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사상검증’에 대만 연예인들 친중 발언 연발…라이칭더 반응은?

정향매
2024년 05월 27일 오후 4:44 업데이트: 2024년 05월 27일 오후 7:48

中 관영매체 “대만 독립 반대” 성명 후 연예계 친중 발언 봇물
라이칭더 “연예인들 강요받아…중요한 건 마음” 오히려 두둔

“베이징에 오면 우리 중국인은 꼭 오리구이를 먹습니다.”

지난 24일 대만 록 밴드 메이데이(五月天) 베이징 콘서트 현장, 메인 보컬 아신(阿信)의 ‘우리 중국인’ 발언에 팬들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그의 발언은 이날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 인기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같은 날 중국 장시성 난창에서 열린 콘서트에 선 대만 가수 차이이린(蔡依林)은 “우리 중국 난창이 가장 열정이 넘칩니다. 맞죠?”라고 외쳤다.

최근 대만 다수 연예인은 이처럼 중국 팬들을 향해 이른바 ‘하나의 중국’ 입장을 밝히고 있다. 중국 본토의 ‘양안 통일’ 여론 압박에 시달린 중국 진출 대만 연예인들의 정치적 발언으로 해석된다.

사건은 중국 공산당(중공) 관영 CCTV가 라이칭더 대만 신임 총통의 발언을 문제 삼으면서 시작됐다.

중국 매체들은 지난 20일 라이칭더의 총통 취임사를 전하진 않았지만, 이틀 후인 22일 CCTV는 “대만은 한 번도 독립 국가인 적이 없으며 영원히 그렇게 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하며 라이칭더를 ‘저격’했다.

라이칭더 총통은 취임사에서 ‘독립’이란 단어는 전혀 언급하진 않았지만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은 서로 예속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CCTV는 이를 ‘독립 국가’ 주장으로 해석해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CCTV의 서슬 퍼런 ‘대만 독립 반대’ 성명은 즉각 대만 연예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대만 연예인들은 잇따라 공개 석상에서 ‘우리 중국’이라고 말하거나 CCTV의 성명을 자신의 웨이보 계정에 공유하는 등 앞다퉈 친중 ‘인증’을 이어갔다.

그러자 CCTV는 기다렸다는 듯 해당 성명을 공유한 대만 연예인 18명의 SNS 화면을 캡처한 이미지를 공식 웨이보에 올리며 친중 인증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같은 날 중국 온라인에는 ‘대만 연예인 입장 표명 실시간 현황표’가 공유됐다. 이 표에 따르면 이날 기준 대만 연예인 78명이 친중 입장을 밝힌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 ‘샤오펀훙(중공에 충성하는 극단적인 청년층)’들은 입장을 밝히지 않은 대만 연예인 94명의 명단을 공개하며 압박에 나섰다.

이와 관련, 라이칭더 총통은 26일 “중국 진출 대만 문화예술인이 정치 입장 표명을 강요받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라이칭더 총통은 “말보다는 그들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며 대만 국민들에게 중공 당국의 압력을 받는 연예인들의 심정을 헤아려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여당(민진당) 정부를 신랄하게 비난해 온 야권도 이번 사안만큼은 모처럼 일치된 반응을 보였다.

제1야당인 국민당 소속 쉬위전(許宇甄) 입법위원(국회의원)은 중국에 대만 연예인에 대한 ‘마녀사냥’을 멈출 것을 촉구했다.

민중당도 성명을 내고 “대만 연예인들에게 입장 표명을 강요하는 중국의 행보는 양안의 민심을 더 멀어지게 하는 역효과를 일으킬 뿐”이라고 중공 비판에 합류했다.

이슈 터질 때마다 ‘입장’ 강요하는 중공

중국의 ‘정치 입장 표명’ 강요는 연예계만 국한하지 않는다. 앞서 대만 전자제품 제조사 HTC, 유리가공업체 ‘타이붜(台玻·대만유리)’, 부동산 업체 ‘샹린(鄉林)건설’ 등 다수 중국 진출 기업도 앞서 통일 의제와 관련해 중국 당국에 동의하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대만 경제매체 차이신미디어 셰진허 회장도 이번 ‘연예계 입장 표명 강요’ 사건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셰진허는 “다수 연예인이 수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유명인일수록 더 큰 압박감을 느낄 것”이라며 “기업들도 똑같은 압박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돈을 벌기 시작하면 필연코 중국 정치계와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는 중공 체제에서 불변의 법칙이며 예외는 없다”고 경고했다.

한편, 중국에 대한 남다른 견해를 밝혀 대만 네티즌의 칭송을 받고 있는 ‘개념’ 연예인도 있다.

대만 내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 온 배우 원성하오(温昇豪)는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패망한 청나라는 대만을 일본에 양도했다. 당시 대만 사람들은 힘을 합쳐 일본에 반기를 들었다. 129년이 지났지만 여러 세력이 대만 땅을 호시탐탐 노리는 상황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대만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 땅을 대하고 있다. 그 속에서 반복적으로 스스로에 벌을 내리기도 한다. 미래가 보이지 않으면 400년 전 과거, 이 땅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도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