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전문가패널 임기 연장 불발…“러·중 입김”

전경웅 객원칼럼니스트/자유일보 기획특집부장
2024년 03월 27일 오후 12:04 업데이트: 2024년 05월 7일 오전 10:54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대북 제재 이행을 감시하는 전문가 패널의 임기 연장 회의를 연기한 것을 두고, 러시아와 중국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해당 전문가 패널이 대북 제재를 위해 정보 수집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러·중이 대북 제재를 무력화하려 한다는 것이다. 대북 제재는 북한의 핵·탄도미사일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시행되고 있다.

미국의 북한전문매체 ‘NK뉴스’는 지난 20일(이하 현지시각) “러시아가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은 유엔 회원국이 대북 제재 결의를 충실히 이행하는지, 북한이 대북 제재 결의를 회피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등의 정보를 수집해 보고서를 작성한 뒤 연 2회 공개한다.

1년 임기의 전문가 패널은 총 8명으로, 유엔 사무총장이 임명하며 최대 5년까지 연임할 수 있다. 지난해 3월 임명된 전문가 패널 임기는 오는 4월 30일 만료된다. 이에 따라 유엔 안보리는 22일 전문가 패널 임무 연장을 두고 표결한다. 그런데 표결을 앞두고 러시아와 중국이 대북 제재 결의 내용 가운데 일부에 대해 일몰조항을 추가하자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여기에 더해 전문가 패널이 매년 2번 내놓는 대북 제재 이행 관련 보고서도 연 1회로 줄이자는 제안까지 내놨다.

러시아·중국의 주장에 미국, 영국, 프랑스 등 다른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반대하고 있다. 매체는 “이에 러시아가 대북 제재 전문가 패널의 임무 연장에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러·중, 지난해에도 전문가 패널 활동 반대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러시아와 중국은 지난해에도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 활동 연장에 반대했다.

당시 겅솽 유엔주재 중국 부대사는 “중국은 이번 결의안(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 활동 연장 결의안)에 북한의 인도적 상황과 관련한 방안을 포함할 것을 제안했지만 결국 반영되지 않았다”며 유감을 표했다. 안나 에브스티그니바 유엔주재 러시아 부대사도 “러시아의 제안이 결의안 초안에 담기지 않았다”면서 미국을 비난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또한 영국 출신의 전문가 패널 조정관 에릭 펜턴-보크의 역할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결국 펜턴-보크 조정관이 사퇴하고, 이후 영국 외교관 출신 조나단 브루어가 임시 조정관을 맡아 전문가 패널을 이끌고 있다.

유엔 안팎에서는 전문가 패널 임무 연장에 관한 토론이 정해진 22일을 넘길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3월 토론이 11시간 이상 진행된 것처럼 이번에도 러시아·중국과 미국·영국·프랑스 간의 의견 충돌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다만 명시된 활동 시한인 4월 30일 이전에는 갈등이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온다.

전문가 패널, 2009년 6월 출범…대북제재 위반·회피 적발 활약

북한의 2차 핵실험 직후인 2009년 6월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1874호 채택으로 출범한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은 지금까지 북한과 그 우호국이 어떻게 대북 제재 결의를 위반하고 회피하는지를 조사해 폭로해 왔다.

북한과 중국의 석탄 거래, 중국의 대북 사치품 밀수출, 북한과 러시아·중국의 공해상 석유 불법 환적, 북한 정찰총국 소속 해커들이 저지른 암호화폐 탈취, 해킹, 사이버 범죄 실태 등을 증거와 함께 보고서로 공개했다. 전문가 패널의 활약으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대북 제재를 위반한 중국과 러시아의 개인과 기업 등에 대해 제대로 독자 제재를 가할 수 있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 동향을 감시하고 알리는 데도 전문가 패널의 역할이 컸다.

전문가 패널이 지난 20일 공개한 연례보고서는 이들의 활약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보고서는 “조사 기간 동안 핵실험은 없었지만, 핵 관련 활동은 지속 포착됐다”고 밝혔다. 또한 북한이 탄도미사일 및 군사정찰위성 발사, 전술핵공격 잠수함 진수 등 대북제재결의 위반 행위를 지속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해킹과 사이버 공격 등을 통해 전체 외화벌이의 50%, 대량살상무기 개발 자금의 40%를 조달했다. 북한은 또한 40여 개국에 10만여 명의 북한 노동자를 보내 외화벌이를 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IT 기술자는 연간 2억 5000만~6억 달러, 그 외 분야 노동자들은 연간 5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며 이 가운데 대부분을 북한으로 송금하고 있다. 북한은 또 중국, 러시아, 라오스 등 5개국 이상에서 식당을 운영 중이며 연간 수익은 7억 달러 상당으로 추정됐다.

전문가 패널은 또한 보고서에서 북한 정찰총국 소속 남철응, 미사일 총국, 해킹조직인 김수키, 안다리엘, 라자루스, 블루노로프, 스카크러프트 등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할 것을 권고했다.

이처럼 광범위한 분야에서 구체적인 증거를 수집해 북한과 그 우호국의 대북 제재 위반·회피를 찾아내고 유엔 회원국에 알리는 전문가 패널이 활동을 중단하게 되면 그동안 대북 제재 이행에 비협조적이었던 러시아·중국 등의 제재 위반이 급격히 늘어날 것이라는 게 미국 등 서방 진영이 우려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