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위대한 국민의 승리”

이윤정
2022년 03월 10일 오전 6:36 업데이트: 2022년 03월 10일 오전 7:25

개표율 51%서 처음 역전…막판까지 1% 미만 초접전
5년만에 정권 교체…“헌법정신 존중하고 야당과 협치할 것”
이재명 “모든 게 제 부족함 탓” 패배 승복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3월 9일 실시한 제20대 대통령선거 개표를 모두 마친 10일 오전 6시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윤석열 당선인의 득표율은 48.56%로 1639만4815표를 얻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47.83%, 1614만7738표를 얻었다. 득표차는 0.73%p, 24만7077표에 불과하다.

개표 중반까지 이 후보가 우세한 흐름을 보였지만, 자정을 넘어 개표율 51% 시점에 윤 후보가 처음으로 역전하면서 0.6~1.0%p의 격차를 유지했다.

이 때문에 개표율 90%를 넘어설 때까지도 당선인을 확정 짓지 못하는 초접전 양상이 이어졌다.

윤석열 당선인의 승리로 국민의힘은 재집권에 성공하게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치러진 지난 2017년 19대 대선에서 민주당에 정권을 빼앗긴 지 5년 만의 정권 교체다.

윤 당선인은 대통령 당선 직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상황실을 방문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며 “오늘 이 결과는 저와 우리 국민의힘, 안철수 대표와 함께한 국민의당의 승리라기보다는 위대한 국민의 승리”라고 말했다.

아울러 “선거와 경쟁의 모든 것들은 국민을 위한 것”이라며 “경쟁은 일단 끝났고 모두 힘을 합쳐서 국민과 대한민국을 위해서 우리 모두가 하나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제 당선인 신분에서 새 정부를 준비하고 대통령직을 정식으로 맡게 되면 헌법 정신을 존중하고, 의회를 존중하고, 야당과 협치하면서 국민을 잘 모시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이재명 후보는 10일 여의도 당사에서 “모든 것은 다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대선 패배 승복을 선언했다. 윤 후보를 향해서는 축하 인사와 함께 “분열과 갈등을 넘어 통합과 화합의 시대를 열어주실 것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이날 0시 30분께 개표 결과 관련 “저조한 성적표가 솔직히 아쉽지만, 저와 정의당에 대한 국민의 평가인 만큼 겸허히 받들겠다”며 패배를 승복했다.

윤 당선인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다. 1987년 개헌 이후 첫 ‘0선 의원’ 대통령이기도 하다.

지난해 3월 검찰총장에서 사퇴한 지 1년 만에 대권의 꿈을 이룬 윤 당선인의 외길 검사 인생을 짚어봤다.

검찰총장에서 대통령으로…윤석열은 누구인가

윤석열 당선인은 1960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대학교수 부부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서울 토박이지만 충남 논산·공주에서 파평 윤씨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던 조부와 부친의 영향으로 충청권 주자로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외가는 강원 강릉시다.

서울 충암고를 졸업하고 1979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그는 4학년 때 사법고시 1차 시험에 합격했지만 2차 시험은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1991년, 9수 끝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23기로 수료하고 1994년, 34세에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로 임관했다.

아버지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학 시절 사진 | 윤석열 캠프 제공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서울지방검찰청(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2부 검사로 재직 당시 경찰청 정보국장 뇌물 수수 사건을 처리하면서 주목받았다. 검사 입문 5년 차에 당시 정보국장이었던 박희원 치안감의 자백을 받아내고 구속하면서 ‘특수통’으로 인정받았다. 2002~2003년에는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변호사로 일하기도 했다.

2003년 광주지방검찰청 검사로 다시 돌아온 윤 당선인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인 2004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맡아 대통령 측근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사건 당시 노무현 후보 선대위 정무팀장)와 고(故) 강금원 전 창신섬유 회장을 구속기소 했다.

이명박 정부 때는 BBK 의혹을 수사한 특검팀에 파견됐고 2011년에는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담당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구속기소 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1과장,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 1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검찰 내 대표적 특수통 검사로 이름을 알렸다. 2012년, 52세에 김건희 씨와 결혼했다.

윤 당선인이 스타 검사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윗선의 수사 외압을 폭로하면서다. 그해 4월, 윤 당선인은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에 의해 국정원 정치 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장으로 차출됐다.

당시 수사 과정에서 검찰 지휘부의 반대에도 국정원을 압수수색하고 직원을 체포해 마찰을 빚었다. 그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수사 외압을 폭로했고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고 한 발언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이는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직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에 임하는 ‘강골 검사’ 이미지를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초유의 항명 사태로 그는 정직 1개월 징계를 받고 대구고등검찰청 검사로 좌천됐다. 2016년 1월에는 대전고등검찰청 검사로 전보됐다. 이를 두고 검찰 내부에서는 ‘사실상 퇴출 종용 인사’로 풀이됐다.

한직을 떠돌던 그는 2016년 12월,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에 수사팀장으로 합류하면서 화려하게 복귀했다. 박영수 당시 특검이 직접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 뇌물 의혹을 담당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구속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박영수 특검팀이 2016년 12월 2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사무실 앞에서 현판식을 하고 있다. | 연합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에 발탁됐다. 이듬해 3월, 윤석열 당시 검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소환해 직접 조사를 지휘한 뒤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에게 구속영장 청구를 건의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3월 22일, 구속됐다. 이명박·박근혜 두 전 대통령을 겨냥한 적폐 수사로 인해 ‘보수 붕괴의 주역’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6월 17일, 윤석열 검사장을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지방검사장급에서 고등검사장을 건너뛰어 검찰총장에 바로 임명된 건 1988년 총장 임기제가 도입된 이래 처음이다. 전례 없는 파격 대우였다.

검찰총장 임명 직후인 2019년 8월,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살아있는 권력도 엄정 수사해달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당부를 액면 그대로 믿고 조국 전 장관 일가에 대한 전방위 수사를 밀어붙이면서 윤 당선인과 정부·여당과의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 연합

이후 조국 전 장관의 후임으로 임명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의 대립은 극으로 치달았다. 추 전 장관은 검찰 인사를 단행하고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윤 전 총장을 견제했고 급기야 초유의 검찰총장 직무 정지 명령까지 내렸다. 문재인 정부의 신임을 기반으로 검찰총장까지 오른 지 2년여 만에 정권 최대의 정적이 된 셈이다.

결국 2021년 3월 4일, 임기를 4개월 남짓 남겨놓고 검찰총장직을 사퇴했다. 이후 118일간의 잠행 끝에 6월 29일,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한 달 뒤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했다. 홍준표 의원과의 접전 끝에 11월 5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최종 확정됐다. ‘0선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지 불과 4개월 만에 제1야당 대선 후보 자리를 꿰찬 것이다.

하지만 적응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입당 후 이준석 대표와의 불화설에 휩싸이기도 했다. 정치 경험이 없는 데다 여의도 화법에 서툰 탓에 말실수로 인해 여러 차례 구설에 오르며 지지율 위기를 맞기도 했다. ‘주 120시간 노동’ ‘전두환 옹호’ 발언과  ‘개 사과’ SNS 글 등은 논란을 일으켰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유세 모습 |연합

정권 교체에 대한 국민적 열망 속에 공정과 상식의 아이콘으로 부상하며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이 된 윤석열. 지난해 6월 29일, 대선 출사표를 던지며 공언했던 “국민의 상식을 무기로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공정의 가치를 기필코 다시 세우겠다”는 약속을 걸머지고 국민 앞에 섰다.