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특집 ➁] 참전 노병 “아직 휴전상태…국민들 경각심 갖고 살아야”

2021년 6월 23일
업데이트: 2021년 6월 23일

“위기 때 군대 안 간다는 것, 그 나라 국민 아니다”
“6·25 전쟁, 있는 그대로 후세에 전달되는 역사여야 한다”

에포크타임스는 6·25 전쟁 71주기를 맞아 지난 16일 나라를 위해 몸 바쳐 싸운 영웅을 만나기 위해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호국영웅 보훈회관’을 찾았다.  6·25 전쟁 당시 해병대 소속으로 참전한 구장회(86세)씨가 그 주인공이다.

<6·25 참전 당시 해병대 소속 구장회씨와의 인터뷰>

아직도 휴전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치가 떨리고, 전쟁이 끝난 상태가 아니기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 6.25 전쟁 얘기만 하면 눈물이 나고 목이 막혀…”

6·25 전쟁 당시 해병대 소속 참전용사 구장회씨는 그날의 기억을 회상해달라는 부탁에 이렇게 말했다.

1952년 4월 8사단 장병들의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 사진ㅣ제공: 육군기록정보관리단

구장회 용사는 6·25 전쟁 속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충청도에서 피난길에 올랐다. 피난 도중 폭격의 혼란 속에 가족을 잃어버렸다. 그때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16세였다. 홀로 된 구 용사는 16살 어린 나이에 피난길 속에서 구걸하며 끼니를 때웠다. 석 달을 걸어서 부산에 도착했지만 아무 연고도 없던 구 용사는 구두닦이를 하며 1년 정도 생활을 하다 부산 광복동에서 해병대 지원병 모집 포스터를 보게 됐다.

부산에서 이 한목숨 나라에 바치려고, 그 어린 나이에 군에 가겠다고 지원했는데 체중미달로 안 받아주니까 얼마나 허탈해…”

구 용사는 해병대에 지원했지만 훈련소 신체검사에서 체중미달로 결국 입대를 못하게 됐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구 용사는 거의 보름 정도 훈련소 정문 앞 위병소에서 입대시켜달라고 기다렸다. 얼마 후 그 모습을 지켜본 훈련소 교육단장에게 이런 상황을 말할 기회가 생겼다고 했다.

구 용사는 “전쟁으로 가족도 잃어버리고 고아가 됐다. 너무 배도 고프다. 입대하려 왔는데 안 받아줘서 입대할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 젊은 놈이 그냥 죽을 수는 없지 않느냐, 나라를 위해서 해병대에 입대하려는데 왜 안 받아주나, 난 나라를 위해 싸우겠다”고 교육단장에게 말했다고 설명했다.

이 얘기를 들은 교육단장의 지시로 구 용사는 해병대 27기로 입대하게 됐다. 그때 나이 열일곱,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인이 된 것이다.

1953년 7월 27일 6·25 전쟁 휴전까지 전쟁을 경험한 구 용사는 마지막 4개월간의 전쟁을 이렇게 기억했다.

“당시 개성이 보이는 지역(현재 통일전망대 위치)에서 전쟁을 했는데 바로 옆에 판문점에서는 2년째 휴전회담이 진행됐다. 지금도 느끼지만 인민군들의 작전은 참 비열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판문점을 기점으로 인민군 부대가 주위에 포진지를 구축해 우리 쪽을 향해 연일 포를 쏘아 됐다. 그때 우리는 머리조차 들 수 없었다. 머리를 드는 순간 포의 파편에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또 중공군이 몰려오자 백병전(피아식별이 안 될 정도로 적과 아군이 섞여 싸우는 것)이 일어날 정도로 치열했다고 그날을 회상했다.

구 용사는 7월 27일 휴전되던 날의 기억에 “서로가 전쟁할 땐 적이었지만 그때는 동포다. 우리말로 대화가 되니까 참 그때 생각하면 (기분이) 묘했다”고 말했다.

그는 휴전 후 용산에 위치한 해병대사령부에서 군생활을 하다 1966년 6월 30일자로 제대했다.

 

다음은 구 용사와의 일문일답.

-6·25 전쟁때 해병대에 지원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해병대에서 훈련받은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훈련은 기합 자체가 교육이다. 틈만 나면 기합이었다. 밤에 잠을 자다가도 새벽 2~3시쯤 되면 속옷 차림으로 진해에서 겨울 바닷바람을 맞으며 기합을 받은 게 기억이 남았다. 연병장에 집합해 포복을 하면 손과 배에 상처가 남을 정도로 혹독했다”

-6·25 전쟁 당시 17살이었는데, 많은 해병 동기 중 기억에 남은 전우는.

6·25 전쟁 중 사격하는 모습ㅣ제공: 육군기록정보관리단

“아직도 이름이 잊혀지지 않는 동기생이 기억난다. 천수복이라고 경찰 경사 출신이었는데 해병대 지원해서 같이 훈련받고 전방에 투입되어 같이 생활했다. 전쟁할 때 보면 우린 좀 바보였다. 포가 날아오지 않을 때 머리를 들자 그때 저격수들이 총을 쐈는데 내 동기가 바로 옆에서 그렇게 총에 맞아 전사했다. 전쟁 얘기를 하면 그때 기억이 가끔 머릿속에 떠오른다. 전우들이 전사하는 것을 많이 본 것이 가장 가슴 아팠다.”

만약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다시 참전할 것인가.

 

“그 나라 백성이라면,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군대에 안 간다고 말하는 것은 그 나라 백성이 아니다. 내가 왜 17살에 군대를 갔냐면 가족도 잃고 배도 고프고 거지가 됐는데 왜 전쟁 속에 이렇게 죽어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살 바엔 차라리 군대 가서 떳떳하게 군복 입고 적이라도 한 명 쏘고 죽자는 생각밖에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지만 그때 부산진역에서 모였던 사람들은 못 먹고 피골이 상접했지만 군대에 지원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어차피 전쟁터에 가면 다 죽는다고 생각했을 텐데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없으면 군대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6·25 전쟁의 의미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글쎄… 한국전쟁은 강대국들 장난에 놀아난 전쟁이라고 나는 평가하고 싶다. 정부에서는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몰라도 일본한테 36년 식민지 생활하다가 나라를 되찾았더니 이제는 강대국들의 간섭으로 다시 갈라져 북한의 김일성에 의해 중공과 소련의 도움으로 6·25 전쟁이 발발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나, 우리가 무엇 때문에 동족끼리 전쟁을 하겠나.”

-6·25 전쟁을 직접 겪었는데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왜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것도 하나의 전술이라고 생각한다. 본인들이 다 저질러놓고 아니라고 하는 것은 이제는 더 이상 논하고 싶지 않다. 6·25 전쟁만 하더라도 그때 당시 우리나라에 t-35 전차가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60여 대의 전차를 가지고 남쪽으로 쳐들어왔는데 우리는 전혀 전쟁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고, 포도 야전에 몇 대뿐인 상황이었다. 중공과 소련의 지원이 아니면 이렇게 전쟁이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전후 세대들에게 6·25 전쟁은 교과서에 나오는 역사이다. 이와 관련 2030 세대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한마디로 전쟁은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전쟁은 한마디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전쟁을 모르는 우리 후세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역사라는 것은 내 세대에 겪어보지 못한 과거, 지나간 것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를 알아야 한다. 역사 공부를 제대로 시켜야 국가 발전도 있을 수 있다. 후세들이 좀 더 나은 길로 걸어가고 발전할 수 있는 길을 택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전쟁은 하지 말자, 전쟁은 있어서는 안 된다.”

먼저 떠난 전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죽어서 흙 된 지가 오래되었는데 같이 살았으면 정말 형제처럼 지내고 지금은 그때 얘기하면서 재밌게 지낼 수 있었는데 옆에서 죽는 모습을… 지금도 그때 생각이 나면 눈물이 난다.”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어서 지금 우리나라가 이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그게 정답이다. 휴전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 아직도 우린 휴전상태이다. 따라서 전쟁이 끝난 상태가 아니기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 나는 아직도 늘 불안하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휴전인 상황을 늘 인지하고 경각심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

-6·25를 기억하기 위해 국가가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나라 국정교과서에 6·25 전쟁 관련 내용이 점점 희석이 된다. 그게 안타깝다. 학교에서도 6·25의 비참한 실상과 사실을 제대로 학생들에게 교육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역사를 지우지 말고 사실을 말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

참전용사에 대한 예우 차원으로 정부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한국전에 참전한 나라 중에 우리나라의 참전용사 지원보다 높게 대우해 주는 나라들이 있다. 전쟁 당사국인데 우리는 아직 지원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지금도 참전용사 수당 35만 원을 받는 것뿐이다.”

-6·25 전쟁 발발 71주기인데 우리나라 국민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과거 역사가 다른 나라에 비해 평탄하지 않았다고 본다. 역사는 그냥 그대로 후세에게 전달이 되는 역사여야 한다. 역사를 역사답게 가리키고, 역사를 그대로 이어받아, 잘 된 것은 받아들이고 잘못된 것은 버림으로써 다음 세대가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졌으면 좋겠다.”

/취재본부 이진백기자 jinbaek.lee@epochtimes.n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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