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차 기자의 집념 “이 기판이 어떻게 보입니까”…전문가들 답변은?

이윤정
2020년 12월 1일 오후 9:00 업데이트: 2020년 12월 4일 오후 12:06

지난달 24일부터 3일간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는 국내 전자회로기판(PCB) 분야 대표 전시회인 ‘2020 국제전자회로 및 실장산업(KPCA) 전시회’가 개최됐다.

신종 코로나(중공 폐렴) 한파로 국내 전시·컨벤션 시장이 크게 위축된 가운데 열린 이번 전시회는 국내외 PCB, 전자 부품 분야 우수업체들에 새로운 시장개척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도록 기회의 장을 제공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PCB, 전자 부품, 반도체 분야에 9개국, 108개 업체가 참가한 이번 전시회 현장에서는 업계 관계자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회로기판 전문가들만 취재하는 독특한 기자의 모습이 포착됐다. 올해 취재경력 23년 차인 안동데일리 조 모 기자였다.

전자업계 전문지 소속도 아닌 그가 회로기판 전문가들을 찾아 송도까지 온 이유는 단 하나, 지난 4월 15일 총선에 사용됐던 투표지분류기, 정확하게는 운영장치 역할을 했던 노트북에 관한 ‘팩트 체크’를 위해서였다.

조 기자는 지난 5월 2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부과천청사에서 개최한 ‘부정선거 의혹 해소를 위한 공개 시연회’에서 선관위 직원들을 상대로 질문 공세를 펴다가, 선관위 측이 “질문을 많이 한다”고 제지하자 질문도 못하는 시연회는 무의미하다며 퇴장한 바 있다.

당시 좌파성향 인터넷 매체는 조 기자의 소속 언론사까지 왜곡하며 그를 폄하했다. 그러나 4.15 총선에 대해  여전히 국내 유권자 일각에서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언론마다 주요 독자층은 다를 수 있다. 독자들의 알 권리를 위해 다소 초보적인 질문을 망설임 없이 던지는 것은 언론의 사명이자 기자의 본분이다.

선관위 관계자들은 시연회 후 가진 질의응답 시간에 일부 질문에 대해 “근거를 가지고 질문해달라”고 응수해 기자회견을 연 당사자로서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에는 “우리를 믿어달라”는 상투적인 말로 질의응답 시간을 마무리했다.

실제 선거용 장비를 설치하고 투개표 전 과정을 시연한 이날, 언론이 가장 관심을 보인 건 ‘투표지분류기와 심사계수기 분해 시연’이었다.

당시 투표지분류기에 무선통신 장치가 부착돼 개표 결과가 외부로 유출됐다는 의혹이 고조됐기 때문이다. 현장을 찾은 취재진이 가장 궁금해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4.15 총선을 이틀 앞둔 13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 마련된 제21대 국회의원선거 및 시의원보궐선거 개표소에서 선관위 관계자들이 투표지 분류기를 점검하고 있다. 책상 위 왼쪽 편에 놓인 노트북이 투표지 분류기 ‘운용장치’인 LG 그램 노트북이다. 2020.4.13 | 연합

투표지분류기는 분류기, 제어용 컴퓨터(운용장치), 프린터가 한 세트로 운영된다.

이번 총선에서는 운용장치로 LG전자의 그램(Gram) 노트북(모델명 13Z980-B. AA5SL)이 채택됐고, 프린터는 엡손 제품(모델명 WF-100)을 조합한 장비가 사용됐다. 한틀시스템에서 제작해 선관위에 납품했다.

이 자리에서 선관위 측은 의혹을 해소하겠다며 “중앙선관위가 사용하는 개표 장비들에는 무선랜(LAN)카드 등 통신장비가 없다”는 설명과 함께 투표지분류기를 직접 분해해 노트북 내부 모습을 보여줬다.

이때 분해한 노트북은 앞서 투개표 시연에 쓰인 장비가 아니라 미리 마련해둔 별도의 제품이었다. 기자들이 “동일성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지적했지만, 이 의문은 해소되지 않고 계속 진행됐다.

시연회 현장에는 기자들만 모였을 뿐, 공개된 노트북을 세밀하게 검증할 전자부품 전문가는 없었다.

일부 언론사 기자들은 시연회를 마친 뒤 노트북 내부를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가지고 전자 부품 전문가들을 찾아가 보여주고 의견을 구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중앙선관위가 지난 5월 28일 경기 과천시 중앙선관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사전투표 및 개표 공개 시연회’에서 투표지 분류기를 분해하고 있다. 사진 맨 오른쪽 남성이 조모 기자다. | 연합뉴스

조 기자도 그중 하나였다. 전문가들은 무선랜카드가 탈거된 자리를 자세히 살펴본 후 “납땜의 흔적이 보인다”며 “무선랜카드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아니라 장착돼 있던 것을 떼어낸 것으로 보인다”는 전문적 견해를 내놨다.

이로 인해, 새로운 논란이 제기되자 선관위와 LG전자 측은 “해당 노트북은 무선랜 장치 미장착 모델로, 생산단계에서 무선랜을 장착하지 않고 납품된 것”이라고 맞섰다.

조 기자가 인천 송도에서 열린 KPCA 전시회를 찾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는 더 많은 전문가를 만나 선관위 시연회 때 공개된 노트북 내부 사진을 보여주며 의견을 물었다.

27년간 PCB 제조·판매를 해왔다는 업체의 한 관계자는 “검증 분석까지 안 해도 이건 누가 봐도 부품을 고의로 뗀 흔적”이라고 잘라 말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 역시 “패드의 표면 색깔이 고르지 않다”며 “열풍기로 뗀 흔적”이라고 했다.

그는 “납 성분이 남아서 표면이 매끈하지 않고 울퉁불퉁하게 보이는 것”이라며 “실물을 구할 수 없다면 아무 제품이나 열풍 기계로 작업해보면 이와 같은 모습이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기자의 취재 의도를 듣고 자기 대신 설명을 더 잘해줄 수 있는 전문가를 소개해준 사람도 있었다.

소개를 받아 찾아간 부스의 전문가는 “사진만 봐도 이 자리(무선랜카드 장착용 패드)에는 분명히 부품이 장착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밖에 “사진만으로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실물을 직접 확인해야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관계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 역시 해당 사진이 “무선랜카드가 설치된 것을 떼어낸 것으로 보인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었다.

무선랜카드의 장착, 탈착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투표장비가 인터넷에 연결되거나 연결기능이 있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해킹과 조작의 위험이 있어 선거법상 금지돼 있다.

왼쪽이 5월 시연회 당시 분해해 내부를 공개한 2018년형 투표지분류기 운용장치(LG그램 노트북) 내부 사진이고 오른쪽은 2014년형 운용장치다. | 선관위 보도자료 화면 캡처

선관위는 지난 5월 시연회 당시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무선랜카드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지난 4·15 총선에 사용한 투표지 분류기는 18년형과 14년형 두 종류가 있으며, 운용장치(노트북)는 18년형의 경우 무선랜카드가 제거된 제품을 납품받았고 14년형은 납품받은 후 직접 무선랜카드를 제거했다는 것이다.

또한, 투표지 분류기의 프린터는 제조사에 무선랜카드 제거를 요청했으나, 메인보드 일체형 구조로 인해 제거할 수 없어 기본설정(BIOS)에서 무선랜카드를 비활성화해 사용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조 기자는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의 투명성을 위해서는 더 까다롭고 더 귀찮은 질문을 누군가는 계속 던져야 한다고 했다. 그게 자신의 업이라는 것이다.

그는 “취재해보니 부정선거 의혹이 굉장히 크다.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서 밝혀질 때까지 계속 취재하겠다”며 중앙선관위, 법원, 감사원, LG전자, 각급 지방 선거관리위원회, 국회 행정안전위 등을 찾아다닐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