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황제의 책사’ 왕후닝 권력 부침 속에서도 승승장구

유일한 학자 출신 중앙 상무위원, 장쩌민-후진타오-시진핑 3代 보좌
최창근
2022년 10월 24일 오후 5:50 업데이트: 2022년 10월 24일 오후 10:29

중국 공산당 제20차 당 대회에서 주목받는 인물은 단연 왕후닝(王滬寧)이다. 지난 2017년 제19차 당 대회에서 서열 5위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한 데 이어, 이번에는 서열 4위로 뛰어 올라 차기 전국정치협상회(정협) 주석직에 오를 예정이다. 정협 주석은 국회의장에 해당한다.

왕후닝은 이른바 ‘서생(書生)’ 출신으로 3대(代)에 걸쳐 황제(중국 공산당 총서기)를 보좌하며 승승장구해 오고 있다. 장쩌민(江澤民) 집권 시절 중국 공산당 중앙정책연구실 정치팀 팀장에 발탁되어 정계에 진출했고, 후진타오(胡錦濤) 집권기에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으로 승진, 15년간 재직하면서 역대 국가 주석들의 ‘지도자상’을 정립하기도 했다.

2012년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에 진입했고, 2017년 당정 핵심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인 중 1인으로 영전했다. 순수 학자 출신으로 유례없는 일이다. 더욱이 장쩌민-후진타오-시진핑으로 이어지는 권력의 부침(浮沈) 속에서 자리를 지키며 승진을 거듭해 오고 있다.

왕후닝은 1955년 산둥(山東)성 라이저우(萊州)시 태생으로 1984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했다. 상하이사범대학 간부학교를 거쳐 상하이 푸단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모교에 남아 최연소 푸단대 부교수가 됐다. 1986년 그는 “중앙집권적인 권력구조가 경제·정치적으로 효율적이다.”라는 논리로 중국 공산당 1당 독재를 정당화하는 논지를 펼쳤다.

1988년부터 2년간 미국 아이오와대,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 분교에서 방문연구원으로 미국을 경험할 기회를 가졌다. 미국 체류 후 그는 미국 정치와 사회를 비판하는 책을 썼다. 미국이 개인주의, 쾌락주의, 민주주의를 강조하기 때문에 쇠락할 것이라고 예견한 해당 책은 지난해 중국 정치 전문가들 사이에서 뒤늦게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귀국 후 푸단대 국제정치학과 주임, 법과대학 학장으로 일했다.

1989년은 ‘학자’ 왕후닝의 삶에 전기가 됐다. 장쩌민 당시 상하이시 서기가 그해 일어난 대규모 민주화 시위인 6·4 톈안먼(天安門) 사태 강제 진압을 주창했을 때 중국 지식인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장쩌민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왕후닝은 중국 정치체제의 개혁이 필요하지만, 그 개혁은 ‘밑으로부터의 개혁’이 아닌 당 중앙이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개혁’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왕후닝을 눈여겨본 당시 상하이(上海)시 당서기 우방궈(吳邦國)는 푸단대 국제정치학과 교수이던 장쩌민에게 강력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5년 푸단대 교수 왕후닝은 중국 공산당 중앙정책연구실 정치팀 팀장이 되어 정치 수도 베이징으로 갔다. 중앙정책연구실의 주 임무는 국가의 상황에 맞는 정책 개발과 각종 당 대회 결정문의 초안, 그에 관련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5년에 한 차례씩 개최되는 당의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때 발표해야 하는 공작보고와 당 총서기의 각종 연설문 작성도 중앙정책연구실 소관이다. 전국의 경제 상황에 대한 조사와 자료수집, 보고서 작성, 당의 이데올로기 문제에 관한 정보수집과 보고서 작성 역시 중앙정책연구실의 중요 임무다.

장쩌민 시대 중앙정책연구실에 진입한 왕후닝은 장쩌민 시대에 장쩌민의 외국 방문과 국내 시찰에 수행원으로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후 2012년 11월 시진핑이 집권하면서 제18기 중국 공산당 정치국원으로 선출됐다. ‘중앙정책연구실 구성원은 정치국원이 될 수 없다’는 관례를 깼고, 5년 전인 2017년 제19기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에 발탁돼 중국 최고 지도부에 입성했다.

왕후닝은 장쩌민-후진타오-시진핑 등 3대에 걸쳐 최고 권력자를 보필하며 집권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다. 공산당 ‘당장(黨章·당헌법)’에 명시된 장쩌민의 ‘3개 대표론’, 후진타오의 ‘과학발전관’의 이론체계를 구성했다. 또 신중국 건국 100주년인 2049년까지 중국을 ‘전면적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로 만들고 미국의 견제에 맞서 ‘자강론’에 입각한 부국강병을 외치는 시진핑의 공약도 왕후닝이 제시한 아이디어들이었다.

이런 왕후닝에게는 지낭(智囊), 삼조제사(三朝帝師·세 황제의 스승) 등 긍정적인 평가와 더불어 ‘중국을 파멸로 모는 책사’라는 부정적인 평가가 교차한다. 왕후닝의 이론이 중국 공산당 1당 독재를 강화하는 데 이어 ‘중국판 유신(維新)’으로 불리는 시진핑 1인 독재 체제의 근거를 제시해 왔기 때문이다. 반미 성향의 왕후닝은 미국과 중국의 극한 대립에 있어서도 논거를 제공했다.

이런 왕후닝의 사생활은 베일에 싸여 있다. 푸단대 동창과 첫 결혼을 했다가 이혼한 후, 여제자와 재혼했다 이혼하는 등 세 차례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다. 현재는 중국 지도부 호위조직인 중앙경위국 출신 30세 연하 여성과 결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왕후닝이 예상대로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되면 시 주석이 지난 10월 16일 공산당 제20차 전국 대표대회(당 대회) 업무보고서에서 내놓은 국가 대전략을 현실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해설하며 차기 5년간 중국 공산당의 ‘책사(策士)’로서 그의 역할을 주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