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특집 ➀] 6·25 참전용사 사진 찍는 라미 현…“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2021년 06월 20일 오전 11:00 업데이트: 2021년 12월 23일 오후 2:35

현 작가 “그들이 지켜낸 자유·민주주의 가치 잊지 말아야”
“기록이 모여 역사가 되고, 민족의 자부심이 된다는 걸 알게 돼”
“생존 참전용사들 대부분 90대…늦기 전에 한 분이라도 더 찍고 싶어”

전 세계를 돌며 6·25전쟁 참전용사들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사진작가 라미 현(본명 현효제·43)이다.

그의 카메라에 담긴 군인은 6500여 명. 현 작가는 지금까지 군인 5천여 명의 사진을 찍고 미국, 영국 등 유엔 참전국을 돌며 1500여 명의 참전용사 사진을 찍어 액자를 제작해 무료로 전달해왔다.

현 작가는 2017년부터 ‘프로젝트 솔저 KWV(Korean War Veteran)’를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 솔저는 군인 및 참전 용사, 나라를 위해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그들의 모습과 이야기를 기록해 다음 세대에 알리려는 취지로 시작됐다.

라미 현 사진작가가 촬영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 | 출처:projectsoldier/라미 현 제공

다음은 현 작가와의 일문일답.

-군인 사진을 찍는 이유는.

“저도 한국에서 군 복무를 했기 때문에 군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고 군인들을 업신여겼다. 2013년 육군 1사단의 요청으로 부대 홍보 영상을 만들게 됐는데 군인 60~70명을 대상으로 영상 인터뷰를 하던 중 만난 성우경 원사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분이 ‘28년 군 생활 하는 동안 GOP(General OutPost·일반전초)에 3년 있었는데, 3년 동안 집에 간 날은 얼마 안 된다면서 만기 전역하면 처음으로 가족여행 가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가족까지 희생하는 분들인데 나 같은 사람이 업신여기고 무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웠다. 내가 가진 재능으로 이분들을 어떻게 기록하고 감사함을 전할 수 있을까 하다가 사진을 찍기로 했다.”

-6·25 전쟁 참전용사 사진을 찍게 된 계기는.

“2016년 군복 사진전에서 우연히 미국에서 온 유엔 참전 용사를 만났다. 미국 해병대로 한국전에 참전했던 살 스칼레토라는 분이었는데 그 눈빛과 참전에 대한 자부심이 지금껏 만난 일반 군인과는 너무 달랐다. 현역도 아닌 노병인 데다 남의 나라를 위해 참전했는데 어떻게 저런 자부심이 있을까 무척 궁금했다.”

미 해병대로 한국전에 참전한 살 스칼레토 씨 | 출처:projectsoldier/라미 현 제공

“그렇게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프로젝트 솔저는 참전 용사들을 통해 잃어버린 역사를 배우고 알리며 호기심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국내외 참전용사를 만나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2017년 영국 참전 용사 알렝 자이(Alan guy) 씨를 찾아갔는데 문을 열었을 때 옆집 할아버지 같은 눈빛이었다. 원래 알고 있던 분 같았고, 다 이해한다는 듯한 그 눈빛이 무척 신기했다.”

“원래 30분 정도로 예정된 미팅이었는데 5시간을 이야기했다. 잊혀진 참전용사라고 생각했던 나라에서 어느 젊은 청년이 찾아와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한 것에 인생을 보상받은 것처럼 고마워했다.”

한국전 참전용사 알렝 자이 씨 | 출처:projectsoldier/라미 현 제공

-그동안 어려웠던 점은.

“그저 감사함을 전하는 것뿐인데 많은 사람이 ‘1명당 얼마씩 받느냐’며 이 일을 돈으로 보는 시선이 가장 힘들다.”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나.

“스튜디오에서 사진 찍어 번 돈으로 비행기 티켓을 샀고 사진을 액자에 담아 전달하느라 카메라나 렌즈를 팔기도 했다.”

“지금은 많이 알려져서 재외 공관이나 재외 동포들 중에 협조하겠다며 연락하는 분들이 많아졌다. 그전에는 혼자 힘으로 하다 보니 무척 힘들었다.”

-그런데도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많은 분이 진짜 영웅은 죽은 사람들이라면서 본인을 겁쟁이라고 얘기한다. 그런데 사진을 보고 달라진다.”

“사진은 보이는 부분을 찍지만 사진 속에는 내면이 담겨 있다. 제가 찍어드린 사진을 보고 나면 본인이 겁쟁이가 아니라 진짜 영웅이라는 걸 느낀다.”

라미 현 사진작가가 촬영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 | 출처:projectsoldier/라미 현 제공

-이 작업하면서 언제 보람을 느끼는지.

“본인의 사진이 담긴 액자를 받으면 활짝 웃는 분도 있고 눈물을 흘리는 분도 있다. 죽어서도 관에 넣어 가져가겠다는 분들도 있다.”

“사진을 찍을 때 누구의 아버지나 사장이 아닌, 한국전 참전 용사의 모습을 찍는다. 사진 속에 그 자부심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그걸 본인이 확인하게 된다.”

“그분들은 자신이 한국전에 참전했다는 것 하나만 기억해주기를 원한다. 그동안 그저 ‘한 명의 군인(one of them)’으로 대우받았는데 본인의 이야기가 사진이나 영상에 담겨 후대에 전해질 수 있다고 굉장히 좋아하신다.”

라미 현 사진작가가 촬영한 유엔군 한국전쟁 참전용사들 | 출처:projectsoldier/라미 현 제공

-호기심에 대한 답을 찾은 건가.

“한국전쟁은 2차대전이 끝난 후 5년 뒤에 일어났다. 당시 어느 때보다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높았던 시기였고 미국 청년들은 그러한 시대의 부름에 응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의 아버지나 삼촌, 형들이 다 참전용사였다. 그들은 자유가 없거나 자유를 빼앗긴 나라에 자유를 전파하고 지켜주는 게 가장 큰 가치이고 사명이었다고 했다.”

“88올림픽을 계기로 TV를 통해 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나라 한국에서 경제성장뿐 아니라 자유와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모습을 본 것은 이들에게 엄청난 자부심이 됐다. 한국은 그들이 어렸을 때 생각했던 가장 이상적인 나라가 된 거다.”

현 작가는 국군 참전 용사들은 유엔군과 참전 동기가 좀 다르다고 설명했다.

라미 현 사진작가가 촬영한 한국전쟁 국군 참전용사들 | 출처:projectsoldier/라미 현 제공

“국군 참전용사에게는 생존의 문제였다. 그분들은 일제강점기를 경험했기 때문에 나라 잃은 설움은 집 없는 것보다 서럽다고 했다. 그래서 전쟁이 터졌을 때 필사적으로 싸웠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휴전 이후에도 자신이 목숨 걸고 지킨 나라를 복구하기 위해 인생을 다 바쳤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들의 고마움을 잊고 살았다. 그분들에게는 그게 한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이 작업을 통해 본인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전에는 잘 몰랐던 역사를 차츰 알게 되면서 한국전쟁이 한국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무엇을 남겼는지 정확히 알게 됐다. 그게 바로 우리가 느끼고 있는 자유와 민주주의다.”

“참전용사들이 지키고 싶었고 지켜낸 자유가 우리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 이 가치가 어떻게 전달돼야 하는지를 다음 세대가 알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걸 알리기 위해, 또 잊지 않기 위해 이 일을 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호기심에서 시작한 일이 ‘기록’이 됐다. 또 기록이 모여 역사가 되고 그 역사가 민족의 자부심이 된다는 걸 배웠다. 많은 사람들이 6·25 참전 용사들의 사진을 보면서 사진이 주는 힘이 얼마나 강한지 느끼고 있다.”

전 세계를 돌며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라미 현 작가 | 출처:projectsoldier/라미 현 제공

-프로젝트 솔저 사진은 ‘기록’과 ‘예술’ 중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는지.

“이 작업의 의미는 기록이지만 기록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이 작업을 통해 참전용사들은 자신을 스스로 보고, 다른 사람들은 사진을 통해 그들을 소추해서 본 다음 그들을 다시 생각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 작업은 기록이자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6.25 전쟁에 대해 잘 모르는 젊은이들도 많다.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프리덤 이즈 낫 프리(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그리고 참전용사들의 마지막 소원은 자기들이 지킨 자유를 다음 세대가 꼭 지켜가길 원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평화가 어떻게 왔는지 알아야 한다. 그 평화를 지킨 주인공들이 우리 주위에 아직 많이 있다.”

“한국에서는 국가유공자라는 모자를 쓴 분들, 외국에서는 KWV 모자를 쓴 분들을 만나면 꼭 ‘감사합니다’라고 한마디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앞으로 활동 계획은.

“2023년 정전 70주년까지 참전 및 지원국 22개국을 전부 갈 예정이다. 이후에는 그간 찍은 사진을 전시하고 강연을 통해 더 많은 분들에게 알리려고 한다.”

“참전국 중 한국 전쟁을 가르치지 않는 나라가 너무 많다. 그런 나라에 가서 전시를 통해 그 나라 국민들에게 당신의 조상들이 무엇을 했고 대한민국에서 어떤 걸 남겼는지 알려주고 싶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늦기 전에 살아계신 참전 용사 한 분이라도 더 기록하고 싶다. 이 프로젝트가 멈추지 않도록 많은 분들이 응원하고 동참해 주셨으면 좋겠다.”

/ 취재본부 이윤정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