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출범한 영국 트러스 내각 단명하나? 감세안 여파, 조기 총선 요구 여론 높아

최창근
2022년 10월 11일 오후 2:11 업데이트: 2022년 10월 11일 오후 2:27

지난 9월 출범한 영국 리즈 트러스 내각이 좌초 위기에 놓였다. ‘조기 총선’ 실시 요구가 수면 위로 오르고 있다.

영국 의회는 10월 11일, 새로운 회기를 시작한다. 의회의 주요 안건은 조기 총선이 될 전망이다.

영국 국민 여론은 현 트러스 내각을 불신임하며 조기 총선을 실시하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영국 의회 청원 게시판에 게재된 조기 총선을 요구하는 청원 건수는 10월 10일 기준 57만 건을 넘었다. 해당 안건은 9월 29일 의회 토론 기준인 10만 건을 넘었다.

영국 인터넷 여론조사 기업 ‘유고브(YouGov)’의 10월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73%는 “트러스에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보수당 지지층 중에서도 63%가 “트러스에 부정적”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응답자의 62%는 “수개월 안에 조기 총선을 바란다.”고 답했다. 유고브가 영국 성인 1737명을 대상으로 지난 10월 6∼7일 조사한 여론조사에서는 집권 보수당을 지지한다는 응답률이 22%로 제1야당 노동당을 지지한다는 응답률(52%)보다 30%포인트 낮았다.

출범 2개월 차를 맞이한 리즈 트러스 총리가 여론을 수용하여 조기 총선 실시를 결정할지는 미지수이다.

다만 지지율이 급락한 상태에서 리즈 트러스 총리가 여론을 무시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으로 몰릴 수 있다.

지지율 하락의 주범인 ‘감세안’을 추진했던 쿼지 콰텡 재무부 장관의 정치적 입지도 불안정하다.

외부 요인도 관건이다. 무디스, 스탠더드앤푸어스(S&P), 피치 등 세계 3대 신용평가 회사들은 일제히 영국의 신용등급 하락 위험을 경고하면서 영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피치는 지난 10월 5일, 영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앞서 S&P도 10월 1일, 영국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무디스는 신용등급 전망을 낮추지는 않았지만 9월 21일 영국 정부가 발표한 450억 파운드 규모 감세안이 영국 정부 재정에 부정적이라고 지적했다. 신용 등급 하락을 시사한 것이다. 무디스와 S&P는 10월 21일 “영국의 신용도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무디스가 영국에 부여한 신용등급은 Aa3다. 무디스의 10개 투자 적격 등급 중 네 번째로 높은 등급이다.

피치는 같은 수준의 AA- 등급을 부여하고 있으며 S&P는 투자 적격 등급 중 세 번째로 높은 AA를 부여하고 있다. S&P가 무디스와 피치보다 한 등급 더 높은 신용등급을 매기고 있다.

무디스가 마지막으로 영국 정부 신용등급을 강등한 때는 2020년이다. 당시 무디스는 유럽연합(EU)과의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협상 불확실성,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영국 정부의 차입 증가, 정부와 공공기관의 재정 부담 등을 이유로 영국의 신용등급을 Aa2에서 Aa3로 낮췄다.

S&P는 영국 정부 부채가 2023년부터 줄 것으로 예상했지만 트러스 내각의 감세안 때문에 2025년까지 재정적자가 늘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피치는 영국 정부 재정적자(general government deficit) 비율이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7.8%, 내년 8.8%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영국은 재정난이 지속되고 있다. 2002년부터 2021년까지 20년 연속 재정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2001년 33.9%였던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가 작년에는 102.8%가 됐다.

이 속에서 콰텡 재무부 장관은 새 회기 첫날 하원에 출석하여 여야 의원들의 질의를 받을 예정이다. 콰텡 장관은 10월 12일, 보수당 리더 그룹인 ‘1922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만나 트러스 내각에 대한 신임을 호소할 예정이다.

콰텡은 트러스 총리의 가장 든든한 정치적 동지로 평가받았다. 그 결과 트러스 내각에서 영국 최초 ‘흑인’ 재무부 장관으로 기용됐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콰텡이 임명될 당시 “리즈 트러스와 콰텡이 2010년 의회에 동반 입성한 정치적·이념적 동지이며 콰텡은 트러스의 충실한 지지자였다.”고 소개했다.

2012년 트러스와 콰텡을 비롯해 5명의 보수당 초선 의원들은 영국의 미래 비전을 담은 ‘브리타니아 언체인드(Britannia Unchained)’라는 책을 공동으로 펴내기도 했다. 이 책은 대처리즘에 입각한 자유 시장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작은 정부, 정부 지출 축소, 낮은 세율,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공동 저자들은 책에서 영국의 낮은 생산성을 문제 삼으며 “영국인들은 직장에 들어가면 세계 최악의 게으름뱅이가 된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리즈 내각이 450억 파운드 감세안 발표 후 영국 파운드화가 사상 최저치로 폭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극심한 혼란에 빠지자 트러스와 콰텡은 의견 충돌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최고 소득세율 인하 방침을 철회한 것과 관련하여 “트러스 총리가 ‘내각이 아닌 콰텡 재무부 장관의 결정이었다’고 말했다.”고 지적하며 “트러스가 콰텡 장관을 버스 밑으로 던졌다(Truss ‘Throws Kwarteng Under a Bus).”고 표현하기도 했다. 트러스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콰텡 장관을 희생양 삼아 그에게 책임을 떠넘겼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영국 하원의 임기는 5년이다. 하원은 지난 2019년 12월 17일 소집됐다. 조기 총선을 위한 의회 해산이 없으면 만 5년째인 2024년 12월 17일에 자동 해산 예정이다.

영국 헌정 체제에서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할 권한은 총리에게 있다. 트러스는 여론을 무시하고 내각을 유지할지, 여론을 수용하여 조기 총선을 실시할지를 결정할 수 있다.

이미 트러스 내각이 최고 소득세율 인하 방침을 철회하면서 감세안을 수정했지만 노동당 등 야권에서는 전면 철회 요구가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카드는 각료 해임이다. 타깃은 콰텡 재무부 장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