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위해 무명헌신했던 육사 생도 1·2기 재조망 세미나 열려

정향매
2023년 06월 18일 오후 3:45 업데이트: 2023년 06월 18일 오후 3:45

“오랜 시간 동안 대단히 섭섭했습니다! 18세 어린 나이에 30 대 1의 경쟁을 뚫고 육군사관학교 2기 생도로 입교했는데, 24일 만에 6·25 전쟁이 터졌습니다. 생도 2기는 임관을 앞둔 생도 1기와 함께 전장에 투입됐습니다. 당시 우리는 고등학생 2학년 정도의 나이었지만 공산당에 반대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으뜸이었습니다! 하지만 훗날 생도 2기는 ‘죽음의 2기’ ‘비운의 2기’라 불렸습니다… 생도 1·2기 참전 사실을 인정하고 오늘의 행사를 마련한 육사 총동창회에 감사합니다!” 

73년 전 6·25 전쟁에 참전한 육사(육군사관학교) 생도 2기 장기호(91) 씨. | 박재현/에포크타임스

73년 전 6·25 전쟁에 참전한 육사(육군사관학교) 생도 2기 장기호(91) 씨가 6월 16일 육사 세미나실에서 열린 ‘불멸의 영웅, 생도 1·2기와의 동행’ 학술 세미나에서 밝힌 소감이다. 이날 장기호 씨는 육사 생도 1·2기를 대표해 세미나에 초대됐다. 세미나는 육사 총동창회, 북극성안보연구소가 주최하고 국방부, 육사, 한국국방외교협회, 재향군인회, 군인공제회 등이 후원했다.  

6월 16일 육사 학술세미나 현장. | 박재현/에포크타임스

육사 총동창회에 따르면 1950년 6·25전쟁 당시 육사는 생도 1기생 262명과 생도 2기생 277명을 사관생도 신분으로 전선에 투입했다. 당시 1949년 7월 5일 육사에 입교한 생도 1기는 1년간 교육을 마치고 졸업·임관식을 앞두고 있었다. 1950년 6월 1일 입교한 생도 2기는 전쟁 발발 당시 제식, 총검술, 사격훈련 정도만 받은 상태였다. 

전투에 나선 생도들에게 지급된 실탄은 50여 발이었다. 생도 1·2기 전투대대는 경기 포천(내촌리)~태릉(92고지~담터고개)~한강(천호리)~판교(금곡리) 지역에서 지연전을 펼쳤다. 하지만 북한군의 압도적인 화력에 밀려 수원~대전으로 철수 후 해체됐다. 

이 가운데 생도 1·2기 13명(생도 1기 10명, 생도 2기 3명)은 국군 제9연대 소속 병력 7명(부사관 2명, 병사 5명)과 함께 오늘날 육사 근처인 불암산 지역에서 ‘호랑이 유격대’를 결성해 적 후방 교란 작전을 치르다 강원기 생도(이듬해 부상 치료 중 사망)를 제외한 전원이 전사했다. 

전쟁 기간 육사생도 1·2기 전사자는 245명(생도 1기 113명, 생도 2기 132명). 전자사 비율이 10% 안팎으로 집계되는 기타 기수에 비해 생도 1·2기 전사율은 각각 43%, 48%로 ‘죽음의 기수’로 기록됐다.   

사관생도 전투대대가 해체된 후 생도 1기 134명은 그해 7월 10일 대전 원동초등학교에서 열린 임관식에서 소위로 임관했다. 이후 남행열차를 타고 마산, 진주, 전주, 순천, 부산, 대구, 구미 등지의 신병 훈련소로 배치돼 신병을 양성하고, 부산 동래 육군종합학교에서 교관, 구대장 요원 등으로 활동하며 군 전력 증진에 기여했다. 

생도 2기는 육군종합학교에서 6주 교육 후 1951년 중위 시절 4년제 육사에 재입교를 시도했지만 군 수뇌부의 결정으로 좌절됐다. 육사 10기(생도 1기)와 11기(4년제 정규 1기) 사이에서 미아 신세가 된 ‘비운의 기수’가 되고 말았다. 

이후 생도 2기는 현지 임관 등으로 임관 구분도 없이 흩어져 근무하다 육사 개교 50주년인 1996년에서야 ‘육사생도 2기’로 공식 명명되면서 전원이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 2010년 입교 60년을 맞아 단체로 ‘자랑스러운 육사인’으로 선정됨으로써 명예를 인정받게 됐다. 

박종선(예비역 육군 중장) 북극성안보연구소 이사장은 16일 세미나 환영사에서 “육사 총동창회는 올해 6·25 정전,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전쟁 당시 생도 1·2기 선배들의 희생을 역사적, 학술적 시각에서 연구하고 알리는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오늘 세미나를 시작으로 7~8월에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매주 토요일 육사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했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북극성안보연구소는 육사 총동문회에서 운영하는 외교안보 싱크탱크이다. 박종선 장군은 현재 이사장을 맡고 있다. 

박종선 북극성 안보연구소 이사장. | 박재현/에포크타임스

박 이사장은 “지난 4월, 이 사업을 추진하던 중 존경하는 생도 2기 장기호 선배가 ‘육사 총동창회관을 건립하라’며 1억5천만 원의 거금을 쾌척했다. 깜짝 놀라서 전화로 이유를 물었더니 ‘후배들이 우리 생도 2기를 영원히 기억하기 바란다’고 답했다”며 “전화를 뚫고 들려오는 선배의 처절한 울림이 지금도 가슴에 떨림으로 남아있다”며 사업 명칭을 ‘대한민국은 당신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라고 정한 이유도 설명했다. 

권영호 육사 교장(육군 중장)은 환영사에서 “올해 개교 77주년을 맞이한 육군사관학교는 호국간성의 요람”이라고 소개했다. 

권영호 육사 교장. | 박재현/에포크타임스

1946년 5월 1일 개교한 육사는 6·25전쟁 발발 전까지 육사 1기부터 9기까지 정예 장교 4534명을 배출하며 대한민국 국방의 초석을 다졌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불법 기습 남침으로 국가의 명운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1기부터 9기는 야전에서, 생도 1·2기(539명)는 사관생도 신분으로 국가의 부름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장으로 나갔다. 육사는 1950년 7월 8일 휴교했다. 1951년 10월 경남 진해(창원시 진해구)에서 4년제 정규 사관학교로 다시 문을 열었다. 이후 1954년 6월, 현 위치인 서울 노원구 태릉으로 복귀했다. 

권 교장은 “그동안 생도 1·2기를 비롯한 육사 졸업생들은 창군기 6·25전쟁, 베트남전쟁, 대침투작전에서 전체 졸업생 2만여 명 가운데 1475명이 전사하며 ‘위국헌신(為國獻身) 군인본분(軍人本分)’의 정신을 몸소 실천했다”며 “육사는 앞으로도 선배들의 애국충정과 호국 전통을 이어받아 군(軍)의 본질과 정체성을 확고히 하며 미래 전장에 대비한 국방 혁신을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세미나는 원종필 육사 총동창회 기획국장(육사 46기)과 나종남 육사 군사사학과 교수(대령)의 주제 발표로 진행됐다.

원종필 기획국장은 ‘6·25 불멸의 영웅과의 동행’ 제하의 발표에서 6·25 전쟁 시 생도들의 서울 지역 주요 전투인 △내촌면 부평리 전투 △태릉 전투 △한강 방어선 투입 △금곡리(판교) 전투,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 편성 과정, 호랑이 유격대의 태릉 지역 주요 전투인 △퇴계원역 전투 △창동 지역 전투 △육군사관학교 전투 △내곡리 전투 등을 소개했다. 

원종필 육사 총동창회 기획국장. | 박재현/에포크타임스

원 국장은 현장 체험학습 육새 영내 코스에 포함된 건축물 △교훈탑(육사 기념관) △불멸탑(생도 1기 추모탑) △육군박물관 △청헌당(清憲堂)과 연령군신도비 △참전생도상 △미국 육사 출신 장교 6·25 참전 추모비 △밴 플리트(6·25전쟁 승리를 이끈 미 장군) 동상 등도 소개하며 한국건축가협회장 강철희 건축가를 인용해 “기념물, 기념비 등 30여 종을 전시하고 있는 육사 옥외 전시장은 ‘한국 현대건축의 미니 박물관’ 같은 곳”이라고 했다. 

원종필 육사 총동창회 기획국장이 16일 열린 세미나에서 발표하고 있다. | 박재현/에포크타임스

원종필 기획국장은 이어 현장 체험학습 2코스인 불암산 일대 주요 건축물, 초창기 육군사관학교 출신 현황, 주요 연표, 생도 1·2기 명부 등도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육사 초창기 역사와 생도 1·2기 참배 행사 사진자료 30여 점을 보여주며 발표를 마쳤다. 

나종남 육사 교수는 지난 2013년 발표한 논문에 근거해 역사학자의 시각에서 생도 1·2기 참전 사실을 분석했다. 나 교수는 특히 지난 60여 년 동안 생도 참전 전투에 대한 ‘기억’이 ‘기록’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추적하고, 생도 참전 전투 경험에서 얻는 교훈과 현대적 함의를 분석했다. 

16일 세미나 발표자로 나선 나종남 육사 교수. | 박재현/에포크타임스

나 교수에 의하면 사관생도들의 개전 초기 참전 사실은 1960년대 중반까지 관계자들의 기억 속에만 머물렀던 ‘제한된 기억’에 불과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참전자들의 노력에 의해 이 사실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고 이를 계기로 관련 자료가 발굴되고, 더 많은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역사적 사실’로 인정받게 됐다. 이러한 과정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나 교수는 또 “장교가 되기 위해 훈련받던 육사생도들이 전투원으로 전선에 투입된 것은 다시 반복돼서는 안 된다. 다만, 1950년 6월 무방비로 (침략을) 당했을 때처럼  불행한 사건이 반복되지 않아야 할 것이며, 오늘의 사관생도와 장교 후보생들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선에 투입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면서도 “오늘의 사관생도들은 6·25전쟁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조국 지키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선배들의 참전 사례에서 군인정신과 사명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역사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육사 교수를 지낸 허남성(육사 26기) 국방대 명예교수, 육사 전사(戰史)학 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김광수(육사 36기) 육사 명예교수, 주미국대사관 국방무관을 지낸 예비역 소장 출신 신경수(육사 40기) 한미동맹재단 사무총장 등이 종합 토의 패널로 참석했다. 

좌 측부터 세미나 패널토론에 참석한 권태환 북극성연구소 소장(좌장), 허남성 국방대 명예교수, 김광수 육사 명예교수, 신경수 한미동맹재단 사무총장, 박종선 북극성 안보연구소 이사장. | 박재현/에포크타임스

허남성 교수는 40여 년 전 ‘육사 30년 역사’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생도 1·2기 참전 자료를 찾아다녔던 사연을 소개하면서 “자유는 용사들의 피와 남은 자들의 땀으로 지켜진다”고 말했다. 

허남성 국방대 명예교수. | 박재현/에포크타임스

김광수 교수는 나 교수의 발표를 두고 “역사 사실에 대해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못할 정도로 자료를 수집하고 치밀하게 연구하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며 앞서 발표에서 언급되지 않은 몇 가지 역사 사실을 소개했다.   

김광수 육사 명예교수. | 박재현/에포크타임스

신경수 사무총장은 “지난주 미국에 다녀오면서 한미동맹이 어느 때보다 공고하다는 것을 직접 확인했다. 이는 1·2기 생도들을 비롯한 육사 선배들, 가족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라면서도 “오늘 세미나에 참석한 우리는 이 사실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세미나 장 밖에 나가면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한미동맹재단은 미국 밴 플리트 재단과 협력해 6·25전쟁 역사자료를 발굴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신경수 한미동맹재단 사무총장. | 박재현/에포크타임스

국방위원회 국민의힘 간사를 맡고 있는 신원식(육사 37기) 국회의원도 이날 세미나에 참석했다.

신원식 국방위원회 국민의힘 간사. | 박재현/에포크타임스

그는 축사에서 “1950년 옛 소련과 중국 공산당의 사주와 지원을 받은 북한 괴뢰 집단이 불법 남침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여러 가지 노력을 통해 나라를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미국의 극동 방위선에서 제외되면서 힘의 공백 지대에 내몰렸었다. 우리가 힘이 없고 전략적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힘이 강하고 전략적 가치가 가장 높은 국가 가운데 하나이다. 다시 1950년과 같은 아픔은 절대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라면서도 “73년 전 6·25전쟁 때 육사 선배들의 고귀한 희생을 가슴에 담는 것은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도약의 밑거름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