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大選, 자유·법치·미래 지켜야 ‘노예의 길’ 피할 수 있다

2021년 7월 14일
업데이트: 2021년 7월 16일

2022년 대통령 선거가 8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정치적 선택에는 오류가 따른다. 마땅히 기각해야 할 정치 세력(후보)을 선택하는 오류와 마땅히 선택해야 할 정치 세력을 기각하는 오류가 그것이다. 그중 더욱 치명적인 것은 전자(前者)이다. 집권해서 안 될 정치 세력이 집권하면 그 국가는 회복 불가의 정신적·제도적·물질적 피해를 받게 된다. 올바른 대안을 선택하지 못함으로써 잃게 되는 ‘선정(善政)의 기회비용’은 어찌 보면 낭만적 손실일 수 있다. 전자의 우(愚)를 피하기 위해서도 후보가 내세우는 선거 이슈에 대한 날 선 비판이 필요하다. 그리고 후보의 자질에 대해서는 가혹하리만큼의 철저한 검증이 요구된다.

5년 차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

문재인 정부는 이미 5년 차에 접어들었다. 지난 4년간 문재인 정부는 국정 수행에 성공했는가? 평가 주체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려워 보인다. 비판 세력의 문재인 정부 4년 평가는 냉엄하다. “자유는 질식되었고 법치는 붕괴하였으며 미래는 저당 잡혔다”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근거 제시가 주류를 이룬다. 대한민국은 정상 국가로서의 위엄과 기품을 잃었다. 국가 곳곳이 제자리를 이탈하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어지럽다. 국가적 최고의 자존심이어야 할 국격(國格)은 ‘혼밥’으로 만신창이가 됐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번영과 질서정연함을 가능하게 한 ‘법치(rule of law)의 법’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국회에서 양산된 입법(rule by law)이 대신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과는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하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면 그 이유는 아마 다음의 2가지 비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평화정착을 주장해 왔다. 문 대통령의 2017년 쾨르버 ‘신(新)평화정책’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그는 “북한과의 흡수통일을 원하지 않으며 평화가 정착되면 합의에 의해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천명했다. 통일이 절대적인 명제라 하더라도 ‘통일지상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북한에 끌려다니는 것을 목도하면서 ‘문 대통령의 대한민국 체제 수호 의지’에 대해 회의하는 국민이 점차 많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는 ‘큰 정부론’을 국정철학으로 삼고 국가개입주의(간섭주의)를 선택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경제가 활력을 잃은 가장 큰 이유는 ‘시장을 억압’했기 때문이다. 시장과 싸우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국가가 최대의 고용주여야 한다’는 철 지난 언명 이후 세금으로 월급 주는 일자리만 만들어졌다. 역설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경제 실정은 코로나 창궐로 덮였다.

2022년 대통령 선거는 단순히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의 번영된 국가’로 남느냐 아니면 유사 전체주의의 ‘가난의 길’에 들어서느냐가 결정되는 대한민국의 명운을 가르는 선거인 것이다.

어김없이 나타난 자학사관(自虐史觀)

‘사상(思想)의 무게가 기우는 방향으로’ 역사는 흥했다. 인류의 등불이라 할 수 있는 미제스의 뼈저린 촌철살인이자 경구이다. 이념과 가치의 전쟁, ‘사상전(思想戰)’이 모든 것을 가른다. 인류의 역사 수레바퀴를 정의 방향으로 구르게 한 것은 ‘자유’의 힘이다. 그리고 ‘이를 제도로 담아낸 체제’가 세계를 리드하고 있다.

저항도 만만치 않다. 선거 때만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자학사관이다. 대통령 후보 출마 선언에 붙인 이재명 경기지사의 “친일 세력들이 미(美) 점령군과 합작하여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기에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되지 못했다”라는 발언이 그것이다. 이재명의 눈에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인 것이다.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정의가 실패한 나라’로 대한민국을 규정한 노무현 전(前) 대통령의 사관과 닿아있다.

이재명의 ‘미 점령군’ 발언은 김원웅 광복회장의 ‘미국 점령군, 소련 해방군’과 같은 발상이다. ‘소(蘇)해방군, 미(美)점령군’은 북한의 국정 역사 교과서 격인 ‘조선통사’의 해석과 일치한다. ‘조선통사’는 맥아더 포고문(1945.9.7)에 대해 “남조선을 군사적으로 강점하고 자기들의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려는 야욕이 노골적으로 표현돼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북한의 조선통사 해석은 선전전에 따른 판박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태평양 전쟁 당사자는 미국과 일본이다. 일본이 형식적으로는 연합국에 항복한 것이지만 내용적으로 미국에 항복한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일본이 점령했던 점령지의 무장해제를 위해 진주한 것이다. 소련의 북한 점령은 명분 없는 그야말로 그들의 야욕을 드러낸 것이다.

국사편찬위원회가 공개한 맥아더 사령부 포고문을 참조하면 해석은 달라진다. 포고문은 “조선을 해방 독립시키라는 연합국의 결심을 (맥아더는) 명심하고, 점령의 목적이 항복문서를 이행하고 (한국인의) 인간적 종교적 권리를 확보함에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미군 포고령은 구체적인 방침이 담긴 딱딱한 법령인 데 반해, 소련군의 포고문은 추상적 원칙을 나열한 정치 문건의 성격이 강했다. 정치 선동을 중시해 정치장교까지 두었던 사회주의 군대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소련군이 미군에 비해 정치 선전에 능했다고 볼 수 있다.

꼬리 내린 기본소득 공약

이재명 지사는 기본소득에 대해 출마 기자회견에서 “제1 공약이라고 할 수 없다”고 꼬리를 내렸다. ‘기본소득의 전도사’인 양 행동하더니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자신의 주장을 접었다. 그는 깊은 연구와 성찰 없이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기 위해 청년수당 등으로 기본소득을 선매(先買)한 것일 뿐이다.

‘기본소득’은 용어부터 잘못된 것이다. 오용(誤用)된 용어는 독극물이다. 소득은 ‘경제활동에 따른 결과물’이다. 혈세로 지원하는 것은 소득이 아닌 ‘세금환급’이다. 소득이란 말을 굳이 붙인다면 ‘이전소득(transfer income)’까지이다.

외국 사례를 보자. 스위스의 기본소득 국민투표를 기획(企劃)한 단체는 BIS(basic income Switzerland) 이다. ‘기본소득이 로봇으로 사라지는 일자리에 대한 안전판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가구당 무조건적인 월 300만원(2500스위스프랑) 지급’을 제안한 것이다. 기본소득은 2016. 6. 5 국민투표에 붙여졌지만, 스위스 국민 77%가 반대해 폐기됐다.

핀란드의 기본소득실험 실패는 잘 알려져 있다. 무작위로 선별한 25~58세 실업자 2000명에게 2017~2018년 2년간 매달 560유로(약 70만원)를 지급하는 기본소득실험을 했다. 소득을 올려 지출이 늘게 되면 실업수당만 받고 일을 안 하려는 ‘도덕적 해이’가 극복될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2019년 2월 발표된 1차 보고서 결과에 따르면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실험군)은 2017년 49.69일 일했고 안 받은 실업자(대조군)는 49.3일을 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실업률을 줄이는 데 유효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돼 동(同) 제도는 폐기됐다. 우리나라 기본소득은 이런 논쟁거리도 없다. 말 그대로 현금 살포 차원에서 나온 것일 뿐이다.

일반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이재명 지사의 교언(巧言)

이재명 지사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교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는 지난 5월 4일 경기도청의 고졸 취업 지원 협약식에서 “생산성이 중요한데 형식적인 학력을 가지고 임금 차별을 하니, 안 가도 될 대학을 가느라 국가적으로 손실이고 개인적으로 인생 낭비”라고 했다. 그리고 “4년 동안 현장에서 기술 쌓고 노력한 결과에 대한 보상이 대학 나온 사람과 다를 바 없다면 누구도 우회로(대학 진학)를 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대학 4년 다닌 것과 같은 기간 세계 일주한 것 중 어떤 것이 더 인생과 역량 계발에 도움이 되겠나”고 질문하면서 “대학 비(非)진학 청년들에게 세계여행경비 1000만원을 지원해주면 어떨까 생각한다”고 했다.

요약하면 ‘생산성이 중요한데 형식적인 학력을 갖고 임금 차별’을 하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생산성은 중요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미지수(비대칭 정보)이다. M. 스펜스 교수는 ‘신호이론(signaling theory)’으로 이러한 질문에 답을 제공한 기여로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신호이론의 요지는, “어려운 학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기 때문에 나를 고용하면 어떤 어려운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를 해결할 수 있으니 나를 믿어달라는 것”이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설득력이 있다. 공인이라면 “학력(學歷)이 형식적이지 않게 해야지” 공교육을 조롱해서는 안 된다.

4년 동안 현장에서 노력한 결과에 대한 보상이 대학 나온 사람 못지않다면, 우회로(대학진학)를 택하지 않을 것이란 주장도 교언이다. 보상은 생산성에 대한 반대급부로 ‘비인격적 시장’에서 결정된다. B. 게이츠, S. 잡스, M. 주커버그 모두 대학 중퇴자이다. 대학을 중퇴하고 현장에서 경험을 쌓았기에 성공한 CEO가 된 것이 아니다. 이재명 눈엔 대학 진학은 사회에 뛰어들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우회로(迂廻路)’인 것이다. 대학 진학 동기를 왜곡시키지 말아야 한다. 대학 진학은 인적자본을 축적하기 위한 선택이다.

그는 대학 4년과 세계일주 4년 중 ‘어떤 것이 더 인생과 역량 계발에 도움이 되겠나’라는 질문은 비교불가의 것을 비교하는 ‘범주의 오류’를 범한 것이다. ‘대학 미진학자에게 경험 쌓으라고 세계여행비 1000만원을 지원해주면 어떨까?’를 자문하고 있다. 이는 ‘쾌락과 영혼을 바꾼 파우스트 계약’이다. 여행비 지원을 받기 위해 인생 항로를 변경한 청년이 후일 대학 진학자보다 열위의 삶을 살아간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시장에 대한 치명적 몰이해

이재명 지사가 출마 선언하면서 내비친 그의 시장경제관은 충격적이다.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낙제점이기 때문이다. 그는 “줄어든 기회 때문에 경쟁이 과열되고 경쟁과열은 불공정에 대한 불만을 분노로 바뀌게 하고, 승자만 생존하는 무한경쟁 약육강식이 일상이 되고 있다”고 질타하고 있다. 그러면서 “대공황시대 뉴딜처럼 대전환 시대에는 공공이 길을 내야 민간이 투자와 혁신을 감행”할 수 있다고 했다. 조국 수사 관련해서는 표적 수사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선택된 정의’는 ‘방치된 부정의’보다 더 나쁘며 그것이 불평등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기회가 줄어든 것이 문제라면 ‘더 많은 시장 기회’를 만들기 위해 규제 완화를 해야 한다. 우리 기업은 사면초가에 둘러 쌓여있다. “반(反)기업 정서, 거미줄 같은 규제, 다락같이 높은 법인세율, 노(勞)에 기운 운동장”이 그것이다. 분노를 낳는 것은 경쟁과열이 아닌 기득권 집단의 특혜와 반칙이며, 정작 승자독식은 정치 세계의 이야기다. “대전환시대에 공공이 길을 낼 능력이 있는가”를 그에게 묻고 싶다. LH 공사가 낸 길은 도덕적 해이와 부패뿐이다. 대전환 시대에는 ‘민간의 창의와 시장의 역동성이 발휘될 수 있도록’ 제도 정비에 힘써야 한다. 끝으로 내 편에 불리하다고 ‘선택된 정의’라고 낙인찍는 것은 좌파의 또 다른 ‘내로남불’이다. 그렇다면 차선인 ‘방치된 부정의’를 위해 모든 것을 덮을 것인가?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도 덮고, 조국 일가 비리도 덮고 울산시장 관권선거 개입 의혹도 덮어야 하는가?

자유 질식시키는 국민 위에 군림하는 국가

이낙연 전(前) 민주당 대표도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지난 5월 16일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위한 개헌’ 제안을 요체로 하는 ‘광주 선언’이 대선 출마 전초전이었다.

개헌을 통해 ‘내 삶이 국가의 더 강력하고 세심한 보호를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는 전형적인 ‘온정적 간섭주의’의 발로로 뒤집어 보면 ‘개인을 국가에 복속(服屬)시키겠다’는 것이다. J. 로크에 따르면 헌법은 ‘국가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는’ 최고의 규범이다. 따라서 ‘헌법을 통해 국민의 권리가 지켜질 수 있다’는 사고는 ‘역(逆)인과관계’의 모순에 빠진 것이다. 헌법은 ‘권력자의 권력 남용’을 견제하는 것이다. 그래야 개인의 권리가 보장된다.

사회·경제적 개헌을 통해 승자독식의 구조를 ‘상생과 협력’의 구조로 바꾸겠다는 언명도 몽상에 가깝다. 국가권력이 전지(全知), 전능(全能)하고 불편부당하다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권력은 불편부당하지 않으며, 권력은 결국 ‘권력을 가진 사람’에 의해 꾸려진다. 국가권력이 전지전능했으면 사회주의 국가가 풍요를 누렸을 것이다. 따라서 ‘비인격적(impersonal) 시장기구’에 자원 배분을 맡기는 것이 차선이다.

문재인 정부 4년 동안 사전적 의도와 무관하게 민생을 도탄에 빠뜨린 것은 ‘국가가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섣부른 국가개입주의를 제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앞에 무슨 수식어를 붙이더라도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보다 우월한 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언(에필로그)

바보들의 정책 사고는 기발(奇拔)하다. 발전기로 모터를 돌리면 모터가 발전기를 돌린다는 식이다. 세금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고용된 사람이 세금을 내면 일자리가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소득주도성장’은 따지고 보면 돌멩이로 빵을 만들 수 있다는 사술(詐術)이다. “소득(분배)이 성장(소득)을 이끈다”는 것은 소득이 소득을 이끈다는 것이다. 주어와 목적어가 구분되지 않으면 정책이 될 수 없다.

‘페카토 모르탈레’는 이탈리아 말로 ‘용서받지 못할 죄’이다. 공직자가 국가 예산을 낭비하고, 기업가가 이윤을 남기지 못하면 죄를 짓는 것이다. 우리나라 위정자는 ‘2중으로’ 죄를 지었다. 국민에게 퍼주기 위해 국가 예산을 방만하게 운영하고 기업이 이윤을 내기 어려운 척박한 규제환경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욜로(YOLO·you only live once)는 씨감자를 먹어 치우겠다는 미래착취의 자폭행위이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국민에게 땀과 눈물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배할 소득의 원천인 ‘부가가치’는 땀과 눈물 그리고 기회포착에서 나온다.

대한민국은 기로에 서 있다. 처음으로 부모 세대보다 못 사는 자식 세대의 길로 들어섰을 수도 있다. 원점으로 회귀해(shift left) 추론하면 ‘국가 정상화’의 출발과 지향점은 ‘자유, 법치, 그리고 미래’에 대한 존중이어야 한다. 인류의 역사는 ‘자유’ 신장의 역사이다. 자유를 지키면 평등해질 수 있지만, 평등을 추구하면 자유마저 잃게 된다. 2022년 대한민국의 선택이 대한민국의 명운을 좌우할 것이다. 사상의 무게가 기우는 쪽이 승자인 것이다.

/조동근·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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