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각료, 40대 당수…일본·대만 보수정당의 젊은 정치 리더들

2021년 06월 14일 오후 7:24 업데이트: 2021년 06월 15일 오전 10:09

한국·일본·대만서 보수 정치권 샛별로 부각

한국 국민의힘, 일본 자유민주당, 대만 중국국민당. 이들 정당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보수 색채 정당이자 오래되고, 구태의연한 이미지의 이른바 ‘꼰대’ 정당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6월 11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1985년생 36세로 국회의원 경력이 없는 이준석 후보가 당 대표로 선출됐다. 한국 정당사상 최초 30대 당수이다. 대표 선출 자체가 의미 있다.

한국을 이웃한 민주주의 국가 일본과 대만의 보수정당에서도 젊은 바람이 일고 있다.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성 대신, 스즈키 나오미치 홋카이도 도지사, 장지천 대만 중국국민당 주석, 장완안 중국국민당 입법위원(국회의원)이 그 주인공이다. 각기 다른 배경을 가졌지만, 보수 정당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이들의 인생 역정은 어떠할까.

1981년생 동갑내기 정치인… 금수저와 흙수저

한국 네티즌들에게 ‘펀쿨섹좌’라는 별칭으로 알려진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는 ‘고이즈미’라는 성에서 알 수 있듯 제87·88·89대 내각 총리를 역임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의 차남이다. 1981년생으로 막 불혹(不惑)을 맞이했다. ‘에스컬레이터식 학교’로 불리는 개신교계 일관교(一貫校·초중고 대학을 같은 학교에서 운영)인 요코하마(横浜) 간토가쿠인(關東學院) 무츠라 초·중·고등학교 졸업 후 간토가쿠인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도미(渡美)하여 컬럼비아대학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아버지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러한 학력·경력은 세이케이대학(成蹊大學) 계열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 학부를 졸업 후 아베 신타로(安倍 晋太郎) 전 외무대신의 국회의원 비서로 정계에 발을 들인 아베 신조(安倍 晋三) 전 총리와 겹쳐진다.

2008년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정계 은퇴 선언 후, 고이즈미 신지로는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가나가와(神奈川)현에서 중의원에 당선됐다. 약관 28세였다. 이후 2012년, 2014년, 2017년 총선에서 내리 당선, 30대에 4선 중의원이 됐다. 내각에서는 2013년 내각부(內閣府) 대신 정무관(정무차관 해당)을 거쳐 38세이던 2019년 아베 내각 환경성 대신으로 입각했다. 1957년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내각에서 39세에 우정성 대신으로 입각했던 나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이래 첫 30대 각료 기록을 썼다.

2019년 9월 환경상으로 첫 입각을 한 뒤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받고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 의원. | 로이터/연합뉴스

‘펀쿨섹좌’라는 조롱

고이즈미 신지로는 입각 직후부터 차기 총리 감을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아베 신조 총리,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자민당 정조회장 등 쟁쟁한 선배 정치인들을 제치고 1위에 올라 기염을 토했다. 2018년 자민당 정치인들의 정치자금 모금 실적에서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 아베 신조 총리,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무성 대신에 이어 4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반면 자질 부족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2019년 9월 환경성 대신 취임 직후 유엔 기후 행동 정상회의(UN Climate Action Summit)에 참석한 고이즈미 신지로는 “기후변화와 같은 큰 문제를 다루는 것은 펀(Fun)하고 쿨(Cool)하고 섹시(Sexy)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발언 다음 날, 그게 무슨 의미인지 묻는 기자에게 “그걸 설명하는 게 섹시하지 않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발언 이후 네티즌들은 ‘펀쿨섹좌’라는 별칭을 붙였다.

코로나19가 심각한 국면에서 각료회의에 불참했다 비판받자 “반성을 하고 있는데 좀처럼 반성이 전해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반성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고 발언하거나, “바뀌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경기가 좋아지면 반드시 불경기에서 탈출할 수 있습니다” 등 상식적인 발언을 진지하게 말하는 ‘고이즈미식 순환 화법’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그의 화법은 화제를 불렀지만 자질 부족 시비도 일으켜 차기 총리 후보에서 멀어지는 원인 제공을 하고 있다.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성 대신이 이른바 ‘금수저’ 출신 세습 정치인이라면 ‘흙수저’ 출신 자수성가형 정치인도 있다. 올해 40세의 스즈키 나오미치(鈴木直道) 홋카이도(北海道) 지사이다.

고졸 말단 공무원에서 최연소 기초자치단체장까지

스즈키 나오미치는 1981년 도쿄 외곽 사이타마(埼玉)현 카스카베(春日部)시에서 태어났다. 인기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 말려’ 배경으로 유명한 곳이다. 고등학교 재학 중 부모가 이혼하여 편모슬하에서 자랐고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고등학교 3학년인 1999년 도쿄도(東京都) 공무원 채용 시험에 합격, 그해 4월 18세 나이로 도쿄도 지방 공무원이 됐다. 2000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현 총리의 모교인 도쿄 호세이대학(法政大學) 법학부 야간과정에 입학, 2004년 졸업했다. 도쿄도 공무원 시절 위생국·위생연구소 등에서 근무했다.

홋카이도(北海道) 지사 선거 당시 스즈키 나오미치(鈴木直道) 전 유바리 시장이 자신의 사진에 꽃을 달고 있다. 2019.4.7 | 연합뉴스

스즈키 나오미치의 공직 생활에 전기가 찾아온 것은 2008년이다. 당시 이노세 나오키(猪瀨直樹) 부지사(훗날 도쿄도지사 역임)의 제안으로 일본 첫 ‘재정재생단체(재정 지표가 일정한 기준 이상으로 악화하여 파탄 상태로 인정되는 지방자치단체)’로 지정된 홋카이도 유바리(夕張)시로 파견된 것이다. 탄광촌이었던 유바리시는 석탄산업이 흥했던 1960년대에는 인구가 12만 명까지 늘었지만 중앙정부가 에너지 정책을 석유 기조로 전환하면서 인구가 1만 명으로 감소하고 지역 경제도 쇠락했다. 스즈키의 파견 전인 2006년도에는 시 재정의 8배인 350억 엔(약 37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면서 지방자치단체로서는 이례적으로 파산 신고까지 했다. 파산 상태의 지자체에 파견된 스즈키는 유바리시 특산품 멜론을 이용해 ‘유바리 멜론 팝콘’을 고안했다. 그 외에도 시의 재정 재생 계획에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다. 2010년 도쿄로 복귀할 때 유바리 시민들은 “꼭 돌아오라”며 손수건을 흔들며 환송했다. 이후 복귀하여 도쿄도 정책기획국 총무과, 내각부 지역주권전략실 등에서 근무했다.

유바리시 파견 시절 능력·성실성을 인정받은 스즈키 나오미치는 2011년 4월 지방선거에서 자민당 공천으로 유바리시 시장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 전직 중의원 이지마 유카리(飯島夕雁)를 꺾고 당선됐다. 당시 30세, 전국 최연소 기초자치단체장이었다. 시장 취임 후 시청 직원 399명을 100명으로 줄였고 시 의원도 절반으로 감축했다. 자신의 봉급도 70% 삭감했다. 각급 학교도 통폐합했고 병원은 민간에 매각했으며 도서관도 폐관했다. 일본 언론은 그를 “유바리 재정을 위해 싸운 전사”라고 불렀다. 2013년 월, 세계경제포럼 선정 ‘영 글로벌 리더(YGL)’에 선출됐고, 2015년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2019년 지방선거에서 스즈키 나오미치는 홋카이도 지사에 도전했다. 자민당 공천으로 출마한 선거에서 당선됐고, 38세 나이로 면적 기준 일본 최대 지방자치단체 수장 자리에 올랐다.

과감한 리더십… 아베 총리와 비교

코로나 19 대처에서도 스즈키 나오미치는 주목받았다. 사태가 확산일로이던 2020년 12월, 그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홋카이도에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법적 근거는 없지만 도민(道民)의 안전을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는 당시 코로나 19 사태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던 아베 신조 총리와 비교됐다. 과감한 조치로 스즈키의 인지도는 높아졌다. 코로나 19라는 비상사태 속에서 스즈키 나오미치는 자신만의 리더십으로 일본 정계를 이끌 차세대 리더로 기반을 굳히고 있다.

2020년 일본 종합월간지 ‘문예춘추(文藝春秋)’는 스즈키 지사를 ‘레이와(令和) 시대의 개척자들’로 선정했다. 기사는 “고이즈미 신지로를 뛰어넘는 정치인이 될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고이즈미 신지로와 스즈키 나오미치는 1981년생 동갑내기다.

대만, 노인정당의 40대 당수

중국국민당(中國國民黨·국민당)은 명실상부한 100년 정당이다. 1894년 창설된 혁명단체 흥중회(興中會)가 모체다. 1905년 중국동맹회(中國同盟會), 1914년 중화혁명당(中華革命黨)을 거쳐 1919년 10월 10일 중국국민당(中國國民黨)으로 거듭났다. 1949년 국민당 정부의 대만 천도, 즉 국부천대(國府遷臺) 후에도 정당 설립 금지령인 당금(黨禁) 조치 속에서 유일 합법 정당의 지위를 지키며 집권했다. 이후 1986년 창당한 민주진보당(民主進步黨·민진당)에 2000~2008년 정권을 내줬다. 2008년 재집권에 성공했으나 2016년·2020년 대선에서 패배하여 현재 제1야당이다.

2020년 1월 치러진 총통·입법원 동시 선거에서 국민당은 민진당에 참패했다.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 현 총통은 57.13%(817만231표) 득표율로 38.61%(552만2119표)에 그친 국민당 한궈위(韓國瑜)를 18.52%포인트(264만8112표) 차로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차이잉원은 1996년 총통 직선제 복원 이후 최다 득표 총통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썼다. 동시에 치러진 입법원 선거에서 집권 민진당은 입법원 전체 의석 113석 중 과반을 넘는 61석을 획득했다. 국민당은 38석에 그쳤다. 선거 패배 주요 원인 중 하나가 국민당의 노쇠·부패 이미지였다. 이는 젊은 세대의 외면으로 이어졌다.

선거에서 참패한 국민당은 인적 쇄신이 불가피했다. 2020년 3월 7일 치러진 국민당 주석 보궐선거에서 사상 첫 40대 당수가 선출됐다. 장지천(江啟臣) 입법위원(국회의원)은 8만4천860표(68.6%)를 획득하며 3만8천483표(31.3%)에 그친 하오룽빈(郝龍斌) 전 타이베이 시장에 압승했다. 장지천은 1972년생으로 당시 만 48세였다.

장지천(江啟臣) 대만 국민당 대표 | 자료사진

장지천은 대만 중부 타이중(臺中) 출신으로, 국립정치대학(國立政治大學) 외교학과 졸업 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에서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대만 둥우대학(東吳大學) 교수가 됐다.

대학교수 장지천을 정계로 ‘픽업’한 장본인은 마잉주(馬英九) 전 총통이다. 2010년 정부 대변인을 겸하는 행정원 신문국장(新聞局長·국정홍보처장 해당, 현재 폐지)으로 전격 발탁했다. 당시 38세, 내각 각료 중 최연소였다. 1942년생으로 1979년 37세에 신문국장으로 임명됐던 쑹추위(宋楚瑜) 현 친민당(親民黨) 주석, 1948년생으로 1991년 신문국장 임명 시 43세였던 후즈창(胡志強) 전 타이중 시장에 비견됐다. 세 사람 다 국립정치대학 외교학과 동문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마잉주 정부 최연소 각료가 된 장지천은 2012년 입법원 선거에서 고향인 타이중에 출마, 당선돼 원내 진출했다. 이후 2016년·2020년 선거에서 당선, 3선 입법위원이 됐다.

당 주석 취임 후 장지천은 “고인 물은 썩는다. 개혁만이 살길이다” 등 개혁을 기치로 내세우며 대대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노인정당’ 이미지의 국민당이 생존하기 위해 시급하고 긴요한 일이다. 40대가 당 주석에 당선됐다는 자체가 국민당으로서는 혁명적인 일이다. 직전 우둔이(吳敦義) 전 부총통이 1948년생, 장지천과 경합을 벌인 하오룽빈은 1952년생이었다. 출신 대학·전공, 경력 등 다방면에서 장지천과 비교되는 쑹추위가 1989년 당시 47세 나이로 당내 2인자라 할 수 있는 비서장(祕書長)이 된 적은 있지만, 40대에 주석이 된 것은 장지천이 처음이다.

국민당의 또 다른 젊은 피는 장완안(蔣萬安)이다. 그의 증조부는 장제스(蔣介石) 전 총통이고, 조부는 장제스의 장남 장징궈(蔣經國) 전 총통이고, 아버지는 장징궈의 아들 장샤오옌(蔣孝嚴)이다.

장징궈는 소련 유학 시절 연을 맺은 벨라루스 출신 부인 장팡량(蔣方良·파이나 이파티예브나 바흐레바) 사이에 장샤오원(蔣孝文)·장샤오장(蔣孝章)·장샤오우(蔣孝武)·장샤오융(蔣孝勇) 등 3남 1녀를 뒀다. 비서였던 장야뤄(章亞若)에게서 혼외자로 장샤오옌(蔣孝嚴)·장샤오쯔(蔣孝慈) 쌍둥이가 났다. 장샤오옌은 장징궈의 서자(庶子)이다. 장샤오옌은 직업 외교관 출신으로 행정원 외교부장, 행정원 부원장, 총통부 비서장, 입법위원, 국민당 부주석 등을 역임한 정계 거물이다.

장완안(蔣萬安) 대만 국민당 입법위원 | 자료사진

장제스의 증손자, 국민당의 샛별 되다

장완안은 1978년생으로 국립정치대학에서 외교학·법학을 복수 전공했다. 이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로스쿨에서 법학박사(JD)와 변호사 자격 취득 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로펌 변호사로 활동했다. 37세이던 2015년 대만으로 돌아온 후 이듬해 1월 입법원 선거에서 타이베이에 출마, 당선됐고 2020년 재선에 성공했다.

장제스 가문 출신, 미국 유학 경력, 수려한 이미지 등에 힘입어 장완안은 일약 국민당 차세대 리더로 떠올랐다. 국민당 지도부인 중앙상무위원, 당단(黨團·원내교섭단체) 서기장 등 요직을 역임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수도 타이베이 시장 후보로 꼽히기도 했다. 당시 대만 ‘중국시보(中國時報)’는 장제스 정권의 대만 패퇴, 정권 세습 등을 예언하고 있다는 당나라 시대의 예언서 ‘추배도(推背圖)’에 장완안의 등장을 암시한 대목이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책의 43번째 율시가 “장징궈 사망 30년 후 그 자손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해석된다는 것이다. 장징궈는 1988년 사망했고 선거가 치러진 2018년은 서거 30주년이었다.

/최창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