 실언서 드러나는 중공의 “본심”
    관료들 실언서 드러나는 중공의 “본심”
    인민일보 방문 주룽지 前 총리 "인민의 대변인이 되자" 동행한 선전부부장의 첨언 "공산당 이익과 일치할 때만…" 중국 공산당 선전부와 어용 악플러들은 당국에 대한 비난 여론이 제기될 때면 여지없이 "중국과 공산당을 반대하는 국외 세력의 책동"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무엇이 진실인지는 중공 간부들과 공무원들이 무심코 내뱉은 말에서 알 수 있다. 그들의 말에는 중국의 실정에 대한 가장 적절한 묘사가 담겨 있고, 사상 분야 선전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들어 있다. 중공 관료계에는 2가지 어투가 있다. 하나는 공식적인 장소에서 사용하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가까운 친구에게 털어 놓은 사적인 대화에 사용하는 말이다. 관료계에 대한 통제력이 점차 약해지고 있는 요즘 그들의 사적인 대화가 인터넷에 심심찮게 돌아다니고 있다. 부정부패는 동지, 언론자유는 적? 먼저 이른바 "정부식" 말투를 몇 개 분석해 보자. 해외 반체제 사이트인 보쉰(博迅)넷에는 지난 15일 베이징에서 열린 선전부문 내부 회의에서의 한 고위공무원의 발언이 공개돼 있다. "중국은 아직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다. 언론의 방향을 우리가 확고하게 통제해야 한다. 부정부패는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지만 여론의 향방을 잃게 되면 공산당과 공산당의 집권은 끝이다." 이 말의 뜻인즉 공산당과 정부의 임무는 부정부패 방지에 있지 않고, 당원들을 공산당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게 해 자아를 보호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관건은 언론을 통제해 국민들의 부정부패에 대한 비난 여론을 잠재우고 정부에 불리한 소식을 모조리 봉쇄하는 것이다. 국민들은 중공이 만들어 낸 언론의 창(窓)에 둘러 싸여 "중국 공산당의 위대한 업적"과 "서방국가의 부패상과 몰락"을 보면서 중국이 태평성세에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물론 이런 말은 인민일보나 신화사에 실리지 않는다. 언론에는 공산당 고위층이 즐겨 쓰는 "부정부패는 공산당과 나라를 망하게 한다"라는 그런 말을 실어야 하기 때문이다. 범죄와의 전쟁은 어떻게 시작됐나 다른 문장을 하나 더 살펴보면 중국에서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던 "보시라이가 폭력조직을 단속하게 된 계기"라는 문장이다. 여기서 보시라이는 "우리가 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폭력조직의 핍박에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보시라이의 말은 사실 그대로라고 봐야 한다. 국민들은 보시라이의 말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첫 번째 "폭력배들이 너무 날뛴다"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두 번째 해석은 "폭력 조직 소탕이 사실은 부담스러웠던 보시라이가 약한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끝으로 "보시라이가 실언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필자가 중국 폭력조직과 정치계의 결탁을 다룬 연구에 따르면 첫 번째 해석이 가장 정확해 보인다. 여러 매체에서 충칭시의 폭력조직이 지역 정부와 유착해 성장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사실 보시라이가 상무부장이라는 중앙직에서 충칭시로 온 것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하지만 충칭시 당서기 취임 직후 발생한 택시기사 집단 파업, 공무원 뺑소니 사건, 초병 살해 사건 등이 잇따라 터지면서 보시라이는 무능하다는 평가를 듣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보시라이는 노심초사 끝에 "폭력조직 소탕"을 택하게 됐다. 하지만 현재 중국의 폭력조직은 경찰과 정부의 부패 집단과 함께 세력을 키우고 있어 지역을 정부와 함께 다스린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부 지역에서는 폭력조직이 정부보다 더 정부 노릇을 잘하는 지역도 있다. 보시라이의 말은 관료들과 밀착된 폭력조직을 원래 소탕할 계획이 없었지만, (자신의 출세를 위해) 할 수 없이 작전을 실행했다는 뜻이 된다. 주룽지 전 총리의 황당한 경험 공산당 문화에 젖어 있는 관료들은 자신도 모르게 본심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지난 6월 한 기자가 허난성 정저우시에서 서민주택에 대해 취재할 때 기획국장 루우쥔은 기자에게 "당신은 공산당의 편에 서서 말을 하려는 겁니까? 아니면 시민들을 위해 말을 하려는 겁니까"라고 반문했다. 루우쥔은 은연중에 공산당과 시민의 이익이 대립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공분했다. 중국 공산당은 줄곧 국민들에게 "공산당은 인민 이익의 최고 대변자"라고 선전했지만 실제는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90년대 말 장쩌민이 주창한 "3개 대표론"도 국민을 우롱했다. 베이징에는 이런 말이 나돌고 있다. 1999년 설날 즈음, 국무원 총리 주룽지(朱鎔基) 가 중공 선전부 부부장과 인민일보를 시찰했다. 주룽지는 직원들에게 "당신들은 시민들의 좋은 목소리가 되어야 한다"라고 격려하자, 부부장은 "공산당과 인민의 이익이 일치할 때 당신들은 인민의 좋은 목소리가 되어야 하며, 더욱 중요한 것은 공산당의 좋은 목소리가 되는 것"이라고 보충 설명했다. 이 일화도 공산당과 인민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중국인들이 인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
    11년 전 허칭롄(何淸漣)
  • 광저우서 날아간 위안화 국제화의 꿈
    광저우서 날아간 위안화 국제화의 꿈
    G20 정상회의 즈음 중국은 "새로운 국제통화가 필요하다"는 달러 흔들기로, 이번 회의를 중국과 미국의 "G2" 회의로 만들었다. 국제사회도 중국의 행보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발언은 사실 회담 전부터 있었다. 지난 3월 중국 중앙은행 저우샤오촨(周小川) 총재는 "달러를 대신해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을 새 기축통화로 사용하자"고 주장했고, 중국 정부의 영향권에 있는 도널드 청(曾蔭權) 홍콩 행정장관도 홍콩달러의 "미 달러 페그제" 폐지를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왕치산(王岐山) 중국 부총리도 "타임즈"에 기고를 통해 "국제 금융 시스템에서 개발도상국의 발언권이 더욱 커져야 한다"며 목소리를 더했다. 이에 중국언론들은 위안화의 승리가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매우 흥분했다. 하지만 기업의 이익을 고려한 중국 기업들은 정부의 "강대국 쇼"에 참여하지 않았고, 그 결과 중국 정부의 "위안화 무역결제 시범지역 선정" 정책은 지난 4월 광교회(광저우무역박람회, 캔톤페어)에서 완전히 실패했다. 중국 언론의 "정부찬양"도 슬그머니 사라졌다. 중국은 왜 달러에 도전했나 저우 총재의 달러화 도전은 미국의 정치, 군사적 지위에 도전하려는 중국 정부의 예행연습이다. 지난 2005년 미국에 핵 공격도 불사하겠다던 주청후(朱成虎) 소장의 발언에 비하면 많이 부드러워진 셈이다. 국제통화는 그 나라의 국력과 깊은 연관이 있다. 2차대전 동안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하자, 1944년 브레튼우즈 협정에서는 달러를 기축통화로 한 금환본위제도를 채택했다. 하지만 1971년 닉슨 정부가 금태환 정지선언을 함으로써 브레튼우즈 체제는 붕괴하였다. 이후 1976년 자메이카 협정을 통해 선진국들은 변동환율제를 채택했고 보유 외환도 다양해졌다. 하지만 미국의 강한 국력을 바탕으로 달러는 여전히 국제시장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고, 국제통화로서의 지위를 지키고 있다. 중국이 미국의 금융위기를 틈타 공세를 취한 것은 영리한 행동이다. 궁핍한 서민층과 산재한 경제문제 등 현재 중국이 직면한 문제는 미국보다 훨씬 크지만, 독재정부인 중국은 미국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수 있다. 자원을 강제적으로 동원해 부를 과시하거나, 통계수치를 위조해 전 세계가 불경기인데도 오직 중국만은 회복기라는 가상을 만들어낸다. 이는 서구에 중국 자본은 끝이 없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자유가 보장된 미국 언론들은 자국 경제를 통렬히 비판하지만, 자유가 통제된 중국 언론들은 자국 경제에 박수를 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영리한 선택에도 "위안화 무역결제 시범지역 선정"은 시기가 좋지 않았다. 왜 그런지 한번 살펴보자. 중국이 기대한 "일석삼조" 효과 사실 중국의 목표는 위안화를 곧바로 국제통화로 만들자는 것은 아니다. 국제통화가 되려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국제통화 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며, 둘째 자유로운 교환이 가능해야 한다. 셋째 해당 통화가 국제시장에서 안정적인 구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각국 중앙은행의 믿음이 있어야 한다. 위안화는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지 못해 새로운 국제통화가 되기는 상당히 어렵다. 하지만 중국은 새로운 국제통화 주장을 통해 일석삼조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 첫째, 중국의 단기목표는 IMF에서 자국의 발언권과 투표권을 확대하는 데 있다. 최근 국제사회는 새로운 국제통화 시스템을 만들어도 여전히 달러화가 중심이 된 통화 다원화가 되어야 한다며, 달러화의 파워를 인정하고 있다. SDR도 달러, 엔, 유로, 파운드의 통화바스켓으로 운영되고 있어, 중국의 영향력은 매우 미미하다. 이는 중국정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둘째, 중장기목표는 위안화가 국제통화 시스템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번 G20 회의에서 SDR을 주장한 이유도 위안화의 국제화, 2020년 위안화의 자유교환, 상하이 국제금융센터 설립 등을 위한 사전작업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중국이 역점을 두는 현실 목표는 중국이 아시아통화를 추진할 때, 미국의 간섭을 배제하는 것이다. 지난 4월에 열린 보아오(博鰲) 포럼에서 중국 고위층은 세계 각국에 제공하는 중국의 자본을 무기로 미국의 대규모 양보와 아시아 중심의 새로운 국제기구 설립을 주장했다. 저우 총재는 아시아개발은행 같은 지역 금융기구가 국제기구의 역할을 넘겨받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결국 중국의 목표는 아시아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위안화 국제화를 가로막은 것은 놀랍게도 서양 선진국들이 아니라 보아오 포럼 전에 열린 광교회(광저우무역박람회)였다. 위안화 국제화의 꿈을 깨버린 "광교회" 저우 총재와 왕 부총리의 발언 직후, 중국 국무원은 상하이, 광저우, 선전, 주하이, 둥관 등 5개 도시를 위안화 무역결제 시범지역으로 선정했다. 중국 언론들은 일제히 "위안화 결제를 통한 환율위험 회피, 무역조건 개선 등은 수출기업 성장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광교회에서 위안화로 견적을 낸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한 일간지는 "광교회에서 위안화 결제기업 없어"라는 기사에서 위안화 결제는 매우 시기상조이며, 중소기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대부분 기업들의 입장이라고 보도했다. 첫째, 위안화 결제의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역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위안화가 결제통화로 인정받으려면 우선 위안화로 보유자가 원하는 모든 재화나 서비스를 살 수 있어야 하지만,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해외주문에 절박한 중국기업들도 구매자의 요구에 무조건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양청완바오"는 참가자의 말을 인용, "외국 상인들이 위안화 결제는 환율위험을 자신들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의심한다"라고 보도했다. ...
    12년 전 허칭롄(何淸漣)
  • 성룡은 왜 변했을까?
    성룡은 왜 변했을까?
    ▲ 사악한 제도 때문인가, 사악한 인성 때문인가 최근 중국에서 수많은 "영웅"들이 독재정부에 아부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마치 경쟁하는 듯한 그들의 모습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여성작가 장이허(章詒和)는 최근 남방주말에 두 편의 기고문을 통해 황먀오쯔(黃苗子), 펑이다이(馮亦代) 등 중국 유명 예술인들이 과거 공산당에 동료를 밀고한 사실을 폭로했다. 곧이어 베이징대 쑨둥둥(孫東東) 교수는 "상방민의 99% 이상이 정신병을 앓고 있다"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이런 문화인재들의 타락은 최근 독재정부의 대변인을 자처한 영화배우 청룽(成龍)의 "중국인은 통제가 필요하다"라는 발언으로까지 이어졌다. 일부에서는 펑이다이 등의 밀고 행위는 마오시대 정치탄압의 산물이기 때문에 개인의 잘못을 탓할 수 없다고 한다. 정치탄압의 산물이라는 의견에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당시 독재정권은 개인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통제했기 때문에, 살기 위해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체제는 개인을 완전히 분리된 개개 입자로 나눠 사람들을 철저히 고립상태로 만들었다. 가족, 친구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이런 거대한 탄압과 공포 속에서 진웨린(金岳霖), 펑유란(馮友蘭) 등 명성이 자자한 학자들조차도 중공에 머리를 조아리는 "사상범"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들의 잘못을 탓할 수 없다는 생각에는 반대이다. 오히려 과거의 경험과 잘못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과거사를 다시 논하는 이유는 당사자를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괴물로 만든 독재 정권의 만행을 알리는 데 있다. 어쨌든 많은 중국인이 오랜 기간 정치탄압을 받았거나 아직도 받고 있지만, 그들 모두가 타락한 것은 아니다. 펑이다이의 밀고행위를 시대의 잘못이라고 한다면, 최근 쑨둥둥과 청룽의 태도는 정치탄압에 의한 굴복이 아닌, 그들 스스로 정권에 영합하려는 행동으로 보인다. 현 체제의 통제와 탄압이 매우 잔혹하지만 마오시대 만큼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 생각해 볼 것은 쑨둥둥은 "6.4 톈안먼(天安門) 사태 때 학생들을 보호했고, 청룽은 당시 학생운동을 지지하는 노래를 불렀다는 점이다. 무엇이 정의감에 불타던 이 두 인재의 가치관을 이렇게 바꿔놓았을까? 단지 경제적 이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중국 당국이 통제할 수 없는 대중 여론이 정권에 아부하는 그들의 모습에 결코 호의적일 수 없다. 또한 정부 당국도 수많은 아부꾼을 당연시하기 때문에 그들이 얻는 "한계효용"은 0에 가깝다. 쑨둥둥도 자신의 정치적 위치가 바로 상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밝힌 바 있다. 청룽의 이런 영합이 당국을 움직여 그의 중국 내 티켓수입을 늘릴 것이라고 기대하기 역시 힘들다. 그렇다면 이런 인재들을 파렴치한 정치 하수인으로 만드는 독재정부의 능력은 어디에 있는가? 쑨둥둥이 자유가 없는 중국에서 살기 때문에, 그의 행동은 공산당의 장기간 교화에 의한 결과라고 한다면, 청룽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청룽은 중국에 반환되기 전의 자유 홍콩에서 자랐고, 중국인들이 겪었거나 현재 겪는 사상교화를 받은 적이 없다. 그가 독재정권의 대변인이 된 이유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고 연구할 가치가 있다. 스탈린체제의 진상을 담은 자신의 저서 "모스크바 일기"를 사후 50년 후에 공개하라는 로맨 롤랑(Romain Rolland)의 유언이 폭로되면서, 나는 매우 가슴 아픈 사실 하나를 알게 됐다. 자유세계에서 오래 생활한 지식인은 자국의 민주정치하에서는 불공정한 현상에 대한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마치 로맹 롤랑이 "프랑스의 양심"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하지만 그들이 독재정권과 만나게 되면, 알았건 몰랐건 간에 독재정부에 아부하고 빌붙게 된다. "세계를 뒤흔든 열흘"을 쓴 존 리드(John Reed)나 "중국의 붉은 별"의 저자 에드가 스노우(Edgar Snow)처럼 이런 굴욕의 길을 걸은 사람이 적지 않았다. 독재정권을 지지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소련 공산당과 중국 공산당에게 엄청난 도움을 주었다. 혹자는 서양 사람들이 속은 건 공산독재 국가의 진상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독재정권에 아부하는 많은 화인 인재들의 사례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무협소설을 문학의 전당에 올려놓은 소설가 진융(金庸)은 중국 당국에 대한 아부로 인해 그의 명성에 도움은 커녕 스스로 오점을 남겼다. 일부에서는 그의 유약한 성격 탓이라고 옹호하지만, 타이완에서 부처와 선조를 욕하던 그 사나운 리아오(李敖)도 중국에서는 내성적으로 바뀌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독재정권이 어떻게 수많은 "인재"들을 굴복시킬 수 있을까? 이는 제도가 사악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인성이 사악하기 때문인가? 이 문제는 거대한 가시가 되어 수년 동안 내 마음을 찔렀다. 이것은 중요한 연구과제가 되어야 한다. "인재"가 비겁한 밀고자, 아첨꾼이 되는 촌극이 아직도 중국에서 상연 중이기 때문이다. 더욱 무서운 건 요즘의 밀고자에게는 펑이다이가 쓴 "회여일록"같은 참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타인, 그리고 자신에 대한 "영혼의 고문"이 필요하다.
    12년 전 허칭롄(何淸漣)
  • 중공은 어떻게 통계를 조작해 왔나
    중공은 어떻게 통계를 조작해 왔나
    최근 중국관영매체들이 로이터통신의 앨런 위틀리(Alan Wheatleyㆍ중국경제편집자)가 쓴 기사 "중국 데이터 또다시 정보 주기보다 논란만 일으켜(Chinese data generate more heat than light-again)"를 반박했다. 기사에서 위틀리는 "중국통계는 비밀의 보자기로 싼 수수께끼"라고 말했다. 특히 "2008년 4분기 성장률은 경제 분석가 대부분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며 "GDP 통계가 잠재된 미미한 성장 추세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 기사는 "중국통계를 크게는 아니더라도 약간은 에누리해서 들어야 한다"며 "정부가 통계를 조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충고했다. 지난 1월 22일 이 기사가 나간 후 2월 6일 중국정부는 반박을 시작했다. 먼저 국가통계국의 마젠탕(馬建堂) 국장은 "GDP를 수정하는 것은 국제관례다. 중국의 통계를 의심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중국의 공식 통계는 진실하며 신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월 18일 인민일보(중국공산당 기관지)는 베이징대 류웨이(劉偉) 교수와 카이즈저우(蔡志洲) 교수의 인터뷰 기사 "중국통계가 정말 비밀의 보자기로 싼 수수께끼인가?"를 게재했다. 이 학자들은 로이터 기사에 인용된 전문가들이 중국 통계는 "정부 조작"이라 언급한 부분에 대해 무책임하다며 비난했다. 인민일보 기사는 전문가들이 중국의 통계지표, 통계방법, 통계제도뿐만 아니라 실제 경제활동에 대한 이해가 결핍돼 있으며, 이들의 오판으로 중국경제를 걱정하는 이들을 오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마오쩌둥, 대약진 때 이중장부 명령 대외용ㆍ내부용 구분, 지위별로 달라" 사실상 국제 경제계는 중국 통계에 대해 의심을 멈춘 적이 없다. 2002년엔 수 개월간 많은 이들이 참여한 논란도 있었다. 중국정부가 아무리 해명을 해도 공식 통계를 둘러싼 의심은 가시지 않아, 중국정부에 대한 낮은 신인도를 보여줬다. 최근엔 두 가지 사례가 있었다. 2월 2일 중국정부는 실직하고 귀향한 농민공 수가 2,000만 명이라고 발표했다. 이 통계를 발표한 사람은 원자바오 총리와 말을 맞추는 것을 깜빡한 모양이다. 앞서 2월 1일 원 총리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실직하고 귀향한 농민공 수가 1,200만 명"이라고 밝혔다. 800만 명 차이가 났다. 또 중국정부는 지난 30년간 농촌 빈곤층 인구가 2억5000만 명에서 2,000만 명으로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2월 9일 열린 UN인권이사회의 한 회의에서 중국대표단의 리바오둥(李保東) 단장은 지난 30년 간 농촌 빈곤층 인구가 2억5000만 명에서 1,400만 명으로 감소했다고 말했다. 600만 명이 또 차이가 난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중국의 통계자료를 사용, 분석하려는 연구자에게 중국 통계는 도전과 같다. 이는 중국 정부 관료와 학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 29일 관영잡지 랴오왕(了望ㆍ신화통신 자매잡지)은 "위기를 맞아 진실한 통계가 필요하다"는 기사를 발표했다. 기사에서 "금년 통계자료는 충실해야 하며, 반복되는 검증에도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고 적고 있다. "통계학자의 지옥" 중국공산당은 태생적으로 통계 조작이란 병근을 가졌다. 통계 조작은 중공 정치문화의 일부가 되어, 중앙정부의 인심 무마용으로 때론 각급 관원들의 정치업적용으로 사용됐다. 이런 나쁜 선례를 처음 남긴 이는 바로 마오쩌둥(毛澤東)이다. 1958년 1월, 마오쩌둥의 지도로 발표된 대약진운동의 안내서 <공작방법 60조>의 제9조에는 생산계획 관련 장부를 세 종류로 만들라고 지시한다. "첫 번째 장부는 달성 가능한 목표량에 관한 것으로 대외 발표용으로 사용한다. 두 번째 장부는 예상량으로 이것은 공포하지 않는다. 지방 정부 또한 두 가지 장부를 운영한다. (지방정부의) 첫 번째 장부는 중앙정부의 두 번째 장부와 같은 것으로, 이것은 지방정부가 달성해야 하는 생산량이다. (지방정부의) 두 번째 장부는 지방 정부의 예상량이다. 우리는 중앙정부의 두 번째 장부를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이때부터 중국정부는 이중장부 체계(兩本帳)를 운영해 왔는데, 이 중 하나는 바로 외부인을 속이기 위한 것이었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바로 이 영광스런 전통을 계승, 이중 데이터 시스템을 사용한다. 내부용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부 내 공산당원을 위한 것이다. 이 내부용도 관원의 지위고하에 따라 버전이 달라진다. 따라서 통계와 관련해 중국정부는 여러 개의 입을 가지고 있고, 어느 입을 사용할 것인지는 정치적 필요에 따라 결정된다. 만약 중국이 "통계학자의 지옥"이란 악명을 떨치고자 한다면, "악의적 추측"이라며 다른 이들을 비난하지 말고 바람직하지 못한 정치문화를 없애야 할 것이다. 출처: 화샤(華夏)전자보(중국 인권전문 전자저널)
    12년 전 허칭롄(何淸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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