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간 발로 찾은 부산 문화유산…주영택 원장

이윤정
2022년 01월 31일 오후 5:47 업데이트: 2022년 02월 1일 오전 8:47

교과서에 안 나오는 향토사 찾아 한평생 매진
부산의 지붕 금정산 600번 올라 유적 탐색
현장 찾아 채록한 전설 450편…“충효 등 전통 가치 녹아 있어”

주영택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 원장(86)은 부산 해운대에서 나고 자란 부산 토박이다. 역사학을 전공하고 40년 동안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친 그는 2000년 2월, 부산 해운대구 동백중학교 교장으로 정년 퇴임했다.

주 원장은 퇴직과 동시에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을 개원하고 지금까지 부산·경남 지역 향토사 연구에 매진해왔다. 그가 70여 년 동안 문헌·고문서 등을 뒤져 사료(史料)를 찾고 부산 곳곳을 현장 답사해 기록한 글과 촬영한 사진을 담아 부산의 역사를 저술한 책이 40여 권에 이른다.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부산광역시교육청 부산교육발전자문위원, 부산 100경 자문위원, 금정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주영택 원장은 지난해 12월 15일, 부산의 문화유산을 추억의 명소, 고분, 온천, 공원, 시장 등 12 주제로 나눠 속속들이 재조명한 ‘역사 속에 빛나는 부산 문화유산을 말한다’ 책을 펴내기도 했다.

에포크타임스는 부산에서 주 원장을 만나 그의 역사 기행 이야기를 들어봤다.

주영택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 원장 | 에포크타임스

-한평생을 역사와 함께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나?

“1949년 초등학교 6학년 때, 수업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들려주는 단군신화와 고주몽 건국 얘기가 너무 재미있어 넋을 놓고 들었다. 그 후 두 달 뒤에 치른 중간고사 시험에서 학급 전체 65명 중 나 혼자 사회 과목 만점을 받았다. 당시 역사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고 결심하면서 내 나이 70이 되면 해운대 역사를 다룬 책을 한 권 만들어 고향에 바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60년이 흐른 2010년, 그의 나이 70세가 되던 해 ‘해운대 뿌리찾기-역사와 문화를 만나다’라는 책이 정말 세상에 나왔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역사적 현장을 만나거나 무슨 이야기를 들으면 무조건 메모했다. 60년간 발품을 팔아 찾아낸 새로운 사실들을 정리한 책이다. 나를 키워준 지역사회에 나름 보답했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 우연한 기회에 역사에 심취한 소년은 그렇게 평생을 부산·경남 향토사 연구에 헌신했다.

-부산의 향토사를 연구하게 된 이유는

“40년 동안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면서 우리 고장에는 어떤 역사가 있는지, 어떤 문화재와 전설이 존재하는지 항상 궁금했다. 향토사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고장의 내력과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이 묻어있는 보물과 같다. 앞으로 부산의 주인공이 될 이 아이들은 부산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학생들에게 가르치려고 자료를 찾아보니 남아 있는 자료가 거의 없었다. 교과서에는 중앙 정부 중심의 서울 역사만 나오지 지방(부산)의 역사가 어디 있나. 어쩔 수 없이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도시락 싸 들고 부산·경남 일대의 산과 유적지를 직접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부산대 사학과 56학번인 그는 1965년부터 부산·경남 지역 학교에서 국사를 가르쳤다. 학생들에게 부산의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고 싶어 현장을 찾아 발로 뛰며 촌로(村老)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흔적들을 하나씩 파고들었다. 그가 지금까지 카메라를 메고 다니며 직접 찍고 현상한 사진만 2만여 장, 신문 등 관련 자료를 스크랩한 대학노트만 200여 권에 달한다.

“부산의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그동안 파묻혀 있던 역사를 찾아내고 잘못 알려진 역사를 바로잡기도 했다. ‘부산 바로 알기’를 위해 평생 부산 전 지역을 두루 다니며 발품으로 찾아낸 자료들은 지역 언론을 통해 보도됐고 자료가 모이면 책으로 묶었다.”

-수십 년 현장을 누비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든 원동력은 무엇인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여름이고 겨울이고 부산·경남 일대를 구석구석 훑고 다녔다. 길 하나 찾는 데 5년 걸린 적도 있었고 10년 걸려 밝혀낸 것도 있다.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아무리 힘들어도 부산의 역사를 찾아 바로 세운다는 일념으로 버텼다. 실증자료를 찾아냈을 때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내가 찾아낸 역사의 조각들이 책으로 만들어져 후손들에게 전해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보람이다.”

-발굴 사례를 하나 들려준다면

“2010년 4월, 용두산공원을 20일간 답사하다가 부산타워 담장 밑 숲속에 묻혀 있던 비석 3기를 발견하고 보름 후에 같은 장소에서 비석 1기를 또 찾아냈다. 그중 1955년에 세운 ‘용두산신위비’는 사각 테두리 안에 화(火)자를 가운데 써놓고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물 수(水)’자가 불을 에워싸고 있는 형상이다. 당시 화재가 잦았던 부산에 불을 예방하는 부적 비석을 세운 것이다.”

용두산 신위비(높이 130cm, 너비 49cm, 두께 9.5cm). 용두산 대화재가 발생하자 관민 합동으로 1955년 1월 15일에 만들어 세웠다. | 주영택 원장 제공

그가 찾은 비석은 총 70여 기에 이른다. 비석은 주로 송덕비, 충렬비, 효자비 등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충효 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섶에 주로 세웠다는 게 주 원장의 설명이다.

-부산이 다른 지역과 비교해 역사적으로 특별한 점은 무엇인가

“우선 4포지향(四包之鄕)을 들 수 있다. 부산은 산(금정산·장산), 강(수영강·낙동강), 바다(동해·남해)에다 온천(동래·해운대)까지 두루 갖춘, 그야말로 사람 살기 좋은 곳이다. 여기에다 이른바 해운대·태종대·오륜대·몰운대 등 경치가 아름다운 명승지도 많다.”

1940년대 동래온천장 거리. 동래 온천장은 온천휴양지로서 일 년 내내 전국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좌)/ 1927년 전차 개통 기념 및 동래온천의 상징물로 세워진 ‘웃는 할아버지상’과 ‘전차 모형’. 옛날 전차 종점인 부산은행 온천동 지점 앞에 있다.(우) | 주영택 원장 제공

“특히 해운대는 3만 년 전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부산의 뿌리와도 같은 곳이다. 그만큼 물 좋고 교통이 편리하며 먹거리도 많았다는 얘기다. 그런 바탕 위에서 부산의 해양문화 등 전통문화가 꽃피울 수 있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부산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자부심을 드러냈다. 부산을 ‘화통하고 솔직함이 넘치는 도시’로 표현하기도 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민·관이 끈기 있게 저항한 곳은 부산뿐이었다. 끈질긴 생명력과 강단, 명분 있는 저항성은 부산 사람들의 기질이다. 6·25전쟁 당시에도 외지에서 온 피난민들을 모두 포용해 안심하고 살도록 협조했다. 남을 배려하는 정신도 부산 사람의 강점이다.”

-금정산, 범어사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금정이야기 전집 5권을 냈다

“대학 시절 부산대 뒤편에 자리한 금정산 산성 마을에 가서 막걸리도 먹고 하면서 이곳에는 어떤 역사가 있나 궁금해졌다. 그때부터 시작해 금정산만 600번을 오르내렸다.”

1989년에는 ‘선찰대본산 범어사’라는 책을 입수해 2년간 온 산을 뒤져 책에 표시된 유적들을 찾아냈다.

“범어사의 경계 표시인 범어사기(석표) 10개를 발견했고 금정산에서 60여 체의 마애불도 찾아냈다. 금정산성을 지키는 방어사찰이었던 ‘해월사지(海月寺址), 금정산 차(茶) 군락지 5곳을 찾았고 금정산의 기우소(비가 안 오면 제사를 지내던 곳)가 놋정바위라는 사실도 모두 밝혔다.”

금정산의 숱한 바위군에 ‘천구만별(千龜萬鼈·천 마리의 거북이와 만 마리의 자라)’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주 원장이다. 이 밖에도 ‘범어 3기'(원효석대·자웅석계·암상금정)와 ‘금정 8경’을 실제로 확인했으며 조선 시대 대표적 교통로인 황산도(영남대로의 밀양~양산~동래 구간)를 5년간의 답사 끝에 복원하기도 했다.

“문헌에 사소한 내용이라도 나오면 그걸 단서로 해서 그 지역 80, 90대 노인들을 찾아다녔다. 현장에 가보고 검증하는 절차를 반드시 거친다.”

이렇게 찾아낸 금정 이야기는 전설 편(2005)으로 시작해 지명 편(2006), 역사 편(2009), 사진 편(2012)에 이어 비석 편(2016)까지 전집 5권으로 마무리했다.

-2013년 발간한 ‘주영택이 발로 찾은 부산의 전설 보따리’에는 총 77편의 전설이 수록됐다. 이렇게 방대한 전설을 어떻게, 어디서 수집했나

“대학 2학년 때부터 카메라를 둘러메고 전설 수집에 나섰다. 주로 마을 경로당을 찾아다니며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만나 밥도 먹고 술도 사드리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주 원장은 어릴 적 할머니가 집에 오면 옛날이야기를 꼭 3편씩 해달라고 졸라댔다. 설화(전설·민담·신화)를 많이 듣고 자란 그가 전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필연으로 보였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우리 고장에는 어떤 전설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의문을 가지게 됐다. 그저 이야기로 끝나는 민담이나 건국 이야기인 신화와 달리 전설은 그 존재를 입증해주는 장소와 주인공이 반드시 있다. 부산은 지리적 특성 때문에 1592년 임진왜란, 1876년 부산포 개항, 1950년 6·25전쟁 등에 기인하는 전설도 많다. 이러한 역사를 기반으로 반평생 부산 구석구석을 속속들이 훑으며 전설을 채록했다.”

그가 이렇게 발품으로 모은 전설은 총 450편. 충·효·예 등 사람의 삶이 묻어있는 생활 전설, 마을, 산, 바위 등 이름 유래에 얽힌 지명 전설, 마을을 지키는 신앙 전설, 동·서양 외국인과의 교류에서 비롯된 외래 전설 등이다.

“2012년 3월부터 12월까지 지역 일간지인 국제신문에 부산의 전설을 1주일에 1편씩 연재했다. 처음엔 이걸 의뢰한 신문사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한 번도 못 들어본 재미난 이야기’라는 평가와 함께 인기를 끌었다. 부산 문화관광 해설사들에게는 필독 기사가 됐다. 총 63회 연재분에 14편을 더해 이듬해 같은 이름의 책을 냈다.”

-현대인에게 전설은 어떤 의미가 있나

“전설 등 설화에는 인간다운 삶의 모습, 협동심 같은 사람 간 관계에서의 도리, 충효 사상 등 전통 가치가 녹아 있다. 전설에 내포된 이런 전통 가치들이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전달되면서 사람들에게 감화를 준다. 전통문화를 살림으로써 잊혀진 가치들을 젊은 사람들에게 좀 깨우쳐 줄 수 있다고 본다. 아는 만큼 보이는데 모르니까 등한시하는 것이다.”

주영택 원장이 저술한 책들 | 에포크타임스

-교직에 있으면서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일본의 역사 왜곡,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를 비롯해 요즘 학생들의 역사 의식을 평가한다면?

“일본의 역사 왜곡은 우리의 고대사를 왜곡하는 임나일본부설 등을 비롯해 조선통신사, 근현대사의 독도, 위안부 문제 등 매우 다양한 부분에서 이뤄지고 있다. 중국 동북 공정의 궁극적 목적은 중국의 전략 지역인 동부 지역 특히 고구려, 발해 등 한반도와 관련된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어 한반도가 통일됐을 때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영토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 있다. 역사를 제대로 알고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학생들에게 한국사를 의무적으로 배우게 하고 또 잘 가르쳐야 한다.”

“요즘 소위 MZ 세대는 이념이나 국가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많지 않다. 한마디로 역사관도, 역사의식도 없다. 잘 모르기 때문에 우왕좌왕하는 것이다. 심지어 학교에서 전교조 교사들이 6·25전쟁을 두고 남한이 북한에 쳐들어갔다고 가르친다. 심각하다.”

-앞으로의 계획은

“우리 집 가훈이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하자’이다. 나이가 많아 예전처럼 다닐 수는 없지만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우리 땅 곳곳의 기록들을 찾는 향토사 연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