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6·25는 김일성이 일으킨 전쟁…분명히 알고, 기억해야”

전인범 전 육군 특전사령관
이윤정
2022년 06월 25일 오후 2:47 업데이트: 2022년 06월 25일 오후 2:47

북한, 정권 탄생 직후 전쟁부터 일으켜
김일성의 탐욕으로 민족에 깊은 상처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6·25 전쟁은 김일성이 일으킨 전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6·25 전쟁 발발 72주년을 이틀 앞둔 6월 23일, 서울 시내 한 카페에서 전인범 전 육군특전사령관을 만났다. “우리가 6·25전쟁을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전쟁을 몸소 경험한 부모님 세대로부터 생생한 전쟁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는 전 전 사령관과 6·25 전쟁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6·25 전쟁을 정의한다면?

“북한은 1948년 정권이 탄생한 지 불과 2년 만에 전쟁부터 일으켰다. 김일성은 북한이라는 신생독립국가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를 ‘폭력’으로 해결하려 했고, 그 결과 남북한 합쳐서 10명 중 1 명이 죽거나 다쳤다.”

“김일성이 지나친 탐욕으로 일으킨 전쟁 때문에 우리 민족은 아주 깊은 상처를 입었고 7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쟁이 끝나지 않고 있다.”

-김일성의 과욕이란?

“북한은 공산주의 독재 국가다. 그것도 공산주의 국가에서조차 보기 드문, 김일성의 3대 세습 1인 독재 정권이다. 전쟁을 일으킨 목적이 한반도 공산화에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오로지 자신들만을 위한 독재 국가 수립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것이다.”

-6·25 전쟁은 ‘잊힌 전쟁’으로도 불린다.

“사실 무관심이 더 문제다. 전쟁을 잊어버리는 것을 ‘용서’로 착각해서도 안 된다. 6·25 전쟁의 사실관계를 정확히 아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분명히 알고 확실히 기억하며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사과할 건 사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북한은 지금까지도 사과 한마디 한 적이 없다. 심지어 남한의 공격에 대한 북한의 반격으로 전쟁이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6·25전쟁의 결말은 무엇인가?

“어느 쪽도 승리하지 못하고 우리 한민족 전체에 깊은 상처만 남긴 전쟁이다.”

“하지만 6·25 전쟁의 결과는 한밤중에 찍은 한반도 인공위성 사진 한 장이 말해준다. 남쪽은 휘황한 불빛으로 빛나지만 북한은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여 있다.”

피흘려 지켜낸 자유와 번영의 대한민국 | 정경희의원실 제공

-중국 공산당은 6·25전쟁을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하고 북한을 돕는다)’전쟁이라고 선전한다.

“중국 공산당이 개입해 남북통일을 가로막았고 한반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중국은 처음부터 북한을 지원했고 그 결과 더 많은 인명 피해를 낳았다.”

“우리한테 사과는 못 할망정 마치 잘한 일처럼 선전하는 건 너무나 뻔뻔스럽다. 한국을 진정한 친구나 이웃 나라로 생각한다면 그런 태도는 있을 수 없다.”

-장진호 전투에 관해 설명해달라.

“장진호 전투는 1950년 겨울 함경남도 개마고원 장진호 일대까지 북진했던 미 해병 1사단이 중공군 제9병단 소속 7개 사단에 포위돼 괴멸 위기에 처했다가 17일 만에 극적으로 포위망을 돌파하고 철수에 성공한 전투다.”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추위가 제일 문제였다. 추위 속에서 행군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주변 지형도 험했고 추위 속에 총이 얼어붙어서 총알도 나가지 않았다. 당시 유엔군 3만 명은 중공군 12만 명에게 포위당했지만,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함흥 지역으로 모두 철수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혹한 속 17일간의 전투로 7천 명이 넘는 유엔군이 전사했다. 중공군은 아군의 몇 배 이상의 사상자를 내면서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중국은 중공군을 영웅으로 미화한 ‘장진호’ 영화를 개봉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 영화는 조금 보다가 말았다. 만화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영화 한 편 때문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지만 6·25를 비롯해 전반적으로 안보에 대한 생각이 차츰 약화되는 게 우려스럽다.”

“좌편향된 교과서로 역사를 왜곡하거나 아예 언급조차 안 함으로써 후손들에게 6·25전쟁을 올바르게 가르치지 않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비겁한 평화는 안 된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힘을 바탕으로 한 당당한 평화여야 한다.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다 해주는 게 해결책은 아니다. 전쟁보다는 비겁한 평화가 낫다는 인식은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남북 간의 해빙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우리가 북한에 많은 것을 양보하지 않았나. 버릇을 잘못 들여놔서 이걸 고치려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누구나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전쟁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주변국과의 관계 구축도 중요하고 나의 자유, 내 후손들의 자유를 위해선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결기가 있어야 한다.”

전인범 전 육군특전사령관 | 이유정/에포크타임스

-6·25전쟁 72주년,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나?

“평화는 지키려는 마음이 있을 때 지켜진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중국, 일본 등 주변국에서 항상 탐을 냈던 나라다.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안보를 중시해야 하고 정신 무장과 함께 전쟁을 막을 수 있는 물리적 힘을 길러야 한다.”

-후세대에 줄 수 있는 6·25전쟁의 교훈은?

“간단히 말하면 6·25의 노래(박두진 작사, 김동진 작곡) 첫 구절로 대신할 수 있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6·25 전쟁은 김일성이 일으킨 전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인범 전 육군 특전사령관은 1981년 육군사관학교 37기로 임관해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차장 및 전략기획부 전작권 전환추진단장, 제27 보병사단장,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참모차장,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을 지냈다. 특히 1983년 아웅산 폭탄 테러사건 당시 이기백 합참의장을 구해낸 부관 출신으로도 유명하다. 현역 시절 한국, 미국으로부터 총 11개의 훈장을 받아 대한민국 국군 장성 중 최다 훈장 수훈자로 알려져 있다.

전 전 사령관은 2016년 7월, 36년간의 군 복무를 마무리하고 육군 중장으로 예편했다. 그의 전역식에는 이기백·정호용·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 등 한국군 전·현직 주요 인사뿐만 아니라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 시어도어 마틴 한미연합사단장 등 주한 미군 수뇌부가 총출동하기도 했다.

그는 전역 후 미육군 협회 한국지부와 미 공군협회 미그 엘리(MIG Alley)지부 부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미 2사단 한·미 연합사단의 아버지’라는 별칭도 갖고 있는 전인범 전 사령관은 대한민국 국군 발전과 한미관계 증진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