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특집 ④] 지성호 “북한 실태 알리기 위해 살아남았다”

2021년 6월 25일
업데이트: 2021년 6월 25일
지성호 의원 “서로 다른 이념 선택한 南·北, 주민들은 극과 극 삶 살아” 
“비천한 출신이 의원 됐다는 사실만으로 北은 두려울 것”

 

“북한 주민들이 겪는 참극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 같다.” 국민의힘 지성호 의원의 말이다.

석탄을 훔치다 사고로 팔다리를 잃은 북한 청년 지성호는 먹을 걸 구걸하던 ‘꽃제비’였다. 출신 성분이 가장 비천한 함경북도 회령시 탄광촌에서 나고 자란 그는 자유를 찾아 탈북했다.

목발을 짚은 채 1만km를 돌아 한국땅을 밟기까지 죽을 고비도 여러 번. 2010년 북한인권단체를 설립해 운영하고, 2018년 트럼프 미 대통령 국정연설에서 ‘특별 게스트’로 소개됐다.

동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이 발발한 지 71주년을 맞은 가운데 남한과 북한 모두를 경험한 지성호 의원을 만났다.

다음은 의원과의 일문일답.

 

6·25전쟁, 어떻게 보나?

한반도 주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고,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벌어졌다. 한민족이 서로 다른 이념을 위해 싸웠던 전쟁이지 않나.

어떤 이념을 선택했는지에 따라 국민들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공산주의 정권인 북한에서 주민들이 인권을 유린당하고 고통 속에서 사는 반면 대한민국은 풍요를 누리고 있다.

 

북한의 인권 유린 실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면.

내 몸 자체가 북한 정권의 탄압을 보여주는 증거다.

달리는 열차에서 석탄을 훔치다 떨어졌는데, 그 위로 60톤 화물열차가 지나갔다. 팔다리가 잘려 나갔지만 당국으로부터 받은 도움은 없었다. 너무 배고파 석탄을 먹을 것으로 바꾸기 위해 훔치려다 벌어진 일이었다.

학교 갈 나이에 못 가는 건 물론이고 옆에서 사람이 굶어 죽어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6·25 전쟁에 대한 북한과 한국의 시각 어떻게 다른가.

북한에서는 6·25전쟁이 남한의 북침으로 시작됐다고 배웠다. 당연히 사실인 줄 알았다. 미국은 남한을 도운 침략자였고, 남한은 그 꼭두각시라고 했다. 또 남한과 같은 자본주의, 자유민주주의 정권을 공산화시켜야 한다고 철저히 주입당했다.

한국에 와서야 북한의 남침으로 벌어진 전쟁이었음을 알게 됐다.

 

아직도 그렇게 믿는 사람이 많은가?

조금씩 바뀌는 추세다. 북한에도 대북 라디오, 전단 등 매체들이 들어갔다. 점차 북한 체제의 선전에 허구가 많다는 것을 주민들이 깨닫고 있다. 어떤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무엇이 진실인지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꽃제비 출신 청년이 한국에서 의원이 됐다. 북한 정권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병신’, ‘쓰레기’ 등 막말을 퍼부었다. 내 존재가 북한 주민들에게 알려지는 것 자체가 두렵기 때문이다.

특권 계층도 아니고, 평양 출신도 아니고, 유명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잖은가.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거지처럼 산,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장애인이 한국에서 국회의원이 된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나를 보면서 어떻게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 가능한지, 우리 사회는 왜 그러지 못하는지 질문할 것이다.

 

극적인 삶을 살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2018년 트럼프 대통령 국정연설에서 나를 소개한 후 목발을 들어 올렸을 때다. 당시 모든 사람이 기립 박수를 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지성호 의원을 북한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인 북한의 진실을 알리고 있다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모든 인간의 열망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소개했다(편집자 주)

전 세계에 지금도 북한에 제2, 제3의 지성호가 있다는 걸 알리고, 한명 한명 존귀한 인격을 가진 2500만명이 북한에 있음을 알릴 수 있어 벅찬 희열을 느꼈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면서도  살아남은 것이 북한 주민들이 겪는 참극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인 것 같다.

 

지성호 의원에게 목발은 어떤 의미인가?

목숨 걸고 탈북한 내가 살아있다는 희망의 상징이자, 북한 인권 실상의 상징이라고 본다.

또 한국에 와서 목발을 버릴 수도 있었는데, 북한을 잊지 않고 초심을 잃지 않도록 다잡아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갖고 있다.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

워싱턴DC 한국전 참전 기념비에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문구가 있다.

지금 청년들이 보기에 고리타분한 얘기로 들릴 수 있지만, 자유를 가볍게 여기면 단순히 안보라는 차원을 넘어서 정말 자유를 잃을 수 있다.

자유가 없는 북한에선 국민들이 굶어 죽고, 인권은 유린당하고 있다. 종교의 자유가 없는 건 물론이다.

 

북한 인권단체 나우에 대해 소개해달라

제3국을 통해 한국에 들어오도록 탈북자들을 돕는 단체다.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면서 모른 척하는 건 청년의 양심으로서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2010년 출신 국가, 정치적 성향은 다르지만 뜻을 같이하는 청년 몇 명과 함께 설립했다.

한 사람 한 사람 이동하는 과정이 정말 손에 땀을 쥐는데 어느덧 500명을 구출했다. 국회에서 내가 제일 가난한 것으로 소문났지만(웃음) 그들을 도울 수 있어 정말 보람차다.

 

얼마 전 의정 대상을 받았다. 의정 활동은 앞으로 어떻게 할 예정인가?

중국 같은 제3국에 사는 탈북인들이 탈북한 지 10년이 지나 한국에 들어오면 정착금을 못 받거나 거주지가 불안정하는 등 제도적 불이익이 있었다. 대부분 잘 모르거나 여건이 안돼 못 들어온 경우인데 그런 사람들도 지원받도록 법안을 낸 것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1년간 북한 인권, 북한 주민들의 알 권리(대북전단금지법 관련) 등 활동에 주력했다면 앞으로 청년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법안을 내고 싶다.

의원실 보좌진 10명 중 3명이 이북이 고향이다. 통일을 대비한 의원실을 지금부터 운영해가고 있다.

인터뷰 진행: 추봉기 부사장

 

/취재본부 이가섭 기자 khasub.lee@epochtimes.n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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