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보다 무서운 건 식어가는 마음”…홍콩 교사 사직 예년 2배

강우찬
2023년 02월 23일 오전 11:57 업데이트: 2024년 01월 6일 오후 7:51

홍콩 교사, ‘업무 부담’ 등 이유로 지난해 3500명 사직

“추위는 두렵지 않다. 마음이 식어가는 것이야말로 두렵다.”

최근 소셜미디어에 게재된 홍콩 1인 시위를 촬영한 사진이 홍콩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 속 남성은 검은 모자에 고글, 방독면을 착용한 채 손에는 직접 쓴 문구가 적힌 흰 종이를 들고 있다. 마음이 식어가는 게 두렵다는 그 문구다.

남성의 앞쪽에는 2019년 3월 이후 홍콩 민주화 요구로 번진 시위대의 검은 깃발이 펼쳐져 있었다. 깃발에는 시위대 구호인 ‘광복홍콩, 시대혁명’이라는 여덟 글자가 보인다.

이 사진이 정확히 언제 어디서 촬영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남성은 반팔 셔츠를 입고 있으나, 그의 앞쪽에 벗어놓은 패딩 점퍼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쌀쌀한 날씨일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뒤편 멀리 보이는 행인들도 긴팔의 외투 차림이다.

사진 속 주변 상황은 집단시위가 없는 것으로 보아 남성이 검은 모자와 고글에 방독면까지 착용한 것은 경찰의 최루탄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인들에게 시위 당시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목적으로 추측된다.

쌀쌀한 날씨에 외투를 벗고 반팔 차림으로 선 것 역시 ‘추위는 두렵지 않다. 마음이 식어가는 게 더 두렵다’는 메시지를 두드러지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을 본 한 해외 언론인은 “이 사람이 시위 이전에 어떤 일을 했는지, 지금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알 길이 없지만, 다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사진을 통해 시리도록 전해진다”고 평했다.

홍콩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지 3년이 넘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홍콩 출신들을 주축으로 한 시위 등 정기적인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홍콩에서는 반정부적 언행을 단속하는 홍콩 ‘국가안전유지법’이 시행되면서 민주화 요구 시위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과 그 지배하에 있는 홍콩 정부에 대한 홍콩인들의 저항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사례가 교사들의 줄 이은 사직이다.

중국의 4대 포털 사이트 중 하나인 ‘왕이(网易·넷이즈)’는 지난 한 해 홍콩 초중고 교사 3500명이 사직했으며 이는 예년에 2배에 달한다고 이달 7일 기사에서 보도했다.

홍콩의 초중고교 교사가 지난해 3500명 사직했다는 왕이 뉴스. | 화면 캡처

주된 사직 사유는 ‘업무 부담’, ‘급여 불만’, ‘기타 개인적인 이유’ 등으로 집계됐다.

사직한 교사 중 경력 15년 이상은 전체의 63%, 10년 이상 15년 미만은 13%로 경력이 오랜 교사나 중견 교사들의 퇴직이 다수를 차지했다.

이와 관련해 중국 문제 전문가들은 홍콩 교육 현장에서 이뤄지는 ‘중국식 애국교육’ 확대와 무관치 않다는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홍콩의 중·고교 최신 교과서에는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었다”는 중국 공산당 시각에 맞춰 역사적 사건을 재평가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

중화권 평론가 이닝은 “자유로운 홍콩 사회에서 10년 이상 생활한 교사들이 교육 현장에서 하루하루 국가안전법에 대한 충성을 요구받으며 지내는 상황은 그 압력이 가볍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닝은 “이는 스스로 영혼을 버리고 중국 공산당에 복종하게 만들도록 학생들을 교육하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양심 있는 교사라면 그 고뇌가 더욱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생계를 잃는 일은 물론 매우 힘들고 위험이 크다. 하지만, 교사라는 직업에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일해온 교사일수록 지금 홍콩 교육 현장 상황은 자신의 살이 도려지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공산당 시각에 맞춰 바꿔 쓴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칠 바에야 차라리 스스로 교단에서 내려오겠다는 교사가 홍콩에서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