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의 위협” 경고한 軍 새 정훈교재, 쟁점과 주장

전경웅
2023년 12월 28일 오후 9:07 업데이트: 2024년 05월 7일 오전 10:54

국방부가 지난 26일 내놓은 군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 내용에서 이전 정부 교재와 달라진 부분들이 눈길을 끈다.

이 교재는 △국가관 △대적관 △군인정신 등 3대 영역으로 이뤄져 있다. 국방부는 이 가운데 ‘대적관’ 분야를 문재인 정부 때 발간한 정신교육 교재와 비교해 대폭 변경했다.

먼저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명백한 우리의 적”이라고 표기했다. 또한 “국가안보에서 외부의 적 못지않게 반드시 경계해야 할 게 바로 내부 위협 세력”이라고 지적했다.

교재는 “우리 내부에는 대한민국 정통성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북한 3대 세습 정권과 최악의 인권유린 실태 등에 대해서는 침묵하며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이 존재한다”며 “북한의 체제·이념·정책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우리 내부의 위협 세력에 대해서도 명확히 인식해 흔들림 없는 대적관과 안보관을 확립한다”고 기술했다.

그러면서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 △1992년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1999년 민족민주혁명당 사건 등 북한이 국내에서 지하당을 구축하려 했던 간첩단을 ‘내부 위협 세력’의 활동 사례로 소개했다.

교재는 또 이승만 대통령의 성과를 재조명해 부각했다. 1948년 남한 단독 총선과 대한민국 건국을 주도했다고 설명한 뒤 “이승만을 비롯한 지도자들의 혜안과 정치적 결단으로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고 자유민주주의를 대한민국의 정치체제로 선택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를 발판으로 오늘날 모든 국민이 진정한 자유와 평화, 번영의 가치를 누리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썼다.

이 같은 교재 내용을 두고 MBC는 “5공 시기 교육인가…장병 교재 설전”이라고 보도했고, 한겨레는 “한강다리 폭파 언급 없이 이승만 칭송…국방부 새 정신교육교재”라고 주장했다.

CBS노컷뉴스는 “이념논쟁 자초하는 軍”이라고 했다. 연합뉴스는 “정권 따라 바뀌는 군인정신교육교재…장병·일선부대 혼란”이라고 보도했다.

더불어민주당도 가세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27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군 정신전력교재를 두고 “정치 중립성을 훼손하고, 총선을 앞두고 노골적인 선거운동을 시도한 것”이라며 “국방부가 엉터리 교재 발간을 즉각 중단하지 않으면 해당 교재의 사용 금지 가처분 등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군이 발표한 새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 | 국방부

이들이 전혀 문제 삼지 않은 문재인 정부 시절의 군 정신교육교재(2019년)는 북한을 적이라 표현하지 않고 ‘현실적인 군사적 위협’이라고 두루뭉술하게 서술했다.

또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는 “그의 북진통일 주장은 미국의 군사원조를 받지 못했고 오히려 남북 간 군사력 격차를 크게 만들어 전쟁을 야기한 원인이 됐다”며 6.25전쟁 발발의 책임을 지우는 뉘앙스를 보였다.

군은 민주당과 일부 언론의 비판에 대해 “국내 진보세력을 적으로 규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새 교재를 환영하는 시민들 사이에서도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이 아니라면 교재 내용에 문제 삼을 이유가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북한 적화야욕, 주사파에 뿌리내려 지하정당으로

국방부가 교재에서 언급한 통일혁명당 사건(1968년)은 김종태를 중심으로 총 158명이 검거된 대규모 간첩단 사건이다.

김종태는 당시 북한 노동당의 허봉학 대남사업총국장에게 직접 지령을 받아 남한 내에 대규모 지하당 조직을 구축하려 했다.

그는 당시 미화 7만 달러와 우리 돈 2250만 원을 받아 남파됐는데, 당시 짜장면 한 그릇 가격이 50원인 시절이었다. 김종태가 받은 우리 돈을 현재 시세로 환산하면 30억 원 이상에 이른다.

이 돈은 남한 사회를 전복해 북한이 적화 통일하도록 만드는 공작에 사용됐다. 게다가 당시 중앙정보부 등이 이들을 소탕하면서 압수한 장비는 무장 공작선 1척, 침투용 고무보트 1척, 기관단총 12정, 수류탄 7개, 무반동총 1정과 권총 7정 및 실탄 140발, 12.7㎜ 고사총 1정, 중기관총 1정, 라디오수신기 6대, 미화 3만여 달러와 한화 73만여 원 등이었다. 게다가 북한은 1971년 통일혁명당 재건까지 기도했다.

1992년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은 대선을 두 달 앞둔 10월에 터졌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는 “남로당 이후 최대 간첩단 사건”이라고 밝혔다. 이때 붙잡힌 간첩이 95명에 달했다. 안기부는 “노동당 중부지역당 총책 황인오 등 62명을 구속하고 300여 명을 추석 중”이라고 밝혔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 좌파 진영은 이 사건이 ‘안기부의 조작’이라고 꾸준히 주장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때 만든 ‘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2006년 8월 “당시 안기부 조사 내용에서 특별한 조작혐의를 찾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조작이 아니라 진짜 간첩단이었다는 뜻이다.

1999년 민족민주혁명당 사건은 김영환, 하영옥, 이석기 등이 북한의 지령에 따라 국내에 구축해 활동하던 지하정당 사건이다. 이 조직의 뿌리는 1989년 주체사상을 추종하던 운동권 세력이 만든 ‘반제청년동맹’이다.

주사파 사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자랑하던 ‘반제청년동맹’은 1992년 ‘민족민주혁명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지하정당으로 변신한다. 특히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은 이후 방첩당국에 적발될 때까지 조선노동당에 가입한 뒤 2번의 밀입북에서 김일성과 직접 만나 공작금을 수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1999년 국가정보원은 민족민주혁명당 사건으로 북한의 지령을 따르는 지하당 조직이 무너졌다고 생각했지만 이는 10여 년 뒤 다른 조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2011년 8월 25일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에서 진행된 北지령 간첩단 ‘왕재산’ 적발 관련 공안당국 브리핑 장면. 당국에 따르면 북한 노동당 225국과 연계된 반국가단체 ‘왕재산’을 조직해 간첩활동을 한 5명이 적발됐다. | 연합뉴스

올해 초 4대 간첩단까지…맹목적 주사파의 위협 여전

2013년 8월 국정원 수사로 드러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과 그를 추종하는 혁명조직(RO) 사건은 여러 측면에서 ‘민족민주혁명당’을 계승하는 지하당 조직으로 평가된다.

국정원은 당시 통진당 이석기 의원실 등 18곳을 압수수색하고, 홍순석 통진당 경기도당 부위원장,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 한동근 통진당 수원시위원장 등 3명을 체포했다. 수원지검은 같은 해 10월 조양원 사회동향연구소 대표, 김홍열 통진당 경기도당 위원장, 김근래 통진당 경기도당 부위원장 등 3명을 추가 구속했다.

이 과정에서 RO가 무슨 짓을 저지르려 했는지도 그들의 대화 녹취록을 통해 드러났다. 보스톤 마라톤테러에 쓰인 것과 같은 압력밥솥 사제폭탄을 만들어 테러를 해야 한다거나 경기 평택 등에 있는 LNG 저장고, 국가기간통신망이 있는 KT 등을 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 공소장에서 드러난 내용을 보면, 이들은 ‘민족민주혁명당’과 달리 자생적인 종북세력이었다. 이들이 우리 사회에 거대한 혼란을 일으키기 위해 논의를 했던 것이다.

지난해 말에 불거진 4개 간첩단 사건 또한 ‘북한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세력’이 왜 내부 위협이 되는지 보여준다. 지난해 말 국정원과 경찰 국가수사본부는 ‘자주통일민중전위’라는 창원간첩단, ‘ㅎㄱㅎ’라는 명칭을 사용한 제주간첩단, 수원 민노총 간첩단, 전북 전주 시민단체 침투 간첩단을 적발하고 관계자들을 구속했다.

자유민주연구원(원장 유동열) 등의 분석에 따르면, 이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 침투해 있었다. 동남아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나 지령을 받은 뒤 전국적인 지하당 조직 구축도 시도했다.

특히 창원간첩단의 경우 지역 하부망과 하부조직이 전국적으로 68개에 달했다. 그뿐만 아니라 조직원들은 하부조직원들을 포섭하는 형태로 민노총과 전교조, 택배노조, 진보당 등에 침투했다. 지하 하부조직을 구축한 곳도 거제·통영·고성·진주·양산·영주·예천·봉화·대전·보령·서산·당진·춘천·원주·강릉·철원·광주·화순·구례·여수 등으로 거의 시·군 단위로 지하망을 구축했다. 서울의 경우 송파·동대문·강동·강남·은평 등 구별로 지하망을 구축했다.

동남아 국가에서 북측 인사들과 접촉해 지령을 받고 활동한 혐의를 받는 소위 ‘창원간첩단’ 경남진보연합 관계자들이 각각 31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북한은 윤석열 대통령 퇴진 투쟁 등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3.1.31 | 연합뉴스

이들은 여론전과 인지전을 통해 사회적 대립과 갈등을 조장해 극심한 사회 혼란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물론 한미동맹 해체, 대북방첩망 붕괴 등을 기도했다.

따라서 군이 언급한 “북한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세력은 우리 내부의 위협 세력”은 막연한 경고가 아닌 개연성 있는 추론과 사실에 기반을 둔 것으로 보인다.

일부 국방부 출입기자는 칼럼 등을 통해 “이제는 우리 군 장병이 더 이상 감언이설에 속지 않게 됐다”며 이번 교재 수정이 군 장병의 정신적 무장에 일조할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수정된 교재는 독도를 분쟁 지역으로 서술한 부분이 새로운 문제점으로 부각되면서 전량 회수 조치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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