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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갑작스러운 비밀 방중으로 인해 향후 한반도 정세에 변수가 더해졌다. 해당 행보가 얼마 남지 않은 북미정상회담에 미칠 영향 또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과연 김정은 위원장은 핵 개발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인가? 오랫동안 핵실험을 포기하지 않은 북한과 김정은 정권은 그동안 유엔의 심각한 제재를 받아왔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왜 핵실험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제재 중단을 호소하지 않는가?’,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위기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왜 실천하지 않는가?’, ‘왜 꼭 정권의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하는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핵무기가 김정은 정권에게 도대체 얼마나 중요한가? 만약 김정은이 핵을 포기한다면 북한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되는가?’가 될 것이다.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이유와 배경을 되짚어 봐야한다. 통상적으로 핵보유국은 세계무대에서 자국의 군사적 지위와 발언권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배경에는 이러한 요인뿐만 아니라, 정권 위기를 자체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의도 또한 포함된다. 북한은 공산주의 진영의 일원으로서 줄곧 구소련과 중국 공산당의 후원을 받아왔다. 1990년대 초 소련이 해체된 이후 북한은 경제를 지원해주던 중요한 후원자를 잃고 말았다. 동시에 중국은 천안문사건 직후 심화된 국제적 고립과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북한과 수립한 약속을 깨고 1992년 한국과 국교를 수립했다. 그 결과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전례 없는 고립 상태에 빠지기 시작했고, 1994년 대규모 기근이 발생한 이후 1998년까지 300만에 달하는 사망자 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런 불리한 배경 하에 북한은 핵 개발을 가속화하기 시작했고, 이를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도구 및 협상카드로 사용했다. 북한은 이데올로기 선전과 민중 통제 면에서 중국에 비해 한층 더 극단적인 노선을 취해왔다. 특히 경제·무역 부문에서 북한은 이미 국제사회와 통합을 이루는데 완전히 실패했다. 따라서 북한은 전적으로 외부의 경제지원과 불법 무기 거래에 의존해 정권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핵 개발은 김정은이 권력을 유지하는 강력한 수단이며 외부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협상카드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북한을 지정학적 측면에서 자유세계와 대항하기 위한 완충지대로 여겨왔다. 동시에 북한을 자유세계에 대항하기 위한 도구로 삼았고, 북한의 핵 개발 또한 자연스럽게 중국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북한이라는 도구를 장악함으로써 중국은 미국과 거래할 수 있는 패를 더욱 많이 장악한 셈이다. 근본적으로 봤을 때 북한은 중국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이다. 따라서 북한에게 오랜 시간 핵 개발에 필요한 기술과 자원을 제공한 것은 당연한 현상으로,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김정은 정권은 미국의 군사공격 압박으로 인해 완전히 핵을 포기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역사상 존재한 공산주의 정권은 2가지 공통된 특징을 가진다. 하나는 폭력을 통해 정권을 쟁취했다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정권을 탈취한 이후 가능한 모든 사악한 수단을 동원해 권력을 유지했다는 사실이다. 역사와 현실은 모두 이 특징을 증명하고 있으며 김정은 정권과 중국 공산당 정권도 훗날 이 특징들을 보여줄 것이다. 현 시점에서 김정은 정권이 통치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유용한 도구로서 핵 개발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김정은은 설령 핵 개발이 헌법과 당헌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김정은이 속임수와 시간 끌기 수단을 이용하며 곧 다가올 북미정상회담을 대비할 가능성은 크지만 말이다.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고 정권을 잃는다면 중국의 입장에서는 유용한 도구를 잃게 되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분명히 김정은의 핵 개발을 암암리에 지지할 것이다. 대가를 아끼지 않고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김정은 정권과 중공의 유일한 존재 목적이다. 이 점을 이해한다면, 중국과 북한이 현재 어리석은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이유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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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중성(張中生·63) 전 산시(山西)성 뤼량(吕梁)시 부시장이 지난달 28일에 열린 1심 재판에서 10억 4000만 위안(약 1765억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 받았다. 법원은 재심에서 형이 유지될 경우 즉시 사형을 집행하게 했다. 이번 판결은 다소 예상치 못한 형량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18차 당대회 이후 1억 위안(약 168억 원) 이상 뇌물을 받은 공직자들이 모두 2년 집행유예부 사형선고를 받은 점을 고려하면 이번 판결은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례로, 우창순(武長順) 전 톈진(天津)시 공안국장 겸 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은 장중성 뇌물의 7배에 달하는 74억 위안(약 1조 2천억 원)을 받았지만 고작 2년 집행유예부 사형선고로 그쳤다. 관영언론은 부패 사건으로 부청장급 관원에게 사형이 선고된 것은 18차 당대회 이후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우리는 먼저 사형이 선고된 시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현 시점이 시진핑 당국이 19차 당대회 및 양회를 거쳐 정권 지도부를 개편한 이후라는 점이다. 이번 재판 결과야말로 중국 지도부의 정치적 입장과 반(反)부패에 대한 속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장중성에 대한 조사는 2014년부터 시작해 판결에 이르기까지 총 4년이 소요됐다. 날조를 자행해온 중국 당국이 내놓은 발표이지만 장중성의 뇌물 액수인 10억 위안은 실제와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보자. 부패가 일상화된 중국 공직사회에서 장중성보다 더욱 큰 권력과 국가 자원을 틀어쥔 고위층의 뇌물 액수는 얼마에 달하겠는가? 이전에 중국 당국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의 뇌물 액수는 얼마였을까? 보시라이는 2천만 위안(약 33억 원), 저우융캉은 1.29억 위안(약 217억 원)이었다. 이 수치를 신뢰할 수 있을까? 법원은 재심에서도 형이 유지될 경우 장중성에게 사형을 집행하라고 선고했다. 이는 표면적으로 시진핑 당국이 부패로 타락한 중국 공직사회에 내리는 ‘극형’ 같다. 즉 반부패 운동에 저항하는 공직자들에게 경고 및 위협을 가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다수 공직자들은 반부패의 한계를 안다. 반부패가 허울에 그치지 않고 실제적 성과를 내려면 대부분의 공직자를 퇴직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부패 행위를 멈추려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려 노력하므로 부패 문제는 여전히 뿌리 뽑을 수 없다. 부패 공직자들을 안심하게 하는 또 다른 원인은 바로 장쩌민이 여전히 무사하다는 데 있다. 장쩌민, 쩡칭훙 등 한때 최고의 실권자였던 이들은 가족 단위로 천문학적인 액수의 자산을 축적했는데도 현재까지 위기에서 빗겨나 있다. 장쩌민을 필두로 한 부패세력들이 이 같은 현실을 모를 리 없다. 두 번째 집권기를 맞은 시진핑의 반부패 운동은 그동안 일정 부분에서 성과를 거두었다. 시진핑은 반부패라는 명분으로 장쩌민 세력의 기득권을 일소하고 권력을 강화했다. 이 때문에 내부 기득권층과 상당수 권력층의 반발과 원성을 사게 된 것은 이제 더는 비밀이라 할 수조차 없다. 그러나 반부패 운동이 중국의 고질적인 부패 문제를 개선할 수 없다는 한계 역시 드러났다. 내부에서 벌어질 이익세력 간의 충돌과 모순이 정국을 거듭할수록 더욱 심화되고 첨예해지리라는 것만 자명하다. 따라서 시진핑 당국이 반부패 투쟁에서 승리하고자 한다면 전보다 더욱 앞서나가야만 한다. 먼저 중국의 부패 총사령관인 장쩌민의 부정부패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시작하고 그 다음 새 판을 만드는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중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공산당 해체가 필수다. 그렇게 된다면 원점에서부터 고질적 부패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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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했다. 미·북·중의 힘겨루기가 치열해지는 가운데 감행된 것이어서 더욱 국제사회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이번 방중은 김 위원장이 집권 후 처음 가진 해외 순방이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필연이라 봐야 한다. 언론에서는 중국과 북한 어느 쪽에 먼저 회담을 제시했는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고 입을 모았다. 북·중 모두 이번 만남을 시급하게 원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미국의 본격적인 대북 경제제재 때문에 고립된 상태에서 더는 퇴로를 찾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5월에 있을 북미 정상회담은 그에게 매우 중요하다. 혹시나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결렬된다면 김정은 정권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오바마 전 대통령과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이 확실한 행동을 취할 것을 김 위원장도 잘 알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 중공은 지금까지 김씨 정권을 유지하도록 도왔고 늘 최후 보루의 역할을 했다. 이 점은 중공 역시 마찬가지다. 중공은 최근 안으로는 치열한 권력 투쟁을, 밖으로는 미국과의 무역 마찰 때문에 말 그대로 내우외환에 처해 있다. 중공 손에는 북한 카드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공을 제치고 김 위원장과 직접 만나기로 했기에 중공은 대북문제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므로 북한이란 카드를 잃을 수 있는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김정은과 만나는 것이 선결과제였다. 김정은의 방중은 북·미 정상회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답은 이미 정해졌다. 방중이 미칠 영향은 극히 미미하다. 이번 만남은 오히려 다른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로 외부세계와 미국이 북중 관계의 본질을 꿰뚫어 볼 기회라는 것이다. 중공과 북한은 현재 세계에서 얼마 남지 않은 공산주의 정권이며 공통된 이데올로기와 혁명적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 김정은의 목표는 핵무기 개발을 통한 한반도 무력통일 및 공산화다. 이는 중공이 국제사회에 공산주의 이념과 혁명을 침투시키는 것과 똑같은 메커니즘이다. 북한의 한반도 무력·적화 통일은 중공의 자유세계 전복을 위한 인류 파멸 계획의 일환이기도 하다. 중공은 매번 자국 정치에서 수세에 몰렸을 때 정권의 책임을 전가하고 여론의 시선을 돌리는 수단으로 북한을 이용하면서 정권의 통치기반을 유지해왔다. 또 국제정치의 역학 구도에서 자유세계에 대항하는 마지막 방어선으로 북한을 활용해오기도 했다. 좀 더 큰 시각으로 현재의 판도를 보자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 위원장의 만남은 중공과 북한이 각자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손을 맞잡은 것이다. 공산주의 정권이 멸망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은 전 세계에서 나오는 평가다. 그 과정은 복잡하고 우여곡절도 많겠지만 결과는 뚜렷하다. 놀랄 수는 있겠지만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견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미래에 중공이 해체될 날이 오고 있다. 그들과 함께 김정은 정권도 멸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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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제3기 전국인민대표대회(이하 전인대) 제1차 회의가 20일에 막을 내렸다. 개최 기간이 이례적으로 길었던 이번 전인대에서는 국가주석, 부주석의 임기를 철폐하는 개헌안이 통과됐고, 국가 부주석과 최고 행정기관인 국무원 총리·부총리 등 주요 관직의 인사가 결정됐다. 전인대 결과를 놓고 보면, 작년 가을 19차 당대회 최고 지도부 인사를 놓고 시작된 시진핑(習近平) 진영과 장쩌민(江澤民)파 사이의 권력 투쟁이 더 치열해졌다고 판단된다. 두 세력의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시왕(習王) 체제 지속 올해 양회(전국인민대표회의와 전국정치협상회의)의 최대 초점은 왕치산 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의 거취였다. 17일, 왕치산이 국가 부주석에 선출됐다. 향후 5년간 중국 최고 지도부는 이전처럼 시진핑과 왕치산이 협력하는 ‘시왕체제(習王體制)’로서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해 19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은 장쩌민파의 반발을 막지 못해 ‘칠상팔하(七上八下, 67세는 유임하고 68세는 은퇴한다)’의 관례대로 왕치산을 최고 지도부에서 물러나게 했다. 왕치산의 이번 국가 부주석 취임은 당대회 이후 시진핑 진영이 준비한 대책이라 보인다. 표면에서는 시진핑이 장쩌민파의 요구를 받아들여 왕치산을 상무위원에서 물러나게 했지만, 그를 대가로 시진핑 진영은 장쩌민파로부터 ‘국가주석‧부주석의 임기 철폐’를 양보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직함 없이 일반 당원이던 왕치산은 정식으로 국가 부주석에 선출된 날 전인대 회의장 단상에서 시진핑과 힘차게 악수하며 짧은 대화를 나눴다. 중국 온라인에서는 일부 누리꾼이 두 사람의 입 모양으로 대화 내용을 분석해 “시진핑이 ‘이에 만족하나’라고 묻자 왕치산은 ‘말할 필요도 없다’고 답했다"는 추측이 나돌고 있다. ‘시왕체제’는 지속될 것이고 왕치산은 중국 최고 지도부에서 시진핑에 이어 ‘실질적인 2인자’로서 앞으로 5년간 정치·경제·외교 문제를 맡게 된다. 장쩌민파 장더장 퇴임 이번 전인대 회의에서 또 주목할 만한 것은 권력의 중심에 있던 장더장(張德江)과 장가오리(張高麗)의 완전 퇴임이다.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었던 장더장과 장가오리는 장쩌민파의 중심인물이다. 장더장은 지난해 당대회에서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물러났지만, 전인대 상무위원회 위원장직을 연임했다. 그러나 임기 만료에 따라 이번 전인대에서 퇴임했고 후임으로 시진핑의 측근인 리잔수(栗戰書)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서열 3위)이 임명됐다. 장가오리의 퇴임으로 공석이 된 국무원 부총리 자리는 한정(韓正)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이 앉는다. 한정 역시 장쩌민파 출신이지만, 장더장‧장가오리보다 장파의 색채는 옅다는 평을 받는다. 이로써 지난 2012년 18차 당대회에서 최고 지도부에 진입했던 장쩌민파(장더장, 장가오리, 류윈산) 전원이 권력의 중추에서 물러났다. 이는 장쩌민파가 최고 지도부에서 발언권을 잃었고 영향력이 약해진 것을 의미한다.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 권력 약화 행정부 인사에서 가장 뜻밖이었던 것은 신설된 반부패 기관 ‘국가감찰위원회’의 초대 주임에 양샤오두(楊曉渡) 중앙기율검사위원회(이하 중기위) 부서기가 선출된 것이다. 인사가 결정되기 이전에는 자오러지(趙楽際) 중기위 서기(서열 6위)가 국가감찰위원장을 겸임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시진핑이 인사를 결정한 배경에는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고 약화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본다. 중국 국가주석은 상징적인 원수이지만, 중국 헌법은 “국무원 총리를 포함한 최고 행정기관의 고위 관계자는 국가주석의 임명을 받아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은 국무원 총리 등 조직장을 겸임하는 경우가 많다. 국무원 총리 리커창(李克強, 서열 2위)과 부총리 왕양(汪洋, 서열 4위)은 당내의 후진타오(胡錦涛)를 비롯해 ‘공산주의 청년단 파(團派, 퇀파이)’의 일원이지만, 현재는 시진핑 진영에 협력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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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진행 중인 중국 공산당 ‘전국인민대표대회(이하 전인대)’에서 개헌이 통과되면서 국가 주석의 연임 제한이 철폐됐다. 이제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2023년 이후에도 연임이 가능하게 됐다. 이 소식은 국제 언론의 관심을 모았고 갖가지 평론이 쏟아졌다. 이 중 가장 중요한 화제는 시 주석의 연임 제한 철폐가 향후 중국의 집권 방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역술가들의 예측 흥미로운 점은 시진핑 주석의 미래 집권에 대해 역술가들도 예측을 내놓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 언론사는 홍콩의 역술가 츄즈웨이(丘智偉)의 예견을 보도했다. 그는 1953년 6월 15일에 태어나 현재 64세인 시 주석의 사주가 ‘화염토조(火炎土燥)’라, ‘금수(金水)’로 다스려야 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63세부터 73세까지 10년 동안 ‘금수(金水) 운’이 트기 때문에 운세가 정점에 이른다는 것이다. 츄즈웨이는 시 주석이 73세를 넘기면서 대운이 끝나고 몸이 점점 허약해질 것이며, 특히 심장, 혈관 및 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예견했다. 또한 “권력이 쇠하고 운세가 안 좋아질 것”이라고도 말했다. 츄즈웨이는 “시 주석이 눈썹이 옅고, 광대 부분에 파관문(破顴紋, 광대주름 또는 인디언주름)이 있어 모반을 꾀하는 수하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평했다. 또 다른 언론은 타이완의 역술가인 장보러(江柏樂)의 점술을 보도했는데, 시 주석은 관상이 좋아 61세에서 75세까지 운이 강하므로 10년 간 중국을 통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으며, 심지어 81세가 되는 2034년까지도 집권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역술가들이 예측한 시 주석의 집권 관련 내용에는 그가 어떠한 체제와 기반 하에서 정치를 이어나갈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만약 역술가들의 예측이 실현된다면, 아마도 두 가지 형태 중 하나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중국 공산당 체제 하에서의 집권, 혹은 비(非)공산당 체제 하에서의 집권이다. 전제로 전제를 끝낸다? 일각에서는 시 주석이 새로운 형태의 전제 수단을 통해 기존의 전제 제체를 종식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중국 내 경제전문 언론인 황진추(黃金秋)는 '희망지성(希望之聲)'과의 인터뷰에서 “시 주석의 개헌은 단순히 권력의 연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특수한 시기에 사용하는 특수한 수단을 구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시 주석이 국가주석의 연임 제한을 폐지한 데에는 국가 주석이라는 껍데기에 실권을 불어 넣으려는 목적도 있다”고 했다. 왕치산(王岐山)이 국가 부주석에 임명된다면 ‘시진핑-왕치산’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지도 체제가 수립되며, 그동안 당이 쥐고 있던 권력이 정부로 이동한다. 중앙기율위의 권력을 국가감찰위원회로 옮긴 것과 같이, 이번 개헌도 정치 지형의 변동을 예고한 하나의 복선이자 발전이라는 판단이다. 황진추는 “시 주석이 보여준 일련의 행보들은 전제적 수법으로 전제 정치를 종결시키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리톈샤오(李天笑) 미국 콜롬비아대학 정치학 박사도 유사한 관점을 내놓았다. 그는 시 주석이 장기 집권을 꾀하는 이유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손잡고 ‘큰일’을 도모하려는 의도라고 했다. 리톈샤오 박사는 국가 주석직의 연임이 2회로 제한된다면 시 주석은 2022년 지위를 내놓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시 주석은 국제 정치무대에서 큰일을 해내어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고자 하지만 공산당의 총서기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는 2020년에 종료된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하면 임기는 2025년까지 연장된다. 즉, 2022년에서 2025년 사이 시 주석이 국가주석의 자격을 상실할 경우,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과 협력할 기회가 사라진다는 의미이다. 스타오(石涛) 시사평론가는 “시 주석의 이번 개헌 조치는 국가주석의 권력을 공고히 해 국제무대에서 자신감을 갖기 위함”이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개인으로서 시 주석과 우호적인 관계이지만 공산당 정권은 단호하게 배척하는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스타오 평론가는 “현재 시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은 각각 착한 역과 악역을 맡았으며, 두 사람이 손발을 맞추어 함께 공산당 괴멸시키는 중”이라고 말했다. 홍콩과 타이완의 역술가들의 예언이 실현될 경우,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미래의 시진핑이 중국 공산당 체제 하에서 권력을 이어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유사 이래 중국의 역대 왕조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기본 조건이 필요했다. 바로 도통(道統)과 법통(法統)이다. 현재 중국 공산당 정권은 도통과 법통 모두 상실했다. 도통이란? 중국에는 ‘도통(道統)’이란 설이 있다. 일반적으로 한유(韓愈)의 ‘원도(原道)’가 도통의 내용, 기능 및 상전(相傳)의 체계를 가장 분명하게 설명했다고 본다. 한유는 “무릇 선왕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널리 사랑하는 것을 인(仁)이라 하고, 인(仁)을 실천하면서 도리에 맞게 하는 것을 의(義)라 하며, 이러한 인의(仁義)를 따라서 나아가는 것을 도(道)라 하고 자신에게 충족하게 하여 외부에 바라는 것이 없는 것을 덕(德)이라 한다”고 전한다. 한유가 말하는 도통이란 요(尧), 순(舜), 우(禹), 탕(汤), 문(文), 무(武), 주공(周公), 그리고 공자(孔子)와 맹자(孟子)로 이어지는 선왕의 가르침이며, 그 내용은 인의도덕과 예악제도와 같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들로 알기 쉽고, 또한 행하기도 쉽다. 이를 통해 작게는 스스로를 닦고, 크게는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평안하게 하는 것이다. 유가의 도는 도통이다. 공자가 성현들을 집대성하고 맹자가 이를 널리 알렸다. 이로 인해 유학의 기초가 다져지고, 중국 문화 내부에 도통의 개념이 형성됐다. 중화민족은 도통을 귀중히 여기며 대대로 계승했다. 중국 명청시대의 유학자 왕부지(王夫之)는 “정치는 끊어져도 도통은 끊을 수 없다”고 했다. 영국 학자 조지프 니덤(Joseph Needham)도 <중국의 과학과 문명>이라는 저서에서 위와 유사한 관점을 보였으니, 중국 도통의 힘이 증명된 것이라고 하겠다. 서한(西漢) 시대에서 청(清)나라 말까지 매번 나라가 혼란에 빠졌고, 난국을 수습하고 바로잡으며 새로운 질서를 세운 사람은 대부분 도통에 통달한 유학자였다. 다시 말해 도통은 중국의 역대 통치자들이 권력을 유지하며 삼가 받든 문화와 신앙이다. 중국 전통 문화는 포용의 문화이며, 유교·불교·도교가 병존하면서 중화 전통문화가 정권의 교체 속에서도 이어질 수 있었다. 중국 역사의 절반에 가까운 기간 동안 이민족이 집권했지만, 해당 정권은 모두 중화의 전통문화에 동화됐다. 즉, “정치는 끊어질 수 있어도 도통은 끊어질 수 없다.” 법통이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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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들어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나라 안팎으로 위기의 국면을 직면하고 있다. 결코 우연히 발생한 상황이 아니다. 2015년 시 주석이 ‘금적선금왕(擒賊先擒王, 도적을 잡으려면 우두머리부터 잡아야 한다는 두보의 시)’의 방식으로 장쩌민(江澤民)을 체포할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린 이후의 필연적인 결과다. 2013년 말, 시 주석의 영도 하에 있는 중국 공산당이 저우융캉(周永康)에 대한 조사를 마친 직후, 장쩌민 세력은 장소와 수단을 가리지 않고 시 주석에게 반격을 가하면서 쿠데타적 행위를 일삼았다. 2014년 상반기 중국 각지에서 일어난 테러 행위부터 2014년 9월 장쩌민 세력이 인민대표회의 백서를 이용해 조장한 홍콩 위기, 그리고 2015년 6월 중국의 주식시장을 덮친 대폭락, 8월 12일 톈진에서 일어난 폭발 사고 등 모든 사건들에 장쩌민 세력의 흔적이 묻어 있다. 장쩌민 세력은 자신들의 죄목을 들키지 않기 위해 중국 경제와 국민의 생명을 거리낌 없이 훼손시켰고, 이 때문에 중국 사회는 혼란에 빠지고 국민의 생활도 공포에 사로잡혔다. 시 주석은 당시 저우융캉을 사로잡은 기세를 몰아, 벼락같이 도적의 우두머리인 장쩌민을 체포하면서 정국을 안정시키고, 적절한 후속 조치를 통해 사회에 평온을 되찾아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시 주석은 벼룩을 잡다가 초가삼간을 태울 것을 염려하며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고, 결과적으로 장쩌민 세력이 계속해서 결집해 끊임없이 본인과 대립하도록 만들었다. 격렬한 다툼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고, 장쩌민은 19차 회의에서 시 주석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 잔여세력들을 고무시켰다. 중요한 시기에 시 주석이 우유부단하게도 호기를 놓쳐버린 원인은 아마도 일말의 우려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과격한 정치수단을 사용할 시 발생할 수 있는 저항을 예상하며, 권력을 잃게 될지도 모르는 극단적인 상황을 걱정했을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장쩌민 체포로 인해 중국 공산정권이 종말을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시 주석이 본 사안에 대해 이토록 크게 염려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장쩌민과 같은 부류는 간이 작고 무능하며, 겉으로는 담대해 보이나 실은 겁쟁이고,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하다. 그저 사악할 따름이다. 일단 체포되고 나면 어떤 파문을 일으킬만한 능력도 없다. 자오쯔양(趙紫陽) 집권 당시 장쩌민이 굽실거리지 않았던가? 지금 상황을 설명하자면, 이미 장쩌민의 마음은 공포로 가득해 스스로 용기를 북돋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소인배의 경우 떠받들어줄수록 더 패악을 부리게 된다. 독재 매국노를 사로잡는 데는 포졸 하나로도 족하다. 둘째, 장쩌민은 독재 매국노일 뿐 아니라 중국 부패의 정점에 서 있다. 장쩌민의 가족들은 부패로 인해 민심을 얻지 못했고, 장쩌민은 파룬궁을 박해하여 민심을 잃었다. 오늘날 수십만 인민이 장쩌민을 고소하고 있고, 백만이 넘는 인민이 장쩌민을 고발했다. 장쩌민을 체포하는 것은 민심을 얻는 행동인 동시에 폭넓은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이다. 셋째, 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하고, 그것도 모자라 수련자들의 장기를 산 채로 적출하고 있는 실태는 천리를 해치는 대죄다. 파룬궁 박해는 오늘날 세계 최대의 인권 탄압이다. 전 세계의 정의를 지키는 수많은 세력들은 박해를 중단하라고 규탄하는 중이며, 무고한 국민을 해치는 것은 하늘의 뜻을 어기는 것이다. 장쩌민을 체포해 세계 최대의 인권 탄압을 끝내는 것은 하늘의 뜻에 부합하는 행동이며, 민중과 국제 사회의 지지를 획득할 방법이다. 넷째, 장쩌민은 시 주석의 반부패 정책을 거스르는 가장 큰 배후세력이다. 장쩌민을 공개적으로 사로잡는다면 중국 공산당 내부에 잔존하는 부패세력들을 무너뜨릴 수 있다. 동시에 장쩌민은 시진핑 정권을 향한 쿠데타 세력의 배후이므로, 장쩌민을 체포하는 것은 꾸준히 진행되는 쿠데타 행동에 종지부를 찍는 일이다. 장쩌민의 잔여 세력은 결국 근거지를 잃고 흩어지고 말 것이다. 공산당 해체는 하늘의 뜻이고 머지않은 미래에 실현될 것이다. 따라서 시 주석은 오직 중국 공산당 체제의 바깥에서 출구를 찾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장쩌민을 구속하고 공산당을 포기하는 것은 시 주석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이며, 벼룩 잡다 초가삼간 태우고 말 것이라는 걱정은 마음속에 전혀 품고 있을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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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초청을 받아들여 5월 말 이전에 직접 만날 예정”이라고 밝혔다. 만약 이 계획이 실현된다면 사상 최초로 미국 대통령과 북한 최고 지도자가 직접 회담을 갖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그동안 지속되어 온 한반도 게임의 규칙을 바꾸게 될 것이다. 중국과 북한은 현재 세계에 존재하는 몇 안 되는 공산주의 국가로서 공동의 이념과 혁명 목표를 가지고 있다. 김정은은 핵무기 개발을 통해 무력으로 한반도를 통일하고 한반도를 공산주의로 물들이려 한다. 이는 공산주의의 이념과 혁명을 전 세계로 수출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의 방향과 일맥상통하며, 자유세계를 전복하고 인류를 괴멸하려는 중국 공산당의 계획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중국은 거액의 자금과 수십 만 중국 인민의 생명을 희생시키며 북한을 지원했고, 북한의 행패와 공갈협박을 용인했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중국 공산당이 현재의 통치체제를 유지하는 방안과 자유세계에 대항하기 위한 최후의 방어선이 바로 북한이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은 중국 공산당이 위기에 몰릴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는 데 필요한 도구이기도 하다. 북한의 배후에는 중국 공산당과 러시아가 있고, 북한의 ‘인질’로는 한국과 일본이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는 사실상 미국, 중국, 북한, 러시아, 한국, 일본 등 6개 나라 사이의 정치 게임과 같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게임의 규칙은 중국의 주도 하에 소위 ‘담판’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중국 공산당과 북한은 서로 입을 맞추거나, 고육책(苦肉策)을 반복하며 미국과 국제사회를 마음대로 좌우했다. 그 결과 김정일과 김정은 2대에 걸친 핵무기 협박이 이어졌고, 미국과 국제사회가 시도한 수많은 담판과 경제 제재 등의 정책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국제사회에서 합의된 경제적 제재 조치가 북한에 대한 중국의 비밀 원조를 차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공산주의에 대한 대항’과 ‘전통으로의 회귀’라는 분명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며 세계정세를 변화시키고 있다. 이로 인해 한반도의 과거 게임 규칙과 상황 또한 함께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회담이 성사될 것이라는 소식은 김정은을 우스운 ‘미치광이’라고 부른 사람들의 판단이 오산이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오랫동안 김정은은 이성을 잃은 미치광이의 가상(假象)을 외부에 보여줬다. 그러나 실상 김정은은 ‘미치광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고도의 정치적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사일 시험 발사 및 핵 실험을 통해 중국과 한국, 미국 사이에 긴장과 틈을 만드는 것은 김 씨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수단이다. 북한은 이와 같은 방법을 이용해 미국이 중국에 압력을 가하도록 유도했다. 김정은은 여러 정세가 얽힌 정치 게임에서 각 국가 간의 마지노선을 끊임없이 탐색하며 균형을 유지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만남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든, 김정은은 일단 국제적인 제재를 일시적으로 완화시키고자 한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한반도에 현재와 같은 상황이 도래한 가장 큰 원인은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개인의 정치적 이해득실을 가장 중요한 위치에 두고 정책을 추진해온 전임 대통령들과는 다르다. 그는 강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미국 대통령이라는 중임을 맡았고, 미국을 더 강대하게 만들고, 공산주의에 대항하며, 전통으로 회귀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반도 정세는 이제 실질적인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김정은 정권은 오랜 세월 국제 사회를 기만하고 농락해왔다. 이를 고려하면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에 어느 정도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미국이 김정은의 시간 끌기 전술에 또 다시 속는 것은 아닐지 우려되기도 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오바마 대통령과 다르다. 그는 과감히 발언하고, 발언한 대로 행동한다. 따라서 결과 또한 과거와는 다를 것이다. 짐 리쉬(Jim Risch) 미 상원의원은 얼마 전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지도자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영토를 수호하고 미국의 우방과 그 국민을 보호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린제이 그레험(Lindsey Graham) 미 상원의원은 얼마 전 트위터를 통해 성명을 발표하고, “김정은이 회담 도중 트럼프 대통령을 농락하려 한다면 결코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 것”이라고 직접적으로 경고했다. 그녀는 또한 “만약 김정은이 그러한 행동을 시도한다면, 그날은 그와 그의 정권의 종말이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트럼프가 김정은과 만나게 된다는 사실은 중요하고 실질적인 정보를 내포한다. ▲혼란스럽던 한반도 정세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던 가능성이 나타났다. ▲중국 공산당은 차츰, 그리고 결국 북한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할 것이고, 이는 중국 공산당이 미국 및 자유세계에 대항할 수 있는 도구를 잃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결과는 중국 공산당 정권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 좀 더 심층적으로 고려해볼 때, ‘천멸중공(天滅中共: 하늘이 중국공산당을 멸한다)’이라는 하늘의 뜻이 세계 정치판에서 나타나는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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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5일 중국 공산당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리커창(李克強) 총리가 정부업무보고를 마친 직후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됐다. 여러 위원들이 왕치산(王岐山) 전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와 악수를 나누기 위해 기다리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된 것이다. 특히 해임을 앞둔 판창룽(範長龍)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이 왕치산과 악수를 나눈 뒤 군대식 거수경례까지 하는 장면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중국 공산당 고위급 관료들, 특히 왕치산이나 판창룽 같은 국가 지도자급 인사들은 대중 앞에서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해야만 한다. 상급자와 하급자가 친밀한 관계더라도 공개석상에서 거수경례와 같은 인사를 주고받는 경우는 금기시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직위와 신분을 고려했을 때 판창룽은 왕치산과 업무상 교류가 잦은 편도 아니어서, 군대식 거수경례를 통해 존경을 표시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판창룽이 이날 보여준 모습이 상식를 벗어났을 뿐 아니라 이상해 보이기까지 한 이유다. 이러한 ‘유별난’ 행동은 판창룽이 조사 받고 있다는 소문을 입증하는 듯 비춰지기도 했다. 중국 공산당은 지난 1월 9일 팡펑후이(房峰輝) 전 연합참모부 참모장(상장)의 낙마를 발표한 데 이어 중앙군사위 부주석직에서 판창룽을 해임하고 조사 중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1월 25일 당국은 판창룽의 낙마를 다시 부인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판창룽은 2014년에 이미 쿠데타 혐의로 한차례 조사를 받은 바 있다. 쉬차이허우(徐才厚)의 측근인 판창룽은 쉬차이허우가 직접 발탁, 추천한 군사위 부주석 후임자였지만 시진핑의 신임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그는 재임 기간 5년 동안 줄곧 시진핑의 군개혁에 저항해 왔을 뿐 아니라, 인도와의 국경지대에서 군사위기를 일으켰다는 혐의까지 받고 있다. 이 때문에 팡펑후이(房峰輝) 전 중앙군사위 연합참모장과 장양(張陽) 전 정치공작부 주임과 더불어 군부 내 심복지환(心腹之患: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근심이나 병폐)으로 여겨져 왔다. 시진핑이 군부 내에서 장쩌민 세력을 완전히 축출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제거가 최우선 과제였다. 따라서 판창룽의 낙마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판창룽의 낙마가 외신에 의해 폭로되자 이를 반박했다. 이러한 과정으로 보아, 판창룽은 아직 쌍규(雙規:기율위가 비리 혐의 당원을 정식 형사 입건하기 전에 구금 상태로 조사하는 것) 처분까지 받은 것은 아니지만 중앙기율위원회의 정식 조사는 받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이 때문에 판창룽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과거 판창룽과 같은 사례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서 2016년 8월 홍콩 언론은 리지나이(李繼耐) 인민해방군 총정치부 주임과 랴오시룽(廖錫龍) 총후근부 부장이 군 기율위에 연행, 조사를 받게 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2017년 1월 26일, 이 두 사람은 베이징 신년단배회(團拜會)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연착륙’의 조짐을 보였다. 이전에 시진핑은 군 관료 중 최고위층인 군사위 부주석을 실각시키려 한 바 있었으나, 이들 모두 사전에 퇴직하고 이임했다. 따라서 현직 군사위 부주석인 판창룽의 낙마는 그 파급력과 영향력이 과거의 사례보다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과 장쩌민 세력이 판창룽에 대한 처리를 둘러싸고 치열한 싸움을 펼치는 가운데 판창룽이 대중 앞에서 왕치산에게 거수경례를 한 것이다. 따라서 이 장면에는 여러 의미가 내포돼 있다. 첫째, 판창룽의 행동은 ‘눈 가리고 아웅 하기’라는 의심을 받기 쉬우며, 이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오히려 외부에 자신이 현재 조사 받고 있다는 소문을 입증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둘째, 왕치산이 여전히 반부패 운동에 지대한 결정권을 행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판창룽의 거수경례는 공개적인 방식으로 왕치산에게 용서를 구하는 제스처로 풀이된다. 셋째, 판창룽이 외부에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한 행동으로, 본인 진영에 메시지를 전달하고 경고를 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시진핑과 장쩌민 세력 간의 투쟁 강도도 분명하게 가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판창룽의 운명은 낙마와 연착륙 사이를 오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최종 결과는 시진핑과 장쩌민 세력 간의 대결 양상에 따라 결정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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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5일 중국 관영 매체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국가주석과 부주석의 임기는 2회기를 초과할 수 없다’는 헌법 조항의 삭제를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공산당은 3중전회가 개최되기 하루 전날인 2월 25일에 갑자기 이 소식을 발표해 외부의 예상을 뒤엎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新華社)이 영문 기사를 먼저 공개하는 등 발표 방식도 심상치 않았다. 개헌 논의는 당 내부에서 저항에 부딪힌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해당 사안을 국제 언론에 노출한 행위는 개헌을 기정사실로 만들어 불만 세력을 잠재우기 위한 전략으로 여겨진다. 중국 공산당의 예상대로 ‘로이터’, ‘뉴욕 타임스’, ‘월 스트리트 저널’, ‘타임’, ‘아사히신문’ 등 중요 매체들은 즉시 관련 기사를 보도했다. 중국 네티즌들 또한 온라인상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냈고, 중국 당국은 곧바로 철저한 여론 통제를 개시했다. 중국 공산당의 ‘국가주석과 부주석 임기 제한 폐지’ 개헌 소식은 이전에도 이미 해외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하지만 중국의 개헌 소식은 여전히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적 헌정이 세계 정치와 국가제도의 주류를 이루는 현재, 지도자의 종신집권제도는 독재와 전제정치에 대한 국제사회와 중국 민중의 우려를 키우는 중이다. 하지만 이 논리에는 공산당 통치와 관련한 모순이 숨어있다. 즉, 중국 국가주석과 부주석의 임기 제한을 폐지하는 개헌이 공산당 독재와 전제를 초래하는 듯하다. 이는 공산당이 정권을 장악한 시기부터 지금까지 줄곧 독재와 폭정을 이어오고 있으며, 전제적인 통치는 헌법 개정과 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헌법의 내용이 어떻게 변하든지 공산당의 독재와 폭정의 본질은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통해 볼 때 현재 시진핑(習近平) 당국이 헌법을 개정하여 국가주석과 부주석의 임기 제한을 삭제하는 조치를 취한 것은, 결과적으로 중국 공산당 내부의 정치적 태세에 작용하고 영향을 미친다는데 의미가 있다. 중국 공산당 권력 구조에서 당정군(黨政軍) 대권은 최고 지도자에게 귀속되며, 주로 당권과 군권을 다룬다. 정부 체계는 당의 지도하에 있다. 당의 권력은 총서기의 직무와 대응하며 군권은 군사위원회 주석의 직무와 대응한다. 정부의 권력은 여전히 총서기의 지도하에 있다. 따라서 국가 주석은 사실상 상징성만 있고 실권은 없는 것이다. 당장(黨章)에는 총서기와 군사위 주석의 연임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다. 장쩌민(江澤民)이 1989년에서 2002년까지 13년간 총서기 직위를 유지한 것도 한 사례다. 이론적으로 최고 지도자의 권력만 공고하다면 임기의 제한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현재 시 주석이 헌법 개정을 추진하여, 실권이 없는 국가주석과 부주석의 임기 제한을 없애려는 목적은 무엇일까? 집권 5년 동안 시 주석이 유일하게 내놓을만한 치적은 반부패이다. 시 주석은 왕치산(王岐山)과 손잡고 5년간 반부패 캠페인을 벌여, 장쩌민 집단을 위시한 수백 명의 부급(部級·장관급) 이상의 관료들을 낙마시켜 단계적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부패와의 전쟁’의 형세는 낙관적이지 못하다. 장쩌민 집단을 필두로 하는 기득권 이익집단이 치열하게 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저항은 19차 당 대회 전후의 권력 투쟁에서 나타나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부패의 총지휘자 격인 장쩌민이 19차 당 대회에서 시 주석 옆에 자리한 것은 반부패 정책에 대항하는 부패관리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었다. 표면상으로는 시 주석이 당정군의 대권을 한 손에 쥔 것 같지만, 장쩌민이 묻어놓은 부패의 폭탄으로 인해 시 주석의 실제 권력은 보이는 것만큼 단단하지 않다. 반부패 정책은 여전히 진행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 주석의 개헌 조치는 헌법의 힘을 빌려 집권 임기를 연장하고, 반부패 정책을 계속 추진하여 장쩌민 집단의 대항과 정변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미를 품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진핑 당국은 중국 사회와 공산당 집권의 위기에 직면해야 한다. 공산당 정권이 60년 간 중국을 통치하며 조성해놓은 천인공노할 사회적 모순, 그리고 외교적, 경제적 위기는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임계점으로 치닫고 있다. 국가 주석과 부주석의 임기 제한 폐지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정보과 미래의 변수를 내비친다. 첫째, 국가 주석과 부주석을 함께 묶는 것은 향후의 정치 무대에서 시진핑과 왕치산이 계속해서 동맹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는 정보를 내보낸다. 둘째, 헌법 개정의 소식을 먼저 외신에 내보내는 것은, 미래의 국가주석과 부주석이 더 이상 실권이 없는 상징적인 위치가 아닐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준다. 왕치산을 중용하는 것은 그에게 실무를 맡기기 위함이지, 단지 국가 부주석의 허직(虚职)을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조치는 미래 공산당 고위층 권력 구조에 커다란 변수를 가져다준다. 하나의 가능성은 고위층의 권력이 점차 당내에서 국가 측면으로 전이된다는 것이다. 이 변수는 미래의 중국 사회와 정치 형세에 더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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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이 중국을 ‘천년 숙적(千年宿敵)’으로 선전하고 있는 가운데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를 놓고 전문가들은 핵개발이 UN안보리 대북제재에 부딪혀 난항을 겪으면서 제재에 일부 동참한 중국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고 풀이하고 있다. 북한의 한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이 일본을 '백년 숙적'이라 하고 중국을 '천년 숙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2017년 12월 북한사회주의여성동맹이 주재한 회의에서 송평구(청진시 행정 구역)의 고위층 인사가 처음 사용한 용어라고 한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의 이 같은 표현은 역사적 사실과 전혀 다르다. ‘천년’은 북한 정권이 수립된 1949년 이후 뿐 아니라 한반도 역사 전체를 일컫는 수사학적 표현이다. 중국과 한반도의 역사적 관계는 ‘조선’이라는 국호가 탄생된 배경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다. 이성계는 새 왕조를 세운 뒤 중국에 사신을 보내 ‘화령’과 ‘조선’ 중 하나를 국호로 택해달라고 청했고 명나라의 태조는 ‘조선’을 선택했다. 이와 함께 조선은 명나라와 같이 유교를 국가 통치이념으로 채택하고 많은 문물과 풍습을 전수받았다. 그렇다면 북한 정권은 어째서 중국이 북한의 천년 숙적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우선 자국민의 시선을 돌려 경제 제재로 인한 위기를 중국 책임으로 떠넘겨 통치 부담을 줄이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또 중국 공산당이 지하경로를 통해 북한에게 석유와 경제 원조를 이어가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김정일에서 김정은에 이르기까지 북한 정권은 여러 해 동안 핵 위협을 통해 정권을 유지해왔다. 이에 대해 미국과 국제사회는 수차례 회담과 경제 제재를 가해왔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는 북한의 배후에 중국이 있고, 북한을 내세워 미국과 서방 세계에 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는 북한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비밀 지원을 중단시키지 않는 한 성공할 수 없다. 김정은은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지속하면서 정권 유지뿐만 아니라 중국과 한국, 미국 간 긴장을 조성해왔다. 북한은 이 같은 방식으로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도록 만들고 다국간 정치 게임에서 각국의 한계선을 탐색해 그 안에서 균형점을 찾아왔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폼페이 국장은 김정은이 핵무기를 통해 협박하는 최종 목적은 통일된 한반도를 자신의 수중에 넣는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북한은 한국과 고위급 회담을 갖고, 대표단을 파견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하겠다는 뜻을 피력하고 이를 진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과 북한 사이의 긴장 관계가 얼핏 완화된 듯 보이지만 북한의 최종 목적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 언론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김정은이 여전히 군 전투태세를 강화하고 있으며 무력으로 한반도를 통일하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은 무력을 이용해 한반도를 통일하고 한반도를 공산주의 정권으로 장악하고자 하는데 이는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이 공산주의 이념을 전 세계에 퍼뜨리고자 하는 것과 유사한 행태이다. 이는 자유세계를 전복시키려는 중공 계획 중 일부이다. 김정은 정권이 존재하는 한 이 목표는 수정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마찬가지로 중공 정권이 존재하는 한 자유세계에 공산주의를 침투하려는 공작 역시 계속될 것이다. 중국과 북한은 표면적으로 서로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둘의 이념과 최종 목적은 앞에서 언급했듯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때문에 미국을 필두로 한 자유세계가 중공 정권과 관련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한반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바라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반도 상공을 둘러싸고 있는 전쟁의 암운은 1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북한은 극적인 퍼포먼스를 계속하며 단기간 내에 한반도와 관련된 여러 대립 국면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이들의 연극이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 간 도박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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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진핑 주석이 중앙기율위 전체회의에서 부패 척결과 함께 조직폭력배 소탕에 나설 것이라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이는 조폭을 소탕해 그 배후에 있는 ‘보호 우산’을 척결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중앙기율위 전체회의에서 불법조직 소탕과 부패 척결을 묶어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시 주석의 취임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자오러지(趙樂際) 중앙기율위 서기는 지난해 12월 21~23일 푸젠(福建)성 시찰 당시 ‘파리(苍蝇, 하위직 부패 관리)’ 처벌과 조폭 소탕을 함께 묶어 관련된 부패를 철저히 척결하고, 악독한 세력을 비호하고 그들의 ‘보호 우산’ 노릇을 했던 관리를 처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오러지 중기위 서기의 발언은 2018년 시진핑 당국의 반부패 주요 정치활동 중 하나가 조직폭력배 및 그 비호세력 소탕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뒤에는 중국 공산당 정법위 저우융캉(周永康)의 ‘잔당’을 제거하고자 하는 주목적이 숨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조폭 배후의 ‘보호우산’ 저우융캉 전(前) 정법위 서기는 중앙 사회치안종합치리위원회(社會治安綜合治理委員會) 주임으로 재직하던 당시 사형 당한 쓰촨(四川)성 조폭 두목, 류한(劉漢) 한룽(漢龍)그룹 회장의 보호우산 역할을 오랫동안 해왔다. 중국 언론은 과거 류한이 복잡한 일에 여러 번 연루됐지만, 어느 지도자에게 거액을 상납한 후 공안의 블랙리스트에서 삭제됐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저우융캉의 아들 저우빈(周滨)이 쓰촨에 투자하자 류한은 ‘관계 유지'를 위해 거액을 들여 해당 프로젝트에 협조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쓰촨 현지 언론은 앞서 언급한 지도자가 1999~2002년 쓰촨성 위원회 서기직에 있었던 저우융캉이라고 보도했다. 저우빈은 아버지의 권세와 영향력을 앞세워 관직매매, 감형, 사형수 바꿔치기 등을 일삼으며 거액을 축적한 바 있다. 특히 저우융캉 부자는 수감된 파룬궁(法輪功) 수련자를 사형수 대신 형장에 세우기도 했다. 파룬궁 수련자는 사형된 뒤 장기를 적출 당했고 해당 사형수는 사회로 복귀했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사법관에게 인민폐 수십만 위안을 뇌물로 주면 사형을 피할 수 있고 대신 파룬궁 수련자로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뇌물 액수는 사형수 1인당 약 300만 위안(약 5억원)으로 추정된다. 저우빈은 이를 통해 거액의 금전적 이익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낙마한 공안부 보좌관이자 경제범죄 감찰국 국장이었던 정샤오둥(鄭少東)은 저우빈이 간쑤(甘肅), 산시(山西), 랴오닝(遼寧) 등지에서 거액의 뇌물을 수수했다고 밝혔다. 저우빈은 한 사건에만 2억 위안(약 336억원)의 뇌물을 받았는데, 그 대가로 죄수들을 석방시켜 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아버지 저우융캉 또한 닝샤(寧夏) 2대 조직폭력배 두목의 도주를 도운 전력이 있다. 이 두목은 철거를 거부하던 40세 남자에게 뜨거운 기름을 부어 살인을 한 혐의로 수배 중에 있었다. 저우융캉을 적극적으로 도왔던 그는 낙마한 중국 허베이(河北)성 정법위 서기 장웨(張越)에게도 290만 위안(약 4억 8000만원) 상당의 옥을 뇌물로 받쳤다. 또 불법 조직을 이끌며 다수의 범죄를 저질렀던 왕(王) 모씨를 비호했으며 불법업자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합법적 재산을 갈취하기도 했다. 많은 공산당 관료가 조직폭력배의 일원이거나 그들의 ‘보호 우산’이다. 중국 언론의 2017년 11월 16일 보도에 따르면, 산시성 원시(聞熹)현 공안국 징이민(景益民) 부국장 등 공안 직원 13명은 폭력조직 일원들과 장기간 인터넷 도박 시장을 좌지우지했을 뿐만 아니라 마약 시장을 독점하고 고분 도굴에도 39차례나 참여했다. 중국 사회과학원의 한 조사에 따르면 현재 농촌 촌위원회 45% 이상이 불법 세력으로 조직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정법계열과 폭력조직은 상호 연계되어 이익을 취해왔다. 폭력조직은 일반 국민과 민간 기업에 보호 명목으로 금액을 갈취하고, 정법계열이 다시 이들에게서 같은 명목으로 금액을 갈취했다. 저우융캉이 통제했던 정법계열은 마치 독립된 왕국과 같아서 ‘제2권력 중앙’으로 외부에 알려져왔다. 막대한 자본으로 유지되고 있는 정법계열과 폭력조직은 공생관계이자 경제공동체이기도 하다. 이는 중국에서 폭력조직 사회가 형성되고 조직폭력배가 성행하게 된 주요 원인이다. 현재 저우융캉은 낙마했지만, 집권 시기에 조직했던 세력은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저우융캉 시기의 모델을 유지하며 조직의 안정을 꾀하는 한편 조직폭력배를 통해 중국 사회의 근간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해외 불법 폭력조직 미국의 경우를 보자. 2008년 5월 17일 뉴욕 플러싱(Flushing)에서 폭력 사건이 발생한 바 있었다. 이날 평화 집회를 열던 파룬궁 수련자 수백 명이 공격을 받았는데 폭력배들이 대거 밀집해 욕설과 포위 공격을 20여 일 간 계속했다. 현지 경찰은 파룬궁 수련자들을 보호하면서 총 16명을 체포했다. 국제 사회를 놀라게 한 이 사건은 뉴욕 주재 중국 총영사 펑커위(彭克玉)가 자신이 직접 파룬궁 폭력 사태를 지휘했다고 인정하면서 전모가 밝혀졌다. 중국 공산당 내부의 한 인사는 이 사건이 정법위 저우융캉이 선동한 일종의 테스트라고 밝혔다. 이를 성공할 경우 전 세계 중국인 밀집 지역에 동일한 수법을 적용할 속셈이었던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플러싱 사건에 연관된 중국 공산당 일원 중에는 중국 측이 직접 파견한 별동대(칭다오 공안 등)가 있었고, 일부는 장기간 미국에 잠복해 특수 임무를 펼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푸저우(福州) 동향회, 원저우(温州) 동향회, 상하이(上海) 동향회 등이 중국 공산당의 해외 특무 조직의 하나로 무직자, 밀입국자, 도박객 및 부랑자 등을 고용해 불법 폭력조직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호주에 거주하고 있는 천융린(陳用林) 전(前) 중국 외교관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공산당 자체가 조직폭력배와 깡패로 이뤄진 단체이며 정책 및 일련의 활동들에서 그 본성이 발현되고 있다. 중국 공산당과 해외 현지 중국인으로 이루어진 조폭은 상당히 밀접한 관계다”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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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후 1년이라는 시간동안 미국은 전통적인 순방향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오히려 이러한 행보를 전면적으로 역행하는 조치를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회는 2017년 브라운 주지사의 900개 법안들에 대한 서명 절차를 완료했는데 대부분이 2018년 1월 1일부터 발효되는 것들로 불법체류 이민자 보호, 마리화나 합법화, HIV(후천성 면역 결핍증) 감염자가 다른 사람에게 이를 전염시키는 행위를 중범죄에서 경범죄로 낮추는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법안들의 발효와 실행으로 인해 캘리포니아의 미래는 범죄인들에게 도피처를 제공하는 낙원이 되게 할 것이란 우려가 높다. 미국 항간에는 트럼프 이민 정책을 지지하는 일부 미국인들이 캘리포니아 도로에서 ‘캘리포니아는 당신을 환영합니다! 정부가 승인한 피난처! 강력범, 불법체류 이민자와 폭력배를 환영합니다! 민주당은 당신들의 투표가 필요합니다!’라고 비아냥거리는 문구를 들고 나서기도 했다. 우회를 가속화시키는 캘리포니아 법령 2018년 1월 1일부터 캘리포니아주는 합법적으로 범죄인을 우호하는 지역이 됐다. 각 지역의 경찰은 사람들의 이민 신분이나 연방이민국 법률집행에 가담했는지 여부를 물어볼 수 없다. 연방이민국 요원은 법정의 명령이 있어야지만 비로소 업무 현장에서 수색을 진행할 수 있으며, 집주인은 임대인의 이민 신분을 밝힐 수 없고 대학교와 연방이민국 요원의 협력 행위도 금지된다. 이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이민자와 불법체류 이민자들 중에 존재하는 테러리스트 혹은 범죄자들이 모두 법령의 보호를 받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범죄자들과 테러리스트는 이전보다 더욱 순조롭게 미국의 다른 주(州)에 진입할 수 있게됨과 동시에 캘리포니아는 범죄자들이 제지를 피할 수 있는 도피처의 낙원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있다. 이로 인해 미국 테러리즘에 대한 저항과 안전에는 잠재적인 위험을 극대화시킬 것이란 전망이 많다. 2018년 1월 1일부터 HIV 감염자가 다른 사람에게 이를 전염시키는 행위를 중범죄에서 경범죄로 낮춤에 따라 실형 기간이 6개월 이하로 줄어들었다. 원 법안 규정에 따르면 살인죄와 동급에 속하는 중범죄에 해당된다. 이전의 법률이 HIV 보균자에 대한 경시와 오명으로 여겨져 ‘인권 보장’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새로운 법령이 실행됐지만, 사실은 선악시비에 대한 기준이 아닌 오히려 악행과 범죄를 독려하는 꼴이 됐다. 2018년 1월 1일부터는 마리화나의 재배, 판매, 식용 등이 합법화됐다. 캘리포니아 (대마)재배자협회는 2015년 설립된 조직으로 명칭에는 ‘대마’라는 두 글자를 포함하고 있진 않지만 웹사이트에서 해당 조직은 ‘캘리포니아 대마 업계의 재배자와 독립 기업을 보호하고 촉진시킨다’라는 취지를 내비치고 있다. 2016년 11월 대선 당시 캘리포니아주는 ‘주민발의 64호 마리화나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켰고 2018년부터 실행을 결정지었다. 마리화나 재배 및 식용 합법화로 인해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마약을 재배하고 밀매하는 등 마약 중독자들의 낙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1월 1일 발효된 새 법안에는 고용주는 구직자가 이력서를 내기 전에 구직자에 대한 배경 심사를 금지시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또 구직자는 범죄기록 사실을 증명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고용주는 구직자의 과거에 대한 보수에 대해서도 질문할 수 없다. 매약상은 약값이 대폭 상승 하기 전에 필히 예고를 해야한다. 그 밖에도 텅스텐 전구가 아닌 LED와 같은 전기를 아낄 수 있는 전구의 판매만 허락된다. 주 학생들은 학교 입학 후 첫 해에 학비가 면제되고 고등학교 졸업 시험을 영원히 폐지한다. 학교는 학부모가 급식비를 지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생에게 급식 제공을 거절할 수 없다는 등의 내용도 포함돼 있다. 미국의 전통 회귀 주목 민주당이 정무를 주관하는 캘리포니아 정부의 정책 법령은 미국 건국 이래 전통을 견지하는 보수주의와 저촉돼 왔다. 보수주의를 지지하는 미국인들 입장에서 미국은 마땅히 경제자유, 자율, 자유시장 경제의 실행을 추진해야만 한다. 또 작은 정부는 국민의 개인 권리를 존중하고 헌법에 대해 충실한 이해를 강구해 하나의 강대한 국방 체계를 보유한다. 신앙, 가정과 종교에 대한 중시와 전통 혼인과 가정적 가치에 대한 신봉, 낙태 엄격 금지 등의 전통적 사회가치를 중시한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은 장구한 도덕 질서가 존재한다고 여긴다. 사람들은 하나의 사회속에서 영원한 도덕 질서를 신앙하고 강렬한 시비감을 품어 정의와 명예로운 개인 신념을 가지면 어떠한 정치적 제재의 채용이 있더라도 이는 선량한 사회라 믿는다. 반대로 사람들의 도덕적 정신이 해이해 규율에 어긋나고 만족에만 사로잡혀 있으면 어떠한 민주주의 사회와 공개적 체제의 자유도 형편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미국의 정치가이자 공화당 의원이었던 배리 골드워터(Barry Morris Goldwater)는 ‘한 정부가 진흥해 당신에게 모든 것을 누리게 해준다는 것은 결국 이 정부가 당신의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게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라’고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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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BBC는 중국 반부패 운동으로 낙마한 관료 95%가 한 명 이상의 정부(情婦)와 내연 관계를 맺고 있다고 폭로했다. 인민일보는 이미 2014년 관료들의 간통률이 심각한 성(省)을 지도에 표시한 ‘중국 관원 간통 지도(中國官員通奸地圖)’를 게재한 바 있다. 각 성과 시 가운데 후베이(湖北)성의 간통률이 가장 높았으며 그 다음으로는 산시(山西)성, 베이징(北京)시, 광둥(廣東)성이 뒤를 이었다. 미국 타임지 또한 공산당 관료들의 혼외정사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이 보도에 따르면 관료들의 혼외정사는 중국의 큰 골칫거리 중 하나로, 부정부패로 체포된 관료 95%가 혼외정사 사실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60%에 가까운 관료들의 낙마 이유는 모두 정부와 관련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현재 권력과 성(性)이 얽혀 있는 중국의 모습은 '처첩성군(妻妾成群)'의 중국 고대 풍속과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근대 사회 가치관의 와해를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 공산당 정치의 타락을 지적할 때 서양 매체는 본질을 지적하지 못한다. 공산당 관료들의 음란과 내연녀 문화의 주요 원인은 공산당이 ‘초심을 잃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에 대한 분석 이전에 먼저 고위 관료들의 음탕한 실태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관료들의 ‘정부’ 기록 류춘진(劉春錦) 전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연구실 부주임은 처분을 받은 청국급(廳局級·청장·국장급) 간부들 중 90%가 모두 정부를 거느렸고, 심지어 여러 탐관들이 한 명의 정부를 공유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2014년 3월 22일, 중국 주간지 남방주말(南方周末)은 2008년 발간됐던 <고위관리 ‘정부사건’ 보고>를 발췌해 관련 내용을 발표했다. 해당 내용은 2000년 이래로 재판을 받은 사건과 최근 발생한 41명의 성부급(省部級·장관급) 고위관리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41명 중 36명은 정부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중국 공산당 당 위원회, 정부, 인민대표대회, 정치협상회의, 사법, 군대 등 중앙과 지방의 인사들이 조사를 받았다. 또 여기에는 2008년 중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명 ‘공용정부(共用情婦)’라 불린 리웨이(李薇) 사건도 언급됐다. 2015년 11월 남방도시보(南方都市報)의 보도에 따르면 선전(深圳)시 핑산(坪山)구 컹쯔(坑梓) 계획생육판공실(計劃生育辦公室) 공무원 루모룽(盧某榮)은 정부(情婦)가 간통죄로 고발해, 일주일에 세 번의 잠자리를 갖기로 하는 내용의 각서를 썼다. 내연녀는 루씨의 ‘3가지 죄’를 고발했는데 유부녀와의 간통, 가짜 가족계획 증명서를 처리한 대가로 외지노동자로부터의 뇌물 수수, 고리대금 등이다. 이하는 최근 중국 인터넷에서 떠도는 공산당 관리들의 여자와 관련된 타락상이다. 1. ‘수량상(數量獎)’은 146명의 정부를 거느린 장쑤(江蘇)성 건설 청장 쉬치야오(徐其耀)에게 수여한다. 이 분은 바로 근무 기간 중에 탐오부패를 유일한 목적으로 한 사람이다. 2. ‘자질상’은 충칭시 선전부장 장중하이(張宗海)에게 수여한다. 그는 장기간 5성급 호텔에서 미혼 여대생 17명을 거느렸다. 3. ‘학술상’은 하이난성 방직국장 리칭산(李慶善)에게 수여한다. 그는 성생활 일기를 95권 기록하고 표본을 236부 제작했다. 4. ‘청춘상’은 쓰촨성 러산(樂山)시장 리위수(李玉書)에게 수여한다. 그는 16세에서 18세까지의 정부를 20명 두었다. 5. ‘관리상’은 안후이성 쉔청(宣城)시 부서기 양펑(楊楓)에게 수여한다. 그는 MBA 지식을 활용해 77명의 정부를 지능적이고 효과적으로 관리했다. 6. ‘휘금상(돈펑펑쓰기상, 揮金獎)’ 수상자는 선전시(深市) 사징(沙井)신용사(信用社, 소비자신용조합)의 덩바오쥐(鄧寶駒) 전 주임이다. 그는 '회춘'(五奶小靑)을 위해 800일 동안 1840만 위안, 매일 2만3천 위안(376만원)을 썼다. 7. ‘단결상(團結獎)’ 수상자는 푸젠성 저우닝현 서기 린룽페이(林龍飛)이다. 그는 ‘삼광서기(三光(쓰고 남은 것이 없음)書記)’라고도 불리는데 즉, 관직 매진, 재정 자금 탕진, 내연까지 모두 했다는 것이다. 그의 ‘단결’ 사적은 22명의 정부와 함께 파티를 열면서 30만 위안(4천 5백만 원)의 상금을 걸어 정부 중에서 ‘여왕'을 선발하기도 했다. 8. ‘화합상’ 수상자는 하이난성 린가오시 도시관리 대대장 덩산홍(鄧善紅)이다. 그는 6명의 정부와 6명의 아이가 있었으나 자신의 부인은 이 사실을 믿지 않는다. 9. ‘의욕상’ 수상자는 하이난성 통신국 국장 청궈화(曾國華)이다. 그는 5명의 정부들에게 60세가 될 때까지 한 사람과 매주 3번 이상의 성생활을 하겠다고 서약했다. 중국 공산당의 ‘초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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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차 당대회 이후 사회적, 정치적으로 직면한 중국의 위기는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혼란스러운 정국이 내부적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국제사회의 중국 정권에 대한 압박까지 강도 높게 진행되면서 대외적인 위기까지 맞게 됐다. 2018년 중국 정국의 향방을 좌우할 주요한 이슈들을 살펴본다. 첫째, 중국 공산당 고위층의 치열한 권력 투쟁 19차 당대회 이후 차이치(蔡奇) 베이징(北京)시 서기가 주도한 싼바훠(三把火, 새로운 관리가 부임하면 세 가지의 새로운 일을 벌인다는 뜻)가 사실상 실패했다. 디돤런커우(低端人口·지방 출신 저소득 하층민)의 강제 퇴거, 무차별적 간판 정비 사업, 난방시스템 교체 등은 모두 여론의 거센 반발을 일으켰다. 현재 온라인상에서는 차이치 베이징 서기의 사퇴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이 진행 중이다. 최근 홍콩 매체는 사설을 통해 여론의 비난이 차이치 베이징 서기를 겨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을 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해당 매체는 베이징 당국의 국정 실책은 비판받아 마땅하며, 특히 시위원회 서기로서 차이치의 책임도 분명히 있다고 지적했다. 차이치에 대한 비판은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차이치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과 회의적인 반응이 제기된 것이다. 특히 몇몇은 인사 실패라면서 그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차이치를 공격하던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다. 민생 문제가 인사 노선 투쟁으로 변질된 것이다. 평론 작가 리핑(李平)은 글을 통해 베이징의 3대 사건은 고위층 권력 싸움의 연장선이라고 밝혔다. 차이치 베이징시 서기 손에 들린 불덩어리가 그 자신뿐만 아니라 그 뒤에 있던 시 주석에게로 번져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리핑은 글을 통해 "심지어 <인민일보> <환구시보> <중국 청년보> 등 공산당 언론도 앞 다투어 평론을 통해 베이징의 조치가 비과학적이며 기초 작업이 단순 무식하다는 등 비판에 나섰다"고 말했다. 이들이 차이치 퇴진을 한 목소리로 주장하는 것은 공산당 언론이 애초 고위층 권력 싸움의 전달 매체이기 때문이다. 즉 여론의 압박에 못 이겨 이러한 주장을 한 것이 아니라 시진핑 정적들의 능력이 발휘된 대목인 것이다. 시진핑 집권 5년 동안 반부패 호랑이 사냥은 적극적으로 이루어졌고, 장쩌민(江澤民) 집단을 중심으로 한 공산당 고위층 부부급(副部級) 이상 관료 200여 명이 숙청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저우융캉(周永康), 쉬차이허우(徐才厚), 궈보슝(郭伯雄), 링지화(令計劃), 쑤룽(蘇榮) 등 정부국(正副國)급 고위 관료도 연이어 낙마하면서 시진핑은 군사 개혁에 박차를 가해 점진적으로 군권을 장악할 수 있게 됐다. 대규모 반부패 전쟁은 공산당 내부 이익 집단과 충돌했고 부패 관료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5년 동안 장쩌민 집단의 정권 전복 시도가 잇따랐고 극단적 방법까지 동원됐다. 암살, 테러 조장, 금융 정변, 해외 폭로 등이 줄곧 일어난 것이다. 19차 당대회는 격렬한 권력 다툼 속에서 막을 내렸지만 정치적 현실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공산당 고위층은 반목 속에 정치 도박을 다시금 벌이고 있다. 장쩌민과 쩡칭훙(曾慶紅)이 법망 바깥에 위치한 상황에서 이 도박판이 2018년 중국 정국에 영향을 미칠 주요한 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공산주의 이념과 국민의 대립 19차 당대회 이후 베이징에서는 국민을 분노케 한 ‘퇴거, 철거, 석탄 금지’ 등 3가지 정책이 중단됐다. 이는 공산주의 체제가 이미 체제 내 대다수 관료들의 정상적인 사고와 국민을 위한 봉사 능력을 상실하게 만들었음을 입증하고 사회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단절시켰음을 시사한다. ‘중국 공산당’이라는 거짓말과 폭력 위에 세워진 운영 체제는 새로운 위기와 재난을 끊임없이 탄생시킬 뿐이다. 공산 체제가 존재하는 한 반드시 폭력과 거짓으로 그 통치 권력을 유지하기 마련이다. 이는 중국 공산 정권의 본질적 특성이다. 공산 체제의 이익과 중화민족의 이익은 물과 불처럼 상충된다. 모든 행위가 정권 유지라는 목적에만 부합한다. 또 공산주의 이념은 국가와 민족의 이익을 대가로 한다. 중국 공산당의 본질과 국가 이익은 합치될 수 없으며, 태생적으로 대립되는 것이다. 공산당은 정권 유지를 위해서 언론과 국민들의 생각을 통제해야 하기에 미디어를 공산당의 혀로 사용한다. 중국 경제 발전에 필요한 자유로운 정보의 유통, 공평하고 정의로운 독립 사법 환경 등은 영원히 보장받지 못한다. 이에 따라 현 중국 경제는 국제사회와 그 궤를 함께 하지 못하고 막다른 길로 향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중국을 통치한 60여 년 세월은 중화민족에게 거대한 재난이자 악몽이었다. 60여 년 동안 약 1억 명에 달하는 중국인이 비정상적으로 사망했고, 중국 사회와 중화민족의 오천 년 문화유산은 강제로 파괴됐다. 중국의 환경은 심각하게 오염됐으며, 전통 질서와 윤리는 땅에 떨어져 사회는 혼탁해졌다. 공산주의 이념은 계속해서 중화 민족을 침략하며 앞으로도 중국 사회의 위기를 가중시킬 것이다. 중국 공산주의 이념과 중국 국민 간의 대립과 모순이 2018년 중국 정국의 또 다른 축이다. 셋째, 공산주의 이념과 국제 사회의 대립 최근 중국 공산당이 온갖 방법을 동원한 적색 침투가 서방 국가에서 드러나면서 해당 국가의 정부와 언론이 반격에 나섰다. 중국이 신봉하는 공산주의 이념과 국제사회의 대립 및 모순이 점차 가열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작년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공산주의 이념을 신봉하는 중국 정권은 점차 고립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과 캐나다에서 중국이 개설한 특무 기관인 공자 학원이 페쇄됐다. 또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발생한 중국 공산당 침투 통제 사건은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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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국민의 해외 인터넷 접속을 제한하기 위해 인터넷 통제망인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을 계속 강화해왔다. 그동안 중국 누리꾼들은 이를 피해 ‘가상사설망(VPN)’을 통해 ‘담을 넘어’ 해외 인터넷에 우회 접속했다. 이 가운데 2017년 중국이 인터넷에 대한 봉쇄와 통제를 잇달아 강화하기 시작했다. 올해 7월 차이나 모바일, 차이나 유니콤, 차이나 텔레콤 등 자국 3대 국영 통신회사에 대해 2018년 2월 1일부터 이용자의 VPN 사용을 금지하라고 요구했다. 중국 내 통신 기업은 전용선을 임대 사용해 국제 인터넷 연결이 가능하나, 반드시 관련 서비스를 당국에 등록하고 심사 받아야 한다. 7월 초 한 가상사설망 제공업체인 그린VPN(GreenVPN)이 서비스를 중단했다. 중국의 안드로이드 마켓과 애플 앱스토어에서도 VPN 앱에 대한 다운로드가 차단됐다. 9월에는 당국이 본격적인 VPN 접속 차단에 나서면서 중국 내 외국계 기업들까지 피해가 미쳤다. '니케이 아시아 평론(日經亚洲評論)'은 광둥(廣東)성에 위치한 일본 자동차 부품 제조공장 직원의 말을 인용해 관련 소식을 보도했다. 그는 “인터넷 검색을 전혀 할 수가 없어요. 일본 동료에게 전화를 해서 검색을 도와 달라고 부탁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쪽에서 이메일로 정보를 보내주는 식이예요”라고 밝혔다. 일본 3대 통신사 중 한 곳에 근무 중인 고위 임원은 일본을 비롯해 여러 나라의 통신사들이 어쩔 수 없이 전용선을 설치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용선에도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 당국이 통신을 차단하거나 전용선을 통해 데이터를 훔쳐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세계화 시대를 맞아 빠르게 발전하면서 라디오, TV, 신문 등 기존 언론을 넘어서 가장 파급력 있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정보의 공유가 원활하게 이뤄지면서 세계를 하나로 묶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지금 국제사회는 이러한 시대를 맞아 발 빠른 대처에 나선 반면 중국 정부는 거짓으로 자유를 침해하는 데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정보통신의 자유는 중국 공산당의 천적이자 통치를 위해 억압해야만 하는 수단이다. 중국이 거액을 투자해 만리 방화벽을 구축하고자 하는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인터넷의 발달과 세계의 글로벌화로 중국 경제는 세계와 긴밀한 연관을 가지게 되었다. 이 때문에 인터넷에 대한 통제가 점점 강화될수록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는 일이 벌어지게 됐다. 중국 경제가 다시 한 번 성장할 기회를 얻으려면 세계와 그 궤를 함께 하며 자유로운 정보 유통을 이뤄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뉴스 차단, 여론 통제, 조작 등이 중국 정부의 유지를 위한 중요한 조건이자 필수 수단이다 보니 언론의 자유는 중국에서 실현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중국이 어떠한 이유로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보 차단은 서방 세계와 중국에 투자하고 있는 세계 각국의 기업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됐다. 중국의 공개적인 인터넷 봉쇄 및 VPN 차단은 자유세계의 보편적 가치와 규칙에 대한 도전이며, 동시에 전 세계 회사들이 수용할 수 있는 마지노선을 테스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터넷 시대에 정보 차단 및 언론 봉쇄는 공산주의 정권의 만행이다. 중국은 서방 세계에 ‘중국에서 돈을 벌려면 중국에 굴복해야 하며 규칙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공산당 통치하에 있는 열악한 시장경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공산당이 세계의 많은 투자자들에게 파놓은 함정이기도 하다. 자유세계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도전 앞에서, 세계의 보편적 가치와 인류 존엄에 대한 도전 앞에서, 중국에 투자하는 세계 기업과 상업 윤리의 한계선에 대한 실험 앞에서, 국제 사회는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자유, 도의와 존엄성을 포기하고 중국 공산당에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이익의 유혹을 떨치고 정의의 원칙을 수호할 것인가? 국제사회가 중국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자유세계에 대한 압박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중국에 투자한 서방 기업들은 더 많은 굴욕을 감수해야 할 것이며, 백년 간 자유경제 세계에 형성된 우수한 상업 윤리와 질서가 파괴되고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상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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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북한 김정은이 백두산 정상에 올랐다. 김정은이 정권을 장악한 지난 5년 이래 처음으로 한겨울에 백두산을 방문한 것이다. 언론은 그가 중대한 결정을 앞뒀을 때 이곳을 찾았다며 앞으로 북한의 정책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한미 양국이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군 훈련을 마친 데 이어 한미일 3국이 이틀에 걸쳐 북한 탄도탄을 탐지 추적하는 미사일경보훈련에 돌입했다. 12월 10일 니키 헤일리 유엔 미국 대사는 폭스뉴스(Fox News)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우리도 현재 이 문제에 대해 그들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 중국이 지난 번 석유 공급을 완전히 중단했을 때, 북한은 협상 테이블로 돌아왔다. 중국이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우리의 주장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중국이 더 이상 행동할 수 없다면, 미국이 이 일을 넘겨받아 보다 강도 높은 제재를 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헤일리 대사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매우 좋은 관계’에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중국에) 제대로 압박을 가하고 있으며 중국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지금은 중국이 반응을 보일 때이다”라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차이나 텔레콤(China Telecom)이 누설한 내부 문서에 따르면 현재 베이징(北京)은 북한과의 접경지역에 난민촌을 구축하고, 한반도 유사시에 난민들에게 제공할 거처를 준비 중인 것으로 보인다. 중국 역시 북한의 변화에 대비해 준비에 나선 모양새다. 북한, 중국 공격 가능성도 있어 김정은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국가뿐 아니라 중국도 위협하고 있다. 중국도 북한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중미 학자 싱크탱크’의 국제관계 학자인 저우팡저우(周方舟)는 <북한이 공격할 시 중국의 전략 목표 및 대비>라는 글을 통해 중국에 대한 북한의 전략적 목표와 중국 공산당의 방위 능력을 분석했다. 이 글은 북한 김정은의 논리를 매우 분명하게 기술하고 있다. “북한 정권이 존재하지 않으면, 이 세계는 존재 의미가 없다”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중국과 북한 사이에 전쟁이 발발할 시 북한이 이성을 잃고 최후의 승부수로 핵미사일과 생화학 무기를 사용해 중국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그는 보았다. 현재 북한의 미사일 기술이 중국의 군사 전략 목표를 정확히 타격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방대한 비군사 전략 목표를 공격할 능력은 있다고 그는 글에서 지적했다. 1급 비군사 전략 목표에는 베이징, 상하이(上海) 및 산샤(三峡)댐 등이 포함되며 이들 지역은 3대 비군사 전략 목표 중 최우선 순위에 꼽힌다. 2급 비군사 전략 목표에는 핵발전소가 있으며 3급 비군사 전략 목표는 기타 지방 도시들이다. 한편, 북한은 대포, 로켓포 또는 미사일을 이용해 화학무기를 발사할 수 있으며, 특수 부대를 중국 도시로 침투시켜 산발적으로 생화학 무기를 사용, 대량 살상을 초래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또한 북한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더티밤(Dirty bomb, 폭탄에 방사능 물질을 채운 일종의 방사능 무기) 부대’를 보유하고 있다. 이 특수 부대는 민간인으로 위장해 배낭식 핵폐기물을 폭파시켜 대규모 핵 오염을 유발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중국과 북한, 선혈뿐 우정은 없다 한국전쟁으로 최소 수십 만 명의 중국인이 사망했다. 한국전쟁 연구학자인 중국 화둥(華東) 사범대 선즈화(沈志華) 교수는 한국전쟁에 대해 “모두가 한국전쟁을 선혈로 키운 중조 친선의 꽃이라고 말하는데, 우리는 선혈만 봤을 뿐 우정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1958년 김일성은 친중파 당원을 모조리 숙청하고 지원군을 중국으로 쫓아냈다. 1967년 김일성은 지원군 열사 묘역을 부수라고 명령하면서 마오안잉(毛岸英)의 묘비도 박살냈다. 1992년 중국과 한국이 수교를 맺자, 북한은 중국 접경 지역에 대규모 군사를 집결시키고 공격 태세를 갖추었다. 타이완과 수교를 맺을 것이라고 협박까지 일삼았다. 1993년 올림픽 개최지 선정 당시 북한은 시드니에 표를 던져 베이징이 1표 차이로 탈락했다. 또한 2008년에는 북한 <노동신문>이 중국을 제국주의 국가라고 크게 비난한 바 있었다. 북한은 매년 물자 부족의 절반 가량을 중국에서 해결했다. 1971~1976년에 석유 300만 톤, 1996~2009년에 양곡 345만 톤을 지원 받았다. 올해 2월에는 약 6억 위안에 해당하는 물자 지원을 받기도 했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통계에 따르면 1990~2005년까지 중국은 15억~37만 5천 달러를 북한에 지원했다. 중국 농민들이 힘들게 재배한 양곡을 정부에서 염가로 수매하여 우방에게 증여한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돌려받은 것은 고작 김정은의 배신이었다. 북한 군인들은 중국 국민을 수시로 쏘아 죽이고, 핵 실험으로 중국에서 오염 문제까지 일으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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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일정을 취재하던 수행기자단이 중국 측 경호원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피해 기자 중 한 명은 안면부 골절, 안구 출혈 등을 일으켜 대형 병원으로 후송됐다. 중국 경호원들의 폭행 영상이 인터넷에 확산되면서 한국을 포함한 해외 언론들이 집중 보도했다. 한국 외교부는 중국에 강력하게 항의하며 공식적인 사과와 해당 경호원들의 징계를 요구했다. 각 언론들은 ‘중국이 문재인 대통령을 홀대하고 해당 기자에게 개인적 형벌을 가했다’고 비판했다. 또 야당은 한국 기자에 대한 중국의 ‘테러 행위’와 관련해 방중 일정을 즉각 중단하고 귀국하라고 문 대통령에게 요구하기도 했다. 중국이 외국 기자단의 중국 지도자 취재를 방해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이달 초,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회담장인 베이징 ‘인민대회당’에 들어갈 때 한 중국 보안요원은 캐나다 언론의 카메라 촬영기자를 고의로 가로 막아 시야를 방해했다. 트뤼도 총리의 도착 장면을 촬영하지 못하게 하려 했던 것이다. 지난해 9월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G20회의 참석을 위해 항저우(杭州)에 도착한 당시에도 이 같은 일이 불거졌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전용기에서 나오는 장면을 촬영하려던 수행 기자단들은 중국 당국이 설치한 경계선으로 인해 보안요원과 마찰을 빚었다. 심지어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까지 경계선 밖으로 밀어내면서 사태는 격화됐다. 국제 외교에는 정해진 규칙과 예절이 있으며 평등과 상호존중은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다. 한국 기자단은 분명 중국의 초청으로 온 방문객인데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중국 경호원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한국 측의 분노와 엄중한 항의는 매우 정상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중국 외교부는 ‘작은 해프닝’이라고 밝히면서 '유감' 표명도 하지 않았다. 외교 사건으로 비화될 수 있는 문제이며 중국의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사건에 대해 왜 중국은 ‘작은 해프닝’으로 일축했을까? 어째서 대외적 이미지 관리에 신경쓰지 않은 채 이러한 기승을 부릴 수 있었을까? 우선, 이는 중국 공산당의 폭력적인 성향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들의 조상격인 ‘파리 코뮌(La Commune de Paris)’은 바로 폭력을 통해 생겨났다. 이러한 특성을 그대로 물려받은 중국 공산당은 자국 전통 문화를 말살시키고 특유의 당문화까지 조성했다. 국제사회 및 외교 장소에서 중국 관료들이 보이는 온갖 추태 역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중국 공산당은 외교에 있어서의 예의와 일반적인 규범을 지키지 않을 뿐 아니라 거리낌 없이 횡포를 일삼아 중국의 이미지를 훼손시켜왔다. 두 번째 이유는 공산당의 폭력적인 통치방식이 수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공산당은 폭력 위에 세워졌고, 폭력을 전 세계로 수출하는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여겨왔으며, 줄곧 이를 해외로 수출했다. 미국, 유럽, 타이완 등에서는 공산당이 다년간 통제해온 유학생, 특무, 화교들이 공공연하게 파룬궁(法輪功) 수련자들과 현지 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공산당의 폭력 수출 시스템에 비춰보자면 한국 기자단 폭행 사건은 일상적인 일에 불과하다. 중국은 국제 사회의 눈이라고 볼 수 있는 외국 기자들에게까지 거리낌 없이 야만적인 행위를 자행하는데 하물며 중국 국내 기자들에 대한 처지는 어떠하겠는가? 더 나아가 수많은 중국 국민들은 또 어떠한 폭력적 대우를 받았겠는가? 체포, 구타, 실종, 학대, 살해, 장기 적출 등은 중국 국민들에게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중국 공산당에게는 물론 이러한 일들이 ‘작은 해프닝’에 불과할 것이다. 한국 기자단 폭행 사건과 이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응은 중국 공산당 정권의 야만성, 폭력적인 본성, 뻔뻔함, 사악함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이번에 한국의 많은 언론들이 밝혔다시피 중국이 문 대통령의 수행 기자단에게 휘두른 폭력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중국 공산당의 오만과 폭력’ ‘한국의 굴복적 태도’가 빗어낸 것이다. 조선일보는 “국빈에 대한 이 같은 폭력 행위에 우리는 수치심과 분노를 느낀다”라고도 표현했다. 중국 공산당의 야만적인 행위는 ‘항의’와 ‘수치심과 분노’만으로 근절시킬 수 없다. 최근 30년 동안 중국 경제의 고속 성장과 발전으로 중국은 국민이 창출한 부를 움켜쥐고 이 재력을 바탕으로 허세를 부리고 있다. 경제력을 도구삼아 서방 세계를 상대하는 것이다. 서방 사회 대부분은 중국에 대해 장기간 무기력하고 ‘굴복적 태도’를 취해왔다. 경제를 무기 삼은 중국의 유혹과 협박 앞에서 인권과 같은 보편적 가치를 포기했고, 중국의 사악을 방임했다. 따라서 공산당은 전세계에 공산주의 이념과 폭력 혁명을 수출할 수 있었고, 인류 말살 계획을 순조롭게 진행시킬 수 있었다. 한국 기자단 폭행 사건은 전세계에 경종을 울렸다. 이제 국제 사회는 중국 공산당에게 큰 소리로 ‘No’라고 말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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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 19차 당대회가 끝나면서 사회에 만연하던 악정(惡政)이 사라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여기서 악정은 베이징 당국이 민중을 분노하게 만든 ‘하층민을 내쫒고, 팻말을 떼고, 석탄 사용을 금지한’ 조치를 가리킨다. 이러한 가운데 12월 13일 여론의 눈길을 끈 사건이 벌어졌다. 슝안신구(雄安新區) 관영매체에 따르면 12월 11일 '9∙06’ 특별 수사대 간담회 자리에서 슝안신구 당국은 관할지역 3개 현(縣)의 공안에게 ‘임무, 책임, 시한을 명확히 할 것’ ‘모든 현은 한 달에 최소 한 건의 범죄조직 사건을 조사 처리할 것’을 요구했다. 이날 논란을 키운 것은 범죄조직 사건을 한 달에 한 건 이상 처리하라는 당국의 요구였다. 이는 슝안신구의 범죄조직 단속을 법률 집행이 아닌 상급기관의 행정명령으로 대체하는 조치로, 지표를 할당해 의무화시킨 것이다. 따라서 범죄조직 사건이 없다면 공안은 사건을 조작해 일명 ‘암흑사회’를 만들어야 되는 것이다. 정부의 존재 이유는 민중을 위한 봉사, 사회 시스템의 정상적 운영을 기반으로, 대외적으로는 주권을 보호하고 정부통치 유지, 범죄단속 등 대내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있다. 한 시사 평론가는 이 같은 원칙은 존중하나 “슝안신구 정부의 이번 행정조치는 법제 관념이 부족하며 부당해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것이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이번 조치는 중국 공산당이 역사적으로 자주 활용했던 정책을 이어받은 것이다. 즉 '적을 만들어내고' '필요에 따라 살인'을 저지르게 하는 통치방식과 일맥상통한다. 공산당은 1950년대 반혁명 진압 및 반우파 운동을 일으켰고 80년대까지 엄격한 단속을 실시했다. 또 최근 충칭에서는 보시라이(薄熙來)가 ‘범죄조직 단속(打黑)’이라는 명목으로 반대 세력을 탄압했다. 공산당은 하룻밤 사이에도 수백만에 이르는 반혁명, 우파, 범죄분자를 조작해 수백 만 명을 희생시켜왔다. 구즈팡(賈植芳) 작가는 <나의 인생기록>에서 “한 문화선전공작단(文工團) 단원이 반우파 운동 시기에 우파 두 명을 할당 받았다. 그들은 밤늦게까지 이에 대해 토론을 했으나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한 소녀가 화장실을 갔다가 돌아왔을 때 자신이 이미 우파가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어느 노교수는 당 조직으로부터 "당의 어려움이 바로 당신의 어려움입니다. 현재 우파가 한 명 부족합니다. 당신이 해결해 주시죠?"라는 말을 들었다. 교수는 결국 우파로 규정됐고, 노동교양 징역 20년을 살아야 했다”고 썼다. 공산당이 신봉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투쟁 철학은 당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투쟁의 대상을 찾도록 만들었다. 정권찬탈과 유지 및 당내 투쟁을 위해 그들은 끊임없이 적을 만들었다. 정세가 바뀌면 공산당의 적도 계속 바뀌었다. 중국 공산당의 역사는 그야말로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가는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1999년 7월 장쩌민은 단 하루 만에 수천 만 명의 파룬궁 수련자들을 적으로 둔갑시켰다. 이로 인해 18년 동안 파룬궁 수련자들은 학살 또는 강제 장기적출을 당했다. “중국 공산당은 반혁명분자 숙청으로 홍군 10만 명을 살해했고 그 후엔 옌안정풍과 토지개혁으로 지주를 탄압했다. 1949년 이후까지 잇따른 정치 숙청 운동은 무수히 많은 사람을 살해했다. 전쟁이든 역사 속의 폭군이든 적이 먼저 있어야 살인을 감행했다. 하지만 공산당은 반대로 사람을 죽이기 위해 적을 만들고 적이 없으면 만들어냈다.”('9평 편집부', 공산주의의 최종목적) 공산당 체제하에서 모든 중국 국민은 언제든지 당의 '적'이 될 수 있으며 신변과 생명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지표를 할당해 암흑사회를 조성하는 슝안신구의 이번 조치를 국민들이 눈여겨봐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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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차 당대회 이후 시진핑(習近平)과 장쩌민(江澤民) 집단 간의 치열한 정치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사건이 바로 장양(張陽·66·사진) 전 정치공작부 주임(상장·대장급)의 자살이었다. 왕치산(王岐山)이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으며 국가부주석을 맡을 것이라는 추측까지 나오면서 상황은 한층 악화되는 조짐이다. 자살한 장양이 정변에 참여했다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한 소식통은 그가 팡펑후이(房峰輝) 전 중앙군사위 정치공작부 주임과 함께 1976년 ‘사인방(四人幫)’을 체포하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시진핑 정권을 통제하려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결국 이들의 계획은 폭로됐고 시진핑은 단호하게 둘을 체포해 정변을 저지했다. 그러나 팡펑후이와 장양 등 여러 인물은 구체적인 계획을 실천으로 옮긴 사람일 뿐 막후에는 계획을 세운 또 다른 인물이 존재한다. 장양은 쉬차이허우(徐才厚)의 직계였고 팡펑후이은 궈보슝(郭伯雄)의 심복이었다. 쉬차이허우는 죽었고 궈보슝은 낙마했다. 따라서 장양을 배후에서 조종할만한 인물로는 장쩌민파의 2인자 쩡칭훙(曾慶紅)이 유력하다는 관측이다. 왕치산과 쩡칭훙은 각각 시진핑과 장쩌민의 집권기에 2인자를 지냈다. 고위층의 정치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친족 세력과 인맥임을 고려한다면 이 둘의 중요성은 상당하다. 특히 시진핑 집권 5년 동안 장쩌민 세력과의 치열한 정치투쟁은 왕치산과 쩡칭훙 간의 대결 양상으로 직접 나타나기도 했다. 19차 당대회 전까지 쩡칭훙은 장쩌민 세력의 필사적인 반격을 주도해왔다. 그리고 왕치산은 시진핑이 실시한 반부패 호랑이 사냥을 이끈 주요 인물이었다. 반부패 운동은 공산당 내부, 특히 장쩌민 집단의 여러 가족을 포함한 세력을 겨냥하고 있었다. 쩡칭홍은 왕치산을 공격해야만 자신의 청산을 피할 수 있는 처지가 됐다. 장쩌민 세력은 왕치산에 대해 끊임없는 여론 조작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심지어 암살도 여러 차례 시도했다. 이를 위해서 쩡칭훙은 해외 특수요원과 자신의 통제하에 있는 언론을 적극 이용했다. 언론은 연일 왕치산에 대한 부정적인 소식을 보도하고 시진핑과의 불화 소식을 퍼뜨렸다. 이간질의 목적은 둘의 정치적 동맹관계를 단절시키는 데 있었다. 만약 왕치산이 핵심 권력을 장악했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쩡칭훙의 공격이 대부분 실패했음을 입증한다. 왕치산은 어떤 인물인가 왕치산의 장인 야오이린(姚依林)은 중국 공산당의 제1대 지도자이자 공산당 설립 이후 경제를 책임진 고위 간부이다. 또한 정치국 상무위원과 국무원 부총리를 역임했다. 정치계에 뛰어든 왕치산은 야오이린에게 정치적 능력을 전수받았다. 왕치산은 금융업, 지방 고위관직, 중앙부위(部委, 국무원 산하의 부와 위원회) 및 국무원의 부총리를 역임했다. 외부에서는 그를 ‘소방대장’, ‘해결사(清道夫)’ 라고 불렀으며 주로 경제를 담당해왔다. 하지만 시진핑이 2012년 중국 공산당 18차 당대회에서 집권하면서 왕치산은 중앙기율위원회에 배치됐다. 그는 반부패 호랑이 사냥을 이끌면서 시진핑의 조력자로 거듭났다. 고강도로 진행된 반부패 운동은 중국 공산당, 군대 및 지방 정부 등에 암약한 장쩌민 세력을 와해시키고 새로운 인사체제를 만들어냈다. 5년이 넘는 기간 그는 시진핑을 도와 당·정·군(黨政軍) 고위 관료 수백 명을 실각시켰다. 그중 대부분은 장쩌민 세력이다. 여기에는 정국급(正國級·국가지도자급) 저우융캉(周永康)과 '부국급'(副國級·부총리 등과 동급) 관료인 쑤롱(蘇榮), 쉬차이허우, 궈보슝, 쑨정차이(孫政才) 등이 포함돼 있다. 쩡칭훙은 어떤 인물인가 1989년 6∙4사건(천안문 사태)을 통해 베이징에 진출한 장쩌민은 중앙 총서기를 맡고 있었다. 당시 그는 양상쿤(楊尚昆)과 리펑(李鵬)에게 쩡칭훙을 중앙 판공청 부주임으로 임명할 것을 요구했다. 장쩌민이 그들에게 제시한 유일한 요구였다. 그 이유는 쩡칭훙 집안의 정치적 자산과 베이징 지역의 광범위한 인맥 때문인 것으로 알려진다. 즉 장쩌민 집권 이후 벌어진 권력 남용과 재난은 대부분 쩡칭훙으로부터 초래된 것이다. 쩡칭훙의 아버지인 쩡산(曾山)은 당의 원로간부이자 특무 기관의 수장을 지냈다. 또한 그는 내무부 부장(장관)을 역임했다. 쩡칭훙은 아버지 세력을 이용해 정계에 진출했다. 그의 가족들 역시 고위관료로, 둘째 동생 쩡칭화이(曾慶淮)는 문화부 관리였다. 그는 문화 관련 사업을 이끌면서 형인 쩡칭훙을 위해 홍콩 특무와 중국 전역의 예술계를 장악했다. 셋째 동생 쩡칭양(曾慶洋)은 군사과학원 군제연구부(軍制研究部) 부장이자 소장(少將)이며, 넷째 동생 쩡칭위안(曾慶源)은 공군 후근부(後勤部) 부장이자 소장이다. 여동생 쩡하이성(曾海生)은 중국인민해방군총참모부(中國人民解放軍總參謀部) 관리보장부(管理保障部) 정치위원이자 소장이다. 조카딸 왕샤오링(王曉玲)은 광저우(廣州)시 부시장 겸 기율위 서기를 지냈는데 각종 범죄사건에 연루돼 여러 차례 실명 신고를 당한 바 있다. 쩡칭훙의 부친 쩡산은 중국 공산당 동남국(東南局), 화중국(華中局) 조직부장을 지낸 뒤 방직부 부장, 상업부 부장, 교통부 부장, 내무부 부장을 역임했다. 이는 시간이 지나 쩡칭훙의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 됐다. 쩡칭홍의 어머니 덩류진(鄧六金)은 장정(長征)에 참여한 27명의 여성 중 한 명으로 기관보육원의 설립자이자 원장이었다. 이 보육원은 ‘태자당의 요람’으로 불린다. 쩡칭훙은 군대와 석유사업 부문에서 근무한 바 있으며 후기에는 중앙조직부와 국가안보시스템, 중앙판공청, 공산당 간부학교, 통일전선부 등 핵심부처를 장악했다. 당시 그가 심어놓은 간첩들은 당 내부와 각 지방 및 해외에까지 포진돼 있다. 쩡칭훙은 장쩌민 세력의 파룬궁 박해를 주도했으며 시진핑을 겨냥한 정변과 정권찬탈을 배후에서 조종해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는 자신의 정치적 자원을 총동원해 시진핑에 대항하고 있다. 쩡칭훙이 왕치산을 공격하는 숨겨진 이유 쩡칭훙이 왕치산을 공격한 주된 이유는 바로 쩡칭훙 집안의 재산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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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회의(19차 당대회) 이후 당 고위층을 대상으로 반부패 호랑이 사냥(打虎)이 계속되는 가운데 사회적, 정치적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관영매체는 루웨이(魯煒) 전 중앙선전부 부부장의 낙마, 장양(張陽) 중앙군사위 주임의 자살 등을 두고 적폐 세력의 청산이라며 ‘매우 좋은 정세’라고 평가했다. 한편 상하이 씨트립(攜程), 베이징 홍황란(紅黃藍) 유치원에서 아동학대 사실이 밝혀지며 사회적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또 공원 실명제 추문, 베이징 화재 대참사 이후 당국의 대처 등 사회적 이슈가 계속 터지면서 여론은 급속히 악화되는 추세이다. 19차 당대회 이후 중난하이(中南海)가 이른바 ‘타키투스 함정(Tacitus Trap)’에 빠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타키투스 함정’ ‘타키투스 함정’은 고대 로마의 역사학자인 타키투스가 저술한 <타키투스의 역사>에서 비롯됐다. 타키투스는 이 책에서 ‘황제가 한번 사람들의 원한의 대상이 되면 그가 하는 좋은 일과 나쁜 일 모두 시민들의 증오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는 훗날 학자들에 의해 하나의 사회 현상을 가리키는 뜻으로 파생됐다. 정부 혹은 한 조직이 공신력을 잃으면 진실을 말하든 거짓을 말하든, 또는 선정을 하든 폭정을 하든 시민들은 모두 거짓과 폭정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2014년 시진핑은 허난성 시찰 당시 타키투스 함정을 거론한 바 있다. “공권력이 공신력을 잃으면 어떠한 말이나 행동도 부정적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물론 우리는 아직 거기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심각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만약 그런 날이 오게 된다면 당의 집권 기반과 지위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4년도 지나지 않아 중국은 각종 사회 현상으로 몸살을 앓게 됐다. ‘공신력을 잃은 공권력’, 즉 타키투스 함정에 빠지고 만 것이다. 어째서 이 지경에 이른 것일까? 두 가지 실례 민중의 분노를 산 베이징시 ‘디돤런커우’(低端人口·하층민) 강제퇴거 명령을 예로 들어보자. 근래 차이치(蔡奇) 베이징시 당서기는 안전과 관련된 회의에서 “기층 국민을 대할 때에는 진짜 총과 칼(真刀真槍)에 피를 묻히듯(刺刀見紅) 강경한 태도(硬碰硬)로 대응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내부 발언을 한 바 있다. 도시 및 유동 인구 관리는 서방 국가의 대도시의 경우에서 보듯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이다. 하지만 이러한 국가의 도시들은 도시 계획, 재정 문제 등 국가와 국민 모두에게 이롭고 인간적인 조치를 취하며 엄격한 법률 제도와 언론매체의 관리 감독 아래 이를 실행한다. 이들에게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국민의 고난과 문제를 해결한다는 의미이다. 이와 반대로 베이징시 당서기가 말하는 ‘문제 해결’은 ‘총과 칼에 피를 묻힌다는 것’이다. 국민을 위한 문제 해결이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회적 사건의 원인을 근절시키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공무원들 역시 책임 소재를 축소하기에 바빴다. 따라서 수많은 ‘디돤런커우’ 국민들은 하룻밤 사이에 몸 둘 곳 없이 유랑하는 신세가 됐다. 시진핑이 신뢰하는 측근이자 직접 발탁한 인재인 차이치 당서기가 여론의 비난을 받고 있는 가운데 체제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즉, 차이치와 같은 공산당 체제하 관리들이 당문화 고유의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국민들의 생사를 고려하지 않는 방식으로 문제를 처리한다는 것이다. 공산당 체제 자체가 이미 정상적인 방법으로 사회문제와 위기를 해결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스모그에 대한 당국의 조치를 살펴보자. 스모그 현상을 억제하고 베이징의 심각한 동절기 공기 오염을 완화시키기 위해 당국은 올해 베이징시, 톈진시, 허베이성과 주변 지역에 석탄 금지령을 내렸다. 민간의 석탄 사용을 금지하고 ‘석탄 에너지를 가스 에너지로, 석탄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라는 슬로건 아래 규제를 강제로 실시했다. 그러나 배관 건설이 완공되지 않은 데다 전기와 가스 역시 심각한 공급 부족을 빚고 있다. 정부에서 집중적으로 구매한 가스난로는 품질 문제 등을 이유로 또 다른 문제를 키웠다. 현재 화베이(華北) 지구의 몇몇 도시에서 천만 명 이상이 영하 4, 5도의 혹한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허베이성 랑팡(廊坊)시와 바오딩(保定)시의 석탄 금지 구역에서만 만 세대가 넘는 국민들이 난방 공급에 문제가 발생했거나 심지어 공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최근 허베이 바오딩시 취양(曲陽)현에서 최저 기온이 줄곧 0도 이하로 떨어졌지만 현지의 여러 향(鄕)과 진(鎭)의 학교들은 제때 난방을 공급하지 못했다. 취양현 치춘진(齊村鎮)에 있는 한 초등학교 교사는 11월 15일부터 현재까지 학교에 단 한 번도 난방이 공급된 적 없다고 말했다. 이어서 “아이들이 너무 추워 견딜 수가 없어 하기에 제가 아이들을 데리고 운동장을 뛰면서 몸을 덥혔어요”라고 덧붙였다. 난야워(南雅握) 초등학교에는 이미 적지 않은 학생들이 동상을 입었다고 했다. 하지만 언론은 여론조작에만 몰두하는 모양새이다. 하북일보(河北日報)는 허베이성 성장 쉬친(許勤)이 주말 동안 스자좡(石家莊)을 방문해 천연가스 설비를 시찰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 “인민을 중심으로 하는 발전 사상을 견지한다. 민중의 어떠한 호소에도 모두 응할 것이며 민중의 필요에 따라 움직이며 국민들이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하겠다”라는 쉬친 성장의 말을 그대로 실었다. 중국 공산당의 '타키투스 함정' 시진핑이 집권한 지 5년 동안 중국 사회에는 여러 변화가 있어 왔다. ‘의법치국(依法治國)’, 노교제도(勞教制度) 폐지, 한자녀정책 완화, 호구제도(戶籍制度) 개혁 추진, 여아 성매매죄(嫖宿幼女罪) 폐지, 군 개혁 및 전통문화 제창 등이 대표적이다. 이와 동시에 대대적인 반부패 호랑이 사냥이 이어지면서 장쩌민 집단을 중심으로 한 부패 세력들을 대거 낙마시켰다. 전국종교공작회의(全國宗教工作會議)를 열어 장쩌민의 탄압 위주의 종교정책을 시정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들로 미루어 짐작하면 시진핑은 개인적인 면에서 중국 사회에 법치, 정의, 공평, 전통 도덕 등 여러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한 야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19차 당대회가 열리기 전 5년이라는 기간이 장쩌민 집단 세력의 방해로 시정에 어려움을 겪었던 시기임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장쩌민 세력은 당정군(党政軍)과 지방 성시에 널리 분포되어 지속적으로 시진핑을 겨냥해 정변과 정권찬탈을 도모해왔다. 19차 당대회 이후 시진핑은 핵심 지위를 공식적으로 확립했다. 시진핑 사상이 공산당 당헌에 명기되고 시진핑 진영의 인사들이 내부 요직에 전면적으로 승진해 장쩌민 세력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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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12월 1일 전 중앙기율검사위 서기인 왕치산이 여전히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며 내년 양회에 국가부주석으로 임명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매체에 따르면 왕치산은 10월에 있던 19차 당대회를 통해 은퇴했지만 최고위급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왕치산이 내년 3월 중국 공산당 양회에서 국가부주석으로 임명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공산당 제19차 당대회 이후, 왕치산의 퇴임 아닌 퇴임과 관련해 여러 설이 나온 가운데 이번 관측이 특히 힘을 얻고 있다. 여기에는 아래와 같은 고위층의 정치적 메시지가 숨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이번 소식이 사실이라면 장쩌민파가 19차 당대회 전 왕치산의 연임과 반부패 연합을 저지하기 위해 기획한 해외 공작은 실패로 끝났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은 여전히 중국 공산당의 권력 핵심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따라서 그가 향후 정국에 중요한 영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중기위 서기 재임 시절 강도 높게 진행됐던 반부패 정책 역시 연속성을 보장받게 됐다. 둘째, 왕치산이 보통 당원 신분으로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에 참석했다면, 이는 ‘칠상팔하(七上八下, 상무위원은 67세까지만 가능하고 68세는 퇴임한다)’라는 관습의 폐지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시진핑 진영의 막강한 권력을 드러내는 바로미터이다. 19차 당대회 이후 시진핑이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결정권과 발언권을 통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셋째, 국가부주석은 상대적으로 명예직에 불과하고 상징적 의미만 갖고 있다. 그러므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더 큰 의미를 띤다. 왕치산과 동시에 퇴임한 류윈산(劉雲山)과 위정성(俞正聲)이 상무위원회 회의에 불참하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시진핑과 장쩌민 집단의 대결이 본격화되면서 양측 모두 공산당의 규정을 무시한 채 권력 다툼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넷째, 19차 당대회가 끝난 지 겨우 한 달만에 루웨이(魯煒)의 낙마와 장양(張陽) 자살 사건이 벌어졌다. 특히 장양 자살 사건과 관해 관영매체는 ‘수치’ ‘이중인격’이라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전국 12개 성구와 도시는 11월 30일 전에 장양 자살 사건에 대한 입장을 모두 밝혔다. 한 명의 군사위 주임의 자살이 이 같은 파장을 불러온 것은 자살이 아닌 타살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위층간 정치 대결의 잔혹한 일면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시점에서 왕치산의 회의 참석과 국가 부주석 임명 소식은 시진핑 진영이 권력을 되찾으려는 장쩌민파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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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양(張陽·66) 정치공작부 주임(상장·대장급)이 자살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28일 보도한 가운데 중국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그 여파는 19차 당대회 이후 처음으로 낙마한 루웨이(魯煒)의 경우를 이미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장양은 중국 공산당 문화대혁명 이후 처음으로 정부에서 자살로 공식 발표한 현역 장교이자 18차 당대회 이후 자살이 확인된 최초의 군장교이다. 올해 8월말 팡펑후이(房峰輝)와 장양이 직위 해지된 뒤 조사를 중이라는 사실은 암암리에 퍼져 있었다. 그러나 19차 당대회 후 관련 소식이 더 이상 드러나지 않아 당국이 이들의 출구를 마련해놓은 것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돼왔다. 관영매체가 장양의 자살에 대한 보도를 보면,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장양이 죽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세부상황과 관련해 관영매체는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장양의 죽음에는 수상하고 모순되며 의문스러운 점이 많다. 정부에 보도된 바대로 장양이 3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조직 면담과 궈보슝(郭伯雄), 쉬차이허우(徐才厚) 등 사건 정보와 관련된 심문’을 받았다면, 사정 당국은 이미 ‘기율을 심각하게 위반했으며, 뇌물 수수, 거액의 출처 불명 재산 소유 등 범죄를 저질렀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런데 사정 당국은 이러한 범죄를 저지른 장양에게 자택에 거주하도록 허용했다. 정부의 공식 발표는 인터넷상에 떠도는 장양의 자살 정황과 어느 정도 일치한다. 당시 군사위원이 장양의 ‘거주처’를 찾아갔을 때, 그는 옷을 갈아입고 오겠다며 방으로 돌아가 목을 맸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다소 믿기지 않는다. 목을 맨 시점부터 사망까지 일정 시간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업무 경험이 풍부한 기율위원이 이러한 상황이 벌어질 때까지 기다렸다는 사실 역시 의심스럽다. 그렇다면 정부 보도에는 진실이 은폐됐을 가능성이 높다. 장양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무엇인가? 아래 몇 가지 분석을 통해 추측해 볼 수 있다. 장양의 죽음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자살이거나 자살을 당함, 즉 타살 가능성이다. 만약 그가 자살했다면 조력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중앙기율위가 조사 대상자를 엄격히 관리하는 가운데 자살에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기 때문이다. 내부의 조력자가 장양에게 소식을 전해주거나 혹은 자살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 만약 그의 죽음이 타살이라면 제3자가 입막음을 위해 엄밀한 감시 끝에 살해했을 가능성이 높다. 누가 장양의 죽음을 바랬던 것인가? 시진핑(習近平) 당국인가? ‘처벌이 두려워 자살’을 했든 ‘입막음의 일환으로 살해당했든’ 장양의 배후 세력이 개입했을 것으로 의심된다. 팡펑푸이와 장양은 낙마한 쉬차이허우와 궈보슝이 발탁한 부하들이다. 쉬차이허우와 궈보슝이 더 이상 직접 지시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같은 행동을 벌일 수 있는 인물은 이들의 배후 세력인 장쩌민(江澤民)과 쩡칭훙(曾慶紅)을 핵심으로 하는 정변 집단뿐이다. 후진타오(胡錦濤) 집권 시기에 쉬차이허우와 궈보슝은 군권을 장악한 뒤 군사위 주석 책임제에서 군사위 부주석 책임제로 바꾸었다. 그러나 장양의 ‘자살’이 시사하는 바는 시진핑의 군권 침범 방지과 같은 간단한 사안을 가리키고 있지 않다. 시진핑은 집권한 지 5년이 지난 지금 중국 공산당 19차 당대회를 통해 당의 핵심으로 거듭났으며 자신의 이름을 당장(黨章)에 기록했다. 대규모 군사개혁 이후 대세는 이미 시진핑으로 기울었다. 장쩌민 집단이 군대를 동원해 판세를 뒤집기는 점차 불가능해지고 있다. 그러나 장파가 군대에서 형성했던 세력이 모두 축출된 것은 아니다. 이미 하부 세력이 커져 통제가 어렵고, 윗선의 각급 관료들 역시 대부분 쉬차이허우와 궈보슝 집권 당시 선출된 인사들이다. 이들은 장 파와 정치적, 경제적으로 긴밀한 이익 관계를 맺어왔다. 일부 고위 관료는 장파에서 더 이상 빠져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따라서 이들은 장파와 운명을 함께 하며 이들의 지시와 정책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진핑이 반부패 활동을 계속 진행한다면 장파가 정변을 포기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장쩌민과 쩡칭훙이 낙마하지 않는 한 장파의 정변 활동은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중국 공산당 고위층은 19차 당대회 전후로 격렬한 권력 다툼을 벌였지만 끝내 정치적 안정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장양의 죽음은 고위층 간 치열한 암투가 다시 시작될 것임을 알리는 예고이자 신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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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5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아시아 순방 일정을 마무리 했다. 당시 그는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북한의 핵 보유가 중국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을 인정했고 중국이 언급했던 ‘쌍중단(雙中斷·북한의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중단과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중단)’ 철회를 지지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그 다음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쌍중단’은 여전히 ‘실현 가능하고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밝혔다. 이는 트럼프가 말한 시진핑의 입장과 정 반대발언이다. 미리 내막을 들춰버린 트럼프 북핵 문제에 있어서 시진핑과 ‘쌍중단’을 철회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은 트럼프가 최초로 외신에 공개한 것이다. 트럼프는 백악관에서 시진핑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중국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위협이다” “중국은 쌍중단을 수용할 수 없으며 이는 줄곧 실패했던 방안이다”라고 했다고 밝혔다. 항상 진실을 숨겨왔던 중국 관영매체에게 있어서 트럼프의 이 발언은 북핵 문제의 내막을 들춘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 이와 같은 방식은 당선 이후 트럼프의 큰 정치적 특징이기도 하다. 비주류 정치인으로 백악관에 들어선 트럼프는 미국 정치계에 깊이 뿌리 박혀있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관행을 바꾸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솔직하고 직설적이며 정치가로서의 교활함과 이기심, 이해타산이 거의 없다. 입장표명을 할 때도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그는 ‘트위터 정치’라는 새로운 정치 모델을 창조해 미국과 전 세계 정치계에 신선함을 불어넣었다. 이 같은 트럼프의 정치스타일은 향후 그의 정치 활동과 미국의 정치 영역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내막을 들추고 난 후 중국 외교부는 왜 시진핑과 다른 목소리를 냈을까? 이에 대한 답은 다음 몇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가능성: 시진핑에 대한 장쩌민파 외교부의 대항 중국 외교부는 줄곧 장쩌민 일파의 손아귀에 있었다. 1993년부터 2013년 까지 첸치천(钱其琛), 탕자쉬안(唐家璇), 리자오싱(李肇星), 양제츠(杨洁篪) 등 4명의 외교부 부장(장관급) 모두가 장쩌민파였다. 특히 1998년에서 2001년 주미대사직에 있었던 리자오싱은 장쩌민이 해외로 폭력을 확대하는 데 있어서 유능한 수하 노릇을 해왔다. 외교적으로는 장쩌민의 파룬궁(法輪功) 박해를 대변하고 후진타오(胡锦涛)를 감독, 통제했다. 시진핑이 중국 국가주석으로 취임한 후 직면한 가장 큰 압박과 위기는 외교적, 외부적 상황에 기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내부로부터 시작됐으며 주로 장쩌민파가 주도했다. 그들은 시 주석을 겨냥한 지속적인 정변 모의와 권력 찬탈 시도를 되풀이했다. 시 주석은 취임 5년 이래 지속적으로 반부패와 ‘호랑이(부패 고위관료)’ 사냥을 해왔는데 이는 장쩌민 일파의 정변 시도에 대한 대응책이었다. 외교는 내정의 연속이었다. 시 주석은 집권 후 지속적인 해외 방문을 통해 미국 등 강대국 및 주변국가와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해왔다. 일본과의 관계 완화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장쩌민파는 외교 시스템을 장악해 국제 이슈를 조성하여 정적에게 압박을 가하거나 공산당 내부의 정치게임에 활용했다. 시진핑의 취임 이후에도 장쩌민파는 이러한 조작을 계속했다. 시진핑이 취임하기 전에는 장쩌민파가 북한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있었고 김정일 정권은 장쩌민 세력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당시 저우융캉은(周永康) 중국이 김정일·김정은 부자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다리 역할을 했다. 장쩌민파이자 상무위원이었던 장더장(張德江)은 북한 김일성종합대학교 경제학부에서 2년동안 유학생활을 했다. 그리고 장쩌민의 군사 참모인 쩡칭홍(曾慶紅) 역시 김정일과 가까운 사이였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여전히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이 정변 실패 이후에 도피할 퇴로 중 하나이다. 지금까지 장쩌민 세력은 줄곧 북한과 긴밀한 협력을 해 왔으며 북한 문제 또한 이들이 시진핑에 대항하는 수단이 되어 왔다. 이전에 있었던 북한의 수차례 핵실험은 모두 공산당의 고위층에서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뤄졌다. 이는 장쩌민파가 시진핑의 반부패 압박을 피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이번 중국 외교부와 시진핑의 엇박자 역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일 수도 있다. 두 번째 가능성: 외교부의 관성적 움직임 시진핑이 취임한 후 외교 방면에서 장쩌민파의 구속과 공산당 체제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2014년 7월 3일에서 4일까지 시진핑은 한국을 공식 방문했다. 이는 2013년 국가주석이 된 이후 한국만을 방문한 첫 사례였다. 그 전에는 중국의 국가주석이 북한을 먼저 방문하고 한국을 방문 했던 관례를 깨뜨린 것이다. 그밖에 시진핑은 중국의 외교적 관례를 깨뜨리고 다른 국가의 야당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인도의 소냐 간디(Sonia Gandhi) 국민회의당 대표, 태국의 아피시트 웨차치와(Abhisit Vejjajia) 민주당 대표, 뉴질랜드의 노동당 전대표에서 현 대표가 된 앤드루 리틀(Andrew Little) 등 야당의 지도자들을 직접 접견하기도 했다. 그 중 미얀마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이끄는 아웅 산 수지(Aung San Suu Kyi)와의 만남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시진핑은 취임 이후 외교방면에서 이전 공산당 및 장쩌민파와 다른 전략을 취했다. 이러한 이례적인 전략은 북한 외교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그가 북한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서 대북 외교방침에 큰 변화가 발생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 체제하에서 외교부의 경직된 시스템엔 여전히 관성이 작용하고 있다. 외교부 관료들은 여전히 중국 외교 시스템의 관례에 따라 대변하고 행동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바로 공산당 체제의 관성적 작용에 따른 결과이다. 이들은 공산당 체제하에서 국한된 언어사용과 사고를 통해 공산당의 경직된 ‘투쟁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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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홍콩 민정사무국장 겸 전국정협위원인 패트릭 호(何志平)와 전 세네갈 외교부장관 셰이크 가디오(Cheikh Gadio)가 중국 국영기업의 브로커로 활동하며 아프리카 고위층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됐다고 최근 미국 사법부가 밝혔다. 혐의가 인정되면 이들은 최대 20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그동안 패트릭 호는 화신(華信)에너지 기업의 예퉁밍(葉簡明) 사장이 주석으로 있는 홍콩중화에너지기금회에서 이사국 상무 부주석이자 비서장직을 맡아 왔다. 화신에너지는 중국 최대 민영 에너지 기업으로, 중국 언론이 2017년 발표한 보도에 따르면 석유산업 총 매출액이 1,081억 위안을 차지해 중국해양석유(中海油)를 앞지르고 4위를 기록한 바 있다. 중국 공산당, 서방 사회에 침투하다 패트릭 호의 뇌물공여 사건이 중국 본토, 홍콩, 타이완, 아프리카, 미국에까지 그 여파를 미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중국 공산당의 부패와 적색사상이 국제사회에 어느 정도까지 침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공산당이 국가와 사회자원 전반을 장악한 중국에서 화신에너지는 표면적으로 대형 민간 기업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외부에서는 국영은행에서의 잦은 대출, 일반적이지 않은 회사구조 등을 이유로 화신이 외형적으로만 민영기업일 뿐 사실상 국영기업이라는 의혹을 제기해왔다. 이점에서 중국 공산당의 부패 체제가 중국 내 거의 모든 기업을 당의 생산업체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이 일었다. 공산당이 해외에서 서방 국가의 고위 관료를 매수한 사건은 단편적 사안이 아니며, 밝혀진 사례 역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2014년 12월 19일, 홍콩에서 전 정무사장인 쉬좡런(許仕仁) 사건 공판이 열렸다. 관련자 5명 중 4명이 유죄를 선고받고, 쉬좡런의 경우 5개 죄목이 유죄로 인정되었다. 쉬좡런은 이미 홍콩 사무반 랴오후이(廖暉) 주임으로 의심되는 출처불명의 거액을 수수했다고 자백했다. 랴오후이는 중국 공산당 원로인 랴오청즈(廖承志)의 아들로, 장쩌민(江澤民)에 의해 발탁돼 쩡칭훙(曾慶紅)의 심복으로 활동했다. 그는 오랜 기간 홍콩-마카오 사무실 주임직을 맡아왔다. 자유 인권을 핵심가치로 여겼던 홍콩은 중국 공산당의 수중에 들어간 후 점차 변질되기 시작했다. 공산당은 금전과 권력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홍콩 정부의 핵심 고위관료들을 매수했다. 이를 통해 관료들을 당의 꼭두각시로 만들었던 것이다. 홍콩 정치와 경제 발전을 결정하는 주요 정책 결정에서 이들은 중국 공산당의 의도에 따라 행동했다. 특히 2003년에는 23개 조항의 악법을 통과시키려고 했다. 2015년 10월 6일 프리트 바라라(Preet Bharara) 미국 뉴욕 남부 연방검찰관은 존 애쉬(John Ashe) 전 국제연합총회 의장을 포함해 중국 공산당 정협위원겸 마카오 부동산 재벌 응랍셍(吳立勝) 등 6명을 수년간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체포 및 기소했다. 해당 기소문에 따르면 2013년 제68회 국제연합총회 의장에 출마한 중앙아메리카의 섬 국가 앤티카 바부다 주 국제연합 대사인 존 애쉬가 2011년부터 2014년 12월까지 응랍셍 등 여러 중국계 기업가로부터 미화 130만 달러가 넘는 뇌물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한 대가로 그는 국제연합 의장 신분과 앤티카 바부다 정부의 직권을 이용, 중국 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응랍셍은 브로커를 통해 애쉬에게 미화 50만 달러 이상의 뇌물을 전달했고, 국제연합은 마카오에 10억 마카오 달러에 달하는 총회 빌딩 건설에 투자하도록 지시했다. 한편 응랍셍은 1996년 미국 대선 전에 일어난 외국 정치헌금 스캔들에도 연루된 전력을 갖고 있다. 그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1996년 재임 경선 당시 약 140만 위안의 거액을 중국계 기업인 찰리 트리(Charlie Trie)에게 송금했고 찰리 트리는 그 돈을 다시 민주당 전국위원회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공산당의 국제 사회 침투 목적 국제적으로 중국 공산당 정권은 경제력을 앞세워 서방 사회와 정부를 압박하고, 공산주의 사상 및 공산당의 부패를 서방 세계에 전파하는 데 노력해왔다. 이로 인해 서방 세계의 자유 인권 등 보편적 세계관이 잠식되고 있다. 공산당은 뇌물을 통해 서방 국가의 관료들을 매수해 당의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도모해왔다. 이들의 최종 목적은 통치 명분 강화와 정권 유지에 있다. 그러나 이는 공산주의 사상을 전파해 세계를 파멸시키고자 하는 밑그림의 일부분일 따름이다. 이들은 서방 관료들의 약점을 찾아 경제적 이익을 미끼로 삼아왔다. 뇌물, 성적 유혹 등 수단을 동원해 매수에 성공하면 서방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 영향을 끼쳤다. 더 나아가 자유 인권과 같은 핵심가치를 위협해왔다. 이와 관련해 경선자금 스캔들에 연루됐던 류춘이(劉醇逸) 뉴욕시 재무담당관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은 자신들의 가치관을 미국에 전파하기 위해 미국 정계의 대리인을 필요로 했다. 공산당은 그를 통해 정계에 침투해 최종적으로 미국 정치와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고 했다. 중국 공산당의 침투 노력에 타격, 공산주의 위협 중국 공산당이 추진하는 공산주의 사상과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류 사회의 사상, 가치관은 태생적으로 대립된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를 포함한 서방 주류 국가들은 세계평화에 큰 위협을 끼치는 요소로 중국과 그 국민들이 아닌, 이들을 인질로 삼고 있는 중국 공산당 정권을 지목한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자면, 공산당이 미국과 국제사회에 거액의 자금을 투자해 전방위적 침투를 꾀하는 데에는 단지 공산당과 미국 등 각국의 이익이 걸려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둘의 대결은 곧 두 가치관의 대립, 정의와 악, 문명과 야만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유 인권을 국가 이념으로 삼아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인류 문명의 선두에 서며 자유세계 및 문명사회의 리더 역할을 해왔다. 미국은 전 세계에 인권, 자유, 법제 등 가치를 전파하고 중국 공산당이 신봉하는 독재, 전제, 야만, 폭력 통치를 악으로 여겨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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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1일 밤 10시, 중앙기율검사위(중기위)는 공식 사이트를 통해 루웨이(魯煒·57)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 부부장 겸 전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주임이 ‘엄중한 기율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발표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9차 당대회 후 낙마한 첫 ‘호랑이(고위급 간부)’가 루웨이인 것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정치적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첫째, 루웨이는 전 중앙선전부 부부장이자 전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주임으로 정부급(正部級, 장관급) 관료다. 즉 시진핑이 18차 당대회에서 취임한 이래 시작된 반부패 호랑이 사냥 캠페인에서 선전계통 최고위직 관료로는 처음으로 낙마한 것이다. 특히 선전계통을 주관하는 장쩌민파 류윈산(劉雲山) 전 정치국 상무위원이 퇴임한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에 루웨이가 낙마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시진핑이 선전계통의 장관급 관료 한 명을 실각시키기 위해 류윈산이 퇴진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는 것이다. 또한 장쩌민파 류윈산이 19차 당대회 이전 중국 공산당 선전계통을 장악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18차 당대회 이후 고위층의 권력 구조와 운영체제가 여전히 장쩌민 시기에 형성된 상무위원 분담 체제, 즉 7명의 상무위원이 중앙 권력을 나누어 가지는 집단지도체제로 이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19차 당대회 이후 첫 호랑이가 낙마하면서 이러한 상황에는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장관급인 루 부부장의 낙마는 지난달 19차 당대회를 통해 반부패 사령탑이 된 자오러지(趙樂際) 중앙기율위 서기의 첫 작품이라는 점이다. 19차 당대회를 마친 시진핑이 그에게 강도 높은 반부패 운동을 지시한 것으로 파악된다. 19차 당대회가 끝난 시점에서 시진핑이 권력의 핵심인 ‘붓대(筆杆子)’에 직접 칼을 들이댔다는 것이다. 이는 장쩌민파 선전계통에 대해 심층 정화 작업을 펼칠 것이라는 신호로 풀이된다. 현재 권력 배치에 따르면 장쩌민파의 마지막 보루는 주로 선전계통에 집중돼 있다. 비록 왕후닝(王滬寧) 정치국 상무위원이 류윈산의 직무를 대체했지만 그는 학자 출신으로 지방과 중앙에서의 행정 경험이 전무하다. 따라서 권력을 운영할 배경이나 실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시진핑이 우선 선전계통의 첫 호랑이를 실각시킨 데는 왕후닝에게 힘을 보태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루웨이가 낙마한 주요 원인은 신화사(新華社)나 중앙선전부 재임 기간 중 있었던 비리 문제때문만은 아니다. 그 원인은 여전히 ‘정치부패’와 관련 깊다. 류윈산과의 밀접한 관계, 2016년 3월 중국 공산당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기간 신장 무계망(無界網)이 게재한 시진핑의 퇴진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에 대한 책임 등 그는 꾸준히 정변 집단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얼마 전 왕치산은 언론을 통해 정치부패가 최대 부패이며 정치부패범들이 이익집단을 결성해 당과 국가의 권력 찬탈을 꾀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었다. 이는 시진핑 당국의 향후 반부패 방향을 알 수 있는 결정적인 대목이다. 당국이 ‘경제부패’ 외에 ‘정치부패’까지 척결하겠다는 뜻인 것이다. 따라서 장쩌민파 관료가 향후 반부패 호랑이 사냥의 대상이 될 것임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셋째, 언론자유를 억압하고 인터넷 검열·통제 정책을 주도한 루웨이가 낙마했지만 중국의 인터넷 통제 정책은 근본적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루웨이와 그 후임자는 단지 동전의 양면일 뿐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인터넷과 언론 통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국면이 잠시 나타날지라도 그것은 단지 정권 안정을 위한 공산당의 또 다른 수단에 불과하다. 중국 공산당 정권의 본질은 이전부터 이미 드러나 있었다. 그것은 폭력과 거짓으로 일관된 통치 방식이다. 거짓이 존재하는 시장에는 언론 통제, 진상 봉쇄, 거짓 날조, 민중들에 대한 세뇌 등이 필요하다. 공산당 체제가 존재하는 한 이 점은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이다. 루웨이가 낙마한 뒤 외부와 중국 내 네티즌들이 모두 환호하고 있다. 이는 인심의 향배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각급 관료들에 대한 경고 메시지이기도 하다. 정권을 장악한 관료들은 민중들을 계속해서 박해하고 정의와 보편적인 가치를 적으로 치부하며 목숨 걸고 악행을 저지른다면 결국 청산을 면치 못할 것이며, 역사에 치욕으로 남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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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중국 방문을 마친 11월 15일 미국 의회 산하 미중무역안전심사위원회(USCC)가 미중 무역관계 및 미중 안전관계 등 여러 방면에 대한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극히 일상적인 미국 의회의 브리핑을 두고 중국 공산당의 ‘후설’(喉舌·목구멍과 혀)인 환구시보는 이에 대해 맹렬히 비난했다. ‘미국이 방금 발표한 브리핑으로, 국외의 모든 반중세력은 기뻐하고 흥분했다’면서 미국 의회위원회를 통칭 ‘반중세력’으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브리핑 내용은 ‘반중방침’이 됐다. 이 연장선상에서 환구시보는 브리핑 내용과 파룬궁을 연결해 파룬궁에 대한 비난을 퍼부었다. 지금까지 중국 공산당 정권은 국가적 차원에서 사회공제, 언론조작, 민중박해, 반체제 인사 박해 등을 실시해왔다.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 적을 만들어 ‘조국 분열, 국가정권 전복 및 반중세력’이라는 누명을 씌워 이들을 공격하고 박해했다. 환구시보는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 산하의 신문이다. 환구시보와 인터넷판 환구망(環球網)의 보도와 사설들은 꾸준히 극좌 성향을 보여 왔다. 또 매우 공격적 어조로 욕설과 유언비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것 역시 특징 중 하나다. 이 신문의 이념은 반(反)미, 반(反)일 등 세계 보편적 가치관에 반하는 방향으로, 중국에서 공산당 체제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민중을 세뇌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환구시보는 날조를 반복하며 유언비어를 전파하고 있다. 특히 중국 대내외에서 발생한 민중 사건에 대해 공산당의 목소리를 대신하고 앞잡이 역할을 자처해왔다. 환구시보는 장쩌민 세력의 주요한 도구로, 파룬궁에 대한 비난과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데 주도했다. 그 예로, 환구시보는 2016년 8월 20일 파룬궁이 공산당의 강제장기적출 만행을 폭로한 것과 관련해 ‘이는 파룬궁 측이 날조한 유언비어다’라는 논평을 내놓았다. 그 논평은 맥락과 근거를 알 수 없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었다. 과연 어떤 세력이 반중세력인가? 중화민족에 대해 반대하고, 중화민족에게 재난을 불러오는 세력이 진정한 ‘반중’이다. 중국의 인권 실태에 대해 주목하고, 민중의 주권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단체와 인사가 중국 민중의 친구인 것이다. 이들은 중국 인권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공산당의 폭정에 저항해 온 진정한 애국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애국자들은 역사에도 많이 기록되어 있다. 그 예로, 중국 청나라의 통치를 뒤엎고 중화민국을 세운 국부(国父) 쑨원이 있다. 공산당은 폭력을 기반으로 일어서 몇천 만 명의 중국인을 살해하고 중화민족의 전통문화를 파괴해 민중에게 엄청난 재난을 불러왔다. 즉 이들이 반중세력이다. 장쩌민 세력이 참혹하게 파룬궁을 박해하고 수련자들의 장기를 강제적출한 만행은 이제 백일하에 드러났다. 하지만 환구시보만 계속해서 파룬궁을 비난하며, 파룬궁 박해 초기와 같이 대대적으로 사실을 조작, 공격하며 공산당의 만행을 이어나가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길러온 환구시보야말로 진정한 반중세력인 것이다. 환구시보와 같은 반중세력 때문에 중국인은 공산당의 박해 속에서 자유와 존엄을 잃었다. 하지만 중국 고위층 간부들의 아내와 아이들은 일찍부터 미국 국적과 영주권을 취득해 이른바 ‘반중세력’인 미국이 제공하는 온갖 권리를 누리며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다. 환구시보가 한 가지 모르는 사실이 있다. 점점 많은 중국인들이 중국 공산당의 실체를 꿰뚫어 보고 중공과 중국을 구별하며 그 사악한 본질을 깨닫고 있다는 것이다. 공산당이 사회에 끼치는 위해를 생각하고 파룬궁 박해에 대한 진실을 향해 근접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환구시보가 이번에 보여준 ‘누워서 침 뱉기’는 또 한 번 사람들에게 진정한 반중세력이 누구인지, 그 실체를 드러낸 셈이다. 그것은 바로 중국 공산당이 길러온 도구, ‘환구시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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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차 당대회가 폐막했지만 중국 공산당 고위층 내부 투쟁은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당국이 장쩌민 집단을 겨냥한 행보를 이어나가는 가운데 10월 31일 무장경찰 제도 개혁안이 통과됐다. 장쩌민파의 쿠데타 기도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10월 31일 중국 공산당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무장경찰 부대 개혁 기간의 임시 법규 조정에 관한 결정 초안’을 심의해 무장경찰에 대한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단일 지휘를 받도록 바꿨다. 개정안은 무장경찰 부대에 대한 ‘당의 통일 영도’를 강화하고,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시진핑) 책임제를 정착시키는 데 있다. 또 ‘군은 군, 경찰은 경찰, 민간은 민간’이라는 원칙에 따라 무장경찰 부대의 지휘관리 체제를 개선하고 우수한 군사역량을 결집시켜 부대를 재편성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무장경찰 ‘일통이분(一統二分)’ 제도 무장경찰은 편제와 병역 제도가 정규군과 거의 유사하나 주로 대내적으로 ‘안정’을 유지하는 무장세력이다. 이들은 공산당 체제 안정을 위한 수단의 하나였다. 1982년 6월에 창설된 중국의 무장경찰 부대는 ‘일통이분(一統二分)’의 지휘체제를 채택했다. 구조적으로는 국무원, 중앙군사위가 일괄 지휘하고 각 지방 공안기관이 등급을 나누어 관리, 지휘하는 체제이지만 사실상 ‘양분(兩分)’이 주축을 이루었다. 일통양분제에 따라 무장경찰 부대는 그동안 중앙군사위와 국무원의 이중 관리를 받아왔다. 하지만 이 같은 이중 관리 체제하에서 지방 무장경찰은 정법위 계통 및 부속 공안계통으로부터 직접적인 지휘를 받아 각 지방의 ‘안정 유지’ 업무를 수행한다. 즉 중앙군사위는 무장경찰의 모집과 제도 관리 등만 담당할 뿐, 지방의 부대를 직접 지휘하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 공안계통은 무장경찰에 대해 비교적 큰 발언권을 행사해왔다. 따라서 공안부장은 무장경찰 부대의 제1정치위원, 당위원회 제1서기를 겸직하며 각 성(省) 무장경찰 부대 역시 성(省) 공안청장이 제1정치위원, 제1서기를 겸하는 구조로 조직이 이루어졌다. 이는 사실상 무장경찰 부대의 분권을 초래했다. 저우융캉(周永康) 시기의 경우, 그는 정법위 서기, 공안부장 등을 역임하며 무장경찰에 대한 지휘권을 적극 행사해왔다. 또 무장경찰 사령원을 최초로 중앙정법위 위원에 포함시켰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체제는 또 다른 세력의 중심을 형성시켰다. 무장경찰은 한때 장쩌민의 사병 장쩌민은 집권 초기 ‘양가장(楊家將, 양상쿤(楊尙昆)-양바이빙(楊白氷) 형제로 당시 군부를 장악한 세력)’이 군권을 장악했던 탓에 무장경찰에 집중투자하며 세력을 키웠다. 이 시기 급속도로 발전한 무장경찰은 국내외에서 ‘장가군(江家軍)’으로 불리기까지 했다. 1996년 12월, 중앙군사위는 무장경찰 부대 총부를 부(副) 대군구급(大軍區級)에서 정대군구급(正大軍區級)으로 승격하고, 무장경찰 사령원의 등급을 7대군구의 사령원과 동급인 상장 계급으로 조정했다. 1999년 당시 중앙군사위 주석이었던 장쩌민은 새해를 맞아 베이징(北京)시 무장경찰 총대대 11지대를 시찰했다. 그 뒤부터 공산당은 무장경찰 부대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왔다. 무장부대 체계에서 ‘비주력 부대’에 해당되었던 무장경찰은 이후 육·해·공 3군 및 제2포병과 대등한 지위로 올라섰다. 그 규모 역시 불어나 장비 개선 및 구성원에 대한 대우 향상이 이뤄졌다. 무장경찰 수도 급격히 늘었는데, 외부에서 추산한 바에 따르면 총병력은 150만 명에 이르며 이중 절반은 80만 명 규모의 국내 보위 부대가 차지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인권침해 사건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민중들의 폭력에 맞선 권익 수호 집단 사건도 폭증했다. 특히 2000년 이후 저우융캉이 정법위를 넘겨받으면서 각지에서 집단행동이 빈번해졌다. 무장경찰은 장쩌민 집단이 국민들을 탄압하기 위한 주된 폭력 수단이 됐다. 2006년 중국 무장경찰 사령과 정치위원은 무장경찰을 대규모 군중사건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사실상 대규모 민중 청원 사건을 진압하기 위한 준비였다. 무장경찰은 장쩌민파의 버팀목 장쩌민과 저우융캉이 장악한 정법위는 무장경찰의 사병화 · 지방화를 꾀함으로써 후진타오(胡錦濤)-원자바오(溫家寶)의 중앙 정부에 대항해왔다. 지난 10여 년간 장쩌민은 무장경찰에 거액을 투자해 ‘제2의 권력 중앙’으로 불릴 정도로 세력을 확장했다. 또 정법위와 산하 공안계통은 ‘안정 유지’라는 명목으로 지방의 무장경찰 세력을 움직여 국민을 탄압했으나 법적 제한을 받지 않았고 중앙군사위도 손을 대기 어려웠다. 무장경찰 부대는 여러 차례 정변에 참여한 의혹을 받아왔다. 장쩌민, 쩡칭훙(曾慶紅), 보시라이(薄熙來), 저우융캉 등이 무장경찰에 의지해 18대 이후 시진핑에 대한 정변을 시도했던 것이다. 왕리쥔(王立軍)의 중국 영사관 도주 사건 당시 보시라이는 무장경찰을 동원해 미(美) 영사관을 포위한 것이 대표적이다. 저우융캉 또한 3·19정변을 일으키며 무장경찰을 동원한 바 있었다. 2012년 3.19 정변 과정에서 중앙정법위에 주둔해 있던 무장경찰 특수부대는 하늘을 향해 총을 쏘면서 38군에 대항했다. 그러나 38군 부대는 신속히 무장경찰을 제압했다. 베이징 시민들다수가 이날 밤 총성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3.19’정변은 미수로 그쳤는데 주범으로는 당시 중국 공산당 정법위 서기인 저우융캉이 지목됐다. 보시라이 사건의 결정적 증인인 다롄스더(大連實德) 그룹의 쉬밍(徐明)이 장쩌민파에 불리한 증언을 하는 것을 막기위해 사전에 체포하려는 목적이었다. 이 사건 당시 후진타오는 38군 부대를 베이징으로 긴급 투입해 정법위 건물 밖 무장경찰과 대치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무장경찰 부대는 명목상 국무원과 중앙군사위의 이중 관리를 받는다. 그러나 실제 통제권은 국무원의 공안부, 즉 정법위에 있다. 저우융캉이 정법위 서기로 재임 시 연간 안정 유지비용이 군비 지출을 넘어섰으며, 정법위 권력은 ‘제2의 권력 중앙’으로 부상했다. 후진타오-원자바오의 ‘정치 명령이 중난하이 밖으로 전달되기 어렵다(政令難出中南海)’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우융캉이 장악한 무장경찰 세력은 그만큼 위협적인 존재였다. 중국 공산당의 말을 빌면, 저우융캉은 ‘칼자루(刀把子, 공안과 법원, 검찰 등을 총관장하는 정법위원회)’를 손에 쥐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장경찰 부대라는 ‘총대(槍杆子)’도 쥐고 있었던 것이다. 시진핑, 무장경찰내 장쩌민파 세력 청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