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세 중국 공산당과 23세 조슈아 웡의 대결

왕요췬(王友群)
2019년 09월 20일 오후 1:13 업데이트: 2024년 02월 19일 오후 3:19

중국인 황웨이밍(黃偉明)은 1989년 6월 3일 결혼식을 올렸다. 그는 다음 날 따로 장소를 마련해 피로연을 하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6월 4일 톈안먼 학살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황씨는 친구들에게 ‘국난을 맞아 예식을 간소화합니다’라고 쓴 카드를 돌리는 것으로 피로연을 대신했다.

그 후 황씨는 결혼 7년만에 득남했다. 기독교 신자였던 황씨는 성경 ‘시편’ 45편 5절의 “왕의 화살은 날카로워 왕의 원수의 염통을 뚫으니 만민이 왕의 앞에 엎드러지도다”라는 구절에 따라 아기 이름을 황즈펑(黃之鋒)이라고 지었다. 펑(鋒·칼날)은 날카로움을 뜻한다.

황즈펑이라는 이름에는 아들이 하느님의 손에 있는 예리한 무기가 돼 적을 무찌르기를 바란다는 염원이 담겼다. 황즈펑의 영어 이름 조슈아(Joshua)는 성경에 나오는 여호수아다. 모세에 이은 이스라엘 지도자로 용맹을 떨쳤으며 평생 잘못을 범한 적이 없다고 전해지는 인물이다.

중국 공산당은 1921년에 설립돼 올해 98세, 1996년생 조슈아 웡은 올해 23세다. 20대 초반 젊은이가 잘못을 면하기란 어렵다. 인생의 선배가 애정어린 관심과 조언을 전한다면 큰 그릇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에 비유한다면 98세 원로인 중국 공산당은 지나온 세월만큼의 관용, 자상함, 후배에 대한 애정 등 원숙함을 발휘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23세 조슈아 웡을 대하는 중국 공산당의 태도는 말 그대로 야만적이었다.

조슈아 웡은 홍콩 사태 기간 대만·독일·미국을 부지런히 방문하며 홍콩인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대만은 아시아지역 자유민주의 상징국가로, 독일은 베를린 장벽을 극복한 국가로(지금의 홍콩은 통일 전 서베를린과 비슷한 상황), 미국은 자유세계 전체의 리더로 각각의 의미가 있었다.

지난 9일 조슈아 웡은 독일에서 빌트(Bild)지가 주최한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 기념 리셉션에 참석했다. 조슈아는 이 자리에서 연설했고 독일 외무장관, 국회의원, 언론인들과 교류했다. 이어 11일 프레스센터 기자회견, 베를린 훔볼트 대학 강연을 진행했다. 회견에는 독일 주요언론이 모두 모였고, 강연에는 청중석이 가득 찼다.

이러한 조슈아 웡과 몇몇 20대 동료들의 해외 순방에 중국 공산당은 분통을 터뜨렸다.

10일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독일이 홍콩 분열 분자가 입국해 반(反)중국 분열 행위를 하는 것을 허용했고, 마스 외무장관은 공공연히 이런 사람과 접촉했다”, “서양에 빌붙어” “국가 분열” “정치쇼” “중국에 대한 내정간섭” 등 거의 폭언 수준이었다.

하루 뒤 주독 중국 대사관은 비난 성명을 내고 조슈아 웡을 “홍콩 분열의 두목”, “홍콩 독립 선동자”라고 부르며 독일 마스 외무장관을 비판했다. 독일 언론을 향해서도 “기회를 틈타 쇼에 열을 올리며 국제사회에 잘못된 신호를 보낸다”라고 화살을 돌렸다.

같은 날, 우컨(吳懇) 주독 중국 대사는 중국 외교부가 주중 독일대사를 초치해 독일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했다고 밝혔다. 우컨 대사는 “중국은 전에도 조슈아 웡의 독일 입국을 불허하라고 요구했다”며 “이 사건은 양국관계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이라고 위협했다.

조슈아 웡은 “홍콩 독립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그는 독일 방문 중 도이체벨레(Deutsche Welle)와 인터뷰에서도 “우리는 홍콩은 중국이 통치하고 있으며 중국 영토의 일부분이라는 것에 높이 공감한다”라고 했다.

하지만 중국은 조슈아 웡이 홍콩 독립을 주장한다며 ‘분열분자’ 프레임 씌우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11일,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웨이보 공식계정(俠客島)에서 “그가 생각을 바꿨다고 믿지 말라. 홍콩 독립 언급 회피는 교활한 책략”이라고 했다.

공산당의 또 다른 기관지 환구시보는 지난 2일 자 사평(社評)에서 조슈아 웡을 “신세대 매국노” “미친 듯이” “오만한 무리”라는 원색적 표현을 써가며 비판했다. 20대 청년에 대한 광분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조슈아 웡은 중국 공산당의 원색적 비난에도 20대답지 않은 차분함을 유지했다. 그는 독일 방문 중 상류사회 만찬, 프레스센터 기자회견, 훔볼트 대학 연설 일정을 소화하면서 여유 있고 예의 바른 태도와 유창한 영어로 소신을 밝혔다. 사유가 명철했고 말은 이치에 맞고 근거와 절도가 있었다.

언론에 비치는 모습에서 노쇠한 98세 중국 공산당과 23세의 홍콩 젊은이는 극적인 대조를 이뤘다.

‘국가 분열’이라는 점에서 보면, 원조는 사실 중국 공산당이다. 1931년 11월 7일 일본의 동북 3성 침공으로 국가적 위기가 닥쳤을 때, 중국 공산당은 중화민국 영토 내에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이라는 별개 국가를 설립했다.

또한 장쩌민 전 주석은 재임 당시였던 1999년 이후 중국 동북지역과 남해군도 최대 섬 바이룽웨이(白龍尾)을 비롯해 대만 면적 40배에 달하는 100만㎢의 중국 영토를 러시아 등에 넘겨줬다. 이에 대해 당 내부와 언론은 모두 침묵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와 수백만 병력, 각종 국가기관을 거느린 중국 공산당을 조슈아 웡과 비교하면 높은 담장 앞에 놓인 계란 한 알과 같다. 홍콩에서 이어지는 거리 시위는 담장 앞 계란 쌓기와 같다. 언젠가 계란이 담장을 넘어서리라는 희망의 발로다.

조슈아 웡은 대만·독일·미국을 찾아가 홍콩시민 절대다수가 원하는 ‘5대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그렇다면 5대 요구사항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일까. 대만 문화부 룽잉타이(龍應台) 부장은 “5대 요구사항의 지향점은 공정한 사회제도, 정의로운 자원분배, 법치 정신의 관철, 투명한 정부 행정, 시민의 충분한 정치 참여”라고 분석했다.

조슈아 웡은 도이체벨레 기자로부터 “최근 수년간 당신은 계속 사회불안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무엇이 당신을 지금껏 지탱해주었나”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홍콩인들은 계속 국제사회에 놀라게 하고 소위 정치인들을 놀라게 했다. 5년 전, 우산 혁명이 일어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나? 작년에 홍콩인 100만 명이 거리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면 아무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일이 벌어졌다. 정권에는 가망이 없지만, 시민에게는 희망이 있다. 일은 저절로 좋은 쪽으로 나아갈 것이다.”

홍콩인들은 깨어났고, 국제사회도 변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난 수십 년간의 유화정책을 버리고 중국 공산당을 미국 최대의 전략적 라이벌로 삼았다. 무역전쟁을 시작으로 군사·과학기술·첩보·중국 공산당 부역자·종교·인권·대만·이데올로기 등 전방위적 포위망으로 좁혀가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항쟁하는 조슈아 웡은 자유세계의 인정을 받았다. 그는 지난 2014년 18세 나이로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젊은이 25인’에 선정됐다. 영국 ‘더 타임스’는 그를 ‘올해의 청년’으로, AFP는 ‘전 세계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인물’ 6위에 선정했다. 올해에는 독일 ‘빌트’로부터 ‘자유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시대의 저울추가 98세 중국 공산당으로 상징되는 구시대의 권력 집단에서 23세 조슈아 웡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세대로 기울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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